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개정판)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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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7 옌롄커.

누나라고 부르도록 해.

옌롄커의 소설을 세 권째 읽었다. 사서, 딩씨마을의 꿈, 그리고 이 책.
사단장의 아내 류롄과 취사병 우다왕의 짧은 사랑이야기. 둘다 배우자가 있지만 사택에 단둘이 있는 시간이 길었다. 류롄이 먼저 우다왕을 유혹했고, 마오 쩌뚱의 말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새겨진 나무 팻말이 유희의 도구로 이용된다. 식탁 위에 있던 팻말이 다른 장소에 놓이면 우다왕은 류롄의 부름에 응해 달려갔다.

둘은 사단장이 없는 한 달 간 짐승처럼 섹스를 하고 서로에게 빠져버린다. 가장 마음에 든 건 두 사람이 경쟁하듯 마오 쩌뚱이 새겨진 온갖 상징들을 파괴하는 장면이었다. 내가 너보다 더 사랑해! 못 믿겠으면 반혁명분자로 고발해! 하면서 마오 쩌뚱 조각상을 부수고, 마오쩌뚱이 새겨진 약통, 거울, 그릇, 세수대야에 못을 박고, 깨고, 낙서하고, 책과 초상화를 찢고, 구멍내고. 완전 미친놈들 같은데 난 더 미친놈인가 이상하게 쾌감 터졌다. 신성과 권위와 대의를 깨부수고 모욕하는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영화가 좋다. 더구나 그게 자기 사랑을 증명하려는 시도라면 야이 미친놈들아 ㅎㅎㅎ하면서 귀엽고 짠했다.

모든 사랑은 끝이 있다. 류롄과 우다왕의 짧은 사랑 이후 자세히 전해지지 않은 후일담을 얼핏 들으면 15년 간 별 문제 없이 잘 살아온 것 같고, 그래서 그들의 인생 자체는 비극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어지지 않고 끝난 사랑 만을 본다면 이야기 자체는 비극이다. 15년 후 다시 사택을 찾는 우다왕의 마음은 어떤 것인지 나는 잘 알 수 없었다. 팻말을 간직하듯 그토록 오래 사랑이 남아 있던 건가요. 팻말을 돌려주는 건 사랑을 반납하는 걸까, 다시 유희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일까.

관계와 마음은 상황과 시절과 흐름에 따라 끊임 없이 흔들리고 변해간다. 우리는 그 물결에 몸을 맡기고 둥둥 떠내려간다. 그러다가 나뭇가지며 돌부리에 걸릴 때마다 누군가도 나와 같은 나뭇가지며 돌부리에 걸리길, 그렇게 잠시라도 함께 머무르길, 하고 비는 수 밖에 없다. 대롱대롱.

+밑줄 긋기
-소설의 첫 머리. 패기 쩌는 선언이라 좋았다. 모름지기 소설가라면 소설에 관한 저만큼의 확신이 있어야지. 나는 지금부터 진실을 보여주마, 하며 기대하게 만드는 시작.

‘소설은 삶의 많은 진실을 유일하게 대변한다. 그렇다면 소설의 방식으로 이를 표현하기로 하자. 어떤 진실한 삶의 모습은 허구라는 교량을 통해서만 비로소 확실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면 이는 소설 속 사건이기도 하고 삶 속 사건이기도 하다. 혹자는 삶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소설 속 사건을 재현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게 김성모식 후려치기 같겠지만 여기서 이렇게 말하니 뭔가 있어 보이잖아...솔직히 그렇다. 어떤 일들은 그냥 그렇게 일어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지만 벌어지는 사건들.

“저 목욕 다 했어요, 누님. 무슨 일 있으세요?”
이때 방 안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샤오우, 어서 들어와.”
사건의 전모가 이처럼 간단하고 두루뭉술했다. 너무 많은 과정과 부분이 생략되어 있었다. 사실 이 사랑이야기의 발생과 결말도 이처럼 간단하고 직접적이어서 반드시 있어야 할 수많은 과정과 부분을 결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과정과 디테일이 언제나 힘 있고 위대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생략이 더 힘 있고 확실하여 사물의 발전과 변화를 더욱 가속할 수 있었다. 이야기 속 현재처럼 우다왕은 생략 속에서 문을 밀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그는 방 안에 불이 켜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창문을 통해 새어 들어오는 밤 기운이 창문 바로 밑을 더욱 신비하고 흐릿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방 안의 다른 모든 곳이 무거운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손을 뻗어도 손가락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입대하기 전에 살았던 시골에서 무수히 보았던 가장 깊은 골목과 우물 같았다. 방 한가운데 선 우다왕은 갑자기 강력한 불빛 아래 있는 땅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 신비한 어둠에 완전히 흡수된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구원을 요청하듯 시험삼아 매력과 마력을 동시에 지닌 한 마디를 내뱉었다.
“누님!”

-이거 왜 나 다 알 거 같지...망한 생은 아닌가 봄...

‘그 짧은 한 달 동안 두 사람은 본능의 주인이 되었고 동시에 본능의 노예가 되었다. 성의 유희가 두 사람의 삶에 거의 전부이자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두 사람은 성을 아주 얕고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으로 만들었고, 아주 깊어 속을 알 수 없는 것으로 만들기도 했다. 한 푼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가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으로 만들기도 했다. 수천 년간 휘황한 광채로 반짝이게 했다가 또 수천 년간 타락을 대표하는 것으로 만들기도 했다. 두 사람은 사랑의 행위를 할 때마다 섬세하고 진지한 자세로 몸과 마음을 다했다. 그리하여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욕은 이미 뼛속 깊은 곳,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소리, 냄새, 찰나와 영원, 눈물, 사랑, 헤어짐. 우상파괴 뒤에 닥치는 탐미까지...장인이네ㅎㅎㅎ...

