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밀란 쿤데라 전집 14
밀란 쿤데라 지음, 한용택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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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4 밀란 쿤데라

할아버지께.
열일곱 살 쯤 할아버지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처음 읽었습니다. 아직도 1-2년에 한 번씩 읽습니다. 십구 년 동안 할배가 자식처럼 세상에 뿌린 책들을 하나씩 캐다 읽었습니다. 이번 만남으로 (민음사가 저작권을 독점중인) 한국어판 할배책은 다 모았습니다. 아직 엄마 집에 있는 커튼이 남았으니 다 읽진 못했네요. 끝이 아니면 좋겠어요. 5년 전 할배 신작이 나왔을 때의 놀라움을 다시. 그냥 제 욕심입니다.
체코의 역사, 유럽의 예술, 음악과 미술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는 동아시아 토박이입니다. 할배가 글을 체코어로 쓸까 프랑스어로 쓸까 궁금했는데 대부분 프랑스어로 쓴 것을 아주 최근에 알았습니다. 이런 무식쟁이인데도 내가 모르는 소설가, 미술가, 음악가에 대해 할배가 쓴 글을 읽는 게 즐겁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아예 모르겠는 건 아니고 조금은 알 것 같은 게 신기합니다.
지난 번(이라고 해도 사 년 전) 배신당한 유언들을 읽고 카프카의 ‘성’을 읽었습니다. 사놓고 먼지 쌓은 ‘소송’도 읽어야겠습니다.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전자책을 사서 5년째 보다 말다 하는 중입니다. 올해 안에는 보려고 합니다. 이번 책에서도 라블레를 언급하셨는데 지난 번보다는 조금 와 닿습니다. 전자책에는 주석이 빼곡이 달려 있어 웃지 못하는 제게 ‘이건 말야 이런 걸 비꼰 거야’하는 개그 설명충을 동반한 느낌이지만 그나마 없었으면 더 맥락없는 독서로 괴로웠겠죠.
이번 만남은 역주가 하나도 없는데 그게 오히려 깔끔하니 좋았습니다. 할배와 마주한 자리에 누가 끼어들어 이러쿵저러쿵 했더라면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텐데 다행입니다.
인터넷 검색은 조금 했습니다. 세상 좋아져서 할배가 말하는 작가의 그림이나 음악가의 작품들을 손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다만 잊혀진 채 어딘가에. 머나먼 동아시아 방구석 칩거자에게는 작은 행운입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에 대한 글. 저는 철학자 이름으로만 들었는데 윤이형의 소설 셋을 위한 왈츠에 잠시 나오고 빅뱅의 탑이 랩에서 읊어대서 동명의 화가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을 찾아볼 생각을 한 건 할배 글 덕입니다.
사실 책의 첫 몇 쪽 넘겼을 뿐인데 격렬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할배의 과거 강간 욕망에 대한 서술 때문입니다. 강간 비유는 같은 글에서 계속 등장합니다.
베이컨의 그림을 보고 나서 그런 표현이 터무니 없지 않다는 걸 느꼈습니다만. 그럼에도 굳이 폭력과 공포의 재현을 위해 자랑도 아닌 추한 욕망을 뒤집어 까보였어야 했을까 의문입니다. 나중에 그 얘기를 들은 당사자 기분은 어땠을지. 화장실 물소리와 불편한 속과 비밀경찰에 시달린(릴) 불안에다 강간이라니. 제 뒤집어진 속은 어쩌실런지. 이 변태 할방구야. 그러니 할배가 카레닌 그린 걸 보고 자기 ㄱㅊ그린 거 아냐 하는 소리를 한 제가 무리는 아닌 겁니다.
...죄송합니다. 미안 카레닌.

