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망원동 - 어린 나는 그곳을 여권도 없이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아무튼 시리즈 5
김민섭 지음 / 제철소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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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 가방 속에 쏙 집어 넣어, 들고 다녀도 부담스럽지 않을 두께와 크기인 ‘아무튼,‘시리즈 중 한 권인 다섯 번째인 김민섭 작가의 책이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와 <대리사회>가 무척 궁금했지만,아직 읽어 보진 못했다.
팟캐스트를 챙겨 듣다가 관심중인 시리즈 이야기며,망원동 이야기를 조곤조곤 이야기 하는 작가의 차분한 목소리에,비록 자전거를 타고 들었던지라 속도가 늘진 않았으나,문득 챙겨 읽어 보고 싶단 궁금증이 일었다.

고향이 같지 않아도(시골이 고향인 내가 서울 도시가 고향인 이야기,특히나 가보지도 않은 망원동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을까?), 연령대가 같지 않아도(무려 8살이나 내가 위다??!!!) 과연 공감대가 형성되는 이야기들인지 궁금했다.
헌데 읽다 보니 지명에는 살짝 취약했으나,공감되는 부분이 생각보다 많아 놀라웠다.
내가 공감력이 무한대?인건지, 작가가 글을 섬세하게 잘쓴건지?? 물론 작가가 글을 잘 쓴 덕일 것이다.
작가는 툭툭 내뱉는 듯한 말투의 글인데도 추억 돋는 섬세함이 있어 순간적으로 개인적인 옛시절을 떠올리기도 했다.
어린 국민학교 시절,겨울철 바나나 단지 우유 같은 난로(서울에도 이런 풍경이 있었다니 조금 놀랐다.)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던 풍경이 지나가고,2002년 월드컵 경기가 열리던 그 해 작가가 스무 살의 추억을 더듬는 순간, 나는 첫 아이를 낳은지 두어 달 정도 됐을때인데 아이를 겨우 재워놓고,식구들 모여 티비 보며 함성 지르다 아이가 놀라 경기하 듯 울어댔던 기억도 지나갔다.

비슷한 듯,다른 듯 그러한 시간들이 흘러갔다.
망원동도 변해 가고 있듯,내가 살고 있는 중소도시인 이곳도 신도시 건설로 인해 옛모습과 판이하게 달라져 가고 있어, 때론 예전에 논과 밭이었던 이 곳, 이 땅이 맞나?씁쓸하게 회상에 잠기게 되는데, 서울 망원동의 변해가는 모습은 오죽하랴 싶어 짐작만 할뿐이다.

변해 가는 모습에 씁쓸함을 가지게 된다면,그건 그 장소에 기억할 추억이 많아 애착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추억이 없는 이방인에겐 같은 장소일지라도 씁쓸한 아련함은 없을 것이다.대신 첫 이미지의 좋은 감정이 인다면,그 시점부터 추억은 시작될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작은 애착이라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모인다면,그 도시는 긍정적으로 발전되길 기대해 볼텐데 요즘엔 투기성 애착심이 강한 자들이 자꾸 모이다 보니 도시의 옛모습이 많이 사라지면서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래서 오랜시간 자라 온 동네여도 문득 나도 이방인? 뭐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읽으면서 정작 망원동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는 것이 아닌 내가 자라 온 우리동네 모습을 자꾸 떠올리게 되어 주객전도가 되었으나,독서시간은 즐거우면서 아련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2002년 6월을 신촌 거리에서 보낸 나는
‘세상 재미는 다 느껴본 것 같으니 이제 공부를 해볼까. ‘하고 생각했다. 거리 응원의 경험은 그만큼 강렬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이후에는 무얼 하고 놀아도 그만큼 즐겁지 않았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그런이벤트를 즐길 수 있었다는 데에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해 여름 광장의 경험은 그 뒤로도 나를 또 다른 많은 광장으로 이끌었다. 특히 2016년 겨울,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으로 갈 용기를 주었다. 거리에서 나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처음에는 무척이나 어색했지만, 나중에는 자연스러워졌다.
무엇보다 모여도 된다는 걸, 모이면 즐겁다는 걸, 그러면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마 ‘월드컵 세대‘로 명명된 내 또래 대개가 비슷할 것이다.

