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BT+ 첫걸음
애슐리 마델 지음, 팀 이르다 옮김 / 봄알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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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1 애슐리 마델
작년에 퀴어의 사랑을 다룬 한국 소설들을 몇 편 읽었다.
문득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알아보려는 노력은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었다.
태어나서 주어지는 대로 자신을 규정하고 혹은 규정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어떤 이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정체성을 스스로 또는 남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이렇게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용어를 만들고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한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수많은 갈래 중에서도 섹슈얼리티나 젠더에 한정하고도 책에 소개된 것만 80여가지였다.
하나하나 용어들을 보며 다 외우고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책 초반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분법을 넘어서 스펙트럼, 좌표 위에 그릴 수 있는, 혹은 심지어 표시할 수 없는 정체성이 있다는 걸 아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무심히, 혹은 호기심에서 던지는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수많은 말들이 누군가를 단정하고 규정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자신을 찾고 설명하고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거나 삭제당하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도 기억하기로 했다.
자신에 대해 말하는 퀴어들의 사례를 곁들인 용어집 형식이라 재미있거나 쉽게 읽히는 편은 아니다. 스스로에 대해 많은 물음을 던지는 과정에 있다면 생각을 정리하는 데는 도움이 될 듯하다. 사람은 범주화하길 좋아하고 거기서 안정을 느끼니 어떤 이들에게는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아주 가까운 말을 찾는 일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다양한 끌림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무성애를 포함해 설명하였다. 왜 퀴어축제에서 무지개 모양을 쓰는지 이제 좀 알 것 같은데 사실 무지개로도 부족할 만큼 다양한 차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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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끌어안고 사는 강박 - 불편한 생각에서 자유로워지다
김현철 지음 / 팬덤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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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0 김현철

정신의학신문이라는 매체의 기사를 즐겨본다. 마음의 작동 방식을 정신의학 관점으로 설명하는 게 흥미롭다. 스스로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책이나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을 색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의사들의 분석도 꽤 그럴싸 하다.
강박장애 진단을 받지는 않았지만, 강박장애와 강박성향의 경계 어디쯤에 위치해 있다는 생각을 스스로 많이 한다. 그래서 그런가 이 책은 제법 재미있게 술술 읽혔다.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이지만 솔직히 모든 내용이 납득과 수긍이 가지는 않았다. 일단 제목으로 붙은 주제와 챕터의 내용이 일관성 있게 이어지지 않았다. 읽다보면 갑자기 문단과 문단 사이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고 마구 뛰어넘는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건 글쓰는 역량과 구성의 문제일 것이다. 그 다음으로 거슬린 것은 대부분의 이론적 배경이 정신분석학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었다. 뇌과학 발전이 이렇게나 눈부시게 진행된 마당에 많은 임상 사례 해석을 어머니 아버지와 유아기에 맺은 관계, 고착, 뭐 이런 걸로 다 가져다 붙이니 솔직히 조금 웃긴 게 더 많았다. 그래도 프로이트식으로 영화 박쥐를 해석한 건 재미는 있었다. 영화를 이런 식으로도 분석할 수 있구나, 누군가는 이렇게 이런 관점으로 해석을 하는 구나, 틀이라는 건 참, 재미있구나, 했다. 잘 갖다 붙였다 정도였지 전혀 논리적으로 설득되지는 않았다. ㅎㅎㅎ
완벽함이라는 환상,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모든 상황을 통제하려는 욕구가 허황된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쉽게 그런 행동과 사고에 빠지곤 한다. 나 때문에 힘들어지는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면 미안한데, 나 또한 통제력을 발휘하려는 과정에서 힘들고 상처 받는 때가 많은데, 쉽사리 나아지지 않는다. 내가 어떤 행동을 어떤 감정과 마음 상태 때문에 하고 있는지 들여다 보고 인지하는 건 중요한 일 같다. 돌아보는 일은 나아지기 위해 필요하다. 내려놓고, 편해지는 삶을 바라본다. 될까 모르겠다.

밑줄 긋기
-‘박학다식은 강박 성향의 완벽주의가 우릴 홀릴 때 자주 쓰는 무기 중 하나입니다. 여기에 빠져들지 않으려면 위의 생각과는 반대로 가야 합니다. 한 분야에 깊이 있게 접근하면서 필요할 때만 주변 분야의 참고 서적을 보겠다는 마음가짐이 도움이 됩니다.’

