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타 가연 컬처클래식 6
황라현 지음, 김기덕 / 가연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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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덕 감독이 화제다. 영화 ‘피에타’로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쾌거 못지않게, 수상식 때 입은 옷과 신었던 신발까지 관심을 받는다. 대충 틀어 올린 은빛 머리칼과 소박한 듯 허름한 갈색톤 개량한복은 무척 잘 어울렸다. 사진 기자들이 찍어 올린 낡고 구겨진 신발에 이르러서는 정말이지 ‘김기덕답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제 참석용으로 급히 산 그 한복은 이백만 원이 훨씬 넘는데다, 구겨 신은 운동화 역시 스페인 산 유명브랜드로 삼십 만원이 넘는단다. 일견 남루해 뵈는 그의 패션 감각을 동정했던 사람들은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전 패션이야말로 김기덕을 더욱 김기덕답게 표현했다고 나는 믿는다.

 

 

  영화제는 다가오고 옷은 적당히 입어야겠고, 아무데나 들른 곳이 고가의 옷집이었을 뿐이라고 감독은 인터뷰에서도 말한 바 있다. 신발까지 갖춰 신는 게 귀찮아, 이미 내 몸이 된 것 같은 운동화를 그대로 신고 갔을 지도 모른다. 마침 자전적 영화 ‘아리랑’ 포스터에도 갈라진 뒤꿈치와 함께 나온 신발이니 이슈가 될 수도 있겠거니 생각은 했을 것이다.

 

 

  ‘예술가란 언제나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고 자기 귀에 들려오는 것을 마음 한 구석에 솔직하게 적어놓는 열성적인 노동자다’라고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했다. 이 말을 김기덕 감독에게도 빗대볼 수 있다. 그는 누구보다 일관되게 자신에게 귀 기울였으며, 그 마음 한 쪽을 솔직하게 스크린에다 담은 열성적 노동자였다. 그런 사람에게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예술은 누가 뭐래도 사기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사기를 쳐서라도 희망 또는 진실에 이르고 싶은 것이다. 그 노정에 편하게 구겨진 신발 한 켤레쯤 있어야 되는 건 당연하다. 감독도 그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예술가에게도 각자의 영역이 있다. 깨끗하고 반듯한 구두를 신고 시상대에 오를 사람은 많다. 김기덕은 뒤축 접힌 낡은 운동화를 신을 때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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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3 09: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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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3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13 2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막다른 골목의 추억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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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인과 무슨 얘기 끝에 닭개장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고 보니 그 얼큰하고 시원한 국을 먹어 본 지  삼십 년도 넘은 것 같다. 그 시절을 추억하려 ‘닭개장’이라고 자판을 치려는데 자꾸 빨간 줄이 쳐진다. 표기법이 잘못 되었나? 내친 김에 옳은 표기법을 찾아 인터넷 검색을 해본다.

 

 

  분명 ‘닭계장’이 아니라 ‘닭개장’이라고 국립국어원에서 명쾌하게 정리해준다. 육개장, 닭개장에서 ‘개장’은 개장국에서 온 말이다. 개고기와 각종 야채를 넣어 얼큰하게 끓인 국이 개장국인데, 개고기 대신 쇠고기를 넣으면 육개장, 닭고기를 넣으면 닭개장이 되는 것이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는 개장국이 흔했다. 여름한철 집집마다 키운 누렁이는 그 국의 원재료가 되어 사라졌다. 개장국을 못 먹는 어린 영혼을 대신해 엄마는 닭 모가지를 비틀고 털을 뽑아 닭개장을 끓여주었다. 그 시절 흔히 있던 일이었다. 연한 닭살에 우거지와 고사리가 어우러져 매콤하고 걸쭉한 맛을 내는 그 국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키우던 생명체를 죽여 음식으로 만든 행위는 같았건만, 어린 혀는 개장국은 거부해도 닭개장은 허락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지금도 나는 소위 보신탕은 입에도 못 댄다.

