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강남
주원규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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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3 주원규

같은 작가의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열외인종잔혹사를 한참 전에 사 두기만 하고 읽지는 않았다. 작년 이 무렵 강남 유흥가를 둘러싸고 경찰 비리, 연예인 성범죄 등등 이슈와 함께 이 책 홍보를 많이 접했다. 신나게 읽던 뇌과학책이 절반쯤 읽다가 기한을 넘겨 반납되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다 가벼운 거나 하나 보자 하고 빌렸다.

장편 문학상까지 탄 사람인데, 왠만큼은 쓰겠지 하는 기대를 이 책은 져버렸다. 읽기 어려운 내용이 아닌데도 문장이 매끄럽지 못해서 읽는 내내 힘들었다. 주술 호응 안 맞고, 주어 명확하지 않게 오락가락 거리고, 반복 중복 표현 많고, 지나치게 긴 문장에다가, 구역질이 적합한 자리에 세 번이나 비역질이 뜬금 없이 들어가 있었다. 사전 찾아 보는 게 어려운 거니… 성매매 여성을 내내 콜걸로 칭해서 되게 올드한 느낌이 들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삼류 영화 시나리오 초안이나 드라마 대본 읽는 듯한 대사가 많이 등장했다. 아무래도 시나리오로 써서 투자처를 찾다가 강남 유흥가 관련 사건 터지면서 부랴부랴 소설로 각색해 출간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미흡한 글이었다. 소설을 처음 쓰는 작가도 아닌데 이 정도 글쓰기라니 실망스러웠다.

비리 경찰, 사건을 조작 은폐하는 설계사 변호사, 포주, 부동산재벌, 멤버쉽제 변태 유흥 클럽과 그 고객인 소위 고위층과 전문직과 연예인, 성매매여성, 유흥 중 벌어진 살해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또다시 사람을 죽이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그 과정에서 큰 돈이 오가는, 바로 이런 곳이 강남이다, 하는 식의 이야기였다.
범죄와의 전쟁, 신세계, 범죄도시, 내부자들 같은 범죄 영화를 꿈꾸는 스토리같은데, 그냥 그랬다. 온갖 선정적인 설정과 장면 가지고 뭘 말하고 싶은지 뭘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재미도 별로 없었다. 김성모 만화 비스무레한데 만화는 실소라도 나오는데 이 소설은 웃길 생각도 없는 것 같고 되도 않는 문장으로 멋만 잔뜩 부려놨다. 아 이걸 읽은 내 시간.

검색해 보니 저자 인터뷰 기사를 몇 개 찾을 수 있었는데 이력이 특이했다. 소설가 겸 드라마 작가 겸 목사님 ㄷㄷ. 주님, 정의로운 도둑이 되는 걸 허락해 주세요.
아까운 시간 죽인 것도 후질 걸 짐작하고도 홧김에 빌려본 내 탓. 안 본 눈 사고 싶어도 방법이 없으니 다음부터는 좋은 책만 골라 봐야지. 하하하. 맨날 이러고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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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2-03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리뷰는 매우 감사합니다, 반유행열반인님. 원래도 읽고 싶은 책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마음 놓고 패쓰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2-03 12:55   좋아요 0 | URL
패쓰 리뷰 전문가로 특화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ㅎ
 
시 읽는 법 - 시와 처음 벗하려는 당신에게
김이경 지음 / 유유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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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30 김이경

송인 -정지상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비 갠 긴 둑에는 풀빛이 짙은데
그대 보내는 남포엔 슬픈 노래 울리네
대동강 물이야 어느 때 마를 건가
해마다 이별 눈물 푸른 강물에 더하는 것을

고등학교 때 한문 교과서에 실린 이 한시를 정말 좋아했다. 짝사랑하는 아이를 생각하며 일기장에 베껴 적었다.
시를 읽지 않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지만, 더 어릴 때는 시를 찾아 읽은 적이 있었다. 처음 인터넷을 시작한 중3-고1 무렵엔 이상의 시 전작을 올려놓은 홈페이지를 찾아 우와! 횡재했어! 하면서 잉크젯 프린터로 슉슉 뽑아 A4용지에 호치키스 박아 책인 양 고이 들고 다니며 읽었다.
중학생이 알아야 할 시 라는 책을 엄마가 사줬는데 꾸역거리고 보다가 마음에 들어서 종이에 옮겨 적은 시도 있었다. 황석우의 벽모의 묘. 어쩜 파란 털 고양이래, 하며 중이병답게 하늘색 펜으로 적어놨다. 생각난 김에 시인의 다른 시들을 검색해 읽어보니 캬아 나란 놈은 역시 이런 취향이군. 몰랐는데 이 시인 자체가 되게 기인에다 여자 밝히는 놈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어린 나는 주로 세기말적이고 퇴폐적인 1920, 30년대의 시를 좋아했던 것이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 69에 실린 걸 보고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을 읽으려다 실패했던 기억도. 어둠의 자식아...
그나마 읽었던 것 중 가장 예쁜 시는 엄마가 화장실 벽에 붙여준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다. 거기 이국적인 소녀 이름 중에 내 이름자가 있어서. 그래도 화장실 휴지걸이 위에 올려둔 기형도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게 처음 시를 건네준 건 제도권 교육이다. 다만 계속 찾아 읽을 방법은 가르쳐주지 않았을 뿐. 수능 문학영역 준비하며 시며 소설이며 나름 재미거리 위안거리로 즐겼던 것 같다. 그런데 대학 오면서는 많지도 않은 읽는 거리가 그나마 산문으로 치우쳤다. 말이 많고 친절한 말을 길게 건네 듣는 게 좋은 나한테는 시보다는 소설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짧게 요약할 만큼 시와 만난 시간이 짧고 경험도 부끄럽게 부족하다.

