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4
알랭 로브그리예 지음, 박이문·박희원 옮김 / 민음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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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5 알랭 로브그리예.

Nirvana-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https://youtu.be/hEMm7gxBYSc

나는 84살은 아니고 84년생이니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4권 정도는 봐야 할 것 같았다. 1957년에 우리 아빠가 태어나던 해에 나온 소설이니 작가 할아버지는 작고하셨겠다. 살아 있으면 100살 넘었음… 인터넷은 이런 걸 찾아보라고 있는 거지만 까딱하기도 귀찮다.

책을 먼저 읽은 친구들은 재미없다, 오래전 읽었는데 나름 감동받으며 읽었다, 그런 반응이었다. 서사가 없는 소설이구만 또… 30쪽쯤까지 읽는데 이거 이전의 라슬로 600쪽 넘는 ‘서왕모의 강림’ 읽기보다 조금 더 힘들었다. 못 알아들었을까 봐 다시 얘기할게, 이러고 같은 스트로크로 덧칠하듯 어느 순간들이 또 또 나온다. 지네가 몇 마리 죽었는지 세어 보고 싶었지만 이게 그 지네인지 다른 지네인지 파악할 길이 없다. 작가는 그림자랑 건물의 구조랑 벗겨진 페인트랑 블라인드랑 창까지 열고 닫아가며 열심히 세밀화를 그려놨는데, 내 뇌는 그걸 따라 그릴 생각을 못해서 그냥 굳이 그리지 말고 글자나 따라가자, 했다. 바나나 농장인데 바나나 한 개도 안 먹는 거 실화냐… 판매용이라 안 먹는 걸까…

뒷표지에 ‘이 세기의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이다.’하는 나보코프 선생의 말을 믿고 끝까지 읽었다. 확실히 나보코프 선생이 좋아할 것 같은 구성이긴 하다. 여러분 서사는 중요하지 않아요. 문체랑 구성이 다예요. 그건 선생님처럼 짓는 자의 마음이고 읽는 자는 또 달라요… 일단 관찰자가 A…나 프랑크와 도무지 소통하는 걸 안 그려놔서 답답해요. 집요하게 쳐다보고, 뒤져보고, 늦은 밤까지 기다리고, 되새기고, 돌아보고, 슬프게도 A…가 관찰자/서술자에게 다정한 말, 눈길 하나 안 줬다. 이 정도면 질투 정도가 아니라 절망해야 하는게 아닐지…

자기들끼리 읽은 소설로 꽁냥꽁냥 이야기하고, 나란히 앉아 술을 마시고, 마누라랑 남사친이 그러고 있는데 그 자리에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멀찍이 지켜보는 듯한 서술만 반복하는 이 사람은 아니 이거 사실 A…의 남편 같은 뭔가가 아니라 시중들던 보이가 구경한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읽기 시작했는데, 페이지도 많지 않은데, 읽다 도망가면 그래도 사실 끝까지 읽어도 ‘마누라랑 남사친이 장보고 차 알아본다고 같이 차타고 새벽같이 시내 나가서 결국 그 날 안 들어오고 다음날 아침 돌아온 썰’ 외에는 특별한 서사가 없다. 거기에 귀뚜라미 소리나 원주민의 노래소리나 지네의 스스거리는 소리를 덧입히고, 해가 뜨고 기울고 지고 어둡고 그런 그림자의 변화를 그리고, 공간을 이동하는 사람을 추격하는 눈길을 그리고, 창이나 블라인드 너머로 다른 시선으로 주변과 사람을 들여다 보게 하고, 뭐 그렇게 140페이지 넘게 집요하게 쓴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나는 못해요 못해…

책 뒷표지가 또 재미있는게 해설자랑 나보코프 선생 말고 두 마디가 다 저자가 한 말을 남의 추천사 넣을만한 자리에 적어놨다.

‘줄거리 혹은 사건이 없는 소설, 매초와 매분은 있되 그것의 총합인 하루는 없는 작품, 정념은 있되 그 감정의 주인은 없는 작품’
‘세계는 의미 있는 것도 부조리한 것도 아니다. 세계는 단지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세계의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이다.’