‘고요함 속에서 천천히 두 사람의 몸을 타고 흐르던 땀방울 소리가 달이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는 듯 미세하게 났다. 그녀의 몸에서 발산되는 증롱에 쪄낸 듯한 설백의 땀 냄새와, 그의 몸에서 발산되는 강물이 증발된 것 같은 누런 땀 냄새가 한데 섞여 방 안 가득 흰빛이 진하고 누런빛이 약한 소금 향기를 이루었다. 거기다 며칠 동안 창문을 열지 않은 탓에 가구와 벽에서 발산되는 후텁지근하면서도 반쯤 썩은 듯한 냄새가 두 사람 사이를 감돌면서 진부하면서도 신선하고 찰나적이면서도 영원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순간 그는 그녀를, 그녀는 그를 바라보았다. 웬일인지 류롄이 눈물을 흘렸고, 그 역시 따라 울었다. 두 사람의 마비되었던 내면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이었다. 미친 듯한 성애가 그들이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던 위대한 사랑을 깨닫게 해준 것 같았다. 어쩌면 두 사람 모두 이미 마음속 깊이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느꼈지만, 필연적으로 남천지북으로 하늘과 땅처럼 멀어져야 하는 현실을 인식한 것인지도 모른다. 환란은 끝이 없었지만 고통은 항상 서둘러 찾아왔다. 이는 모든 인간이 공통으로 느끼는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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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09-17 2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나 이거 되게 재밌을 거 같은데 ㅋㅋㅋㅋㅋㅋ 이 집 리뷰 맛집이네여! 나도 사야지~~ (부럽다 망한 생은 아닌가 봄...)

반유행열반인 2020-09-17 21:31   좋아요 1 | URL
야하고 후다닥 잘 읽히고 저는 리뷰 맛집이라기 보다 뭐랄까 아 뭘까요. ㅎㅎㅎㅎㅎ

하나 2020-09-17 21:47   좋아요 1 | URL
장인 💚 저 작년에 인문학 프로그램 운영해서 학생들이 옌롄커 책 독후감 되게 많이 냈는데 단 한번도 혹하지 않았다구요!! 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9-17 21:52   좋아요 1 | URL
아니 거참 학생들은 좋은 책 자기들만 보고 왜 나한테 하나님한테 안 권해준 거야...저는 이제라도 봐서 다행 ㅋㅋㅋ한 권 하시죠 ㅋㅋㅋ

하나 2020-09-17 21:59   좋아요 1 | URL
그르니까요~ ㅋㅋㅋ 반유행열반인님 매력에서 매일매일 헤어나올 수가 없네여 ㅋㅋㅋㅋ 이제라도 봐서 다행이래.. “누나라고 부르도록 해” 제목부터 장인 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9-17 22:00   좋아요 1 | URL
마음에 드셨다면 하나님도 누나라고 부르도록 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9-17 22:03   좋아요 1 | URL
아 그리고 제목은 책 대사 그대로 따온거에요...ㅋㅋㅋ더 읽고 싶으시죠.

하나 2020-09-17 22:03   좋아요 1 | URL
“누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너무 웃겨여 ㅋㅋㅋ 울렸다가 웃겼다가 어쩌라는 거예여!! ㅋㅋㅋ 책은 주문했읍니다 💚

반유행열반인 2020-09-17 22:06   좋아요 1 | URL
그렇지 인민을 위해 제대로 복무하는 군 ㅎㅎㅎㅎ얼른 읽으시면 이렇게 끝없이 놀 수 있는데 또 막상 읽으시고 아 개빻은 야설이다 하실지도 몰라요 ㅋㅋㅋ

하나 2020-09-17 22:07   좋아요 1 | URL
그런 거 같긴 했지만ㅋㅋㅋ 제목부터 패기가 느껴져서 마음의 준비하고 들어왔죠 ㅋㅋㅋ 이 누나 증맬 마성의 누나

하나 2020-09-17 22:11   좋아요 1 | URL
마오쩌뚱 조각상 뿌시는데서 이미 이 책은 존재가치를 증명했을 거 같고요 ㅋㅋㅋㅋㅋ 얼른 읽고 올게여 ㅋㅋㅋㅋㅋㅋ

바다그리기 2020-09-17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하고 후다닥 잘 읽히는 책이라니
참으로 적절합니다.^^
저 역시 다 알것 같긴 하지만(이 나이에 모르면 그거야말로 비극일테니 무조건 아는걸로..) 어쩐지 이토록 신성과 타락, 유희와 열정을 오가는 끝장판 사랑은 죽을 때까지 경험 할 수 없을거란 짐작에 쓸쓸해지네요. ㅜㅜ
얼마전 ‘바둑 두는 여자‘를 다시 읽고 처음과 너무 다른 감동과 놀라움으로 중국 작가들의 책을 읽어야겠다 생각 했었는데 이 책도 꼭 읽어야겠어요.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는데 읽고싶은 책은 너무 많은 현실.
또 한권의 숙제를 주신 님께 원망 0.001 스푼 담긴 감사를~ ㅎㅎ
대리만족(주어는 없습니다)을 위해 이런 책도 자주 올려주세요!!

반유행열반인 2020-09-18 07:02   좋아요 1 | URL
저런 사랑 하면 인생 힘들게 살지 않을까요...바쁜 와중에 즐거운 독서로 위로 받으며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ㅎㅎㅎ

파이버 2020-09-17 22: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제목이 진지해보여서 시도해 볼 생각을 못했던 책인데 이런 내용이었군요....
옌롄커 소설은 「딩씨 마을의 꿈」만 봤었는데 사뭇 느낌이 다르네요! 사랑에 눈이 멀어 이것저것 부숴버리다니ㅎㅎ 딩씨 마을이 고구마라면 이 소설은 사이다 같은 매력이 엿보이는 것 같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9-18 07:03   좋아요 1 | URL
딩씨 마을의 꿈도 보셨군요. 파이버님 저랑 겹치는 독서 제법 많으세요. 고구마와 사이다라니 막 두 권 번갈아 봐야 할 갓 같은 재미있는 비유에요 ㅋㅋㅋ

얄라알라 2020-09-17 23: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 맛집^^ 언어 달인이십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9-18 07:04   좋아요 0 | URL
과찬이십니다 ㅋㅋㅋ 맛집은 다른 곳에 달인은 옌롄커 작가 ㅋㅋ 감사합니다.

scott 2020-09-17 23: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발췌문단에 읽고 싶을정도로 감칠맛나네요 ㅎㅎ 모든 사랑 끝이 있다는데 열반인님에 엔레커 페이퍼는 중독성이 있어요 ^.~

반유행열반인 2020-09-18 07:06   좋아요 0 | URL
제가 이번에는 책 홍보를 잘했네요... 중독성 까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의 소재는 중독적 사랑이네요ㅎㅎ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09-18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8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누가 봐도 연애소설
이기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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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3 이기호.