이 책은 얇아서 읽은 책 권수를 늘리는 데 아주 유용하다. 전자책을 빌려서 쪽수만 보고 처음엔 좀 두껍나했더니 뒤에 1/3 정도가 유유 출판사 책 광고였다. 세상에…
얇지만 시에 관해 나처럼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수업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어려운 말은 거의 안 하고, 서술도 강의에서 말로 전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 작가가 실제로 시에 관해 가르쳤던 강의록을 바탕으로 한 책인 듯하다.
나한테는 시가 별로라고,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 사실 괜히 겁을 내고 벽을 쳤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가로막힘을 살살 걷어내고 시를 읽어야 할 이유를 조금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말과 글을 잘 갈고 다듬어 건네는 사람을 보며 느낀 점이 많다. 나도 그런 고운 말을 써서 마음을 건네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거친 말들은 고운 사포로 열심히 문질러서 부드럽게 전하고 싶다. 말로 누구를 다치게 하는 일이 너무 많았어서 이제는 줄이고 싶다. 내 속에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걸 잘 풀어줄 단어와 문장도 가지고 싶다. 소설과 다른 좋은 산문 독서도 꾸준히 해야겠지만 뒤룩뒤룩한 내 글을 날씬하게 하는 데 시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의 시 읽는 법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그럭저럭 마음을 갖추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다음 달부터는 매달 시집 한 권씩을 읽어야 겠다. ㅎㅎㅎ엄마가 모아둔 책들이 아주 많다.


+밑줄 긋기

시를 읽을 때는 시가 가진 형식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시는 다양한 라임(압운)과 장치로 운율을 만드는데 때로는 시구의 내용이나 의미보다 이 리듬이 더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19세기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이렇게 말했어요.
어떤 책을 읽는데 전신이 얼어붙어 어떤 불기로도 몸을 덥힐 수 없게 되면, 나는 그것이 시인 줄 안다. 머리 맨 위가 떨어져 나간 듯 몸이 반응해도, 나는 그것이 시인 줄 안다. 이것이 내가 시를 알아보는 유일한 방법이다. 다른 방법이 있을까?

시는 자신을 용서하지 않는 반성이에요...반성이 한자로 反省인데 돌이켜 살핀다는 뜻이에요. 돌아본다, 다시 살핀다는 건 내가 무엇을 봤는지, 제대로 봤는지, 왜 그것을 봤거나 못 봤는지 의심하고 확인하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란 눈에 보이는 사물, 현실을 돌이켜서 다시 보는 것이란 뜻입니다.

보는 것은 일상적으로 하는 행위지만 시인은 이것을 의식하고 내가 어떤 대상을 왜, 어떻게 보았는지 스스로 자문합니다. 대상을 정확히 보았는지, 본다는 행위에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보는 ‘나’는 어떤 존재인지, 계속 묻는 거죠. 시란 이런 물음의 과정이고 탐구이고 그 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물음에 쉽게 답하고 안주하지 않겠다는 결의의 표현이고요. 그러니까 이 말은 시란 끝없는 질문이고 의심이고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끝없는 회의를 담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언어를 배려한다는 건 말만이 아니라 말과 말 사이의 틈, 여백에도 마음을 쓴다는 걸 의미합니다. 여백에도 의미가 있으니까요.

