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 1~6 세트 - 전6권
최규석 지음 / 창비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올해, 몇 포기 하셨습니까 ?




 


                                          8월, " 해뼛 " 은 쨍쨍 ~ 로레알은 반짝 ! 여러분, 엘라스틴 하세요 ~  나는 소중하니까 !  편의점을 지날 때'였다. 편의점에서 송출하는 옥외 광고 소리가 기봉 씨 귓가에서 웅웅 울렸다. 나는 소중하니까, 나는 소중하니......  나는 소소소소소...... 그는 아픈 다리를 절뚝거리며 편의점을 지나쳐 갔다. 

이렇다 할 빽도 비젼도 지금 당장은 없고, 젊은 것 빼면 시체지만 꿈이 있어. 먼 훗날 내 덕에 호강할 너의 모습 그려봐. 밑져야 본적 아니겠니. 니 인생 " 걸어보렴 " 스무 살이 된 기봉 씨'는 벅의 << 맨발의 청춘 >> 이란 노래를 듣고 국토대장정에 참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걸어보렴 ?!  인간이 태어나서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은 말도 아니요 글도 아니었다. 걷기'였다. 더군다나 기봉 씨는 남들보다 일찍 첫발'을 떼서 영특하다는 소리를 듣곤 했다. 그때만 해도 첫발이 개 끗발이 되리라는 사실을 그 누가 알았으랴. 기봉 씨는 평소에 걷는 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다. 그래서 기봉 씨는 자기 인생을 걸어 보기로 했다. 해남 땅끝에서 통일전망대까지 ! 하지만 그는 롱 워크 경기가 시작된 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고 말았다.

 그날 밤.  기봉 씨'가 속한 조(組)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기봉 씨가 속한 C조 김미영 팀장(조장)은 승부욕이 강한 리더'였다. 그는 자신이 이끄는 팀원이 단 한 명의 낙오도 없이 모두 완주하기를 바랐다. 낙오자 한 명은 그가 소속된 팀 전체의 실패를 의미했다. 역경을 딛고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것, 그것이 국토대장정'이 청년들에게 세뇌시키고자 하는 << 제 1덕목 >> 이었다. 김미영 팀장이 속삭였다. "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마 ! " 기봉 씨는 할 수 없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시 십 리도 못가서 발병이 났다. 여기저기서 기봉 씨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 그것은 기봉 씨에게 무언의 압력으로 작용했다. 참고 견디는 수밖에.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그는 결국 " 걷기 " 를 포기했다.

말은 안했지만 그가 속한 C조 팀원의 원성이 자자했다는 후문'이다. 눈치 없는 기봉 씨'라고 해서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자신을 위로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경멸을 보내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미운 법. 그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 젖가락 마이싱이다, 시바 ! "  한국 사회는 포기 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정신을 청년 문화의 상징'으로 높게 평가한다. 도전 정신, 허, 허허헝그리 정신, 열정 페이 따위는 " 개고생 " 이란 표현의 순화어'였다. 이 청년 정신'은 대한민국 군사 문화와 맞물리면서 큰 호응을 얻는다. 이명박은 노골적으로 < 내가 해봐서 아는데 ㅡ 정신 > 으로 청년들에게 " 개고생 " 을 주문하고는 했다. 피똥 싸봐야 나중에 된 똥 눈다. 내 말 믿숩니까 ?

또한 박근혜는 < 아프리카 청춘 > 을 주문했다. 아프리카, 일자리 많아요. 호호호. ① 아프리카에 가면 일자리가 있고, ② 아프리카에 가면 일자리도 있고 말라리아도 있고, ③ 아프리카에 가면 일자리도 있고 말라리아도 있고 따발총도 있고, ④ 아프리카에 가면 일자리도 있고 말라리아도 있고 따발총도 있고 사자도 있는 아프리카 !  포기는 악덕이고 극기는 미덕이 되었다는 이야기. 여기서 끝 ??! 반전은 지금부터'다. 정말, 이명박근혜'는 극기를 찬양하고 포기를 병든 정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  정반대'다. 한국 사회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는 부류는 < 포기 > 가 미덕이 되기도 한다. 때와 장소에 따라서 포기는 미더덕이 되었다가 앗, 뜨거 가 되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시민들이 제풀에 지쳐서 빨리 포기하기를 바란다.

기봉 씨가 많으면 많을 수록 기득권은 더욱 견고한 산성을 쌓을 수 있다. 강철 군화 정권 때는 몸둥이로 때리면 되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명색이 대한민국은 오이시디 가맹점이 아닌가! 더군다나 장사 수완도 출중해서 모든 지표에서 항상 1위를 달리고 있다).  오히려 몽둥이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노조원들이 쉽게 포기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다. 드라마 << 송곳 >> 은 그 사실을 적나라(赤裸裸)하게 보여준다. 간부들은 노조원 팔에 고무줄을 질끈 묶은 후 주사를 놓는다. 주사기 속에 들어간 약물의 이름은 < 에이, 우리가 싸워서 이길 수 있겠어 ? > 다. 마찬가지로 이명박과 박근혜가 노리는 것은 새누리당은 옳고 민주당은 그르다가 아니다. 이런 전락은 대구를 제외하고는 대중을 선동하지 못한다.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 둘 다 똑같다( 그 나물에 그 밥) > 다. 정치 영역에서 보자면 < 둘 다 똑같다 > 와 < 발이 아파서 도저히 못 걷겠어요 > 는 동일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거 때만 되면 투표를 할 생각이 별로 없다. 둘 다 똑같으니깐 말이다. 포기가 빠를 수록 나쁜 권력은 더 많은 힘을 얻는다. 이처럼 기득권은 < 포기 > 에 대해서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 갑 > 은 노동자가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불만 없이 버티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청년 정신이라고 숭배하지만, 정작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불만(파업)을 제기하면 포기가 빠를 수록 유리하다고 꼬득인다. 박근혜의 공포 정치'가 우리에게 주입시키고자 하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 공포 > 가 아니라 < 포기 > 다. 공포는 시민의 저항을 낳지만 포기는 국민의 순응을 잉태한다. 이수인이 당신에게 묻는다.

" 올해, 몇 포기하셨습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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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12-05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과 얼마 전까지만해도 안 그런 것 같은데 요즘 혈압 올리는 드라마가 있더군요.
바로 <송곳>과 <장사의 신>. 그나마 다행은 <송곳>이 끝났다는 겁니다.
그런데 장신의 신은 앞으로 당분간 갈 것 같아요.
드라마가 영악한 건 시청자들이 고혈압을 일으킬 직전까지 갔다가 종영을 한다는 거져.
진짜 쓰러지게 만들면 클나니까.ㅋ
이렇게 시청자들로 하여금 뭔가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면 그 드라마는 성공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송곳은 2003년을 배경으로 했죠.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은 그때보다 노동현실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더 길게 해도 좋았을텐데 딱 12회에서 끝내더군요. 좀 놀랐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6 06:15   좋아요 0 | URL
다들 너무 급작스럽게 드라마가 끝난 것 아니냐는 중론.....
이제 막 시동이 걸렸는데 말입니다. 사실, 전 보다 말다 보다 말다 해서 전체적인 리듬은 잘 모르겠고
웹툰으로는 대충 아는지라...


