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욕망을 말하다 - 내 몸이 원하는 소외된 욕망의 재발견
키머러 라모스 지음, 홍선영 옮김 / 생각의날개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20251018 키머러 라모스. 230쪽까지 읽다가 포기.

이 독후감은 책을 읽으며 실시간으로 욕하다 읽다가 하면서 누덕누덕 쓰여진 것이다. 부정적인 기운을 겪기 싫은 분은 뒤로 가기를 누르시면 된다. 그냥 이 책 읽지 마세요, 한 마디이면 될 건데 그 결론을 굳히려고, 에이 그래도 한 마디 정도는 건질 수도 있잖아, 스스로를 의심하며 최대한 참고 읽던 놈의 간언이다. 가루가루 콩가루로 까는 걸 보고 싶으면 그냥 계속 읽으면서 아 그렇구나 나쁜 책이구나 하면 된다.

나보코프는 프로이트를 싫어한다. ‘나보코프 문학강의’에서 아주 자주 프로이트식 해석을 갖다붙이며 빈정빈정댄다. 같이 읽던 이 책의 저자는 대놓고 ‘나는 그의 이론을 좋아한다’라고 말한다. 솔직히 이런저런 상징 갖다 붙이며 상상력 발휘하는 게 재미있게 들리긴 하지만 나도 점점 이새낀 개소리도 설득력 있고 재미나게 하네, 쪽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정신분석하는 선생님의 의원에 열달째 다니고 있긴 하지…아직도 가서 뭐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방향성 없이 자유연상 하는 건 독후감으로 너무 많이 해서 정작 가면 할 말이 없어요… 아무말잔치를 아주 자주하는 자의 번거로움...

뭔 지혜 타령 자주하는 이 책에서 말하는 지혜가 뭔지 역시나 다 읽고도 모르겠다. 쓴이도 설명해 보라면 주절주절 하면서 결국 자기도 말로 제대로 설명 못할 것 같다. 대신 제 몸짓을 보고 느끼세요! 할 지도...글을 되게 못쓰거나, 번역자가 글을 되게 못 쓰거나, 둘다인 것 같다.
60여페이지쯤 읽다보니, 이 책 문장들 번역과 교정이 엉망이다. 한국어 문장을 이따위로 주술호응 안 되고 뜻도 못 만들게 쓰는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너랑 나랑 누가 더 후지냐 문장 더 후진 놈이 죽어라, 하고 싸우고 싶다.

과학적, 철학적인 설명을 기대한다면 다른 책을 보자. 이 책에는 자문하고 자답은 안 하는 물음표가 백만개는 나온다. 책 분량 늘이려고 중언부언하는 듯한, 아름답지도 않은데 군더더기만 가득한 문장, 문단이 이어져서 이쯤 되면 좀 화가 나지만 나는 이걸 다 읽고 욕후감을 써야지, 하는 비합리적 인간이라 꾸역꾸역 읽는다. 제발 뭐라도 한 문장이라도 건지게 해줘, 하면서…

음식 부분을 읽다보니 에세이였구나 이 책...그런데 난 이래, 난 저래 이러는 게 별로 와닿지도 않는데 자꾸 헛소리만 반복하네, 이런 걸 늘어 놓아서 독자에게 뭘 전하고 싶었는데, 싶었다. 음식 취향 확고한 듯 굴면서 사실 핵심은 개뿔도 없잖아. 음식 욕심 없다고 맨날 주장하는 나새끼가 이새끼보다 더 음식을 잘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별 게 없었다. 호흡을 하고 포만감을 느끼고 어쩌고 하는데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내내 하는 걸 듣는데도 식욕은 커녕 짜증만 밀려왔다. 음식 얘기하는데 이렇게까지 먹고 싶지 않게 만드는 것도 재주였다. 공허한 글이다.

챕터의 시작마다 니체의 저작에서 문장 하나씩 따다가 붙여 놨는데 니체가 알면 지옥에서 말대가리 껴안고 히히힝 하고 울 것이다.

