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의 만능일꾼, 글루탐산 - MGS를 훌쩍 뛰어넘는 아미노산, 단백질, 생명현상 이야기
최낙언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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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3 최낙언.

 

 문돌이인 나에게 과학 공부를 많이 시켜준 , 재미있게도 수능 과학 과목이 아니라 수능 국어의 독서(옛날에 비문학이라 하던) 과목이었다. 한바닥짜리 쪽글은 초식동물의 반추위에서 일어나는 대사 과정, 식물 광합성의 명반응과 암반응, 반도체의 작동 원리, PCR검사의 원리, 미토콘드리아와 고세균의 공생과 공생 아닌 것의 구분, 이부프로펜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용매와 용질과 촉매와 어쩌구… 열거하지 못할 만큼 이런저런 지식들이 쏟아져내렸다. 당연히 남들 학기 걸려 대학교재 권으로 배울 것을 10여분 안에 이해할수도 없고, 이해하기를 바라지도 않는게 독해 문제이다. 최대한 빨리 읽어내려가며 구조 파악하고, 적당한 인덱싱으로 나중에 문제 풀다 돌아가서 짝맞추기 잘하도록 끝없는 훈련, 훈련.

 

 과학 공부는 오히려 산수 공부 내지 멘사 두뇌 퍼즐, 이런 이름이 적합한 퍼즐 맞추기에 가까웠다. 근육이 수축하면 부분은 줄고, 여긴 늘고, 여기에 자극이 가해지면 순차적으로 마이크로 단위로 부분은 전위가 발생해 찌르르 흐르고 그게 마이크로세크당 센티미터까지 이동하고 전위 발생 정도가 탈분극인지 재분극인지 맞춰 하는… 나는 대소비교와 비례식, 단순 덧셈뺄셈 나눗셈에 매우 취약한 사람인 3 공부하면서 알았다. 풀이의 논리도 중요하지만 계산기와 같은 빠르고 정확한 계산은 입시 수학 과학에서 너무나 중요해. 어려서 구몬수학 같은 번도 안하고 덧셈 뺄셈은 두자리 부터는 세로셈으로 적지 않으면 하지도 못하던 나새끼가 분초를 다투는 고등 수학 과학에 다시 도전한 건…원래도 셈이 느리고 자릿수도 만의 자리 천의 자리 0개수 구분 어렵던 나새기가 노화마저 비가역적으로 진행되어 더딘 모르고 너무 무모한 도전이었구나… 그랬다.

 

 어느 달인가 알라딘에서 독후감에 적립금 상을 줘가지고, 고민하다가 최낙언 선생의 전자책이 보여서 낼름 사버렸다. 글루탐산, 그거 -글루타민산나트륨에 붙어 있는 뭔가가 아닌가? 엠에스지 이야기냐… 그래도 펼쳐보면 단순히 맛과 음식 이야기가 아니라 유익한 공부를 시켜주는 선생님의 책이기 때문에 홀린듯 놓고 다운로드도 받고 잊고 있다가… 수능이 끝나자마자 홀린 전자책 놓은 있냐...하다가 먼저 펼쳤다.

 

 아니 그런데 책에, 내가 수능 생명과학에서 공부하던 나와 있었다. 수능 국어 지문에 나오던 이런 저런 화학 반응 관련된 거도 나오고… 그냥 수능 과학 공부 하고 책을 먼저 봤으면 재밌고 고생한 아닐까 싶게… 단백질과 중에서도 핵심이라 만한 아미노산인 글루타민, 글루탐산 다루면서 선생은 생명의 온갖 작동 원리들- 근수축, 막전위 변화, 광합성, 호흡, 질소순환, 20여가지 아미노산이 분자 분자 붙고 떨어지고 하면서 이루어지는 분자구조식까지 깨알같이 담아 두셨다. 생명과학이랑 화학 공부하는 중고생들이 읽으면 통섭적인 이해에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문제 풀이 시키기 위한 수능 과학은 진짜 과학 공부하는 본질은 잃고 순발력과 지구력 테스트를 위한 퍼즐 맞추기 문제로 변질되어 있어서 우리가 이걸 공부하고 나중에 대학가서 어떤 응용 과학에서 이걸 이용하게 될지, 혹은 우리에 대해 무엇을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해 이걸 공부하는지 완전히 망각시키고 있다. 이미 공부 조금이나마 하고 와서 이게 재밌는건지, 진짜 궁금했던 이야기들을 그래도 최대한 일반인들이 이해할 있게 텍스트랑 그림으로 풀어줘서 그런지 책은 제법 흥미로웠다. 물론 이해하지는 못하고 한참 성분명 분자명 나열하는 부분에서는 이런 것까지...하는 사람도 있을수는 있지만 말이다… 식품공학이나 화학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두고두고 읽을만 보였다.