세계는 존재하므로 존재하는 거군요 선생님… 의미도 부조리도 내가 다 갖다 붙힌 거군요… 여하간에 선생님의 책을 읽고 질투의 감정보다는 몹시도 쓸쓸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졸립군요… 밤에 잠 안 올 때 보면 딱이겠다… 나는 얼른 책에서 빠져나오려고 낼름 읽었습니다…. 여기는 아프리카가 아닌데 에이와 남사친은 아프리카 배경의 소설을 읽고, 여기가 식민지이긴 한데 어딘지는 안 나오는데 내맘대로 인도네시아 쯤으로 여기고, 사실 여기는 어디에도 없는 어디에나 흔한 플랜테이션 농장이었을 수도 있겠다. 바나나 먹고 싶다. 인스턴트 쌀국수도 먹고 싶었는데 참았다. 저녁이니까 두유 한 팩이랑 치즈 한 장만 먹고 이 닦음...기특한 나…

+밑줄 긋기(어째 하나도 안 옮겨 적었어서 느낌적 느낌이라도 나누려고 하나 뽑아옴)
-촘촘하게 주위를 둘러싸던 철창이 갑자기 끊겨나가면서 이 정육면체의 감옥은 스스로의 운명에 내맡겨진다. 이것은 자유로운 추락이다. 짐승들 또한 골짜기 깊은 곳에서 한마리씩 숨죽이게 되었을 것이다. 침묵이 너무나 공고해서 아주 약한 움직임마저도 불가능해진다. (갑자기 불끄고 램프 소리 마저 멎은 상태. 암흑. 정적.)
윤곽을 알 수 없는 이 밤을 닮은 비단결의 머리카락이 경련하는 손가락 사이로 흐른다. 머리카락은 길게 늘어지고 더욱 풍성해지며 촉수를 사방으로 뻗는다. 그러면서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처럼 점점 뒤엉킨다. 그러나 손가락은 그 얽힌 미로 속을 무심하게 쉽사리 빠져나간다.
머리카락은 마찬가지로 쉽게 풀리고 퍼져서 어깨에 느슨한 물결이 되어 굽이친다. 그 물결 속을 비단 브러시가 위에서 아래로, 위에서 아래로, 위에서 아래로 부드럽게 미끄러진다. 이 동작은 오직 숨소리에 의지해서만 감지할 수 있다. 숨소리는 완전한 어둠 속에서 규칙적인 리듬을 만들어내며 무언가를 측정할 수 있게 한다. 아직도 측정할 무언가가, 구별할 무언가가, 묘사할 무언가가 남아 있다면 말이다. 이 완전한 암흑 속에서 날이 밝아올 때까지. (115-116, 머리카락과 손가락으로, 다른 곳에서는 옆얼굴의 잔상과 착붙 드레스로 인상 남긴 A… 여기쯤 쓰다가 작가도 아 묘사할 만큼 다 했다...지친다...불꺼진 김에 자야지 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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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11-26 0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브그리예의 질투...이거 읽고 진짜 질렸었습니다. 로브그리예의 문체에...근데 <되풀이>를 보고 이건 뭐지?! 라는 신선한 놀라움이...ㅎㅎ

반유행열반인 2025-11-26 20:30   좋아요 0 | URL
다른 작품은 읽을 엄두도 못 내겠어요 너무 재미없어서요 ㅎㅎㅎ

yamoo 2025-11-27 10:56   좋아요 1 | URL
이야~ 이렇게 재미없고 지루하고 꾸역꾸역 읽으셨는데...별4개나 주셨네요...ㅎㅎㅎ
진짜 저도 딱 그런 느낌....서사 없는 작품은 걍 덮어야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ㅎㅎ 근데 로브그리예 <되풀이>보시면 완전 다른 느낌입니다. 완벽한 서사가 있어요!! 추리소설 기법을 도입해서 그런지 질투와는 완전 다릅니다. 혹시 기회되시면 읽어보세요. 근데, 뭐 다른 재밌는 작품 읽는 게 더 낫기 합니다...ㅎㅎ
 
날마다 천체 물리
닐 디그래스 타이슨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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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4 닐 디그래스 타이슨.

같은 저자의 ‘명왕성 연대기’와 ‘나의 대답은 오직 과학입니다’를 4년 전에 읽었다. 덕분에 내 수능 선택과목 중 하나는 지구과학이 되었다. ‘날마다 천체물리’에서는 고등 지구과학1에서 배우던 우주론을 조금 더 재미있게 풀어주었다. 함께 읽고 있던 ‘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의 시작도, 우주의 시작부터 물질이 구성되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이 책과 겹쳤다. 그래서 이걸 어느 책에서 본 내용이더라...하고 헷갈릴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같은 이야기를 다른 목소리로 반복해 듣는 게 나쁘지 않았다.

