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나무 도감 (양장) - 우리 땅에서 뿌리 박고 사는 나무 이야기 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4
이제호.손경희 그림, 임경빈 감수 / 보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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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4 보리 출판사.

나무노래-백창우 곡
https://youtu.be/NhJUyjz846I

공룡이나 자동차 이름 같은 건 괜찮지만, 나무와 꽃과 새의 이름은 잘 모르면 왠지 부끄럽다. 그냥 나무, 꽃, 새, 하고 퉁쳐버리기엔 다 다르고 다르게 예쁜 것들이다. 잘 알고 싶고 제대로 이름 부르고 싶다.

책꽂이는 그런 바람의 목록이다. 도감류를 제법 사 놨고, 특히 나무도감, 나무사전, 2천년 식물 탐구의 역사, 꽃도감 이런 걸 쟁여만 놓고 오래 안 봤다. 그런데 반려동물 키우기를 안 좋아하듯 반려식물 키우는 식집사 노릇은 싫다. 김금희의 책 중 유일하게 에세이 ‘식물적 낙관’을 읽다 중도하차했다. 프로개의 드루이드 어쩌구도 궁금해 하다가 키우는 이야기는 사진 구경만, 하고 책은 단념했다. 손이 가는 건 싫은데 알아서 크는 건 누리려는 게으른 욕심쟁이다.

개중 그나마 얇고 사 둔지 가장 오래된 ‘나무도감’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욱 훑기로 했다. 나무 이름만 봐도 정겹다. 세밀화로 그려둔 그림일 뿐인데 오히려 그림이라서 개별 나무의 특징을 골똘히 들여다볼 기회가 되었다.
도감 한 권 봐도 당장 공원에 심긴 나무 명찰로 만나는 이름 모두를 담지 못하고, 그림으로 배운 나무를 한길가나 숲길에서 모르는 체 지나칠 수도 있겠다. 그래도 나중에 ‘나무사전’ 같은 책으로 복습하면 이름 댈 나무가 몇 종 더 늘기를 기대한다.

시고르자브종 출신이라 책에서 마주한 고욤, 으름, 칡, 산딸기 같은 걸 나 저거 먹어봤어, 할 수 있는 건 어디 쓸데 없는 메리트지만, 밤과 도토리를 주우며 도파민 반짝이던 날들은(누구는 삐라를 주우며 그랬다지만) 동전으로 뽑기 캡슐 뽑는 가챠 못지 않게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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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휴면하는 겨울눈은 어떻게 매서운 추위에 얼지 않고 봄에 새싹이 돋아날까. 그것은 날씨가 추워지면 겨울눈의 세포 속에 있는 물이 밖으로 빠져 나오기 때문이다. 만약 온도가 섭씨 0도 이하일 때 세포 속에 물이 들어 있으면 그것이 세포 속에서 얼게 된다. 그러면 물보다 얼음의 부피가 크기 때문에 세포가 눌려 죽게 된다. 이렇게 물이 빠져 나오는 현상은 겨울눈뿐만 아니라 줄기나 가지에서도 일어난다.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면 나무의 세포들은 물을 밖으로 내보내고 물에 녹는 당분도 많이 만들어 놓는다. 그러면 세포 속에서 물이 얼지 않는다. 봄이 되어 날씨가 따뜻해지면 물이 세포 속으로 다시 들어가서 새싹이 돋아난다. (28-30)

-보리수를 손에 가득 따서 한꺼번에 입 안에 털어 넣고 입이 터지도록 씹으면 더욱 맛이 좋다. 그러나 한꺼번에 너무 많이 따 먹으면 똥이 잘 안 나온다. 씨앗이 소화되지 않고 똥구멍을 막기 때문이다. (168, ‘보리수나무’ 설명 중. 나무도감의 설명이 적절한 듯 엉뚱한 게 많아서 가끔 재미있었다.)

-플라타너스는 길가에 많이 심는다. 나무 껍질이 살갗에 버즘이 핀 것처럼 얼룩덜룩 벗겨지기 때문에 버즘나무라고도 한다. 열매가 방울처럼 생겼다고 방울나무라고도 한다. 플라타너스는 열매가 하나만 달리는 것도 있고 서너 개가 달리는 것도 있다. (282, 공원의 나무를 보고 이건 플라타너스? 하고 명찰을 보니 양버즘나무라고 써 있어서 어, 했다. 한 나무 다른 이름)

-잎에는 생김새가 많이 변해서 잎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 장미의 줄기에 붙는 가시는 잎이 변한 것이다. 아까시나무 줄기에 붙는 가시는 턱잎이 변한 것이다. 담쟁이덩굴 잎은 빨판으로 변해서 벽이나 바위에 찰싹 붙는다. 머루는 잎이 덩굴손으로 변하여 다른 물체를 감는다. (308, 오, 트랜스포머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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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홀릭 2026-01-24 15: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https://youtu.be/OBaN4do78LM?si=CYepPCNtiQ-brQWG