식욕에 대한 넋두리 다음에는 사랑과 성욕과 부부관계에 대해 또 장황한 헛소리들이 이어진다. 분명 글을 읽고 있는데 다 둥둥 떠 있고 공허하다. 뭔 속 빈 베갯속 같은 걸로 잔뜩 채워서 책을 만들 수도 있구만...나는 왜 이걸 읽고 있는가...난 충만한데… 어쩌면 더 뭐가 들어올 만큼 빈 공간이 없어서 너의 말들이 다 튕겨져 나가는가, 잠시 생각해봤지만 그냥 글을 개쓰레기같이 써 놔서 한가닥도 얻을게 없었구나 싶다. 몇 줄이라도 건지겠다고 우리는 몇백페이지짜리 책을 읽는 건데. 벌써 170페이지 넘게 읽고 있는데도 이런 건 내가 초반부터 마음을 닫고 편견을 가지고 읽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니야... 그냥 난 책의 흉내를 낸 폐지를 한 권 산 거야… 이 문단이 헛소리 둥둥으로 읽힌다면 다 이 책을 읽은 영향이다. 시불거. 게다가 성관계 타령 할 때는 알아서 찾아가는 거라고 하면서 자아실현에 이어 새로운 생명체 타령을 한다. 이성애 중심적인데다가 자식 안 낳기로 한 이성애자한테도 아이 시불 이거 뭐라는 건데 싶은 지점이다. 글쓰는 사람은 어느 정도 자기 중심적인 경향이 있긴 해야 하겠지만, 그게 개성을 이룰 수도 있지만 이 책의 글쓰기는 진짜 중얼중얼 거리면서 자기만 좋을 짓을(나 두 글자로 쓸 걸 언어 순화해서 쓴 거야) 내내 한다. 뭐 너도 그런 걸 쓰잖아, 하면 할말 없지만 그걸 책으로 내진 않아 임마… 막 싸 갈긴 거 출판하고 수출까지 하지 말라고…

마지막 주제는 우울을 다루는데, 정신의학 비전문가가 뭔가를 아는 양 우울을 질환으로 다루고, 몸이 아닌 마음의 문제로 접근하는 문제 운운하는데, 여기서 진짜 자기가 개뿔도 모르는 부분에 대해 전문가인 것처럼 쓰는 사람이 얼마나 해로운지 새삼 느꼈다.

책은 300몇쪽 쯤 되는데, 230쪽 쯤 되었을 때, 저자의 이름을 구글에 쳐 보고, 인스타그램에서 사진을 보았다. 저자는 댄서인데 하버드에서 철학과 춤을 연구했다고 한다. 니체에게 푹 빠졌는지 춤과 니체, 몸과 식욕, 성욕, 우울을 글로 이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 출산 경험, 농장 이야기, 남편과의 관계 같은 자기 경험이 책속에 종종 등장한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철학 공부한 사람이 쓸 만한 글은 아니었다. 나는 이제 그만 좀 나를 괴롭히자. 하고 책을 휙휙휙 넘겨서 끝장까지 남은 곳을 대충 훑어 보고 너무 늦게 포기했다. 가만보면 이렇게 엉망진창인 책을 만나기도 오래간만이라 운이 좋았잖아, 꽝이 이 정도 확률이면 그간 꽤 괜찮은 독서들이었다.

불태우거나 폐지 처리장에 갖다 버리는 게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짓일테지만 나만의 책 처형 방식인 중고가 990원 염가 판매로 올리기(그래서 다른 더 비싸게 올라온 책들 세상에 덜 나서게 만들기)를 시전하기로 한다. 혹시라도 살 생각이면 읽지 말고 책꽂이 장식용이나 땔감이나 화분 받침 같은 거로 씁시다.


+밑줄 긋기(싫을 때마다 베끼는 너무 많아서 나중엔 그만 베끼기로… 형광펜으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밑줄치라면 그냥 바께쓰에 형광도료 부어 통째로 책을 담그면 돼…)

-음식을 깨물 때, 음식을 몸 속에 집어넣어 편안한 느낌을 얻고자 할 때, 나는 바삭한 느낌을 갈망한다. 또한 나는 안정을 주는 음식과 활기를 주는 음식이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루기를 바란다. 무언가 나를 땅에 붙박아주고 뱃속에 온기를 보내주며 무게감을 보태주어야 한다. 무언가 내 안에 편안히 가라앉아 부드럽게 흥얼거리는 느낌이 들도록 해주어야 한다. 땅의 음식들. 나는 통곡물이나 콩류, 오트밀 등, 땅 가까이에서 자라는 복합 탄수화물에 이끌린다. (67, 뭐가 좋아서 퍼온게 아니라 한 문단 읽고도 와 어쩌라고...싶고 번역도 영 이게 뭔소리야 뭐 해 주고 해 주고 수여동사야 피동문이야 뭐야 그나마 여긴 호응이라도 아예 깨지진 않았지 더 지저분한 문장들 앞에 여러 개 나왔는데 그건 옮기고 싶지도 않았다.)

-반면 소란스러운 음식은 떠들썩한 비명을 지르기 때문에 어디쯤에서 내가 만족을 느끼는지 도무지 알아차릴 수가 없다. 이들은 대다수가 가공식품으로 설탕과 소금, 지방으로 가득하며 지금껏 그 정체가 확인된 갈망이란 갈망은 모두 풀어헤치도록 고안되었다. 짭짤한 콘칩, 달콤하고 바삭한 그라놀라, 코코넛 바, 버터가 듬뿍 들어간 쿠키 등이 그런 음식이다. 이런 음식은 먹는 순간 만족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지만 이내 먹기 전보다 더 한 허기를 몰고온다. 감각적 충격이 내지르는 아우성에 떠밀린 채, 나는 스스로 떠받들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수축하거나 확장한다. 이런 음식으로 자신이 강해졌다는 망상에 기대어 나는 더 나약해진다. (68-69, 당신의 책이 대략 당신이 설명한 그런 소란스러운 음식들과 비슷하다오.)

