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이야기의 탄생 - 뇌과학으로 풀어내는 매혹적인 스토리의 원칙
윌 스토 지음,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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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7 윌 스토.

안녕 도라에몽.
https://youtu.be/TaY5pcnXras

이 책 후반부를 읽을 무렵 도라에몽이 진구를 떠나는 에피소드를 보았다. 도라에몽 시리즈 중 가장 눈물 넘치는 이야기일 텐데, 역시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야기는 뭔가 구성도 연출도 남다른 게 있다 싶었다. 도라에몽과 이별을 앞두고 진구는 굉장히 성숙한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자꾸 기댄다면 도라에몽이 마음 놓고 떠나지 못할까 봐, 퉁퉁이에게 맞으면서도 도라에몽을 부르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퉁퉁이를 이긴다.
거짓말800 한 병 쭈욱 빨고 도라에몽은 돌아오지 않아! 하고 외치고 싶다...ㅋㅋㅋㅋ

출판계에서 ‘뇌과학’은 (판매 촉진의) 마법 주문 같은 건지, 부제에 자꾸 들러붙는다. 하긴 그래서 나도 이 책 봤잖아...몇 번을 낚이고 또 낚이냐. 책의 원제는 ‘스토리텔링의 과학’이다. 번역서 제목들을 보면 한국어 사용 독자에게 어필하기 위한 온갖 노력과 시도와 실패를 느낄 수 있다…

즐기기 위한 독서가 있고, 왠지 이건 봐야 할 것 같아서 보는 책이 있는데, 후자에 가까웠다. 문제는 잘 안 읽혔다. 소화가 되질 않아… 뭔가 되게 도움 될 것 같은 말이 막 나오는데 다 읽고 나니 남는 게 없다.
그래도 예시에 읽은 책이나 본 영화가 나올 때 좋았다. 남아 있는 나날, 나를 찾아줘, 리어왕(음 이건 읽은 지 이십 년도 넘어서 안 봤다고 하는 편이…), 어둠 속의 댄서 같은 거. 읽고 싶은 책(-이언 매큐언의 체실 비치에서), 보고 싶은 영화(-아라비아의 로렌스), 도 생겼다.

우리 뇌는 끝없이 이야기를 지어낸다. 우리 삶도 뇌가 지어내는 완결성을 갖추고자 하는 시도와 함께 이어진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세계는 어떤 곳인가, 결국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실이란 없고 전부 다 뇌가 구성하고 만들어진 것이다. 감정, 지각, 인식, 대부분이 그렇다. 이야기를 지어낼 때도 그런 사실을 알고 최대한 읽는 사람에게 이끌어낼 수 있는 반응을 예측하며 쓰면 더 효과적일 것 같다. 하지만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 때, 결함 있는 인물, 그 인물이 누구인가, 어떻게 변화하는가, 그 인물이 통제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등에 대해 끝없는 질문을 해야 좋은 이야기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음. 항상 못난이들을 이야기 속에 등장시키는 나는 일부는 성공이다.

문제는 늘 끝마무리를 제대로 짓지 못한다. 인물들과 아름다운 이별을 좀 했으면 좋겠는데, 매조지가 잘 안 된다. 스스로도 깨닫고 내 이야기를 읽어주는 친구들도 늘 지적하는 결말은 좀 재미없다, 약하다, 아쉽다, 등등. 책에서 제시하는 나름의 해결책은 갈등의 해소, 인물이 사건을 겪고 나서 변화한 모습, 같은 걸로 읽혔다. 그런데도 아직 잘 와닿지는 않는다. 다음에는 결말부터 쓰는 시도도 해봐야겠다. 그런데 그러고 나면 왠지 결말이라고 쓴 부분을 맨앞에 끌어다 놓을 것도 같다. ㅋㅋㅋ
세상 끝까지 살아봐야 알지...끝이 좋은지 나쁜지 진짜 끝까지 가봐야 알지...하는 미루는 습관이 자꾸만 마무리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이봐 그렇다면 결국 죽어야지 끝나는 이야기냐...다음 이야기는 결말에서 주인공을 죽여야겠다… 초반에는 꼭 누구 하나 죽이곤 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잘 안 죽인다. 이건 나름 좋아진 부분 아니냐…

