그릇'에 대하여
흔한 말 : 그릇을 통한 인간에 대한 은유. 그릇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쓰이는데 ㉠ 음식이나 물건 따위를 담는 기구(식기), ㉡ 어떤 일을 해 나갈 만한 능력이나 도량(아량)을 뜻한다. 그릇이 작다는 말은 속이 좁다는 말과도 통해서 " 아량 " 을 사내새끼의 으뜸 덕목으로 여기는 헬조선 가부장 사회에서는 욕에 가깝다.
그러니깐 < 그릇 > 은 인간 됨됨이'에 대한 은유인 셈이다. 이렇듯, < 아량 > 과 < 알량 > 을 자지우지하는 것은 그릇의 크기'에 달렸다. < A량 > 가 되느냐 < R량 > 이 되느냐. 그 < 문제 > 는 그릇에게 물어보시라. 그릇은 생각보다 종류가 다양하다. 음식 종류에 따라서 그릇도 모양새와 쓰임새가 다르다. 당연히 임금님 수라상에는 다양한 음식만큼이나 다양한 그릇을 엿볼 수 있다. 설겆이 하기가 귀찮다고 임금님 수라상에 올릴 깍두기'를 접시'에 담았다가는 시녀인 당신 모가지'는 박하 사탕처럼 깍둑, 시원하게 날아갈 것이다. 그릇 종류가 많으니 당연히 인간 사회도 다양한 그릇이 모여 삼라만상'을 이룬다. 사발 같은 놈이 있고, 바리 같은 놈이 있으며, 거시기 뭐냐... 그렇지, 보시기 같은 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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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주발 : 남자의 밥그릇 , 사기나 은기, 사기주발(사발)
② 바리 : 여자용 밥그릇
③ 합 : 밑이 평평, 뚜껑도 평평, 큰 합은 떡 약식 찜 등을 담음
④ 쟁첩 : 전, 구이, 나물, 장아찌 등을 담는 납작하고 뚜껑이 있는 그릇
⑤ 탕기
⑥ 보시기 : 김치류를 담는 그릇
⑦ 종지 : 간장, 초장, 초고추장의 장류를 담고 크기가 가장 작다.
⑧ 대접 : 국대접
⑨ 옴파리 : 사기로 만든 입이 작고 오목한 바리 (주로 뜨거운 음식)
그릇 모양을 보면 대충 그 용도를 알 수 있다. 생긴 대로 논다. 밥그릇은 밥그릇처럼 생겼고, 접시는 접시처럼 생겼고, 대접은 대접처럼 생겼으니까. 그런데 요상하게 생긴 식기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 바리 > 다.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고 ? 속이 좁은 것으로 보아 종지처럼 고추장이나 된장을 담는 용도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밥그릇이었다. 남자는 밥을 주발(사발)에 담고 여자는 바리에 담았다고 한다. 니미, 이런 신파 ! 하루 종일 부엌에서 가사 노동을 담당하는 여성은 밥그릇 크기에서 벌써 차별을 받는다. 굶지 않고 사는 것이 내일의 목표였던 시대'를 생각하면 가사 노동자는 밥을 짓는 노동의 주체이지만, 정작 자신에게 돌아오는 몫은 넉넉한 주발이 아니라 속 좁은 바리'였던 것이다.