전 아이들과 국악방송의 이 노래로 흥얼거렸더랬는데 백창우님의 간략버전이네요
엄청 많네요
제 문제는 막상 실제로 보면 구분이 안간다는거 ㅋ

반유행열반인 2026-01-24 16:05   좋아요 1 | URL
뱃속아기와 나누고 싶은 음악태담 이란 도서와 시디에서 알게 된 노래여요. 백창우 선생의 동요들이 흔하지 않고 독특해서 거의 15년 전에 아기랑 들었었네요 ㅎㅎ 나무 구분 정말 쉽지 않아요 ㅠㅠ막 다 바늘잎 같은데 뭔 두 개 뭔 다섯 개 뭔 한 개 이렇게 구별이 세세하게 되더라고요

Falstaff 2026-01-24 16: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그렇더구먼요. 나무, 나물, 풀, 꽃, 새 이름 모르면 은근히 쪽팔리는 거. 쑥부쟁이하고 구절초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데 말입죠.

반유행열반인 2026-01-24 17:11   좋아요 1 | URL
아악 그거 제가 제일 어려워하는 구분이에요. 데이지 계란꽃 죄다 하얗고 노래서 ㅎㅎㅎ
 
햇빛의 과학 -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빚어내는 빛의 비밀
린다 게디스 지음, 이한음 옮김 / 해리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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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3 린다 게디스.

간밤에는 잠을 설쳤다. 새벽 세시쯤 깼다 자고, 또 대여섯시 사이에 깨서 알람이 울리는 일곱시 반까지 잠들지 못했다. 출근하는 평소에는 열시반 께 잠들어서 여섯시 사십분 쯤 일어난다. 이십오분 정도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는 거리이다. 출퇴근시간 지하철에 낑겨 다닐 일이 있으면 걸어서 직장에 간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느낀다.
수면의 질을 위해 암막커튼을 쳐서 꼼꼼히 빛을 막고, 혹시 몰라 수면안대도 사 놨고(여행을 가거나 집이 아닌 곳에서 잘 일이 드물어 사용은 못해봤다), 층간소음과 코골이 소리 같은 걸 막으려고 매일밤 귀마개를 하고 잔다. 그래도 수면 상태가 안 좋아졌던 게 일 년 전 쯤이다. 복직을 앞두고 불안하고 막막해서 잠도 잘 못 들고 자다가도 자꾸 깨서는 닥치지도 않은 일을 걱정했다. 의사 선생님은 불안을 가라앉히는 약, 우울을 다스리는 약, 잠드는 걸 돕는 약, 도파민과 세로토닌 균형을 맞춰주는 약을 처방해주셨다. 약물은 비교적 잘 맞았고, 매일 아침과 오후 해를 보며(출근은 동쪽, 퇴근은 서쪽 정방향으로 걷는다 여름엔 선글라스 필수) 걷고, 적당한 운동을 하고, 먹는 것도 적당히 먹고, 주중에는 카페인 안 마셨더니, 일 년을 그럭저럭 잘 보냈다. 그렇지만 뭐 지난밤처럼 가끔 수면이 틀어지는 날이 오기도 한다. 그 전날 너무 피곤하고 두통이 와서 좀 많이 일찍 잤는데 그게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겠다.

수면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하는 건, 이번에 읽은 책이 태양빛과 인체, 특히 하루 주기나 수면에 햇빛이 미치는 영향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제목이 ‘햇빛의 과학’이어서 태양에 관해 두루 다루는 교양서일 줄 알았는데, 굳이 내용에 맞추자면 ‘햇빛과 인체’, ‘햇빛과 건강’, ‘햇빛과 몸의 시간’ 뭐 이런 게 더 적합한 제목이지 싶었다. 큰아이를 처음 낳아 키울 때는 새벽까지 아이가 못 자고 자꾸 불을 다시 켜달라고 하면서 울면 하얀빛 스탠드를 켜고 책을 읽어주고 했는데, ‘느림보 수면교육’이라는 책을 읽고 조명이 수면에 미치는 영향을 뒤늦게 알았다. 그래서 작은어린이를 낳기 전후로는 저녁 8시가 되면 집안 모든 조명을 전구색 주황불로 바꿔 켜고, 책을 읽으며 밤시간을 보내는 안방은 주황색 스텝 디밍 전구로 시간마다 불빛을 한 단계씩 낮추다가 잘 시간이 되면 불을 끄고 암막 커튼을 친다. 그 덕분인지, 성향이 달라서 그런지, 작은어린이는 아기 때부터 비교적 잘 잠들었다. 어제도 자자, 하니까 읽던 책과 독서용 테이블을 착착 정리하고, 이불을 원하는 모양으로 꼭꼭 접어 잘 자리를 만들고, 불을 끈 뒤 누워서 (늘 하던 버릇으로) 껌껌해, 껌껌해, 중얼중얼하다가 하품을 후와아-하고는 곧 잠이 들었다. 먼저 누웠던 나도 곧 잠들었다.