 

 

  어린 나이에 도시로 나온 뒤로는 그 국을 먹은 기억이 거의 없다. 내게 닭개장은 그렇게 시골생활과 어울리는 음식으로만 남아 있었다. 추억의 그 맛을 느끼고 싶어 내친 김에 지인들이랑 유명하다는 닭개장 집을 찾았다. 애석하게도 메뉴엔 닭개장이 사라지고 없었다. 잔품이 많이 들고 수익이 나지 않아 다른 메뉴로 바꿨단다.

 

 

  하지만 그것을 대신한 ‘온밥’ 앞에서 닭개장의 여운을 느끼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내가 그리워한 것은 닭개장 맛 자체가 아니었다. 실은 푹 곤 우거지와 고깃살이 어우러져 맞춤한 국물 맛을 내던 그 때의 추억을 먹고 싶었던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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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 나의 고전 읽기 9
김슬옹 지음, 신준식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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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관련 재판 과정이 점입가경이다. 그 책의 절도 혐의 항소심에서 피고인이 무죄를 선고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자신의 억울함만 풀면 피고는 책을 문화재청에 기증하겠단다. 앞선 민사 재판에서 책의 소유권을 인정받은 원고 역시 책만 돌려받으면 기증하겠다고 서약서를 쓴 바 있다. 책은 피고가 꼭꼭 숨겨 두고 내놓지 않고 있다. 실물 없는 상황에서 나온 양측의 주장과 재판부의 판결이라 갈 길이 멀게만 보인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문제가 된 상주본 말고도 한 부가 더 존재한다. 일제 강점기 때 안동에서 발견된 것인데, 전형필 선생의 노력으로 현재 간송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국보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 되어 있을 만큼 소중한 우리 문화재이다. 개인적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간송 전형필 선생의 일대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문화재를 지켜온 선생에게 귀하지 않은 유물이 있었을까만 6·25전쟁 피난 때도 이 한 권만을 오동상자에 넣어 갈 만큼 아꼈다. 전문가들 역시 해례본은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국보 중의 국보로 여기고 있다.

 

 

  크게 보아 훈민정음은 해례본과 언해본이 있다. 1446년 간행된 해례본은 쉽게 말해 한자로 된 풀이서인데, 훈민정음의 창제 동기와 의미, 사용법 등이 소개되어 한글의 과학적 우수성을 증명하는 소중한 자료가 되어준다. 우리가 학교 때 열심히 외웠던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의 훈민정음 서문은 월인석보에 수록된 한글 해설서인데 세조 때 간행된 언해본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소유주가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돈으로 가늠할 수 없는 그 책이 하루 빨리 공개되고, 더 이상 훼손됨이 없이 문화유산으로서 제 가치를 다하기를 바랄 뿐이다. 상고심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피고의 마음을 알 수 없으니 시민으로서 초조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김슬옹 교수님의 이 책을 많은 분들이 사봤으면 좋겠다.

  김슬옹님은 한글을 널리 퍼뜨리는데 온갖 열정을 다하시는 학자이다.

  1980년대부터 치열한 행보를 하던 학자의 성과가 날로 눈부시다.

  존경스럽고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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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다리 포목점 - 오기가미 나오코 소설집
오기가미 나오코 지음, 민경욱 옮김 / 푸른숲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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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판 달린 재봉틀 하나 마루에 놓여 있다. 이른 햇살이 창 넓은 동쪽 집 마루 깊숙이 내려앉는다. 햇발 곧게 받은 재봉틀의 돌림바퀴가 투명하게 빛난다. 몸체를 받치는 테이블 위에는 자투리 꽃무늬 천이 무질서하게 널려 있다. 순서에 맞게 더듬더듬 실을 꿴 엄마는 돌림바퀴를 돌리는 것과 동시에 장방형의 페달을 밟는다. 앞뒤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발판 위의 엄마 발.

 

 

  시공간을 넘어 잠시 아련한 기억의 창가로 떠나게 하는 건 순전히『히다리 포목점』때문이다. 히다리 포목점은 엄마의 재봉틀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다다다다, 소리를 내는 재봉틀 발판 곁을 주인공 마리오는 안식처로 생각했다. 그 위에 쪼그리고 앉아 배를 타는 느낌으로 혼자만의 황홀한 시간 여행을 한다. 순한 모리오와는 달리 그 시절 나는 격자무늬 엄마의 재봉틀 페달이 창살 같다고 생각했다. 숭고한 노동의 다른 이름인 쉼 없이 돌아가는 그 소리에 동조 없는 연민으로 일관했다. 엄마의 삶이, 한 가계의 일상이 좀 더 환한 꽃무늬로 피어나기를 바랐다.