열심히 어려운 계산을 하고, 지루한 관측과 사진 분석을 하던 똑똑하고 성실한 과학자들이 나처럼 수학에 약하지만 세상에 관심 있는 평범한 사람에게 우주의 시작과, 우리가 우리로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최대한 쉽게 전해주려고 쓴 책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런 책들을 제법 모아놨다. 3년 동안 입시 공부대신 과학대중서, 교양서들만 챙겨봤어도 가진 책들을 다 봤을 것 같다. 사실 모아 놓은게 너무 많아서 자신은 없구만…

천체물리, 하면 조금 무섭고(개어려울 것 같음) 천문학, 하면 뜬구름 잡고 달보고 별보며 우주에 홀린 사람들이 떠오르지만, 왜 우리가 우주를 알고 우주적 관점으로 세상을 보아야 할지 저자는 책 말미에서 열변을 토한다. 그부분은 조금 튀긴 한다. 굳이 지구에서의 여러 불행을 열거하지 않더라도, 우주에 대해 알아가려고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던 과학자들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게다가 여태까지 알려진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일이 생각보다 재미있다. 정말입니다. 제가 과학 대중서 좀 봤는데 봐도봐도 자꾸 또 찾아 보게 되거든요. 과학책 읽는 사회 선생은 조금 이상할지 모르지만 어려서는 사회가 좋았는데 이제는 과학이 더 좋아요… 겉핥기라도 좋아요... 어쩜 좋아요… 재미있는데 계속 이러고 살아야지 뭐...

+밑줄 긋기
-우리가 아무리 빨리 움직인다 해도 우리는 질주하는 빛을 추월할 수 없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러니까 그렇다.”라는 답밖에 당장은 내놓을 게 없다. 그 어떤 실험에서도 광속을 따라잡는 물체를 찾아볼 수 없었다. (40, 빛보다 빠르게, 같은 비유는 그러니까 너무 깝치는 것이다.)

-맞갖다: 마음이나 입맛에 꼭 맞다. 딱 알맞다. (번역자님이 알맞다 대신 이 말에 꽂히신 듯)

-그보다도 나는 인류 문화의 아이콘 중 하나가 주기율표라는 데 방점을 찍고 싶다. 각국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실험실과 입자 가속기 등의 시설에서 수행된 다양한 연구의 총체적 결정체가 주기율표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주기율표는 또한, 현대 과학이 이룩한 위대한 국제 협력과 우주에 관한 이해의 최전선을 우리에게 증언한다.(122, 나도 한 장에 세상 물질을 다 담은 주기율표 좋아해요.)

-양극 방향으로 살짝 눌려진 구를 편구, 약간 잡아 늘인 구를 장구라 부른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햄버거와 핫도그가 각각 편구와 장구의 극단적인 예이다. 독자는 어떤 느낌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햄버거를 한입한입 물어 목으로 넘길 때마다 토성의 모양을 떠올리곤 한다.(148-149, 햄버거 먹으면 이제 편구, 토성, 해야겠군)

-거대 기체 행성인 목성은 자신의 막강한 중력으로 외행성계에서 내행성계로 날아 들어오는 수많은 혜성들을 밀어내서 내행성계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방패 구실을 한다. 목성이 없었다면 내행성계는 엉망으로 파괴됐을 것이다. 특히 지구는 덩치 큰 형님이신 목성 덕에 수억 년 동안 평화와 고요를 유지할 수 있었다. 목성이란 중력 방패가 없었다면 행성 지구는 복잡한 구조의 생명체가 보다 더 복잡한 구조로 진화하기엔 지극히 어려운 환경에 처했을 것이다.(187, 어쩐지 목성이 사랑스러웠어. 지켜줘서 감사합니다 형님)

-거개:1. [명사] 거의 대부분. 2. [부사] 대체로 모두.

-우주에 들어 있는 별들의 개수가 지구 상 바닷가 모래밭의 모래알 수보다 많다. 지구가 탄생한 이래 여태껏 흐른 시간을 초 단위로 잰 값보다 별들의 개수가 더 많다. 지구에 태어나 살았던 인간이 내뱉은 모든 단어와 소리의 분절 수보다 별들의 수가 더 많다. (218, 얼마나 많은지 비교해주니 너무 큰 수는 여전히 이해 밖이지만 대강 겁나 많다는 건 알겠다…무한은 아니겠지만 하여간에 대따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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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3분 철학 1 : 서양 고대 철학편 만화로 보는 3분 철학 1
김재훈.서정욱 지음 / 카시오페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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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0 김재훈, 서정욱.