여하간에 이런 책도 봐두면 좋을 것 같기는 한데 이번에는 소화를 못했다. 전에 시학이랑, 시학을 가지고 스토리텔링 이야기 하는 책도 봤는데 그것도 남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냥 잘 쓴 이야기들이나 재미있게 봐야지. 머리 아파. 나는 딱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 그냥 이야기하는 자체가 좋아서 말하고 쓴다. 그걸로도 누군가가 재미를 느끼면 좋겠지만 집중력 있게 붙잡아 두기는 힘드니까 조금 궁리를 하긴 해야겠다.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 끝까지 듣는 습관, 끝에 집중하는 습관도 좀 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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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0-08-17 17: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실재론에 대해 고민합니다. ^^;;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실이 없다기보다 우리가 객관적이라고 인식하는 사실조차 객관적이 아니라 주관적이라는 것이 좀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거시 세계에서는요... 평안한 휴일 보내세요~~

반유행열반인 2020-08-17 17:29   좋아요 1 | URL
으왁 지금 보고 계신 이 글을 쓴 저도 님께서 만드신겁니다. 여기 없습니다. 뿅.
평안한 휴일 보내세요. ^_^

바다그리기 2020-08-17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봐야할 것같은 책이라서 읽었는데 읽고나니 딱히 남는게 없는듯 했던.. 감상이 똑같았던 지라 또 한번 반갑네요.^^ 그래도 뇌가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혹은 생각하는) 것들을 환각처럼 그려서 받아들인다는 것, 그러니 단순히 기쁨을 느낀다고 쓰지말고 뇌가 기쁘게 느낄만한 표현들로 쓰라는 부분은 정말 새삼스럽고 인상적인 깨달음이었어요.
이야기를 성의 있게 끝까지 잘 들어야겠다는 생각, 저도 요즘 많이 하는데.. 두루 반갑네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0-08-17 17:46   좋아요 1 | URL
뇌가 기쁘게 느낄만한 표현들로 쓰라는 부분...이 있었군요! 저는 도대체 뭘 읽은 건지 ㅋㅋㅋ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책을 읽는 사람이 있는 건 즐거운 일 같아요. 저도 두루 반갑습니다.

syo 2020-08-18 1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어떤 남성으로부터 자기는 도라에몽 보고 눈물 흘린 적 있는 가슴 촉촉한 남자라는 주장을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마지막으로 도라에몽 만화책을 펼친 것도 20년 쯤 된 것 같네요...

반유행열반인 2020-08-18 18:59   좋아요 1 | URL
으악 20년 전 막 이렇게 회상하면 엄청 으른 된 느낌이에요... 저는 도라에몽 보고 울지는 않았고 그렁그렁에서 참았어요. 그 촉촉한 분이 어떤 분인지 몰라 (괜히 동류되면 부끄러울 인물...아니길ㅋㅋㅋ) 안 흘렸다고 우기는 중입니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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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3 장강명.

2년 만에 다시 읽은 책이다.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전에 어여 읽어야지, 하고 읽는 마음이 전에도 몇 번 있었다. 당신이 읽은 책을 내가 읽고, 내가 읽은 책을 당신이 읽으면, 우리는 조금 더 서로를 잘 알게 되지 않을까요. 순진한 생각인 걸 이제는 알지만 그래도, 좋잖아요.

이 장편소설은 장강명이 쓴 소설 중에 제일 예쁘게 쓰여진 작품이다. 나 이런 것도 쓸 줄 알거든, 하고 작정하고 쓴 느낌이다. 이 소설로 장강명은 문학동네작가상을 탔다.
남자아이, 여자아이, 아주머니가 나오는데, 셋 다 나인 것만 같아서 슬펐다. 남자아이는 아주머니 아들인 영훈이를 죽이고 교도소와 정신병원을 거쳐 사회로 나온다. 그리고 여자아이를 만나 얼마간 사랑한다. 여자아이는 불행한 가족관계의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아주머니는 집요하게 남자아이를 쫓아다니며 훼방을 놓는다. 남자아이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지만, 다음에 어떤 장면이 올지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덤덤하게 많은 것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인다.
한강 주변 현수동이라는 가상의 공간이 장강명 소설에서 반복되어 나온다. 남자아이는 현수동이야기 라는 지역 탐방 책을 쓰면서 그 지역에 켜켜이 쌓인 과거를 본다. 우주알이 몸 안으로 들어온 덕에 뒤틀린 시공간을 그믐달을 타고 넘나들 수 있다. 순서를 알 수 없게 뒤죽박죽 되어버린 소설, 영화 인터스텔라 속 뒤틀린 시공간, 수많은 가능성과 엇갈림을 헤치고 여자아이를 만나러 온 남자아이, 일부러 틈을 만들어 덜 고통스러운 끝을 찾아가는 남자아이. 과거에 매몰되어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아주머니. 흠 지금 내 모습은 아주머니랑 제일 비슷하다. 불쌍한데 추해. 이제 안 그럴게.