할배가 소개하신 친우 에르네스트 브롤뢰르의 작품들도 찾아보았습니다. 한국어 검색은 도저히 안 되어서 몇 번 실패 끝에 ernest breleur martinique 란 검색어로 그의 얼굴과 회화와 설치 미술의 이미지를 얻었습니다.
할배가 직접 그의 아뜰리에에서 만난 천사가 하얀 오줌 눈 캔버스나 누운 초승달이나 뒤집어진 티셔츠 같은 밤은 못 찾았지만. 흥미로웠습니다.
마르티니크라는 지역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인과 관련된 검색 결과는...마약 밀매에 (주장대로라면 잘 모르고) 얽혀 프랑스에서 체포되어 마르티니크의 감옥으로 보내져 수감 생활한 한국 여성의 (기자가 재구성한 가상)수기를 덕분에 읽었습니다. 그걸 읽고 그 섬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접었습니다. 제 외모와 언어의 한계가 제가 겪을 미래를 미리 제한하네요.

지난 번 배신당한 유언들 덕에 야나체크와 스트라빈스키를 알고 몇 곡 찾아 들었습니다만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이번에 들은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 속 푸가가 포함된 악장들은 꽤나 좋았습니다. 처음 듣는 베토벤 아직 듣지 못한 베토벤이 산더미인 걸 알았으니.
Beethoven-Sonata Op. 110, Adagio ma non troppo- Fuga
https://youtu.be/fGfT6tMKUUY

Iannis Xenakis - Metastasis
https://youtu.be/SZazYFchLRI
크세나키스의 음악 또한 새로운 충격이었습니다. 나라 잃은 충격과 기묘한 위안. 음악을 들으니 조금이나마 알 듯했습니다. 하여간 귀신 같이 이상하게 독창적인 건 잘도 찾아내. 그런 의미에서 샤무아조의 소설 훌륭한 솔리보도 무척 기대가 됩니다. 만 찾아보니 아직 현존하는 한국어판 샤무아조 작품은 없어요. 엉엉.
말라파르테의 원-소설은 아쉽게도 가죽은 없지만 이 책에 파멸로 소개된 책이 망가진 세계라는 한국어판으로 번역이 되어 있었습니다. 언젠가 읽어 보겠습니다.
아무래도 할배가 멋지게 무지개 가루 발라 압축 요약해서 그렇지 찬사를 보낸 책 대부분 실제로 읽으려 들면 기가 질려 덮고 말 가능성이 높겠죠. 그래도 할배가 언급하면 읽어보고 싶어지는 건 참 신기합니다. (돈 받고 서평 블로거 하셨더라면 성공...아,아닙니다.)

이번 책에서도 야나체크를 향한 첫사랑을 한 부에 할애하셔서 찾아 들었습니다. 콘체르토랑 교향악 한 곡씩. 유튜브가 요물이라 Janacek opera 검색하니 영어 자막 달린 예누파랑 꾀밝은 여우 풀버전까지 나왔습니다. 아주 한가해지는 언젠가 감상해 볼까 합니다.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 죽은 뒤에 괴롭힌 것도 모자라 여기서도 빠지지 않네요. 개구리 빼고 영원 회귀 찬미 하자는 뚱딴지 소리를 야나체크에게 직접 했다니...한국말에는 넌씨눈이라는 적정 표현이 있습니다.
무슨무슨파에 속하지 못한 외로운 천재들에 대한 사랑, 독창성과 상상력과 우스운 것들에 대한 찬사. (자신과 같은) 쫓겨나고 배척되고 인정 받지 못한 이방인 예술가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 그런 걸 아낌 없이 적어 두셔서 저도 손가락(끝 손톱)이나마 조금 적셔 봅니다.

노년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아내 성함이 베라인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고(30주년 특별판 카레닌 표지에 괜히 심통나서 출처가 어디냐고 꼬치꼬치 물었더니 밀란쿤데라 에이전시를 통해 “There is a very important dog in the novel – his name is KARENIN – he was the author’s inspiration and when the idea came we cannot say.” 라 답해 주셨다는 아내분…)
자녀나 손자가 있는지 어쩐지도 전혀 모릅니다. 아마 없을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래도 충만한 시간 보내고 계시겠지요. 그간 펴낸 수많은 글들과 평생을 함께한 예술과 (이제는 많이 돌아가셨겠지만 함께 예술을 말하고 만들던) 친우들과 그들과 보낸 날의 기억.
할배의 삶의 조각과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조각보를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다른 삶과 다른 세상과 할배가 느낀 아름다움들을 저도 느낍니다. 아직은 키치하고 통속적인 (할배가 싫어하게 만든) 것들이나 만들어내고 있지만. 그렇게 살고 있지만 아직은 새까맣고 새파란 날들입니다. 할배가 살지 못하고 쓰지 못하고 읽지 못한 것들을 누릴 시간 밖에 자랑할 게 없어요. 요것아 가는 데 순서 없다 하실지 모르지만 당장은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기쁩니다. 할배 신작이 없는 미래를 생각하면 아주 많이 슬픕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날들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한국에서 삼십 대 중반 여성 애독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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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한 마음 - 전중환의 본격 진화심리학
전중환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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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3 전중환