-‘무엇이 더 좋은가보다 무엇을 더 잃을 것인가를 기준으로 삼을 때 선택이 훨씬 더 쉬운 까닭은 위기 혹은 위험에 민감한 강박 성향 특유의 경보체계를 역이용했기 때문입니다.’

-‘죄송하다는 표현은 상당히 공격적인 의미를 내포합니다. 죄송함이란 잔인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무력감에서 비롯된 분노가 폭발해 화산재처럼 자신을 뒤덮을 때 발생하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이는 인간관계를 맺을 때마다 항시 떠올려야 하는 명제입니다. 하지만 우린 규정지은 틀에 스스로를 구속하는 본성 탓에 착각과 망상의 늪에 빠지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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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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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0 옌롄커
중국 소설은 별로 읽은 게 없다.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와 인생 단 두 권. 그리고 옌롄커의 사서를 읽었다. 중국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몇 편의 소설 속에서 마주한 이미지들에 공통점이 있었다. 사람의 일이란 완벽할 수 없고, 어떤 대의와 신념과 확신으로 뭉쳐 무언가를 이루려는 자들이 힘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런데 그 힘이 향하는 방향이 생각보다 한참 잘못되었을 때 그 영향력 아래 놓인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고통을 당하고 인간의 존엄을 잃고 쉽게 죽어간다. 그 와중에 할 거 다하는 우리 인간들...이라는 이웃의 코멘트에 격하게 공감하며 읽었다.
제목처럼, 네 개의 책이 교차 서술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사실 시시포스 신화 한 권은 마지막에만 짧게 등장하고, 저자를 알 수 없는 하늘의 아이, 작가가 몰래 쓴 옛길, 작가가 아이의 지시에 따라 쓴 죄인록 세 작품이 번갈아가며 나온다. 죄인록은 중반부에 사라지지만 작가가 아이에게 식량을 구걸하고 나중에 뒤늦은 죄책감을 깨우치는 장치로 종종 등장한다. 여러 책을 병치하며 서술을 달리하는 구성이 나름 신선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뻘짓을 다하면서 온갖 실패를 겪어도 인간이란 이내 적응한다. 일부는 살아남는다. 또 일부는 그 와중에 사랑도 한다. 책이 뭐라고, 어떤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책을 지킨다. 아니 그런데 또 극한에서는 역시 목숨이랑 먹을 게 우선이긴 하다.
왠만한 괴작들 아무렇지 않게 보는 편인데 읽기 힘든 장면들이 더러 있었다. 작가가 황무지에 홀로 나가 밀을 키우는 이야기, 음악의 비밀, 작가가 학자와 음악에게 사죄하기 위해 하는 일들이 그랬다. 단순히 장면의 고어함이 문제라기보다 그만큼 절박하고 한계에 몰린 인간 상황을 감당하는 게 힘들었던 것 같다. 그게 다 있을 법할 이야기로 느껴지는 동시에 말이 되나, 아니 또 저럴 수도 있겠다, 오락가락거려서 더 그랬지 싶다. 피를 팔아 아이를 살리려는 허삼관 매혈기 속 아버지, 인생에서 홀로 남아 콩을 퍼먹다 죽은 가여운 손자, 극심한 기아의 끝에 아이를 잡아먹거나 생살을 베어 먹이거나 시체를 뜯어먹는 설화 같은 것들이 자꾸 떠올랐다. 저런 이야기가 반복해 나오는 건, 언젠가는 누군가 정말 겪은 일들인지 몰라, 그게 아니라도 저렇게까지 할 수 밖에 없겠다 싶은 처지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이야기에 공감하며 내내 전해왔는지도 모른다.
이야기 속 아이의 존재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랑을 가진, 선량한 의도, 동시에 자신의 명예와 허영을 채우려는, 호기심 많은, 천진한, 죽고 싶은, 마지막에는 자기 희생을 감내하는, 알고 보니 책의 수호자인, 그의 죽음을 도교적으로 구름 까치 등등 온 자연이 슬퍼하는, 굉장히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상징이었다. 저자가 나는 인민의 반동도 아니고, 사실 국가가 나를 아껴서 그런 거 알아, 뭐 이렇게 물타기하려고 저렇게 그린 건가 싶기도 했지만 조금 무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중간 마름에 착취에 일조하는 멍청이 아닌가. 이 소설 보니까 애들한테 스티커 나눠주면서 동기 부여하는 일이 되게 끔찍하게 느껴졌다. 많이 하던 짓인데. 아 싫으다. 빨간 꽃 종이별 강철별 온갖 치장의 말로 탐미적으로 아름답게 그린 장면들이 많지만 그냥 섬뜩하기만 하다.
황폐해 가는 자연 풍경, 잔혹하고 고통스러운 장면들을 예쁘게 써 놓은 문장들이 많았다. 지나온 역사에 상상을 더하고 사람의 마음과 일을 전하고 아름다운 말을 만들어내는 소설의 일을 생각한다. 많은 생각과 씀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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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6 15: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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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6 15: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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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6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6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베개를 베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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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7 윤성희
어느 새벽 잠을 자다 깨서 베개에 대한 글이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저런 메모도 해 두었다. 베개를 다르게 부른다면. 잠기둥 잠들보 머리받침 머리도마. 나는 왜 머리도마가 제일 마음에 드냐. 뎅겅 할 것 같다. 결국 베개에 관해서 뭘 쓰지는 못했다.
그래서 소설집 이름을 보고 끌려서 빌렸다. 윤성희의 소설은 처음 보았다. 막 엄청 재밌고 술술 넘어가고 하지는 않았는데 그래서 오래 보다 말다 했는데 또 읽고 있으면 좋았다. 읽고 나서도 그럭저럭 좋았다.
엄마, 딸, 언니, 형부, 전부인, 친구, 친구의 부인, 친구의 자녀, 외삼촌, 조카, 직장 동료, 다양한 관계들이 등장했다. 그런데 자꾸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소설은 사람 사이의 다양한 관계에 관한 이야기지 참, 싶었다. 내가 이 년 간 끄적인 습작 속 관계들도 돌아보았다.