 망원동으로 잠시 돌아온 나는, 한동안 그 추억을 먹으며 지냈고 완전한 이주를 꿈꾸기도 했다. 내아이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나와 동생이 걸었던 성미산 길을 따라 등교하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나는스무 살에 망원동을 떠나며 제대로 건네지 못한 작별인사를, 이번에는 제대로 해야 할 것만 같다. 아이들은 어디에 있는 저마다의 망원동을 만들어갈 것이다. 나는 그 곁에서 그들의 추억 속에 함께 존재하는편을 택하기로 한다.

 어쩌면 망원동은 모두의 추억 속에서 간신히 버터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망리단길에서 시작된 변화의 물결을 바라보며 나는 이미 망원동이라는 공간에 작별을 고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옅어져 가고 그 자리를 추억이 대신한다.저마다 마음에 간직하고 있을 고향이라는 곳들이 대개 그럴 것이다.
여전하기만을 바라는 것은 욕심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공간의 변화는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가운데 일어나야 한다. 바뀐 거리의 이름과 풍경이 그곳의 삶까지 바꾸어버리면 안되는 것이다. 지금의 망원동이 20년 후에도 다음 세 대의 추억에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안녕히, 나의 망원동."

 나는 짧은 인사를 건네고 추억의 주머니를 다시 묶는다. 그리고 이전과는 조금 다른 눈으로 망원동의 변화를 섬세히 지켜보기로 한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아이를 닮은 망원동의 아이들이 이곳을 소중한 고향으로 간직하도록 조금의 힘을 보태고 싶다. 그러면 언젠가 다시 "안녕?" 하고 반갑게 인사를 건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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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9-01-09 0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디든 빨리 바뀌는 듯도 해요 서울은 더하지 않을까 싶네요 잘 모르는 곳이라 해도 그런 이야기를 보면서 자신이 사는 곳이나 그때 자신한테는 어떤 일이 있었더라 하기도 할 거예요 같지 않다 해도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건 괜찮은 듯합니다 저는 기억할 게 별로 없지만...


희선

책읽는나무 2019-01-09 16:37   좋아요 1 | URL
작가가 이야기하는 망원동에 대한 이미지가 계속 떠올라야 하는데 그게 아니니~~
그저 20대때 살짝 다녀와봤었던 그시절의 신촌과 홍대모습만 어렴풋이 떠올리는게 다였지만,책에서 설명하는 이미지는 내가 생각하는 그 이미지는 분명 아녔겠죠?^^
아~~그리고 왜 저는 줄곧 응답하라 1988 드라마에 나오는 쌍문동의 골목거리가 떠오르는건지 그것도 참 이상했습니다.ㅋㅋ
그래도 나름,책은 재밌었고,작가의 착한 심성이 푸근하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못 하고 끝난 일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고향옥 옮김 / 온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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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려나 서점'이란 책을 통해 처음 접했었던 작가였는데 작가의 존재감이 무척 강하게 다가 왔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이 책을 덥석 잡아 와 읽었는데 역시!!!
이번에도!!! 재미있다.
하지만 '있으려나 서점'에서는 곳곳에 아이디어가 번뜩였던 책이었다면 이번에 '결국 못 하고 끝난 일' 이 책은 킥킥대며 웃다가 책을 덮으면서 삶에 대한 자세를 좀 바꿔봐야할 소지가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약간의 타고 난 듯한 소심함으로 인해 지금까지 하지 못한일,타고 나지 못한 재주덕에 하지 못한일등을 열거하였는데 중에 몇 가지들은 나 또한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일들이 눈에 띄었다.
가령,볼링을 못하고,유연체조도 못하고,컴퓨터 관리도 못하고,자발적 행동을 못하고,얼굴과 이름을 기억 못하고,치과에 가지 못하고,사 놓은 책을 읽지 못하고,가게 주인과 친해지지 못하는 등(나 또한 못하는 일들이 너무 많구나!)
작가가 못하는 일들 대부분 잘하지 못하는걸 보면 나 또한 타고난 소심한 성격과 발달하지 못한 재주가 즐거운 삶을 살아가는데 많은 방해요소가 될때가 많았다 .