쉼보르스카는 시인에겐 모른다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모른다고 생각하면 열심히 자세히 보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새롭게 보게 되고 새로운 것을 보게 돼요. 새로운 발견, 새로운 표현이 나오는 거지요. 릴케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질문 자체를 낯선 말로 쓰인 책처럼 사랑하라”고 조언한 것도 비슷한 얘기입니다. 모른다는 마음,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하는 마음, 이런 겸손과 호기심이야말로 시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것은안에생활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조른다.나는우리집내문패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감減해간다.식구食口야봉封한창호窓戶어데라도한구석터놓아다고내가수입收入되어들어가야하지않나.지붕에서리가내리고뾰족한데는침鍼처럼월광月光이묻었다.우리집이앓나보다그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수명壽命을헐어서전당典當잡히나보다.나는그냥문門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어달렸다.문을열려고안열리는문을열려고. (이상-‘가정’)

별들은 어떻게 물을 구할까

전갈은 어째서 독을 품고

거북은 무엇을 생각할까

그늘이 사라지는 곳은 어디일까

빗방울은 무슨 노래를 부를까

새들은 어디에서 마지막을 맞을까

나뭇잎은 어째서 초록색일까



우리가 아는 것은 한 줌도 못되고

짐작하는 것만이 산더미 같다

그토록 열심히 배우건만

우리는 단지 질문하다 사라질 뿐

(네루다, 「다문 입으로 파리가 들어온다」, 『에스트라바가리오』,1958)

요즘은 책들도 그렇고 시들도 위로와 공감을 앞세우면서 괜찮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런데 사실 괜찮지 않잖아요. 그렇게 간단히 괜찮아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지요. 괜찮다고 말하는 건 하얀 거짓말 같아요. 우리는 괜찮다고 최면을 걸면서 살아요. 그런데 이 영화가 일깨우듯이, 시란 괜찮지 않음을 직시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미자는 거기서 시작해서, 어떻게 하면 내가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는지, 우리가 다 괜찮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로 나아가요.

이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감옥

빠져나올 어떤 방법도 없네.

팔십 되면 모두 죽여 버리니

백성도 임금도 똑같은 신세.
(이언진)
‘아우아불우인’我友我不友人, 나는 나를 벗하지 남을 벗하지 않는다고 해요.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나를 믿고 나아간다는 거죠.

하지만 나 가난하여, 오로지 가진 것 꿈뿐이라

그대 발밑에 내 꿈을 깔아 드리니

사뿐히 밟으라, 그대 내 꿈을 밟는 것이니.
(예이츠, ‘그는 하늘의 옷감을 바라노라’)

가능이 아니라 불가능을 꿈꾸는 것, 불가능의 힘을 믿는 것, 그래서 마지막까지 우리가 자기 안의 힘에 눈 뜨고 최선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것, 그것이 시의 힘이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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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공녀 강주룡 - 제2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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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9 박서련

친구가 재미있다고 해서 읽어야지, 하다가 2년 만에야 읽었다. 어제 재미있는 책읽고 싶다고 했는데 소원성취. 와하하.
전반부는 독립운동x연애물, 후반부는 노동운동x연애물, 중반부는 물론 작품 전체 곳곳에 녹아 있는 페미니즘까지.
주룡과 전빈 커플은 근래 본 소설 속 커플 중 가장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당신이 좋아서, 당신이 독립된 국가에 살기를 바랍네다.’
애국을 겸비한 사랑 고백이라니.ㅋㅋㅋ참신했다. 그렇게 함께 독립운동하던 동지이자 친구이자 배우자인, 사랑하는 전빈을 잃는 장면은 정말 슬픈데도 아름답게 그려놨다.
중후반부 가면서는 약간 지루해진 감은 있다. 그래도 자기 의지와 상관 없이 마음대로 노인네 후처로 보내려는 가족을 떠나 스스로 힘으로 벌어 먹고 사는 고무공장 노동자로 꿋꿋이 서는 주룡의 모습이 씩씩해서 좋았다.
‘싸우려고 태어난 사람 같다.’
노동 운동의 동지로 만난 정달헌이 주룡을 처음 본 날 일기에 쓴 말이다. 둘은 인텔리와 직공이라는 놓인 위치의 차이 때문에 처음에는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티격대기도 하지만, 점차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싸움을 하는 사람으로 상대방에게 마음을 쓰기 시작한다.

강주룡에 대해서는 독립운동가를 다룬 역사책에서 짧게 마주친 게 처음이었다. 실존 인물의 구체적인 생애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소설 속에서 마주한 강주룡이라는 인물은 투사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강하고 멋진 사람이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부당함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사람. 이기고 싶은 사람. 여자이고 노동자이고 과부이고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서 주저앉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한 사람. 오랜만에 보고만 있어도 흐뭇하고 존경스러운 캐릭터를 만났다. 박서련이라는 작가의 입담이 참 좋았다. 다음 소설도 궁금해진다.