정남쪽을 바라보는 15층 높이에 살게 된 지 이제 6년째다. 반지하에서 저층을 거쳐 발코니에서 볕을 쬐고 관악산 위로 비행기 날아가는 걸 건물 사이로나마 볼 수 있게 된 건 운이 좋았다. 햇빛은 기분에도, 수면에도, 비타민 디 합성과 뼈 건강에도 영향을 준다. 책의 내용은 아주 새롭진 않았지만 한 번 더 햇빛과 건강의 연관성을 되새겨볼 만은 했다. 모든 주거가 볕이 잘 들지는 않는다. 모든 이가 볕을 쬘 여유가 있는 일터나 삶터에 살지는 않는다. 요즈음처럼 체감 영하 십도 언저리인 날 잠시라도 산책을 나가라고 하기에는 코가 얼어 붙을 것 같다. (그렇지만 오늘도 난 9천 걸음 걸어서 얼어붙은 공원 연못을 보고 왔다.) 또 어떤 일들은 더운 여름에도 지나친 볕 아래에서 이루어진다. 부족한 것도 과한 것도 다 못 할 일인데,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 만큼 원하는 만큼 빛을 쬐며 살면 좋겠다. 휴가인데도 어린이 덕에 방과후학교 데려다주고 데려오며 바깥 공기 쐬고, 바깥 볕 쬐는 걸 감사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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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거의 없는 조부모 가설이라고 부르죠.“ 과거에 연구자들은 사람이 생식 가능 연력이 지나고 나서도 꽤 오래 더 사는 이유가 조부모가 양육을 거들면서 집단의 생존에 이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여기에 이점을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조부모는 망까지 봐 준다고. (60, 늙은 부모의 쓸모.)

-처음에는 겨울이라서 바깥이 춥고 괴로울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지만, 한 스웨덴 친구가 늘 하던 말이 떠올랐다. “나쁜 날씨 같은 건 없어. 옷을 제대로 안 입은 게 문제지.” 그리고 곧 나는 야외가 겉보기만큼 나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바깥으로 더 나갈수록, 겨울에 외출하는 것을 점점 더 귀찮은 일이 아니라 큰 기쁨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90, 그래도 저자가 영국인인 걸 잊지 말자. 마음은 햇볕 가득한 바깥을 거닐고 있지만, 이 부분 읽는 현재 오후 3시 기온 -4.3도, 체감 -8.3도라고 하니 나야 실내에서 꾸벅꾸벅 졸더라도 한파에는 참자. 언제부턴가 집순이에서 역마살로 제대로 바뀐 내 인생)

-때로는 점점 커지는 빛이 치명적일 수도 있다. 자살률이 혹독한 한겨울에, 특히 고위도 지역에서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날에 가장 높을 것이라고 가정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살 고민 상담을 요청하는 전화가 크리스마스 무렵에 가장 많아지긴 하지만, 자살, 특히 목을 매거나 총으로 쏘거나 뛰어내리는 식의 과격한 자살은 북반구에서는 5월과 6월, 남반구에서는 11월에 가장 많이 일어난다. 이 계절적 양상은 핀란드에서 일본, 호주에 이르기까지 여러 나라에서 많은 연구를 통해 드러났다. 일반적으로, 위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자살률이 높으며, 자살률의 계절별 차이도 더 크다.
(…) 항우울제도 투약을 시작할 때 처음 몇 주 동안은 자살 위험에 더 증가한다. 보통 투약 후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3-4주가 걸린다. 그사이에 일부 사람들은 신체적으로 더 활발해지고 흥분한 상태가 되고, 그 결과 자살이나 다른 어떤 공격적인 생각을 실행할 가능성이 더 커지는 듯하다.
또 쨍쨍한 긴 여름날은 심리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에게 흥분, 줄달음치는 생각, 황홀경이 특징인 조증을 촉발할 수 있으며, 짜증, 분노, 편집증, 망상도 자극할 수 있다. (202-203, 이부분 읽은 날은 체감 영하 16도의 정말 추운 날이어서, 이 겨울의 제일 강한 추위는 왠지 생의 의지를 더 불태우고 어우 얼어죽겠네, 얼른 따뜻한 곳으로- 하게 만드는 것 같다.)

-우리의 생물학은 태양에 연동되지만, 사회가 시간을 준수하기 위해 쓰는 시계는 정치적 및 역사적 요인들이 뒤얽혀서 만들어 낸 그물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261)

-크로노타입-매일 정상적으로 일어나고 잠자는 시간(261, 이 말 한참 쓰다가 여기에서야 부연 설명 붙는 게 이상했다. 미리 주를 달아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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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6-01-23 2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배꼽시계만큼이나 햇빛시계가 특히 나같은 노인에겐 정말 필요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6-01-24 09:53   좋아요 0 | URL
어르신들은 정말 일찍 일어나시더라구요. 나이에 따라 시계도 달라진다고 책에 나왔어요.
 
퀴어 펭귄클래식 59
윌리엄 S. 버로스 지음, 조동섭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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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260122 윌리엄 버로스.