이기호가 쓴 짧은 연애소설 모음집.
작가의 단편소설집 두 권을 읽었는데 괜찮았다. 신간 소식, 게다가 연애소설이래. 달달이를 즐기지는 않지만 당충전이라도 위로가 될까, 할 즈음이라 샀다.
결과는 폭망입니다. 재미도 감동도 없었다. 읽어줄 만하다 싶은 게 한 손 안에도 안 꼽혔다. 인물이 다 비슷비슷하게 보였다. 다가올 만큼 친숙해지기에는, 복잡한 이야기를 풀기에는 짧은 분량이라, 그런 형식 안에 읽는 사람 사로잡는 촌철이나 감동이나 통찰이 있냐 하면, 부족한 쇤네는 찾지 못했습니다...
관계와 인물과 이별 이후의 모습이 다 너무 전형적이어서 그런 것도 같다. 평범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한 권 빼곡 서른 가지 가까이 반복되면 남는 게 무얼까 싶었다. 이만큼 쓸 수 밖에 없을 만큼 연애 경험이 일천합니다. 상상력도 부족합니다. 다양한 사랑이 있겠으나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하겠습니다…
모질지만 정말 재미없었다. 진부하고 올드해요. 누가 봐도 연애소설인지 모르겠어요. 제가 봐서는 연애인지 소설인지 모르겠어요. 조금 피식 할 때도 가끔 있었지만 아쉬움이 더 큰 읽기였습니다… 더 잘하시는 분야로 뵙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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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3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3 1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다그리기 2020-09-13 1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기호 작가의 단편들이 좋았던 기억으로 오늘 오전에 주문했고, 지금 배송중인데.. ㅜㅜ
이미 독자 한명은 연애소설의 미덕이 없는 것으로 느끼셨으니 제목부터 실패인 거네요.
연애도 좋아하고 소설도 좋아라 하는 저인지라 어머, 이건 꼭 봐야해! 하는 맘으로 전자책도 아닌 책으로 주문 했건만, 끝까지 고민하던 다른 책을 살걸 그랬나봐요. 힝...

반유행열반인 2020-09-13 20:30   좋아요 1 | URL
제 리뷰 안 본 걸로 치시고, 편견 없이 읽으신 뒤 다른 방향의 리뷰를 써주세요. 세상의 균형을 위해.... ㅋㅋㅋㅋㅋ

청공 2020-09-13 18: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별 세개나 주신 너그러움~^^
글을 읽으니 연애소설이라고 제목 정한것도 아쉽게 느껴지네요.ㅋ 이기호 작가 오래전 다른 단편은 잼나게 읽었던 것 같아요. 연애이야기는 정말 잘 쓰지 않으면 진부해지기 쉬울것 같아요. 사랑꾼 독자들이 얼마나 촉을 세우고 기대하면서 읽는지 모르셨나봅니다 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9-13 20:31   좋아요 0 | URL
제가 사랑꾼이 아니라 제대로 못 읽은 탓도 있을 거에요. 이기호 이름에 건 기대와 색깔은 있었던 것 같은데 홍보 문구에서 이기호만 쓸 수 있는- 여기에서 버럭 한 것 같아요. 이기호 이름 안 달고 다른 누군가 이런 기획의 이런 글을 썼다면 절대 사지 않았다 싶었어요.

2020-09-13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3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밀 졸려 2020-09-13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게 말이죠, 신문에 조금 연재도 했던거거든요. 그때는,
연애하는 본인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지만(즉 남녀의 연애감정으로가 아닌 어쩔수없는 상황 때문에 일이 전개 된다고 본인들은 우기는거죠) 그런데 다른 누가보면 연애관계인게 분명해 보이는
관계에 대한 글인것 같았거든요.
그러니 본격적 로맨스를 기대하고 보셨다면 아닌거 같은거죠.
기대에 따라서 영 재미가 없어지는 장르(?)가 되어버리는거죠. 일종의 꽁트형식인것 같았어요.
제가 책을 다 읽은게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어요,

반유행열반인 2020-09-14 07:04   좋아요 0 | URL
오히려 책 자체가 분명히 연애야! 사랑이야! 하는 것들이 누가 봐도 그렇지는 않다는 생각이 읽는 동안 들었구요. 오히려 이기호님이라 달달이 로맨스 아니고 뭔가 더 있을 거야 했는데 아니어서 실망했던 것 같습니다. 이것도 정말 꾸역꾸역 봤거든요. 짧고 슥 읽히기는 하는데 재미가 없어...
 
복자에게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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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2 김금희.

앙골아주.

