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펭귄클래식 59
윌리엄 S. 버로스 지음, 조동섭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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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260122 윌리엄 버로스.


간밤에 꿈을 꾸었다. 연보라-연두 배색의 새 나이키 운동화 한 짝이 다리가 달린 듯 움직여 다가왔다. 신발을 등에 진 커다란 바퀴벌레였다. 징그러워서 신발로 바퀴를 때려 죽이니 주황색 진액 같은 게 나왔고, 이걸 행궈내면 이제 이 신은 내 거다, 한 짝 뿐이지만, 조금 기뻤다. 그런데 그렇게 커다란 바퀴가 하나둘 더 눈에 띄기 시작했다. 한 마리 정도 더 잡았는데 이걸 다 잡으려니 당황스러웠다.
이런 꿈을 AI에게 읊어주고 해몽해보랬다. 바퀴벌레들은 내 산재한 불안, 신발은 그걸 제거/해결하면 얻을 성취, 더 늘어나는 바퀴들은 그러나 끝나지 않을 다른 문제들, 어쩌구 풀이를 해 주었다. 그래, 나같은 걱정형 인간은 아마 평생 박멸하지 못할 바퀴들에 둘러싸여 덜덜 떨며, 내 눈 앞에 가능한 안 나타나길 바라며, 나타나면 또 한숨 쉬고 때려잡으며 계속 살 지 모르겠다.

버로스의 책을 세 권쯤 모았는데 그 중 제일 짧은 ‘퀴어’를 먼저 읽었다. 조금 나이들고 외로운 남자 리가 나와서 마음을 사고 싶지만 몸만 잠시 기댈 수 있는 앨러턴에게 사랑 받지 못해 꺼이꺼이 거리는 이야기였다. 그런 사이에도 둘은 중남미 이곳저곳을 함께 헤매며 야헤라는 텔레파시 쓸 수 있는 이상한 약초를 찾으러 다닌다. 그 여행 자체가 그냥 이상한 꿈 같았다. 술 마시고 약 먹고 남자 꼬시고 헛소리를 중얼대고 그러다가 3인칭이던 소설이 1인칭으로 바뀌고 앨러턴은 가버렸네 영영, 이러고 끝난다.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를 아직 1권 밖에 읽지 못했는데 ‘퀴어’는 그 책이랑 묘하게 느낌이 비슷했다. 그리고 그 책보다 미덕인 건 분량이 짧다는 것이었다. 재미대가리 없이 지루한 여행길을 길게도 써 놓은 ‘길 위에서’에 열광하던 세대가 있다는 것, 그 세대는 이제 꼬부랑 할배 할매가 되었겠고, ‘퀴어’의 멕시코보다는 루시아 벌린의 멕시코가 조금 더 와 닿았다. 왜냐하면 여긴 술집이랑 식당만 나오고 지저분한 아저씨들끼리 안부나 플러팅만 오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툴고 뭔 화장실 변기 물탱크 위에 놓인 누가 읽다가 찢고 코딱지 묻혀 놓고 담배냄새도 밴 것 같은 잡지를 주워 읽는 거마냥 소설이 쿰쿰하고 심지어 재미도 없었다. 책 뒷표지에 펭퀸클래식 슬로건인지 The best books ever written이라고 써 있는데 동의할 수가 없었다. 더 모스트 보링 북 에버. 뿡뿡.

아직 퀴어가 정체성이나 정치적 색깔을 입기 전의 말인 건지 그냥 프릭이나 동급으로 대충 휘갈겨 써 놨네 싶었다. 사랑이 고픈 애늙은이 찌질이를 보는 건 안타깝기도 하지만 예쁘지도 공감가지도 밉지도 않고 그냥 구질구질해서 시간이 아까웠다. 그런데도 뭐 하나라도 건질까 기대하고 끝까지 읽은 나는 꿈 속 바퀴벌레가 가져온 새 운동화 한 짝, 쓸모도 없는 걸 기대하고 있었구나… AI가 그려준 터진 바퀴벌레의 주황 육즙은 마치 아기바퀴들이 잠들어 있는 알 같이 탱글하고 징그러웠다. 거기 비하면 책이 덜 징그러워서 조금 실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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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게 막는 어리석고 평범하며 불만투성이인 사람들에게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를 느꼈다. 리는 혼잣말을 했다. “언젠가 내가 바라는 대로 할 테야. 나에게 조금이라도 격하게 반대하는 도덕적인 개자식이 있으면, 그놈 시체를 강에서 건지게 될 거야.”(122, 애기 같은 놈이다)

-리는 옷을 벗었다. 앨러턴 옆에 누웠다. 그리고 아기 말투로 말했다. “우디 두디 가치 아주 엄청나게 마구 엉망으로 놀면 디게 쪼치 않을까?” 그리고 덧붙였다. “내가 너무 끔찍하게 굴고 있나?”
“정말 그래요.” (125, 방금 애기 같은 놈이랬더니 바로 반응해주는 애놈의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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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1-23 1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버로스 책 저도 3권 모았다가 저하고 맞지 않아 전부 처분했더랬습니다..ㅎㅎ

반유행열반인 2026-01-23 15:03   좋아요 0 | URL
앗 저도 왠지 그런 느낌적 느낌이라 이걸 매몰비용 처리할지 미련하게 꾸역꾸역 읽게 될지 판단이 안 서고 있습니다...ㅎㅎㅎ
 
인버스 - 욕망의 세계
단요 지음 / 마카롱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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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0 단요.