살리미 2015-12-05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곳같은 비유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6 06:15   좋아요 0 | URL
송곳 같은 비유... 좋은 말이네요. 비유는 송곳 같아야지요.

똘레랑스 2015-12-05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박근혜의 공포 정치`가 우리에게 주입시키고자 하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 공포 > 가 아니라 < 포기 > 다. 공포는 저항을 낳지만 포기는 순응을 잉태한다.

명심하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6 06:17   좋아요 0 | URL

똘레랑스 ???! 내가 알고 있는 똘레랑스 ? ( 맞다는 가정에서, 아니면 실례... )
반갑네. 잘지내남 ?! 결혼식 이후 본 적이 없네.... 재수씨 잘 계시지 ? ㅎㅎ
 

 

 

 

 

 

 

 

 

 

 

 

 

 

 

 

 

 


 

 

 

 

 

 

독서를 방해하는 요소(들)


                                             여전히 발터 벤야민의 << 아케이드 프로젝트 1,2 >> 를 읽고 있다. 묵은지도 아니고 1년째 묵히고 있으니 난감하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1년 사이에 이사를 두 번이나 했다. 짐을 쌌다 - 풀었다 - 쌌다 - 풀었다를 반복하니 생활 리듬이......  포장 이사'라고는 하지만 책은 내 손으로 다시 정리해야 해서 이사하기 전에 미리 우체국에 가서 4호 박스를 구입해서 쌓아두었다. 이사한 후'로도 박스 해제 작업은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한 달이 지나기 일쑤였다. 나는 내 사전에 내 독서를 방해하는 모든 것을 < 오호츠크 시밤바 > 로 규정했다. 쉽게 말해서 좆같다는 것이지. 무엇보다도 내 독서를 방해한 요소는 놀랍게도 박근혜'였다. 집중력 저하의 원인은 박근혜였던 것이다. 책을 읽는 데 갑자기 < 혼 > 과 < 우주의 기운 > 이 등장하는 바람에 포인트를 놓쳤다. 아스트랄한 지랄'에 밥맛이 뚝 떨어졌다. 책을 읽다가 그네 생각만 하면 느닷없이 괄약근을 조이게 된다. 읽던 책을 덮고는 혼잣말을 한다. 오호츠크, 오호츠크....... 하지만 마냥 썩힌 것은 아니다. << 아케이드 프로젝트 >> 을 읽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들레르를 다시 읽어야 할 필요성이 생기게 된다. 마침 기생충학자 서민 교수님이 << 파리의 우울 >> 이란 책을 선물로 보내주셔서 보들레르를 읽다가 그쪽으로 빠졌다. 또, 그런 방식으로 빅토르 위고의 << 레미제라블 >> 을 다시 읽다 보니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진도가 거의 나가지 못했다. 신기하다. 이 책은 파리의 복잡한 지하도 같다. 무수한 샛길로 빠져야 한다. 이 책을 매조지하고 나면 사사키 이타루의 << 야전과 영원 >> 을 읽을 계획이다. 푸코/라캉/르장드르 읽기'이니 만만치 않은 독서가 될 것 같다. 우선 이 책을 선물하신 새벽 님에게 무한 감사 ! 슬쩍 몇 장 훑어본 결과....... 어렵다 !  다음 목표는 << 자본론 >> 이다. 내가 읽은 책은 그 유명한 분홍책'이었다. 아침 9시에 도서관에 도착해서 마감 시간을 알릴 때까지 읽었다. 그렇게 삼 일 동안 주구장창 << 자본론 >> 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잘 읽혔다. 그때는 박근혜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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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5-12-04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집에 묵은지가 한가득입니다. 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4 16:19   좋아요 0 | URL
돼지 등뼈 좀 사셔서 왕창 넣어서 묵은지 찜 요리 어떻습니까 ?

북깨비 2015-12-05 08:17   좋아요 0 | URL
ㅋㅋㅋ 한권씩 어떻게든 읽어보려고요. 그래도 중고서점에 벼르던 책이 눈에 띄면 안 지를수가 없기때문에 앞으로도 묵은지는 점점 늘어날 것 같습니다만. ㅠ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5 09:42   좋아요 0 | URL
맞아요. ㅋㅋㅋㅋㅋㅋㅋ 중고서저이 문제입니다. 진짜 원했던 책이 나오면 여러 책 묶어서 사게 되다 보니... 이런 악순환이....

건조기후 2015-12-04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근혜는 집중력의 방해원인이기도 하면서 집중력 향상의 원인이기도 하더라고요. 하는 말 듣고 있음 이해가 잘 안 돼서 엄청 몰입할 수 밖에 없는... 어휴.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4 16:41   좋아요 0 | URL
기막힌 모순이군요. 뉴스를 볼 때마다 당최 무슨 소릴 하는지 이해 불가능입니다.

samadhi(眞我) 2015-12-04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지 못 한 책들을 쌓아두고 또 읽고 싶은 책들에 혀를 낼름대며 침을 질질 흘리고 욕심냅니다. 있는 책 다 읽고 책 사라고 남편이 갈굽니다. 그거이 맞는 말인데 자꾸 눈이 딴 데로 가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4 16:56   좋아요 0 | URL
저는 옛날부터 막 10권을 동시에 읽는 버릇이 있어서.... 산만하고 그렇습니다. 고칠려고 해도, 이게 안 되네요... 읽다가 좀 지루하다 싶으면 덮고 나서 다시 읽으면 되는데. 이 책 조금 읽다가...
다른 책 보다가 다시 다른 책 보다가.. 막 이래서 나중에는 짬뽕이 됨니다. 고쳐야겠어요. 집중력이 현저히 저하됩니다.

samadhi(眞我) 2015-12-04 16:5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한 권 다 읽고 다른 거 읽어야지 차디찬 맹서를 해도 그렇게 읽고 싶었던(그렇다고 믿었던)책을 보다가 또 다른 책을 눈독들이고... 이책저책 찔끔 보다 말고. 요즘 책들이 저를 노려보는 것 같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4 20:59   좋아요 0 | URL
얼릉 일던 거 다 읽으면 다시는 기웃기웃되지 않으렵니다.

