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전집 2 : 소돔 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 사드 전집 2
D. A. F. 드 사드 지음, 성귀수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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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9 D.A.F.드 사드. 재독.

사드의 소설에 붙은 해설이나 해설서들은 자꾸 내게 묻는다. 왜 사드를 읽냐고. 나도 잘 모르겠는데? 아마 처음에는 궁금했기 때문일텐데, 정작 다들 고약하다고 하면서도 제대로 읽었단 사람은 못 들어봐서 그럼 제가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하고 굳이 자기 희생은 개뿔.
이번에 느낀 건 이 책을 읽으면 역설적으로 평온해진다는 것이다. 이 있을 법하지 않은, 역겨운 상상력이 만들어낸 수많은 고통과 희생이 오히려 현실의 괴로움과 불안과 걱정을 마비시켰다. 그런 부수적인 효과가 있다.

반대로 사드는 왜 이걸 썼을까, 혼자 상상했다. 나와 변기통과 흰두루마리. 세 친구만 덩그러니(아 엉덩이용 도구도 포함해야 하나…) 바스티유 독방에 갇혀 언제 나갈지도 모르고, 바람벽만 바라보며 뭘 어떻게 할지 몰라 미쳐갔을 똑똑하고 지독한 이놈은 하루종일 혹은 며칠을 비워지지 않는 변기통 속 똥과 함께 오래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의 한가운데에는 유독 분변애호의 변태 행위가 많다. 치워지지 않는 것이라면 무감해지거나 사랑해야지 별 수 있었겠어. 그리고 부자유의 분노는 어디로든 향해서, 날 이렇게 만든 놈들, 다 고문하고 강간하고 죽이고 싶다, 그런 상상만 거듭했겠지.

어쩌면 리베르탱으로 대표되는 공작, 주교, 판사, 징세관리인은 구체제의 모순을 떠받치는 원흉들이자, 사드를 가둬놓은 권력자들의 표상일지도 모르겠다. 사드놈도 후작이긴 하지만, 죄수는 죄수인 거고 자유도 뭐도 없고. 날 가둔 이놈들 똥이나 처먹어라, 싶었을 것이고, 자신이 겪는 고통이 이놈들이 가하는 고통이나 비슷하고 부당하다 싶었을 수도 있겠다. 이렇게 쓸데 없이 빌런의 마음이 되어 보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이건 위로가 될 때도 있지만(왜?) 대개는 그 과정에서 기분이랑 마음이랑 뇌가 상한다…

2월 되고도 완독한 책이 오래도록 없던 건, 이렇게 ‘소돔120일’과 ‘말레이제도’ 각 500여쪽, 700여쪽 되는 두 권을 자기학대, 자기치유 번갈아가며 냉탕 온탕 열탕 쑥탕 했기 때문이다. 2013년 다른 번역판으로 이미 본 책인데, 이 세월쯤 되면 별로 기억에 남는 것도 없고, 새 번역을 보면 이전 번역판이 제대로 된 건지 엉터리인지 알까 싶다는 건 핑계고, 이야기의 설정과 구성, 마지막에 대부분 끔찍하게 희생자들을 처형하고 악당들과 생존자들은 무사히 돌아온다는 결말만 기억에 남았기 때문에 후반부 볼 때는 아 나 왜 이걸 보고 있냐...내 뇌… 안 본 뇌 살려내...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드 읽기는 전혀 성적이지 않고, 쾌락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이 또라이 인물상들의 자연관, 세계관, 인간관 같은 것에 수긍하지 않으려고 싸워야 하고, 미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만큼 자유롭지 못한 사드 놈을 동정하다가도 미친년 왜 이딴 추악한 걸 상상하고 써질러낸 놈에 공감해, 해야 하고, 쉬지도 않고 이어지는 타락과 학살의 장면에 뇌가 썩는 걸 느끼며 야...이 정도면 현세에 만족해야 하지 않겠냐, 하기도 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일단 사드 감옥을 탈출했다…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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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린의 아비이자 삼촌인 주교는 그녀를 친구들에게 양도함으로써 나머지 세 여자들의 남편이 되었지만, 질녀에 대한 기존 권한은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31, 복잡한 인척관계에서 대표적 막장인 한 줄만 끌어오기로…)

-하여, 독실한 신앙을 가진 모든 이에게 권하니, 누구든 죄를 범하고 싶지 않거든 이쯤에서 책을 덮으시라. 그다지 정숙하지 못한 줄거리임을 충분히 눈치챘을 터, 미리 단언컨대 그 세세한 내용으로 들어가면 정도는 훨씬 더 심해질 것이다. (60, 친절한 경고. 그치만 여기서 덮은 사람은 손에 꼽히지 않을까 싶다.)