+밑줄 긋기
-운동장이 쓸쓸했다. 두 아이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운동장은 그 학교에서 가장 표정이 풍부하고 가장 인간적인 존재였다. 살아 있는 학생들보다 더. 학생들은 학교에 있을 때에는 인간이라기보다는 개미나 벌을 더 닮았다. 교사들은 지친 로봇 같았다. 운동장은 재래시장의 늙은 상인처럼 무덤덤한 얼굴로 대낮을 견디다 하교시간 즈음해서 제 혈색을 되찾았다. 운동장의 성별은 아마 남성인 것 같았다. 수업을 마친 남자아이들이 축구를 할 때 즐거워했으니까. 운동장은 신화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해 질 무렵부터 슬슬 마력을 뿜어내기 시작해 밤이 되면 귀기를 몸에 둘렀다. 그러다 아침이 되면 다시 사소하고 조잡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생각해봐. 그 아버지와 딸은 서로 못 본 채로 수십 년을 떨어져 살았어. 그러다가 마지막에 만나는 건 겨우 십 분 정도야. 그 십분으로 인생이 해피엔딩이 되고 안 되고가 결정되는 거야?
그런가?
저 딸이 만약에 아버지가 오기 한 시간쯤 전에 죽었다면 말이야, 그러면 저 아버지와 딸은 엄청나게 불행하고 의미 없는 삶을 산 셈이 되는 건가? 운이 좋아서 딸이 죽기 전에 딱 십 분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 그 수십 년의 인생에 갑자기 의미가 생기는 거고?
어...꼭 그런 건 아니더라도 되게 안타깝잖아. 누구를 그렇게 기다렸는데 만나지도 못하면.
우주 알이 몸에 들어오면 이런 점이 참 안 좋아. 왜냐하면 어떤 만남이 어떻게 끝이 날지 뻔히 보이거든. 그런데 어떤 관계의 의미가 그 끝에 달려 있는 거라면, 안 좋게 끝날 관계는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그 끝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과정이 아름답고 행복하다 하더라도?
우리가 안 좋게 끝나? 여자가 물었다.
너는 어떤 게 좋아? A, 약간 짧지만 완벽하게 기승전결이 되고 아련한 마음으로 헤어지는 인연. B, A하고똑같은 기간을 보낸 다음에 조금 더 시간이 추가되는데 끝날 때 굉장히 안 좋게 끝나는 관계.
시간이 얼마나 추가되는데?
글쎄. 하루 정도라면?
그러면 A지.하루 차이가 뭐 중요한가. 다 끝나더라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 게 중요하지. 그런데.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에도 한참 후에야 여자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에 어찌나 힘을 주고 있었던지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여자아이는 잘못 열면 안에 있는 남자아이가 다치기라도 할 것처럼 조심조심 캐비닛 문을 열었다. 남자아이는 빛에 놀란 듯 눈을 깜빡거렸다. 다른 세상에라도 다녀온 듯한 표정이었다.
여자아이가 손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와, 진짜 나…
그때 남자아이가 캐비닛 안에서 여자아이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여자아이의 몸이 앞으로 기울며 캐비닛 안에서 두 아이의 입술이 맞닿았다.
베이비로션 냄새. 겨드랑이 냄새. 비냄새. 젖은 나무와 이끼 냄새. 다크초콜릿 냄새. 강아지 발바닥 냄새. 그 밖의 온갖 강렬하고 유혹적인 냄새들.

