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45분, 나의 그림 산책 - 혼자 있는 시간의 그림 읽기
이동섭 지음 / 홍익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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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자니 심심하고 친구를 불러내자니 부담스러운 날이 있다. 파리 유학 시절의 저자는 그런날엔 미술관 박물관을 찾아갔다고 한다. 나 역시 비슷한 성격이고 유니버설 스튜디오 보다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좋아하니 더욱 공감이 갔다. 물리적으로 그럴 수 없는 환경이지만 당시 파리에서 유학중이었던 저자에게는 얼마나 좋은 기회가 많았으랴. 그렇게 좋은 그림을 보내며 보낸 시간들은 오히려 타인에 대한 오해에서 벗어나고 타인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의 성찰이 꾸준히 이어져서 이 책처럼 좋은 책으로 탄생했다. 저자만의 따뜻한 시선에서 보여지는 짧은 글들과 저자가 소개하고픈 그림들이 어우러져서 말이다.


실수는 성장통인 이야기, 가끔은 스스로에게 상처를 이란 글에서는 유럽의 역사를 그린 영화에서 왕이 신하에게 볼에 상처를 내면서 그 순간을 기억하라는.. 자신에게도 꼭 기억하게끔 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 겠다고 하는.. 그럴때에 저자는 손가락 끝을 꼬집어 그 순간을 기억하려고 한단다. 공감이 갔다. 또 저자는 외국에서는 퇴근 후에 가볍게 한잔을 하고 집으로 귀가하는 문화가 있는데 이때에 묵은 감정을 벗어내고 집으로 향하면 좋을 것 같단다. 그것도 공간이 간다. 우리들의 가장들은 과해서 그렇지 가끔은 이런 날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꼭 한잔으로 끝나는 자리로.