이제부터는 '아직도 000을 하지 못합니다'이 문장을 '해보았더니 이제는 000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의 문장으로 바뀌는 삶을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된다면...조금은 이 삶이 더 재미있는 것들을 체험해볼 수 있는 세상으로 바뀌어 있을 듯 싶다.
그동안 겁 먹고 못했던 일들 중 하나씩 용기 내 보고 싶다.비록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더라도 한 번 시도해 보고,계속 할 것인가?그만둘 것인가?를 훗날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이 얇고 작은 책이 몸과 마음을 살짝 동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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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9-01-09 0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보고 무언가 해 봐야겠다 생각하다니, 저는 안 해야지 그럴 듯합니다 저도 무척 소심해서 못하는 게 더 많습니다 그런 거 해서 뭐 하나 하는 생각도 하고... 이것저것 하는 것도 힘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책읽는나무 님이 즐겁게 할 수 있는 게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희선

책읽는나무 2019-01-09 16:41   좋아요 1 | URL
올 해 해가 바뀐이후,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를 해봐야지!!다짐하던차....이 책을 읽고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한 두 개는 시도는 하고 있으나,진도는 더디고,한 두 개는 아직 시작전이구요.
해가 바뀌기전에 결실을 봐야할터인데 글쎄요?
희선님의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는 어떤 것인가요?^^
희선님도 어떤 한 가지를 올 한 해동안이라도 이룰 수 있는 해가 되었음 합니다..같이 노력해 보아요^^
 
모독
박완서 지음, 민병일 사진 / 열림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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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몇 년 전 지인의 시어머님 사진을 들여다 보면서 감탄했던 그때가 줄곧 떠올랐다.
그 분의 시어머님은 연세가 꽤 있으셨던 것 같았는데 네팔을 여행중이셨는데 여행 장소에 순간 놀랐었고,아름다운 산을 배경으로 하늘하늘한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건강하게 웃고 계신 모습이 너무 생동감이 넘쳐 순간 경외심이 들 정도였었다.

그 분의 시댁 이야기를 간간히 듣고 있노라면 참 특별하고 애틋하게 들려 꼭 영화같다는 생각도 들었고,홀시어머님께 큰며느리로서 사랑을 듬뿍 받는 모습이 진기하고,부러웠고,
가족이란,특히 고부간의 모습이란,
저런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전해 듣곤 했었다.
그래서 그 분 시어머님의 네팔 여행 사진을 처음 들여다 보았을때, 시어머님의 인품까지 느껴지는 좀 특별한 사진으로 다가왔으며,네팔이란 나라마저 좀 더 특별하고,푸근하며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 같았다.

고 박완서님의 이 책이 그렇게 그 분의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계신 시어머님의 사진을 보며 귀한 마음이 들었 듯 그렇게,귀한 마음이 애틋하게 나도 모르게 드는 듯 했다.

책은 20여년 전 민병일 시인을 비롯한 일행 몇 분들과 티베트와 네팔을 같이 여행 하면서 쓴 여행에세이다.
글은 박완서 작가님이 쓰셨고,사진은 민병일 시인님이 찍으셨다.

김동률 가수를 좋아하는데 가수의 노래 중 ‘출발‘ 뮤직 비디오를 보면,카메라 속 배경이 티벳인지 정확히 알순 없으나,책의 사진에서 본 비슷한 풍광들이 카메라에 담겨 있어 내내 그곳 사람들의 선한 웃음들이 따라다니는 것 같다.
재작년 여름휴가철엔 수업을 듣던중 일행 중 한 분이 이번 휴가때는 친구와 함께 몽골쪽으로 다녀오겠단 소리에 얼른 고개를 들어 그 사람을 다시 바라본 적 있었다.
여차 여차한 이유가 있어서인지,내겐 그쪽 나라들에 대한 동경이 생긴 듯하다.
그래서 늘 남다르게 바라보는 나라 중 한 곳이다.