-너를 만나기로 결심했을 때, 그래서 너의 회사로 원고를 보냈을 때, 나는 우리의 결말도 미리 봤어. 결말이 오늘 올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까지의 시간을 더 알차게 보내려 노력했어. 사실 그 마지막 장면이 나한테 좀 안 좋긴 해. 하지만 시공간연속체 속에서 평가하자면, 너와 함께 있었던 시공간은 전체적으로 다 좋고, 극히 일부가 그렇지 못할 뿐이야.
나한테 남은 문제는 이거였어. 네가 이 마지막 때문에 우리 관계를 온통 불행했던 것으로, 비극적인 것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보통의 시간 순서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서사와 결말을 중시하잖아. 어린 시절 행복하고 노년에 불행한 것보다 그 반대를 선호하고, 수십 년을 기다린 아버지와 딸이 마지막에 잠시라도 꼭 만나야 하고...그런데 우리는 노선 B를걷기로 했지. 너는 미래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이기심 떄문에. 그래도 나는 십 분 먼저 너와 헤어지려 해. 십 분이면 최악은 피할 수 있을 거야.
미안해. 남자가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모든 거짓말들은 다 잊더라도, 이 말만은 기억해줬으면 해. 널 만나서 정말 기뻤어. 너와의 시간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들이었어. 난 그걸 절대로 후회하지 않아. 고마워. 진심으로.
그러고 나서 남자는 화면을 보며 잠시 머뭇거렸다. 여자에게 하는 말이 너무 짧아 무언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더 보탤 단어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 말들은 거짓이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너무 잔인한 진실도 안 되었다. 너를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다시 겪으라면, 나는 그렇게 할 거야, 같은 말들. 사실 남자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시공간연속체 속에서 그 모든 일을 몇 번이고 다시 겪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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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예가체프 레코 - 200g, 핸드드립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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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품 나왔길래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레코를 샀다. 에예레- 줄이니 예쁘네.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더더욱 텅 비었다. 텅 빈 나는 아침에 일어났다. 매미가 시끄럽게 울고 있다. 저것들이 우는 이유를 아니까 징그럽다. 나처럼 맴맴맴맴 하고 있다. 여름 지나면 다 죽을 것들이니 이해하고 사랑하기로 한다. 사랑 많이 하렴 매미들아.
빈 곳을 채울 것은 책이지 뭐, 책. 그리고 아침에 내린 커피.
지난 번 엘 살바도르 엘 보르보욘을 마실 때는 복숭아의 산미? 뻥치시네 했었다.
오늘 새로 산 에예레-를 드립하는데, 어 이건 진짜 딸기향이네, 했다. 딸기맛 커피를 마셨다.
봄이 다갔는데 봄에 먹던 딸기가 먹고 싶다. 요즘 복숭아는 맛없다는 평 뿐이어서 제대로 사 먹지를 못하고 있다. 엄마가 저번에 천도복숭아를 샀더니 너무 맛이 없어서 망했다면서 병조림을 해줬다. 설탕에 졸이니 그나마 먹을 만했다.
올여름은 작년 재작년에 비하면 덥지 않았다. 대신 비가 많이 왔다. 비 덕분에 덜 더웠다.
비, 복숭아, 동그랑땡, 강탈당한 이미지들이 있었다. 비 오는 날이 좋다고 했지. 비 오는 날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 아침에 커피 마시기 전에 꼬마들이랑 동그랑땡 데워서 아침밥을 먹었다.
이제 강탈한 이미지 반납하세요. 수많은 상징과 배경과 장소와 시간을 다시 무로 돌리도록 합시다. 