 

 어려서부터 아토피성 피부염을 평생 앓고 있다. 학교도 들어간 , 동네 약국 약사 아줌마가 자기가 낫게 해준다고 엄마한테 엄청 확신에 차서 꼬시는 바람에 엄마는 거의 돈백을 약국에 꼴아박고 나는 생약인지 정체 불명의 갈색 과립(약간 인스턴트 커피 알갱이 같은 제형)약을 일년 꼬박 먹었다. 먹지 말아야 것들의 목록도 길게 챙겨 줬는데, 거기엔 돼지고기, 닭고기, 우유, 계란, 밀가루 등등... 성장기 필수 영양소 담긴 음식 거의 대부분이 있어서, 유치원에서 간식시간에 우유 담긴 컵을 무심히 내민 선생님 앞에서 우유 마시면 된대요 하고 울어버린 일도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서른 중반 되어서 병원 종합검진 패키지에 딸린 알레르기 검사를 보니… 나는 가장 흔한 식품, 식물, 집먼지알레르기 등등 70여종 항원 어느 것에도 알레르기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 7 수많은 알레르기 가능성 있는 음식을 제한한 그저 가장 자라는 시절에 영양 부족으로 성장 지연만 시키고 ( 키는 그래서 157에서 자랐고…) 그렇게 헛짓거리로 남은 것이었다. 거의 일년 비슷한 식습관 (오트밀에 요거트랑 견과류 비벼먹고 단백질 음료에 시리얼바 처묵처묵 정도만 일반식사) 하면서 몸무게를 10킬로 줄이고 체지방 줄이고 근육량은 늘린 같은데, (자세한 다음 건강검진 인바디와 각종 검사로 건강 상태 확인 예정), 내내 건강하게 지내다 식습관이나 운동 습관 그대로 갔는데도 연말 환절기 되니 아토피성 피부염이 7 만에 올라와 버렸다. 수능 앞두고 2 전이었다. 결국 자가면역에 가까운 만성 질환들은 대부분 자체가 병의 시작이다. 부신 피질에서 뿜뿜하는 스트레스 관련 호르몬… 반짝거리는 피부 보고 오늘이 왠지 올해 들어 가장 예쁜 같아… 이제 이럴 같아…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며칠 바로 얼굴과 목과 발목과 거의 전신에 염증성 피부염이 벌겋게 돋아나 나는 가려움과 감염 위험과 줄다리기하면서 보습하고, 약한 스테로이드도 발라보고, 그렇게 자신이랑 싸우는 날들이다…

 

 잡설이 길지만 결국 우리는 집어서 무슨 물질이 나쁘고, 무슨 음식은 어디에 좋고 그렇게 착각을 하는데, 모든 물질은 자체로는 중립에 가깝고 전반적인 환경과 적재적소에 정량이 갖춰지느냐 아니냐에 따라 건강과 생명과 질환과 죽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구나 하는 확인하는 독서였다. 그게 과학적인 지식과 전반적인 통찰에 의한 결론이면 좋은데, 대부분 사람들은 유튜브에서 이건 좋다더라, 나쁘다더라 이러고 아니 어디선 커피가 당뇨에 좋다더니 얘는 공복 커피가 혈당 올린다고 어쩌라고! 하면서 버럭질을 하는 댓글을 다는 것이다. 커피는 그냥 맛있고 기분 좋자고 먹는 거지 건강 따질 거면 그냥 맹물을 열심히 드시라구요…

 

  레인의산소’와미토콘드리아’를 예전에 갖추고 이걸 수능 끝나면 볼까, 했는데 책에서도 거기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 제법 인용되었다. 역시나 나중에 나가는 읽으니 저자 선생님께서도 책들에서 많은 영감을 얻으셨다 하고 참고문헌에도 적혀 있어서 결국 알아서 필요한 읽고 그러다보면 책들끼리 줄줄이 이어지는 구나...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맨날 이제 최선생님 그만 봐야지...하면서도 하는 이야기의 핵심은 유사한데 (문제는 물질 자체는 죄가 없다 암은 랜덤…) 그래도 보다보면 조금이라도 배우는 있고 재미있어서 자꾸 보게 된다. 쟁여둔 커피 공부 책만 보고 진짜로 하산하겠습니다…