그런데 말짱도루묵이에요. 항상...ㅎㅎㅎ

samadhi(眞我) 2015-12-04 21:00   좋아요 0 | URL
˝인생은 짧고 읽을 책은 많다.˝ 지요.

북깨비 2015-12-05 12:2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요즘 책들이 저를 노려보는 것 같아요 - 요 대목에서 빵 터졌어요. 근데... 갑자기 집에 가기가 무서운 건 왜일까요 ㅋㅋㅋㅋㅋㅋ

cyrus 2015-12-04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율리시스》를 11장까지 읽은 뒤로 다시 펴본 적이 없어요. 주석을 같이 읽으려니 귀찮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4 20:57   좋아요 0 | URL
주석이 많으면 확실히 읽는 맛이 떨어지죠. 그냥 두 권으로 나눴으면 해요. 그냥 일단 읽고 나서 나중에 해설서 읽고... ㅎㅎ

stella.K 2015-12-04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저 박근혜!
이제 내년이면 임기 후반기 아닙니까? 이제 그만 박근혜를 놓아 주세요.
그래봤자 곰발님한테 이득되는 건 없잖습니까?
아무래도 그분 곰발님 땜에 오래 살 것 같습니다.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4 20:58   좋아요 0 | URL
저에게는 기승전박`이라고나 할까요. 자다가도 그 생각하면......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전 솔직히 좀 무섭습니다. 박 정권 말이죠. 완전 또라이 정권 같습니다.

살리미 2015-12-05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랫동안 읽고 싶었던 <자본론> 시작했어요. 아직 김수행 교수가 쓴 역자 서문 읽고 있는 중이지만 ㅎㅎ 역자 서문도 그냥 넘어가버리기 아깝네요. 총 네번의 개정판 서문들을 시대순으로 보다보니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가는지 감이 와요 ㅎㅎ 기승전박 할만합니다 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5 09:43   좋아요 0 | URL
김수행이 갑이죠.... 그 옛날 오랜지 책이 그립기도 합니다.
네 번의 개정판 서문이라... ㅎㅎㅎ 그것 자체로 역사네요. 역사...

포스트잇 2015-12-05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밤바`..어감 맘에 들어요, 이런 시밤바...ㅎㅎㅎㅎㅎㅎㅎ
와,만만치않은 책들 읽으시네요.
아케이드프로젝트는 신기한 책이더군요. 그냥 아케이드 따라 보이는 걸 나열한 것들이잖아요. 근데도 이상하게 그게 재밌었던 기억이 나네요. 읽다가 중도에 관뒀지만요. 나중에 다시 읽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보들레르에, 푸코,라캉,르장드르..사사키 이타루..와, 와, 와~ㅎㅎㅎ
자본론...을 처음 읽을 때 뭐랄까..대단히 명쾌한 문장들로 이뤄진 아름다운 글이라고 먼저 느꼈거든요.
아름다웠어요. 당시 사회과학서적들 보다가 막상 마르크스의 이 원저를 접하자, 정연함이랄까...뭔가 그냥 아주 깔끔하게, 육룡이 나르샤의 이방지 버전으로 얘기하자면, 초고수가 휘두르는 칼은 베어도 피가 묻어나지 않듯이.. 뭐 그런 느낌..표현력이 딸려서.. ㅎㅎㅎ
언제 다시 읽을라나요.. 보관함에 일단 넣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5 10:30   좋아요 0 | URL
아케이드는 참 독특한 책이에요.
사실, 벤야민이 쓴 책은 아니잖아요.
수많은 책에서 필요한 문장만 도려내서 모은 메모집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죠.
전 처음에 이 책의 구성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어디가 인용이고 어디가 벤야민 코멘트인지 몰라서
고생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자본론 읽었을 때 첫 느낌이 시바, 문학 작가보다 문장력이 뛰어나네, 와 과학자보다 더 과학자답게 공식을 산출하네 였습니다. 이 책 어렵다 하는데 동의는 못하겠더군요. 어려운 것은 후기 맑스주의자 알퉤세 따위이지 사실 막스 자본론이 이해를 못할 만큼 어려운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도 아직 자본론은 사지 않았습니다. 일단 읽어야 할 책들이 많고.....

포스트잇 2015-12-05 11:5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자본론, `문학작가보다 문장력이 뛰어나`요. ㅎㅎㅎㅎㅎ 역시 적절한 표현.
게다가 어렵지 않아요, 진짜. 진짜루.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5 12:05   좋아요 0 | URL
그렇죠 ? 자본론은 너무 어려워, 라고 말하는 사람 중 팔 할은 자본론을 안 읽은 사람입니다.
맑스가 대중에게 자기 생각을 설명하기 위해 엄청난 공을 들였다는 사실을 책을 읽으면 알 수 있습니다.
꼭 보면 안 읽은 사람이 읽은 것처럼 어렵다는 둥 그런 소릴 하더군요....
 

 

 

 

 




소문자  f'에게  


                             < 형 > 은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무리 똥통 학교라고는 하지만 장남이 학급에서 반장(하고 학년 부회장)을 했으니 믿음직스러웠을 것이다. 또한 부모 말쌈에 장남'은 고분고분했어라.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형은 항상 브랜드 옷과 신발을 신고 다녔다. 반면 나는 형이 입다가 버린 옷을 입고 자랐다. 형이 < 나이키 > 신발을 신고 다닐 때, 나는 < 나이스 > 신발을 신고 다녀야 했다. 쪽팔란 거라. 그래서 nice 에서 c를 볼펜으로 교묘하게 k로 " 리모델링 " 하고는 했다. 비만 오면 나이스'는 자신의 출신 성분이 강제로 " 아웃팅 " 될까봐서 항상 조마조마한 마음뿐이었다. c는 일종의 주홍글씨 A였던 셈이다. 이처럼 내게 돌아온 것은 낡은 옷과 짝퉁 신발(신발은 형으로부터 공수받을 수는 없었다. 바지 밑단은 줄이면 되지만 신발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 procrustes's bed 가 아니지 않은가)이 전부였다. 딱히 불만은 없었다. 형은 될성부른 나무였고 나는 히마리 없는 떡잎이었다.

그런데 형은 내 기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습속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러니까..... 그게, 아,  마땅한 심리학 용어가 없어서 대략 << 새것 - 거부증 >> 이라고 부르겠다. 형은 < 새것 - 거부증 > 환자'였다. 물건 앞에 < 새 - > 가 붙는 순간 부끄러움을 느끼는 병이다. 이해하시려나 ?  예를 들어 옷가게에서 산 새 옷을 굉장히 부끄러워하는 병이다. 새 옷은 쪽팔려서 못 입겠단다. 그래서 형은 입지도 않은 새 옷을 세탁기에서 수십 번 세탁한 후에야 비로소 입고 다녔다. 그렇다고 히피처럼 찢어진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새것은 아니되 그렇다고 찢어진 것도 아닌 옷. 그 옷이 형에게는 안성맞춤인 모양이었다. 형과 나는 나이 터울이 있는지라 새것은 아니되 그렇다고 찢어진 것도 아닌 옷'은 몇 년 후에 내 것이 되었다. 영화 << 올드 보이 >> 가 그 당시에 만들어졌다면 친구들은 나를 올드보이'라고 놀렸을 것이다. 눈물이 나네, 시바.