아내와 남편과 단식농성 중인 내연남/시간강사와 그의 한 학기짜리 제자들/중학생과 중학생/고3수험생과 담임과 아버지/교사와 중학생/고등학생과 독서실 주인/아내와 남편/동아리 부원과 신입생/또 동아리 부원과 신입생/형과 동생/딸과 아버지와 언니/일기 쓰는 나와 친한(친했던) 언니와 옛 남자사람 친구/외할머니와 엄마와 아들/소개팅에서 만난 먹방유튜버와 한국사검정능력시험 대리로 쳐주는 대학원생과 주선자인 뷰티유튜버/또 아내와 남편/교사와 복학생/남자와 갑자기 쳐들어온 모르는 여자와 그 여자 전남친과 남자의 전남친/동네 꼬마아이들/남자와 약혼자와 전여친과 전여친의 남편/여자와 남편과 여자의 남자인 친구들과 아이/중학생 연인/엄마와 나와 실종됐다 돌아온 아버지

사람 사는게 뻔하고 관계도 뻔하다 싶다. 그 뻔한 관계에 대해 나의 이해는 너무나 협소하고 상상력은 부족하고 할 이야기는 별로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 뻔한 걸 뻔하지 않게 관찰하고 생각해서 쓰는 사람들이 작가가 된다. 뭐가 되고 싶어서 썼던 건 아닌데 그래도 꾸준히 일 년 반 가까이 끄적이던 걸 초고 하나 쓰지 않은지는 두 달이 넘었다. 퇴고조차 하지 않게 된 건 한 달 쯤 됐다. 내가 잠시 쉬고 있는 건지 아예 그만 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이번에 읽은 소설가는 이 십년 넘게 쓰고 있는 사람이다. 궁금하기도 하다. 내가 오 년 후에 쓸 글은, 십 년 후에 쓸 글은. 나아질까. 계속 쓸 수 있을까. 쓰지 않는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어떻긴 지금처럼 살고 있겠지. 요즘 나는 조금씩 읽고 가끔 멍때리고 누군가를 무언가를 자주 기다리며 산다. 얼른 다시 쓰고 싶은 마음이 들면 좋겠다.

소설집에서는 휴가라는 소설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낮술도 좋았던 것 같다. 베개를 베다도 쪼끔 좋았다. 제목을 보고 딱 어떤 내용이었지, 하고 떠오르지가 않는다. 읽다 보면 다 비슷한 것 같으면서 또 다르기도 했는데. 대체로 덤덤한 서술인데 읽고 있으면 자꾸 서글픈 느낌이 드는 소설들이었다.