올해 나온 뜨끈한 신작이다. 바탕이 된 기획 연재도 16-18년에 진행되었고, 그래서 진화심리학의 최신 연구 결과를 최신 예시를 들어가며 친절히 설명해준다. 재미있다. 한편으로는 한 두해만 읽힐 거 아닌데 이렇게 요즘 유행하는 티비 프로나 연예인, 정치인을 마구 남발해서야 금세 한물 간 취급 받을 거 걱정 안 되나 싶은 마음도 든다. 그땐 또 뭐 새 책 내겠지...내가 왜 걱정하냐…

그동안 봐왔던 사회과학 분야들은 되게 소심하다. 경향성, 상관관계, 통계적 유의미함만 얘기한다. 거대 이론을 만드는데 인색하고, 심지어 섣불리 설명하려고도 하지 않고, 인과 관계를 단정하는 건 더더구나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딴청한다. 그러면서 뭔 학문이야...뭔 과학이야...안 쪽팔리냐….제대로 통제도 안 된 실험에서 인간을 가지고 뭘 제대로 말하겠냐...그런 오명도 많고 억울함도 많다.

 진화심리학은 자신만만하다. 어떻게, 가 아니라 왜!!!를 말하겠다고 감히 나섰다. 가설에 대한 과학적 증거도 제법 들이댄다. 탄탄해 뵌다. 거기다가 제법 말이 된다. 설득된다. 오오!

설명하려는 분야도 엄청 넓다. 거의 인간과 사회와 관련된 마음 전반을 다룬다. 
먹거리에 대한 너의 호불호는 말야…
네가 왜 그런 놈/년들한테 꼬이냐면...게다가 니가 한 군데 뿌리 못 박고 할랑할랑대는 이유는….
왜 우리가 가족이라면 다 내줄듯 하다가도 죽어라 싸우냐면…
애기가/동물이 왜 귀여워죽겠냐고?
어려운 놈의 사회생활, 믿음, 의심, 우정, 리더십 그런게 왜 이렇게 생겨 먹었냐면….
학교 공부가 왜 어렵냐면…
문화가 달라서! 가 아니라 문화가 왜! 다르냐면…
왜 보수/진보/도덕/성격/정신질환은 이 모양으로 나타나는가?

이쯤되면 거의 전지전능의 학문 아닌가? 물론 다 설명한다면 이거야말로 예언서급 인간의 비밀을 통째로 밝힌 만능 저서겠지...정답까지는 아니라도 진화에 수많은 질문을 푸는 실마리가 있다는 걸 시사하고 있다. 

이런 자신만만함 때문인지 욕도 바가지로 처먹고 오해도 많이 받는 학문같다. 진화와 유전자에서 기인한다면, 그걸 이유로 모든 못된 것들에 면죄부를 주는게 아니냐! 원래 그렇다!하고 나몰라라 하는 게 아니냐. 저자는 그런게 아니라고, 왜 그런지 이해하는 것이 나쁜 부분을 그러지 않도록 고쳐나가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어떤 부분은 오해라고 말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어미 뿐 아니라 많은 친족이 함께 하는 육아, 수유와 수유 중단에 대한 엄마와 아이의 힘겨루기 같은 부분은 당장 직면한 부분이라 관심이 갔다. 
어떤 때 어떤 이성에게 끌리는가, 왜 충성 또는 한눈 파는가, 는 사랑과 연애와 욕망에 대한 인간의 보편 관심사니 역시나 재미있었다. 물론 모두 납득이 가는 게 아니고 가장 욕을 처먹을 수 있는 부분인 것도 같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대담하게 과학이다!!하고 지르니 용감해 보이기도 한다. 
우울증 발생이 진화를 통해 남은 것에는 어떤 번식 적합성이 있었을까에 대한 가설들이 흥미로웠다. 직면한 문제에 대한 고민, 앓고 있는 다른 질환에 대한 회복 등을 위한 마음의 병이라고 생각하면 그래서 아픈 거구나, 언젠간 나을 수 있겠구나, 아픈 게 조금이나마 어떤 기능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하고 위안이 된다. (반대로 아픈 이를 지켜보는 마음도 조금 더 견딜만 할 것 같다)