내가 옛날 이야기로 말문을 여는 이유는 포스트모던한 대한민국 사회'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인간은 대대로 자연을 모방했다. 최대한 똑같이 재현하는 것이 미학의 궁극이었다. 사극을 볼 때 흔히 " 불초소생 " 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여기서 불초는 아버지를 닮지 못한 죄'다. 그렇기에 << 불초소생 >> 은 아버지(대자연)을 닮지 못한 못난 아들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부자 관계에서 아버지는 원본이고 아들은 사본'인 셈이다.  형만한 아우가 없는 이유는 < 아우 > 가 아무리 뛰어난 필경사'라 해도 방대한 텍스트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옮겨쓰기'란 힘에 부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필사란 결국 잘해야 본전인 경우'다. 설령,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필사를 했다 한들 " 원본의 위작 " 일 뿐이다.

사본이란 그런 운명인 것이다. 소문자 f(사본)는 최대한 F(원본)을 닮기 위해서 대장간을 찾아 대장장이에게 전신 성형을 의뢰한다. " 슨상님 ! 담금질로 최대한 쫙~ 쫘아아아악 ~  펴 주시오. 나도 한번 F처럼 각 잡고 살고 싶어야. " 그런데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현대 사회는 원본을 닮고자 하는 사본의 욕망'이 희석되었다. 이제 소문자 f는 대문자 F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f의 목적은 F 가 아니다. f는 아비 없이 태어난 신인류인 셈이다. 청바지가 좋은 예'이다. 이제 청바지는 새 청바지에서 낡은 청바지로 늙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이미 낡은 청바지'로 유통되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기만이면서 동시에 모방, 흉내, 시늉'이다. 이제 신상품인 낡은 청바지 < f > 는 아버지를 닮으려는 노력보다는 단순히 흉내 내는 것에 그친다.

 

f가 닮고 싶은 것은 아빠의 청춘이 아니라 아빠의 연륜이 가지고 있는 권위'다. 청바지가 권위를 얻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동안의 마모를 견뎌야 했다. 하지만 f는 인고의 세월을 " delete " 한다. 그것은 불필요한 것이니까. f의 다른 이름은 디지털이다. 디지털은 아날로그가 이룩한 과정을 모두 생략한다. 전자 시계는 날마다 테엽 감는 번거로운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디지털 카메라는 아날로그 카메라가 거쳐야 하는 암실 과정을 생략한다. f는 성장통 없이 바로 어른이 된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도 소문자 f 다.  절차(과정)가 생략된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결과가 아니라 절차'다. 의사봉만 두들긴다고 합법은 아니다. 박근혜 정권을 볼 때마다 디카'가 사진을 찍을 때마다 경쾌하게 송출하는 셔터 소리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발, 셔터도 없으면서 셔터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내니 말이다. 이러다가는 눈 오는 소리'도 효과음으로 송출될지도 모른다. 펑펑, 눈 내리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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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5-12-03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최근에 읽은 모든 글 중에 가장 와 닿는 글입니다. 내게는 그렇네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3 15:15   좋아요 0 | URL
제가 요즘 칭찬 복이 많네요. 좋은 눈을 가지신 표맥 님의 천리안이 빛을 발하는군요. 호호

stella.K 2015-12-03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참, 그런 병도 있습니까?
저는 옷 사는 걸 귀찮게 여기는 병이 있습니다.
꽤 오래된 병이죠. 엄마는 비싼 건 못 사 입으셔도 나름 패셔니스타신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멋있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그건 엄마의 덕이거나
아님 엄마 옷을 통째로 빌려입고 나올 때죠.
그런 점에서 전 불초소생이입니다. ㅠㅠ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3 16:31   좋아요 0 | URL
다행이네요. 선택은 또다른 스트레스입니다.
집에 패션니스트 한 명 있으면 온 가족이 다 패션리스트가 되기 마련입니다.
스텔라 님 행운아 !

samadhi(眞我) 2015-12-03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연년생 조카가 비슷한 상황이네요 근데 곰발님 상황보다 좋죠 동생한테. 제 조카들은 큰 애가 새 것을 싫어해 작은 애가 새 것을 입고 난 뒤에 해어진(작은 애가 정말 털털하거든요. 끄떡하면 운동화에 구멍을 내놓는 아이라서 저랑 비슷 ㅋㅋ) 옷을 형이 입어요. 바보형(?) 덕분에 동생이 득을 보죠.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3 16:40   좋아요 0 | URL
좋은 형제네요. 제가 초등일 때 형은 고딩이니 레벨이 안 맞습니다. 결국 몇 년 후에나 입거나 크게 입거나... ㅎㅎㅎ. 새 것 증후군이 의외로 있나 보죠 ? 하튼 형은 새 옷 입는 걸 극구 싫어했슴돠. 정말로 세탁기에서 일부러 30번 돌렸다니까요... 뭐라더라? 새 옷 특유의 냄새가 싫다나.. 뭐 그런 핑계였던 것 같슴돠.

기억의집 2015-12-03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직권상정 했다는 뉴스 보니 이 나라가 어찌될까 싶었어요. 어휴, 백세시대인데, 노인네들의 생각은 변함 없으니, 더 암울해지네요. 진짜 f가 판치는 시대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4 09:02   좋아요 0 | URL
과거를 조종하는 사람은 미래를 조종한다.

조지오웰이 동물농장에서 한 말입니다. 1984인가 ???! 갑자기 헷갈리네요.
요즘 유난히 오웰이 다시 생각납니다.
정말 오웰은 탁월했어요. 정말 탁월했습니다.

참... 웤ㅇ 워킹맨 읽어보셨나요 ? 요즘 킹 신간 실망이라고 하셔서...
이 작품은 함 읽어보세요. 좋습니다.

워킹맨이 아니라 롱워크... 수정..

cyrus 2015-12-03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새것을 사용하는 것을 부끄럽기 보다는 사용하기가 아까워서 조심스럽게 사용해요. 그런데 처음에는 다 그렇지, 시간이 지나면 막 쓰게 되더군요. 스마트폰이 그렇죠. 스마트폰 새로 사면 소중하게 사용하지만, 일 년 지나면 스마트폰 액정이 깨져 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4 09:03   좋아요 0 | URL
저는 새것부터 막 쓰는 스타일입니다. 어릴 때부터 헌옷만 입고 자라서 행동이 그리 되었어요.
옷 찢어졌다고 혼날 일 없으니 그랬던 것 같습니다.
습관이 무섭다고, 그게 잘 고쳐지지가 않네요....
노트북 산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중고 되었습니다.
 