고무공장 안에서의 아사농성과 을밀대 위에서의 고공농성. 분명 20세기 초반의 일인데 이런 비슷한 장면이 그간 시간 사이사이를 빼곡이 채우고 내가 사는 지금까지도 자꾸 반복되고 있다. 일한 만큼 대가를 받고 인간답게 일하고 싶었을 뿐인데 고통받고 심지어 죽기까지 한 노동자들이 너무 많다.
싸우고 죽어간 사람들 덕에 나와 배우자가 누리게 된 늘어난 출산휴가 기간, 육아휴직 급여, 최저 이상의 임금과 줄어든 법정 노동 시간 등의 혜택이 있었다. 그러나 법에 정해진 것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고 법에도 미비한 점이 아직도 많다.
우리집 두 사람 다 노동자인데 한 사람 직장은 법으로 인정받는 노조가 없고 또 한 사람은 회사에 노조가 (실질적으로)없기로 유명한 회사에 다닌다. 뭔가 웃기는 상황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본다. 어린 친구들이 노동자 권리와 노동법에 대해 관심을 가지도록 도와야겠다. 휴직 전에 노동 인권 프로그램 진행하다 그리 성공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 좌절하지 말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시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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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쟁이 2020-01-29 2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웬 전래동화를 읽으셨나 했더니 여성노동운동가에 관한 소설이로군요..하하;; ( 전래동화가 여기서 왜 나와.. ㅉㅉ 엉겹결에 땡쓰투해드림 ㅋ)

근데. 아늬.. 지금까지 고구려삼족오의 기운이 느껴지던 열반인님과 오늘 이 안경낀 도우넛과의 갭차이. 어쩔꺼냐구여 ㅋㅋㅋㅋ 아이고 🤣

반유행열반인 2020-01-30 06:09   좋아요 0 | URL
표지나 제목이 되게 그런 느낌이죠? 왠지 최무룡 생각도 나고...(어느 시대 사람이야 나...) 그런데 저는 재미있게 읽었어요. ㅎㅎㅎ
아이고 ㅋㅋㅋ졸지에 안경 낀 도우너ㅋㅋㅋㅋ이미지 쇄신해 보려고요. 그거 까마귀에다 다리 세 개 (아니면 다른 다리...)소리 듣던 거 어떻게 아셨어요?! 이러니 무님이 독서취향 친구 1위 하시지. 그렇습니다. 오랜만에 가보니 진짜 1위로 갱신되어 계셨어요.

syo 2020-01-29 2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참 이 책으로 떠들썩한 시기에 안 읽고 넘어갔더니 오늘날 이렇게 거대한 뽐뿌로 돌아오네요. 허어....

캐릭터 변신은 찬성입니다. 귀요미들은 세상의 빛이지요.

반유행열반인 2020-01-30 06:12   좋아요 0 | URL
이래놓고 syo님의 구미에 안 맞으면 원숭이 설욕전? 가는 거죠 ㅋㅋㅋ
저 근데 예전에 누가 알라딘에서 호기 프사한 거 보고 왠 할머니 사진을 해놨어? 한 기억이 갑자기 떠오르네요...다시 까마귀 하고 싶어지네...

Comandante 2020-01-30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선물해주고 싶은 책이네요^^ 좋은책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해요!

반유행열반인 2020-01-30 14:32   좋아요 0 | URL
좋은 선물 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머니즘 - 웃음과 공감의 마음사회학
김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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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8 김찬호

고등학교 때 같은 저자의 사회를 보는 논리를 재미있고 유익하게 읽었다. 지금 보면 또 어쩔런지는 모르겠다.
학부 졸업 때 엉성하게라도 논문을 써야 했는데, 그때 주제가 인터넷 유머사이트 이용자 분석이었다.
큰 아이 이름에 바다 해 대신 농담 해(해학할 때 그 한자)를 넣었다.
어디가면 남들을 웃기지 못해 난리다. 되게 내성적인데 어쩌다보니 이 한몸 불살라 광대짓을 하고 있을 때가 많다.
그러니 이 책 제목에 오래 붙들렸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 궁금했다.
부제에 사회학이 붙었지만 학문적 깊이나 근거로 댄 부분이 많이 미약한 느낌이다. 그냥 적당히 가져다 붙인 듯한 서술이 대부분이었다.
지식, 정보 쪽에서 얻을 것이 없다면 웃음과 유머에 대한 에세이로서 마음을 울릴 만한 표현이 있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유머에 대한 책인데 놀랄 만큼 재미가 없었다. 읽다보면 어느새 책에서 도망쳐 딴짓 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굳이 책의 용도라면, 익히 다 알고있는 공동체 삶에서 유머의 가치를 한 번 더 설파하고, 웃겨야 할 때와 아닐 때, 웃어야 할 때와 웃어선 안 될 때, 남에게 상처주지 않고 인간다움을 훼손하지 않고 적절하게 유머를 구사하는 마음가짐을 돌아보는 정도이다. 별 내용 아닌 것을 길게 풀어놨다. 사실 웃음이나 유머에 대해 학문적 접근하는 게 쉬운일은 아니었을 것 같아 저자가 겪었을 어려움도 짐작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책의 기획과 구성은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재미도 없고 유머를 잘 구사하는 방법 같은 건 가르쳐주지 않는다...일단 사람이 되고 봐야 유머도 먹힌다 정도의 원론만…