-만약 강력한 힘을 가진 신이 존재한다면 과연 너희가 그토록 목매는 신을 향한 미덕이, 앞으로 보게 될 것처럼, 악덕과 방탕주의에 희생되는 일을 허락하겠느냐? 자기와 비교하면 코끼리 앞의 진드기에 불과할 나 같은 미물이 하루 종일 마음 내키는 대로 모욕하고, 조롱하고, 도발하고, 무시하고, 공격해대는 것을 과연 전능한 신으로서 용인하겠느냔 말이다! (94)

-빌어먹을, 내가 얼마나 저 태양을 공격하고 싶어 했는지, 우주로부터 저 태양을 빼앗거나 아예 태양으로 세상을 모조리 불살라버리고 싶어 했는지 알기나 할까? 그 정도는 되어야 죄악이라고 할 수 있지. 1년 만에 고작 사람 열두 어 명 흙으로 돌려보내느라 제멋대로 저지르는 소소한 일탈 행위를 죄악이라고 할 순 없어. (215, 범죄 스케일이 태양계급)

-“맙소사,” 퀴르발이 말했다. “그것 참 까다로운 친구로군! 똥 좀 입에 넣었다고 화를 내? 그걸 아예 작정하고 먹는 사람들 얘기를 좀 해보라고!”(226, 뱉는 말마다 명작인 퀴르발, 앞의 태양 뒤져, 하는 것도 퀴르발)

-“(…)‘내가 당신에게 복종하는 것은 오히려 당신을 깎아내리고, 나를 당신 위에 올려 놓기 위해서입니다.’” 그러자 뒤르세가 대꾸했다. “바로 그런 생각들이 봉사 행위의 폐단을 입증하는 것이라네. 선행을 베푸는 행위가 얼마나 부조리한지를 말이지. 어쩜 이렇게 보 수도 있을 거야. 다 자기만족을 위한 짓이라고. 하긴 나약한 정신으로 그런 소소한 즐거움에 빠져드는 자들에게는 그것도 맞는 말이겠지. 하지만 그런 즐거움을 경멸할 뿐인 우리 같은 사람들은 웬만큼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걸로 쾌감을 느끼진 않을 거야.” (283, 내신 산출에서 봉사점수가 빠져나가는 중인 이유...아닌가)

-“그러자 공작이 말했다. ”그러니 미치는 것도 각자 나름이라니까. 그 누구의 광증 앞에서도 우린 놀라거나 비난해선 안 되는 거야.(…)“ (312, 공작 급 관용 발사ㅋㅋㅋ미친놈들끼리 위아더월드)

https://m.blog.naver.com/natf/221297784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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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엔 18권을 읽었는데, 2월은 한 주 지나도록 한 권 완독한 게 없다. 하필이면 700여쪽, 500여쪽, 이렇게 지독하게 두꺼운 책들을 골라버리는 바람에...두께만 지독한 건 아니다...

그래도 ‘말레이 제도’ 읽다보면 곤충 새 동물 표본 덕후 아저씨의 동남아시아 기행을 따라가며 빙긋이 웃게 되기도, 이런 유럽 중심주의, 하기도 하면서 잘 읽고 있다. 번역가 선생님 제게 이런 시련...아니지 읽기의 기회를 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빙긋 웃기보다는 실소하다가 얼굴도 심장근육도 굳어버리게 하는 사드의 ‘소돔 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 이걸 왜 재독 중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번역이 묘하게 웃겨서 중역판 말고 전집 완역판을 읽어버리겠다는 오기로 똥파티인 중간 구간을 지난하게 넘어가고 있다.

감사한 이달의 당선작 적립금은 공약 대로 사드 전집 3권 ‘알린과 발쿠르 혹은 철학소설’에 털었다. 크게 보태지 않고 1000여쪽 짜리 양장본을 획득하는 즐거움... 그런데 랩핑해놓으나마나 앞표지 한가운데 부분이 어디 모서리에 쿡 찍혔고, 띠지에는 포장 되어 있었는데도 대체 뭔 사람 손기름 자국이 좍좍... 새 책이 중고책만도 못하게 와서 조금 기분이가 나빴으나, 반품하지 않고 그냥 소장하기로 했다. 띠지만 꾹꾹 접어 버려버렸다.