커피 포장지에는 얼굴에 뭔가를 발라 단장하고 꽃으로 둘러싸인 사람이 있다. 저번에 에티오피아 시다모 난세보 때 왜 여인 혼자만 외로이 있나요. 했더니 뭔가 다른 사람이 똑같이 눈을 감고 등장했다. 처음에는 이번에는 남자인가 했는데 이제는 여자 남자 구분하고 단정하려는 시도부터 고치기로 했다. 마음 안에 굳어진 이분법을 고치는 일은 힘들지만 꼭 해내야 할 숙제이다. 여자 아님 남자, 사랑 아님 미움, 내 편 아님 적, 이런 거 말고, 규정되지 않은 성, 규정되지 않은 마음, 관계, 그냥 그대로 두는 여유와 체념이 내게는 꼭 필요하다. 그런 마음을 갖출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십 년 전까지 나보다 좋은 머릿결을 허리까지 늘어뜨리고 다니던 같이 사는 사람을 동아리 친구들은 언니라고 불렀다. 성남에 모란시장을 구경할 일이 있었는데 어떤 아저씨들이 뒤에서 ‘난 남자가 저따위로 머리 기르고 다니면 뒷통수를 딱 패버리고 싶어’ 하는 폭언을 날렸다. 졸업식 날 내 짐을 들어주던 그를 멀찍이서 처음 본 우리 아빠는 ‘니 친구 참 예쁘게도 생겼다’ 빈정대는 투로 말했다. 남자친구인 줄 모르고 여자애가 되게 못생겼네 하는 평가였다. 세상에나, 나는 그런 인간들을 싫어하면서도 점점 닮고 있는 것 같아서 창피하다. 어쩌면 나는 그런 경계에 있는 모호하고 독특한 존재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좋아하면서도 규정하고 구분짓고 명확하게 만들려는 폭력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와 살면서 군대를 다녀와야 해서 긴 머리칼은 다 잘려나갔고 이후로는 길어져본 적이 없다. 미용실 가서 매직스트레이트에 매니큐어에 온갖 치장하던 머리는 이제 미용실 갈 돈 아낀다고 덥수룩하게 머털이마냥 어설픈 길이가 되곤한다. 나는 좀 짧게 바짝 깎고 오라고 잔소리를 또 하지. 회사갈 땐 못하고 주말에만 양쪽에 건 귀걸이를 보며 금속 알러지도 심한 걸 여태 안 막냐고 잔소리도 하지. 난 참 쓰레기구나. 아버지가 빈 자리에서 내가 나쁜 아버지를 하고 있구나. 
하여간에 커피 포장지의 예쁜 사람은 그냥 좀 두겠습니다. 마음껏 예쁘소서. 

어제 아침에는 사육신공원에 다녀왔다. 큰꼬마가 방학숙제로 답사보고서를 써야 한다고 했다. 
집이랑 노량진 가깝다. 마을버스로 이십 분. 오랜만에 비가 안 오는 건 좋았는데 무척 습하고 더웠다.
열 살 세 살 꼬맹이 끌고 나무 아래를 걸었다. 보라색 길다란 꽃이 잔뜩 피었는데 이름을 모르겠다.

사당에서 위패 일곱 개를 보았다. 큰 아이는 향냄새가 너무 강해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했다. 작은 아이는 주변에 조경 돌보는 아저씨 일꾼들이 많았는데 그래서 낯설어했다. 가기 전에 아이에게 왕위찬탈과 복위 시도와 실패에 관한 이야기들을 대강 했다. 세종의 여러 아들 중에 문종이 다음 왕이 되었는데 아버지왕 시절에 너무 혹사 당해서인지 일찍 죽었어. 그래서 문종 아들 단종이 왕 될 준비도 충분히 못하고 어린 나이에 다음 왕이 됐어. 세종 아들 중에 왕위 욕심낸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쫓아내고 새 왕이 되었어. 이걸 의리 없다 옳지 않다 생각하고 다시 단종을 왕으로 돌려놓으려다 들킨 사람들이 역적이라고 처형당했어. 역모까진 참가 안 했어도 세조가 왕이 된 걸 반대해서 벼슬 안 하고 물러나 살았던 사람들이 있는데 그 중 몇을 골라 생육신이라 한대. 그 생육신 중 하나가 단종 복위하려다 죽은 사람 중 여섯을 골라 육신전이라는 위인전을 썼대. 겨우 여섯만 죽었겠어? 그냥 누군가 중요도를 정하고 마음가는대로 고른 게 어쩌다보니 사육신으로 굳어졌어. 한참 후대 왕들이 단종 복위하면서 당시 역적으로 죽은 신하들도 복권시켰는데, 사육신 말고도 여러 타이틀 붙여서 기렸대. 그 중 하나를 사육신 묘에 추가해서 이 공원에는 무덤도 위패도 일곱이야. 

계단을 여러 개 올라가면 한강 쪽을 조망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멀리 이름 모르는 한강 다리랑 한강물이랑 가까이 63빌딩이랑 존나 똑같이 생긴 건물(김애란 소설에 노량진 나오는 이야기 참고)을 구경했다. 

너무 더워서 오래 머무르기 힘들어서 무덤 가는 길은 제대로 못 찾고 멀찍이서 무덤 두 세 개 귀퉁이만 보고 더 찾지 않았다.
공원이라는 건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잖아. 계속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잊지 말라고 그냥 묘역이 아니라 공원으로 만든 것 같아. 그런데 잘 모르겠어. 정말 그만큼 기리고 기억해야 할 만한 죽음인지는. 신의와 의리를 지킨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 누군가를 향한 마음과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죽음도 감수하는 건 대단한 일인지도 모르지. 그런데 정말 그랬을까,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마지막 도박처럼 주도권 투쟁을 하다가 실패한 것이라면 그렇게 아름답게 포장할 일도 아니지 싶어서.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그 마음은 더 알 길이 없고 이들을 강등시키거나 다시 복권하고 기리기로 결정한 사람들조차 다 죽어버려서 이제는 정말 알 수가 없다. 