-마음을 다잡는다. 안 먹겠어. 지금은 아니야. 과자를 멀리하는 순간 일말의 슬픔이 샘솟는다. 정말이다. 이렇게 떠나보내다니! 하지만 슬픔이 물러가는 즉시 안도감이 찾아든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몸의 감각을 짓누르는 폭력을, 그에 뒤따라 피할 길 없이 만나게 될 아픔을 모면한다.
(…) 달콤한 안도감. (79, 아낫 싯팔 이건 또 뭔 모노드라마ㅋㅋㅋ나에게 아픔만 주는 과자여...폭력이여...안녕...사요나라…‘달콤한 안도감.’ 이게 이 페이지의 마무리이다. 어휴...)

-하지만 그렇다고 뒤엉킨 욕구가 우리에게 과분하게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즐거움에서 포만감에 이르는 곡선을 잘 따라가면 그 경험이 다른 욕구에까지 물결쳐 흘러가 그에 대한 감각적 반응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경험의 물결이 다른 욕망에서 나오는 지혜를 받아들이도록 통찰력을 안겨주기도 한다. 다시 말해 식욕에서 지혜를 찾고 이를 신뢰하며 따르는 법을 익히고 나면 성욕과 정신적 욕구가 분출될 때에도 그 안에서 지혜를 찾고 이를 신뢰하며 따르는 법을 익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감각의 인식을 이미 자신 안에서 열어젖힌 덕분이다. (95, 진짜...음식과 식욕 부분은 이렇게 추상적이고 공허한, 어쩌라는 거지 싶은 말들로 마무리 된다. 다음은 성욕인데 아주 기대가 되는 구만... 어디까지 엉망진창인지 내가 한 번 볼게)

-우리에게 즐거움을 안겨주고 평생 지속되는 사랑을 보증해주는 것은 욕망의 주기적인 분출이 아닌 친밀감이다. (137, 어려서부터 그걸 찾아 헤맸어요.)

-(…)이렇듯 역겨운 순간이 얼마나 굉장한 선물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욕망 안에 지혜가 있다.
여기서 역겨운 느낌이 무슨 뜻인지는 다들 알 것이다. 그런 느낌이 든다는 자체가 껄끄럽고 반갑지도 않은데 좀처럼 떨쳐지지도 않는다. (178, 아니 난 모르겠는데? 이 책에서 내내 반복되는 건 욕망 안의 지혜, 그런데 그게 뭔지 도무지 알려주질 않네 이 글쓴이는…그것 말고도 뭐든 제대로 안 알려준다. 그리고 쓰다 막힌다 싶으면 호흡하자, 그럼 알게 돼, 한다. 어휴… 한숨 쉬란 소린 아니었겠지...)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깊이 숨을 들이쉬고 흘려보냈다. 그래, 어디 무슨 일이 생기든 다 무릅쓰고 지금 내가 믿는 사실을 말해보자.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 서로 사랑하지 않아.”
그래도 소용없었다. 우리는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그는 여전히 싸울 태세였다. 냉기가 감돌았다. 가슴이 할퀸 듯 하려왔다. 내가 왜 아직도 여기 서 있는 건지 몰랐다. 그런데도 계속 서 있는 나.
(…) 나는 얼결에 그 충동을 따라가 입을 열었다.
“전에도 이런 적 있었지(그러면서 지난 일들을 하나씩 늘어놓았다). 그때도 당신이 자기 안에 틀어박혀 있으면 나는 그 벽을 어떻게 깨뜨려야 할지 몰랐어.” 말하는 순간 강한 압박감이 나를 짓눌러왔다.
그가 가까이 다가와 나를 껴안으려 했다. 난 물러섰다.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는 받아줄 수 없었다. 그는 진심으로 날 대하지 않고 있었다. 안 그런 척하지만 그는 여전히 멀리 있었다.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게 뭘까? 물러나 있긴 했지만 여전히 가까이 서 있었다. 아직 닫아버리지 않은 채.
(186-187, 아...아… 그래그래 부부싸움 했구나… 그 순간 서로 사랑하지 않았구나… 아마도 당신은 내가 사랑할 타입이 아닌 건 확실하다. 뭐 한 마디만 들어도 나한테 한 소리 아닌데 화딱지 남. 공감이 왜 일도 안 됨...)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바꾼다는 논리에는 앞서 기사에서 언급한 향정신성 의약품도 끼어든다. (…) 이러한 약물들이 마음의 안정을 즉시 되찾아준다는 증거들을 접하면서 우리는 우울이나 절망이란 알약 하나 집어삼키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성가신 감정에 불과하다고 믿기에 이른다. 이런 약물을 먹지 않겠다고 아무리 굳게 결심해도 소용이 없다. 그러한 약물이 실제로 팔리고 있으며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우리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자신의 감정들이 치유될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떨칠 수 없는 것이다. (210-211, 여기에서 이미 약물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서 헛소리를 하는데, 우울증을 앓아본 사람이라면, 남의 우울증을 치료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간단하게 약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울증이나 정신장애를 단순히 화학적 문제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조차도 무언가 더 욕망하는 감각은 지워버려야 할 골칫거리라 규정지으면서 우리 자신을 욕망하는 감각과 대립시키려 든다. 어떤 상황에서나 우리는 몸의 소리는 억누르고 적대시하면서 마음의 바람은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213, 이쯤되면 진짜 자기가 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 알고 있긴 한가 의문이 진작부터 들었다만 또 드는 것이다. 병든 나는 이걸 굳이 아직도 읽으면서 이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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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모카 마타리 내추럴 - 200g, 에스프레소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5년 9월
평점 :
품절