한 철학자 이야기마다 3분, 쉽고 간단하게 철학에 대해 알려주고 싶다는 작가가 만화와 요약된 설명으로 철학자들의 사상을 찍먹하게 해주는 만화책이었다. 11명의 이야기를 하루에 다 봤으니 33분 철학인가...싶다가도 사실 그보다는 더 걸려서 읽었지만, 만화라서 후루룩 읽혀서 아 이렇게 읽어도 되는 것인가 했다.

고등학교 때 윤리 시간에 이런저런 사상과 철학자들 소개 훑으면서 잠시 철학과 같은 델 갈까...생각한 적이 잠깐 있다. 잠깐만 생각해서 다행이다. 대학가서 교양이며 전공에서 이런저런 철학과 사상에 대해 배워도, 내 머리로는 체계적으로 정리가 안 된다 싶었으니. 그냥 오 멋있는 생각하네, 말 잘 하네, 얜 말은 잘하는데 내 마음엔 안 드네, 그 정도였다.

어쩌다보니 최근에 읽는 철학 쪽은 고대, 중세, 근대, 현대철학보다 죄 과학철학, 과학윤리 이런 데 조금 더 가까웠던 것 같다. 그런데 읽긴 읽었냐. 아 성소수자 관련 책들 읽다보면 그들 주장과 존재론에 맞는 이런저런 철학, 사상가들이 소환되었던 것도 같다. 그놈의 안 다루는 게 없는 수능 국어 지문에서도 철학이니 논리학이니 이런 거 나오면 좀 힘들었던 것도 같고…

철학과 먼 삶을 살면서도 뻔뻔하게 사회계약론이니, 계몽사상이니 하는 걸 가르치기도 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용, 공동체에 피해를 주지 않고 기여하는 삶, 그런 걸 계속 일깨워야 한다. 얕게 두루 이것저것 주워먹는 수험생활이긴 했지만, 또 많은 것을 잊었다. 그렇다고 막 빡세게 사상가들의 원저를 주워 읽을 엄두가 나지 않으니까, 뭘 읽어야 할지 모를 땐 저런 귀여운 만화책이나 어린이용 책이라도 주섬주섬 둘러봐야겠다. 굶는 것보다는 암죽이라도 맛보는 게 죽지 않는 방법이겠지…

누구 이야기가 가장 잘 들렸나 돌아보니까… 물질 세계가 근본이라고 주장하는 과학자들 책들을 자꾸 봐서 그런가 영혼도 물질이라고 주장하는 아저씨가 기억에 남았는데 우습게도 그게 누가 주장한 건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책의 처음부터 뒤까지 막 훑어도 못 찾겠어...누구였어 너… 검색해가지고 데모크리토스인 걸 겨우 찾았네… 그나마 한 챕터도 차지 못하고 잠시 나왔나 본데 그럼 다음 볼 책은 ‘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 같은 책일까… 영혼을 만든다고 지르고 있진 않구나… 원제 What‘s gotten into you가 어째서 원자의 역사가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철학을 잘 못해서 문돌이도 못되고 수학 과학을 못해서 이과돌이도 못된 나는 그냥 못된 어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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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1-20 2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철학은 만화여도 어렵다!!!

