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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 24시. 중국 역사 추리 소설 이라고 해야하나? 사실 처음엔 낯선 단어들로 인해 글의 이해가 좀 힘들었다. 무후, 원소절, 서리, 정안사 등등. 나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 빛을 향해 더듬더듬 짚어나가듯 내용을 알아갔다.

그러나 맥락을 활용한 단어 이해가 시작되연서, 영화, 그것도 스릴과 긴박감 넘치는 퀄리티 높은 무협영화를 보는 것 마냥, 생생한 묘사와 빠른 전개, 쫓는 자들과 쫓기는 자들 사이의 두뇌싸움과 팽팽한 긴장감에 페이지를 넘기는 손이 점점 빨라졌다.

이 책의 배경은 중국 당나라 시절, 옛 도시 장안성이다. 외국의 상인들이 오고 가는 활발한 상거래의 중심지이자 개방적인 이 도시에서, 백성들은 지금의 정월 대보름에 해당하는 원소절을 맞이하여 등롱제 ( 등을 걸어두는 축제 ) 준비로 바쁘고 한창 들떠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그런 즐거움의 이면에 어둠의 무리들이 웅크리고 있었으니,,,, 늑대의 전사들이라 불리는 돌궐족 정예병들이 장안성을 재앙에 빠뜨리기 위한 계획을 짜서 마치 화선지에 먹이 스며들 듯 장안성 안으로 비밀스럽게 잠입해 들어온다.

이를 사전에 간파한 정안사 ( 적을 무너뜨리고자 긴급 편성된 특수부대 지휘부 ) 의 두 고급관리는 장안성의 축소 모형을 이용하여 이 늑대무리들을 몰아내려는 전략을 짠다. 그리하여 돌궐족 정예병들을 납치하여 그들의 계획을 알아내려하지만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버린다. 이제 채 하루도 지나지않아 돌궐족의 손아귀에 장안성이 함락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안 장원 이필은 다급한 마음에 함께 일하는 정보 담당 관리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에 서빈이라는 관리는 자신의 친구를 등용하기를 추천한다. 그런데 이 친구의 상황이 매우 암담하다. 상관을 살해한 혐의로 처형을 앞두고 있는 사형수인 것. 그러나 장안성 백성들과 황제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 이 상황에서 가릴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장원 이필은 또다른 관리인 하감의 반대를 꺾고 이 사형수 장소경에게 돌궐 늑대 무리들의 처단을 맡긴다.

장소경 그는 누구인가? 왼쪽 눈이 사라진 외눈박이에 동물적 직감을 지닌 신출귀몰한 귀재. 만년현 불량사 9년 시절동안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그는, 어떻게 보면 선과 악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것처럼 보인다. 조정을 원망하면서도 장안성 백성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대의를 위해서라며 자신의 부하를 처단해버리지만 동시에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적진에 뛰어든다.

고집불통, 상식이 통하지 않는 미친 개, 규칙을 지키지 않는, 부정한 기운이 가득한 자............ 장소경을 따라서 돌궐족 늑대전사들을 추적하는 요여능의 눈에 보이는 장소경의 모습이다. 그러나 어쨌든 장안성의 운명은 이 광기어리지만 또한 천재적인 주인공 장소경의 손에 달려있다.

과연 장안성은 돌궐족이 내리려는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전략가 장원 이필과 장소경은 돌궐족의 치밀한 작전을 파악하고 그들의 무시무시한 공격을 방어해낼 수 있을까? 다 잡았다 싶다가도 놓쳐버리지만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돌궐족을 쫓는 장소경의 활약이 기대된다.