사례로 종종 나오는 우스갯소리들은 저자가 고민하고 골랐을 거라는 짐작은 되지만 잠시 피식할 뿐이고 어디 가서 써먹으면 안 되겠구나...역시 유머란 시의성과 순간에 맞는 번뜩임으로 던져야지 아재개그 열심히 수집해야 소용없다 하는 교훈만…
의외로 인용된 시들이 제일 읽을만 했다. ㅋㅋㅋ되게 따뜻한 시가 많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합성어인 유머니즘의 어원 중 유머보다는 휴머니즘에 방점이 크게 찍혔다. 인간을 생각하는 유머라는 출발점은 알겠는데 거기에 유머에 대한 게 잘 녹아들지 못한 점이 아쉽다.

보상심리로 정말 웃기는 책을 보고 싶어졌는데 추천 좀...아, 내 시간...누군가에겐 가치롭고 웃음 넘치는 책이겠지...나는 아니었다네… 날 좀 누가 웃겨다오...같이 웃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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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쟁이 2020-01-29 0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벼운 마음으로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함 보시죠.
(안 웃기다구 친구 끊고 막 그러는거 아니죠?•_•)

반유행열반인 2020-01-29 07:14   좋아요 0 | URL
읽고 나서 재미없으면 여기 별점 테러 하는 리뷰 올려서 권한 사람 무안하게 하는 정도에요. (선례: 모이웃님이 권한 원숭이 자본론 읽고 어렵고 재미없네 웩 하고 까리뷰 올림ㅋㅋ) 무안해서 무님이 이웃언팔만 안 하시면 주욱 갑니다 ㅋㅋ

syo 2020-01-30 00:02   좋아요 1 | URL
원숭이 권한 모 이웃이 익독중 그 책 아는데, 그 책 재밌습니다. 최소한 독서가들한테는 통하는 개그코드. 그 책 재미없으면 독서가 아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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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7 김초엽

지구에 계신 엄마께

긴 잠에서 깨어나 처음 본 천체는 우주선이 방금 지나온 에리스와 디스노미아였어요. 어둠 속에 모습을 드러낸 희끄무레한 왜소행성과 그 위성. 육안으로 그들을 마주한 첫 사람들 사이에 내가 있구나, 벅찬 마음과 동시에 착잡한 기분이 들었어요. 태양빛조차 희미한 태양계 변두리까지 멀어져 온 게 실감이 났거든요. 우리는 카이퍼 벨트를 지나고 있어요.
동료 천체물리학자들은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해 에리스의 크기와 질량을 갱신하느라 바빠요. 저는 잠든 5년 동안의 운항기록을 분석하고 우주선이 정상가동되고 있는지 동료 기술자들과 구석구석을 점검하고 수리가 필요한 곳들을 손보았어요.

내가 어릴 때부터 엄마는 입버릇처럼 말했었죠. 엄마처럼 쓸모없는 문돌이 되지 말고 수학 과학 열심히 해서 이과 가. 기왕이면 서울에 있는 대학 말고 포항이나 대전 가서 공돌이 하자. 최대한 멀리 가서 니맘대로 살아.
아무 대답 안 했지만 속으로 맞는 말이지, 하면서도 속상했어요. 엄마는 같이 있으면 내 행동 하나하나를 지적하면서 마음에 들지 않아 하니까. 너무나 안 맞는 우리는 떨어져 사는 게 서로에게 나을지 몰라. 그래도 끊임없이 나를 밀어내는 엄마를 느끼는 일이 기분 좋을 리가 없잖아요.
무럭무럭 자라서 엄마가 말했던 학교 중 한 군데로 갔어요. 다행히 기계랑 전자 공부는 나에게 잘 맞았어요. 간섭 없는 자유로운 생활은 정말 숨통을 틔여줬구요. 대학 입학 후 떠나온 집에서 나는 자꾸만 멀어져 갔어요. 결국 이만큼 멀리 왔네요.
잘 지내시죠. 통신 기록에 부고는 없었으니 아직 그곳에 계실 거라 믿고 메일 남겨요. 다른 동료들은 영상으로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건넬 말을 녹화하지만, 엄마는 동영상보다는 텍스트를 좋아하잖아요.
경험한 감각들을 통으로 저장하고 필요할 때마다 검색할 수 있는 매체가 등장했어요. 심지어 특정 경험 중 분비된 호르몬과 심박 같은 신체감각까지도 그대로 재현할 수 있어요. 어릴 때 유튜브 영상을 검색하던 것처럼 지금 사람들은 다감각 정보를 생각만으로 불러들여 정보를 찾거나 단순히 감상하거나 그 자체를 현실인 양 체험하며 시간을 보내요. 떠나오던 몇 년 전의 기술 수준이니까 지금이라는 말은 어폐가 있네요. 지구 사람들의 삶은 또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젊은 세대는 빠르게 변화를 받아들였고 종이책은 물론 전자책도 구식 매체가 되었어요. 책을 읽는 행위는 고루하고 괴상한 소수의 취미로만 남았지요. 엄마도 그런 소수의 사람 중 하나구요.
종이장이 누래지고 책등이 바랜 채 거실 가득 꽂혀 있는 책들이 생각나요. 책상 앞에 구부리고 앉아 시력보조장치에 의지해 책장을 들여다 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도. 내가 좋아하는 게임이야기나 친구들 이야기를 하면 무심하다가도 읽고 있는 책에 관해 질문하면 신이 난듯 대꾸해주던 엄마였죠. 그래서 일부러 더 엄마가 읽는 책에 관심을 가지고 말을 걸곤 했어요.
관내분실이 뭐야?
책 제목 이상하지. 도서관내분실 했으면 알아듣기 쉬울 것을.
도서관에서 책을 잃어버려?
비슷한데, 열람하는 게 책이 아니라 죽은 사람 뇌내 정보야. 마치 살아있는 사람 만나듯 접속할 수 있대.
섬뜩하네.
난 더 섬뜩한 거 생각했어. 제목만 보고 대공분실이랑 헷갈려서 민주화 운동하다 고문당하는 얘기인 줄.
엄마의 말장난을 들을 때마다 웃음을 참을 수 없었어요. 무뚝뚝하고 하나도 다정하지 않은 엄마인데, 가끔 이상한 말을 해서 나를 웃기곤 했어요. 책 속에 그런 말장난이 잔뜩 담겨있는 걸까? 굳이 그걸 확인하려고 책을 읽을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요.