+책 속 오류
울진 반구대 암각화-> 울산, 울주 반구대 암각화
나는 암구대 반각화 이렇게 말이 헤깔려 나올 때가 많은데 갔다 온 뒤론 동네는 확실히 기억해. 

종의 기원 읽기를 더 미루지 못할 거 같다. 완역본은 이제야 나온 거 같고 중고로 산 중역본 빽빽한 글씨에 꼬질이 하나 있는데 도전해보다 안 되면 그 때 신작을 사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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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8-13 2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이거 있는데. 왜 사기 전에는 매력적인데 사고 나면 책장으로 직행시켜 먼지만 쌓는지에 관한 진화심리학적 해답도 들어 있겠죠?

반유행열반인 2019-08-14 07:39   좋아요 0 | URL
저는 빌려봤기 때문에 반납일에 떠밀리듯 봐서 먼지 안 쌓인 거구요. 전중환 선생님은 그것도 진화 심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저는 책을 코로 봐서 입을 다물기로 합니다. (말을 아끼고 많이 성숙했네 나)
 
일곱번째 파도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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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8 다니엘 글라타우어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의 후속작.
당분간은 읽지 않겠다 해놓고 당분간이 너무 짧았다. 무료했나보네. 사실 알라딘 중고에서 오천원에 팔길래 사버림. ㅉㅉ
성공한 1편을 넘는 속편은 없다. 극소수 있어도 없다고 단정해도 될 것 같아. 1절만 볼 걸. 만나지 않게 둘 걸. 전부 패대기치고 둘이 하하호호 하는 거 보지 말 걸. 속편은 둘을 방해하는 요소들도 너무 약했고 너무 쉽게 만났고 이것저것 요것저것 할 거 다했다. 흥. 흥!
독자들의 열렬한 요청에 부합했을 테지만 역시나 나는 해피엔딩을 안 좋아하는 부류라는 것만 확인했다. 이 좋은 더위에 한정된 시간에 견디는 독서는 하지 말아야지.(사실 짜증내면서도 궁금하긴 했다. 얘들 그래서 어쩔건데? 하면서.) 정말 좋은 거만 골라보라구. 그러니 원래 그랬던 대로 대놓고 연애소설, 대놓고 달달이는 아웃, 그래놓고 또 더 후진 책 기웃댈 것 같긴 하다. 에이 뭐 아무거나 보면 또 어때. 명작 고전 과학책 이런 건 또 보면 뭔말인지 모를 거면서 알아듣는 걸 읽는 게 낫지. 이렇게 오락가락 자아분열을 거듭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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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8-09 0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 대놓고 달달이를 읽어야겠다- 하기까지는 꽤 많은 안달달이가 필요했는데, 다시 안달달이로 가기까지는 달달이 딱 두 개면 충분하네요? 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19-08-09 10:01   좋아요 0 | URL
달달이 좋아하다가 안 좋아하기는 쉬울 거 같은데...반대로도 가능할까요? 제가 육십 즈음 ‘예전엔 이런 게 별로 였는데 지금은 참 좋구만.’ 하고 미소 띤 얼굴로 석양을 보는 날이 오긴 올까요? 안 될 걸요? 달달한 거 보고 너무 좋다고 동네방네 외치고 다니고 아이돌 예쁜 얼굴 보며 꿈에 젖는 사람이 진짜 부러워요. 이거 좋지? 맞아맞아 하면 더 행복하지 않을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 선조실록, 개정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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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런 시절에 임진왜란 이야기를 읽으니 기분이 그렇다. 싸우기 바쁜 사람들. 자신들의 입지를 위해 민중을 싸움으로 내모는 권력자들.
못난 임금 못난 신하들이 다스리는 나라라도 지키려고 목숨 버려 싸웠던 수많은 장수들, 의병들, 백성들. 이순신!!!!!!
마지막에 선조의 열등감에 대한 저자 나름의 논평이 긴데 설명력은 제법 있다. 자기 변명과 보신 욕구를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그래도 왕인데. 그러고도 천수를 누리고 40년 넘게 재위했다니. 하아... 조선 왕 중 제일 발암 유발자 같다. 얄미운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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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조 퀴넌 지음, 이세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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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20190806 조 퀴넌 지음, 이세진 옮김

