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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의 모험 - 당신이 사랑한 문구의 파란만장한 연대기
제임스 워드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15년 10월
평점 :
문구류에 관한 박물관을 다녀온 기분이다.
클립,핀으로 시작해 종이,연필,볼펜,만년필,지우개,포스트 잇,형광펜,스카치 테잎,스테이플러등 종류도 다양하지만,각각에 얽힌 문구의 역사와 지식 또한 어마어마하다.
문구류에 관한 알쓸신잡이다.
읽으면서 나도 살짝 문구류에 대한 덕후 기질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린시절 학교 앞에, 울앞집 할머니가 운영하신 문방구가 있었는데 자그만 공간에 없는게 없던 그 많은 문구용품들과 불량식품들에 넋을 잃곤 했었다.
친구들이 연탄불에 쫀드기를 구워 먹는걸 보구선 그때만 해도 문방구는, 문구류를 사는 곳보다는 불량식품을 사먹을 수 있는 간식집?으로 여겼었던 것 같다.
그러다,중학교를 올라가 노는 동네가 옮겨졌고,급기야 좀 더 세련된 팬시점 같은 문구점을 들어가보곤!!!!!
아~~~첫눈에 반해서 나는 시간만 나면 그곳에 들러 문구용품을 칸칸마다 정해서 구경하러 갔었다.
사고 싶은 것들은 많았지만 용돈이 부족하다 보니 겨우 편지지와 편지봉투나 엽서를 사가지고 나오는걸로 만족했었다.
그러다 다음 날이면 또 뛰어가 신상 들어온게 뭐가 있나?처음부터 끝까지 다 살펴보다 보니 그 많은 물건들을 얼추 다 외우다시피 했었던 것 같다.
주인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처음엔 나를 의심어린 눈빛으로 감시하더니,고등학생이 된 후론 이름도 기억해 주고,편지봉투 세트 신상이 들어오면 알려주며 살짝 할인도 해주셨다.
어린시절의 문구점에 대한 황홀하리만치 아련한 기억덕에 문구류에 베어 있었던 비누향 같은 향냄새를 맡으면 갑자기 나도 모르게 스르르 몸이 허물어지는 듯하다.
어릴때 맡았던 그런 향기를 맡게 되면 갑자기 문구용품들이 눈앞에 펼쳐지곤 한다.
(특히 가장 좋아했었던 바른손 팬시의 금딱지 민들레 그림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지금도 한 번씩 동네 알파 문구점을 들어가 수많은 종이류 앞에 서서 한 장,한 장 살펴보고,색연필,물감도 나열되어 있으면 하나 하나 색을 살펴보며 구경하다 보면 시간이 후딱 지나가곤 한다.
다이소를 들리게 되면 나는 그냥 그곳에 눌러 살고 싶을 지경이다.하나,하나 다 구경해야 하는데 너무나도 물건들이 너무 너무 많아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리고 어느새 홀린 듯,내 손엔 또 물건이 한가득!!!
다이소에서 과소비하는 내모습을 이해 못하는 남편은,늘 나를 따라다니며 물건 진열장 같은 곳이 저만치서 눈에 띄기만 하면 장소 불문하고 항상 내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한다.하지만,나는 이미 구경할만한 곳인걸 감지하고 있었기에 딸들을 데리고 달려 간다.
딸들도 어느 순간 나의 DNA를 물려 받아 팬시점,문구점,다이소를 보면 완전 환장한다.
많이 사다 모으진 않은편이라 여겨 덕후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책을 읽고 덕후 맞나?
갸웃했는데 오늘 도착한 알라딘 택배 속에서 나온 알라딘 굿즈 네 가지를 받아들고 덕훈가보다!!!
고개 끄덕인다.
며칠 전 무민 스노우볼을 선택할때 셜록 스노우볼도 무척 갖고 싶어 다시 주문을 들어갔더니 소진 됐었나 보다.
없었다.
대신 피넛 일력수첩을 주문했는데 넘기자마자 귀여운 스누피와 친구들!!!
반갑다...스누피^^
문구류는 쓸모가 있는 물건,
당연히 합당한 말이지 않는가?
문제는 쓸모 있을 것이라 사다 모으긴 한데,
아까워서 감히 쓰질 못하니...
늘 짐이 되곤 한다.
이런 버릇이 어린시절부터 이어온 것이라 어쩌질 못하겠는데...남편은 이런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절래절래 하곤 하는데...나도 이런 내가 싫다.