예멘 커피가 많이 궁금했는데 구하기도 마땅치 않고, 가격도 비싼 편이었다. 예멘 커피를 취급한다던 남성역의 카페에 가 보았지만 이제는 팔지 않는다고…그런 걸 보면 별로 인기가 없고, 3대 커피 어쩌구 해도 맛은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예멘은 나라 상태가 개판인 정도로 알고 있었다. 수십년 전에 분단 국가였다가 통일했다고 학교 다닐 때 통일국 사례로 많이 들었는데, 우리도 통일했다 저 지경된다 그러면 통일에 대한 인식만 나빠질 걸 우려해서 그런지 요즘 교육과정에선 예민의 예짜도 언급 안 하는 것 같고… 아이들하고 1인당GDP 공부하다 검색해보면 최하위 최빈국 대다수가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 나라들인데, 걔들보다 더 심각한 위치에 예멘에 있었다. 국민 일년 연봉 50만원도 안 되는 나라라니… 카트 씹고 퉤퉤 뱉는 것도 어디서 읽었는지 봤는지 하여간에 그랬고…
الجمهورية اليمنية
(예멘 공화국)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은 나무위키를 참고하시길…

그런데 특이한 동네 커피들 가끔 소개해주는 알라딘이 (난 여기서 부룬디, 멕시코 이런 원두 사 먹었을 때 나름 참신했다.) 이달에 예멘 커피를 팔기 시작했다. 가격도 다른 원두랑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월요일에 로스팅 한 건데 내가 배송을 늦게 받겠다고 해놨고, 어제 금요일에 나한테 왔다. 이 정도면 가스도 좀 빠졌겠지…

커피맛은 잘 알지못하지만 아침에 드립 내려 먹어보니 언젠가 먹어본 맛, 향… 산미는 거의 없고 쓴맛이 너무 쓰지 않고 (다크초콜릿이래 커핑노트는) 향은 단향이고 (꿀이래는데 이건 좀 꿀은 아니지) 건크랜베리는 크랜베리다, 하면 그런가? 한 맛이었다. 로스팅을 약간만 세게 한 거라 구수하고 초콜릿 같은 조금 쓴맛, 단맛 위주였다. 무난하고 나쁘진 않았다. 이렇게 위시리스트 하나를 성취하고…

막상 바라던 걸 소유하거나 겪어 보면, 별 건 아니네…할 때가 많다. 족발 먹고 싶어! 하다가 겨우 먹고 보면 맛이 있긴 한데 뭐 그렇게까지 원할 것이었나… 싶기도 하고…

바라는 걸 가지는 건 때때로 어렵지 않지만, (때로는 끝까지 못 겪게 되기도) 바라던 때의 간절한 마음과 이룬 순간의 기쁨을 오래도록 지속하는 건 많이 어려운 일 같다. 좋은 학교에 가도 가보니까 애들도 다 고만고만하고 배우는 거도 그냥 그렇고 별 거 아니네… 사랑하는 사람과 혼인이든 동거이든 같이 오래 지내길 바라다 이뤄도 시간이 지나면 열정 없는 사이가 되는 일도 많고… 가지고 싶던 가방이나 신발을 사게 되어도 옷장이나 신발장에 처박아두는 건 다들 그런 줄 알잖아…