원제 one for the books. 저자 성격에 저런 구질구질 길쭉한 제목을 반겼을 리 없다. 애독가의 인생과 책이 얽힌 이야기인데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재미있었다. 결국 저 구질구질한 한글어판 제목이 나를 이끌었으니.
저자는 50년생 우리 시어머니랑 동갑인 할배다. 책을 쓸 당시 육십 대 초반이었으니 살아계시면 올해로 칠순이시네요. 성질은 괴팍하고 나만큼 더러운 거 같은데 (우리 시어머니는 엄청 순하고 착하시고요 저자 말입니다) 글은 재미있게 쓴다. 서평도 쓰고 여러 매체에서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며 읽고 싶은대로 읽으며 살아온 복받은 인생(으로 내 눈에는 보임)이다.

저자가 그렇게나 욕하는 전자책으로, 심지어 도서관에서 빌려보았다. 킨들로는 어림없지, 하며 소개한 두 에피소드가 인상 깊었다. 같은 이름의 두 나라의 두 서점, 긴 세월을 넘나들며 한 친구와 얽힌 우연의 이야기는 진짜? 뻥 치시네! 할 만큼 흥미진진했다. 책 끄트머리에 책 47권을 선물하고 편지로 왕래하다 끝난 연인의 이야기도 어마어마했다. 어디서 들은 얘긴데-해 놓고 자기 얘기 아냐? 싶었다. (어이 할배, 자기 얘기 아냐?)

서점에 얽힌게 별로 없다면서 동네 서점과의 추억, 캐나다 이모님 댁 머무르며 서점 주인과 주고 받은 우정, 킨들로는 어림없는 에피소드, 자그맣지만 좋은 책 다갖췄다가 사라진 서점에 대한 아쉬움, 사십 년 이상 오프라인 서점만 다니면 이야기가 안 생길 수가 없겠구나 싶었다. 그점은 약간 부럽다. 나는 히키고모리라 기껏 서점에 대한 건...온라인 서점이 생기고나서 예스24에 몰빵하다 십 몇 년전쯤 알라딘으로 옮겨 다시 몰빵 중이에요...정도네. 굳이 서점 전전하던 추억은...초등학교 때 마음에 드는 동요 악보책을 찾아 시내 곳곳의 서점을 쏘다니다 (심지어 기독 서적 전문점까지) 결국 중심가 제일 큰 서점에서 찾아낸 기억. 처음부터 제일 큰 데를 갔으면 되는데. 당시로는 파격적으로 최신 창작동요와 민중가요에 가까운 노래들, 운동권, 전교조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는 노래가 가득한 책이었다. 아직도 가지고 있다. 이미 초딩 때부터 새빨갰군.