가볍게 하는 말 …… 『문학동네』 2015년 여름호
못생겼다고 말해줘 …… 『현대문학』 2012년 5월호
날씨 이야기 …… 테마 소설집 『헬로, 미스터 디킨스』(이음, 2012)
휴가 …… 『창작과비평』 2014년 가을호
베개를 베다 …… 『세계의문학』 2012년 가을호
팔 길이만큼의 세계 …… 『문학동네』 2013년 여름호
낮술 …… 『한국문학』 2014년 겨울호
모서리 …… 『자음과모음』 2013년 봄호
다정한 핀잔 …… 『악스트』 2015년 11·12월호
이틀 …… 『21세기문학』 2013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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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쟁이 2020-01-07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역시 글쓰시는 분이셨군요. 어쩐지 뭔가 아우라가 남다르다 생각했었드랬었었어요..
머리도마.. 앞으로 베개에 머리를 못대고 잘것 같아요. 책임지세욧.이라고 말하기엔 드르렁쿨쿨 잘만 자겠지만요.

반유행열반인 2020-01-07 18:09   좋아요 0 | URL
글쓰는 사람이라 하기엔 민망한 수준의 취미여요...그냥 북플에 서평 쓰고 일기 쓰는 수준이옵니다...
도마가 죄송스러워 무님께는 다른 이름 드릴게요. 베고자는왕마시멜로우라든가...수습이 될까요. ㅋㅋㅋ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혼자도 결혼도 아닌, 조립식 가족의 탄생
김하나.황선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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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5 김하나, 황선우

친구가 재미있게 봤다고 해서 궁금했던 책이다. 전자도서관에 9월 중순쯤 예약을 걸어놨는데, 해가 바뀌고 나서야 내 순번이 되었다. 에세이를 읽는 일 자체가 드물던 내가 작년에는 팔랑귀가 되어 나같지 않게 여러 권 읽었지 싶다.ㅎㅎ
40대 여성 둘이 한강 변 망원동에 30평대 아파트를 공동명의로 구입해 그곳에서 생활을 꾸려나가는 이야기이다. 아, 이렇게만 써 놓아도 뭔가 판타지같은 느낌이 든다. 2016년부터 함께 살기 시작했으니 이제 햇수로는 5년 차, 만 3년은 넘겼겠구나. 그 무렵보다 서울의 아파트는 두 배 이상 올랐고, 대출 규제 등등 부동산 정책은 가혹해져 서울에서 아파트를 구매한다는 것은 진짜 상상 속의 봉황 주작 해태 기린 같은 일이 된 요즘이다. 저자들은 카피라이터, 잡지사 직원, 강연자, 인세 받는 저자, 팟캐스트 진행자 등등 번듯하고 멋진 직업을 가지고 소득 또한 제법 잘 벌고 있는 능력있는 이들이다. 원래 있던 전세금, 거기에 약간의(집값의 20퍼센트 라면 정말 약간인 수준이다…) 대출, 거기에 또 부모에게 빌리는 것...에서 그냥 고개를 끄덕끄덕 하고 말았다. 넉넉하고 다정한 부모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 나는 왜 획 하고 빈정이 상하는지 모르겠다. 계층과 계급 사회경제적지위 문화자본 같은 게 자꾸 떠오른다. 초졸 알콜중독 정신병자 아버지의 자녀 출신 프롤레타리아는 웁니다. 광광. 뒤틀린 마음.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은 각자의 다름을 장점 삼아 가끔 티격태격하면서 서로를 다독여주고 멋진 인생을 살아간다. 두 사람이 산다는 것 자체가 내 인생에서는 거의 겪기 어려웠던 일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3살 10살 꼬맹이가 다 커서 독립한 뒤라면 빨라야 대략…17년 후? 뱃속에 사람 하나 만들고 시작한 결혼 생활에다 중간에 훈련소까지 보냈던 터라 신혼이라 할 만한 둘이 지낸 시간은 단 넉 달이었다. 그마저도 준비 없이 힘들게 힘들게 쥐어짜서 이룬 공간과 관계여서 마냥 힘들고 여전히 외로웠던 기억만 남아있다.
여자 둘이 집을 구매해서 산다는 이야기에 곁의 사람 반응은 당연히 둘이 연인이 아니겠냐, 하는 것이었다. 기사에서 언뜻 본 비혼 공동체, 주거협동조합 같은 움직임을 읊어줘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뭐 아직까지 대다수 사람들의 인식과 반응은 이렇구나, 짐작하는 대목이었다.