김금희의 소설집을 처음 본 게 겨우 열세 달 전이다. 그때 반월이라는 소설을 보고 생각했다. 이제 편지를 쓰는 사람은 소설 속에 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고. 선글라스 쓰고 섬을 누비며 우는 주인공을 보고 나도 그러고 싶다고. 이후 나는 무수히 많은 편지를 써 보내거나 보내지 않았다. 눈병에 걸려 저절로 누런 눈물이 줄줄 흐르고 햇볕에 눈이 시어서 선글라스를 샀다. 정작 선글라스를 벗을 무렵 울 일이 많았는데, 렌즈에 소금물이 묻은 채 굳으면 닦아내기 영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예약 구매를 해 놓고 한참 만에 받았다. 책 표지 뒷날개에 소개된 김금희의 책을 일 년 간 다 봤다.
책 앞머리를 읽을 때, 얇게 썬 동치미 한 조각 씹어 먹는 것 마냥 속이 시원했다. 아이참, 이제 나는 단문병에 걸렸나 봐. 물론 내내 단문은 아니고 소설이 진행될수록 생각도 기억도 많아지고 문장도 길어진다. 쉽게 읽히는 문장이 결코 쉽게 쓰이지 않는 걸 안다. 쉽지 않은 겨울과 봄과 여름을 보내며 그럼에도 쉬지 않고 쓰는 작가의 인스타그램에 몰래 구경하러 가곤 했다. 뭔가 이렇게 쉽게 받아 읽어도 되나 싶어 저절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화자인 이영초롱은 어린 시절 고모가 의사로 일하는 고고리섬과 제주 본섬에서 몇 년 간을 보냈다. “우리집이 완전히 망해버렸습니다.” 할망신에게 인사하며 해녀 할머니와 함께 사는 복자와 친해졌다.
어릴 때 친했던 친구들 얼굴이 여럿 떠오르지만 그 아이들과 멀어진 이유나 과정은 대부분 기억나지 않는다. 영초롱은 복자와 멀어진 일을 뚜렷이 알고 있다. 이선고모 집에 임공이 자주 온다는 걸 감춰달라는 복자의 부탁을 어기고 영초롱은 어른들에게 사실대로 말한다. 속이 상한 복자는 영초롱이 고모가 이규정에게 쓴 편지를 훔쳐봤다고 고모에게 이른다. 써놓고 봐도, 저들이 돌아볼 때도 정말 그게 별일이었나, 싶었을 일이다. 그러나 어떤 관계들은 작은 어그러짐과 틀어짐으로도 되돌리지 못하고 저만큼 멀어진다.
영초롱은 복자와 사이가 나빠진 뒤 복자에게 부치지 못할 편지를 반복해서 썼다. 고오세는 영초롱이 뭍으로 떠난 뒤 영초롱에게 닿지 않을 잘못된 주소로 열 번 넘게 편지를 부쳤다. 고모는 감옥에 있는 규정에게 답장 받지 못하는 편지를 오래도록 부치다 말다 했다. 그런 부분을 읽을 때마다 뜬금없이 눈물이 핑핑 거렸다.
부모는 망했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판사가 된 영초롱은 재판 중 욕을 한 뒤 제주도로 발령(또는 좌천)된다. 주인공의 직업을 판사로 하면 쓰기 참 어려웠을 것 같은데, 쉬운 길 택하지 않은 김금희가 더 좋았다. 더구나 재판 중 욕하는 판사라니. 판타지에 가깝지만 이런 거 난 왜 좋지. 고고리섬에 돌아온 영초롱은 어릴 때 자신을 좋아했던 고오세, 그리고 복자와 재회한다.
제주는 4.3.항쟁으로 많은 사람의 죽음을 묻은 섬이다. 그곳 의료기관에 일하던 간호사들이 안전 장치 없이 독한 약을 갈고 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초과근무를 하다 유산을 하거나 아픈 아이를 낳았다. 복자도 그 중 하나가 되었고, 영초롱이 관련 재판을 맡게 되었다. 가족과 어려서 떨어진 경험 때문인가, 이방인처럼 섬 사람들 사이로 녹아들지 못한 때문인가, 원래 그렇게 생겨먹어서 그런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영초롱이는 고집도 세고 말도 거르지 않고 막 던지고 마주한 사람의 진의를 믿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자기 앞의 사람이 자신을 믿지 못한다 여기며 서러워하고 막상 자기 속을 이야기해야 할 때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마지막에는 봉쇄된 땅에 가족도, 복자도, 오세도, 옛 애인 윤호도 없이 영초롱이 홀로 남아있다.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의 고립을 그대로 보여줘서 서글픈 게 한 가지 이유 같다. 영초롱이가 끝까지 가지 못하고 잠들듯 쉬어야 했던 것, 자기가 나서지 않아도 이길 수 있는 힘을 멀리서 지켜보는 일 때문인 것도 같다. 모든 게 내 뜻대로만 되는 건 아니니까 내려놓으라고 타이르는 말처럼 들렸다.

제주의 너무 센 바람과, 돌덩이 해안을 때리는 거친 파도와, 들불 번지는 오름과, 다른 세상 말 같으면서도 뜻이 알아지는 제주 사람들의 말과, 딱새우와 꽁치김밥과 다금바리를 파는 식당들과, 노란 유채밭과, 아이스크림을 파는 아기자기한 스낵바 같은 걸 제주에 가 본지 20년 된 내게 선물처럼 건네준 장면들이 좋았다. 점점 잘 쓰게될 것 같다고, 기대하고 믿으며 기다린 작가가 오랜만에 편지처럼 보내온 소설을 나는 넙죽넙죽 잘 받아 먹었다. 내게도 흰 개에게 눈썹을 그려주고 농담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으면, 그래서 복자에게, 하고 편지를 쓸 수 있었으면 좋았겠구나.

+밑줄긋기. 나도 모르게 울멍울멍 거린 부분만 옮겨왔다.
-복자에게. 규정에게. 영초롱에게. 또 누군가에게. 나는 이제 편지를 쓰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건 마음을 키울 때나 유용하지 그러지 않아야 할 때는 섣부르고 끝없는 자기대화가 자기비하와 자격지심만 만들어낸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담담한 마음으로 다정한 안부를 건넬 수 있으면 좋겠다.

‘왜 뭔가를 잃어버리면 마음이 아파?
왜 마음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렇게 아파?
나는 일기장에 이런 말들을 쓰면서 하루를 마감했다. 그러다 12월에 접어들어서부터는 복자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처음에는 손으로 쓰려고 했지만 그렇게 해서 고개를 숙이면 눈물이 너무 쉽게 나는 것 같아서 허리를 반듯이 세우고 고모의 전동타자기로 쓰기로 했다. 가장 먼저 자판으로 친 말도 복자에게, 였고 가장 빈번하게 쓴 말도 복자에게, 였다.
복자에게,
복자야 안녕. 오늘 붓글씨 수업은 잘했니? 오늘 너가 벼루를 가져오지 않은 것 같아서 내가 빌려주고 싶었는데 네 짝이 빌려주었더라.
복자에게,
복자야 안녕, 성탄절에 요기 해왕선사에서 선물을 준다는데 거기를 갈 생각이 있니? 그런데 왜 절에서 성탄절에 선물을 준다는 것인지 아니? 정말 웃기고 웃긴 농담 같지.
복자야 안녕, 가게 될 중학교는 마음에 드니? 너가 엄마가 있는 제주시에서 중학교를 다니게 되어서 기뻐, 이제 엠비시 공개방송 매일 갈 수 있겠어.
복자야, 안녕?
복자에게,
복자야, 할망이 너가 잘 안 온다고 뭐라 하시더라.
제순이는 이제 눈썹이 없어, 다 지워지고 안 특별해졌어.
복자야,
복자야, 안녕,
복자에게,
복자야, 나는 이제 서울로 갈 것 같아.
그 많은 편지들은 부쳐지지 않고 모두 폐기되었다.’(100-101)

-오세가 영초롱에게 건네는 마지막 말이 나는 너무 아팠다.