주요 아미노산을 한 바닥에 깔끔하게 정리한 그림… 이 책에는 이런 아름다운 도표와 분자구조식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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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11-23 1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토피성 체질인데 고 3때 1년 내내 고생했고 만성이었던 중이염도 그때 최대로 심했거든요
제 인생의 앞길을 막은 건 이 두 가지였다고 생각해요 이것만 아니었다면 좀 더 잘 풀릴 수 있었을텐데요 ㅎㅎ
아토피는 가을부터 봄까지 계절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것 같아요.
보습제를 발라도 그때 뿐이고 스테로이드 연고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가 없어요.
여름이 덥고 땀은 나지만 아토피는 훨씬 덜 하더라고요.
저도 알러지 검사에서 음식에 대한 반응이 없었는데
그래도 우유, 달걀, 요거트 등 유제품이 확실히 안 좋아요.
단백질 섭취를 위해 먹어야 하는데
정말 고민입니다 ㅠㅠ
커피를 좋아해서 맹물을 죽어라고 안 마시기게 돼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4-11-23 12:51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 고생 많으시군요. 정말이지 여름은 공기 중에 습기가 많아서 피부 상태가 썩 괜찮아요. 동남아시아 놀러가면 로션 안 발라도 안 꺼칠은 피부가 며칠 지속되서 진지하게 (피부염 때문에) 여기 살고 싶다...근데 여기서 뭐해먹고 사냐.. 그러고 포기한 기억도 있네요 ㅎㅎㅎ 커피는 맛있잖아요... 물에 콩가루 태운 거 녹인 주제에 왜 향기로워서 사람을 홀리냐... 물 마실 배 좀 남겨다오... ㅋㅋㅋ

hnine 2024-11-23 1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일 재미없게 쓴 생물책은 고등학교 생물 교과서가 아닐까요.
있던 흥미도 떨어뜨리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너무 많은 내용을 담는데 치중하다보니 충분한 설명 없는 도표와 구조식이 더 어렵게만 만들고요.
이 책 흥미로운데요. 책표지 구조식에 산소 자리에 미원 상표 그려넣은 것도 재미있고요.

반유행열반인 2024-11-23 14:09   좋아요 0 | URL
이 책도 분자구조식? 구조도? 는 쫌 많은데 저는 열 권 넘게 본 저자라 그냥 익숙해진 대로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ㅎㅎ전자책을 보다보니 표지 깨알 미원 마크는 미처 못 봤는데 덕분에 ㅎㅎㅎ 요즘 교과서는 올칼라에 저희(?라떼??) 때 보다는 낫게 나온다 싶지만 교육과정 자체가 딱 뭔가를 관통하는 방향성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는 게 (제 전공인 사회도 사실 좀 그래요...) 짧은 공부로 얻은 느낌이었고 그건 거의 (의치한약수 더하기 명문대 거름망) 고시처럼 변질된 선발 목적의 입시교육의 한계겠지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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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2 라우라 에스키벨.


이 책 읽기를 더 미룰 수 없게된 건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북플 마니아에 라우라 에스키벨이 떠 있어서였다. 아 이게 누군데... 나 왜 마니아… 보니까 가장 가까이 높다란 책장 위에 꽂혀 나 얇은데? 금방 볼 건데? 하고 내려다보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작가였다. 열두 달 마다 레시피 하나씩, 너네는 한 번도 안 먹어봤을 중남미 요리로다가, 그렇게 풀어나가는 이야기였다. 식욕이랑 성욕이랑 버무리면 누구 하나라도 걸리지 않겠냐, 이런 치트키를 뿅뿅 써가지고 유쾌하게 써 내려간 소설이었다.