알 길이 없어질 때까지, 더 궁금하지 않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지나면 좋겠다. 
커피를 마시면 이렇게 길고 긴 아무말잔치를 쏟아낼 수 있지. 그러니까 이 원두를 사고 한 잔 내리시지요. 
요즘은 하여간에 소설 빼고는 많이 주절댄다. 일기만 수천자 쓴다. 부치지 않는 편지도 썼다 지운다. 읽고 싶은 책은 많아졌는데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소설은 주말에 과제 마감이라 써야 하는데 소설못써요 병에 걸렸다. 뭐 어쩌냐 안 되는 걸. 되는대로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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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0-08-13 1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저도 이거 마시고 있다요! 유열님 근데 맛있어 지난 것보다 더!

반유행열반인 2020-08-13 10:25   좋아요 1 | URL
달고 상큼한데 진하고 고소해요. 그런데 그런 건 있다. 제일 맛있는 커피는 오늘 처음 마시는 커피. 밴드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부에나비스타쏘셜클럽 짭퉁) 노래 중에 가사 개빻긴 했는데 처음 보는 여자-라는 노래 있거든요. 여자 남자에 대한 건 동의 못하는데 커피는 확실히 첨 마시는 커피가 최고입니다. ㅎㅎㅎㅎㅎㅎㅎ

수이 2020-08-13 10:51   좋아요 1 | URL
아침부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처음 읽는 책도 항상은 아닌데 책껍데기 막 들출 때 설레여

- 2020-08-23 0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가체프는 셔서 좋아요. 제가 유일하게 외우는 원두. 그리고 또 커피리뷰인데 고퀄 ㅋ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8-23 05:20   좋아요 1 | URL
오랜만에 공쟝쟝님
댓글 폭탄 받으니
넘 좋네요
마트에서 케냐AA샀는데 맛없어서 망했스요...그냥 알라딘 살 걸...
 
까면서 보는 해부학 만화 한빛비즈 교양툰 8
압듈라 지음, 신동선 감수 / 한빛비즈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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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1 압둘라.

드립과 패러디로 꽉찬 만화는 굽시니스트의 정치 만화나 역사 만화 정도 접했었다. 까면서 보는 해부학 만화의 드립과 밈은 진짜 쫓아간 게 1/3은 되려나… 나보다 일본대중문화의 시혜를 더 깊고 넓게 받은 옆사람에게 하나하나 물어봐야 끄덕거릴 만한 원작, 원본이 생각보다 많았다. 이런 거 못 알아듣고 못 쫓아간다고 사는 데 지장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왠지 늙은 기분이라 서글픔...

누군가 열심히 몸에 대해 공부한 결과물을 이렇게 다양한 시각화와 개그 범벅해서 접하는 건 나름 즐거운 일이었다. 해부학은 중고딩때 인체의 신비전에서 보았던 수많은 시체광의 괴기스러운 조형물, 그 시체광 박사님이 직접 집도하는 해부학 영상을 대학 때 정주행(왜...너 문과잖아)했던 게 전부였다. 만화로 근육, 뼈, 온갖 장기와 기관을 접하는 것은 흥미로웠고 아 이 거죽 안에 이런 게 다 담겨 있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는 데 제법 효과적이었다.
그렇지만 그냥 만화 정도만 보는 걸로...본격적으로 해부학을 공부할 엄두는 나지 않네요.

아, 이 작가의 섬세함이 절정을 이루는 부분은 역시나 검열과 삭제를 피하기 위한 생식계 챕터(맨 뒷부분입니다)였다. 아주 적절했다… 여러분 이 책은 어린이도 이용 가능합니다. 목뼈 가장 마지막은 C7입니다! 목뼈가 8개가 아니라 다행이죠!!!

작가 여성 취향 무엇 ㅋㅋㅋ싶은 되게 센 캐로 그려진 신경퀸, 척추퀸, 심장퀸. 은근 썸타면서 귀염 부리는 근돼와 다귀의 귀여운 까해만 극장. 캐릭터가 참 재미있었다.