고 박완서 님의 글들은 꼿꼿하고 수수하여 더욱 그 나라들에 대한 이미지를 경건하게 심어 준다.


이 사원을 나오면서는 그래도 하나 새롭게 깨달은 게 있었다.
그것은 이 나라 사람들이 줄창 입에 달고 있다시피 한 진언 ‘옴마니반메훔‘ 에 대해서인데, 직역하면 ‘연꽃 속의 보석이여‘라는 뜻이 된다기에 식물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과 광물에서 아름다운 것의 이름을 줄창 입에 달고 있음으로써 현실의 구질구질함을 극복하는 한편, 아름다운 상상력으로 정신을 정화하는 힘을얻고 싶은 갈망이 만들어낸 주문이려니 했다.

시늉을 했더니 그 자리에서 벗어주었다.
그는 물론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 일을 겪고 나니 구걸하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비루한 거지 근성만 같아서 넌더리가 났었는데 그게 있는 자에 대한 당당한 요구였다면 어쩔 것인가.
이래저래 티베트는 신비의 나라라기보다는 나에게는 난해한 나라였다. 국경이 가까워서 그런지 중국 군인과 군대가 주둔한 건물이 많은 것도 팅그리 지방의 특징이었다. 중장비차를 가지고 도로를 건설하고 있는 것도 군인들이었고, 공무원이나 상인들이 한족 일색인 것도 이쪽이 더 심한 것 같았다.
제 땅을 다 중국한테 내주고 순례만 하면 제일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유목민이나 순례자들의 순하디순한 표정에 비해 대체적으로 거만하고 방약무인해 보이는 한족들을 보면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땅이 남의 식민지였을 때, 우리나라에 들어 와 요직과 부를 차지한 일본인들의 표정도 그렇게 방약무인했었다.

밖으로 나와보니 이 작은 도시 여기저기 뒹구는 게 화석 연료의 마지막 쓰레기인 비닐 조각,스티로폼 파편,찌그러진 페트병 따위 등 생전 썩지 않는 것들이었다.
뚱뚱한 식당 주인 나무랄 자격은 아무에게도 없었다. 우리의 관광행위 자체가 이 순결한 완전 순환의 땅엔 모독이었으니. 당신들의 정신이 정녕 살아 있거든 우리를 용서하지 말아주오, 랏채를 떠나면서 남길 말은 그 한마디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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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1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01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문구의 모험 - 당신이 사랑한 문구의 파란만장한 연대기
제임스 워드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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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류에 관한 박물관을 다녀온 기분이다.
클립,핀으로 시작해 종이,연필,볼펜,만년필,지우개,포스트 잇,형광펜,스카치 테잎,스테이플러등 종류도 다양하지만,각각에 얽힌 문구의 역사와 지식 또한 어마어마하다.
문구류에 관한 알쓸신잡이다.

읽으면서 나도 살짝 문구류에 대한 덕후 기질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린시절 학교 앞에, 울앞집 할머니가 운영하신 문방구가 있었는데 자그만 공간에 없는게 없던 그 많은 문구용품들과 불량식품들에 넋을 잃곤 했었다.
친구들이 연탄불에 쫀드기를 구워 먹는걸 보구선 그때만 해도 문방구는, 문구류를 사는 곳보다는 불량식품을 사먹을 수 있는 간식집?으로 여겼었던 것 같다.

