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찰리가 그러는데요 1
우르줄라 하우케 지음, 강혜경 옮김 / 해나무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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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Papa, Charly hat gesagt...
우르줄라 하우케 지음, 강혜경 옮김, 해나무 2002

희곡과 방송극 이라는 장르가 전무하다시피한 우리나라라 이 책이, NDR 라디오 방송극이었다는 것만으로도 주목하게 되었다. 두세꼭지를 읽어보니 아이답지 않게 정연한 논리와 안목을 가진 아들이 중산층 아버지의 허위의식을 자극하는 것이 마치 시사만화 '마팔다'를 보는 것처럼 통쾌하고 시원하다.

각 꼭지는 줄곧 아버지와 아들 두사람만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들이 말을 여는 화두로 삼는 '찰리네 집' 특히 찰리네 아버지는 참으로 이상적인 사회의식과 윤리를 가진 모범적이고 멋진 사람으로 나온다. 이에 비해 주인공의 아버지는 보수계층의 논리로 자기를 변명하기에 바쁘고 가족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텍스트가 아주 재미있고 재기발랄하지만 희곡특성상, 단지 눈으로 읽는 것만으로는 글맛을 알 수 없고 또 그러한 장르의 책읽기에 익숙치 않은 독자들에게 라디오를 들을 때처럼 역할 별 목소리를 따로 상상하는 것이 어렵고 따분한 일일 것은 분명 예상할 수 있다.

그런 장르의 문학을 책으로 낼때 편집과 조판에서 그런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을 더 고민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또 책의 형태가 아니라 진짜 라디오에서 이처럼 참신하고 흥미로운 문학텍스트를 만날 수 있었으면 더 좋겠다는 아쉬움도 그 자리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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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아줌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스기타 히로미 그림,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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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지에 소개된 글을 읽고 한번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읽고 나니 꽤나 멋진 작품이다. 그러나 책 제목과 그림만 보고 어린이에게 권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 지는 미지수다. 일본 문학의 영향일까? 전통적인 나레티브 방식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장면이 몇 있다. 예를 들어, 산타클로스의 회의 장면이 완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크리스마스 이브로 넘어가는 장면, 앞에 전혀 설명이 없었는데 주인공 제시카와 존이 사랑하는 사이였고 결혼을 할 것이라는 암시 등이 그러하다. 굉장히 신선하고 기발한 시도다. 어린이문학에서는 별로 보지 못한 스타일이었다.

며칠 전 일본어 번역작가 서혜영 선생님이 선물해 주신 '쥬제페, 사로잡힌 남자 이야기'도 그러했지만 일본 작가들은 소설의 셋팅을 외국에 하는 경우가 흔한 것 같다. 이 책 “산타 아줌마”도 첫 장면은 핀란드에서 시작한다. 또 여러 나라 산타들이 모인 가운데서 굳이 일본 산타의 비중을 높이지도 않는다. 아니, 이 작품의 주인공은 미국에서 홀로 아들을 키우는 엄마 제시카가 아닌가. 아, 한 장면 일본 산타가 주목받는 데가 있긴 하다.
그러나 일본 산타는, 퇴임하는 산타 회장이 여자 산타를 후임으로 앉히려고 하자,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아버지의 지위가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아버지는 단지 집에 돈을 갖다주는 존재로, 그것말고는 방해꾼이라고밖에 생각하지 않지요. 심한 경우에는 아이들로부터 ‘큰 쓰레기’취급을 받을 정도입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어쨌튼 분명한 것은 부성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겁니다. [...] 그런 와중에 여자 산타클로스가 나타난다면……. 아이들은 끝까지 아버지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겠지요. 산타클로스는 이 세상 아버지들의 최후의 요새 같은 것입니다.”라고 위축된 남성의 지위를 이유로 제시카를 거부한다. 작품의 메시지를 볼 때 주인공과 대립하는 부정적 인물의 역을 맡는 것이다.