누구나 사랑하고 사랑 받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건 이성애건 동성애건 범성애건 성애적 형태로 충족될 수도 있고, 아 난 에이섹슈얼, 그레이섹슈얼이라 그냥 로맨틱만 원해, 아니 다 됐고 난 얼큰한 국밥 한 그릇 뚝딱이면 그만이다, 거기에 알코올 추가요, 하고 만족할 수도 있다. 그런데 국밥 필요한 사람한테 자꾸 달라는 국밥은 안주고 배고픈데 주방에선 조리사님이 윙크만 오지게 보내거나, 밥은 됐고요 빨리 라면이나 한 사발 뚝딱하고 그냥 푸지게 더 안고 뒹굴고 싶은데요 하는 사람한테 만한전석을 차려준다고 행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소설 속에서는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가족이 그렇게 엉뚱한 것만 허락하고 정말 원하는 걸 자꾸 안된다고 해서 내내 불행해질 뻔하다가 순간이나마, 혹은 늦게나마 원하던 걸 찾아가는 이야기가 펼쳐졌다. 엄마는 자기 몸종하라고 연애도 결혼도 못하게 해… 언니는 내가 좋아하는 남자랑 결혼해… 그런데 왜 이새끼 저새끼 군인새끼들 밥까지 이 언니들이 다 해먹여야 해...짜장면 시켜 먹어 새끼들아…
어느 책에선가 누군가에게 음식을 만들어 먹이면 옥시토신이었나 하여간에 행복해지는 호르몬이 듬뿍 나온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들은 행복해지려고 자꾸 우리를 먹이려 드시는 거였어… 효도하려면 아 내가 알아서 먹는다고! 를 자제하자… 가끔 먹고 맛있다고 엄지척해드리자… 나는 하도 잘 안 처먹어서 이렇게 불효자는 웁니다…

아무리 봐도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그나마 덜 빻고 지적이고 다정하고 사람이 된 놈이다, 싶은 게 존 박사 밖에 없었는데, 티타는 몸과 마음이 이끄는대로, 존 하고는 그냥 사돈댁하기로 하고 처음 사랑인 페드로와 불을 태운다. 그의 나이 향년 39세. 나랑 동갑이군요. 사실 나이 제도가 바뀌어서 어쩌다보니 나는 세상에서 가장 긴 39세를 보낸 기분이다. 구 한국나이 39세는 22년도였는데 만나이 39세는 아직도여서 이제 올해 12월 중순이나 되어야 드디어 앞자리가 바뀐다요… 나이랑 몸무게랑 페어링하는 시대가 오겠군요! 하여간에 20년 간 조카 키우느라 참아둔 사랑을 티타는 진짜 활활 태워버리고 만다. 누가 진짜 불장난 하랬어… 엄마 쟤 성냥 먹어…

그냥저냥 재밌게 읽을 정도는 되었다. 그런데 마지막 약력에서 작가가 ’백년의 고독‘ 영화화 준비 중인 소식 보고는 개봉 하긴 했냐? 언감생심이네… 중남미라고 적당히 묻어가면 되겠나… 그 정도는 아니예요… 리얼적 마술리즘 노리는 할배가 저기 중국에 옌롄커라고 있는데… 할매도 할배도 적당히 빻은 건 닮았지만 더 이상은 좀 오바에요… 하고서 나는 백년의 고독이 다시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음식이 잔뜩 나오는데 하나도 모르는 음식이라 전혀 자극되지 않는 식욕… 이렇게 저렇게 허풍치며 섹스들 하는데 그냥 적당히 흐뭇한 광경일 뿐 딱히 야하지는 않았고요… 너무 매운맛만 좋아하는 어른이라 송구합니다….