욕망에 대한 책을 몇 권 모아서 그 중 하나 읽고 있는데 일단 지금 보는 책은 잘 못 골랐다. 망했다. 욕망은 욕망할 때 제일 가슴 뛰는 일이지 그걸 채우려고 시도하면 아 이런 걸 굳이 바랐었다니… 하는 게 인간인 건 알겠다. 책에서 이런 소리는 안 한다. 마음이 아닌 몸이 원하는 소리를 들어라! 이딴 소리나 함… 하여간에 바라던 걸 가까이 하게 된 이후에도 즐기는 마음, 계속 같은 걸 지속하길 바라는 마음, 얻게 되어 감사한 마음, 돌아보며 다시 기뻐하는 마음, 결국 마음이겠다. 히히 내일도 예멘 커피 마실 수 있어 당분간 마실 수 있어… 행복회로를 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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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MBTI란 걸 재미로 해 본 적 있는데, 아...난 예멘 모카 마타리가 어울린다고 나왔다. 그 비싼 걸 그 귀한 걸... 먹어볼 날이 있을까 했는데 알라딘이 합리적인 가격으로다가 가져다 줬다. 이건 못 참지! 바빠서 원두커피는 주말에나 먹다보니 아직도 까 놓고 다 못 먹은 원두 두 봉다리나 있는데도 얘를 시켰다. 그러고나서 하도 체인소맨이 난리인데 그래서인지 1권은 예약구매로 기다려야 하고, 2권이 중고로 3800원에 착하게 팔고 있으니 맛보고 괜찮으면 시리즈를 더 사고, 아니면 매몰비용 하기로...큰어린이 영어공부책도...이렇게 커피를 사기 위해 책을 샀다. (뭐?!) 내일 아침 예멘과 접촉을 시도한다. 두근두근... 나라 상태도 치안도 개판이라는 그곳에서 용케 커피는 국경을 넘어 나한테 왔다. 힘내라 예멘...

이렇게 내 돈 주고 커피 샀더니 알라딘님이 당선작 적립금을 주셨다. 꼭 책이나 뭐 지르고 나면 그 직후에 적립금 들어오는 징크스 다들 없으십니까... 전 맨날 그래요. 그래서 와 이걸로 뭘 사지, 하면 이미 가지고 싶은 책은 집에 다 있다요...

우주점에서 눈여겨보던 사드 전집 1권을 지르기로 합니다. 자기 돈 주고 사면 왠지 아까울 그것... 받아보니 책태가 완전 휘황찬란한데, 막 기욤 아플리네르 글도 있고 해제도 있고 글씨는 널직한 페이지에 조금 있고 막... 그냥 변태들의 소장 욕구 채우기 위한 도감 수준의 판형이라 아까웠다. 사드는 그냥 페이퍼백으로 대충 찍어 주지 그랬어... 전집 1권 초판이 2014년에 나왔던데 2025년에 3권이 나왔다. 그 중 2권만 십몇년전 읽어본 책, 동서문화사 판 중역 발췌본으로 읽었던 소돔120일...이걸 또 사긴 그래서 나중에 또 상을 받는다면 한 번 도전해 보겠습니다...

그러고도 뭘 사지, 하다가 살 게 없으면 존경하는 번역가 선생님의 역서들을 찾아 보는 것이다. 그래서 나무와 머신러닝에 대한 노승영 선생님 책 두 권을 추가. 믿고 읽으면 하여간에 다양하게 읽을 듯한 번역가 몇 분 다들 모시지 않습니까? 사 모으기만 하고 읽지 않는 저라서 송구하구요... 사진 중에 읽은 거 두 권 밖에 없는 건 더 송구하고... 빌려 읽거나 전자책 사 읽거나 읽고 판 책도 몇 권 있습니다요...

그러고서 정작 보고 있는 책은 산지 좀 된 훌륭한 전자책이랑, 일단 제목 보고 샀다가 이거 완전 망했네 욕하면서도 나중에 더 욕하려고 꾸역꾸역 참고 보는 망작 한 권이랑... 이것들은 조만간 다 보고 리뷰 올리겠습니다... 폐지와 콩가루에 뒤덮인 행복....

+커피, 만화책, 영어문제집
+사드 전집, 번역가만 보고 산 두 권
+번역가만 보고 산 여러 권... 읽은 건 저 중 꼴랑 (누운) 두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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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5-10-17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왕모의 강림도 있는데 가족 사진에 빼 먹었다...

반유행열반인 2025-10-22 19: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말레이제도도 빼 먹었다... 아 향모를 땋으며도 사놨네...사기만 하고 언제 다 보냐...
본 책: 일,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여우와 나, 약속의 땅, 먹고 마시는 것들의 자연사, 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1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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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2 치누아 아체베.

지난 달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읽고 독후감 쓴 걸 AI한테 읽어 보라 하면서 문득 궁금했다. 그 소설은 동아프리카에 한동안 머물던 백인 지주 관점에서 쓰였고, 탄자니아(케냐였나)지역 자연의 아름다움과, 유럽 출신 사람의 눈으로 바라본 지역민에 대한 애정, 그의 입장에서 느낀 유대감 같은 걸 담고 있었다. 그런데 그건 원주민 입장에서도 그럴까? 원주민 입장에서도 백인과 우정과 연대감을 느끼고 그걸 서술해 둔 작품도 있을까? 그런게 창작되었더라도 동족들에게 환영 받지 못하고 비난과 함께 매장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AI는 그런 내 질문에 원주민 관점의 소설로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를 읽어보라고 답했다. 마침 언젠가 소설책을 마련해뒀어서 마음만 먹으면 읽을 수 있었다. 연휴의 일곱 권 독서 중 마지막이 이 책이 되었다.