책을 펴자 담배 냄새가 훅 풍겼다. 찝찝하고 더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아직 잘 몰라도 대충 돈과 투기에 대한 책같으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고책을 사서 뭔 향수 뿌렸나? 한 적은 있어도 이런 독서간접흡연은 또 처음이다.

2021년 6월, 금융 투자라는 걸 처음 시작하면서 분산투자랍시고 이거저거 푼푼이 다 사 모았다. 그때 석유에도 투자하고 싶은데, 진짜 선물은 어렵고 무서우니까 삼성WTI원유파생1(Ce)이라는 펀드에 가입했다. 고위험 상품이라서 이걸 사려면 주식을 몇 년 한 것처럼 거짓말 쳐서 투자 성향을 맞춰야 했다. 한 달 동안 총 400만원을 사 모았다. 그러고나서 무슨 전쟁이 터지고 수익률이 저게 맞냐 싶게(+80퍼센트) 올라가는 걸 관망했다. 그때 난 수험생활 중이라 막 적극적으로 뭘 어쩌지 못했...다고는 해도 사실 다른 종목들 뒤지게 사고팔고 많이 했다. 주식해서 공부 못했네. 하여간에 석유 펀드는 네 번에 걸쳐 100만원 언저리씩 분할 매도를 했고, 2024년에 마지막 판매까지 총83만원 정도 수익이 났다. AI에게 연수익률로 따져보라니 7.7퍼센트라고, 은행보다는 나았겠다. 아무리 중간에 얼마까지 올라도 제대로 팔 줄 모르면(늘 매도 시점이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다) 팔자 고치긴 틀린 것이다… 욕심 안 낸 건 잘했지만 사실상 투자라기 보단 방치하다 정리한 수준이다.

투자랍시고 4년 정도 주식이니 ETF니 채권이니 사고 팔고 하다보니 깨달은 점이 있다. 나처럼 수익 못 내는 사람은 그냥 노동력 팔아 임금 받는 게 제일 수익률 높은 벌이란 것이다. 그러느라 몸이랑 마음 갉아 먹는 게 돈으로 못 따져서 그렇지. 그렇다고 투자는 안 갉아 먹냐. 하여간에 돈 자체가 못된 건 아니지만 못됐다. 자본주의 못됐어. 그만 갉아 먹어. 난 부자가 못 됐어.

소설 속 화자는 00인버스 2X WTI원유 선물 ETN이라는 데 투자했다. ‘즉, 기초 자산인 <WTI원유 선물>의 시세가 1퍼센트 내려가면 이 종목은 2퍼센트가 올랐다.’(66) 그렇다고 한다. 나랑 정반대 방향에 투자를 한 셈이다. 나보고 망해라 망해라 했겠군. 시기는 좀 다르다만.

제목만 보고 인생 막장 나락가는 서사를 지레짐작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투자에 대해서 뭐라고뭐라고 막 하는 데 저런 거 하나도 모르는 내가 금융 계좌를 갖고 있는게 애초에 맞나 싶지만, 뭐 안 날려먹으면 그냥 잘한 거래잖아… 소설 속 세계는 악인이랄 것도 없고(정운채가 악인이길 내심 바랐건만 흥) 다들 적당히 평범한데 또 우연과 운은 평범하지 않았다(누가 뭘 믿고 일억을 빌려주니). 화자가 그나마 섬세하고 민감하면서도 자포자기와 절박함이 막 뒤섞여 있어서 입체적이었다. 숫자가 오르락내리락 할 때의 심리 묘사나 토론방 반응을 대조하는 게 읽는 재미가 있었고, 이야기든 문장이든 주인공의 결말을 계속 궁금하게 만드는 힘도 있었다.

5억 남짓 되는 돈을 만든 게 별 거 아닌 듯 보여도, 그걸 몇 달, 몇 주 만에 만들어 낸 건 마술 같은 일이다. 반대로 그렇게 5억 남짓 되는 돈을 잃는 것도 몇 분 몇 초만에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이제는 5억 가지고는 딱히 인생을 극적으로 바꾸지 못한다. 그러니까 욕심부리지 말아야지. 내가 5억 남짓의 현금을 모으려면 앞으로도 몇 년이 더 걸릴 것이다. 소설 속 화자가 부모 집에 얹혀 살면서 학교도 때려치우고 다른 걸릴 것 없이 인생 모 아니면 도에 건 것처럼 나는 살 수가 없다. 나 자신을 비롯해 부양하고 돌봐야 할 것들이 많으니까. 그래도 꿈은 꾼다. 수단이 무엇이든 10억이 모이면 나는 더 이상 내가 하고 싶지 않은 방식의 노동은 안 할 것이다. 가끔 일용직 노동이나 규칙적이고 안정적이지 않은 적은 수입을 주는 노동을 하다 말다 할 것이라고… 웃기는 소리다. 퍽이나 그러겠다.