태양계 밖으로 나가는 최초의 유인우주선 정비 기술자로 우주 탐사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엄마는 낡은 전자책 단말기를 건네줬었죠.
평생 모은 전자책 다 담아놨다.
누가 요즘 책 같은 걸 봐.
몇 십 년 우주여행하다보면 심심할 거 아냐. 심심해 죽을 것 같을 때 봐.
돌아가긴 해?
배터리 개조해서 50년은 멀쩡할 거래.
이걸 나 주면 엄마는?
종이책 많이 쟁여놔서 괜찮아. 인간다움의 상징물이다 생각하고 폼으로라도 들고 가.
우주선이 출발하고, 항해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우주 생활에 적응한 뒤 장기 수면모드에 들기까지 엄마 말대로 무지하게 심심한 시기가 잠시 왔어요. 정말 책을 읽게 될 거라는 생각은 안 했는데, 몇 년쯤 우주를 떠다니다보니 지구에 대한 향수랄까, 감상적인 기분이 들던 어느날 꾸려온 짐을 뒤적였죠. 짐 속의 전자책 단말기를 손에 쥐는 순간 엄마 생각이 났어요. 배터리를 충전하고 전원이 켜진 단말기의 목록을 빠르게 훑다가 독특한 책제목 앞에 멈췄어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내 나이 무렵의 엄마가 이 책을 읽던 모습이 기억났어요. 차례를 보니 엄마가 분실가지고 웃기던 소설도 들어 있어 더욱 관심이 갔어요.
그 책, 에스에프야, 판타지야?
둘다 아닌가. 그런 구분에 큰 의미는 없는 것 같아. 실현되지 않은 과학 기술은 판타지로 남아 있고, 얼마 안 된 과거에 공상이라 생각했던 일들은 결국 현실이 되어 우리 삶을 뒤흔들어 놓았잖아.
엄마는 인터넷 검색을 해서 어느 만화가가 1965년에 2000년대 미래를 상상해 그린 만화를 찾아 보여줬어요. 태양열 주택, 전파 신문, 전기자동차, 무빙워크, 스마트폰, 원격의료, 인터넷 강의, 이미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기술들인데 그림이 그려진 당시에는 모두가 꿈같은 소리로 치부했다고 했어요. 그림 속 장면 중 달로 수학여행 가는 게 가장 나중에 실현 되었지요.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 있어요.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탐사, 그저 가장 멀리 나아가는 인류의 꿈을 위한. 태양계 밖 우주에서 삶을 마감하는 것에 동의서를 작성하고 끊없는 유랑을 택한 나의 동료들.