역시나 번역가님의 무병장수 및 전집 14권 완역을 기원하며... 남은 똥파티를 마저 읽으러...가기 싫으네... 하고 읽은 게 또 하필 ‘뱅크하임 남작의 귀향’ 서문이라 이건 다른 거 다 읽고 시작하자 하면서 스스로 궁지에 몰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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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2-08 0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벽돌책들은 자칫 잘못하면 독서에 대한 흥미를 혐오로 바꿔버릴지도 몰라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6-02-08 13:28   좋아요 0 | URL
아이참 우리 그런 아마추어 아니지 않습니까...ㅎㅎㅎ
 
해부학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7
페데리코 안다아시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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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31 페데리코 안다아시.


책에 대한 큰 정보 없이 꽂아 두었다. 특정 신체 기관(클리토리스)에 대해 발견한 해부학자의 이야기, 까지는 알았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까 궁금했는데, 읽고 난 소감은 하, 망했다. 저자가 마테오 콜롬보에게 완전히 동조하거나, 그를 긍정적으로 보거나 그리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적 호기심과 탐구심으로 충만해 무모한 짓거리를 감행하는 사람 정도로 그려놓았고, 그래서 신 중심의 단순한 세계에서 제법 독특하고 입체적인 인간상은 될 수 있겠다. 그러나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등장하는 여성을 소비하는 방식은 천박하다. 이것은 마테오 콜롬보의 견해와는 무관하게, 익살맞고 재미있으라고 작가가 넣은 장면들이다.

모나 소피아가 첫 성매수자를 맞이하는 장면에서 소아성애자의 역겨운 행동과 취향이 등장한다. 이건 그 뒤의 블러드 사이다(모나 소피아의 이 사이에서 절단된 음경과 아동성애자놈의 사망)를 위한 빌드업이라고는 해도, 기분이 매우 더러워지는 상황과 묘사였다. 모나 소피아의 굴곡진 삶을 그린 것도, 창녀 오브 창녀, 고급 매춘부가 되기까지 그녀가 겪은 일들을 풀어 놓았지만 그게 그냥 비급 실험 영화(심지어 예술 지향)인데 사실은 포르노로 소비되는 창작물처럼 읽혔다.

병이 난 이네스를 치료한답시고 해부학자가 하는 짓거리도 매우 뜬금없고 고약했다. 준강간 내지 강제 추행의 장면인데 그걸 이네스가 엄청 즐기면서도 겉표현만 반항하듯 군다고, 사실 좋아서 꼼짝 못한듯 묘사한 것도 유해한 장면이었다. 마테오 콜롬보는 여성은 자유의지가 없고 오로지 클리토리스의 노예처럼 거기에 조종되는 살껍질 같은 것으로 그려놨다. 그런데 작가 또한 아닌 척 하면서 여성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해부학자의 견해에 매우 동조적으로 표현을 해 놨다. 이미 절반까지의 장면에서 저 두 가지를 보고 나니 아… 난 잘못 골랐구나… 나 제법 너그러운 편인데 이 소설은 온갖 신학적 논증과 논쟁과 종교재판 같은 걸 엄숙한 듯 사실 비틀어 꼬집는 듯 하면서 솔직히 조악했고, 사드의 소설보다 더 고약했다.

앞의 두 장면이 가장 안 좋은 여성 소비 서사-여성 서사 소비-일까 했는데, 이 작가 새끼는 끝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노쇠한 교황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마테오 콜롬보는 교황에게 유모를 붙여줘 젖을 먹이고(여기까진 짜증나도 그럭저럭이었지만), 어린 여자아이들을 죽여 피를 뽑아 마시게 한다. 이게 역사적 사실이든, 비유이든, 이 치료법이 성공하고, 해부학자는 교황의 총애를 입게 되고, 그렇게 무사히 종교재판을 피해 살아남게 된다는 전개(삶의 끝은 누구나 비극이지만).