 

 

 

 

 

 

 

 

 

 

 

 

 

 

 

 

 


 

 

 

 

 

                                                                                                                         

그릇'에 대하여




                                                  흔한 말 : 그릇을 통한 인간에 대한 은유. 그릇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쓰이는데 음식이나 물건 따위를 담는 기구(식기),  어떤 일을 해 나갈 만한 능력이나 도량(아량)을 뜻한다. 그릇이 작다는 말은 속이 좁다는 말과도 통해서 " 아량 " 을 사내새끼의 으뜸 덕목으로 여기는 헬조선 가부장 사회에서는 욕에 가깝다. 

그러니깐 < 그릇 > 은 인간 됨됨이'에 대한 은유인 셈이다. 이렇듯, < 량 > 과 < 량 > 을 자지우지하는 것은 그릇의 크기'에 달렸다. < A량 > 가 되느냐 < R량 > 이 되느냐. 그 < 문제 > 는 그릇에게 물어보시라. 그릇은 생각보다 종류가 다양하다. 음식 종류에 따라서 그릇도 모양새와 쓰임새가 다르다. 당연히 임금님 수라상에는 다양한 음식만큼이나 다양한 그릇을 엿볼 수 있다.  설겆이 하기가 귀찮다고 임금님 수라상에 올릴 깍두기'를 접시'에 담았다가는 시녀인 당신 모가지'는 박하 사탕처럼 깍둑, 시원하게 날아갈 것이다. 그릇 종류가 많으니 당연히 인간 사회도 다양한 그릇이 모여 삼라만상'을 이룬다. 사발 같은 놈이 있고, 바리 같은 놈이 있으며, 거시기 뭐냐... 그렇지, 보시기 같은 놈도 있다.


 

 

  ① 주발 : 남자의 밥그릇 , 사기나 은기, 사기주발(사발)

  ② 바리 : 여자용 밥그릇

  ③ 합 : 밑이 평평, 뚜껑도 평평, 큰 합은 떡 약식 찜 등을 담음

  ④ 쟁첩 : 전, 구이, 나물, 장아찌 등을 담는 납작하고 뚜껑이 있는 그릇

  ⑤ 탕기

  ⑥ 보시기 : 김치류를 담는 그릇

  ⑦ 종지 : 간장, 초장, 초고추장의 장류를 담고 크기가 가장 작다.

  ⑧ 대접 : 국대접

  ⑨ 옴파리 : 사기로 만든 입이 작고 오목한 바리 (주로 뜨거운 음식)




그릇 모양을 보면 대충 그 용도를 알 수 있다.  생긴 대로 논다. 밥그릇은 밥그릇처럼 생겼고, 접시는 접시처럼 생겼고, 대접은 대접처럼 생겼으니까. 그런데 요상하게 생긴 식기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 바리 > 다.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고 ?  속이 좁은 것으로 보아 종지처럼 고추장이나 된장을 담는 용도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밥그릇이었다. 남자는 밥을 주발(사발)에 담고 여자는 바리에 담았다고 한다. 니미, 이런 신파 ! 하루 종일 부엌에서 가사 노동을 담당하는 여성은 밥그릇 크기에서 벌써 차별을 받는다. 굶지 않고 사는 것이 내일의 목표였던 시대'를 생각하면 가사 노동자는 밥을 짓는 노동의 주체이지만,  정작 자신에게 돌아오는 몫은 넉넉한 주발이 아니라 속 좁은 바리'였던 것이다. 

< 바리 > 는 깍두기를 담는 보시기와 간장이나 된장 따위를 담는 종지'보다 조금 더 클 뿐이다. 그릇 종류만 봐도 불알후드의 지랄 같은 알량'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아량은 니미 !  <  속 > 좁은 바리에다 아무리 밥을 꾹꾹 눌러 담는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법.  더군다나 피 흘리는 모성 신화'를 강요하는 사회이다 보니 여성은 밥을 바리에다 가득 채우기보다는 오히려 덜었을 것이 분명하다. 아, 애달고 애달고 애달프도다(됐고!).  잠시 그릇 나라 동화 속 이야기로 빠지자. 일찍이 그릇 나라 백성 가운데 아량이 넉넉한 메이드 인 거제도 출신 양푼(님)이 보시기에 속이 가장 좁은 것은 종지였다고 한다.  " 우지, 이런 일이...... "  오늘은 < 종지 > 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며칠 전, 속이 가장 좁은 종지 그릇 때문에 한 사람이 대국민으로부터 조리돌림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대접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릇이었다. 통 넓고 넙데데한 모양새로 보아 금수저는 아니더라도 은수저는 되는 계급이었다. 직장인들이 대부분 회사 근처에서 점심을 해결할 때, 그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일 때에만 회사 근처에서 점심을 해결한다는 신소리'로 보아 평소에는 서울 외각 가든 같은 곳에서 화전놀이를 즐기는 듯했다. 일반 직장인들이 회사 근처 식당이나 구내식당'에서 후다닥 밥을 삼켜야 하는 것과는 다른,  유기농 웰빙 라이프'라고나 할까 ?  자고로, 그릇 팔자는 이름대로 된다는 소리'가 허투루 나온 말은 아닌 모양이다. 이름이 대접이다 보니 대접만 받던 그였다. 그는 뼛속까지 자본주의적 그릇이었다.

내 돈 내고 내가 음식 사먹는데 왜 다 먹고 나서는 종지 따위에게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해야 하는가 ?  ㅡ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계신,  그릇된 생각을 하는 분이셨다. ( 필자는 그릇의 그릇된 생각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릇의 생각이니 그릇된 생각'은 당연하다 ) 흙수저 물고 태어난 종지에게 대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그는 회사로 돌아와서 월간 신문고'에 주발사발(그릇 나라에서는 노발대발을 주발사발이라고 표현한다) 잘잘못을 따졌다. " 이 사발 식기'가....... 니미, 젖가락 마이싱이다. 잘못하면 한방에 숟갈(훅가)는 수가 있어. 밤길 조심해라 ! 이러니 너희들이 평생 벙거짓 꼴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 "  그릇된 생각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한 대접은 자신을 화나게 한 그릇'이 누구인지 만천하에 알렸다. 신문고의 위력을 보여주마. " 그놈은 옴파리도 아니고, 바리도 아니고, 보시기도 아니고, 접시도 아니여....... "  대접의 권세를 익히 아는 터라 이 사실이 종지에게도 알려지자 작고 초라한 종지는 저녁 내내 떨어야 했다. 종지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종지는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바둥거리다가 바둥거리다가 어찌 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종지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 ㅡ 여기까지가 그릇 나라에서 전해지는 슬픈 동화'다.


