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 - 필멸의 인간 영웅 아킬레우스에서 아고라의 지성 소크라테스까지
그레고리 나지 지음, 우진하 옮김 / 시그마북스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 하버드대 그레고리 나지 교수의 1970년대 부터의 24개 명강의를 실은 이 어마어마한 책은 두께에 일단 놀라게 한다. 혹시 지루하면 어떡하나 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어려서부터 읽어서 좋아하고 흥미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일단 합격점을 받을 것이다. 나 역시 호머의 일리아스 오딧세이는 제대로 읽은 적은 없지만 풍문으로 읽거나 오딧세이아의 모험류같은 책을 통해서 읽었고 토마스 불핀치판의 그리스 로마신화를 읽은 세대로서 읽기전부터 흥분되었던 책이다.
현대의 우리가 흔히 아는 영웅들은 길거리에서 자신을 돌보지 않고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남을 돕는 사람에게도 흔히 붙이는 호칭이 되었다. 물론 그 정도로 감사하기에 붙이는 명칭이지만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의 영웅개념은 현대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고 한다. 일단 남녀를 구분하지 않으며 신들의 후예이며 초인적인 힘을 가진 인간을 말하지만, 불멸의 존재는 아니었던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은 인간이어서 필멸하는 존재임에도 신처럼 숭배를 받았던 인간이었다. 초인적인 힘을 가졌던 존재 즉 아킬레우스나 헤라클레스같은 사람들이 그들이 말하는 영웅이었고 이 책에서는 '클레오스'라는 개념이 자주 등장한다. '영광'을 나타내는 말로서 우리는 신의 영광을 향해 숭배하고 또 숭배한다. 클레오스를 가진 인간이 바로 영웅인 것이다. 인간이지만 불멸의 영광을 가지려 하고 가졌던 자. 헤라클레스라는 이름도 '헤라의 영광을 가진 자'라는 뜻인 것이다. 헤라+클레오스.
영어를 사용하는 교수인 저자는 영어의 기원이 되는 수많은 고대 그리스적인 단어를 소개하고 있다. 바로 그 부분이 이 책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부분들인데 아 바로 이 단어의 어원은 이렇게 되었겠구나 하는 부분에서 지적인 충만감을 느끼게 해주어 정말 행복한 독서를 하게 했다. 가령 이 책의 주제인 hero는 호라, 헤라라는 단어와도 일맥상통한다. 호라는 또 hour 시간인 아워의 어원이 되는 말이고 호라의 여신이 바로 헤라이다. 영웅의 죽음은 모든 일이 한꺼번에 벌어지는 장대한 서사시의 끝맺임인 것처럼 시간이라는 단어는 그만큼 유한했던 영웅의 일대기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수많은 텍스트들은 저자인 그레고지 나지의 새로운 번역으로 빛을 발한다. 기존의 번역과 비교해 주기도 하고 읽기만 해도 너무나 아름다운 서사시의 매력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일리어스의 한 대목인 아킬레우스에 대한 서사시만 하나 소개해 보겠다. "나의 어머니 은빛 발걸음의 여신 테티스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두 가지 다른 정해진 운명의 길이라는 짐을 지고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소. 만일 이곳에 계속해서 머물며 트로이아의 성벽 아래에서 싸움을 계속한다면 나는 무사히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불멸의 영광을 얻게 될 것이오. 반면에 내가 만일 조상들의 땅, 그 소중한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나의 영광은 사라지겠지만 대신 오랫동안 평온하게 살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내가 맞이하게 될 죽음의 순간도 그렇게 빨리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오. (일리아스 6:410~416 파피루스나 양피지에 적힌 서사시임을 제대로 표기한 방법이 보인다.)"
이 장대한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역자에게도 왠지 감사함을 표하고 싶을 정도이다. 이 책에 언급되는 수많은 텍스트들은 그 자체를 읽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영광이 되며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은 아름다움을 접할때 그리고 안타까움을 접할때의 감정이 생긴다.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으려는 순교자적이며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는 영웅들은 편하게만 살려는 현대인들에게 약간이라도 경종을 울릴 것이다. 더 나은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는 누군가가 없었다면 이 지구라는 별은 이렇게까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앞으로는 환경보호라는 문제가 우리 인류를 괴롭힐 것이다. 이에 대해서 또 누군가의 값진 희생이 없이는 무지한 인간들에게 경각심을 주기는 힘들 것이다. 현대인에게도 고대인들 같은 영웅은 꼭 필요한 존재같다. 그 총대를 매기는 누구나 싫겠지만. 우리는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의 장대한 이야기들을 보면서 배울점이 분명히 있다. 저자는 이 영웅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현대문학에도 접목시킨다. 가령 필릭 K 딕의 소설들이 영화화 되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 '토탈 리콜'은 필립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의 한 대목도 등장한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진정한 '애도'에 대한 생각도 해보았다. 우리는 그 어떠한 죽음도 하루 이틀만 지나면 금방 잊어버리고 시들해진다. 그리스에서는 아코스와 펜토스 즉 두 단어 모두 비탄, 슬픔, 애도나 비통에 대한 단어로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 부분을 얼마나 절실히 느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구약성서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말인 '슬픔을 겪고 비통함을 아는 자'라는 대목이나 아킬레우스와 그의 종족인 아카이오이인들이 겪었을 슬픔과 비통함을 이 책에서는 절절히 보여준다. 이러한 아코스와 펜토스는 그 정도가 심해져 즉시 콜로스 즉 분노로 뒤바뀌며 그것이 영웅들의 행동을 촉구하게 된 것 같다. 나 역시 현대인으로서 덤덤한 감정들은 요즘 드라마 '킬미 힐미'를 보면서 이러한 애통함 슬픔 비통함 그리고 여러 인격들을 통해서 뿜어져 나오는 분노의 감정을 통해서 약간의 생소한 감정들을 느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데 역시 고대 그리스인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중세나 고대를 소개하는 책들 중에서 어떤 책들은 읽어도 읽어도 솔직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이 책은 번역이 잘 되어 있고 저자의 강의가 빛을 발하는 책으로서 난해하지만은 않다. 후반부의 헤로도토스의 텍스트들을 소개하는 여러가지 강의를 통해 고대 그리스의 역사를 엿볼 수도 있고 역시나 영어로 파생되는 수많은 단어들을 알게 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순수한 학문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가격이 많이 비싸지만 이 책은 정말 소장할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