담배 냄새는 내 코가 익숙해진 건지, 이전 독자가 책 앞부분을 읽을 때만 뻑뻑대다가 읽다 만 건지, 재미있어서 불붙이는 것도 잊고 산뜻하게 다 읽어내려간 건지, 중고책의 히스토리는 궁금해도 알 수가 없다. 그건 몰라도, 모를 뻔했던 어떤 마음, 자신의 욕망을 어린 나이에 밑바닥까지, 하늘 뚫을 때까지 들여다 본 사람을 간접적으로 또 들여다 보는 기회는 나쁘지 않았다. 난 저 나이에 뭐했더라… 과외 아르바이트하고 교생 나가고 임용고사 준비하고 있었다. 초수는 떨어졌지만… 만원 짜리 아이라이너 하나 사면서도 물욕 물욕! 하면서 자책하고 살았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욕망은 내 선택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 건지도 잘 모르겠다. 상황과 맥락과 관계 자체가 그냥 여기에 머무르라고, 거기까지만 바라라고, 혹은 더 바라라고 붙들어 놓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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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언젠가 미국이 그런 것처럼 한국도 코로나19에 뒤덮일 거라고, 이들을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확진자 신세가 될 거라고 상상해 보았다. 그때가 되면 비난 여론은 존재하지도 않았떤 것처럼 사라질 것이다. 관람석의 무대로 자리를 옮긴 순간, 사람은 좋든 싫든 간에 남의 복잡성이 자신의 것과 동등함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확진자들은 칠칠맞게 돌아다닌 모든 사람의 죄를 미리 대속하는 셈이었다. 일찍 운이 나빴다는 이유만으로.
하지만 때가 오기 전까지는 비난이 이어질 테고, 분위기가 바뀌더라도 선뜻 사과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였다.(82, 내가 괴롭던 지점이었다. 내가 속한 자치구는 동선 공개를 열심히 하다가 지자체 공무원이 감염자가 되자 동선 공개를 일찌감치 중단했었다.)

-유가 폭락은 단순한 숫자놀음이 아니었고, 정말로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었다. 거대한 시소의 끄트머리에 선 느낌이었다. 한쪽에는 세계의 모든 고통이 모였고 반대편에는 그 고통을 발판 삼아 더 높이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101)

-단타 계약부터 청산하는 순간 세계를 뒤덮은 휘광의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려서 그 부스러기가 내 품으로 날아드는 심상이 번뜩였다. 나는 헐떡이듯 웃기 시작했다.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서 속삭임도 섞여 들렸다. 남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면 안 돼. 안 되는 거야? 왜? 어차피 그 사람들이 벌어 가면 내가 잃을 텐데?(180)

-“일단 인버스는 절대 사지 마. 인버스든 레버리지든 간에, 원자재 ETN은 절대 건드리지 말고 테마주랑 급등주도 하지 말고 안 망할 회사 주식만 사서 모아. 적금 들듯이 조금씩. 반도체 장비 쪽도 좋고, 2차전지도 모멘텀이 크게 올 거고…” (222, 완전 자기가 한 거 반대로 말해주는 거 착한 건가)

-공장에서 사고가 나면 노동자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주가를 먼저 살피는 나쁨. 사람의 총체적인 가치가 소유한 아파트의 가격으로 환산될 수 있다고 믿는 나쁨. 모든 시장은 어떤 이유로든 다르게 나빴고 어떤 이유로든 똑같이 나빴다. (233, 선물쟁이 그것도 인버스만 줄창 타던 새끼가 갑자기 금융 시장의 윤리 쪽으로 눈을 돌리고 ‘뒤늦은 죄책감과 가닿을 곳 없는 후회’(232) 운운하는 게 좀 뜬금 없었다. 작품 시작부터 그런 조짐도 없었고 그냥 마비된 놈처럼 돈 따는 재미에만 반짝이던 애가 다 심드렁해지더니 훅 뭔 깨달음처럼 뻔한 소리를 했다.)

-나는 혹시 엄마를 내 욕망을 추동할 연료로, 최소한의 명분으로 삼아 왔던 건 아닌가. 아버지를 배신한 것처럼 언젠가는 엄마도 버려 버리는 것이 아닌가. 부정적으로 보고 싶지 않았지만, 과학 걱정이라고도 생각했지만 위기감이 엄습했다. (…)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가 인형 뽑기에서 경품을 뽑듯이 나를 주워 들어서 출구로 보내 줄 거라고 믿었어. 하지만 그 누군가가 너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네가 나한테 그 화면을 보여 준 다음에도 그럴 리가 없다고, 지금까지의 기대와 약속이 모두 그랬던 것처럼 금방 배신당할 거라고 중얼거렸지.” (250-251)

-돈은 사실 그 자체로 하나의 주제가 될 수 있지요. 프랑스 철학자인 자크 엘륄의 말을 빌리자면 돈은 객체이기 이전에 인격적인 힘이자 권세의 존재양식이며, 돈으로 말미암은 현상들은 외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 권세란 아마도 욕망과 매매의 힘일 것입니다. (254, 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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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의 기술 - 권력을 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전략전술
쿠르치오 말라파르테 지음, 이성근.정기인 옮김, 문준영 감수해제 / 이책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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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8 쿠르치오 말라파르테.