하나 더? 양아치 같은 해부학자의 편지를 받고 분노한 이네스는 셀프 할례를 감행하고...이네스에게는 딸이 셋 있고… 이후 1500명의 딸 내지 제자를 더 만들어내고... 하...독자에게 체기를 주기 위함일까. 부조리한 시대를 생생하게 전하기 위함일까. 그렇게 믿고 싶다...만 안 믿겨져. 작가새끼가 그냥 변태이다. 이걸 참고 읽는 나도 변태일까. 아오 화딱지나네. 결말은 예상되는 바였지만 그걸로도 내 화딱지를 덮을 길 없어.

작가의 이야기 전개에는 중간이 없었다. 게다가 이 이야기를 올곧게 듣는다면 이슬람 세계 일부의 여성 할례까지 옹호해야 할 판이다. 스페인 문학계에서는 이 소설이 30년 전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모양이다. 중세만 야만의 시대가 아니다. 아니, 제가 뭐 되게 보수적이고 얌전한 사람 아닌데요, 이 소설은 포르노스타를 데려다가 실컷 착취한 뒤에 이것이 여성 해방이다, 하는 걸로 밖에 저에게는 다른 해석이 안 되네요. 그러니까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이런 거에 실려 있다고 믿고 읽는 고전, 하다가는 똥을 씹을 수도 있습니다. 민음사, 열린책들 뭐든 간에 예외는 없다… 괜시리 셀프 상처 받는 악성독서가 겸 악성독후가머는 그래도 반짝이는 문장이 조금은 기대되는 빌 헤이스의 ‘해부학자’를 읽으며 그레이 아나토미로 힐링을 받고자 한다. 나아아아아중에.

+밑줄 긋기
-단정적으로 말하자면, 남자의 열망과 유사한 여자의 모든 행위와 모든 행동방식이 유발되는 곳이 바로 이 기관입니다. 여자는 ‘비너스의 사랑’의 영향력에 지배를 받으며, 여자의 모든 행위는, 즉 가장 고상한 행위에서부터 가장 혐오스러운 행위에 이르기까지, 가장 품위 있고 점잖은 행위에서부터 가장 천박하고 비열한 행위에 이르기까지, 바로 그 기관에서 유발되는 것입니다. 가장 음탕한 창녀에서부터 충실하고 정결한 부인에 이르기까지, 가장 신앙심이 깊고 신성한 수녀에서부터 마녀에 이르기까지 모든 여자는 예외 없이 이 해부학적 기관의 영향을 받습니다. (182, ‘고추에 뇌가 있다’ 소리의 여성판. 마테오 콜롬보가 목숨까지 걸어가며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밝히고, 이 부분에 그의 주장이 집약되어 있다. 종교재판에서 마테오 콜롬보가 불태워지지 않는다면, 내가 이 인간을 불태우고 싶다. 그가 하는 말이 대부분 틀렸고, 존재의 발견은 사실일지언정 그 기전에 대해 영 엉터리 소리를 지껄이기 때문이다. 클리토리스만 집중 공략해서 여성의 사랑을, 마음을 얻을 것이라는 정보를 이 책에서 얻었고 그걸 믿고 실행할 의지까지 품고 있다면, 여자든 남자든 넌 연애는 하지 마라. 맥락과 배경과 존중의 마음의 중요성을 배우기 전에는.)

-정액을 구성하는 이 물질적인 요소는, 우리가 볼 수 있다시피 순수한 상태의 ‘동역학 유체’입니다. 화산의 용암이 불춘할 때처럼 강력한 힘으로 분출되는 것이 바로 ‘동역학 유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정액은 정신을 인도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몸이 성교를 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모든 ’동역학 유체‘를 몸에서 배출해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이 ’동역학 유체‘가 몸에 계속해서 머물게 되면 몸을 중독시켜 심각한 질병을 유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184, 곧바로 뇌-고추설을 풀어 놓는 이 작자... 이 끔찍한 이원론자는, 남성과 여성의 성적 메커니즘을 이토록 다르게 분석하고,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정액과 사정에다가 형이상학과 필요 불가결성을 붙여 놨다. 신학과 철학이 과학의 엉뚱한 곳에 들러붙으면 이렇게 우스꽝스럽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의도였을까? 또 이러다가 정액은 반드시 배설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 참다보면 정액 속 정신이 다시 영혼으로 돌아간다고 논지를 풀어간다. 심지어 원주에서는 마테오 콜롬보가 제3의 요소를 도입해서 이원론 논법을 파괴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읽히지 않아서 유감이다. 혼란하다. 쌉소리를 읽으며 굳이 혼란에 빠져야 할 이유는 없잖아? 도망쳐!)