평생 대접받기를 원하기만 하는 사람들은 그릇이 작은 사람이다. 그들은 깍두기를 < 보시기 > 에 담지 않았다고, 반찬을 < 쟁첩 > 에 담지 않았다고 상을 엎는 부류'다. " 나, 나나나나. 누군지 알아 ? 나... 대접이야, 대접. 응?  클 대, 대접받을 접 ! 대접이라고 !!! "  대한그릇 땅콩 사건도 알고 보면 < 땅콩 플레이팅 > 에 대한 대한그릇 상속녀의 불만이 아니었던가 !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상이 무거워지는 원인은 반찬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릇이 많아서이다. 아량이 넓은 사람이라면 기꺼이 한 번쯤은 가벼운 양푼에다가 이것저것 담아 밥을 비벼 먹을 줄 아는 사람이다. 격식을 차리지 못한 대접을 받았다고 해서,  무거운 식기를 들고 수천 번을 왔다갔다하며 서빙을 해야 하는 노동자의 등골을 생각하면, 무작정 주발사발 화낼 일이 아니란 소리'다. 

밥그릇이 크고 화려하다고 해서 반드시 그릇이 큰 것은 아니다. 본문과는 상관 없이 마무리는 안도현의 시 << 스며드는 것 >> 으로 매조지하자.  " 온갖 산해진미'를 다 음미해도 간장게장의 짭짤하고 깊지만,  아린 맛을 보지 않았다면 교양인으로서 결격이란다. 수많은 대접에게 안도현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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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바.보 #44 - 탕기(湯器)와 탕기(Tanguy)
    from 冊性愛子 2015-12-04 18:53 
    ‘그릇’은 인간 됨됨이에 대한 은유이다. 평생 대접받기를 원하기만 하는 사람들은 그릇이 작은 사람이다. (곰곰생각하는발의 「그릇에 대하여」 중에서) 나는 동시대 함께 살아있는 작가에게 더 많은 애정을 가지고 싶습니다. 죽고 난 후 작가는 자기 작품에서 손이 떠납니다. 떠나버린 작가의 허울 같은 작품이야 남겠지만 작가의 살아있는 온기는 이미 사라지고 말았거든요. 그래서 살아있는 작가의 작품에 귀를 열고 눈으로 듣는 그런 활동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ZZZ 2015-12-02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역대급 잡글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좋은 의미유..........)
그 칼럼보다 이 글이 백 배 잘쓴 거 가터. 어쩔.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2 13:10   좋아요 0 | URL
잡놈의 글이니 잡글이 맞죠...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 말입니다.
ㅋㅋ

기억의집 2015-12-02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비오는 아침에 미친년처럼 한참 웃었네요. 웃으면서 씁쓸하고 공감가는!!!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2 13:11   좋아요 0 | URL
머리에 꽃은 꽂지는 마십셔.. ㅎㅎ 저도 쓰면서 씁쓸하기는 하더군요...
저런 글을 쓸 수는 있죠. 문제는 데스크입니다. 데스크는 왜 거르지 못했을까 ?
한심한 거죠..

수다맨 2015-12-02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번에 올리신 글은 시원하면서도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아량이 넓은 사람이라면 기꺼이 한 번쯤은 가벼운 양푼에다가 이것저것 담아 밥을 비벼 먹을 줄 아는 사람이다.` 이 문장에 무릎을 몇 번 쳤습니다.
누군가의 한끼 대접이 때로는 자기 마음에 차지 않을지라도, 웃으면서 밥그릇을 비울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체가 높았던(?) 대한항공 조모씨나, 한 끼 식대를 지불했다고 우쭐하는 조선일보 부장씨나 평생 대접만 받기를 바라는, 생각 없는 푼수들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2 13:12   좋아요 0 | URL
종지 하나 안 줬다고 ( 뒷말 보니 뭐 서빙하시던 분이 사과도 하고 그랬다더군요..)
신문에다가 지랄을 하시다니.. 이건 좀 너무하지 싶습니다. 뭐 그리 화가 난다고....

지나가다가 2015-12-02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눈팅만 하다가 댓글 하나 남깁니다. 알라딘 역대급 핵잼글입니다
식기???! 그릇 이름 가지고 욕 만드는 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젖가락 마이싱에서 터졌습니다
회사동료들에게 보여주니 다들 박장대소 젖가락 마이싱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2 13:13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제가 욕 표현에 대해서는 항상 심혈을 기울입니다. 젖가락 마이싱... 캬 ~~
식샤는 하셨슴까..

stella.K 2015-12-02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발사발. 사발 식기, 거 참 좋은 욕이네요.ㅋㅋㅋㅋㅋㅋ
얼마 전 아트욕 좀 알켜 달라고 청했건만 원고 다 넘기고 이제 와
알켜 주시는 건 어느 그릇입니까? 흥!`
오늘 글은 정말...!!!!! 확실히 곰발님만 쓸 수 있는 멋진 B급 칼럼입니다.
곰발님 책은 언제 나오는 겁니까? 거기에 꼭 실릴만한 글인데
애간장을 녹이시누만요!ㅠㅠ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2 14:07   좋아요 0 | URL
몰랐습니다. 저도 조선일보 한부장 때문에 저의 아트 욕적 욕망이 되살아나서
스텔라 님 생각하며 작성한 겁니다. 이미 넘기셨군요.. 허어.. 이거 참... 역시 인생은 타이밍인가 봅닏.
젖가락마이싱이다. 이거 진짜 욕 아트인데 말이죠... 슬쩍 끼워넣으시면 안 됩니까 ? 요즘은 원고 다 파일로 보내지 않습니가..

붉은돼지 2015-12-02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일찌기 보지못한 천하제일잡문이외다. (잡글이 맞다고 하시니...)ㅎㅎㅎㅎㅎ 놀라 감탄했소이다.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3 09:52   좋아요 0 | URL
저도 잡글이라고 쓰긴 썼는데 어감이 뭔가 이상하다했더니 잡문이라고 해야 ... ㅎㅎㅎ 정상이네요....
잡글이라... ZZZ 님 책임지슈.