이 책을 읽어 보니, 책을 권한 AI조차 되게 외부자 관점이고 뭘 몰랐네 싶었다. 이전 읽은 소설이 동아프리카 지역이라면, 이번 소설은 서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이보족들의 마을들이 배경이었다. 난 백인과 원주민의 우호적 교류 같은 걸 물었는데, 선교사들에게 설득되어 개종하고 광신적 기독교도가 된 원주민들이 등장했지만, 그들이 이야기의 주축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갈등의 주된 부분이고 원주민 공동체의 전통과 단결을 무너뜨리는 쪽에 가까웠다.

이야기의 주인물인 오콩코는 세 부인(나중에는 두 명 더)과 그 자녀들을 데리고 살아가는 강인한 남자이다. 그는 게으르고 여성스럽고 능력없던 자신의 부친을 원망하고 부끄러워하면서, 그와는 정반대의 사람이 되고자 애쓴다. 열심히 일해서 가세를 일으키고, 강한 체력으로 훌륭한 씨름 선수의 모습을 보이고(그걸로 남의 여자도 꼬셔서 부인 삼는다), 마을 조상신의 강림 대리자 역할을 하는 에구구의 한 명으로도(비밀이지만) 활약하며 야심을 키운다. 그런 그도 연약했던 딸 에진마에게는 애틋한 사랑을 느끼면서도 숨기고, 마을 여인을 죽인 다른 마을 사람들로부터 배상처럼 데려온 소년 이케메푸나를 아들처럼 키우면서 결국 그의 죽음이 결정되었을 때 약해질 마음이 두려워 스스로 그 아이를 죽여버린다.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부인이나 아들을 마구 때리고, 소리를 지르고, 강함과 전통 유지의 상징 인물이지만, 현대의 관점으로 보면 그냥 개같은 폭력 가장이다.

마을 사람들이 주술에 의지하고, 쌍둥이를 버리거나, 죽은 아이를 악령 취급하며 토막내거나, 죽음에 대해 복수를 하기 보다는 보상을 하면 그걸로 끝내버리는 걸 그린 걸 보면 작가는 그런 잔인한 전통들까지 옹호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서구의 폭력에 맞서 전통을 옹호하다 숭고하게 죽은 인물로 오콩코를 묘사한 뒷표지의 글도 너무 해석을 닫아놓은 느낌이었다. 작가가 나이지리아의 폐습에 저항하고 끝없이 서구사회에서 배우고 연구하고 가르쳤던 걸 감안하면 오히려 오콩코는 시대착오적이고 폭력, 무대뽀로 침입자들을 밀어내려다 실패하고 굴욕을 참지 못해 역시나 가장 굴욕적인 방식으로 삶을 내버린 인물로 그려놓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콩코의 죽음과 함께 후반부 짤막한 부분에서 초점화자는 백인 치안판사로 옮겨간다. 자기 구미에 맞게 아프리카에 대해 서술하고 제목 붙이는 그 장면은 이전/이후로 아프리카가 겪는 수모와 고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싶었다.

얌으로 만든 푸푸란 음식이 궁금해 검색해보니, 한국에서도 이태원에 가면 푸푸, 에구시수프, 비터수프 같이 나이지리아 음식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뭉뚱그려 그런 식당들을 아프리카 레스토랑, 하고 소개하는 페이지들도 있었지만, 좀 더 세세하게 직접 찾아다닌 후기를 남긴 어느 페이지를 보면, 나이지리아, 에티오피아, 모로코 등등 식당을 운영하는 이에 따라 음식 종류의 세부 구성도 좀 다르고, 아프리카의 서부/동부/북부 문화권의 종족이나 언어나 종교도 다 다르겠다 싶은 걸 알겠다. 우리를 ’아시아‘ 하면서 한중일아세안중앙아시아서아시아남부아시아 모두 뭉뚱그려 버리면 섭섭해할 거면서, 우리도 그냥 ’아프리카‘ 하고 그 다양한 인간들의 삶의 모습에 너무 무지하고 검은 한덩어리처럼 취급하면서 디테일한 차이와 특성에 대해 관심을 갖지 못해온 게 아닌가 싶다.

소설은 구전 문학 비슷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서술되어서, 사실 이거다 하고 밑줄 친 문장은 없었다. 서사도 장장마다 바로 이어지지 않고 일단 어떤 상황이 발생한 걸 암시한 다음 뒤이어 구체적인 맥락과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식으로 이야기 하는 사람이 변죽 울리며 청자가 뒷이야기를 궁금해하게 만드는 구성이 많았다.