“그래. 세상이 그럴 수 있지. 세상이 그렇게 보이고 그렇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 그런데 영초롱아. 너가 보는 것이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늘 생각했으면 한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에 불과하다고 네가 내게 멋진 말을 알려주지 않았니. 그렇다면 법을 통해 볼 수 있는 인간의 면면도 최소한에 불과한 거야. 회사는 자본이니까 너가 말한 대로 흘러갈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나란 사람도 그렇게 흘러간다고 너가 말할 수 있니? 주민들 중에 이참에 땅이고 집이고 다 비싸게 팔고 가버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 하지만 섬을 지키기 위해 연륙교 착공을 힘 모아 저지한 일은 어떻게 설명할 거니? 몸 지지러 갔다가도 섬의 고넹이돌을 단번에 알아본 그 마음은 어떻게, 싹 무시하면 되는 일이니? 너는 최소한의 도덕을 다루지만 나에게는 너가 최선의 사람이라서 나는 늘 너가 좋았어.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도 들어. 어쩌면 한번 기울어진 채로 시작된 관계는 복구가 되지 않을지도.”(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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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2 1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2 1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자책] 돌이킬 수 있는
문목하 지음 / 아작 / 2020년 3월
평점 :
판매중지


-20200911 문목하. 읽다 말았어요.

SF장르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입에 오르고 별다섯 주는 이웃도 있어 읽었다.
OSMU를 고려하고 쓴 건지 영화나 드라마 느낌이 많이 났다. 세세한 장면 묘사는 나름 작가의 특색인 것 같지만...
진부한 표현, 흥행하는 한국 영화 특유의 느글거리는 대화체가 떠오르는 인물의 발화들이 힘들었다. 앞에서 비원이 드러나기 전에 윤서리가 경찰로서 범죄조직으로 비원을 관리하다 저지른 실수 두 가지를 자세히 안 다루고 추상적으로 얼버무리는데 거기서부터 집중력이 온통 떨어졌다.
그래도 참고 읽어보자, 익숙해지면 재미가 있겠지, 이 소설의 장점이 있겠지...꾸역꾸역꾸역 ㅋㅋㅋ
싱크홀과 초능력자들의 생존 투쟁, 권력 투쟁, 세력 간 다툼, 더구나 수백명의 생존자 겸 초능력자들이 소수의 우월한 지도자의 지배에 휘둘리고 그 안에 통제되고 제거되고...으악 내가 제일 싫어하는 세계관. 이런 것에 흥미로워 할 사람도 있겠지만 즐기지 못할 독서는 그만두기로 했다.
소재와 설정-인간을 뛰어넘는 능력, 그들끼리의 다툼, 초인이 죽으면 그 능력이 주변 누군가에게 전이되는 등-은 장강명이 쓴 호모도미난스와 아주 유사했다. 문장이나 구성력은 장강명 소설 쪽이 나 읽기에는 훨씬 나았다.
아작 출판사의 SF 소설을 네 권 시도 했고 그 중 두 권은 좋아하던 작가인데도 힘들게 읽었고, 두 권은 읽다 포기했다. 책 만듬새(편집이나 교정교열)가 미흡한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내가 이 장르에 애착이 없어서일수도. 미련하게 참고 읽지 말기로 해요. 좋아하는 책만 읽기로 해요. 좋은 것만 생각하기로. 그러기에도 부족한 시간. 짧은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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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09-11 1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것만 읽기에도 시간은 짧죠ㅎㅎ 저는 반유행열반인님 리뷰를 읽고 장강명 작가님의 책에 영업 당하고 갑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9-11 18:05   좋아요 1 | URL
아이참 이러고서 장강명 별로야 ㅎㅎㅎ하실지도 몰라요. 작가의 첫 책이라고 하니 이 두께에 설정과 인물과 상상은 나름 참신한 부분도 있는데 제가 대화와 문장을 삭일 소화력이 없었어요. 저의 내공 부족입니다...

하나 2020-09-11 1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짱 좋아요! “좋아하는 책만 읽기로 해요.” 222 “좋은 것만 생각하기로.”222 “그러기에도 부족한 시간. 짧은 계절” 222 헤헤 좋아하는 일만 가득하신 주말 보내세요 ^^

반유행열반인 2020-09-11 18:47   좋아요 1 | URL
하나님도 좋아요ㅎㅎㅎ좋은 주말 보내세요. 저도 웰컴홈 샀는데 루시아 벌린 세 권 다 삼 ㅋㅋㅋ저는 천천히 아껴 볼게요. (이러고 또 별로야 할지도 ㅋㅋㅋㅋ)

하나 2020-09-11 19:09   좋아요 1 | URL
ㅋㅋㅋ 저도 못 참고 일단 세권 다 샀어요. 저도 천천히 아껴 보고 있는데 계속 좋았으면 좋겠네요 :) 저도 요즘 변덕이 심해서 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님도 좋아요222

막시무스 2020-09-11 1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강명과 김중혁 작가에 관심이 가는데 혹시 추천해 주실 만한 작품이 있나요?ㅎ

반유행열반인 2020-09-11 20:05   좋아요 2 | URL
아ㅎㅎ제가 뭘 추천할 깜냥은 안 되어 송구스럽지만...장강명은 이번 신작 에세이 빼고 다 봤는데 댓글부대랑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 잘 읽히고 재미있었어요.
김중혁은 소설은 딱 한 권 오래 전에 나온 악기들의 도서관 봤고 에세이는 무엇이든 쓰게 된다 읽었는데 그래서 잘 모르는 작가지만 이 작가는 산문보다는 소설 쪽이 훨 나았습니다. 반대로 김중혁 작가 친구라는 김연수 작가는 제 취향에는 소설보다는 산문집이 훠어얼 좋았습니다. (김연수 작가님 팬들 때리러 오신다...)