그래도,
문구류가 이쁘면 또 쓸모 있을 것같이 여겨지니 병이다.
이젠 과감하게 사용하고,
종이 위에서 연필이 활강하며 미끄러진다는 그러한
느낌을 가져보고 싶다.
아니면,
문구점을 하나 차려서 매일 매일 문구류와 팬시용품을 구경하며 살고 싶기도 하다.
김연수 작가도 ‘아마도, 언젠가‘여행 에세이집에서 큰돈이 생긴다면 제주도에 문구점을 차리고 싶다고 한 대목이 떠오른다.
나도 로또가 당첨된다면 반드시 기필코!!!
이 책을 읽는 동안 즐거웠다면,
당신도 문구 덕후다.
문구류는 쓸모가 있는 물건이며, 쓸모가 있는 물건은 사람들이 계속 갖고 있게 된다.
스타인벡은 마음에 드는 연필을 찾아내면 한꺼번에 수십 자루씩 사두곤 했다. 그가 써본 것중에는 브레이스델 캘큘레이터, 에버하드 파버 몽골 480("아주 검고 연필심이 단단해")도 있었지만 스타인벡이 제일 좋아한 품종은 블랙윙 Blackwing 602였다.
새 연필을 찾아냈어, 지금껏 씨본 것 중에 최고야, 물론 값이 세 배는더 비싸지만 검고 부드러운데도 잘 부러지지 않아, 아마 이걸 항상 쓸것 같아. 이름은 블랙윙인데, 정말로 종이 위에서 활강하며 미끄러진다니까.
그 연필깎이의 경우 연필이 이빨 같은 것으로 한자리에 붙들려 있는 가운데 손잡이로 원통형 칼날을 돌리면 얇은 연필 결이 깎여나가면서 심이 균일하고 날카롭게 다듬어진다. 이것이 <파리 리뷰>에서 작가니컬슨 베이커Nicholson Baker가 열정적으로 묘사한 연필깎이였다.
사실 당시 학교에서 제일 좋았던 것은 아마 연필깎이 (손쉽게 다룰 수 있는 작은 크로뮴제 물건)였을 것이다. 그것은 천둥소리인지 헛기침 소리인지 내가 특히 좋아하는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타이콘데로가는 거의 의성어처럼 들리는 이름이다. 물론 나는 연필을 너무 뾰족하게 깎아서 심을 자주 부러뜨렸기 때문에 잠깐씩 서서 그 소리, 타이콘데로가…… 오가………오가…… 하는 소리를 내고 있어야 했다.
그들이 자기 꾀에 걸려 넘어지게 되겠지." 존 스타인벡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날 윽박질러 자기들원하는대로 하려고 들면 나는 그들 위에 통을 뒤집어씌워버려. 내가연필을 다시 집어 들지 않으면 그들은 움직일 수 없다고" 그런 등장인물들과 독자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그는 연필을 집어 들었다. 사실 그는 작가로 활동하는 내내 완벽한 연필을 찾아 헤맸고 여러 종류의 연필을 써보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런 추구가 얼마나 허망한지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난 완벽한 연필을 찾아다녔어. 아주 좋은 연필을 찾아냈지만 그건 완벽한 연필이 아니었어. 언제나 문제는 연필이 아니라 내게있었지. 어느 날은 괜찮았던 연필이 다른 날에는 나쁜 연필이 되어버리니까. 어제만 해도 난 부드럽고 섬세한 연필을 썼어. 그건 근사하게 종이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였어.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같은 종류의 연필을 집어 들었지. 그런데 말을 듣지 않는 거야. 촉이 부러지고 완전히 난리가 났어.
그리고 손글씨의 죽음을 서둘러 선언하려 했던 사람들이나 특이점singularity을, 인공지능이 인간 지성을 능가하는 순간을 고대했던 기술전도사들은 너무 흥분하지 말아야 한다. 문구는 죽지 않을 테니까. 문명이 처음 밝아올 때부터 존재했던 문구는 인터넷 따위의 엉성한 신출내기가 싸움을 걸고 자신을 죽이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터널에 갑자기 들어가더라도 펜은 작동이 중단되지 않는다. 연필로 쓸 때는 배터리가 닳아 충전기를 빌릴 일이 없다. 몰스킨 공책에글을 쓸 때는 내용을 미처 저장해두기도 전에 오작동의 경고가 뜨거나 프로그램이 다운되는 사태가 일어날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다. 펜은 죽지 않았다. 펜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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