문학에서 꼭 작품의 배경이 우리나라일 필요가 없고, 주인공이 꼭 우리나라 인물이라는 법도 없지만 스스로 그런 틀에 갇힐 위험이 얼마든지 있다. 특히 발로 뛰어 책을 만들지 않고 의자에 앉아 머리로만 꿈꾸는 그런 골방 철학자의 사고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작가라면 더더욱. (물론 순수하게 사색과 상상으로 좋은 작품이 나온 예도 많을 테지만)
그러고 보니 이 작품의 경우, 크리스마스의 기원이라든지 각국의 크리스마스 풍습에 대한 조사가 엿보이는데 이것도 칭찬해줄 일이었다.

읽으면서 재미있고 가뿐해지는 작품을 찾는다면 한번쯤 잡아도 후회는 없을 책이다. 또한 같은 아줌마로서, 일하는 여성이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작품이라 한번 더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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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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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작품은 책으로 읽은 건 하나도 없고 죄 영화로만 알고 있다. 미저리(아직 안 봤다), 친구네 집에서 인상적으로 보았던 샤이닝, (말로만 들은) 캐리, 그린 마일, 쇼생크 탈출 등.... 그런데 이 책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으니 역으로 그의 소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창작론으로 이렇게 자기 색을 확실히 보여주는 작가는 흔치 않을 것이다. 유쾌하고 발랄하고 머뭇거림이 없는 놀라운 문장 -번역된 것으로도 이 정도를 눈치 챌 정도인데 하물며 원서 문장은 어떨 것인가-, 글쓰기에 대한 자기 확신 -예를 들면 플롯은 중요하지 않다!는 선언 같은 것...

이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책 값을 한다. 그런데 심지어는, 게다가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글쓰기 기법까지 가르쳐주니 이거 작가가 되려는 사람은 거저 먹기 아니야? 더 놀라운 것은, 이 책을 덮는 순간 정말 스티븐 킹이 말한 대로 '내 방 문을 잠가걸고' 글을 쓰고 싶어진다는 사실! (근데 아직 난 내 방이 없어서 문을 닫을 수가 없는 걸.) 여기서 책 내용을 더 소개한다면 책값이 너무 헐하잖아. 난 못해, 더 말할 수 없어.

p.s. 지름길도, 특별한 처방도 따로 있을 수 없다는 '많이 읽고 많이 쓰기' 숙제. 읽은 양은 꽤 잡다하다고 말할 수 있고 또 앞으로도 읽기 숙제는 잘 해낼 자신이 있지만 쓰기 숙제는 정말 아직도 알 수가 없다. 내가 시작을 했는지 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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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툰 4 - 우린 날마다 자라요 비빔툰 (문학과지성사) 9
홍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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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툰>은 착한 만화다. 늘 그렇지만 착하다는 것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나쁜' 조직과 사회가 착하다 신화를 가지고 개인에게 '착하게' 참으라고 이데올로기로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비빔툰의 가족은 아내의 희생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전통보수주의에 머물러 있다. 그렇게 생각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중간에 생활미씨가 공부를 하고 싶어 학원에 다니려 하는데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 쩔쩔매는 대목이 나온다. 사실 맞벌이 부부인 나로서는 생활미가 어떻게 계속해 나갈까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연재가 계속 되면서, 학원에 나가는 모습은 몇번 보이지만 그 소재는 묻혀버렸다.