저자의 사랑은 말보다 행동이다는 글, 정말 그렇다. 말을 줄이고 행동으로 이어지자. 나의 영양제는 혼자 있는 시간이라는 대목은 정말 대공감이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이다. 이 시간이 없어서 애가 닳는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 칼 라르손의 엽서를 쓰는 모델, 부그로의 말타기, 화가들의 자화상들, 힐다 피어론의 에프터눈 티, 에드가 드가의 압생트 한 잔 등 짧은 글과 어우러지는 그림이 제목과 함께 오른쪽 페이지에 자주 나와주어서 이 책을 읽는 맛이 난다. 지금 시간은 새벽 12시 47분인데 새벽 1시 45분이 가지는 의미가 다가온다. 저자의 선별된 그림과 글줄로 새벽의 그림 산책을 나서는 것이 즐거웠다. 바쁜 일상 속에서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하루를 돌아보고 여유를 가지는 시간을 가져본다는 것은 꼭 필요한 의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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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의 역사 - 인류 역사의 발자취를 찾다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성춘택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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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트로이의 목마의 존재를 찾고자 고고학의 거장이 된 슐리만의 이야기에 매료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막연히 고고학은 인디아나 존스같은 모험과 낭만의 학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고고학을 배우고 실행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한다. 그러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고고학의 낭만과 모험을 되찾았다. 발견하기까지의 노력과 고초는 말할 수 없겠지만 일단 책으로서의 매력은 말이다. 저자는 고고학이 학문으로 태어나기 시작한 18세기부터 시작해서 오늘날의 고고학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재구성하고 있다. 여기에는 폼페이, 나일강 삼각주의 로제타석의 발견, 그 고대문자를 해석하기 시작한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의 희열의 순간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나폴레옹의 학자들과 지오반니 벨조니는 모두 로제타석에 새겨진 문자를 해석하는데 실패하고 말았지만 전문가들이 글리프 곧 상형문자라는 것이 그림상징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1790년대에 외르겐 조에가라는 덴마크 학자가 그 글자들은 사물이 아니라 소리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아냈고 언어 천재였던 샹폴리옹이 프랑스 명문문학회에 1822년에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샹폴리옹과 윌킨슨같은 사람들이 고고학에 참여해야 진정한 고고학이 완성됨을 시사할 수 있었다. 즉 고고학과 명문 및 문헌기록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간중간에 고대시대를 찾아가는 내용들도 너무 흥미롭다. 1860년대와 1870년대에 프랑스 남서부의 동굴과 바위그늘에서 네안데르탈 해골이 많이 나왔고 열대 아프리카에서 인류의 조상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외젠 뒤부아라는 네덜란드의 의사는 동남아시아에도 많은 유인원의 서식지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자바 섬으로 떠났고 이곳에서 바로 에렉투스라고 곧게 선 인간이라는 뜻의 자바원인을 발견하였다. 바로 호모 에렉투스의 발견으로 유인원과 인간 사이의 고리를 찾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후에 이런 두개골을 위조하는 일까지 벌어졌고 에렉투스와 네안데르탈인 사이의 붕뜬 시간을 매워줄 다양한 발견들이 오늘날에도 일어나고 있어 아마 점점 더 세상에 드러날 것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유명한 슐리만의 이야기를 지나 이제 고고학은 체계적인 발굴이 시작되었다. 칼 리하르트 렙시우스라는 베를린 대학의 이집트학 교수는 이집트 파라오들의 계보를 정리하고 있었고 새로운 세대의 고고학자들을 길러내는데 생애 후반을 바쳤다. 발굴뿐 아니라 복원과 보존에도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이들 중 한명인 알렉산더 콘체도 있었고 이 사람은 루브르 박물관에 전해져 유명해진 '날개 달린 니케상'을 에게 해 북부의 사모트라케에서 발견하였다. 이어 빅토리아 시대에는 아주 유명한 거부였던 피트리버스라는 가명을 쓴 레인 폭스라는 장군과 페트리라는 인물이 유명하다. 이 책에서는 여성 고고학자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게 펼져지며 1960년까지 올라와 현대의 고고학에 대한 것들도 파헤친다. 이제 현대 발굴학은 과학의 발달로 더 깊이있는 연구가 가능해졌다. 스톤헨지의 리모트 센싱 프로젝트나 LIDAR같은 레이저를 이용한 탐사 기술 등 앞으로의 고고학은 우리 인류의 비밀을 더 완벽하게 밝혀 줄 것으로 기대가 된다. 고고학의 역사를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추천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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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인류의 영원한 고전 - 고고학으로 파헤친 성서의 역사
아네테 그로스본가르트.요하네스 잘츠베델 엮음, 이승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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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신앙으로 태어나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되었지만 날라리 신자로 교회도 드문드문 나가고 있지만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으며 구원의 확신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그 생각은 확고하다. 그렇기에 성서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나 비판은 받아들이기 어려우나 역사서로서의 흥미 역시 가지고 있다. 하나님 말씀의 기록이면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서이기도 한 것이다. 유럽 최고의 권위지인 슈피겔지의 기획으로 '고고학으로 파헤친 성서의 역사'인 이 책은 매우 흥미롭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이 책은 신학자와 문헌 연구가와 고고학자들이 모여서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본 성서의 모든 것인데 유대교 역사의 경전이 그리스도교 신앙서로 자리잡고 오늘날 전세계 크리스찬들의 경전이 되었는지 3000년 성서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볼 수 있다.


아시아면 몰라도 서양세계에서의 관용어들은 거의 성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 이 책에 소개된 '소금 기둥', 독일어로 '그렛과 블렛(성서에서는 다윗왕의 호위를 맡은 용병 이방 민족을 뜻하나 독일어로 평범한 다수의 사람을 낮추어 부르는 관용어로 쓰임)' 그리고 '눈엣가시', '표징과 기적', '날씨 변하듯이 변덕스러운', '양심의 가책', '강물을 거슬러 헤엄치다', '돼지에게 진주를 주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쓰는 '달란트' 와 같은 일상적인 용어들까지 모두 성서에서 나온 표현들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 성서가 그들 사회와 문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을지 짐작이 간다. 뿐만 아니라 성서의 영향은 더 깊은 곳까지 미쳤다고 한다.