여자 둘이 살아본 경험이 있긴 하다. 이건 거의 폭망에 가까운 실패담에 가깝다. 그래서 저토록 서로를 좋아하고 배려하고 친하게 잘 노는 모습이 신기하다. 사람의 문제일수도 있겠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하는 고백 같아서 부끄러울 따름이다.
동아리에 두 살 위 언니가 있었다. 걸핏하면 주사 부리고 난동피우다 이제는 손찌검까지 하는 아버지 때문에 나는 20살 되자마자 가출을 밥먹듯이 했다. 그때마다 언니 집에서 신세를 지곤 했다. 언니는 수더분한 성격이었고 친구와 자취하는 동안, 그리고 다시 원룸에서 혼자사는 동안 내가 묵어갈 수 있게 해 주었다. 20살 말에 엄마를 데리고 첫번째 탈출 시도로 서울에 올라왔는데, 엄마는 빈털터리 신세에다 준비된 것 없는 막막한 마음으로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결국 나만 서울에 남아 독립의 결실을 독식하게 되었다. 싱크대도 없이 방 하나 욕실 하나만 갖춘 자그마한 방 안에서 나는 홀로 잠자고 일어나고 먹고 학교에 다녔다. 컴퓨터가 없어서 가끔 언니 방에 가서 컴퓨터를 빌려 썼다. 나름 말이 잘 통한다 생각했고, 둘다 과외를 하면서 비싼 월세 감당하는 게 버거운 것을 토로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증금을 합쳐 같이 방 두 개짜리 집을 구하고 월세를 나누면 훨씬 넓으면서도 저렴하게 지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21살 나와 23살 언니는 같이 방을 보러다녔고, 마침 적당한 위치의 이층 셋집을 구했다. 살던 사람이 세탁기와 냉장고와 가스렌지를 팔고 갔다. 군대가는 다른 선배가 가구를 맡기고 가서 침대는 언니 방에, 책상은 내 방에 놓았다. 그렇게 세간도 쉽게 갖추고 함께 사는 삶을 쉽게 시작한 듯 보였다.
집의 구조 자체가 그렇게 만만치는 않았다. 큰 방은 볕이 잘 들었다. 크기도 어마어마하게 커서, 종종 단체로 동아리 친구들이 놀러와도 한 열 명쯤은 여유롭게 둘러앉아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작은 방은 부엌 겸 거실을 사이에 두고 어두컴컴한 옆집 뷰로 종일 빛이 들지 않았다. 크기도 침대 하나 들어가면 꽉 찰 만큼 작았다. 처음에는 큰 방에서 함께 생활하고 잠을 자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둘다 남자친구가 있었고 자고 깨는 시간도 다르고 결국 나는 큰 방, 언니는 작은 방에서 주로 생활하게 되었다. 그것부터가 갈등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
지금은 아주 잘 알고 있지만, 나는 내가 그렇게나 예민하고 까칠한 인간이라는 것을 그때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남들 보기에는 사소하고 치졸할 만한 것들 하나하나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언니는 정말 안 치웠고 매우 잘 어질렀다. 얼굴에 붙였던 흉터 패치가 거실 바닥에 들러 붙은 채 하나 둘 늘어갔다. 토너를 발라 얼굴에 문지르고 지저분해진 화장솜이 바닥을 굴러다녔다. 화장실 타일 위로 흩뿌려진 핏자국이 마르도록 닦지 않았다. 나라고 뭐 엄청 깔끔하게 굴지도 않았을텐데, 남이 그러는 건 보고 있기 힘들었다. 내가 굉장히 이기적이고 내건 내거 니건 니거 라는 관념이 강한 것도 그 무렵 처음 알았다. 늦게까지 과외를 마치고 주린 배를 쥐고 라면 사 둔 게 있지, 가서 먹어야지, 하고 집에 도착해 찬장을 열었을 때, 텅 비어있는 것을 보고 분개했다. 그게 몇 번 이어지니 폭발해서 남의 것좀 함부로 먹지말고 먹었으면 좀 사두라고 버럭질을 해댔다. 냉장고에 계란을 사서 채워둘 때도, 나는 또 가리는게 많아서 좀 가격이 나가고 커다란 신선대란 특란 같은 걸 사서 팩째로 넣어두었다. 언니는 조그맣고 표면이 지저분한 계란을 사왔다. 그 두 가지를 섞어서 계란 놓는 자리에 놓더니, 어느 날 냉장고를 열어보니 큰 계란은 다 먹어버리고 언니가 사온 계란만 남아 있었다. 나는 그런 거에도 막 화가 났다. 애초에 섞어 놓질 말든가, 지가 사온 걸 먹지 왜 내 걸 먹어! 세탁기에 자기 남자친구 양말은 왜 섞어 빨아 기분 더럽게!