반유행열반인 2025-11-20 21:53   좋아요 0 | URL
대체 어렵지 않은 것이 없다!!!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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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8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2019년에 ‘무엇이든 가능하다’를 먼저 읽고 그때도 전원일기 같다고 생각했다. 올리브 키터리지의 괄괄하면서도 시원한 츤데레 성격은 뭔가 일용엄마를 떠오르게 했다…
좋다는 사람이 꽤 많은 소설이라, 그러면 꼭 엇나가서 아주 나아아아중에 가장 마지막에 읽을 거야...하면서도 언제인지 모르게 이 책을 사 뒀다. 올리브라고 겉지 올리브색 뭐냐...하고 다 읽은 방금 껍질 까 보니까 속살 앞표지 뽀얘...섬세하게 레이스 무늬같은 것도 있어...츤츤데레 올리브 씨를 형상화한 것인가… 모르겠다. 다들 예쁜 구석 있는, 매력 넘치는 영웅이나, 고뇌에 빠진 햄릿 같은 사람은 아니다. 그냥 어디나 있는 평범하고 남 뒷담까고 술주정하고 만났다 헤어졌다 몰래 만났다 하는 사람들이다. 그걸 연작소설로 엮으니 제법 절창이었다. 재미있었다. 마을 하나를 인물 하나 구심점으로 해서 그려가는 것도 제법 스케일이 크구나 싶었다. 나는 인맥도 관계도 경험도 쥐톨만해서 그렇게 내 세상은, 상상은 넓게 멀리 뻗어가지 못했다. 그냥 실존 인물 이야기는 쓰기 싫고, 새로 캐릭터들을 만들어내기도 귀찮구만…
한 마을에서 오래 수학 선생 노릇하던 올리브, 아들과 사이 엉망이 된 올리브, 너그럽게 다 받아주던 남편이 쓰러지고 결국 죽어버려 혼자가 된 올리브, 그러다가 역시나 사별한 잭 할배랑 우연히 말 섞고 동무 내지 아마도 연인으로 발전할 올리브. 할머니 할아버지도 관심과 사랑이 필요해!! 이 불효자식놈들아!!! 내내 그런 외침을 듣는 것도 같았다. 올리브가 던킨 도너츠를 너무 자주 가고 도넛을 많이 먹고 살이 오르는 게 좀 걱정이었다. 그나마 산책은 열심히 하셔서 다행… 오래 안 앓고 빨리 죽으려면, 아니 건강하게 계속 살아남아 사랑하려면 운동도 열심히 하고 식단조절도 하고 하여간에 건강해야 해요. 건강하려고요. 최대한 오래 사랑 받고 싶네요. 그래서 내 곁의 사람들도 다들 운동도 좀 하고 아이스크림 같은 거 덜 먹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말을 안 들어서 슬프지...

+밑줄 긋기
-헨리는 사람들이 혼자 있는 걸 원치 않았다. (53)
-“당신, 날 떠나지 않을 거지, 그렇지?”
“아, 또 무슨 소리야, 헨리. 사람 참 지겹게 만드는 재주 있다니까.”(56, 올리브 말을 참 안 예쁘게 하는데 쿨내 진동. 개시크)

-때때로, 지금 같은 때, 올리브는 세상 모든 이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걸 얻기 위해 얼마나 분투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필요한 그것은 점점 더 무서워지는 삶의 바다에서 나는 안전하다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사랑이 그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어쩌면 그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담배 피우는 앤을 바라보며 생각하건대, 그런 안정감을 갖는 데 아버지가 각기 다른 세 아이가 필요했다면 사랑으로는 불충분했던 게 아닐까? (378)

-매일 아침 강변에서 오락가락하는 사이, 다시 봄이 왔다. 어리석고 어리석은 봄이, 조그만 새순을 싹틔우면서, 그리고 해를 거듭할수록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런 봄이 오면 기쁘다는 점이었다. 물리적인 세상의 아름다움에 언젠가는 면역이 생기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고, 사실이 그랬다. 떠오르는 태양에 강물이 너무 반짝여서 올리브는 선글라스를 써야 했다. (461, 이제 막 겨울 앞에 서니 봄이 왔다는 게 부럽다. 흥 나한테도 온다. 언제든 온다는 변함 없는 약속이 계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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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그 자체 - 현대 과학에 숨어 있는, 실재에 관한 여덟 가지 철학
울프 다니엘손 지음, 노승영 옮김 / 동아시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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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5 울프 다니엘손.

 아침부터 단풍 구경을 가겠다고 홀로 고개 넘어 산을 질러 현충원에 갔다. 지난 달 말에 돌아가신 큰외삼촌이 제2충혼당에 모셔진 걸 본다는 건 핑계고, 노란 은행잎, 빨간 단풍잎 실컷 보고 싶었는데 실컷 봤다. 그러고나서 다시 지름길을 되돌아 숭실대쪽으로 나왔는데, 젊은이들이 너무너무 많았다.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사서 집에 돌아가는 게 목표였는데 키오스크마다 줄이 엄청나서 포기했다. 서울대입구까지 한참 더 걸어가서 버거킹 주니어와퍼를 사서 예상보다 늦게 집에 돌아갔다.
 오후에 곁의 사람이 산책을 간다기에 또 따라 나섰다. 이번에도 산길을 질러 숭실대 근처에 가 버렸다. 아까 점심께 토요일인데도 학생들이 엄청 많았다니까, 수시철이라 다들 입시 보러 온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막 100대1 넘는 경쟁률도 있다는 소리에 그럼 20명 뽑는데 막 1000명 오고 그래? 라고 내가 말하자 더 와야 100대1이 되지, 했다. 그래서 스스로도 조금 부끄러워서 나 산수 진짜 못하지? 하자 딴생각하던 곁의 사람은 뭔 질문인지도 모른 채 응, 해 버려서 내가 막 웃었다.