Manic Street Preachers - Revol
https://youtu.be/vf91dTrLkgA

밀란 쿤데라의 산문집을 보다가 말라파르테의 ‘Kaputt(망가진 세계)’를 알게 되었다. 소설이 궁금해서 마련해 놓았는데, 같은 작가가 쓴‘쿠데타의 기술’이 번역되어 있는 걸 알게 되어 함께 사 뒀다. 망가진 세계는 얼른 읽어보고 싶은 마음과 압도될 것 같은 예감과 불안이 이리저리 싸우다가 자꾸 미뤄뒀다.

재작년 12월3일 밤 열 시 반쯤 우연히 네이버 메인에 들어갔다. 속보-어쩌구 계엄령 선포-하는 제목을 보고 벙쪄서 주위 사람들에게 메신저로 계엄이래...하고 알렸다. 갑자기? 하는 비현실적인 느낌이었고, 미친놈이 진짜로 미쳤군… 했다. 삼일 후에는 언제 그 소동을 벌였냐는 듯 적막한 국회를 보러 여의도로 걸어갔다 왔다. 그 정도였다. 당장 내 안의 재난이 크던 시절이라 바깥의 재난은 크게 와 닿지 않는 마비상태였다. 그런 와중에도 ‘쿠데타의 기술’ 읽어 봐야겠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서 또 일년이 지났다.

부록의 해제를 먼저 읽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어도, 쏟아지는 잠과 무관심을 이기기는 어려웠다. 십여년전에 나의 투쟁도 이렇게 졸다 깨다 뭐라는 거야 미친놈아...하면서 1권을 겨우 보고 2권은 포기한 기억이 났다. 레닌, 트로츠키, 스탈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틑러, 이 정도가 들어본 이름들이었지만 이 자식들이 뭐 어쨌다고… 위대해지고 싶었던 놈들 때문에 엄한 사람들 많이 갈렸을 건데 뭐 어쩌라고… 싶고 재미없었다. 역사 덕후들도 있는데 나는 학교 다닐 때부터 역사에 약했다. 그리고 위인전과 역사책도 대부분 재미가 없었다. 인터넷 강의도 잘 못 듣고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선전이든 연설이든 뭐든 웅장하게 말하는 것에 집중을 못한다. 멀리 떨어져서 저 사람, 머리에 뭘 많이 발랐네...이러고 딴 생각을 한다. 그러니 다행히도 집단 최면에 빠지지는 않겠지만 종교도 우상도 신념도 가지지 못한다.

이 책은 각 장 앞에 해설이 붙어서 말라파르테의 오류를 미리 잡아준다. 여기에서 이미 신뢰할 수 없는 화자, 그렇지만 독특하고 겁없는 떠벌이를 만난다는 생각에 크게 진지하게 읽게 되지 않았다. 1931년에 나온 책이고, 히틀러가 세계대전 일으키기 전이니까 나중에 쪽팔리기도 했을 것 같다. 그래서 1948년판에는 에필로그처럼 길게 자기 자랑도 해놓고 자기 책에 대한 해명도 해놓고 자신이 핍박 받은 것도 길게 풀어놨다.

그러나저러나 나는 너무 졸렸단 말이다. 아저씨들만 잔뜩 나와서 자기들의 꿈을 이루려고 다른 아저씨들을 수단 삼아 부품처럼 이리저리 끌고다니는 게 징그러웠단 말이다. 네놈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럽게 그 시국을 견뎌야 했겠냐… 한 방에 우리를 구해줄 라젠카나 태권브이 같은 건 없다. 한 방에 세상을 자기 걸로 만들고 싶은 욕심쟁이 대마왕들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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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에서 쿠데타의 문제는 기술적인 문제이다. 반란이란 하나의 엔진이라고 트로츠키는 말한다. 반란을 시동하려면 기술자가 필요하고, 그 기술자만이 엔진을 멈출 수 있다. 이 엔진을 움직이는 것은 한 국가의 정치, 사회, 경제 상태와 무관하다. 반란은 대중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준비를 갖춘, 반란 전술에 따라 훈련받은 소수, 국가의 핵심 기술 서비스를 신속하고 격렬하게 타격할 수 있도록 훈련된 소수에 의해 행해진다. 이 돌격 부대는 전문 노동자, 기계공, 전기 기사, 전신 기사의 집단으로 편성되어야만 한다. 그들은 국가의 기술적 기능을 숙지하고 있는 엔지니어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101, 거의 100년 지난, 변화한 세상에서 이거 진지하게 믿고 쿠데타 시도하는 바보 없지?)