집터가 안 좋았는지, 그저 운이 없던 해였는지, 그곳에서 사는 동안 우리 둘 모두 온통 안 좋은 일만 겪었다. 몸이 아프고, 나는 아토피가 너무너무 심해져서 피부가 다 벗겨져 걷기 힘들 정도였다. 온통 뒤집어진 얼굴을 챙모자로 가리고 진물과 피가 흐르는 다리에 바지가 엉겨 붙는 걸 고통스러워하며 겨우 학교를 오갔다. 언니도 수술 받을 일도 생기고 건강이 안 좋아졌다. 게다가 둘다 그곳 사는 동안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언니는 헤어졌는데도, 전 남자친구가 찾아오면 집에 들이는 눈치였다. 내가 엉엉 울면서 따졌다. 왜 그러고 살아, 소중히 대해주지도 못하는 남자 왜 받아줘. 남의 인생에 오지랖도 참 쩔었다. 결국 내가 잠든 동안 몰래몰래 만나는 것 같았다. 사실 난 남의 인생 걱정한 게 아니라 그냥 누가 드나드는 게 싫었지 싶다.
언니가 어느 날 조심스럽게 말했다. 방을 바꿔보는 게 어떻겠냐고. 마음 속으로는 좁고 어두운 방에서 언니가 지내는 게 미안한 적도 있었는데 막상 그 말을 들으니 울컥했다. 싫었던 거지. 결국 짐 옮기기 번거롭다고 없던 일이 되었지만 끝까지 난 이기적이었다.
몸이 아파서 하던 과외를 다 그만두고 괜찮았던 학생 한 명은 언니에게 소개시켜줬다. 그 학생에게 내가 언니에 대해 많이 불평했었나 보다. 기억도 안 났는데. 언니가 어느날 과외를 마치고 오더니 학생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놨다. 내가 이러이러했던 걸 걔한테 말했었다며. 웃으며 말하고 있었지만 이미 웃고 있는 게 아닌 걸 알았다.
딱 1년 쯤 지내고, 우리는 새로운 집을 알아보았다. 언니는 같은 블록에 있는 고시원을 개조한 것 같은 원룸을 구했고, 나는 큰길 건너가서 산꼭대기에 있는 역시 고시원을 개조한 풀옵션 신축원룸을 구했다. 세간을 학교 커뮤니티에 올려 팔아 버렸다. 더 이상 우리는 친한 사이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그러고도 몇 해 지나 얼마간 같이 밴드도 하긴 했지만 ㅎㅎ. 혼자 살지언정 절대로 친한 이와 같이 살지 말아야겠다, 좋은 사이도 망가지기란 이렇게 쉽구나 했다.
내 입장에서만 이렇게 싫었던 기억들 풀어놓지만, 사실은 돌아보면 그런 걸 왜 싫어하고 못 견뎌 하고 또 굳이 직접 입에 올려 비난했는가 하며 뒤늦게 후회하는 일들이다. 왜 착한 언니에게 잘해주지 못했을까. 잘해주기는 커녕 그토록 못되게 대했을까. 둘다 마냥 힘들게 살았는데. 반대로 언니도 나에 대해 거슬리는 게 많았을 텐데 언니는 내게 별 말 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나는 뻔뻔하게도 저렇게 불만 토로한 것 외에는 내가 잘못한 일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이고 한심한 인생.

사람이 함께 한다는 건 그만큼 참아내고 양보하고 또 나를 바꾸는 일인 것 같다. 또한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조심스럽게 상처 받지 않는 방식을 최대한 고민하면서 전할 말의 양을 줄이고 줄여 정말 필요할 때만 건네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그게 서툴고 내 멋대로 굴면서 살고 또 후회하고 미안해한다. 반대로 같이 사는 이는 내게 뭔가를 바꾸기를 요구하지도, 원하는 걸 토로하지도 않는다. 그냥 묵묵히 할 일을 하고, 해달라는 일을 하고, 내가 불만을 쏟아놓으면 그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듣고 있다. 그리고나서 별 말 없이 내가 이야기한 것들을 기억하고 하라던 대로 행동을 바꿔놓은 채 살아간다. 나는 아직 멀었다. 후회만 하지 말고, 미안해만 하지말고 나도 달라져야지. 오래도록 보아야 할 사람들에게 상처주지 않는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이란 어렵지만 내가 꼭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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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5 10: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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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5 12: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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