< 바리 > 는 깍두기를 담는 보시기와 간장이나 된장 따위를 담는 종지'보다 조금 더 클 뿐이다. 그릇 종류만 봐도 불알후드의 지랄 같은 알량'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아량은 니미 ! < 속 > 좁은 바리에다 아무리 밥을 꾹꾹 눌러 담는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법. 더군다나 피 흘리는 모성 신화'를 강요하는 사회이다 보니 여성은 밥을 바리에다 가득 채우기보다는 오히려 덜었을 것이 분명하다. 아, 애달고 애달고 애달프도다(됐고!). 잠시 그릇 나라 동화 속 이야기로 빠지자. 일찍이 그릇 나라 백성 가운데 아량이 넉넉한 메이드 인 거제도 출신 양푼(님)이 보시기에 속이 가장 좁은 것은 종지였다고 한다. " 우지, 이런 일이...... " 오늘은 < 종지 > 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며칠 전, 속이 가장 좁은 종지 그릇 때문에 한 사람이 대국민으로부터 조리돌림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대접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릇이었다. 통 넓고 넙데데한 모양새로 보아 금수저는 아니더라도 은수저는 되는 계급이었다. 직장인들이 대부분 회사 근처에서 점심을 해결할 때, 그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일 때에만 회사 근처에서 점심을 해결한다는 신소리'로 보아 평소에는 서울 외각 가든 같은 곳에서 화전놀이를 즐기는 듯했다. 일반 직장인들이 회사 근처 식당이나 구내식당'에서 후다닥 밥을 삼켜야 하는 것과는 다른, 유기농 웰빙 라이프'라고나 할까 ? 자고로, 그릇 팔자는 이름대로 된다는 소리'가 허투루 나온 말은 아닌 모양이다. 이름이 대접이다 보니 대접만 받던 그였다. 그는 뼛속까지 자본주의적 그릇이었다.
내 돈 내고 내가 음식 사먹는데 왜 다 먹고 나서는 종지 따위에게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해야 하는가 ? ㅡ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계신, 그릇된 생각을 하는 분이셨다. ( 필자는 그릇의 그릇된 생각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릇의 생각이니 그릇된 생각'은 당연하다 ) 흙수저 물고 태어난 종지에게 대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그는 회사로 돌아와서 월간 신문고'에 주발사발(그릇 나라에서는 노발대발을 주발사발이라고 표현한다) 잘잘못을 따졌다. " 이 사발 식기'가....... 니미, 젖가락 마이싱이다. 잘못하면 한방에 숟갈(훅가)는 수가 있어. 밤길 조심해라 ! 이러니 너희들이 평생 벙거짓 꼴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 " 그릇된 생각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한 대접은 자신을 화나게 한 그릇'이 누구인지 만천하에 알렸다. 신문고의 위력을 보여주마. " 그놈은 옴파리도 아니고, 바리도 아니고, 보시기도 아니고, 접시도 아니여....... " 대접의 권세를 익히 아는 터라 이 사실이 종지에게도 알려지자 작고 초라한 종지는 저녁 내내 떨어야 했다. 종지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종지는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바둥거리다가 바둥거리다가 어찌 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종지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 ㅡ 여기까지가 그릇 나라에서 전해지는 슬픈 동화'다.
평생 대접받기를 원하기만 하는 사람들은 그릇이 작은 사람이다. 그들은 깍두기를 < 보시기 > 에 담지 않았다고, 반찬을 < 쟁첩 > 에 담지 않았다고 상을 엎는 부류'다. " 나, 나나나나. 누군지 알아 ? 나... 대접이야, 대접. 응? 클 대, 대접받을 접 ! 대접이라고 !!! " 대한그릇 땅콩 사건도 알고 보면 < 땅콩 플레이팅 > 에 대한 대한그릇 상속녀의 불만이 아니었던가 !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상이 무거워지는 원인은 반찬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릇이 많아서이다. 아량이 넓은 사람이라면 기꺼이 한 번쯤은 가벼운 양푼에다가 이것저것 담아 밥을 비벼 먹을 줄 아는 사람이다. 격식을 차리지 못한 대접을 받았다고 해서, 무거운 식기를 들고 수천 번을 왔다갔다하며 서빙을 해야 하는 노동자의 등골을 생각하면, 무작정 주발사발 화낼 일이 아니란 소리'다.
밥그릇이 크고 화려하다고 해서 반드시 그릇이 큰 것은 아니다. 본문과는 상관 없이 마무리는 안도현의 시 << 스며드는 것 >> 으로 매조지하자. " 온갖 산해진미'를 다 음미해도 간장게장의 짭짤하고 깊지만, 아린 맛을 보지 않았다면 교양인으로서 결격이란다. 수많은 대접에게 안도현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