전자책에 대해 항변하자면. 저자 말대로 그런 추억 만들기도 쉽지 않고 구매한 전자책은 대부분 처박아 두는 게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전자책 도서관이 아니었으면 책 목록을 훑다 님 책과 만날 일도 없었을 거에요. 게다가 기간이 정해져 있으니 억지로라도 한 권 더 읽게 되고 예약이 수십 명 밀려 있으면 왠지 나도 그 뒤에 줄 서게 되고 일 년 간 그렇게 열심히 100여 권을 빌려 봤더랩니다. 백 만원 정도 아껴서 아낀 돈으로 종이책을 샀는지는 모르겠고 이 이야기를 알라딘이 싫어합니다. 전자도서관 올해 말로 만료인데 흑. 밀리니 리디니 하는 곳도 알라딘 전자도서관 만큼 책을 갖췄는지는 모르겠지만 월 정액이라도 끊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 중. 복직하면 사실 읽을 시간도 없을 것 같긴하다.
여튼 저같이 거지에다 도서관 나가는 것조차 귀찮은 지하생활자들에게도 책을 읽게 만드는 전자책의 효용도 무시하지 마옵소서.

중고책구매를 싫어하는 저자에게 역시 마찬가지로. 두 권 살 돈으로 이십 권 사서 그 중 꽝으로 시발놈의 도서관인장 찍힌 훔친 책 물얼룩 젖은 더러운 책 제외하고도 양품 양서 너댓권 건지면 한정된 소득에 최대 이익을 얻을 수 있으니 가난뱅이에겐 희망입니다. 후진 책을 싸게 사 보면 데미지도 덜하고 책에도 더 후한 평가를 할 수 있어요. 역대 베스트셀러는 몇 년만 묵히면 그만큼 중고 매물도 쏟아져서 오백원 천원에도 읽고 (가치는 대부분 딱 그정도), 결국 중고란 건 누군가에게 팔릴 만한 가치가 있었던 거라 조금이라도 읽을 이유가 있긴 해요. 안목 있는 개인 셀러 샵을 찾으면 아예 그 판매 페이지 자체가 보물인 경우도 드물게 있습니다.
물론 저도 뉴욕 근교에 단독주택 구입할 재력이 된다면 새 책으로만 팍팍 사서 거기에 쟁여놓고 싶습니다만.

독서모임 싫어하는 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고르지도 않은 누군가의 안목 없는 책을 무더기로 사서 어거지로 꾸역꾸역 마감에 맞춰 읽고 나중엔 거기에 대해 몇 시간 떠들기까지 해야 한다니...그만한 공포는 없네요. (나 대인공포증인듯)

다독가 친구들이 그렇게나 많고 책을 주고 받고(물론 받은 책 잘 안 읽지만) 앙케이트 돌린 부분은 흥미롭고 부럽기도 했다. 내가 책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은 엄마 아니면 아홉살 큰 애. 끝. 뭐 그게 어디야.

만나서 반가웠어요. 할아버지 오래오래 사셔서 죽을 때까지 책 많이많이 보셔요. 저도 그럴게요. (다행히 아직 잘살고 계시네)

+밑줄 긋기
-이 책을 빌려보고 있는 쩨쩨한 새끼, 정 떨어지는 개자식이 뜨끔합니다. 
도서관에서 우리 책을 빌려 보는 쩨쩨한 새끼들, 정 떨어지는 개자식들은 우리 수입에 쥐뿔도 도움이 안 된다. 그들은 교회 친목회에서 당신 아내가 밤새 정성껏 준비한 맛있는 소시지 롤을 집어먹는 주제에 너무 느끼하다고 불평하는 인간들처럼 밉상이다. 완벽하게 유사한 경우는 아닐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그렇다.

-책에서 책으로 이어지는 여행의 인용. 앨런 베넷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
“여왕은 어떤 책을 읽으면 그 책이 길잡이가 되어 다른 책으로 이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문들이 계속 열렸고 바라는 만큼 책을 읽기에는 하루가 너무도 짧았다.”