간밤에 꿈을 꾸었다. 연보라-연두 배색의 새 나이키 운동화 한 짝이 다리가 달린 듯 움직여 다가왔다. 신발을 등에 진 커다란 바퀴벌레였다. 징그러워서 신발로 바퀴를 때려 죽이니 주황색 진액 같은 게 나왔고, 이걸 행궈내면 이제 이 신은 내 거다, 한 짝 뿐이지만, 조금 기뻤다. 그런데 그렇게 커다란 바퀴가 하나둘 더 눈에 띄기 시작했다. 한 마리 정도 더 잡았는데 이걸 다 잡으려니 당황스러웠다.
이런 꿈을 AI에게 읊어주고 해몽해보랬다. 바퀴벌레들은 내 산재한 불안, 신발은 그걸 제거/해결하면 얻을 성취, 더 늘어나는 바퀴들은 그러나 끝나지 않을 다른 문제들, 어쩌구 풀이를 해 주었다. 그래, 나같은 걱정형 인간은 아마 평생 박멸하지 못할 바퀴들에 둘러싸여 덜덜 떨며, 내 눈 앞에 가능한 안 나타나길 바라며, 나타나면 또 한숨 쉬고 때려잡으며 계속 살 지 모르겠다.

버로스의 책을 세 권쯤 모았는데 그 중 제일 짧은 ‘퀴어’를 먼저 읽었다. 조금 나이들고 외로운 남자 리가 나와서 마음을 사고 싶지만 몸만 잠시 기댈 수 있는 앨러턴에게 사랑 받지 못해 꺼이꺼이 거리는 이야기였다. 그런 사이에도 둘은 중남미 이곳저곳을 함께 헤매며 야헤라는 텔레파시 쓸 수 있는 이상한 약초를 찾으러 다닌다. 그 여행 자체가 그냥 이상한 꿈 같았다. 술 마시고 약 먹고 남자 꼬시고 헛소리를 중얼대고 그러다가 3인칭이던 소설이 1인칭으로 바뀌고 앨러턴은 가버렸네 영영, 이러고 끝난다.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를 아직 1권 밖에 읽지 못했는데 ‘퀴어’는 그 책이랑 묘하게 느낌이 비슷했다. 그리고 그 책보다 미덕인 건 분량이 짧다는 것이었다. 재미대가리 없이 지루한 여행길을 길게도 써 놓은 ‘길 위에서’에 열광하던 세대가 있다는 것, 그 세대는 이제 꼬부랑 할배 할매가 되었겠고, ‘퀴어’의 멕시코보다는 루시아 벌린의 멕시코가 조금 더 와 닿았다. 왜냐하면 여긴 술집이랑 식당만 나오고 지저분한 아저씨들끼리 안부나 플러팅만 오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툴고 뭔 화장실 변기 물탱크 위에 놓인 누가 읽다가 찢고 코딱지 묻혀 놓고 담배냄새도 밴 것 같은 잡지를 주워 읽는 거마냥 소설이 쿰쿰하고 심지어 재미도 없었다. 책 뒷표지에 펭퀸클래식 슬로건인지 The best books ever written이라고 써 있는데 동의할 수가 없었다. 더 모스트 보링 북 에버. 뿡뿡.

아직 퀴어가 정체성이나 정치적 색깔을 입기 전의 말인 건지 그냥 프릭이나 동급으로 대충 휘갈겨 써 놨네 싶었다. 사랑이 고픈 애늙은이 찌질이를 보는 건 안타깝기도 하지만 예쁘지도 공감가지도 밉지도 않고 그냥 구질구질해서 시간이 아까웠다. 그런데도 뭐 하나라도 건질까 기대하고 끝까지 읽은 나는 꿈 속 바퀴벌레가 가져온 새 운동화 한 짝, 쓸모도 없는 걸 기대하고 있었구나… AI가 그려준 터진 바퀴벌레의 주황 육즙은 마치 아기바퀴들이 잠들어 있는 알 같이 탱글하고 징그러웠다. 거기 비하면 책이 덜 징그러워서 조금 실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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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게 막는 어리석고 평범하며 불만투성이인 사람들에게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를 느꼈다. 리는 혼잣말을 했다. “언젠가 내가 바라는 대로 할 테야. 나에게 조금이라도 격하게 반대하는 도덕적인 개자식이 있으면, 그놈 시체를 강에서 건지게 될 거야.”(122, 애기 같은 놈이다)

-리는 옷을 벗었다. 앨러턴 옆에 누웠다. 그리고 아기 말투로 말했다. “우디 두디 가치 아주 엄청나게 마구 엉망으로 놀면 디게 쪼치 않을까?” 그리고 덧붙였다. “내가 너무 끔찍하게 굴고 있나?”
“정말 그래요.” (125, 방금 애기 같은 놈이랬더니 바로 반응해주는 애놈의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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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1-23 1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버로스 책 저도 3권 모았다가 저하고 맞지 않아 전부 처분했더랬습니다..ㅎㅎ

반유행열반인 2026-01-23 15:03   좋아요 0 | URL
앗 저도 왠지 그런 느낌적 느낌이라 이걸 매몰비용 처리할지 미련하게 꾸역꾸역 읽게 될지 판단이 안 서고 있습니다...ㅎㅎㅎ
 
인버스 - 욕망의 세계
단요 지음 / 마카롱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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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0 단요.

