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유진과 유진"을 읽고 '이금이'라는 작가를 다시 보았다.

우리나라 어린이 문학에서 공백처럼 느껴졌던

13~15세 연령대 대상의 작품에 "유진과 유진"을 권하는 바이다.

성폭력이라는 버거운 소재를

분명한 주제의식 속에서

무게에 짓눌리지 않게, 그러면서도 탄탄하게 진행시키는 구성력이 놀랍다.



내성적이고, 순종적이면서도

자기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작은 유진이의 모습이

어렸던 나와 닮아 있었던 점도 좋았다.

친구도 없이,

사람을 두려워하면서,

자기를 가둔 작은 몸이 더 이상 맞지 않는 것을 느껴가는,

그 삐끄덕 거리는 소리 때문에 괴로움을 느끼는 유진,

그건 바로 15세 여자, 나이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밑줄을 그은 한 문장은,

오직 나한테만 와 닿는 작은 유진의 독백이었나보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용건이 담기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는 일에 서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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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랜드 미아 푸른숲 어린이 문학 5
김기정 지음, 이상규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작년 어린이도서연구회 추천도서목록에 올랐다가

이야기밥을 통한 이재복 평론가의 문제제기로 인해

논란의 중심에 섰던 작품 "바나나가 뭐예유."

부끄럽게도 난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았다.

그 논란의 작가 김기정의 다른 작품 "네버랜드 미아"를

어제 지하철 속에서 읽긴 했다.


발랄하고 유쾌한 풍자라는 호평과

풍자의 화살이 부족절한 대상에게 가 있는 작품이다라는 혹평, (이것은 '바나나가 뭐예유'에만

해당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양극단에 서서 말들이 많았던 작품의 작가라는 것이 조금 이해되었다.

 

마치 채인선의 동화들처럼 신나게 내달리는 줄거리의 힘은 있다.

문장이 읽히는 속도, 사건이 전개되는 속도는

우리나라 작품들에서 흔치 않게 빠르고 흥미롭다.

그러나 그렇게 치달아간 사건이 다다른 종점에는 공감하기 힘든

생뚱맞은 진실이 있다.


이 작품 네버랜드 미아의 경우에 작품의 도입에선,

옛이야기의 도입부를 차용하여 독자를 빨아들인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걸작 환타지 "미오, 나의 미오"를 연상시키기기도 한다.

(엄밀하게 말해서는 미오보다 한참 허술한 서두이긴하지만,

제대로된 환타지의 냄새, 적어도 그 향기라도 풍긴다는 점에선 반가왔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넘어들어간 환타지 세계가 뭐란 말인가?

한참을 즐기고, 성찰없는 쾌락에 빠지게 해놓고는

후반부에서 극단적이고 사악한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가 흘러간다.

게다가 거기에 어설픈 에필로그를 덧붙여서

이야기 전체에 아우라를 덮어 씌우려고 했지만 역부족이다.

유명 배우가 나오고 활영이나 무대미술 등은 흠잡을 데가 없지만 시나리오가 허술한 한국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세련되고 매끄럽지만 정작 서사의 뼈대는 엉성하고 아귀가 맞지 않는...


린드그렌이나 로알드 달처럼 도덕과 사회를

가벼웁게 내던져 버리고 완전히 자아에 몰두하는 인간형을 그리지 못할 바에는

주인공을 그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는 네버랜드"에 남겨두지 말았어야 하는 건 아닐까?


이 작품을 '어린이들에게 권하지 말아야 한다'라며 말릴 생각까지는 없지만

작품성의 순위를 매기는 자리에서라면 나 역시 딴지를 걸고 싶어졌다.


작가의 다른 작품 "바나나가 뭐예유"와 "해를 삼킨 아이들"을 곧 사서 볼 작정이다.

도전받는 마음으로 읽어 보고 싶다.

주먹 쥐고 앙다물고 시비를 거는 작품을 사실 나는 좋아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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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이틀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 들녘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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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수 앞을 읽는다."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었던 고매한 인격의 경감이

알츠하이머병을 앓던 아내를 촉탁 교살한 사건을 둘러씬 경찰, 검찰, 변호사, 교도관, 신문기자들의 내면을 읽는다.

자신의 자리에서 베테랑이라 불리는 자들, 그 마음속의 황량함,

인간적인 면모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바둑의 고수처럼, 진정한 타짜처럼 남의 속을 내속처럼

들락거리는 그들의 독심술에 박수를 보낸다.

소설 속에서 치밀하고 전문적인 심리전을 구사하고 싶다면

이 작품을 연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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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난 아이
사노 요코 글 그림, 임은정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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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 요코는 항상 독자를 놀래킨다.


내가 놀란 장면에 밑줄을 긋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아직 이 책을 만나지 않았고

앞으로 이 책을 만날 독자들의 충격과 감동에

내가 찬물을 끼얹는 것이 되므로 애써 참겠노라.


사노 요코가 만들어 낸 주인공들은 대체로 무심하다.

허무하다 허무하다 못해

무심하다 무심하다 못한

이런 삶의 태도를 가진 주인공은

어린이책이나 그림책에서 흔치 않은데,

이런 이들을 악바리처럼 살게 하는 그 조그마한 계기를 만드는 것이 또 사노 요코의 힘.


음... 태어난 순간 진리를 터특하고 사방으로 연꽃 발자국을 남긴

아기 부처님을 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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來姬 2005-02-20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음... 태어난 순간 진리를 터특하고 사방으로 연꽃 발자국을 남긴
아기 부처님을 보는 듯 하다. "->이말 멋져요.

반지하bnb 2005-03-09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좋은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기쁨을 함께 할 수 있어 좋습니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반양장) 반올림 1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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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제목,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벚꽃 흩날리는 표지와

그 서늘한 꽃그늘 아래 보이는 파란 일기장...


(그러나 자살은 아니었다.

이점 때문에 약간 속은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웬지 나는 처음부터 자살을 예감했고, 결말에 그 자살의 이유가 담겨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

암튼...)


읽히는 속도는 엄청 빠르다.

주인공 유미 케릭터와

전혀 상투적이지 않은 엄마, 새아빠 등

쿨한 인물들이 강렬하게 와닿는다.

하지만 내가 이 책 바로 전에 읽었던

작년도 어린이문학 성장소설 부문 대표작 "유진과 유진"과 비교되는 점은 있다.


"유진과 유진"의 이금이가, 어린이책 작가로서 성장소설을 보여 주었다면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의 이경혜는 소설가(신춘문예 중편소설로 등단했으며, "박쥐 공주 미가야" 등의 어린이책도 좋은 평을 얻었다.)가 대상 연령을 낮추어 10대 소설을 쓴 듯한 느낌을 준다.

속도감 있는 문장 진행과 1인칭 화자가 툭툭 던지는 쿨한 말들이 매력적이지만,

주인공이 아닌 '내 새끼'를 보듬듯하는 엄마의 시선은 "유진과 유진" 쪽에서만 찾을 수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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