-저자가 태리타운 북스 앤드 싱즈에서 200권 넘게 산 책들 중 일부의 저자. 딱 한 저자 한 권 가지고 있고 나머지는 이름조차 생소
찰스 부코스키, 아이리스 머독, 폴 볼스, 줄리언 반스, 로버트 스톤, 리샤르드 카푸시친스키, 페넬로프 라이블리, 리처드 프라이스, 토마스 베른하르트, 이반 도이그, J. M. 쿳시, 에릭 크래프트, 마거릿 드래블, 마이클 프레인, 라이트 모리스, 찰스 백스터, 윌리엄 보이드,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페트로니우스

-셰익스피어앤컴퍼니 서점에서 마주한 기막힌 우연의 엄마손파이(374겹)
이 모든 일은 내가 어느 한 서점에 과감하게 들어간 덕분에─그 서점이 내가 버러지 취급을 당하던 파리의 전설적인 서점의 분점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곳인데도─그리고 내가 믹과 제이를 모두 언급한 책을 발견한 덕분에 가능했다.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갈 믹과 지하철역에서 작별한 바로 다음 순간, 그리고 10년 넘게 못 만난 제이와 우연히 부딪치기 일보 직전의 순간, 이 모든 일이 서점에서 일어났다. 
킨들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기는 사기캐팀 응원하는 저자, 주인공 책은 안 보는 이유
까놓고 말해, 양키스 팬들은 구리지만 우린 그렇지 않다. 시카고 컵스를 응원하는 내 친구 말마따나, 양키스를 응원한다는 것은 공기를 응원하는 거다. 눈멀고 다리도 한쪽뿐인 토끼 한 마리를 잡아 족치는 걸신들린 한 무더기 핏불 테리어들을 응원하는 것만큼 앞뒤 안 맞는 짓이다.

-왜 나쁜 책도 보는가
충격적으로 형편없는 책들도 우리의 뇌를 활발하게 자극하기 때문에 인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나쁜 책의 존재 이유
나는 나쁜 책은 정말 나쁜 책이라는 시각을 버린 적이 없다. 하지만 그 형편없음이 존재하기에 좋은 책들이 돋보인다. 나쁜 소설은 좋은 소설의 단물 다 빠진 버전 같다. 진흙탕을 봐야 햇살이 모습을 감춘 지 오래됐음을 깨닫는 법.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옥수수 농사꾼의 『보바리 부인』이요, 『트로이의 부적』은 오디세우스 없는 『오디세이아』이며, 나치가 유럽을 장악한다는 상상을 그려낸 뉴트 깅리치의 『1945』는 필립 로스의 『반미 음모』의 좀 괴상망측한 세계판 버전이다. 

-나도 추천사는 믿지 않아. (그거 서정주 시잖아)
결국 나는 책 표지에 실린 찬사가 아무 가치도 없지는 않다고 여전히 믿고 싶다. 적어도 일부에 한해서는. 실망을 원치 않는다면 우리가 자유의지로 호랑이 굴에 뛰어들지는 않았음을 알아두는 편이 좋다. 우리는 속아서 맹목적으로 뛰어든 거다. 그 때문에 저놈의 날카로운 대못에 찔리고 만 거다. 쿠라레 독액이 묻은 대못. 뱀독 바른 대못. 똥칠한 대못. 내가 결국은 싫어하게 될 책을 읽느라 며칠을 날려야만 한다면 차라리 타인의 추천이 그 이유이기를 바란다. 우연히 그렇게 된다는 게 더 싫다. 남 탓도 못 하게 되면 어떡하라고.

-저같은 놈들에게 이렇게 자꾸 먹이주고 그러시면 작가들의 상처는 깊어만 갑니다. 
물론 어떤 서평가들은 인터넷이라는 정신없고 거친 바닥에서 꽤 독하고 개인적인 모습을 취할 수 있다. 이들이 승승장구하던 작가를 한 방에 보내는 바람에 작가가 온라인상에서 입은 상처로 폐인이 됐다든가. 하지만 이 재능 있는 아마추어 서평가들은 대부분 서평 프로세스에 부족했던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주류 서평가들이 프로필이 화려한 작가와 척지지 않으려고 망설일 때 이 사람들은 겁도 없이 신나게 밟아주니, 그게 단연 매력이다. 누구 눈치 볼 필요 없고, 정의로운 익명성으로 무장한 이 서평가들은 가장 빛나는 별들에게도─조이스 캐럴 오츠, 엘리자베스 바렛 브라우닝, 매브 빈치─호령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 서평가들이 국민 전체에 도움이 되는 거다. 그들은 1776년의 이선 앨런이나 ‘늪지대의 여우’ 프랜시스 매리언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용감무쌍한 저격수들이다. 재차 느끼는바, 총을 쏘고 내뺄 때 민주주의는 가장 잘 돌아가는 법이다.