책을 펴자 담배 냄새가 훅 풍겼다. 찝찝하고 더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아직 잘 몰라도 대충 돈과 투기에 대한 책같으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고책을 사서 뭔 향수 뿌렸나? 한 적은 있어도 이런 독서간접흡연은 또 처음이다.

2021년 6월, 금융 투자라는 걸 처음 시작하면서 분산투자랍시고 이거저거 푼푼이 다 사 모았다. 그때 석유에도 투자하고 싶은데, 진짜 선물은 어렵고 무서우니까 삼성WTI원유파생1(Ce)이라는 펀드에 가입했다. 고위험 상품이라서 이걸 사려면 주식을 몇 년 한 것처럼 거짓말 쳐서 투자 성향을 맞춰야 했다. 한 달 동안 총 400만원을 사 모았다. 그러고나서 무슨 전쟁이 터지고 수익률이 저게 맞냐 싶게(+80퍼센트) 올라가는 걸 관망했다. 그때 난 수험생활 중이라 막 적극적으로 뭘 어쩌지 못했...다고는 해도 사실 다른 종목들 뒤지게 사고팔고 많이 했다. 주식해서 공부 못했네. 하여간에 석유 펀드는 네 번에 걸쳐 100만원 언저리씩 분할 매도를 했고, 2024년에 마지막 판매까지 총83만원 정도 수익이 났다. AI에게 연수익률로 따져보라니 7.7퍼센트라고, 은행보다는 나았겠다. 아무리 중간에 얼마까지 올라도 제대로 팔 줄 모르면(늘 매도 시점이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다) 팔자 고치긴 틀린 것이다… 욕심 안 낸 건 잘했지만 사실상 투자라기 보단 방치하다 정리한 수준이다.

투자랍시고 4년 정도 주식이니 ETF니 채권이니 사고 팔고 하다보니 깨달은 점이 있다. 나처럼 수익 못 내는 사람은 그냥 노동력 팔아 임금 받는 게 제일 수익률 높은 벌이란 것이다. 그러느라 몸이랑 마음 갉아 먹는 게 돈으로 못 따져서 그렇지. 그렇다고 투자는 안 갉아 먹냐. 하여간에 돈 자체가 못된 건 아니지만 못됐다. 자본주의 못됐어. 그만 갉아 먹어. 난 부자가 못 됐어.

소설 속 화자는 00인버스 2X WTI원유 선물 ETN이라는 데 투자했다. ‘즉, 기초 자산인 <WTI원유 선물>의 시세가 1퍼센트 내려가면 이 종목은 2퍼센트가 올랐다.’(66) 그렇다고 한다. 나랑 정반대 방향에 투자를 한 셈이다. 나보고 망해라 망해라 했겠군. 시기는 좀 다르다만.

제목만 보고 인생 막장 나락가는 서사를 지레짐작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투자에 대해서 뭐라고뭐라고 막 하는 데 저런 거 하나도 모르는 내가 금융 계좌를 갖고 있는게 애초에 맞나 싶지만, 뭐 안 날려먹으면 그냥 잘한 거래잖아… 소설 속 세계는 악인이랄 것도 없고(정운채가 악인이길 내심 바랐건만 흥) 다들 적당히 평범한데 또 우연과 운은 평범하지 않았다(누가 뭘 믿고 일억을 빌려주니). 화자가 그나마 섬세하고 민감하면서도 자포자기와 절박함이 막 뒤섞여 있어서 입체적이었다. 숫자가 오르락내리락 할 때의 심리 묘사나 토론방 반응을 대조하는 게 읽는 재미가 있었고, 이야기든 문장이든 주인공의 결말을 계속 궁금하게 만드는 힘도 있었다.

5억 남짓 되는 돈을 만든 게 별 거 아닌 듯 보여도, 그걸 몇 달, 몇 주 만에 만들어 낸 건 마술 같은 일이다. 반대로 그렇게 5억 남짓 되는 돈을 잃는 것도 몇 분 몇 초만에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이제는 5억 가지고는 딱히 인생을 극적으로 바꾸지 못한다. 그러니까 욕심부리지 말아야지. 내가 5억 남짓의 현금을 모으려면 앞으로도 몇 년이 더 걸릴 것이다. 소설 속 화자가 부모 집에 얹혀 살면서 학교도 때려치우고 다른 걸릴 것 없이 인생 모 아니면 도에 건 것처럼 나는 살 수가 없다. 나 자신을 비롯해 부양하고 돌봐야 할 것들이 많으니까. 그래도 꿈은 꾼다. 수단이 무엇이든 10억이 모이면 나는 더 이상 내가 하고 싶지 않은 방식의 노동은 안 할 것이다. 가끔 일용직 노동이나 규칙적이고 안정적이지 않은 적은 수입을 주는 노동을 하다 말다 할 것이라고… 웃기는 소리다. 퍽이나 그러겠다.