 스웨덴 이론물리학자가 수학과 과학에 대해 철학적으로 접근해서 이런저런 명제를 챕터 제목 삼아 쓴 이 책은 간결하고 명료하게 읽혔다. 이보다 더 쉽게 간단하게 설명하고 주장하는 글이 없겠다 싶게 느낌은 간명했는데, 산수를 못하는 나는 왠일인지 오, 읽으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건 없는데 왜 읽고 나서 알게 되고 남는게 없지? 했다. 2년 전에 고교 물리1을, 1년 전까지 고교 수학을 붙들고 있던 내가 결국 이과가 되는 걸 포기한 건 참 잘한 일이다. 어떤 문제들은 평생 해를 구하려 해도 사람 머리로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일반 컴퓨터도 안 되고 슈퍼 컴퓨터로도 될까 말까한 풀이들… 나의 머리는 아직 윈도우95, 조금 더 써 주면 윈도우xp쯤 될 건데, 이제는 이름도 모르겠는 최신 운영체계에서 파워 짱짱 갖춘 메모리랑 그래픽카드로 쎄게 돌아가는 채굴 프로그램이나 인공지능 프로그램 같은 걸 아무리 입력해 봤자 내 메모리는 과열되서 다 타버릴 것이다. 그래도 챕터명이 곧 내용인 이 책의 선언들은 논쟁적이라고는 하지만 나한테는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되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은 물리학이다. (그래서 물리를 잘 하고 싶었고 그러려면 수학을 잘 하고 싶었다. 그런데 산수부터 잘 안 됐다) 살아 있는 존재는 기계가 아니다. (유기체여서 행복해요) 우주는 수학이 아니다. (그렇구나 세상을 꼭 수학으로 이해할 필요 없겠구나) 모형은 실재와 같지 않다. (그러니까 수많은 모형과 이론을 이해 못한다고 주눅들지 말아야 겠다) 컴퓨터는 의식이 없다.(챗지피티 너 임마 넌 집단 환상이야) 모든 것을 계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그러니까 모두가 계산하는 것을 나만 할 수 없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인간은 특별하지 않다.(이건 뭔가 행복해지는 주문) 자유의지는 없다.(이건 뭔가 너무 무거운 책임감이 덜어지는 주문)

 과학책을 이따위로 내 마음대로 읽고 대충 알아듣고 대부분 못 알아듣고 그래도 그냥 기분 좋으면 됐지, 난 행복한 사람, 룰루루루 했다. 에이형독감에 걸리더니 천식만 도진 게 아니라 정신도 나간 건가, 오늘 하루 이만사천걸음을 걸었다. 카페인을 조금 많이 섭취했다. 하루가 한 주 같고 한 달 같았다. 그런데 다 좋았다. 생각보다 하루에 엄청 많은 기분과 경험과 생각을 담을 수 있었다. 담을 수 있는 것만 담고 담지 못할 건 놓는 법은 배우는데 몇 년이 걸렸다. 어쨌거나 오늘 내가 눈에 담은 하늘과 구름과 시냇물과 단풍과 낙엽과 묘비와 음식물과 마실 거리들은 실재하고, 그 모든 세상의 ‘것’들을 감각하는 나도 실재한다. 아직은 그렇다. 그럼 됐다.

 이 책은 조금 더 정신이 말짱할 때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그때도 또 뭔말이여 뭔말인지 알 것 같은데 왜 모르지 할 지도 모르지만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은 당장은 말짱하다.