반유행열반인 2020-09-11 20:13   좋아요 1 | URL
그런데 막시무스님은 묵직한 고전 즐겨 읽으시는데 그에 비하면 가볍습니다 ㅎㅎㅎ장강명 작가는 그냥 기분전환용으로 후다닥 읽기에 좋게 잘 쓰시고요. (그래서 제가 두 달 만에 그 작가 책 여덟 권을 읽은 적이 있다죠...) 읽다 보니 질려서 안 봐 하면서도 또 신작 나오니 봐 말아 하네요. ㅎㅎㅎ 김중혁 작가는 너무 오래 전 소설을 봐서 (그것도 잘 쓰시긴 했는데) 요즘은 어떤 글을 쓰시는지 저도 궁금해져요. ㅎㅎㅎ

막시무스 2020-09-11 20:17   좋아요 2 | URL
추천 정말 감사드려요!ㅎ 책 관련 팟캐를 즐겨 듣는데 두분이 입담도 좋으시면서 깊이가 있어서 관심이 많이 갔었거든요!ㅎ 좋은 글에 항상 감사드리구요, 즐거운 주말되십시요!ㅎ

반유행열반인 2020-09-11 20:31   좋아요 1 | URL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막시무스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빌어요.

Yeagene 2020-09-11 2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는 호불호가 진짜 극과 극이네요...ㅎㅎㅎ
처음에 본 어떤 분은 진짜 심하게 칭찬하시는 거에요..김초엽 좋아하는 사람들은 문목하를 몰라서 그러는 거라는둥... ㅎㅎㅎ
두번째로 리뷰 본 분도 엄청 극호였고...ㅎㅎㅎ
세번째 이웃님과 열반인님은 불호군요..전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읽지 않을 것 같아요.것보다,<한국이 싫어서>만 읽어본 장강명 작가의 다른 책들에 눈이 가네요.<한국이 싫어서>는 그냥저냥이었는데 장강명 작가 호평이 많아서요..그냥 넘기긴 굉장히 아쉬웠거든요..위에 추천해주신 책들 읽어보겠슴다!:)

반유행열반인 2020-09-11 21:48   좋아요 0 | URL
가볍고 영화 같은 느낌은 이 책과 비슷한데 조금 더 오래 쓴 사람의 공력 차이 정도입니다. ㅎㅎㅎ 문목하 정말 좋다는 분들 많아서 망설이다 읽었는데 역시나 난 아니구나 했어요 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0-09-11 21:49   좋아요 0 | URL
그리고 문장은 김초엽이 문목하보다 훨씬 예쁘고 깔끔하지요 ㅎㅎㅎ저는 그 한국영화의 대사와 연기 같은 대화체를 그대로 문장으로 옮겨온 걸 안 좋아해요.
 
[전자책]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
로즈마리 퍼트넘 통.티나 페르난디스 보츠 지음, 김동진 옮김 / 학이시습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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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8 로즈마리 퍼트넘 통, 티나 페르난디스 보츠.

중첩되는 차별을 인식하고 지적하고 잘못된 세상을 바꾸는 다양한 시도들.

대학 생활의 팔할을 보낸 곳은 내가 전공한 과반 공동체가 아니라 노래패 동아리였다. 처음에는 음악을 하겠다고(작곡할 줄 아는 선배를 꼬셔서 곡을 받아 대학가요제에 나갈 테다!)가입했지만, 동아리 소개 때 공연만 하는 게 아니라 교양을 쌓는 세미나, 심포지엄 같은 것도 한다는 말에 더 끌렸다. (순진한 새내기여…)
스무살 짜리가 참석한 첫 세미나는 어찌나 유익하고 재미있던지. 나보다 겨우 한두살 위의 언니 오빠들이 어쩜 저렇게 똑똑하고 말 잘하고 열띤 토론, 친절한 설명, 마무리 요약까지 완벽한지. 동아리에 뼈를 묻기로 결심했다.
파시즘, 군사주의, 여성주의, 경제학, 철학, 문화, 언론 등등 다양한 주제의 책을 함께 읽고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같이 공부한 주제로 계절마다 공연 기획안과 대본을 만들고 선곡을 하고 합주를 하고 공연을 했다. 준비할 일은 늘 많고 바빠서 동아리 사람끼리 자주 모여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누구 집에 가서 놀거나 자고 영화랑 공연도 보러갔다.
주로 언니들이 동아리 운영에 주도권을 가진 듯 보였다. 언니들은 하나 같이 능력있고 똑똑하고 열심이었다. 아빠가 술먹고 때리는 걸 피해 수능 이후 가출을 밥먹듯이 했는데, 아빠가 나를 잡으러 학교 동아리방까지 찾아오면 선배들은 ‘너네 아버지 동방 오셨다 오늘은 학관 근처 오지 마’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주고 갈 곳 없는 나를 재워주고 먹여줬다. 오빠들은 대부분 예의발랐고 말과 행동을 삼갔다. 동아리 내부에 반성폭력 회칙을 정해 놓고 모일 때마다 강조했고, 성희롱적인 발언이나 가부장적인 뉘앙스만 나와도 단체로 조져놓았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ㅋㅋㅋ.
굳이 말하면 가모장제에 가까운 곳이었는데, 나중에야 그건 집단이나 시스템 특성이 아닌 언니들 몇 명의 카리스마로 지탱되던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선배들이 동아리를 모두 졸업하고 내가 집행부가 되었을 때 제일 나이 많은 여자 선배는 나 하나 남았고, 남자 동기 둘과 바글대는 남자 후배들 틈에서, 세미나는 하기 싫고 음악이나 하고 놀고 싶다는 바람을 잠재우는 게 제일 힘들었다. 합숙 세미나 때, 음주는 마지막 날 밤에 하자는 약속을 어기고 첫날부터 몰래 술과 치킨을 사다 먹은 남자애들과 대판 싸우게 되었다. 음주를 나무라자 소리지르고 대들면서 자기들이 애냐고, 내 말을 자르며 담배를 피워 무는 후배들에게 충격 받아서 구급차에 실려갔다… 진짜 나는 단체 생활 무능력자에 가까운 것 같다. 조직을 유지할 역량도 다수와 잘 지낼 능력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렇게 아끼던 후배들한테 막말 들은 일에 상처받으며 슬프게 동아리 말년을 마무리 했다...눈물 또르르…