-그러나 무력에 의한 정부 전복에 성공한 후 개헌이나 선거, 국민 투표 등 요식 행위를 동원해 스스로를 합법화하려 시도하지 않은 쿠데타가 과연 역사상 얼마나 존재할까? 정권을 장악한 후 개헌 또는 투표를 통해 지지를 확인받았다고 해서 진정 쿠데타의 합법성이 보장되는 것일까? 말라파르테가 말하는 ‘합법의 한계를 넘지 않는 쿠데타’개념의 자의적 허위성을 비판할 수 있는 부분이다. (192, 합법적 쿠데타는 지드래곤 노래 제목 말고는 없다…)

-카프, 프리모 데 리베라, 피우수트스키, 그리고 어떤 점에서는 히틀러조차 법과 질서의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권력 장악 목적이 자신의 위엄, 권력, 권위를 높이는 데 있었고, 자신들의 반란 동기를 국가의 적이 아니라 종이 되려는 것이라고 정당화하는 반동적 인물들이었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불법화되는 것이었다. 쿠데타 계획을 세울 때, 그들은 나폴레옹이 자신이 범법자로 선언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 창백해졌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다. 의회는 그들의 전술적 목표였고, 그들은 의회를 통해 국가를 전복하고자 했다. 타협과 계략의 게임에 매우 유리한 도구인 입법권은 그들을 헌법적 질서 내에서 기정사실로 편입되도록 도울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혁명적 폭정은 한법적 합법성과 접목될 수 있었다. (195, 국회를 장악하지 않고는 무력 반란 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입장. 국민의 대표들은 이렇게 반역의 수단이 될 수도, 운이 좋으면 헌법 수호자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파시스트들이 벌인 쿠데타란 실상 피 끓는 폭력 혁명, 목숨을 건 영웅적 투쟁이라기보단 이스라엘 쟁윌의 말 처럼 한 편의 희극-혼란의 와중에 유감스러운 사상 사고를 동반하는-에 가까운 경우가 많았다. ‘봉기’는 벌어졌지만 그 봉기를 일으킨 이들도, 그 ‘공격’을 받는 이들도 전체적인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엇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제대로 모르는 채 혼란을 겪었다. (208-209, 정말 싫구만. 뽀개버리고 싶은 말 중에 ‘대의명분‘이 있다.)

-어떤 공식적 연대기 작성자들은 수사학과 문학에 취해서, 파시스트 쿠데타의 극장식 기록을 만들었다. 이것들은 허위다. 아무 위대한 발언도 멋진 자세도, 율리우스 카이사르, 크롬웰이나 보나파르트를 연상시키는 아무 몸짓도 없었다. 로마로 행진한 군단들은 다행히도 갈리아로부터 귀환하는 카이사르의 참전병들이 아니었고, 무솔리니도 로마식 복장을 하지 않았다. 신문 삽화나 공식 회화들은 모두 역사 기록에 나쁜 안내자들이다. (250, 이탈리아 파시스트들 ‘긁’히는 소리가 나는 부분. 과장도 왜곡도 오판도 심한 놈 같긴 한데 담대하게 깔 땐 까는 말라파르테를 보며 이놈도 참 특이하고 겁없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무솔리니 깎아내린 덕분에 이탈리아에서 금서가 된다.)

-히틀러는 독재자, 오늘의 독일 상황에 합당한 ‘여자’다. 그의 여성적 측면은 그의 성공, 군중에 대한 지배력, 그리고 독일 청년들 사이에서 그가 일으킨 열정을 설명해준다. 보통 사람의 눈에 히틀러는 흠 없고, 금욕적이며, 독일 민족에게 필요한 행동이 무엇인지를 해석해주는 신비에 싸인 성자다. 그가 얻은 평판은 카틸리나(음모를 꾸며 반란을 획책하는 인물)로서의 명성이 아니다. (276, 히틀러를 얕잡아 보고 놀리듯이 쭈절쭈절해 놨는데 거기에다 여자를 멸칭처럼 쓰는게 확 깬다…)

-혁명적 행동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려 시도하지 않는 독재자는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자유를 수호할 준비가 되어 있는 서유럽을 결코 굴복시킬 수 없을 것이다. (278, 그 자유를 수호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의 손으로 선출된 총통이 폴란드를 침공하고 유대인을 죽이고 세계 대전을 일으킨다. 말라파르테는 이런 식으로 틀린 예언이나 과거 사건을 실제와 다르게 서술하는 일이 많다. 소설가라면 그것도 괜찮은 장치겠지만 기자였잖아…100년 전에도 기러기가 있었어…)

-어떻게 현대 국가가 전복될 수 있고 어떻게 방어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려는 나의 열망을 탄생시킨 것은 바로 이 불안, 자유를 사랑하는 한 사람에겐 너무나 당연한 이 불안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헤리퍼드 공작 볼링브룩은 “독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그 독이 효과가 있은 후에는, 그 독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는데, 아마도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도 그러할 것이다.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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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팡 떼리블 창비세계문학 48
장 콕토 지음, 심재중 옮김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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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7 장 꼭또.