사실 이 글은 흥미로운 포인트가 많다. 이국적인 옛 도시 장안성의 모습. 낙타들이 걸어다니고 외인인 소그드족과 한족들이 뒤섞여 상거래를 하는 활기찬 도시이다. 그리고 미친 캐릭터 묘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늑대 전사 무리들. 뛰어난 전략가 장원 이필. 한번 보면 기억하는 천재 관리 서빈 등등.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글은 장소경의, 장소경에 의한, 장소경을 위한 글이다. 마치 지옥에서 방금 올라온 것 같은,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엄청난 살기를 뿜어내는 장소경. 뛰어난 지략과 무술로 적을 제압하는 그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가득하다. 생생한 장면 묘사에 벌써 드라마 몇 편은 본 듯 하다. 스릴 넘치는 소설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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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양이와 살기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가쿠타 미츠요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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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본적으로 동물을 좋아한다. 그래서 햄스터도 키워봤고 강아지도 키워봤다. 그 아이들도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함께 하는 시간이 소중했다.  그런데 고양이를 키울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어쩌다보니 내 삶에 " 토토 " 라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자리 잡게 되었다. 

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고양이는 새침하고 도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우리 토토는 흔히 말하는 " 개냥이 " 였다.  꾹꾹이 열심히 하고 놀기 좋아하고 맨날 따라다니고 등등등.. 헐,, 이런 고양이가 다 있었네?  하며 감탄을 했었다.

그러니 .. 난 이 책을 읽으며 깊은 공감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쿠다 미쓰요님의 " 토토 " 도 꾹꾹이 잘 하고 발라당해서 숙면을 취하며, 낯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개냥이 중의 개냥이 였던 것이다.

 

 

가쿠다님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집사의 세계에 입문한 뒤, 고양이의 세계를 관찰하고, 그의 훌륭함에 감복한 뒤,,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을 본인만의 수려한 문체로 보여준다.

그런 고양이의 모습에 나는 진심으로 놀라고, 또 감동한다. 물론 토토의 개성도 있겠지만, 고양이는 기본적으로 착한 생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개도 새도 착하지만, 각각 착함의 종류가 다른 것 같다. 고양이의 다정함은 속이 깊다. 배려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가기 싫은 병원에 다녀와도 불평과 투덜거림 하나 없는 " 토토 " 대한 이야기다.   이건 추측이라기보다는 사실에 가깝지 않을까?  내가 경험한 나의 " 토토" 도 나를 배려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음이 힘든 날이면 옆에 와서 무릎에 앉아서 가르릉 거리고,,, 꾹꾹이 해주고,,,,, 발라당해서 애교 부리고,,  고양이는 뭔가 사람의 마음을 읽는 듯 하다.

저자는 주로 " 토토 " 와 있었던 여러 에피소드를 묘사하고 설명하며  " 토토 " 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에피소드들 중에는 정말 재미있고 웃기는 부분도 있었지만 같은 집사로써 공감하고 코 끝이 찡해지는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면,, 아무리 비싼 장난감을 사줘도 가지고 놀지 않다가 병뚜껑이나 빨대 자른 것 가지고 노는 에피소드,, 우리 토토는 건전지나 아니면 지우개 자른 것을 가지고 놀곤 했다.  ㅋㅋㅋ 

그러나 저자가 " 걱정병 " 을 토로하는 부분에서는 코 끝이 찡해져 버렸다.  사랑하는 토토를 보면서 걱정이 늘어버렸다고 하는 부분.

나는 앞으로 점점 걱정 병이 도질 것이다. 사랑하는 것이 생긴다는 것은 이렇게도 무서운 것이 늘어나는 것이고, 이렇게도 비이성적인 상상력이 단련되는 것이란 걸, 나는 보들보들하고 조그마한 생물에게 날마다 배우고 있었다.