직업을 갖게 되고, 외부 행사를 참여하면서 온갖 개저씨들의 희롱과 추행을 경험한 뒤에야 알았다. 내가 언니들의 보호 아래 그나마 고충 없는 나날을 경험했구나. 여자가 주도권을 가지고 무시되거나 대상화되지 않는 조직이란 정말 드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성평등과 거리가 먼 조직 안에서 할 수 있는 저항이란, 남들보다 규정집과 메뉴얼과 법령을 열심히 공부한 뒤 조목조목 따지기, 상냥하기보다는 씩씩한 척 센 척하며 말하기, 외모 가꾸지 않기(잠이나 더 자고 전투력을 키울 테다) 정도 였던 것 같다. 시간이 가면서 저절로 해결되는 부분도 있었다. 어린 여자애일 때는 그렇게 개무시하더니 나이 한 살 두 살 먹어가고 경력이 쌓일 수록 조심스럽게 대하는 게 느껴졌다. 첫 번째 직장보다 두 번째 직장이 조금 더 민주적인 분위기였고 사람들이 예의 바른 탓일 수도 있겠다. 일과 가정의 양립에 관한 정책이 전보다 나아진 것을 체감하긴 하지만 아직도 바뀌어야 할 조직 문화, 제도, 인식이 넘친다. 맘충, 노키즈존이라는 말은 정말 없어졌으면 좋겠다. ㅠㅠ 차라리 그냥 벌레 같은 인간이라고 욕해… 엄마와 아이를 싸잡아 하는 혐오는 존재와 놓인 상황 자체를 부정당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준다.

연초에 읽은 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에서 저자가 말하는 페미니즘의 정의는 이랬다.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다.’
성차별주의와 착취와 억압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러기 위해 열심히 말하고 글쓰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지지한다. 그렇다면 나는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말로 페미니스트를 붙이는 것은 망설여진다. 그러기에는 아는 것도 말할 수 있는 것도 행동하는 바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잘 모른다는 말을 하며 물러나고, 잘 몰라서 그러지, 공부좀 해, 하는 말에 주눅드는 게 어느 순간 짜증났다. 여성의 삶에 관한 문학 작품이나 산문집 같은 걸 조금씩 찾아보고 있다. 페미니즘의 다양한 관점에 대해 한 번쯤 봐 두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페미니즘을 퀴어링’에서 언급된 로즈마리 퍼트넘 통의 이 책을 읽기로 했다.

페미니즘 안에서도 시대에 따라, 도움을 받는 이론 배경에 따라 무척 다양한 관점들이 존재하고, 그들끼리 서로의 한계와 개선점을 논의하며 변화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유주의, 급진주의(자유의지론vs문화적 관점),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유색인종(미국 내 또는 제3세계-전 지구, 포스트식민주의, 초국가주의), 정신분석, 돌봄 중심, 에코, 실존주의,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제3의 물결, 퀴어 페미니즘까지- 각자가 놓인 위치에 따라, 주목하는 지점이 다 달랐다. 여성 억압과 차별이라는 공통의 관심에다 가부장제, 자본의 착취, 계급 문제, 인종 문제, 식민주의와 선진국의 저개발 착취, 거기에다 심리적 분석과 여성에게 요구되는 역할, 환경과 지구에 대한 관심과 인간종 중심적 사고, 존재 자체의 불안과 언어가 만드는 세상, 권위의 해체, 우습게 만들기, 다양성의 강조, 성소수자의 젠더까지 중첩된 문제는 끝도 없이 다양했다. 아마 시대가 갈수록 그런 교차되는 문제나 입장은 더 늘어갈 것이다. 다음 개정판에서는 정말 제4의 물결을 다룬 장이 추가될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이렇게나 다양한 이유로 다른 존재, 낮은 존재 취급 받고 소외 받고 고통 받을 수 있구나, 참 지겹게도 안 바뀌는 세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

특별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급진주의 내에서도 자유의지론과 문화 페미니즘이 다양한 지점에서 생각을 달리하고 있는 걸 짚을 때였다. 굳이 말하자면 저는 급진주의 자유의지론 페미니즘의 입장에 더 동조하게 되는군요… 자세한 설명은 본문의 표 하나로 한 방에 확인하십시오…(맨 아래 이미지 첨부합니다…)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옛날에도 그랬지만 읽을 때마다 졸렸다. 타도 자본주의 만으로 이상 세계가 올 리가 없잖아... 그래서 소련과 중공과 북한 여성들의 삶은 얼마나 나았었나 나아졌나 모르겠다. (이쯤에서 누가 때리러 올 것 같고…)
페미니즘 시작과 발달 과정, 배경으로 삼는 이론 대부분이 유럽, 미국에서 나왔고 운동 참여 주체도 백인 지식인층 여성부터 시작한 터라 그런 한계점을 짚고 가는 일이 중요한 것 같다. 페미니즘의 목소리에 중년 여성들, 어머니 세대에서 더 반발하는 것도 어쩌면 그분들이 겪은 어려움과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엄마는 왜 그러고 미련하게 사세요 하면서 젊고 낯설고 새로운 이야기를 불친절하게 디밀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처럼 아시아, 한국의 페미니즘의 관점과 주장들을 일목요연 정리한 책도 있을 것 같긴 한데. 뭔가 정리를 할 만큼 탄탄한 이론과 이슈가 있긴 할까, 그만한 파장이 있었나 하는 것조차 나의 무지와 자기비하 같은 거겠지. (이쯤에서 또 누군가 단체로 때리러 올 것 같고…)
제일 흥미 있는 부분은 9장의 실존주의,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과 10장의 제3물결, 퀴어 페미니즘을 다룬 내용이었다. 현대철학은 개론서 같은 데서 볼 때마다 아 하나도 모르겠는데 뭔가 막 다 그럴싸 해, 맞는 말 같아, 했는데 이 책에서 사르트르, 보부아르, 미셸 푸코, 주디스 버틀러 이런 사람들이 여성 억압과 타자화와 권력 문제 어쩌고 하는 말들도 뭔가 와 닿았다. 자기들끼리도 부딪히는 이야기가 많은 데도 얘 말도 쟤 말도 맞는 거 같고 얘들을 비판하는 주장들도 일리가 있어 보였다. 기존과 다른 새로운 관점으로 문제의 원인을 짚고, 다양성의 범위를 넓혀가는 일은 언제나 매력있어 보인다. 젊은 세대들에게 설득력을 가지려면 쿨병 같은 것도 좀 필요하지 않나 싶었다. (그런 흐름을 진지하지 못하다고 때리는 사람들 이 책에 많이 나온다…)