오래전 그려진 과학상상만화를 보며 신기했던 것처럼, 수십년 전 쓰여진 과학소설을 읽고 지금을 돌아보는 일도 이 지루한 여정에서 재미거리가 될 것 같아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지구에 남는 이유는 단 한 사람으로 충분했을 거야.’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중에서)
그 한 사람을 찾지 못해 나는 지구를 떠나게 된 걸까요. 한동안 사랑하던 많은 얼굴들을 떠올렸어요. 어쩌면 내 유전자와 합쳐 새로운 사랑할 사람을 함께 만들고 키웠을 누군가들을. 떠나온 이곳도 결코 완벽하지 않은데, 내가 너무 성급하게 떠나온 건 아닌가 가끔 후회도 해요. 그래도 막상 두고온 게 슬퍼 눈물이 날 만한 사람이 있나 돌아보면 그렇지도 않아서 더 서글퍼져요. 내가 순례자들과 같은 이유로 지구에 돌아가거나, 돌아가지 않는 날이 오긴 할까요?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중에서)

“그럼 루이, 네게는.”
희진은 루이의 눈에 비친 노을의 붉은 빛을 보았다.
“저 풍경이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보이겠네.”
희진은 결코 루이가 보는 방식으로 그 풍경을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희진은 루이가 보는 세계를 약간이나마 상상할 수 있었고, 기쁨을 느꼈다.(‘스펙트럼’ 중에서)
우리의 탐사에서 무리인 같은 외계 지능체를 만날 일은 거의 없다고 동료 과학자가 단언했어요. 생명체가 사는 행성에 발디딜 가능성조차, 적어도 제가 살아 있는 동안은 희박하다고 했어요. 그래도 아주 만약에, 우리와 다른 감각과 지각을 가진 존재를 만나면 그들과 짧은 인사라도 주고받을 수 있을까요. 그건 얼마나 감격할 만한 일일지, 저는 상상할 수 없어요.
‘-잘 자.
처음으로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깔개 위에 몸을 뉘었을 때 희진은 문득 울고 싶었다. 고작 그 정도의 말을 건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는 사실을 예전에는 몰랐다.’(‘스펙트럼’ 중에서)

‘만약 공생의 대상이 지구상의 생물이 아니라면 어떨까? 지구에서도 유래하지 않은 것, 수만 년 전,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전에 지구 밖의 어느 행성에서 온 것이라면. 그것이 우리의 뇌에 자리 잡았고, 우리의 유년기를 지배했고, 우리를 윤리적 주체로 가르쳐왔다면. 인간을 비인간동물과 구분하는 명백한 특질들이 사실은 인간 밖에서 온 것들이라면.’(‘공생가설’ 중에서)
아직 우리가 어린 동안 무언가 곁에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다른 종이나 존재 간에 교감하는 이야기는 엄마가 어려서 권해준 만화책 기생수가 가장 재미있었어요.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이야기를 다 낡아빠진 종이책까지 찾아가며 보냐고 친구들이 핀잔 주긴했지만. 문득 깨달은 게 있어요. 굳이 다른 존재가 아니라도, 우리는 이미 서로 기대고 보살피고 있었어요. 나를 밀어내고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는 기억만 남아 있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어린 날 엄마가 날 돌봐줘서 이만큼 자라고 살아남았을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슬픈 마음이 조금은 줄어드는 느낌이에요.
‘나를 떠나지 말아요.’(‘공생가설’ 중에서)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중에서)
기술이 발달할수록 모두가 편해지고 좋아질 것이라 생각한 날이 있었어요. 공학을 공부하면서 그런 자신감이 자라난 적이 있었죠. 그런데 기술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오히려 다른 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했어요. 아직 우리는 빛의 속도로 나아갈 수 없어요. 뉴호라이즌호가 25년 걸려 도달했던 이곳에 유인 우주선을 탄 우리가 훨씬 짧은 시간 안에 도달한 건 엄청난 발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우리의 짧은 삶은 이 넓은 우주 안에서 순식간에 바스라지고 말아요. 여기까지 오기 위해 엄청난 비용과 자원을 투입해야 했어요.
가끔은 빛보다 느린 덕분에 위안받을 때도 있어요. 내가 떠나온 곳에서 그리 멀리 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우리의 탐사가 인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여기까지 왔지만, 더 먼 우주로 간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 내곁에 있던 사람들과 영영 헤어져 웜홀을 뚫고 워프버블을 타고 터널을 통과해 다른 세계에 도달하는 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해요. 그래도 지금은 계속 나아갈 수 밖에 없어요.
‘그래, 굳이 거기까지 가서 볼 필요는 없다니까. 재경의 말이 맞았다. 솔직히 목숨을 걸고 올 만큼 대단한 광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윤은 이 우주에 와야만 했다. 이 우주를 보고 싶었다. 가윤은 조망대에 서서 시간이 허락하는 한까지 천천히 우주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중에서)