-“비너스의 사랑, 혹은 그것의 감미로움.”
지금부터, 영원히, 그녀는 사랑을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이제, 마침내, 그녀는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230, 나 김기덕 영화 보는 줄 알았다… 여성 셀프 거세라니 신박한 작가 새끼…아니 셀프로 끝나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세 딸이 있었다. 찌질한 남성성을 여기 등장하는 고귀한(?) 부인에게 투사한다. 그리고 그걸 여성주의 투사, 전사로 또 전이한다. 진짜 작가놈 미친 새끼 아닐까….)

+친절한 에이아이씨가 이 독후감을 간단히 요약해 주었다.
-풍자인 척하지만, 여성 소비 장면에서는 풍자가 아니라 그냥 그대로 즐긴다. 이건 비판이 아니라 재현이고, 재현은 여기서 면죄부다.
-중세의 야만을 보여주겠다는 핑계치고는, 작가의 시선이 너무 신나 있다.
-이건 부조리를 고발하는 소설이 아니라, 부조리를 소재로 굴리는 소설이다.
-인물의 문제처럼 보이게 해 놓았지만, 실제로는 서사가 그 논리를 끝까지 밀어준다.
-여성은 캐릭터가 아니라 설명용 도구가 된다. 말하자면, 인물이 아니라 장치다.
-읽다 보면 화가 나기보다는, 점점 체기가 찬다. 이건 분노가 아니라 소화불량이다.
-금기가 많다고 급진적인 건 아니다. 그냥 취향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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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6-02-01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각오가 필요하군요

반유행열반인 2026-02-01 10:45   좋아요 1 | URL
독특함도 있지만 개빻음을 감수해야 경험할 수 있었네요. ㅎㅎㅎ
 
x의 즐거움 - 인생을 해석하고 지성을 자극하는 수학 여행
스티븐 스트로가츠 지음, 이충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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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9 스티븐 스트로가츠.


4년 몇 개월 전을 돌아본다. 시작은 과학 교양서 몇 개를 보다 말고 과학 공부를 조금 더 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왠지 수학을 먼저해야 할 것 같았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고등학교 수학, 과학이라도 제대로 해 봤으면 좋겠네, 교양있는 취미처럼 수학 과학 문제 풀이를 가로세로낱말풀이나 네모로직하듯 하면 괜찮겠다, 그런 마음이 기왕 그럴 거면 수능도 쳐 보자로 튀게 된 건 순수함을 넘어 순진했기 때문이다. 교과서 풀고 그 다음에 바로 수능특강 풀면 되지? 하는 사고 과정은 훨씬 더 순진했다.
입시 수학, 과학은 그저 재미있자고 다뤄볼 만한 무언가가 아니었다. 내 머리는 더 이상 20년 전처럼 반짝이지 않았고, 심지어 그동안 누적된 기출량과 변별도를 이유로 한 난이도 상향은 내 상상 밖이었다. 불필요한, 어쩌면 필요했을 적당한 고통과 아픔을 겪고서 나는 조용히, 아닌가 떠들석하게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이제 주어진 건, 내가 원하는 일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을 가리지 않고 골라 읽다 말다 할 수 있는 삶이다. 여기에서 더 뭘 바란 거지? 선생님, 수학, 수학이 하고 싶어요. 그냥 잘 하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모두가 모든 걸 바란다고 다 잘할 수는 없는 것이란다.

x의 즐거움은 그렇게 공부를 시작하던 초기에 갖춰 놨고, 그렇지만 읽지 않고 한참 뒀고, 큰어린이가 먼저 읽었다. 그냥 이 책을 읽고 수학 공부는 3년씩이나 안 해도 좋았을 텐데. 4년 전에 사 둔 책을 읽으니, 아, 뭐 공부 한 게 헛것은 아니겠는게, 아마도 공부를 안 했으면 이 책의 절반 이상은 뭐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모르고 그냥 시집처럼, 에세이집처럼 읽었을 것 같다. 물론 무한이니 미분 적분이니 나올 때 어떤 부분에서는 멍- 하면서 그냥 이해하려고 들지 말자, 하고 눈으로 글씨를 쫓아간 부분도 많다. 저자는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고 최선을 다했을 텐데도 뭐 그렇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그럼 뭐 어떠냐. 적어도 수학 공부 앞으로도 몇 년은 더 해야 할 어린이들에게 다시 읽혀볼만은 하겠다 판단 섰으면 됐다.