 

 

저자는 혹시나 토토가 침대나 테이블에서 떨어질까봐,, 혹시 욕조에 빠질까봐,, 무거운 쇠냄비에 깔릴까봐 두려워한다.  사람들은 괜한 걱정이라고 하겠지만, 혼자 놔두고 일을 하러 가야 하는 저자에게는 당연한 일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 이제는 저자는  " 토토 " 없이는 살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


 미쓰요님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 " 토토 ".  공감이 되는 부분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나도 집사 생활을 해 봤기 때문에 처음 꾹꾹이를 당했을 때의 황홀함 ( 비록 미쓰요님은 저주같은 꾹꾹이라고 표현했지만 ㅋㅋ ) 집사의 행동을 따라하는 고양이를 봤을 때의 신기함 ( 수퍼맨 처럼 팔을 뻗고 자는 나를 따라서 자는 토토를 발견했었다 ) 등등 미쓰요님의 경험이 남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사가 된 사람에게는 공감의 즐거움을,, 집사가 될 예정인 사람에게는 미리보기의 즐거움을,, 그리고 고양이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편견을 깰 아름다운 고양이의 세계를 선사해 줄 수 있는 책이다.   착하고 어질고 귀여운.. 가쿠다 미쓰요님의 " 토토 " 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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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 -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 우수상 수상작
이은소 지음 / 새움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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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자의 죽음은 아씨가 바란 것도 선택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지난 일은 아무리 애써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 행복하게 살지 불행하게 살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니 행복을 염원하고 선택하십시오

이 얼마나 유려하면서도 감동적인 말인가? 이것은 혼인 다음날 남편이 죽은 후, 시댁에서 받은 모진 핍박을 견디다 못해 수없이 자살을 시도했던 " 유은우 " 에게 이 글의 주인공인 " 유세풍 " 이 진심을 담아 건넨 말이다.

이 책 [ 조선의 정신과 의사 유세풍 ] 은 각 에피소드 마다 이런 식이다. 마음의 병을 오래 앓다가 탈이 난 병자들이 그를 찾아오면 섬세하고도 진지한 자세로 치료에 온 정성을 다하는 [ 진정한 의원 마인드 ] 의 유세풍.

스토리의 배경은 조선이다. 주인공 유세풍은 원래 내의원 의관 출신이나 자신의 치료로 인해 사람이 죽자 더 이상 침을 잡지 못 하는 신세가 된다. 그 후 아버님의 소개로 소락현이라는 마을로 내려온 그는 " 계지한 " 이라는 마을의원과 함께 병자들을 돌보게 된다.

침을 못 잡는 대신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심의가 된 유세풍. 그에게 찾아오는 이들은 조선 시대라는 특수한 상황이 낳은 피해자들이다. 서자라고 설움받다 오줌싸개가 된 소년, 전란 동안 청에 끌려갔다 돌아오니 화냥년 낙인이 찍히게 된 치매 할망, 과부에 대한 핍박과 멸시로 인해 우울증에 걸린 여인 등등.

유세풍은 자신이 양반이라고 위세 부리지 않고 그들과 같은, 낮은 자리로 내려와 그들과 마주하며, 병에 대해 묻고 경청하며 치료를 위해 전념한다.

그런데 이 책은 이렇게 감동적으로 흘러가다가도 몇 군데 웃음 포인트를 남겨둔다. 예를 들면, 좀... 괴팍스러워 보이는 계의원. 맨날 똥똥 거리고 사람들에게 똥침을 놓겠다고 위협하다 개지랄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또 치매에 걸린 할망이 유세풍에게 맨날 시집오겠다고 하는 장면도.. 보다가 킥킥 거리게 되는 장면이 많다.

저자 이은소님이 " 상상하고 쓰는 병 " 에 걸리셨다고 하던데 혹시 만나서 얘기해보면 웬지 구성지고 걸쭉한 입담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닐까? 궁금해진다.