우무오피아 사람들은 아바메 사람들처럼 멸족했을까? 아니면 기독교로 개종해서 겨우 명맥만 잇고 문화적 유산들은 다 잊힌 채로 살게 되었을까? 나이지리아에 무척 많은 석유 매장량과 생산량에도 불구하고 그 혜택이 제대로 분배되지 못하고 군부나 정치인들만 부자가 되고 서민들은 여전히 가난한 채 석유 채굴로 오염된 니제르강에서 힘겹게 살고 있다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정말 에티오피아는 커피라도 사다 마시고 인류의 조상 이야기 할 때마다 들으니까 좀 관심을 가졌는데, 서아프리카는 아는게 참 없다. 영국이 지배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부족간에 이간질하고 사이 나빠지고 하는 이야기는 어느 나라에서든 너무 자주 들어서 신기하지도 않다.

많이 궁금해도 가보기 쉽지 않은 나라들, 에이즈가 국민 절반 이상을 덮친 나라도 허다하고, 외부인들 보면 강도 대상으로 삼고, 그런 방식이 아니면 삶을 유지할 수도 없는 국가들이 많아서 대부분 여행 금지 구역 지정되어 가볼 수 없는 대륙, 방문하기엔 위험한 국가가 대부분인 게 안타깝다. 지도에 존재하지만 찾아가는 게 신기하고 찾아갈 이유를 찾기도 어려운 나라가 되어버리기까지 그 과정의 이야기 일부를 책에서나마 조금 엿본 것 같다. 많이는 읽지 못하더라도 가끔 이런저런 아프리카 국가들의 목소리 들려주는 소설을 읽고 싶은데, 읽어야겠는데, 첫 입부터 썼다. 이제는 외부인인 내가 가도 콜라 열매 같은 거 깨서 나눠주는 호의를 바랄 수 없을 마을의 오래전 모습이 아마도 글로만 남았다. 누군가 기를 쓰고 써서 그나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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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없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41
서효인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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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1 서효인.

나는 결국 파편화된 이미지나 느낌보다는 산문시를 좋아하고, 사실 산문을 좋아한다. 운문형 인간이 못된다. 못 알아 들으면서도 좋은 글도 있지만 대체로 못 알아들을 걸 써 놓은 걸 보면 짜증이 난다. 부족한 나한테도 똑똑한 쓴 이한테도 그렇다. 나는 흩어진 글을 좋아한다. 그런데 사실 운율도 좋아해. 나도 모르게 라임을 맞춰 글을 쓰고 말을 해. 그래도 작사가나 랩퍼나 시인은 될 생각도 못 했다. 말장난을 섞어 주접 떠는 독후배설가가 되었다. 책들은 작가들은 원통하겠지. 아이고 내가 저놈 간식 거리나 되려고 숱한 밤낮을 불태웠던가. 입가심조차 못되고 잊히고 읽히지 않는 글은 더 많으니까 그냥 만족하세요.

두 권의 소설 머릿 부분을 읽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소설을 좋아한다면서 나는 늘 소설 읽기를 망설인다. 그래서 과학책도 읽고 시집도 읽게 되었다. 이번에도 또 소설을 어떻게 빠져나갈지 기웃대다가 우연히 얇으니까 하고 가볍게 꺼냈는데, 시가 많지 않은 시집에다 마지막에는 시인의 에세이가 한 편 낀 구성이었다. 그리고 의외로 좋았다. 결이 맞다, 라는 너무 자주 쓴 말 말고 다른 뻔하지 않은 적확한 표현을 쓰고 싶다. 세대론 같은 거 믿지도 매이지도 않고 싶은데, 사실 내 또래 사람들 이야기가 제일 잘 들리고 또 그 사람들이랑 이야기도 가장 잘 통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어느 나이부터는 내 또래를 새로 만나기도 쉽지 않게 되었다. 오래전 알던 이들도 다들 애키우고 돈벌러 다니느라 바쁜듯하다. 그래서 책으로라도 80년대와 90년대를 거쳐 21세기까지 아직 안 죽고 비슷한 걸 보고 비슷하게 자라 각자의 사정을 안고 아이를 키우거나 키우지 않고 자기 자신만이라도 키우고 있는 사람들의 글이 반가운 것 같다. 반가워만 하면 또 멍청이가 될 것 같이 마냥 가볍고 따뜻하고 그런 시들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래서 또 반가웠던 것 같다. 내가 모르는 죽음을 알리는 글이 존재하는 게 나는 반갑다.

