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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 류시화의 하이쿠 읽기
류시화 지음 / 연금술사 / 2014년 6월
평점 :
예전에 류시화씨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이라는 책을 읽고는 그 이후에 참으로 오랜만에 읽어보는 그의 책이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그가 쓴 책이나 번역서들은 알게 모르게 읽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기억속으로는 그렇다. 일본의 하이쿠는 우리나라의 시조만큼이나 매력적인 시 장르이다. 450년전에 시작된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라는 하이쿠는 5.7.5의 열입곱 자로 된 한 줄짜리 정형시인 만큼 그 짧은 문장안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지 내 감성에 호통치고 일갈하고 있는지 궁금해지고 또 읽어보고픈 장르이다.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누리는 하이쿠는 자국의 언어로도 지어지고 있는데 그만큼 하이쿠라는 단어가 주는 생명력은 놀랍다. 가끔 일본드라마에서 일본의 사극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꽤 재미가 있는데 바로 무장의 시대를 그린 역사물들이 많다는 것이다. '타이라노 키요모리'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헤이안 시대며 법왕이며 마지막에 타이라노 키요모리 일가의 마지막의 안타까운 죽음등을 보며 검색을 했을때 '사이교'라는 인물이 하이쿠의 젼형인 <와카>를 잘 지었다는 글을 읽었었는데 역시 이 두꺼운 류시화님의 책에도 사이교도 등장한다. 사이교가 있음으로 후에 하이쿠에서 빠질 수 없는 시인인 '바쇼' 등이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사이교는 벚꽃을 노래한 시인으로도 유명하고 출가한 스님이기도 하다. 일본의 와카집으로 빼놓을 수 없는 <고금와카집>은 백제인이라는 설이 있는 헤이안 시대의 대표 가인인 가노 쓰라유키 등이 편찬했고 국보로 지정되었다. 고금와카집이 편찬된 헤이안 시대에 역시 유명한 시인인 여류 시인 '이즈미 시키부'의 와카들도 지금까지 널리 애송되고 있다고 한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결혼을 한 몸임에도 다메타카 친왕과 사랑에 빠졌고 다메타카 왕이 스물여섯살로 병사를 하자 다메타카의 동생인 아쓰미치 친왕의 구애를 또 받아들였으나 4년뒤 왕은 또 죽었다고 한다. 이 때의 일들을 노래한 <이즈미 시키부의 일기>에 150편의 와카가 실리고 후세에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그 어느 쪽을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할 거나
나를 잊은 사람과 잊혀져 버린 나와
곧 죽어 사라지겠지 이 세상 떠나서도 생각나도록
단 한번만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그리움으로 번뇌하고 있으면 연못가를 나는 반딧불이도
내 몸에서 빠져나온 영혼처럼 보여라
각각 다른 세 편의 와카를 읽자니, 행실에 있어서는 비난을 받았을 지언정 기구한 운명의 사랑을 했던 그녀의 시들은 지금 읽어도 가슴을 절절하게 만든다.
이 시집에 실린 작품들은 어느 하나 정말 버릴 것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정말 촌철살인의 경구들로 가득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성이었다. 다소 책값이 비싸긴 하지만 평생을 소장할만한 와카와 하이쿠의 향연에 어쩔 줄을 모르겠다. 류시화 시인이 해석하고 하이쿠라는 장르의 역사와 주된 인물들을 소개한 뒷장들도 무척 흥미롭다. 바쇼, 잇사, 시키 등의 시인들의 시는 너무 좋고 유명한 시인들이라 자주 등장해준다. 유독 벚꽃을 노래하고 각종 꽃을 노래하고 자연을 노래한 하이쿠들이 많다. 현대인들에게 자연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오랜만에 깨닫게 해준다. 벚꽃, 살구꽃, 매화, 나팔꽃 등 각종 꽃을 노래하고 반딧불이, 개구리, 나비, 눈, 이슬 등 스마트폰의 노예인 우리들에게 잊고 살았던 무언가를 일깨워 준달까. 무인이었다가 칼을 버리고 시인이 된 사람도 있고 뭐랄까 검과 시라는 것이 한꺼번에 느껴지는 애잔함과 절실함이 느껴진다. 이 밤에 하이쿠를 읽다 보면 잠이 안 올 것 같다. 밤을 새서 오랜만에 느껴보는 나와의 오롯한 시간을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