그러다,중학교를 올라가 노는 동네가 옮겨졌고,급기야 좀 더 세련된 팬시점 같은 문구점을 들어가보곤!!!!!
아~~~첫눈에 반해서 나는 시간만 나면 그곳에 들러 문구용품을 칸칸마다 정해서 구경하러 갔었다.
사고 싶은 것들은 많았지만 용돈이 부족하다 보니 겨우 편지지와 편지봉투나 엽서를 사가지고 나오는걸로 만족했었다.
그러다 다음 날이면 또 뛰어가 신상 들어온게 뭐가 있나?처음부터 끝까지 다 살펴보다 보니 그 많은 물건들을 얼추 다 외우다시피 했었던 것 같다.
주인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처음엔 나를 의심어린 눈빛으로 감시하더니,고등학생이 된 후론 이름도 기억해 주고,편지봉투 세트 신상이 들어오면 알려주며 살짝 할인도 해주셨다.
어린시절의 문구점에 대한 황홀하리만치 아련한 기억덕에 문구류에 베어 있었던 비누향 같은 향냄새를 맡으면 갑자기 나도 모르게 스르르 몸이 허물어지는 듯하다.
어릴때 맡았던 그런 향기를 맡게 되면 갑자기 문구용품들이 눈앞에 펼쳐지곤 한다.
(특히 가장 좋아했었던 바른손 팬시의 금딱지 민들레 그림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지금도 한 번씩 동네 알파 문구점을 들어가 수많은 종이류 앞에 서서 한 장,한 장 살펴보고,색연필,물감도 나열되어 있으면 하나 하나 색을 살펴보며 구경하다 보면 시간이 후딱 지나가곤 한다.
다이소를 들리게 되면 나는 그냥 그곳에 눌러 살고 싶을 지경이다.하나,하나 다 구경해야 하는데 너무나도 물건들이 너무 너무 많아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리고 어느새 홀린 듯,내 손엔 또 물건이 한가득!!!
다이소에서 과소비하는 내모습을 이해 못하는 남편은,늘 나를 따라다니며 물건 진열장 같은 곳이 저만치서 눈에 띄기만 하면 장소 불문하고 항상 내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한다.하지만,나는 이미 구경할만한 곳인걸 감지하고 있었기에 딸들을 데리고 달려 간다.
딸들도 어느 순간 나의 DNA를 물려 받아 팬시점,문구점,다이소를 보면 완전 환장한다.

많이 사다 모으진 않은편이라 여겨 덕후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책을 읽고 덕후 맞나?
갸웃했는데 오늘 도착한 알라딘 택배 속에서 나온 알라딘 굿즈 네 가지를 받아들고 덕훈가보다!!!
고개 끄덕인다.
며칠 전 무민 스노우볼을 선택할때 셜록 스노우볼도 무척 갖고 싶어 다시 주문을 들어갔더니 소진 됐었나 보다.
없었다.
대신 피넛 일력수첩을 주문했는데 넘기자마자 귀여운 스누피와 친구들!!!
반갑다...스누피^^


문구류는 쓸모가 있는 물건,
당연히 합당한 말이지 않는가?
문제는 쓸모 있을 것이라 사다 모으긴 한데,
아까워서 감히 쓰질 못하니...
늘 짐이 되곤 한다.
이런 버릇이 어린시절부터 이어온 것이라 어쩌질 못하겠는데...남편은 이런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절래절래 하곤 하는데...나도 이런 내가 싫다.
그래도,
문구류가 이쁘면 또 쓸모 있을 것같이 여겨지니 병이다.

이젠 과감하게 사용하고,
종이 위에서 연필이 활강하며 미끄러진다는 그러한
느낌을 가져보고 싶다.
아니면,
문구점을 하나 차려서 매일 매일 문구류와 팬시용품을 구경하며 살고 싶기도 하다.
김연수 작가도 ‘아마도, 언젠가‘여행 에세이집에서 큰돈이 생긴다면 제주도에 문구점을 차리고 싶다고 한 대목이 떠오른다.
나도 로또가 당첨된다면 반드시 기필코!!!

이 책을 읽는 동안 즐거웠다면,
당신도 문구 덕후다.


문구류는 쓸모가 있는 물건이며,
쓸모가 있는 물건은 사람들이 계속 갖고 있게 된다.

스타인벡은 마음에 드는 연필을 찾아내면 한꺼번에 수십 자루씩 사두곤 했다. 그가 써본 것중에는 브레이스델 캘큘레이터, 에버하드 파버 몽골 480("아주 검고 연필심이 단단해")도 있었지만 스타인벡이 제일 좋아한 품종은 블랙윙 Blackwing 602였다.