그러다가 이 책 거의 마지막 195쪽 <자격지심> 편에서 이런 이야기를 발견했다; 침대에 누운 생활미 씨가 남편에게 친구 결혼식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는데, 그 친구는 애기 낳으면 곧장 아기도우미한테 맡기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거라 말했다. 생활미는 그 친구의 말을 전하면서 '아직 생기지도 않은 그 아기한테 내가 괜히 미안해지더라구.'라고 말한다. '한편으론 친구의 그런 당돌함, 자신감이 부럽기도 하더라...'라고 덧붙이긴 하지만. 그러면서 잠자다 깬 둘째에게 달려가 어르면서 '엄마인 나로서는 솔직히 그런 말 쉽게 안 나오던데... 그러고 보면 내가 좀 보수적인가봐.'라고 한다. 남편은 자격지심에 '그 말은 꼭, 남편인 내가 보수적이라는 말로 들리는군.'하고 속으로 되뇌인다.

나는 그 대목에서 '그래요. 당신 둘다 보수적이예요.'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진다. 특히 생활미씨에게. 그런데 그 보수는 단순히 보수/진보처럼 성향을 나타내는 말에 그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생활미씨 당신을 옭죄고 짐지우는 자기 올가미라고...왜 자기의 욕구를 인정하고 가족과 함께 그것을 실현시킬 방법을 찾지 않고 손쉽게 자기가 포기하고 희생하는 길을 택하느냐고도 묻고 싶다.

함성호 씨는 이 책의 발문에서, '홍승우씨의 가족들은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영화를 패러디하며 '그래, 우린 미쳤다 왜!'라고 말하며 소시민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제도의 모순을 사랑해야 나와 내 가족이 존재한다는 것, 가족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라는 것을 전달한다'고 말한다.

나는 여기서 묻고 싶다. 그런데 그 견딤이라는 것이 여성에게 일방적이고 또는 여성에게만 지나치게 큰 무게를 지닌다면 그것도 정당한 거냐고. 물론 이 가족의 경우 가장인 정보통에게 '견딤'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욕구를 실현할 가정 외의 장 즉, 직장이란 곳이 있다. 비록 그곳이 늘 자기 이상을 실현하는 꿈의 현장이 될 수 없고 늘 나를 좌절시키고 실망을 안겨주는 곳이지만 그곳에서 끊임없이 나를 발견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생활미에게는 오직 가정 밖에 없지 않은가? 가족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를 확인하고 존재의의를 찾는 것이다. 생활미에게, 일본어를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있어도 그것은 사치이고 향유로 비치기 때문에 빡빡한 살림과 일손이 그것을 허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정보통 같은 남자라면 90점이 넘는 남편이라고 생각한다. 아내의 입장을 생각하고 늘 대화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그렇다. 하지만 그는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인 아내의 고충을 100%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아내들은 요구해야 한다. 말해야 한다. 착한 아내들에게는 그게 '생색내기'로 비출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여자들은 더 이상 착하지 말아야 한다. '되바라지게' 원하는 것을 말하고 '시끄럽게' 요구해야 한다.

<비빔툰>이 5권, 6권 계속되면 만화든, 작가의 실제 생활이든 이 생활미씨가 이름 그대로 진정 생활 속에서 어떻게 '아릅답게' 피어날지 나는 계속 지켜볼 것이다. 다운이, 겨운이 때문에라도 나는 <비빔툰>의 열렬한 팬이지만 마냥 착하기만 한 정보통, 생활미 씨를 보면 문득 경계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착한 마누라'가 되기 싫기 때문이다.
 

 


p.s. 위 서평을 올린 것도 벌써 몇 년 전인가?

나는 거의 모든 책을 좋아하고, 특히 내가 읽은 대부분의 책을 좋아한다.
하지만 서평을 쓰는 책들은 꽤 가린다. 까탈을 부리는 게 아니라, 뭔가 가슴에 불을 지피는... 그런 책에 대해서만 글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 글은 책의 생산자들이 듣기에 반갑고 힘이 나는 것일 때도 있을 것이고 완전히 정반대로 책이 아닌 생산자들을 비난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해 책이 아주아주 마음에 들었을 때, 반대로 아주아주 마음에 안 들었을 때 주로 책에 대한 감회를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이다. 