+밑줄 긋기
-일반적으로, 세계는 삭막하고 위험한 곳이며 우리의 지식만이 이 세계를 살 만하고 안락한 곳으로 바꿀 수 있다. (9)

-우리 이론물리학자들은 온갖 황당한 주장을 하고도 손가락질받지 않는 특권을 누리는데, 그 비결은 우리만이 실제로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한다는 인상을 풍기는 것이다. 때로는 그 인상이 맞을지도 모르지만, 평행세계는 정신 나간 발상처럼 보일 뿐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69-70, 노빠꾸로 평행세계 까버리는 물리학자 선생님)


-우리가 이용하는 수학은 결코 자의적이지 않다. 하지만 수학은 저 너머의 플라톤적 이데아 세계에도, 우리와 독립적인 외부의 물리적 세계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수학은 우리의 생물학적 뇌 속에 순전히 물리적으로 존재하며 우리가 사라지면 함께 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수학은 우리의 생물학적 본성에 의존하는 생물학적 구성물이다. 자연법칙은 우리 머릿속에 존재하며 우리는 이를 이용하여 주변 세계의 규칙성을 이해한다. (100-101, 수학과 과학을 잘 익혀서 세상을 잘 이해해보겠다고 덤비다가 실패한 미수이과, 골수문과에게는 이 부분이 많은 위로가 되었다. 세상을 수학으로 이해해야 정답인 것은 아니라고.)

-메를로퐁티의 요점은 당신에게 몸이 있다기보다 당신이 몸이라는 것이다. 철학적 좀비가 당신을 말썽에 빠뜨리는 근심거리가 되는 것은 오직 당신이 기만적인 데카르트적 이원론에 빠져 있을 때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당신이 기계에 속아 넘어가 기계에도 의식이 있다고 믿을 리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계산주의 마음 이론의 지지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니까. (165, 데카르트 두개골의 수난사까지 소개하며 스웨덴의 업적으로 데카르트 제거를 꼽는 물리학자 아저씨… 내세를 믿는 사람들은 이 학자님을 아주 싫어할 수도 있겠다. 죽으면 끝. 당신이라는 물질계는 또다른 물질계로 돌아갑니다. 부서진 석고상이 흙먼지가 되듯이요. 이건 그냥 내 말입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은 우리를 재앙으로 이끄는 것이 풍부한 지능이라기보다는 어리석음이라는 것이다. 초고속 컴퓨터가 세계를 장악하는 종말론적 시나리오보다는 오히려 다소 따분하지만 안전망이 미흡한 기술 시스템에 의존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176, 모든 재앙은 대체로 멍청함에서 비롯된다는 똑똑한 자의 주장...반박하기 어렵네…)

-하지만 로봇이 우리처럼 행동하고 우리와 상호작용 하면서 우리를 더 닮아가면, 우리가 그 모습에 속아 넘어가 우리 자신과 비슷한 내적 삶을 그들에게 투사할 가능성도 커진다. 이미 우리는 생명이 없는 물건들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대하고 있다. 자동차에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욕설을 퍼붓고 심지어 후려치기까지 한다. 어린아이는 곰 인형을 끌어안고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로봇이 우리를 닮기 시작하면, 로봇에게 사람과 같은 권리를 부여하고 경제적 가치를 넘어서는 자유와 보호를 보장하라는 정치적 운동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179, 그러니까 우선 나와 성의 있고 끈질기게 대화를 나눠주는 AI부터 의식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면 곤란할 듯하다. 내 생각의 데이터베이스랑 외부 정보 모은 것들을 바탕으로 적당히 거울처럼 비춰서 맞아맞아 해주는 메아리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 덜 몰입되어 속편하다. 인공지능에(-과 라고 안 했다)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도 물론 어디 있을 것이다. 물에 비친 자기에게 반해 죽어버린 나르시소스처럼 말야…)

-나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가운데 상당수가 환각이라는 데 동의하지만 주관성과 의식의 존재가 사실이라는 것만큼은 부정하지 못하겠다. (181, 매트릭스는 영화일 뿐이고...좀비도 가상의 존재일 뿐이고…)

-모든 것을 일반 컴퓨터에서 계산할 수 있다는 믿음은 무리수에 대한 고대 그리스인들의 공포와 닮은 구석이 있다. 그들은 분수로 나타낼 수 없는 원주율 같은 수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물리학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모든 수학이 조만간 물리학에 적용되리라는 것이다. (204-205)