과학소설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미래 예언일까요? 아님 인류의 자기성찰? 사랑의 전파? 그저 소수의 취향에 맞는 여흥 거리? 그 전부 다 일 수도 있겠네요. 결국 과학소설도 소설이에요. 소설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고 엄마가 오래전에 말했잖아요. 소설을 읽지 않기 시작한 인류는 너무 오래도록 사람이란 뭘까에 대한 고민을 잊고 살았어요. 저도 마찬가지였구요. 손에 들린 책의 느낌이 잊었던 그 감각을 다시 일깨우는 듯했어요. 그리고 기묘한 어떤 감정에 사로잡혔는데 거기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무도 그걸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고립된 우주선 안에서는 자본으로 뭔가를 교환하는 행위조차 그리워요. 감정을 물화된 형태로 소비할 수 있다는 상상조차 신비롭고 부러울 지경이에요. 돈으로 살 수 있다면 지금 느끼는 감정에 붙일 이름표를 사고 싶어요.
“...하지만 나는 내 우울을 쓰다듬고 손 위에 두기를 원해. 그게 찍어 맛볼 수 있고 단단히 만져지는 것이었으면 좋겠어.”(‘감정의 물성’중에서)

‘자신을 고유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를 남길 수 있었다면. 그러면 그녀는 그 깊은 바닥에서 다시 걸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그녀를 규정할 장소와 이름이 집이라는 울타리 밖에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녀를 붙잡아줄 단 하나의 끈이라도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더라면.
그래도 엄마는 분실되었을까.’(‘관내분실’중에서)
생전의 경험과 감각을 저장하는 기술은 등장했지만 마인드 같이 죽은 사람의 데이터를 도서관에 보관하고 살아있는 사람 만나듯 느끼게 해줄 기술은 아직 없어요. 마인드가 있다면 오히려 끔찍할 것 같아요. 죽은 엄마에게마저 잔소리를 듣고 싸울 생각을 하니까 되게 절망적이더라구요.
엄마집 거실 책장 옆에 서서 내다 보던 풍경이 떠올라요. 옹벽으로 앞이 막힌 저층 아파트는 햇볕이 드는 시간이 아주 짧았죠. 엄마는 책이 햇볕에 상할 일이 없어서 좋다고 했지만. 벽 앞에는 볕이 부족해 가늘고 길다랗게 웃자란 메타세콰이어 몇 그루가 심어져 있었어요. 바람이 불면 무성한 여름날에도 낙엽을 모두 거둔 겨울날에도 가지가 마구 흔들렸죠. 아직도 가끔 창밖을 보나요? 여전히 우울한 표정으로 잃었던 많은 것들을 떠올리나요? 거기에 이제는 나도 추가되었을까요.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함께 바라보고 싶어요. 우주에는 바람도 나무도 없어요. 자라면서 보고 겪고 느낀 것들 대부분이 부재한 곳이에요. 그래서 가끔은 상실감을 느껴요.
엄마 뱃속에서 떨어져 나온 이후로 우리는 계속해서 멀어지고 있지만, 그 덕에 내가 나아갈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지기도 했어요. 굳이 알기 위해 여기까지 와야 했나 싶을 때도 있지만, 오지 않고 모르는 것보다는 나은 것도 있겠지요. 창백한 에리스를 가까이서 마주하고 뭔가를 느끼는 경험은 아무나 할 수 없잖아요.
내 긴 메일이 오랜 뒤에라도 지구에 닿으면, 엄마가 답장을 해줄 거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얼마나 오래 걸리든 기다릴 거에요.
아직 사랑을 포기하지는 않으려고 해요.

‘단 한마디를 전하고 싶어서 그녀를 만나러 왔다.
“엄마를 이해해요.” ’(‘관내분실’ 중에서)

—-
아직 열 살인 딸내미를 먼 미래에 우주로 보내 보았다.
묻지도 않고 보냈네, 하면서 “너는 우주에 가보고 싶어?” 하고 뒤늦게 물었다.
“별로 가고 싶진 않아.”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미안. 다시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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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0-01-28 1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직접 쓰신 건가요? 대단하세요~ 소설로 손색이 없네요!

반유행열반인 2020-01-28 11:10   좋아요 0 | URL
많이 부족한 글 좋은 말씀으로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리뷰대회가 있어 응모해보려고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어요. ㅎㅎㅎ

syo 2020-01-28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퇴근길 지하철의 지치고 고된 시간 중 한 덩어리를 단숨에 삭제시키셨어요. 짝짝짝......

저도 얼른 써야 할 텐데요. 오늘까지인데 으아아아아

반유행열반인 2020-01-28 17:57   좋아요 0 | URL
무사 마감 기원합니다. 얼른 써서 다 싹싹 발라?버리셔요ㅎㅎ
나란히 책갈피 타서 인증해보아요. (저는 수상 아니고 막 추첨의 요행을 바라는 중...ㅋㅋ)

무식쟁이 2020-01-29 0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구야. 여기두. 리뷰 대~~~박!

반유행열반인 2020-01-29 07:11   좋아요 0 | URL
길어서 스크롤 주욱 내리고 싶은 욕구 만드는 거만 막 쓰고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