빅뱅-우리 사랑하지 말아요
https://youtu.be/9jTo6hTZmiQ


자매끼리는 원수처럼 지냈고, 지금도 데면데면하다. 어려서부터 가까이에서 오래도록 만난 이성은 사촌들이었다. 할머니댁 또는 외할머니댁 아궁이 땐불에 지글지글 끓는 방바닥에서 우리들은 새끼 강아지들처럼 엉겨 잠들었다. 남의 가슴팍에 머리를 푹 파묻는 놈, 속옷을 갈아입어야 한다고 아침부터 난리인데 오줌싼 건 아니라고 난처해하는 놈, 같이 심부름 간 구멍가게에서 몰래 콜라 하나를 사서 한 입 한 입 나눠 먹고는 묘한 웃음을 나누기도 했고, 시골에서 읍내까지 물길따라 하얀 왜가리 백로 물고기 잡아 먹는 걸 함께 보며 허리춤을 붙잡고 자전거 뒷자리에 마냥 매달려가는 그 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길 잠시 바라기도 했다.
어떤 사랑은, 정도를 넘어선 친밀감은 위험한 것이라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능으로 알았다. 이제는 십수년 가까이 만난 적 없는 비슷한 유전자를 나눈 나만큼 어렸던 이들. 사촌끼리도 끌어 당김을 느끼면 이 사랑은 혼날 것이라는 걸 아는데, 남매 간이라면 어떨까. 서로를 징그러운 뭔가로 대하며 으르렁거리고 점차 분리될 수 있다면 그럭저럭 평온한 삶을 살겠다. 그게 잘 안 된다면, 그게 증오인지 사랑인지 분간조차 안 된다면, 끝은 파멸 뿐일까? 어디로 멀리 도망쳐서 다행히도 열성 유전의 고통 겪지 않는 조카이면서 자식인 아이를 키우며 사는 삶도 없진 않을 것 같다. ‘원형의 전설’을 읽을 차례인가 보다.
흙투성이 눈덩이 같은 독약에 얻어 맞아 두 번 죽어가는 뽈, 영원한 병자인 남동생을 돌보며 자기 품에서 놓고 싶지 않은 엘리자베뜨, 괜히 그 사이에 끼어 어긋난 운명이 매듭지어 놓은 제라르와 아가뜨, 이들이 엉겨 게임하던 석고흉상과 보물상자가 놓인 방처럼 이야기도 난장판이었다. 여기서는 이 사랑의 완성은 죽음이에요, 했다. 얘들 뭐하는 거냐 싶은 내가 정상이겠지...비정상이면 또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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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인 사람들이라면 아연실색하고 말 그런 가정들, 그런 삶들이 있다. 기껏해야 2주일을 넘길 수 없을 것 같은 무질서가 여러해 동안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예상과는 전혀 딴판으로 그런 문제적인 가정들, 문제적인 삶들도 온전하게 빈번하게, 비상식적으로 지속된다. 그럼에도 이성이 틀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의 힘이, 그것도 힘이라면, 서둘러 그런 삶들을 전락을 향해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79)

-그는 자기 이름을 소리쳐 부르고 있는 키 큰 여인, 자기 누이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남자의 쾌감을 기다리느라 자신의 쾌감을 늦추는 연인처럼, 엘리자베뜨도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은 채 동생의 치명적인 절정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고, 자기를 따라잡으라고 그에게 외치고 있었고, 두 사람이 마침내 죽음에 속하게 될 그 찬란한 순간을 예감하며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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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
박상륭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20260115 박상륭.
 

 
(문요어: 중원인들의 고전 ‘산해경’에 나온다. ‘...태산이라는 곳에는, 문요어가 있는데, 생김새가 잉어 같고, 물고기 몸에 새의 날개가 있으며, 푸른 무늬와, 흰 머리에 붉은 주둥이를 하고 있다. ...낮이면 날아다닌다. 그 소리는 난계 같고 맛은 신데, 이것을 먹으면 미친병을 낫게 할 수 있다. 이것이 나타나면 대풍이 든다.’(2128, 정재서 역 민음사, 89 재인용))
 
 박상륭 장편 읽기 여정이 아마도 끝났다. ‘죽음의 한 연구’(재독), ‘칠조어론’, ‘잡설품’, 그리고 새해 특집으로다가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까지 읽었다. 마지막 책은 이전에 서두를 읽기 시작하다가 힘들어 놓아 두었다가 다시 읽었다. 오랜만에 박상륭을 읽으니까 아, 어렵고 지루해 뒤지겠는데 그런데도 마치 고향에 온 듯했다. 나는 진짜 고향에 가도 거긴 이제 아무 것도 없고 정도 없고 의절한 사람 몇과 거친 과거의 기억만 남아서 별 감흥이 없지만, 이 익숙한 문체와 세계관은 하여간에 반가웠다. 그런데 친구에게 이 책 읽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번역될 수 없고 미래 독자들에게 많이 가닿지 않을 이야기들에 대해 말하다보니, 그 쓰잘 데 없음에 대해 동조해 버려서 약간 김이 빠지기도 했다. 나는 참 쓰잘 데 없는데 내 시간과 집중을 갈아 넣고 있구나… 무맛의 곤약을 마구 퍼먹고 있구나… 그래도 이거 자기 좋으라고 쓴 것만은 아니고 나중에 올 여래/미래 독자에게 열심히 말도 걸고 대답도 해놓고 설명도 해놓고 그랬다고, 해 봤자 그 미래가 한 줌도 아니고 한 톨쯤 될 나같은 빙충맞은 독자여서 그래 그게 다 뭐람...락 이즈 데드..,소설 이즈 데드… 그러면서도 꾸역꾸역 마저 읽었다.
 