성서는 그러나 인류의 역사속에서 천년이 넘게 이동하면서 원전에서 많이 달라진 해석도 있을 수 있고 원래 표현들이 식별 할 수 없는 상태로 변질 되었을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하며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했던 말을 인용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불완전합니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우리가 아는 것들을 통째로 다르게 보여주기도 하고 우리가 아는 사실들이 부인되기도 한다. 가령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성서 안에서도 통일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거나 예수님이 세례를 베풀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십자가를 그냥 '나무'라고 표현된 것등 말이다. 그런식이면 끝이 없다. 우리는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고고학적으로는 쉴 새 없이 변질되는 이야깃거리가 많을 것으로 말이다. 하지만 신학적으로는 이런 모순을 다양한 문서 층을 구분함으로서 큰 어려움 없이 처리해서 우리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순전히 고고학적인 흥미로 읽어내려갔고 실제로 흥미진진했으며 반전으로 오히려 내 신앙을 더 견고하게 만들기도 했다. 제목 그대로 성서는 인류의 영원한 고전이 맞는 것이다. 유럽의 역사와 문학사들이 들려주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에 빠져든다. 고대 이집트, 가나안, 아브라함, 다윗, 마리아, 예수, 사도 바울, 마가복음같은 복음서들에 대한 입체적인 해석들은 놀라움을 준다. 그리고 지금까지 잘못 번역된 혹은 잘못 알려진 사실들도 밝혀내고 있다. 또한 역사속에서 성서에 관한 여러가지 사건들도 보여준다. 역시 슈피겔 답다. 신앙인으로서의 성서와 고고학적 사료로서의 성경은 구분하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여하튼 우리가 아는 성서가 이렇게 생성되고 흘러갔고 이루어졌구나 하는 모든 것들을 잘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고 지적 독서의 즐거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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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리얼 스칸디나비아 - 북유럽 사람이 쓴 진짜 북유럽 이야기
브론테 아우렐 지음, 안나 야콥센 그림, 김경영 옮김 / 니들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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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스칸디나비아인이 쓴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 대한 이야기. 덴마크 출신으로 스웨덴 출신의 남편을 만나서 스칸디키친을 운영하며 영국에서 살고 있다는데 안나 야콥센의 사진과 루시 페인스의 멋진 일러스트가 돋보이는 책이었다. 책이 참 이쁘다. 우선 외국에서 보는 스칸디나비아인의 모습은 금발머리, 키가큰, 호수와 피오르드, 노르딕 워킹, 자전거, 그룹 아바, 복지 국가 등 하나로 뭉뚱그려 보는 경향이 있고 저자가 쓴 스칸디나비아는 지리적 개념으로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속한 노르웨이와 스웨덴 그리고 실제로는 그 반도에 속하지 않는 바다 건너 덴마크까지 합친 개념이며 의외로 핀란드는 구역상 속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스칸디나비아인들의 마음속에서는 핀란드도 같이 속해줄 때가 많다고 한다.