담배 냄새는 내 코가 익숙해진 건지, 이전 독자가 책 앞부분을 읽을 때만 뻑뻑대다가 읽다 만 건지, 재미있어서 불붙이는 것도 잊고 산뜻하게 다 읽어내려간 건지, 중고책의 히스토리는 궁금해도 알 수가 없다. 그건 몰라도, 모를 뻔했던 어떤 마음, 자신의 욕망을 어린 나이에 밑바닥까지, 하늘 뚫을 때까지 들여다 본 사람을 간접적으로 또 들여다 보는 기회는 나쁘지 않았다. 난 저 나이에 뭐했더라… 과외 아르바이트하고 교생 나가고 임용고사 준비하고 있었다. 초수는 떨어졌지만… 만원 짜리 아이라이너 하나 사면서도 물욕 물욕! 하면서 자책하고 살았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욕망은 내 선택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 건지도 잘 모르겠다. 상황과 맥락과 관계 자체가 그냥 여기에 머무르라고, 거기까지만 바라라고, 혹은 더 바라라고 붙들어 놓기도 한다.

+밑줄 긋기
-그래서 나는 언젠가 미국이 그런 것처럼 한국도 코로나19에 뒤덮일 거라고, 이들을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확진자 신세가 될 거라고 상상해 보았다. 그때가 되면 비난 여론은 존재하지도 않았떤 것처럼 사라질 것이다. 관람석의 무대로 자리를 옮긴 순간, 사람은 좋든 싫든 간에 남의 복잡성이 자신의 것과 동등함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확진자들은 칠칠맞게 돌아다닌 모든 사람의 죄를 미리 대속하는 셈이었다. 일찍 운이 나빴다는 이유만으로.
하지만 때가 오기 전까지는 비난이 이어질 테고, 분위기가 바뀌더라도 선뜻 사과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였다.(82, 내가 괴롭던 지점이었다. 내가 속한 자치구는 동선 공개를 열심히 하다가 지자체 공무원이 감염자가 되자 동선 공개를 일찌감치 중단했었다.)

-유가 폭락은 단순한 숫자놀음이 아니었고, 정말로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었다. 거대한 시소의 끄트머리에 선 느낌이었다. 한쪽에는 세계의 모든 고통이 모였고 반대편에는 그 고통을 발판 삼아 더 높이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101)

-단타 계약부터 청산하는 순간 세계를 뒤덮은 휘광의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려서 그 부스러기가 내 품으로 날아드는 심상이 번뜩였다. 나는 헐떡이듯 웃기 시작했다.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서 속삭임도 섞여 들렸다. 남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면 안 돼. 안 되는 거야? 왜? 어차피 그 사람들이 벌어 가면 내가 잃을 텐데?(180)

-“일단 인버스는 절대 사지 마. 인버스든 레버리지든 간에, 원자재 ETN은 절대 건드리지 말고 테마주랑 급등주도 하지 말고 안 망할 회사 주식만 사서 모아. 적금 들듯이 조금씩. 반도체 장비 쪽도 좋고, 2차전지도 모멘텀이 크게 올 거고…” (222, 완전 자기가 한 거 반대로 말해주는 거 착한 건가)

-공장에서 사고가 나면 노동자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주가를 먼저 살피는 나쁨. 사람의 총체적인 가치가 소유한 아파트의 가격으로 환산될 수 있다고 믿는 나쁨. 모든 시장은 어떤 이유로든 다르게 나빴고 어떤 이유로든 똑같이 나빴다. (233, 선물쟁이 그것도 인버스만 줄창 타던 새끼가 갑자기 금융 시장의 윤리 쪽으로 눈을 돌리고 ‘뒤늦은 죄책감과 가닿을 곳 없는 후회’(232) 운운하는 게 좀 뜬금 없었다. 작품 시작부터 그런 조짐도 없었고 그냥 마비된 놈처럼 돈 따는 재미에만 반짝이던 애가 다 심드렁해지더니 훅 뭔 깨달음처럼 뻔한 소리를 했다.)

-나는 혹시 엄마를 내 욕망을 추동할 연료로, 최소한의 명분으로 삼아 왔던 건 아닌가. 아버지를 배신한 것처럼 언젠가는 엄마도 버려 버리는 것이 아닌가. 부정적으로 보고 싶지 않았지만, 과학 걱정이라고도 생각했지만 위기감이 엄습했다. (…)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가 인형 뽑기에서 경품을 뽑듯이 나를 주워 들어서 출구로 보내 줄 거라고 믿었어. 하지만 그 누군가가 너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네가 나한테 그 화면을 보여 준 다음에도 그럴 리가 없다고, 지금까지의 기대와 약속이 모두 그랬던 것처럼 금방 배신당할 거라고 중얼거렸지.” (250-251)

-돈은 사실 그 자체로 하나의 주제가 될 수 있지요. 프랑스 철학자인 자크 엘륄의 말을 빌리자면 돈은 객체이기 이전에 인격적인 힘이자 권세의 존재양식이며, 돈으로 말미암은 현상들은 외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 권세란 아마도 욕망과 매매의 힘일 것입니다. (254, 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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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의 기술 - 권력을 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전략전술
쿠르치오 말라파르테 지음, 이성근.정기인 옮김, 문준영 감수해제 / 이책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20260118 쿠르치오 말라파르테.