 자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신을 죽이고 기독교를 까대고 초인 선언을 했던 자라투스트라를, 호기롭게도 박상륭 선생은 이상한 가학증 환자처럼 괴롭히다가 죽여버린다. 일단 절친 독수리와 뱀을 졸라 죽이고 태워버리고 길을 떠나게 한다. 하산의 길이다. 그러다 만난 늙은이 앞에서 지루하게, 신이 어때서 설마 죽었겠냐 죽인게 잘 한 짓이겠냐, 하고 설교들을 땐 한마디 입도 달싹이지 못하고 바위에 묶인 귀처럼 멍청 듣고만 있게 한다. 산 아래에서는 거지에게 밥 몇 술 얻어 먹고는 중요 부위 가리던 다 낡은 천쪼가리도 뺏기고, 그리워 다가간 인간들에게는 온갖 멸시와 조롱을 당하다가 하필이면 간 날이 장날이라 곡마단 오는 날 곡예사가 다쳐 제대로 된 쇼를 못 보게 된 마을 사람들이 폭동 일으키다 권력자에게 진압된 날이 그가 하산한 날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속죄양마냥 돌을 던져 초인이다가 다시 인간이 되려던 되었던 존재를 죽여 버린다. 산에서 나온 이 남자의 유언은 강과 바다가 닿은 데에다 장사 지내 줘라...이런 거고 이걸 유지로 받든 이는 역설적으로 성직자이다.
 
 아직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를 읽지 않은 채 이 책을 읽어서 한 번 더 걸러 걸러 건너 건너 들은 이야기라 이게 맞나, 모르겠다. 긴 각설이타령은 일단 풀어 놓고 가신 건 다 봤고, 누군가 읽겠다 하면 ‘죽음의 한 연구’나 ‘칠조어론’까지는 도전해보라 하겠지만, 뒤에 두 권은 사실 잘 모르겠다. 앞의 둘에 비해 읽는 고통을 참을 만큼 즐거운 읽기까지는 못 된다. 늙음과 죽음 앞에서는 초인까지도 사실 초인이 아니었고 우리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미약자, 소립자, 그렇게 쭈그러드는 게 인지상정인가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소설마저 작가의 말년과 함께 그렇게 쪼그라든 느낌이 없지 않았다.
 아직 안도하기엔 이르다. 산문집이랑, 중단편전집이 떡 버티고 있으니까...제일 큰봉우리는 넘었지만 자잘하게 읽을 거리들이 남아 신나고 괴롭다. 유기징역이지만 징역 2월도 괴롭긴 괴로운 것… 스스로 갇힌 감옥이래도 괴롭긴 마친가지이다. 이놈의 피학성 유희 같은 독서는 좀 던져버리면 좋겠는데 입 속의 마시멜로 같이 말랑하고 폭신하게 씹히는 책은 영 못 읽는 병에 걸렸다. 
 
 
+밑줄 긋기
-‘정통’이라는 모태는 불모라는 것입네다. 정통 쪽에서 이르는 ‘이단’은, 모두 간음의 자식이거나, 서자들입네다. 마찬가지로, 어느 천재적 대가의 어록도, 그것을 잘 읽고, 잘 소화했을 때, 하나의 ‘정통’이 세워지게 될 터입네다만, 그 오독 내지는, 몰이해를 통해, 서자들이 우후죽순으로 버글여 나타날 터입네다. 이 늙은네도 그래서, 공이 뽑아 심은 ‘신의 이빨’에서 까여져 나온 새기 독룡이라는 얘기를 드렸던 것이외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러니 이 늙은네는, 공의 설법을, 공의 의도대로 이해치 못한, 그 오독이나 몰이해, 또는 곡해의 결과라고 치부하시면 될 터입네다. ‘정통이라는 모태는 불모’여서, 사실은 새로 태어나는 자식들에 대해, 늙은 계모 같은 것일지도 모릅네다. 좋은 의미에서나 나쁜 의미에서나, 인류사의 변전은, 이 서자들에 의해 이뤄져 온다는 것을 고려해주셨으면 합네다.(2007-2008)
 
-늙은네는, 잠시 말을 멈추고 이미 여러 차례나 해버린 말을 다시 반복한 것이나 아니었는가, 그것을 반성해보고 있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어떤 말은, 반복을 통해서만, 그 의미가 더 강조된다고, 스스로 위로를 꾸며낸 듯, 다시 시작했다. (2035, 이 바로 앞에 읽으면서 뭐야 왜 했던 말 또 해? 했더니 즉답해주는 저자여...죽어서도 친절하네)
 