새 연필을 찾아냈어, 지금껏 씨본 것 중에 최고야, 물론 값이 세 배는더 비싸지만 검고 부드러운데도 잘 부러지지 않아, 아마 이걸 항상 쓸것 같아. 이름은 블랙윙인데, 정말로 종이 위에서 활강하며 미끄러진다니까.

그 연필깎이의 경우 연필이 이빨 같은 것으로 한자리에 붙들려 있는 가운데 손잡이로 원통형 칼날을 돌리면 얇은 연필 결이 깎여나가면서 심이 균일하고 날카롭게 다듬어진다. 이것이 <파리 리뷰>에서 작가니컬슨 베이커Nicholson Baker가 열정적으로 묘사한 연필깎이였다.


사실 당시 학교에서 제일 좋았던 것은 아마 연필깎이 (손쉽게 다룰 수 있는 작은 크로뮴제 물건)였을 것이다. 그것은 천둥소리인지 헛기침 소리인지 내가 특히 좋아하는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타이콘데로가는 거의 의성어처럼 들리는 이름이다. 물론 나는 연필을 너무 뾰족하게 깎아서 심을 자주 부러뜨렸기 때문에 잠깐씩 서서 그 소리, 타이콘데로가…… 오가………오가…… 하는 소리를 내고 있어야 했다.

그들이 자기 꾀에 걸려 넘어지게 되겠지." 존 스타인벡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날 윽박질러 자기들원하는대로 하려고 들면 나는 그들 위에 통을 뒤집어씌워버려. 내가연필을 다시 집어 들지 않으면 그들은 움직일 수 없다고"
그런 등장인물들과 독자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그는 연필을 집어 들었다. 
사실 그는 작가로 활동하는 내내 완벽한 연필을 찾아 헤맸고 여러 종류의 연필을 써보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런 추구가 얼마나 허망한지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난 완벽한 연필을 찾아다녔어. 아주 좋은 연필을 찾아냈지만 그건 완벽한 연필이 아니었어. 언제나 문제는 연필이 아니라 내게있었지. 어느 날은 괜찮았던 연필이 다른 날에는 나쁜 연필이 되어버리니까. 어제만 해도 난 부드럽고 섬세한 연필을 썼어. 그건 근사하게 종이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였어.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같은 종류의 연필을 집어 들었지. 그런데 말을 듣지 않는 거야. 촉이 부러지고 완전히 난리가 났어.

 그리고 손글씨의 죽음을 서둘러 선언하려 했던 사람들이나 특이점singularity을, 인공지능이 인간 지성을 능가하는 순간을 고대했던 기술전도사들은 너무 흥분하지 말아야 한다. 문구는 죽지 않을 테니까. 문명이 처음 밝아올 때부터 존재했던 문구는 인터넷 따위의 엉성한 신출내기가 싸움을 걸고 자신을 죽이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터널에 갑자기 들어가더라도 펜은 작동이 중단되지 않는다. 연필로 쓸 때는 배터리가 닳아 충전기를 빌릴 일이 없다. 몰스킨 공책에글을 쓸 때는 내용을 미처 저장해두기도 전에 오작동의 경고가 뜨거나 프로그램이 다운되는 사태가 일어날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다.
펜은 죽지 않았다. 펜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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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12-27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문구에 관심도 없는 편이거든요.
되게 재미없을 것 같아 이 책은 거들떠도 안 봤는데
뽑아주신 밑줄긋기를 보니까 꽤 읽을 만하겠는데요? ㅎㅎㅎ

책읽는나무 2018-12-27 21:08   좋아요 0 | URL
문구류 덕후가 아니시라면...글쎄요??^^
이런류의 책들은 호불호가 있는 것같아요..저는 이런 알쓸신잡류의 책들을 좋아하는지라 저런 문장들을 읽으면서 풉~~했는데..때론 어렵고 이해불가의 문장들은 훔!!!????그러긴 했습니다ㅋㅋ
하지만,책의 작가는 꽤나 재치가 있었어요.저의 유머코드가 좀 엉뚱하긴 합니다만~~몇 번이나 풉!!했습니다ㅋㅋ