Manic Street Preachers - Revol
https://youtu.be/vf91dTrLkgA

밀란 쿤데라의 산문집을 보다가 말라파르테의 ‘Kaputt(망가진 세계)’를 알게 되었다. 소설이 궁금해서 마련해 놓았는데, 같은 작가가 쓴‘쿠데타의 기술’이 번역되어 있는 걸 알게 되어 함께 사 뒀다. 망가진 세계는 얼른 읽어보고 싶은 마음과 압도될 것 같은 예감과 불안이 이리저리 싸우다가 자꾸 미뤄뒀다.

재작년 12월3일 밤 열 시 반쯤 우연히 네이버 메인에 들어갔다. 속보-어쩌구 계엄령 선포-하는 제목을 보고 벙쪄서 주위 사람들에게 메신저로 계엄이래...하고 알렸다. 갑자기? 하는 비현실적인 느낌이었고, 미친놈이 진짜로 미쳤군… 했다. 삼일 후에는 언제 그 소동을 벌였냐는 듯 적막한 국회를 보러 여의도로 걸어갔다 왔다. 그 정도였다. 당장 내 안의 재난이 크던 시절이라 바깥의 재난은 크게 와 닿지 않는 마비상태였다. 그런 와중에도 ‘쿠데타의 기술’ 읽어 봐야겠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서 또 일년이 지났다.

부록의 해제를 먼저 읽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어도, 쏟아지는 잠과 무관심을 이기기는 어려웠다. 십여년전에 나의 투쟁도 이렇게 졸다 깨다 뭐라는 거야 미친놈아...하면서 1권을 겨우 보고 2권은 포기한 기억이 났다. 레닌, 트로츠키, 스탈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틑러, 이 정도가 들어본 이름들이었지만 이 자식들이 뭐 어쨌다고… 위대해지고 싶었던 놈들 때문에 엄한 사람들 많이 갈렸을 건데 뭐 어쩌라고… 싶고 재미없었다. 역사 덕후들도 있는데 나는 학교 다닐 때부터 역사에 약했다. 그리고 위인전과 역사책도 대부분 재미가 없었다. 인터넷 강의도 잘 못 듣고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선전이든 연설이든 뭐든 웅장하게 말하는 것에 집중을 못한다. 멀리 떨어져서 저 사람, 머리에 뭘 많이 발랐네...이러고 딴 생각을 한다. 그러니 다행히도 집단 최면에 빠지지는 않겠지만 종교도 우상도 신념도 가지지 못한다.

이 책은 각 장 앞에 해설이 붙어서 말라파르테의 오류를 미리 잡아준다. 여기에서 이미 신뢰할 수 없는 화자, 그렇지만 독특하고 겁없는 떠벌이를 만난다는 생각에 크게 진지하게 읽게 되지 않았다. 1931년에 나온 책이고, 히틀러가 세계대전 일으키기 전이니까 나중에 쪽팔리기도 했을 것 같다. 그래서 1948년판에는 에필로그처럼 길게 자기 자랑도 해놓고 자기 책에 대한 해명도 해놓고 자신이 핍박 받은 것도 길게 풀어놨다.

그러나저러나 나는 너무 졸렸단 말이다. 아저씨들만 잔뜩 나와서 자기들의 꿈을 이루려고 다른 아저씨들을 수단 삼아 부품처럼 이리저리 끌고다니는 게 징그러웠단 말이다. 네놈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럽게 그 시국을 견뎌야 했겠냐… 한 방에 우리를 구해줄 라젠카나 태권브이 같은 건 없다. 한 방에 세상을 자기 걸로 만들고 싶은 욕심쟁이 대마왕들은 많다.


+밑줄 긋기
-근대에서 쿠데타의 문제는 기술적인 문제이다. 반란이란 하나의 엔진이라고 트로츠키는 말한다. 반란을 시동하려면 기술자가 필요하고, 그 기술자만이 엔진을 멈출 수 있다. 이 엔진을 움직이는 것은 한 국가의 정치, 사회, 경제 상태와 무관하다. 반란은 대중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준비를 갖춘, 반란 전술에 따라 훈련받은 소수, 국가의 핵심 기술 서비스를 신속하고 격렬하게 타격할 수 있도록 훈련된 소수에 의해 행해진다. 이 돌격 부대는 전문 노동자, 기계공, 전기 기사, 전신 기사의 집단으로 편성되어야만 한다. 그들은 국가의 기술적 기능을 숙지하고 있는 엔지니어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101, 거의 100년 지난, 변화한 세상에서 이거 진지하게 믿고 쿠데타 시도하는 바보 없지?)