전자의 글은 가능하면 공개하고, 한 권이라도 더 팔리라고 입소문을 내려 하지만 후자의 글은 써두고도 혼자서 간직하는 일이 많다.
책에 대한 내 인상과 판단이 지극히 경솔해서 오랜 시간 그 책을 끌어안고 만들어낸 이들에게 상처를 줄지 모르니까. 아니면 비평자도 아니면서 비평의 날을 들이대려는 나 스스로에게 시간을 좀더 두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비빔툰4에 대한 글은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다. 몇 년이 지났지만 다시 읽어도 참 과감하게 내질렀다. 글을 열자마자 "이 책은 전통보수주의에 머물러 있다"며 바로 한 방을 날리지 않는가. 설령 이 책에 대한 나의 의견이 그때와 지금이 똑같더라도 지금이라면 이렇게 말을 걸지는 않았을 성싶다. 나도 늙었나...
 

정보통의 일상, 그리고 그의 가족이 가부장제라는 틀 안에서 굴러가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갖고 있는 다른 점들을 전혀 이야기하지 않고 단언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았다. 러니까 지금도 그렇지만, 비빔툰은 우리를 '위로'해 준다.

다운이, 겨운이가 자라고 그 부모인 생활미와 정보통도 성장통을 멈추지 않는 모습을 보며 나는 큰 힘을 얻는다. 생활미가 '주부'로 주저앉게 된 그 사연은, 같은 여성으로서 분명 울화통이 났다. 하지만 그것을 모두 정보통, 그러니까 작가의 탓이라고 비난할 필요는 없었다. 어쩌면 나는 활미에게 지나치게 감정이입이 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착한 마누라가 되기 싫다"는 말은 내 남편에게 할 말이지 남의 신랑한테 외칠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다. 

뭐, 아직도 이 시위는 계속되고 있지만. 쩝.

나 역시 10년의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운이, 겨운이 같은 아가들을 키우고 있다.

지금도 한겨레에서 비빔툰을 꼭꼭 챙겨 보는 독자로서,
몇 년 전 내가 올렸던 위 서평이 작가에게 '독'이 아니라, '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2009.08.26.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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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야스 도서관 이야기
다케우치 노리요시 지음, 도서관운동연구회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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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물도 아니고 센세이셔널한 논픽션 소재도 아닌데 이런 책이 번역되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우리나라도 이제 시민의 손에 의한 '도서관 운동'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증거라 볼 수 있다.

이 책은, 우라야스 시립 도서관 건립을 준비하고 일궈낸 초대 관장 타케우치 노리요시라는 분이 몇년간의 일들을 들려주고 있다. 책 날개에 사진이 나온, 일본에 한번 가본적 없는 나같은 사람 눈에 정말 일본인답게 생겼다고 느껴지는 남자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솔직히 글맛이 훌륭하다거나 감성적으로 읽히는 책은 아니다. 철저하고 성실한 어느 공무원의 업무기록이 오히려 이 책을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내가 배워야 겠다고 생각한 것 두가지 중 첫번째는, 바로 그 기록정신이다.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든지 그 과정과 성과물을 자료로 남기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자기 일을 기록하는 사람에게는 거짓이 있을 수 없으며 다른 이에게 그것을 전하겠다는 의지는, 그 일에 대한 정열없이는 생길 수 없는 것이다. 현재 이 도시의 인구와 도시 문화적 특성을 고려해서 도서관 서비스를 준비하고 도시의 어린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는 10년뒤의 모습까지 고려하는 관장이었기에 이런 책이 만들어질 수 있었으리라.

또 하나 배울 것은 시민으로부터 나오는 시정이다. '우리에게는 이런 도서관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런 것을 요구한다'라고 목소리를 내는 시민, 그 조직력이 부럽다. 우라야스의 도서관, 우라야스의 열정적인 도서관장을 부러워하기에 앞서 내가 먼저 우라야스의 시민처럼 되어야 된다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해서 하나마나 한 소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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