척추퀸, 신경퀸, 심장퀸 센 캐 삼인방.
귀요미 근돼와 다귀의 애정. 사진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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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0-08-11 1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해골 얼굴 빨개지는데 나도 덩달아 빨개졌다......

반유행열반인 2020-08-11 11:28   좋아요 1 | URL
쟤들 하는 짓 진짜 귀여워요 단백질 석회질 나부랭이들 주제에....

- 2020-08-12 07: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읔큭큭큭큭 뭐죠... 엄청나다 ㅋㅋㅋㅋ
응 저도 중고딩때 인체의 신비전 봤는데!!! 그거 되게 괴담많던 그거 맞죠?(거봐 또래라고!!)

반유행열반인 2020-08-12 09:02   좋아요 1 | URL
웅 우리 중학교나 고등학교는 안 겹치고 중고등학교로 퉁치면 겨우 겹치고 초등학교는 확실히 겹치는 세대 차가 아니던가요 ㅋㅋㅋㅋㅋ
 
[전자책] 책갈피의 기분 - 책 만들고 글 쓰는 일의 피 땀 눈물에 관하여
김먼지 지음, 이사림 그림 / 제철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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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0 김먼지.

책 제목과 저자의 이름만 보고 재미있어 보여서 빌렸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 나오기 위해서는 작가가 쓰거나 그린 창작물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 더해 정말 물성을 가진 ‘책’이라는 사물, 상품, 존재가 되도록 애쓰는 사람 여럿이 달라 붙어야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여러 출판사에서 몇 년 간 일해온 편집인이고, 그러다가 편집인으로 일하는 고충에 대한 글을 써서 독립출판을 했고, 그 책이 주목받으면서 상업출판까지 하게 되어 내가 읽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

신기하면서도 짠했다. 왜 누군가의 즐거움을 위해서는 누군가의 고생이 필요한 것일까. 삶이란 다 그런 건가? 내가 하는 고생은 과연 누군가의 즐거움이 되는 건지 궁금하다. 내가 누리는 즐거움은 또 괜시리 미안해진다. 즐겁기도 하고 지루하거나 괴롭기도 하던 독서 끝에 이런 저런 말을 싸지르는데, 자식처럼 내놓은 책을 그렇게 가혹하게 물어뜯으면 아파할 사람이 작가 말고도 많겠구나, 번역자, 편집인, 교열교정인, 인쇄소에서 일하는 분들, 하여간에 많겠구나.
그래도 읽고 또 뭐라뭐라 주절주절 불평하면서 다른 책 찾아 나서겠지.

처음부터 편집인 되고 싶던 사람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쓴 작가도 쓰는 일에 대한 열망이 엄청 났고, 결국은 써서 펴냈다. 술술 잘 읽히고 책이 나오는 과정에 대한 정보도 주고 짠 한 마음도 주고 아, 책은 읽을 때 좋은 거지 만드는 일에 가담?하기 시작하면 그건 또 무한 고통이구나,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딨어, 그러니 내 하던 일이나 잘하자...하는 자기반성까지…

내 책을 갖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굳이 나무의 영혼을 나까지 탈탈 털어서 폐휴지 만들 필요 있을까 싶기도 한데, 잘 쓰고 많이 읽히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한다. 그런데 요즘은 의욕이 바닥이라 그냥 다 집어치우고 싶다. 일기나 쓰고, 메일은 이제 안 쓰고, 독후감이나 쓰고, 그냥 주절주절 혼자 아무말잔치하면 그건 그거대로 재미나니까. 돈도 안 들고 자원 낭비도 별로 안 되고 내 시간은 잘 흘러가고 그냥 그렇게 살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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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08-11 0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궁금했어요. 요즘 책을 만드시는 분들의 이야기에 눈길이 가더라구요. 책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으든 열심히 만든 책이 누군가의 손에서 읽히고 있다는 것이니까 무관심보단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8-11 08:49   좋아요 1 | URL
헤헤 이렇게 제 죄책감을 덜어주시네요. 읽히는 건 술술 잘 읽히는 책이었어요.

- 2020-08-12 0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럼고럼 고로케 늙어가면 되지. 그래도 독자 한명 여기 있음다 ..!

반유행열반인 2020-08-12 09:02   좋아요 1 | URL
자꾸 제 못난 글 읽어주시면 저 반할지도...이미 반한지도...그래서 반반...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