-그러나 무력에 의한 정부 전복에 성공한 후 개헌이나 선거, 국민 투표 등 요식 행위를 동원해 스스로를 합법화하려 시도하지 않은 쿠데타가 과연 역사상 얼마나 존재할까? 정권을 장악한 후 개헌 또는 투표를 통해 지지를 확인받았다고 해서 진정 쿠데타의 합법성이 보장되는 것일까? 말라파르테가 말하는 ‘합법의 한계를 넘지 않는 쿠데타’개념의 자의적 허위성을 비판할 수 있는 부분이다. (192, 합법적 쿠데타는 지드래곤 노래 제목 말고는 없다…)

-카프, 프리모 데 리베라, 피우수트스키, 그리고 어떤 점에서는 히틀러조차 법과 질서의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권력 장악 목적이 자신의 위엄, 권력, 권위를 높이는 데 있었고, 자신들의 반란 동기를 국가의 적이 아니라 종이 되려는 것이라고 정당화하는 반동적 인물들이었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불법화되는 것이었다. 쿠데타 계획을 세울 때, 그들은 나폴레옹이 자신이 범법자로 선언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 창백해졌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다. 의회는 그들의 전술적 목표였고, 그들은 의회를 통해 국가를 전복하고자 했다. 타협과 계략의 게임에 매우 유리한 도구인 입법권은 그들을 헌법적 질서 내에서 기정사실로 편입되도록 도울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혁명적 폭정은 한법적 합법성과 접목될 수 있었다. (195, 국회를 장악하지 않고는 무력 반란 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입장. 국민의 대표들은 이렇게 반역의 수단이 될 수도, 운이 좋으면 헌법 수호자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파시스트들이 벌인 쿠데타란 실상 피 끓는 폭력 혁명, 목숨을 건 영웅적 투쟁이라기보단 이스라엘 쟁윌의 말 처럼 한 편의 희극-혼란의 와중에 유감스러운 사상 사고를 동반하는-에 가까운 경우가 많았다. ‘봉기’는 벌어졌지만 그 봉기를 일으킨 이들도, 그 ‘공격’을 받는 이들도 전체적인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엇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제대로 모르는 채 혼란을 겪었다. (208-209, 정말 싫구만. 뽀개버리고 싶은 말 중에 ‘대의명분‘이 있다.)

-어떤 공식적 연대기 작성자들은 수사학과 문학에 취해서, 파시스트 쿠데타의 극장식 기록을 만들었다. 이것들은 허위다. 아무 위대한 발언도 멋진 자세도, 율리우스 카이사르, 크롬웰이나 보나파르트를 연상시키는 아무 몸짓도 없었다. 로마로 행진한 군단들은 다행히도 갈리아로부터 귀환하는 카이사르의 참전병들이 아니었고, 무솔리니도 로마식 복장을 하지 않았다. 신문 삽화나 공식 회화들은 모두 역사 기록에 나쁜 안내자들이다. (250, 이탈리아 파시스트들 ‘긁’히는 소리가 나는 부분. 과장도 왜곡도 오판도 심한 놈 같긴 한데 담대하게 깔 땐 까는 말라파르테를 보며 이놈도 참 특이하고 겁없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무솔리니 깎아내린 덕분에 이탈리아에서 금서가 된다.)

-히틀러는 독재자, 오늘의 독일 상황에 합당한 ‘여자’다. 그의 여성적 측면은 그의 성공, 군중에 대한 지배력, 그리고 독일 청년들 사이에서 그가 일으킨 열정을 설명해준다. 보통 사람의 눈에 히틀러는 흠 없고, 금욕적이며, 독일 민족에게 필요한 행동이 무엇인지를 해석해주는 신비에 싸인 성자다. 그가 얻은 평판은 카틸리나(음모를 꾸며 반란을 획책하는 인물)로서의 명성이 아니다. (276, 히틀러를 얕잡아 보고 놀리듯이 쭈절쭈절해 놨는데 거기에다 여자를 멸칭처럼 쓰는게 확 깬다…)

-혁명적 행동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려 시도하지 않는 독재자는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자유를 수호할 준비가 되어 있는 서유럽을 결코 굴복시킬 수 없을 것이다. (278, 그 자유를 수호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의 손으로 선출된 총통이 폴란드를 침공하고 유대인을 죽이고 세계 대전을 일으킨다. 말라파르테는 이런 식으로 틀린 예언이나 과거 사건을 실제와 다르게 서술하는 일이 많다. 소설가라면 그것도 괜찮은 장치겠지만 기자였잖아…100년 전에도 기러기가 있었어…)

-어떻게 현대 국가가 전복될 수 있고 어떻게 방어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려는 나의 열망을 탄생시킨 것은 바로 이 불안, 자유를 사랑하는 한 사람에겐 너무나 당연한 이 불안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헤리퍼드 공작 볼링브룩은 “독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그 독이 효과가 있은 후에는, 그 독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는데, 아마도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도 그러할 것이다.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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