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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옛것이 좋아 때론 깨진 빗돌을 찾아다녔다 - 추사 김정희의 금석학 ㅣ 조선 문명의 힘 2
박철상 지음 / 너머북스 / 2015년 7월
평점 :
지은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나 또한 어려서부터 무수히 추사선생의 위명을 들어왔다. 그래서인지 자연히 추사란 글자가 보이면 절로 궁금함이 생겼었다. 그러던 차에 저자가 200여 가지 오류가 있다고 논고한 유홍준씨의 <완당평전>을 젊은 시절에 읽었고 몇 해 전엔 외진 곳에 있는 과천의 추사박물관에 가서 잘 둘러보았다.
예전에 박철상선생의 <서림청화>를 사놓고서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는데 이번에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덕분에 조각조각 연결하지 못했던 잡다한 지식들이 꿰어져서 매우 흡족하다.
그 가운데서도 기억에 남고 내가 이해한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19세기 조선에서 학예, 문예가 뛰어난 대가를 뽑으라면 다산과 추사인데 특히 추사는 금석학을 연 분으로 청조에까지 이름을 떨친 큰선비이시다.
2. <발해고>를 쓴 유득공이 금석문에 조예가 있었고 금석학의 기초를 닦아놓았다.
3. <예당금석과안록>은 실체가 없고 추사의 금석학은 <해동비고>와 <진흥이비고>에 남아있다.
4. 삼각산 비봉의 진흥왕순수비를 발견했으며 황초령 순수비를 보존하기 위해 벗 권돈인에게 부탁하였고 문무왕비와 무장사비를 찾아서 갈무리하고 연구하였다.
5. 이처럼 금석학을 통해 역사를 고증하고 서법을 공부하면서 추사체를 이룩하였다.
6. 생질서인 조면호에게 한예를 가르치면서 서예 공부법을 우리들에게도 알려주었다.
7. 옹방강과 옹수곤 부자, 유환지와 유희해 부자 등 청조 사대부들과의 교류사와 금석학 관련 저서 등을 손쉽게 알 수 있었다.
8. 고려 이전에는 부여 정림사지 탑면의 평백제탑명 등을 제외하고는 거개가 구양순체로 씌여졌다.
등을 나름대로 내 머릿속에 정리하여 넣었다.^^
끝으로, 이 책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오류가 몇 군데 보였는데 그 중에 가장 납득이 안되는 곳은 274쪽의 '나무부동법지광불'이다. 이를 굳이 남무라고 표기해야 되는지, 귀의한다는 뜻인 인도말 나마스를 음사한 것임을 천하가 다 알거늘 왜 이리 했는지 의문스럽고 아쉽다. 그리고 독자를 위해 각주를 지양하고 미주를 사용한 듯 한데 나는 그것이 굉장히 불편했다. 싼 책값 탓인지 천연색 삽도가 없는 점도 좀 아쉬웠고 더 자세한 주석이 있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계속 박철상선생의 좋은 책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허언을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