-Nune Scripsi Totum Pro Homo Da Mihi Potum! :나는 인간에 대하여 너무 많은 말을 하였도다, 술 한잔 내게람!‘의 뜻이라고 하나, (2066, 이건 누가 한 말이야? 하고 제미나이에게 물으니 원래 사람, 이라는 자리에 그리스도, 가 들어가고 책 열심히 필사하던 수도사들이 여백에 끄적이는 낙서 같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언어란 그러고 보면, 중년 훨씬 지난 놈팽이모양, 제 계집과의 상관에서는 시랑토 못 하면서, 남의 계집 발가락 새 휘집어 드는 일엔 된장을 싸매고 덤비는 것모양, 즐비하게 널려 있는 사물이나 존재도 다 표현해내지 못하면서, 보이지도 않는 우주적 대력들의 불알도 까고, 공알도 뽑아낸다. 두려운 것은, 그것의 전와력이다. (2070, 패설가의 언어론은 비유도 참 상스러운 것. 전와력의 와는 그릇될 와訛, 와전할 때 그 와이다.)
 
-어느 날, 저 자식은, 이 푸타나의 품에 안겨, 비등하는 피뿐만 아니라, 골까지 빨리고 있음을 발견할 테다. 그리고 이 어미는, 자식이 병든, 황폐한 껍질만 남았을 때, 퉤 뱉어버려 버릴 것이다. 그가 버려진 자리에, 그의 늙은 어미의 자애로운 품이 열려 있다. 자식은, 당분간, 죽음에의 욕망이 차오를 때까진, 괄약근이 느슨한, 이 늙은 마누라의 품을 떠나려하지는 않을 테다. 역의 균형은, 그렇게 이뤄지는 것이 탈이다. 괄약근이 느슨한, 어미의 가슴을 차고 일어나는 자식에게, 그 어미를 배반해야 하는 데는, 꼭히 ‘명분’이 있어야 되는 건 아니다. 그 자식은, ‘균형 잡기’라는 그 역, 그 달마에 묶인 망석중일 뿐인 것이다. 상극적 질서 체계 속에서는, 유위도 무위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푸타나의 품으로 달려가는 자식에게, 늙은 어미의 자비를 들어, 만류하려 드는 일은, 나타나 보이기에는 긍정적이며, 정당하고, 아름답되, 실제에 있어서는, 그것이야말로 부정적 참전이라고, 독단한다 해도 과언은 아닐 테다. 인간은, 푸타나 품에서도 못 살지만, 늙은 여신의 품도 오래 견뎌내지를 못하는, 역의 균형대 위에 올려진, 위험한 줄타기 광대이기 때문이다. (2172, 이놈의 모지란 남성적 인간. 폭도가 되는 것도 일탈 욕망도 다 남탓. 그런데 요즘 내가 공감할 만한 환상.)
 
-‘유행’이란 말은 ‘흘러 바뀐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듯하되, 이래서 보면 ‘유행’이라는 것도, 흐름을 솔려놓은 역괘와도 비슷한 것이구나, ‘솔아 있음’이 바뀌는 것이구나. 역의 회귀, 되풀이되는 솔음(2173, 그래서 반유행 해봤자 레트로 되는 거냐...아휴)
 
-산로는, 허긴 고득의 까닭이었겠지, 자기가 그렇게도 못 잊어 했으며, 경애까지 바쳐, 그 품에 안겨, 삶을 쉬고 싶다고 했던, 그 대지, 인간의 대지의 한가운데 처해서, 구토로 목젖을 꼴록거리며, 뒤를 잘못 돌아본 이는, ‘롯의 아내’ 만은 아니었던 듯싶다고, 새로, 고향, 그 산정의 고독을, 그리워했다. 그러며, 혼자였을 떄 나는, 인간을 사랑한다며, 다시금 인간이 되려 하강하련다, 고 하지 안 했던가, 라고, 자신을 추슬러보려고도 했다. (2174, 초인 무르려다 좆된 모성 모씨)
 
-인간은 뛰어넘어야 할 어떤 것이라고, 그래서 자기는 인간을 사랑한다고 믿어왔었는데, 자기가열심히 사랑해온 인간은, 결국은 자기 자신뿐이 아니었는가-회한이 그를 쳐댔다. (2175)
 
-전에 나는, 이 세상은, 끝날까지 그 끝을 보기 위해서라도, 돌아오고 또 돌아와, 죽어도 좋을 만큼 살아볼 만큼, 대지는 뜨듯하고 온화해서 좋은 데다, 세계는, 명주로 안 댄 풍더분한 옷처럼, 포근하게 감싸준다고 여겼으나,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는지, 스스로도 의문이리라. 살이 닿는 자리는 견딜 수 없이 싸늘하고, 사람들의 정이 닿은 자리에서는, 피와 걸이 흘러내리고 있는도다. 오 회귀의 바퀴여, 시간이여, 구르기를 멈추라! 생명의 불이여, 기름이 다했은 즉, 이제는 꺼질지어다, 더 타오르지 말지어다!(2178, 육조인지 칠조인지 입에서 설법했던 내용에도 있던 것 같은데, 오래전부터 나도 다짐하길 죽으면 다시 태어나지 말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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