저자의 재치넘치는 글은 중간 중간 웃음이 피어나게 하고 큭큭 웃게 만든다. 스웨덴인의 아재 개그 중에는 아주 작은 땅덩이의 덴마크를 두고 웃음거리를 만드는 개그가 많은데 의외로 기분은 나쁘지 않은가 보다. 서로가 약간은 비웃으며 비하하는 개그가 아주 일품이다. 노르웨이는 약간 큰형의 이미지이고 덴마크는 아침부터 술을 마실 수 있는 나라로서 다른 국가에서 조금 부러워하기도 한단다. 노르웨이나 스웨덴이 그렇게 술에 대해서 규약이 많는 줄 몰랐다. 거의 금주의 나라라고 할 지경이다. 그래도 예외의 순간들도 역시 책에는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덴마크인 스웨덴인 노르웨이인들은 스스로를 스칸디나비아인이라고 절대 부르지 않는단다. 덴마크인 스웨덴인 등 자신이 태어난 나라인이라고 할 뿐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각 국가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아주 다르기 일쑤이다. 의외로 작은 땅의 덴마크인들이 스스로 바이킹의 직계 후손이라고 생각하며 나머지 나라들은 그러려니 한단다. 덴마크 사람들은 자신들의 금발이 돋이게끔 온통 블랙으로 옷을 입는다고 하는데 실제로 사진에서 많이 본 모습이다. 우연히 그런줄 알았지만 자신들을 돋보이게 하는 것을 알고 하는 착장이라니.. 덴마크 사람과 네덜란드인을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은 나도 그랬다. 덴마크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하면 아주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단다. 하물며 지리적으로 붙어 있는 나라도 아닌데 왜 그런 망발을 하냐며..마찬가지로 스웨덴과 스위스를 헷갈려 하는 것도 싫어하니 우리는 똑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덴마크의 휘게 개념은 전세계적으로 열풍인데 덴마크인 스스로는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편안한 내집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깔끔하게 살 뿐이고 그것을 휘게라고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오히려 외부에서 이것이 휘게다 하며 규정짓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것 같다. 그리고 스웨덴에서는 피카라는 커피 타임을 아주 중요시 여기는데 평일에 보통 두 번의 피카타임을 가진다고 한다. 담소를 나누며 커피를 느긋하게 즐기는 그런 시간을 한국에서도 가져봤으면 좋겠다. 이들은 버스정류장에서도 서로 2미터 간격을 두고 줄을 선다는데 잡담도 하지 않고 아주 고요하다고 한다. 한국의 버스 정류장에서의 치열한 모습을 본다면 놀랄 것 같다. 그도 그럴듯이 노르웨이나 스웨덴은 큰 땅덩이에 비해 인구가 아주 적다. 영국이 6500만명인데 비해 이 세나라는 합쳐도 1900만명이라니. 그래서 느긋하고 여유로울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게다가 겨울은 10월부터 3월까지 너무나 길고 여름엔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이다 보니 시간에 쫓길 이유가 없을 것 같다.


그들의 문화, 요리, 각국의 유명한 빵, 언어 그리고 아재 개그, 그들의 사회 복지, 그들의 정당, 북유럽 신화, 패션, 그들의 인테리어, 그들만의 이웃을 생각하는 평등문화, 사우나, 노르웨이인들의 야외활동 등 저자의 유쾌한 글로 접하는 리얼한 스칸디나비아를 읽으니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다. 치즈를 비스듬하게 자르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니 그곳에 가면 치즈는 반드시 현지인들에게 잘라달라고 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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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의 문화사 - 매너라는 형식 뒤에 숨겨진 짧고 유쾌한 역사
아리 투루넨.마르쿠스 파르타넨 지음, 이지윤 옮김 / 지식너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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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사람이 쓴 유럽의 매너의 문화사. 유럽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답게 아주 흥미롭게 풀어놓는다. 예전부터 유럽사나 문화사에 관심이 많아서 더욱 재미있게 읽었다. 왠지 유럽이나 미국의 식탁테이블 예절이나 상류사회의 초대문화등을 영화나 다큐로라도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는데 나중에 이런 경험을 하게 될때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나보다. 그럴 기회도 없건만.. 하지만 우리가 아는 이런 매너가 과연 언제부터 정착이 된 것이며 과거에도 통용되는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에 명쾌하게 답이 되는 책이었다.