이 책은 요 근래에 내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책 중 하나였다. 본격 코미디 사극? 으로 만들어도 좋을 만한 내용이다. 책 내용이 워낙 좋으니 별 다섯개 아니 별 여섯 개 있으면 드리고 싶다. 읽다보면 웃다가 울다가 분노하다가... 온갖 희노애락을 다 겪게 되는 책이다. 모두가 읽어봤음 하는 책이니 모두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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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정석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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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의 정석 ]. 이 글의 저자는 출판사의 발행인이자 작가 및 번역가 활동을 하고 있다.  책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제목에서 엿보이듯, 그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4권 [ 노인과 바다 ] , [ 위대한 개츠비 ], [ 어린 왕자 ] 그리고 [ 이방인 ] 의 고전에 나온 번역의 오류와 더불어 한국의 출판계와 번역계의 전반적인 문제점인 의역과 윤문을 꼬집는다.

2014년 저자는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  바로 불문학과 교수이자 까뮈 연구 권위자인 김화영님의 [ 이방인 ] 번역의 오류에 대해 지적하면서 [ 이방인 ] 의 재해석을 시도하였기 때문이다. 세간에서는 " 출판사를 홍보하기 위한 노이즈 마케팅 " 이 아니냐는 심한 말까지 쓰면서 그를 비난하고 질타했지만 저자의 항변은 다음과 같았다.

" 왜 문제의 핵심 --- 번역의 오류로 인한 작품 내용 전달 훼손 --- 을 보려하지 않고 권위에 도전한다는 이유로 나의 태도를 문제 삼는가 ? "

사실 나는 김화영 교수님의 [ 이방인 ] 과 저자의 [ 이방인 ] 을 비교하여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의 주장의 진위를 살피는게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책 전반에서 펼치는, 번역에 대한 그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의 주장은 한결같고 간단하다.  번역가는 반드시 원문을 직역해야 한다는 것.  단어, 단어와 단어를 연결하는 토씨, 인용부호, 문체, 어투, 문장 ... 더 나아가서는 작가의 숨소리까지.... 그대로 옮겨야 한다는 것.  단어의 오역이 문장의 오역을 낳고 문장의 오역이 글 전체의 의미 전달을 훼손시킨다는 것...
저자는 번역가의 의역과 윤문에 대한 강한 비판을 서슴치 않는다.

다음 인용문을 보자.

 

 

56쪽

위대한 작가의 문장을 해체해서 역자 임의로 의역하는 행위는 심하게 말하면 유치원 선생이 천재화가 어린이의 그림을 자기 수준으로 고쳐주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번역가는 창조하는 사람이 아니라 원문에 숨어있는 작가의 의도를 살펴서 그것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는 것.  결국 올바르게 의미 전달이 되지 않는 고전을 읽을 바에 아예 읽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신념인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신념대로 [ 이방인 ] 을 다시 번역했고 그 결과 여러 핵심 부분들이 180 다르게 재해석되었으며, 그는 [ 이방인 ]을 발간함과 동시에 역자노트를 함께 추가하여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배려하였다.

사실 이 책을 읽는 동안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저자와 저자의 주장에 대한 세간의 갑론을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번역계에서 직역 VS 의역 논란은 수년, 아니 수십년 지속되어 온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고작 " 뜨거운 태양빛 "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 뫼르소에 대한 나의 오해는 이 책을 통해 풀린 듯 하다.  그리고 왜 [ 이방인 ] 이 부조리 문학으로 불리게 되었는지도.  물론 어렸을 때 읽어서 내 이해력이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저자의 말씀처럼, 작가의 의도를 충실히 반영한, 잘된 번역물은 독자가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고전을 읽고 싶고 나 스스로 고전을 번역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번역에 관심이 많고 이미 번역에 입문한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고전을 새롭게 읽고 싶은 독자에게도 추천한다.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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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기담
전건우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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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 이 시대의 진정한 이야기꾼 " 으로 불린다는 전건우님이 허물어져가는 고시원에서 발생한 기이한 이야기들을 묶어서 낸 일종의 소설집이다.  하지만 고시원에 기거하는 5명과 "나"라는 인물의 이야기는 서로 얽히고 설키며 일종의 연속성을 이루므로 엄연히 말해 이 소설은 장편 소설인 것.