무식쟁이 2018-12-28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구류의 알쓸신잡이란 표현이 정말 딱이라는. 제 최애문구류는 제 보조(라 하기엔 넘나 메인인) 단기기억장치인 포스트잇이예요. 요즘 월매나 이쁘고 다양하게 나오는지 참 감사한 세상입니다.
참. 전 학창시절 아트박스파였네요. ㅋ

책읽는나무 2018-12-28 09:49   좋아요 0 | URL
포스트잇...^^
요즘 조그마한 독서용 포스트잇이라고 하나요?
저는 요즘 그것에 꽂혀 책 읽으면서 멋으로? 막 줄맞춰 붙이고 있습니다^^
예쁜 연필도 하나씩 사다 놓기도 하구요!
아까워 쓰지도 못하면서요.

그리고 아트박스!!!!
맞아요.막 세련됐던 아트박스 잊지 못합니다.
은은하고 고상했던 바른손 팬시 용품 보다가 아트박스를 봤을때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아트박스는 지금도 상점이 있더라구요?
한 번씩 시내? 나갈때 딸들과 또 들르곤 한답니다.
몇 달전엔 소주잔이 이뻐서 몇 개 구입해 왔습니다만ㅋㅋ
아트박스,바른손 이름만 들어도 아련해 지네요.
비슷한 시기에 학창시절이었나봐요?^^

손편지를 쓰지 않게 되면서 자연스레 편지지를 사지 않게 되어 좀 아쉽네요.대신 가는 곳마다 이쁜 엽서가 눈에 띄면 사다 모으고 있어요.냉장고 자석두요.
그래서 냉장고 문등 붙여 놓고 혼자 웃고 있습니다ㅋㅋ
예쁜 물건이 끊임없이 많이 많이 나왔음 좋겠어요.

단발머리 2018-12-29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이소를 들리게 되면 나는 그냥 그곳에 눌러 살고 싶을 지경이다. 하나,하나 다 구경해야 하는데 너무나도 물건들이 너무 너무 많아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제가 이 부분에서 너무 웃어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 맘이 바로 책읽는나무님 맘입니다.
제 전공은 편지지, 볼펜, 형광펜입니다. 요즘에 책 읽을 때 볼펜으로 줄을 긋다보니 자꾸 볼펜ㄸ이 생겨서 어떤 필기구가 가장 우아한 줄을 구사하나 연구중입니다. 사실 줄은 맨날 삐뚤빼뚤이지만요.
저도 이 책 읽어봐야겠어요. 기대만발!!!

책읽는나무 2018-12-29 15:05   좋아요 0 | URL
다이소에서 흥분하는 사람은 저뿐이 아닌가봐요?ㅋㅋㅋ
알파문구 같은 문구점도 무척 흥분합니다ㅋㅋ
모든 아기자기한 공간들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
울집 신랑은 기다리다 지쳐 그러한 공간들을 엄청 싫어하고 있구요ㅋㅋ
볼펜도 내가 원하는 굵기의 미끄러짐의 강도를 지니면서 미적 감각을 지닌 볼펜을 찾으려 매번 볼펜코너에서 혼자서 줄 긋고 서 있어요^^
문구덕후시라면 아마도 재미나게 읽으실 수 있을 것같긴 합니다만 장담은 못하겠어요^^
다들 주변에서 나의 취미가 이상하다고 해서요ㅜㅜ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7 - 시오리코 씨와 끝없는 무대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1부 7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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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사람의 마음을 충만하게 만들어줄 위대한 물건일 것이라 생각되지만,때론 책욕심이 일어 남을 해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 요지의 물건이 될 수도 있다.그래서인지 책을 읽을수록 아이러니하다.
그렇다고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시리즈물이다.해피엔딩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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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6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26 0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