책 읽던 중간에, 함께 읽을 책 목록을 슬쩍 둘러 봤는데, 읽은 게 딸랑 두 개 밖에 없었다… 벨 훅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올해 작고하신 엘리자베스 워첼 ‘비치’! 엘리님아, 님이 제3물결 페미니스트였어? 왜 난 몰랐지...모르고 읽었나…마약 없고 남자 없고 가정 불화 걱정 없는 세상에서 먼지 상태로 편히 쉬세요...
읽고 싶은 책도 생겼다. 페미니즘 관점에서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한 소설들이 흥미로웠다. 마거릿 애트우드 ‘시녀 이야기’ 이 책 읽던 중간에 샀다… 마지 피어시의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는 왜 절판이야...왜 전자책도 없어...일단 중고알리미 걸어 둠...그리고 주디스 버틀러 ‘권력의 정신적 삶’ 이건 전자 도서관에 있으니 아주아주 심심할 때 읽어보기로 했다.

전자책 페이지 숫자 보고 엄청 쫄았는데 매일 차근차근 한 장씩 읽었더니 열하루만에 다 봤다. 전부다 확실하게 이해하고 가자, 하는 마음으로 읽은 건 아니라 얼마나 소화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밑줄은 겁나 많이 쳐놨다. 나중에 생각나면 다시 찾아봐야겠다. 내 삶을 더 나아지게 할 답까지는 구하지 못했어도 내 삶이 힘든 이유는 조금이나마 설명해주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조금씩 더 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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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09-08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너무나도 재미 없어서 하루에 한 챕터도 읽지 못해내고 있습니다....
대단하시네요. 당해낼 수 없는 끈기. 공부 잘 하는 사람은 다 이유 있다더니.....

책을 아예 다 퍼담으셨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출판사에서 때찌하러 올 지도?

반유행열반인 2020-09-08 23:38   좋아요 0 | URL
아 맞다 내가 읽을라고 퍼놓은 거 너무 긁어다 붙였네 하고 이제 지울라고요 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9-08 23:42   좋아요 0 | URL
때찌 무서워서 다 지움 ㅋㅋㅋ

- 2020-09-08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뭐야 이언니 이거 다읽으면 어떡해??? (이제 펴는 자..)

반유행열반인 2020-09-08 23:39   좋아요 0 | URL
재미없어서 얼른 보고 딴 거 볼라고...

- 2020-09-08 23:46   좋아요 1 | URL
나 서론 방금 다 읽었는데 재밌눈디😚

반유행열반인 2020-09-08 23:51   좋아요 1 | URL
재밌다가 없다가없다가없다가 있다가 없다가 해요. 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9-08 23:51   좋아요 1 | URL
원래 두꺼운 책은 서론과 결론이 제일 재밌음다

- 2020-09-08 23:53   좋아요 1 | URL
서론과 결론만 재밌다는 스포일러 ㅋㅋㅋㅋ 어쩐지 자유주의 펴자마자 잠이 온다디리리로로옹🥱 잘자용..!

반유행열반인 2020-09-08 23:54   좋아요 1 | URL
아 이미 독후감에 썼지만 급진주의, 포스트식민주의, 실존주의와 친구들, 제3물결과 퀴어 친구들 여기가 재밌었습니다. 잘자융

- 2020-09-09 00:05   좋아요 1 | URL
난 아마 사회주의, 정신분석, 에코, 실존주의 좋아할 것 같은데... (아닐 수도..)... 우리가 이렇게 달라요 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9-09 07:05   좋아요 0 | URL
와 이렇게나 다른가...

비연 2020-09-09 0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다 읽었다..ㅠ 이런... 그것도 열 하루 만에..라고 쓰셨다. 반유행열반인님. (손들고 반성중)

반유행열반인 2020-09-09 07:03   좋아요 0 | URL
자기 속도로 필요대로 천천히 즐겁게 읽어가요 비연님- 이런 도 반성할 일도 아니잖아요 ㅋㅋ 저는 다른 책으로 도망갈라고 얼른 읽은 거에요
열하루 중에 하루는 쉬었습니다ㅋㅋ

단발머리 2020-09-09 0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눈에 익숙한 책이 링크되어 있어 반갑게 들어왔습니다. 열흘만에 다 읽으셨다니 정말 대단하신데요!

반유행열반인 2020-09-09 09:11   좋아요 0 | URL
네 보라보라 책 저도 읽었습니다. 대단하긴요. 저는 이런 책을 거의 처음 읽는 걸요. 여러 권 읽고 갖춘 단발머리님이 더 대단하십니다. ㅎㅎㅎ

수이 2020-09-09 0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멋져, 금세 읽을 줄은 알았는데 이 책만 읽었던 것이로군요! 게으름 피우고 있었는데 나도 이제 슬슬 달려야겠다.

2020-09-09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9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9 0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0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0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0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