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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품격 - 조선의 문장가에게 배우는 치밀하고 섬세하게 일상을 쓰는 법
안대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5월
평점 :
옛선인들의 글에 대한 해설서로 여적 정민선생님의 책만 찾아 읽었었다.그래서 이책에서 읽히는 문장들이 저책에서도 보이곤 하여 같은 책을 읽고 있나?싶다가도 같은 사람이 글을 썼으니 중복될 수도 있겠거니 하면서 정민선생님을 따라올자가 있을까,여겼었다.
오늘 안대회선생님의 책을 읽어보니 비슷하면서도 느낌이 많이 다르고,은근하면서도 종종 튀는 해설도 엿보인다.비유를 들기위해 선택하신 글들이 더 좋게 읽히기도 한다.
허균,이용휴,박지원,이덕무,박제가,이옥,정약용 일곱 명 선인들의 고전 산문집을 엮은 책이다.제문과 서문, 편지,척독등 각각의 글에서 각자의 개성이 엿보이고(시대상으로 조선중기 18세기를 살다간 문인들이었기에 파격적인 소품문들이 많다.)개인의 사람됨됨이가 들여다 보여 숙연해지는 문장들이 가득하다.그래서 '문장의 품격'이라고 이름하는가 싶다.
개인적으로 이덕무의 글을 편애하는 편인데 좋아하는 문장들이 있어 반가웠다.
그의 방은 지극히 협소하다. 하지만 동쪽에도 창이 있고 남쪽에도 창이 있고 서쪽에도 창이 있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기우는 해를 쫓아가며 햇볕 아래서 책을 읽는다.
(136쪽 간서치전 중에서)
간서치전 중에서 요대목을 좋아하는데, 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넘어가는 방향을 쫓아 이덕무의 열혈 독서 모습을 상상하면 애처롭기도 하면서 그의 몰입도에는 가히 존경스럽다.
이 못난 사람은 단것에 대해서만은 성성이(오랑우탄)가 술을 좋아하고, 긴팔원숭이가 과일을 좋아하듯이 사족을 못 쓴다오. 그래서 내 동지들은 단것을 보기만 하면 나를 생각하고, 단것만 나타나면 내게 주지요.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초정(박제가)은 인정머리없이 세 번이나 단것을 얻고서 나를 생각지도 않았고 주지도 않았소.그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내게 준 단것을 몰래 먹기까지 했소. 친구의 의리란 잘못이 있으면 깨우쳐 주는 법이니,그대가 초정을 단단히 질책하여 주기 바라오.
(159쪽 척독소품 6제중 '초정을 질책하여 주오')
이 문장은 어쩌면 품격과는 거리가 있어 보일만큼 약간 쪼잔한 모습이 비춰질지도 모를 문장이긴하다.정말 이덕무의 속마음인지? 농이 섞인 것인지? 알길은 없으나 이덕무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어 재밌었다.
선인들의 글이라하여 진부한 글만 있는게 아녀서 읽는 재미가 더러 있다.
박지원의 큰누님을 보내고 쓴 제문은 읽는이의 마음이 시큰해지게 만들고 처음 읽게 된 이옥의 '심생의 사랑' '의협 기생'등은 흥미롭게 읽혔다.
글쓰기란 누구나 쉽게 쓸 수는 있지만 명문장을 쓰기는 쉽지 않다.이책에 수록된 글들을 읽어보면 선인들의 내공이 가히 범상치 않게 느낄 수 있다.
명문장을 쓰려면 우선 마음가짐부터 바로 세우고 써야할 것이다. 지금 그들의 문장을 명문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바로 그것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