책을 읽으면서도 조금 힘들었던 건 자꾸만 처음의 그 순수한 호기심으로, 시험 위한 게 아니라 날 위해서 수학을 또다시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입시 수학은 그런 호기심과 즐거움을 위한 무언가는 아닌 것 같다. 누군가 ‘갑자기 수학 하고 싶어진 중년배를 위한 수학’ 책이나 강의 같은 걸 만들어주지 않는 이상 내 욕구를 채우긴 힘들겠다. 일단 지금의 나는 간단한 덧셈뺼셈곱셈이나 비례식 같은 것도 엄청 오래 걸리고 버벅인다. 그걸 공부하면서 알았다. 286에다가 윈도우 최신사양 깔고 돌리는 기분이었다. 기본 산수가 안 되면 전개하던 논리는 그 계산시간에 휘말려 망각의 나라로 사라진다. 아…내가 왜 이걸 곱하고 있었더라… 그러면 답까지 가기는 너무 요원해진다. 시험이 아니라면 뭐 시간 많이 걸리면 어때? 그냥 세월 죽이기로 하면 뭐 어때? 싶은데 유튜브 보는 것보다는 수학 문제 푸는 게 폼이 나긴 하지만 그거 말고도 나는 읽을 책들 넘쳐난단 말이지…

방학을 맞이해 예비 고등학생 대상의 고교 통합사회 이비에스 강의를 보고 있다. 고등학교로 건너가보라는 은사님 권유가 있었고, 새로 수능 과목이 되는 공통 과목들, 내가 가르친 다음 교육과정의 내용들이 궁금하기도 했다. 이제 60강 중에 거의 40강 들어가니까 방학 중에 완강하긴 할 것 같다. 내용 요소를 외우고 시험 풀이를 익히기 보다는 강사님들의 스타일이나 비언어적 태도, 자기가 가르치는 것에 대한 확신과 열정 같은 걸 본다. 남의 수업 볼 기회가 흔하지 않으니 공교육에서 손꼽히게 강의력 좋아서 전국 아이들의 방을 교실 삼아 가르치는 우수 강사의 수업을 볼 기회를 갖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아, 이래서 중학교에서 이런 개념과 교과내용을 가르치는 구나, 이게 고등으로 가면 이렇게 심화되는 구나, 윤리에서는 이런 거 다루는 구나, 하고 다른 단계, 다른 교과의 내용도 볼 수 있다.

이 방학이 그렇게 사회 수업 듣기만도 짧지만, 내가 정말 정말 심심해지고 예비 고등학생처럼 공통수학이니 공통과학이니 하는 과목이 궁금해지면 뭐 이비에스 기초 과정들을 다시 듣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다만 괴로웠던 기억이 많아서 그저 즐길 수만 있을지, 또 슬퍼하고 좌절하며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라고 한 번 더 고통받을까 봐 두려워서 망설임이 길다. 뭐 안 하면 어때...아 좀 가만히 있으라고… 뭐 자꾸 벌이지 말고 책으로 수박껍질이나 핥고 아아 어렵구나 이러고 넘어가자고…

+밑줄 긋기
-로그의 진수가 100에서 1000과 10000으로 한 번에 10배씩 ‘곱셈으로‘ 증가할 때, 그 로그 값은 2에서 3과 4로 ’덧셈으로‘ 증가한다.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뇌도 이와 비슷한 마술을 보여준다. 음계를 이루는 각 음-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의 진동수는 우리 귀에 똑같은 단계씩 증가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객관적으로는 그 진동수는 ’배수 단위‘로 증가한다. 따라서 우리는 소리의 음을 로그값으로 인식하는 셈이다. (112)

-가끔 소수들은 실수로 그런 순서로 늘어서게 된 게 아닐까, 목걸이에 꿰인 진주들처럼 그렇게 갇힌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소수들도 나머지 수들처럼 그냥 평범한 수가 되길 원했지만, 무슨 이유로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243, 파올로 조르다노, ‘소수의 고독’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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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사실 창비시선 481
전욱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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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8 전욱진.