지금은 서양식에 포크와 나이프와 숟가락이 당연히 필요하지만 그렇게 된 것은 16세기가 되어서야 가능했다는 것. 예전에 기사들도 들고 다니는 칼로 먹거나 그냥 손가락으로 먹었다는 사실. 그리고 냅킨이 있음에도 냅킨에 나이프나 포크를 닦으면 안되었고 자신의 입술로 다 닦아야 했다니! 지금같으면 더 예의없다고 하는 행동을 말이다. 중세시대나 그 이전의 시대에서는 지금과 전혀 다른 위생관이 통용되고 있었기에 책을 읽으며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정말 루이 14세 같은 왕은 신하들이나 사람들 앞에서 화려한 변기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하니..19세기나 되어 상하수도관이 설비되어 18세기 이전에는 배변에 관해서는 정말 관대했던 것 같다. 그들도 인간이었기에 냄새를 맡을 수 있었겠지만 현재의 사람들보다 비위에 강했던 건 사실인가 보다. 물이 귀했기에 어쩌다 씻어도 손과 입 정도였지 아랫도리는 씻지 않았다니 세상에 이런일이다. 그래서 배변을 할 곳이 없어서 귀족의 집의 정원마저도 으슥한 곳은 질퍽이기 일쑤였다고 한다.


당시의 인사법도 처음에는 단순했다가 나중에는 모자를 벗었다 썼다 하는 규정이나 횟수를 세세하게 적용시켰다는데 오히려 1995년의 영국에서 새로 선출된 의회 의원들이 처음 모인 자리에서 어떤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모자를 쓰고 있다고 의장에게 혼이 났다는데 사실 17세기만 해도 의원들은 실내에서 모자를 쓰고 앉아 있었어야 했으며 이는 귀족과 엘리트의 특권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시대에 따라 전혀 달랐던 매너의 규정이니 어느 것이 백퍼센트 맞다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촌스러운 것은 아닐까.


프랑스에서는 볼키스는 해도 포옹은 아주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과만 한다니 함부로 포옹을 시도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볼키스도 예전에는 몇번을 해야하는지도 논란이었다고 하니.. 유럽의 역사를 아시아나 다른 민족들이 보았을때는 또 반대로 야만이라고 했다고 하니 정말 유럽인들 중심의 매너는 사실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지 전세계적으로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밖에도 부부사이의 성적관계도 욕정이 있으면 안되었다고 하거나 예전 초기의 기사들은 기사도매너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여자들에게 폭력적이었다는 역설적인 이야기도 흥미로왔다.


당시 물이 깨끗하지 않아서 맥주를 많이 마셔서 우리가 아는 수도원 등에서 많이 마시고 고주망태도 많았다고 하니..지금은 성직자가 그렇게 술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데 말이다. 이처럼 매너라는 형식 뒤에 숨겨진 속내나 역사속에 숨겨진 의도들을 잘 파악하는 것도 아주 재미있는 일이다. 악수나 모자를 벗는것이나 절을 하는 것도 사실은 우리 인간이 동물임을 벗어날 수 없는 본성인 것이다. 유인원 사이에서도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악수는 내손에 무기가 없다는 의미였으며 모자를 벗는 행위도 사실 투구를 꼭 써야 하는 고대나 중세에서 벗는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숨길것도 없고 복종한다는 의미였으므로 모자에 대한 매너도 다양한 의미를 품고 있다. 중세에는 고양이를 잡아다 학대하고 화형에 처하기도 하는등 요즘의 반려동물이라는 인지도 부족하였고 사악한 동물로 여겼나보다. 공개처형등 시민들에게 경각심과 구경거리로 만족하게 했던 행위들도 점차 사람들이 잔인한 행위라며 싫어하게 되면서 사라졌다는 것은 기억할 만한 일이다. 이처럼 똑똑하고 어이없고 유쾌한 매너사를 들여다 보면서 즐거운 독서를 하였다. 이곳에 쓴 것은 책의 구석구석의 아주 일부분이고 책을 읽으면 정말 다양한 매너의 문화사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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