-"자네는 죽기 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아니면 못 읽은 책이 생각나겠는가?" 이룬 것만 생각날 것 같은데...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이 있는가? 그렇다. 거듭, 또 거듭, 친구들은 다음의 책들을 지목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율리시즈』, 『피네건의 경야』, 『마의 산』, 『전쟁과 평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트리스트럼 섄디』, 『부덴부로크 가 사람들』, 『로마제국 쇠망사』, 보스웰의 『존슨의 생애』, 『제3제국의 흥망』, 『미들마치』는 그들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의심하면서도 언젠가는 올라야 할 우뚝한 봉우리들이었다. 

친구들은 좀 더 최근에 등장한 위압적 타이틀도 거명했다. 『중력의 무지개』와 『야만스러운 탐정들』과 『태엽 감는 새』는 결국에는 난공불락으로 밝혀질 요새로 떠오르고 있었다. 이 작품들은 그들이 간절히 오르기 원하는 산이었으나 그 산을 오르려면 셰르파가 필요했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셰르파들이 조력자로 나서야 했다.

-이거 김영하 소설 아니냐 짐 모리슨 타령하는. (이 책에서도 시인 얘기하다 은근슬쩍 계속 짐 모리슨을 끼워넣더라)
그녀는 또 도마뱀과 정사를 나누는 여자가 나오는 책 때문에 잠시 트라우마를 겪기도 했단다.

-자녀와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는 거 자체가 성공한 인생(+자식농사)아닐까. 은근 자랑질
책을 읽는 경험은 각기 다 개인적이죠. 지금 이 순간밖에 없는 거예요. 독서는 오로지 현재에만 존재할 수 있어요.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독서 경험을 재창조(re-create)해줄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어리석다고 봐요.

-친구가 준 책을 버리지 못하는 소회. 은근 친구 많다고 또 자랑. 책 많이 보는 주제에 핵인싸.
“어떻게 된 일인가? 어떻게 우리가 선택을 하는가? 누군가가 우리 삶에 들어오고 우리는 그 사람들 없이는 못 산다. 그러나 전에는 그들 없이도 잘만 살았다.”

-끄덕끄덕. 특히 이 뒤에 집안일 미뤄놓고 그지같이 사는 장면
독서 강박이 삶의 안녕을 해치는 것으로 밝혀질 수도 있을까? 그래, 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 읽기가 늘 나에게 긍정적인 경험만은 아니었다. 내가 세상을 삐딱하게, 마치 유령의 집 보듯 보게 된 데에는 책 읽기도 한몫을 했다. 

-전자책 마지막 장 책 정보 오타. 명종 대신 세종, 임종, 발효종 다 될 듯. 
아직도 책을 읽는 명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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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8-06 1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잘썼다 ㅋㅋㅋㅋㅋㅋ 역시!

반유행열반인 2019-08-06 19:42   좋아요 0 | URL
영혼 없는 추임새 있기 없기? 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19-08-06 19:43   좋아요 0 | URL
이 책의 1번째 마니아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제가 개길 순번이 아니었군요.

syo 2019-08-06 19:46   좋아요 1 | URL
영혼이 없다니요. ㅋ 하나에 진심과, ㅋ 하나에 정성과, ㅋ 하나에 현웃과...... 영혼 꽝꽝 박힌 ㅋㅋㅋ였다....

반유행열반인 2019-08-06 19:48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ㅋ 하나에 큰절 하나씩 ㅋ ㅋ ㅋ ㅋ ㅋ ㅋ ㅋ ㅋ ㅋ ㅋ ㅋ ㅋ ㅋ ㅋ 올립니다. (절하는 거임 저거 엉덩이에 머리 부딪칠까봐 띄어씀)

syo 2019-08-06 19:56   좋아요 1 | URL
이러면 또 ㅋ를 드릴 수 밖에 없는데요. 108배라도 하고 싶으신거예요? 왜 댓글조차 이다지도 재밌죠?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