 

 

  상처 많은 청년 모리오는 엄마가 죽은 뒤 가보 같은 재봉틀을 자신의 아파트로 옮겨온다. 그리곤 엄마처럼 바느질을 한다. 스커트 만들 꽃무늬 천을 찾아 몇 시간이나 헤맨 끝에 검은고양이 ‘사부로’씨의 안내로 히다리 포목점에 이른다. 모리오가 아닌 나는 그런 시간이 오면 엄마의 재봉틀을 소중히 간직하게 될까? 재봉틀의 기본조차 모르는 나는 바느질은커녕 모리오처럼 꽃무늬 천을 찾아 오래된 섬유 거리를 헤매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꽃무늬 천으로 만든 엄마의 다양한 베갯잇을 보면서 재봉틀 페달을 돌리던 엄마 발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모리오가 제 엄마의 꽃무니 스커트를 재현할 때, 나는 가만 엄마의 베갯잇에 얼굴을 묻고 히다리 포목점 그 치유의 골목을 꿈속에서나 기웃거려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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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식당 77 - 자기야, 이 집 가서 밥 먹어!
김미경.조은주.홍미용 지음 / 은행나무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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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사 돌아가는 것 못지않게 사람들은 먹는 것에도 관심이 많다. 오죽하면 ‘먹거리 X파일’ 같은 방송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을까. 식자재를 살피고, 식당의 위생 상태를 점검하며, 때로는 조리 과정의 충격적인 실상을 고발하기도 하는 그 프로그램을 통해 먹거리야말로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 프로그램 중 ‘착한 식당’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다. 주변 제보를 바탕으로 철저한 검증을 거쳐 타당성이 있을 경우 해당 식당을 착한 식당으로 선정하는 것이다. 암행 취재에 재검증 과정 등, 보기에 따라 불편할 수도 있지만 나름 유익한 프로그램이다.

 

 

  가끔씩 친구들과 가는 짜장면집이 있다. 여름내 덥다는 핑계로 미루기만 했다가 오늘 드디어 그곳에 들렀다. 그 집에서 차려지는 건 짜장면과 단무지만이 아니다. 티끌 하나 없는 정갈한 분위기, 무뚝뚝한 주인장을 대신하는 잔잔한 음악, 안으로 다져 둔 주인의 정성까지 만나게 된다.

 

 

  손수 채취해서 덖은 수국차가 전식으로 나오고, 짜장면이 끝나갈 즈음이면 자연산 감자튀김과 즉석에서 갈아낸 커피가 후식으로 나온다. 짜장면 한 그릇 시켰을 뿐인데 황후의 밥상이 따로 없다. 혀에 착착 감기는 맛집이 아니니 바쁘지 않아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주인의 마음 씀이 천성으로 고운 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텃밭에서 가꾼 호박잎과 고추까지 덤으로 싸주는 주인장을 뒤로 하며 착한 식당에 대해 생각한다. 그 짜장면집이야말로 내가 선정한 내 맘대로 착한 식당이다. 식재료와 조리과정에 거짓이 없고, 서비스와 위생 상태가 좋은데다 적정한 가격을 유지한다면 객관적으로 착한 식당의 합격점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조건은 중요하지 않다.

 

 

  착한 식당의 제 일 조건은 음식에 있는 게 아니라 인간에게 있다. 주인이 담백하면 그 음식에 거짓이 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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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2-09-06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짜장면집 어디예요? ㅎㅎ

2012-09-06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12-09-06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장님께 착한 식당 추천해드릴까요, 했더니 조미료를 아예 안 넣을 수는 없기 때문에 착한 식당 아니라며 무덤덤하게 거절하네요. 하지만 다른 중국집에서 먹는 달달하고 느끼한 짜장면에 질린 분께는 강추. 깔끔하고, 소박하고, 특별한 서비스 받고 싶은 분들께 연락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