뽈쥐의 독서일기 2015-12-02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체 무지한 그릇이다 보니.. 알라딘 서재가 와글와글해서 두 종지 칼럼을 찾아봤네요. 이런 숟갈!!!
덕분에 주발사발한 온갖 패러디 물을 흠뻑 즐길 수 있게 되었어요.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3 09:53   좋아요 0 | URL
아직도 여운이 남습니다. ㅎㅎ. 대체 무슨 배짱이었을까요. 자기가 그렇게 작성하면 진짜 망할 줄 알았나 보죠. 오히려 성지순례가 되어 매출이 껑충 뛰었다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samadhi(眞我) 2015-12-02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말놀이 진짜 우와!! 아파서 끙끙거리던 차에 크게 웃어재꼈어요.
진짜 미추어버리겠네요. 곰발님 말빨 글빨 절정에 이른 듯합니다. 판소리 한 대목같아요. 귀에 짝짝 붙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3 09:53   좋아요 0 | URL
역시 욕을 좀 아스트랄하게 넓은 마음으로 예술한다는 마음으로 욕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반응이 뜨거우니 말이죠...

samadhi(眞我) 2015-12-03 16:32   좋아요 0 | URL
욕 전수받고 싶어요 사사시켜 줍시오, 욕쟁이(?) 스승님 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3 16:41   좋아요 0 | URL
욕명소 하나 만들어야겠습니다. 창조욕 연구 좀 해야 할 듯합니다.. 허허.

cyrus 2015-12-03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탕기`라는 그릇도 있군요. 이름이 낯설지 않아요. `탕기` 영감은 그릇이 큰 사람이었어요. 무명의 반 고흐에게 미술도구를 빌려주면, 그 보답으로 돈 대신 고흐의 그림을 받았답니다. 영감은 고흐에게 받은 그림을 자신의 그림가게에 전시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3 09:54   좋아요 0 | URL
고흐 작품 중에 저는 해바라기보다는 탕기 영감 그림 시리즈를 더 좋아합니다. 탕기 영감 만날 고흐네 집 방문할 때 먹을 거하고 술 가지고 갔다고 하죠 ? ㅎㅎ
 

 

 

 

 

 

대접만 받다 보니 그릇이 작아진 사내 이야기 

 


 

 

 

 


                                                             친애하는 이웃이 링크를 걸어 두었기에 아무 생각 없이 칼럼을 읽었다. 제목이 << 간장 두 종지 >> 라고 하길래 손수건부터 준비했다. 오갱끼데스까 ? 와따시와갱끼데스 ! 그래, 울, 어, 주, 리, 라. 구리 료헤이의 << 우동 한 그릇 >> 나 함민복의 << 눈물은 왜 짠가 >> 와 유사한 힐링 푸드 ㅡ 서사'인 줄 알았다. 가난이 죄이라, 지게미와 쌀겨로 허기를 채우던 부부 / 가난한 남편이 손수 차린 밥상 / 따뜻한 밥 한 그릇과 간장 한 종지 / 쌀은 어떻게 구했다지만 찬까지는 마련할 수 없었던 모양 / 상 위에 놓인 쪽지 c.u  / (인써트) '왕후(王侯)의 밥, 걸인(乞人)의 찬…. 이걸로 우선 시장기만 속여 두오.' / 낯익은 남편의 글씨를 본 아내는 눈물이, 팽이도 아니면서 핑 돈다 / 아아, 그날 밤........ ㅡ  이런 신파 말이다.  

나는 최불암 목소리 버전으로 읽기 시작했다. " 모든 우리 회사 앞에는 맛있는 집이 없고 모든 남의 회사 앞에는 맛있는 집이 많다. ~  "  문장을 보니 : 남의 떡이 더 커 보안다는 농담 같은데 문장 배열이 상당히 걸리적거린다. 모든 우리 회사 앞 ??!  논술 강사'였다면 < 모든 > 이라는 관형사에 빨간 색연필로 x 표시를 한 후 " 지랄 " 을 했을 것이다. 그냥 우리 회사 앞에는 맛있는 집이 없다라고 작성하는 게 자연스러운데, 굳이 " 어쩔 수 없이 " 회사 근처 식당에 갔다는 표현을 쓴 것을 보면 평소에는 경기도 외곽에 위치한 으리으리한 " 가든 " 에서 식사를 하시는 모양이다. 이 칼럼을 읽은 조선일보 근처 식당들은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들어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며 무슨 생각을 할까 ? 그래도 그렇지. 이 얼마나 걸리적거리는 문장인가, 니미 

뭐, 그것은 그냥 그렇다 치자.  맛집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 모든 > 이란 관형사를 사용했다면 차라리 부정을 강조하는 < 너무 > 라는 부사를 사용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우리 회사 앞에는 맛있는 집이 너무 없다.  따순 밥 한 그릇을 기대했는데, 문장 첫머리부터 빈정이 상해서 밥맛이 떨어졌다. 이런 신파 ~ 이게 뭐얌 !  뭐, 기자가 마감에 쫓겨서 문장 고르기 작업을 허투루 넘겼다고 치자. 문제는 문장이 아니라 태도'에 있다. 기자가 < 모든 > 을 < all without...... > 으로 사용했다면 땅값 비싼 태평로 근처 가게는 백이면 백, 다 맛이 없는 식당이라는 말이 된다. 이 기사를 읽으면 조선일보 근처 광화문 뒷골목과 태평로 맛집들이 화를 낼 만하다. 기자는 왜 회사 앞 모든 식당이 맛이 없다고 강조했을까 ?

이런 태도를 사회심리학적 용어로 "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 라고 한다.  보다 쉽게 설명하자면 "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 는 태도'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태도 > 가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많은 이유는 < 하나와 열 > 때문에 가 본 적도 없는 " 둘셋넷다섯여섯일곱여덟아홉 " 도 동일한 족속으로 싸잡아서 비난한다는 데 있다. 기자가 < 모든 우리 회사 앞에는 맛있는 집이 없다 > 라고 선언하는 것도 이와 같다. 몇몇 식당이 맛이 없을 수는 있다. 하지만 기자는 자신이 경험한 < 부분 : 제한된 정보 > 을 가지고 < 전체 > 에 대한 결과를 도출한다. 물론 << 하나 = 열 >> 이 성립될 수는 있다. 하지만 하나 = 열'이 성립된다고 해서 2,3,4,5,6,7,8,9도 동일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것은 형편없는 태도'다.