+밑줄 긋기
-완전한 새로움이라는 건 가능한가
끝과 시작이라는 말
끝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말
그해에 부모님이 이혼을 했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을 텐데
언제나 핑계가 되는 일은 수치스럽다
수치심을 알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처음이자
끝으로
새로운 시작 따위
등산로 입구 쓰레기통에 버렸다
불이 나면 안 되니까
정상에 닿기 전에 해가 떠버려서
사위가 서서히 밝아졌다
시작도 끝도 완전한 새로움도 다 헛소리라는
좋은 예시였다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에
효도하겠습니다
그런 말을 하면 칭찬받았다
토끼봉을 돌아 올라가는 코스에
아무렇게나 스틱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가득 찼는데
서로를 베는 걸까
동강 내는 걸까
두꺼운 겨울옷 안에 놓인 상흔을
내장이랑 같이 쏟아버리는 게
새해의 첫 계획인 걸까
왜 아직도 모르지
신정 아침처럼 반복되는 거짓과 진실을
나는 당신에게 화가 나 있다
이 화를 다스리지 못해 슬프다
이런 감정은
긑이 휘어진 칼처럼
완전한 새로움
을 방해할 뿐인데
화는 끝도
시작도 없는데
등산로의 살얼음이
우리를 비추었다
새로 뜬 해가 녹일 수 있는 게
없었다 살얼음 아래에는 진짜 얼음이
차이가 있는 불행을 모두 쓸어버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실족사라 불렀지만
가족이라는 것은 언제나
지나치게 조심스러워
완전히 새로울 가능성이 줄어든다
12월31일과 1월 1일의 차이를
칼로 무를 자르듯
칼로 물을 베듯
산은 말해주지 않았다
그런 것은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일찌거니 떠오른 해가 지껄이는
거짓말에 아버지와 나는 녹아서
목욕탕에 때를 벗기러
가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이 모든 때에
새로이 내 몸에 나앉을 새로운 때에게도
시간에게도
끝도 시작도 없을 아무 때에
실족할까봐 벌벌 떨며
다음 계단에 난 칼 위에
발바닥을 내미는
(p.30-34, ‘등산로에서’ 전문. 효 가 이름에 들어가는 사촌 둘을 보며 나도 그랬더라면 아마도 개명했을 거야, 했다. 이 시는 왜 내 마음을 등산 지팡이로 계단의 칼로 베어내는지 모르겠는 건 아니고 잘 알겠어서 서글프다. 시간이 지나면 또 무뎌질까 했는데 아직 아닌 걸로. 다음 시 ‘선산에서’의 개를 매단 장면도 제삿날도 내가 아는 광경이라 아 이제 다 베끼기는 너무한 거 아냐 그냥 잘 읽기나 하자 했다. 하다가 결국 베끼고 싶어졌어. 으앙)

-천변에는 개를 거꾸로 매달고
때려서 죽여서 먹어서 행복한 인간들이
있었다 살코기가 타는 냄새
무안 일로에서 온 먼 친척 어르신을
당숙모라 불렀는데
골초였다
개의 살을 태우는 연기 하나와
담배 태우는 연기 여럿이 섞여 흘렀다
개 짖는 소리처럼
받아주지 않는 곳으로 천천히
당숙모는 선산 아래에 터를 닦은 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데 평생을 썼다고 한다
그에게는 연기란 흔한 것이었다 우리는
인간의 연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죽은 개의 제사를 지내고 싶다.
개를 먹는 것이 인간의 증명이 되고
제사를 지내는 게 인간의 증명이 되니까
인간 중의 상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 개를 사랑했기 때문에
여러 인간을 증오했기 때문에
제사 후에는 다음 제시가 온다
죽음이 적체되어 산 자들의 당숙모를 괴롭히고
당숙모가 홀로 키우던 개를 공터에서
때려죽이고
앞마당에서 개의 삶을 삶는 사람들도
죽으면 또다시 제사를 지내겠지만
나는 거기에 절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당숙모는 골초였고
어느 날 벌초를 미룬 선산에서 비롯된 불이 번져
개의 고향을 거개 태우고
개의 등허리를 몽둥이로 박살 내던 삼촌들도
질식사했다 고기 타는 냄새를
모르는 체하느라 킁킁거리던
개들이 당숙모의 곁을 빙글빙글 돈다
건강하고 날렵한 꼬리들이
연기 사이로 살랑거린다
당숙모가 연초를 태운다
산이 터져 나간다
새로 지을 고속도로가 지나갈 자리였다
보상금의 분배를 두고
한때 개를 나누어 먹던 많은 이들의
정과
의리와
명분이
연기보다 못하게 가벼이 흩어졌다
멀리 개가 짖는 소리
가까이 사람 싸우는 소리
당숙모는 그 후로 이십 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서해안고속도로 옆에서 골초로 살아남아
양껏

태워버렸다고 한다
(p.36-39, ‘선산에서‘ 전문. 이 시가 너무 신산해서 와 아는 맛이잖아, 하고 결국 베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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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0-12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운문형 인간이 못 되면서, 못 알아들을 걸 뻔히 알면서도, 시집을 펼치고 있네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5-10-12 10:02   좋아요 0 | URL
그러면서도 이해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 것이니까 안 읽는 안 운문형 인간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