-전반적으로 보자면 무질서는 언제나 증가하지만 작은 오아시스에서는 질서가 일시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다른 곳에서 더 많은 무질서가 생긴다. 지구는 그런 오아시스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질서는 고에너지 광자가 거의 없는 고품질의 가지런한 햇빛을 통해 증가하며 무질서는 저에너지 광자들로 가득한 열복사에 의해 우주로 방출된다. 광합성 식물도 자기 할 일을 하며 지구상에서 생명이 번성하게 한다. 완전한 닫힌계에서는 생명이 살아남을 수 없다. 태양이 빛나기를 멈추면 우리는 설령 몸을 데울 방법을 찾더라도 죽을 것이다. 시간은 질서에서 무질서로 흐르며 이런 식으로 시간의 방향이 생겨난다.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며 미래를 예측하려고 애쓴다.
 우리는 열역학 제2법칙이 어떻게 원자의 세계에서 유도될 수 있는지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이 법칙은 특별한 지위를 간직하고 있다. 앞으로 물리학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제2법칙은 꿋꿋이 결정적 역할을 맡을 것이다. (208-209, ‘시간이 흐를수록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엔트로피 증가를 진리라 단호하게 쾅 찍는, 그 방정식으로 사인해주는 물리학자 뭔가 멋있지 않나. 이상한 데서 끌림…)

-닫힌계는 바깥에 있는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으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그 무엇도 바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런 계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상적 계의 규모가 작고 결부된 시간이 짧을수록 그 계를 고립시키기가 쉬워진다. 반면 세계를 관찰할 경우에는 그 즉시 주변 우주와 걷잡을 수 없는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213, 모든 조건이 일정할 때- 같은 건 실제 세계에 대한 이해와는 무관할 수도 있겠구만… 동태 한 토막 들고 명태라는 물고기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도 내가 무슨 얘기 하는지 모르겠다.)

-열역학은 내가 좋아하는 분야다. 나는 열역학을 통해 다수의 입자들이 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온전히 이해한다. 더 높은 수준의 차원으로 올라가서 일상생활을 하며 먹고 자고 걷고 자녀와 놀아줄 때는 그보다 더 투박한 모형을 이용한다. 썩 과학적이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개나 다른 인간 같은 살아 있는 유기체는 수많은 입자들이 모인 중요한 복합체이며 나는 그들을 개체로 개념화한다. 생각과 욕망으로 가득한 나의 의식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생각한다. (214, 작은 닫힌 계 하나라도 온전히 믿고 좋아할 수 있고, 나머지 세계는 거기 갇히지 않고 또 다른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게 부럽고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생활 완전가능)

-나는 ‘홍합이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라고 묻는 것이 무의미하지 않다고 확신한다. 그 답을 검증하기란 불가능하겠지만 말이다. 이런 물음을 시도하면서 뿌옇고 흐릿한 존재를 상상한다. 잠에서 깼는데 눈 뜬 곳이 어디인지 모르는 기분이 떠오른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홍합은 위대한 사상가가 아니며 그들로부터 우리까지의 격차는 작지 않다. (223-224, 세상을 이해하길 멈추지 않는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 덕에 나같은 평범한 사람도 아주 작은 앎이나마 맛을 볼 수 있다.)

-실재를 바라보는 단 하나의 올바른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이 객관적인지에 대한 개념들을 체계화하고 형성하는 방식은 우리가 누구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225, 너무 문돌이 빡대가리라고 자학하지 말아야겠다.)

-그림 속의 손은 자기 자신을 그림으로써 자신의 물리적 존재를 만들어 낸다. 살아 있는 물질을 정의하는 것 또한 스스로를 떠받치는 바로 이러한 자기 지시 능력이다. (232)

-우리가 ‘이론상’을 거론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입증 불가능한 것이 참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셈이다. 이는 종교적 믿음과 마찬가지로 과학적 접근법과 양립할 수 없다. (244)

-자유의지가 진정으로 자유로우려면, 또는 결정론이 완전히 결정적이고 자유롭지 않으려면 보편적 타당성이 필요하다. 내가 주장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자유의지와 결정론은 똑같이 어수룩하고 불가능하다. 둘 다 달성 불가능한 전지적 시점과 한물간 이원론을 근거로 삼기 때문이다. (245, 패기롭게 둘다 패기, 폐기)

-우리(여기에는 우리의 의식도 포함된다)는 세계 자체의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자연법칙의 노예가 아니다. 자연법칙은 우리 자신을 비롯해 자연이 하는 일을 기술하는 방법에 불과하다. 자연주의자는 세계 한가운데에, 우주 한가운데에 서 있으며 필멸하는 몸에 갇혔지만 불완전한 뇌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관찰을 표현하고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모든 모형에는 한계가 있고, 한계에 다다르면 새로운 물음이 탄생하기 마련이다. (246, 필멸, 불완전하지만 중요한 부분이자 최선을 다하는 노예가 아닌 존재. 멋있게 말하는 물리학자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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