본격적으로 들어가자면, 화재로 인해 많은 사상자를 낸 흉흉한 터에 고시원이 지어지고, 이 고시원을 둘러싼 많은 괴담이 오고가는데 그것은 바로 여기서 유령이 출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철거를 앞두고 있는 이 고시원에는 유령보다도 더 유령같은,, 존재감 제로인 밑바닥 인생들이 기거 중이다.

"홍", "편", "깜", "최" , "정" 뭐 이런 식으로 존재감없이 성으로만 불리는 그들.  그런데 이들의 사연이 기가 막힌다.  어떤 식으로?   일단 기담이니까 신비롭고 이상야릇한데 전체적으로 보면 배꼽잡는다!!!

303호 "홍"은 판자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던 "권"이라는 자가 사라지자 그를 찾는 탐정놀이 시작.

 316호 "깜"은 외국인 노동자인데 공장에서 사고를 당한 후 갑자기 초능력이 생김.
 313호 "편"은 아버지의 도장을 물려받으라는 명령을 물리치고 서울로 올라와 99번 면접에서 떨어진후.  면접신공을 가르친다는 귀인을 만남.
311호의 "최" 아저씨는 매일 죽는다... ( 책 읽어보시길 권유 )
그리고 317호의 "정"은 소녀킬러이다.  ( 책 읽어보시길 권유 )

근데 나는 특히 " 편 " 의 이야기가 너무 너무 재미있었다.  아마도 무협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에 홀딱 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표현하기가 참 힘들긴 한데 웬지 성룡 영화 취권을 보는 듯 하다면 비슷할까? ㅋㅋㅋㅋ   다음은 "편" 이 99번의 면접에서 떨어진 후 우연히 면접신공을 가르쳐 줄 귀인을 만나서 대화를 나눈 대목이다.

166쪽

"회사는 필요한 사람을 뽑는게 아니야.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고 착각할 만한 사람을 뽑는 거지."

 191쪽

"취업 무림에서 가장 강한 기술이 뭔지 아는가?
 그건 바로...
 지인소개 ( 知人紹介 ) 와 낙하신공 ( 落下神功 )

정신없이 빠져들어 책을 읽고 나서 작가님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 뭔지 궁금해서 그의 인터뷰를 찾아봤다.  잠깐 인용해 본다.

" 바로 이 사회의 소외계층, 이른바 ‘루저’로 불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는 건데요. 장르 소설이야 말로 한 사회의 밑바닥을 낱낱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라고 생각해요. 질척질척한 밑바닥 풍경을 다양하게 풀어낼 수 있는 게 바로 장르 소설이거든요. 그리고 또 세상의 중심에서 빗겨난 사람들에게 이야기로나마 희망을 부여하는 게 작가의 의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거창하게 창작관이라고 말하면 좀 쑥스럽기도 한데 아무튼 그래요. 루저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재미있게 풀어내는 것.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꼼지락대며 움직이는 모습을, 사랑하고 또 죽어가는 모습을, 희망이라는 양념을 조금 추가해서 보여주는 것이 저 나름의 창작관이에요. "

아스팔트에도 풀이 자라고 꽃이 피어나듯,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삶을 살아간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계속 희망을 저울질 하면서.  그러나 현실에도 그렇듯, 그러한 평범한 삶을 위협하는 "괴물"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3층 사람들은 정신없이 기이한 현상을 겪는 와중에도 조금씩 그들에게 다가오는 차가운 "괴물"의 존재를 느끼면서 동시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과연 그들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들을 도와줄 존재는 없을까?

솔직히 나는 별 5개를 드리고 싶다.  이런 장르를 워낙 좋아하기도 하지만 읽으면서 너무 즐거웠다.  추리와 SF와 무협 그리고 범죄물이 뒤섞인 ... 마치 짬짜면 + 탕수육 같은 소설..  너무 재미있으니 꼭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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