짬뽕은 맛있지만 짜장이 맛이 없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도 있지 않은가 ? 첫 문장부터 밥맛이 떨어져서 읽지 않으려 했으나, 그 자세 또한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태도'이렷다. " 첫 문장부터 밥맛 떨어져서 읽지 않았다. 끄읏 ! "  이라고 작성하면 수많은 비난 댓글이 달리리라. 내가 모를 줄 알았지 ?   하는 수 없이 끝까지 읽었다. 이 칼럼은 논리적 비약의 끝판왕이란 생각이 들었다. 간장 두 종지 때문에 아우슈비치를 소환하는, 이 환장할 만한 논리적 비약은 판타스틱하며 아, 아아아스트랄했다.  간장 때문에 아우슈비츠가 호출될 줄 그 뉘 알았으랴 ? 간장이 뭐길래, 이토록 애간장을 태우는 것일까. 기자는 분노한다. 기자라는 알량한 권력으로 매타작을 한 것으로는 성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도 실명으로 까발릴 수는 없는 노릇. 그 식당 이름을 밝힐 수는 없다. 중화, 동영관, 루이는 아니란다. 역시 기자 정신은 살아 있다. 그런데 어쩌나. 그 동네에는 네 개의 중국집이 있었으니 말이다. 내일은 탕슉 2인당 간장 한 종지'만 나오는 식당에 가서 짬뽕에 탕슉'이나 시켜 먹어야 겠다. 솔까말, 탕수육은 이미 탕수육 소스가 제공되는 음식이니 간장 소스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짜장면을 시켜 놓고서는 비벼 먹겠다며 고추장 소스도 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신문의 품격은 칼럼이 좌우하는 법. 오랫동안 통 큰 < 대접 > 만 받다 보면 나중에는 그릇이 < 종지 > 처럼 작아지기 마련이다. 이 글과는 상관없이 김규항의 문장으로 끝을 맺자. " 온갖 책을 다 읽어도 수영을 읽지 않았다면 지식인으로 결격이란다. 너에게 수영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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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있다 절정 위에는 서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만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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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om 冊性愛子 2015-12-01 18:43 
    조선일보를 구독 신청하지 않은 게 후회된다. 지난주 토요일 조선일보에 문제의 칼럼이 게재된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칼럼의 필자는 간장 두 종지를 가지고 우스꽝스러운 코미디 한 편을 완성했다. 필자가 칼럼 데드라인의 압박에 쫓겨 급한 마음에 이런 글을 쓴 것일까. 중국집에 간장 두 종지 더 달라고 주문했다가 주인에게 거절당한 자신의 경험을 야마로 잡을 줄이야. 필자는 그 당시 상황을 겪으면서 느꼈던 불쾌한 감정을 심하게 과장해서 표현했다. “간장님은
 
 
다락방 2015-12-01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킵해놓은 간장 있지? 그것 좀 가져와˝ 라고 반말로 지껄이겠다는 것도 짜증나요. -_-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1 10:02   좋아요 0 | URL
미디어오늘이 그 식당으로 취재를 갔나 봅니다. 주일 왈 :


식당 주인에 따르면 간장을 갖다준 건 물론이고 1번 테이블 손님에게 사과도 했습니다. 계산할 때 찍어주는 도장도 추가로 찍어주었습니다. 칼럼이 나간 이후 해당 식당은 혹시 부족할까봐 간장 종지도 추가로 구입했다고 했습니다. 직원들 친절교육도 다시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현우 부장은 칼럼 마지막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그 중국집에 다시는 안 갈 생각이다. 간장 두 종지를 주지 않았다는 그 옹졸한 이유 때문이다.” 독자들은 당연히 간장을 갖다주지 않았다고 오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화를 풀고 가신줄 알았는데 기사로 쓰셨더라고요 저희가 잘못한거니까 혼나야죠. 그래도 조선일보, 우리나라 대표적인 신문에 쓰셔서 조금 놀라기는 했어요. 앞으로 저희가 잘해야죠. 오해는 하지 말아주세요.”

다락방 2015-12-01 10:0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방금 미디어오늘 기사 봤어요. 아, 쪼잔함이 하늘을 찌르네요. 결국 받아먹고서는...하아- 세상..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1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는 쪼선 일보라고 해야겠다... 어찌나 쪼잔한지.....

표맥(漂麥) 2015-12-01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장 쯤 되는 분이 참 쓸 것도 없나보다~ 싶었는데...
이 글을 보니 정말 재미있습니다. 덕분에 아침에 웃고 삽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1 10:31   좋아요 0 | URL
아침에 죽을 지경이었는데 이 글 때문에 웃어서 살아나셨군요 ? ㅎㅎㅎ 제가 생명의 은인이 되었네요... (시덥지않은 농담이었슴봐 )

살리미 2015-12-01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저런 사람이 뉴스부장이라니 조선일보 알만하죠. 아주 지 얼굴에 대놓고 간장 붓네요. 그 식당 주인은 조선일보 구독자라는데...... 하아~~ 별게 다 열받게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1 18:39   좋아요 0 | URL
그릇이 작은 모양입니다. ㅎㅎㅎㅎㅎㅎ

만병통치약 2015-12-01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대급 갑질이군요 ㅋㅋ 신문권력이 중국집까지 침범하다니. 막노동꾼부터 나랏님까지 1인 1 단문지가 기본이고 탕수육 간장은 보통 1~2그륵인데 말이죠. 푸흐흐흐 어느 중국집인지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1 18:39   좋아요 1 | URL
이러다가 중국과 전쟁 일어나는 건지 모르겠습돠.
탕슉 전쟁..

akardo 2015-12-0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맛집 블로거가 나 블로그하는데 서비스 잘 좀 해주쇼 하며 음식점 가서 갑질하는 느낌의 칼럼이네요. ㅎㅎㅎ 일개 맛집 블로거보다 못한 수준의 글이라니......중국집에서 탕수육 사먹을 때 간장 종지를 한 사람에게 하나씩 주는 데 못 봤는데....비싸고 고급진 데만 다닌 버릇을 평범한 중국집에 가서 내보였나 봅니다.-_-;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1 18:40   좋아요 1 | URL
왜 옛날에 사회문제가 된 적 있잖습니까. 블로거지라고... 꼭 그런 뉘앙스의 글이었습니다.

cyrus 2015-12-01 1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칼럼 필자가 마감날 문득, 쓸 게 없다보니 쪽팔렸던 경험이 불쑥 생각나서 글로 썼을 것 같아요. 지금도 필자는 집에서 이불킥하고 있을 겁니다.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1 18:41   좋아요 1 | URL
다음 주 마감날 문득이 무척 궁금하네요. 생깔까요. 아니면 반성을 담았을까요..ㅎㅎ

cyrus 2015-12-01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글을 곰발님의 블로그에 먼댓글 형식으로 올리려고 했는데, 안 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1 18:41   좋아요 0 | URL
어 그렇습니까, 얼릉 풀어두르겠습니다.

수다맨 2015-12-01 2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런 사소한 얘기를 신문 지상에다 쓰는 걸 보니 조선일보 부장은 할 일이 정말 없는 사람 같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2 09:00   좋아요 0 | URL
분명 쪼오선 일보에도 데스크라는 게 있을 텐데..... 글쓴이가 저런 글을 썼다고 해도, 데스크에서 거르면 되는데.. 이걸 거르지 않았다는 게 신기한 거죠........ 컬럼은 데스크 검열 없는 자유 권한일까요 ? 그럴지도.... 하튼 잘 모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