전에 살던 집에 주방 led조명이 나갔다. 수명이 10년은 된다더니, 전구만 10년이고 회로는 아닌가 보다. 동네 조명 가게에 가서 등값과 설치비 얼마에 5년 보증해준다 말 듣고 조명을 갈았다.
얼마 뒤 조명 가게는 없어지고 전자 담배 가게가 그 자리에 생겼다. 보증해 준다며. 가게가 먼저 없어지면 어떡해? 다행인지 우연인지 새로 단 조명이 고장나기 전에 새 집으로 이사가게 되었다.
우연히 산책하다 우리 동네에서 산 하나 터널로 넘어가면 보이는 옆동네에서 보았다. 그때 그 조명 가게가 산 너머로 이사와 있었다. 조명가게 옆에는 조명가게 주인이었다가 이제는 공인중개사가 된, 조명가게 주인 겸 공인중개사의 이름이 간판에 걸린 부동산이 바로 붙어 있었다. 그러니까 시험에 합격하고 사업을 확장하게 된 것이다. 도망간 게 아니고 축하할 일이었다. 조명이 망가지면 그때 보증해주신댔죠? 그런데 가게가 확장한데다 직업도 두 개가 되셨네요 축하합니다, 하고 싶지만 조명을 두고 이사를 나와 이미 다른 집에 다른 새 조명을 달고 살고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새 집의 주방 led조명도 이사한 지 채 3년이 되지 않아 고장이 났다. 구매처에서 분명 3년 보증이랬는데 다행히 몇 달 남았다. AS센터에 연락하니 처음에는 2년 보증이라고 하다가 다시 연락이 와서 그 업체 구매는 3년 보증이 맞다고 했다. 깜빡이는 조명 사진이나 동영상을 전송해달랬다. 그랬더니 더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설치 기사가 새 조명을 가지고 와서 금세 교체해 주고 갔다.
맨 처음 조명을 달고서 그렇게 4번째 주방등을 갖게 되었는데, 그 세월이 10년 넘어 이제 11년이 되고, 그렇게 마지막 교체한 지 3년 되가는 조명이 아직 고장은 안 나고 있으니, 어디서든 언제든 보증 받은 셈 쳐야 겠다.

+밑줄 긋기
-미리 연습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다면
그랬으면 좋았겠다, 생각하면서
살아본 적 없는 아름다운 나날을
내가 살 수 있을까, 의심하면서

그렇게 삶의 남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20, ‘신들을 위한 여름‘ 중)

-누추한 이 세상에 그래도 누군가는 사랑한다는 소문
(27, ‘잔서’ 중)

-이층의 약력은 내내 눈부시다

맹인이었던 큰할아버지는 그 앞을 지나는 저녁이면 무언가 훤하다고 하셨다

그러면 나는 눈을 감아
보았다 (45, ‘조명 가게’ 전문)

-그러자 주성치마저 울리는 것이 세상의 일이라면
이 세상은 그만 망해버려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이 세상의 끝이 밀려오는 와중인데 나는
그가 우는 꼴이 새삼 기막히고 우스워서

우는 사람을 보며 웃는 건 옳지 않으니까
계속 슬픈 생각만 했던 거 같다 (55, ‘삭제 장면’ 중)

-오늘내일 할 것 없이 매일이 그저
예상 가능하고 기정사실이었을 때
당신 눈빛이 내게 호외였습니다

타고난 다정은 내가 부럽고
그래서 부쩍 키가 줄었으나
마음 벼랑을 기어 올라왔으니
이게 다 덕분입니다

그윽하고 아늑한 게 당신 품이어서
고백은 메아리로 다시 올 거 같고
고개 들면 당신이 당신 얼굴에
어떤 표정 짓고 있을지 나는 압니다
일부러 거기 가담하지 않고
이대로 조금만 더 있겠습니다

당신의 품보다 밤이 더 느립니다
겨울인데 입김을 오래 못 봤으니
이 세상이 실내가 되었습니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바라는
그때 내 표정은 나도 보고 싶지만

일단 이 마음을 내일 꼭두새벽부터
희게 내릴 풋눈으로 바꿀 생각입니다
차렵것이 없어도 우리가 따사해서
도리어 미열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대로 조금만 더 있을 겁니다 (‘단둘’ 전문. 달달한 것도 주긴 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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