+밑줄 긋기
-“아시다시피 우리 몸 안에도 인을 생산할 수 있는 물질이 있어요. 그보다 더한 것도 있죠.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걸 알려드릴까요? 우리 할머니는 아주 재미있는 이론을 가지고 계셨어요.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당길 수 없다고 하셨죠. 방금 한 실험에서처럼 산소와 촛불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산소는 사랑하는 사람의 입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촛불은 펑 하고 성냥불을 일으켜줄 수 있는 음식이나 음악, 애무, 언어, 소리가 되겠지요. 잠시 동안 우리는 그 강렬한 느낌에 현혹됩니다. 우리 몸 안에서는 따듯한 열기가 피어오르지요. 이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사라지지만 나중에 다시 그 불길을 되살릴 수 있는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곷을 일으켜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 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다시 말해 불꽃은 영혼의 양식인 것입니다. 자신의 불씨를 지펴줄 뭔가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비의 불도 지필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영혼은 육체에서 달아나 자신을 살찌워 줄 양식을 찾아 홀로 칠흑같이 어두운 곳을 헤매게 됩니다. 남겨두고 온 차갑고 힘없는 육체만이 그 양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말입니다.”
아! 얼마나 맞는 말인가! 티타는 그 누구보다도 그 말에 공감했다.
티타는 불행히도 자신의 성냥이 이미 축축해져서 곰팡이가 가득 슬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이제 다시는 그 누구도 불을 지필 수 없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무엇이 자신의 불씨를 일으켜줄 수 있는지 알고 있는데도 성냥에 불이 붙으려고 할 때마다 불이 가차 없이 꺼져버린다는 거였다.
존이 티타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서 차가운 입김을 가진 사람들에게서는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장 강렬한 불길이 꺼질 수 있으니까요. 그 결과는 우리도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런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그 입김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가 훨씬 더 수월하답니다.”
존은 양손으로 티타의 한쪽 손을 감싸며 간단히 덧붙였다.
“축축해진 성냥갑을 말릴 수 있는 방법은 아주 많이 있어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12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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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4-11-23 0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찾아보니 백년의 고독은 다음 달 첫 영상화 넷플릭스에서 나온대네... 아놔 넷플릭스 구독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처음 흔들려 봄...

- 2024-11-24 10:31   좋아요 1 | URL
아… 나 해지햇는데

반유행열반인 2024-11-24 14:18   좋아요 0 | URL
그냥 이참에 백년의 고독 소설 다시 읽는 것으로 퉁치죠 ㅋㅋㅋ이 플랫폼 아니면 넌 이 컨텐츠 못 접하지 메롱메롱 하는 게 너무 싫어서(반체제인사 반새끼) 구독 안 하고는 있는데 거기서만 볼 수 있는 백년의 고독, 살인자ㅇ난감, 도로헤도로 이런 건 좀 탐나더라구요…박찬욱 리틀드러머걸도 넷플릭스 독점인 줄 알았더니 비비씨 방영에 왓챠에 있는 걸 좀 전에 알고 어리둥절했지만 ㅋㅋㅋㅋ띵작인지 졸작인지 방영 후 눈치보고 최초 넷플 구독을 들어갈까 말까 고민해보기로(아마 안 할듯 ㅋㅋㅋ) 합니다…
 
동경일일 3 - 완결
마츠모토 타이요 지음, 이주향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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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0 마츠모토 타이요.

 

 1권을 추석 시댁 가는 지하철에서였다. 생각 없이 큰어린이랑 같이 양으로 들고 갔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펼친 만화책이 너무 재미있는 거야… 이를테면 키우는 새랑 대화하는 장면이나…

 


 이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나온 그 아저씨 아니냐…

 


  쉽죠 밥로스 아저씨처럼 붓얼룩 같은 걸로 그린 편집부 아저씨도 그렇고 인물 마다 개성이 넘쳐…

 


 만화 잡지 편집자 하다가 잡지가 폐간되자 시오씨는 출판사와 연재작가들에게 폐를 끼쳤다 생각하고 오래도록 일하던 출판사를 그만둔다. 그러고는 지금은 펜을 놓았거나 잡고 있어도 많이 소진된 작가들을 찾아가서 원고를 요청한다. 만화 잡지를 창간할 테니 거기 실을 만화를 그려 달라고. 사실 시오씨는 가까이 있으면 그렇게 매력적일만한 인물은 아니다. 공감능력도 부족해 보이고, 만화가들한테만 굽신굽신 잘하고, 자기 혐오도 있는 같다. 그런데 우직하다. 목표 하나를 잡고 그것만 보고 다른 참아낸다. 바라보는 하나가 바로 만화다. 세상에 이런 로맨티스트가 나오는 만화라니… 사실 만화의 세계가 그렇다. 농구 밖에 모르는 바보, 해적왕 밖에 모르는 바보, 지구정복 밖에 모르는 바보를 지구수호 밖에 모르는 바보가 무찌르는 이야기… 사랑 밖에 모르는 바보들이 나와서 연애 만화의 온갖 갈등과 오해와 눈물을 자아내는 거지 뭐…

 

 클리셰 싫다면서도 알게 모르게 클리셰 중독인 나는 만화 분량이 이렇게 짧으니 창간이 결국 실패하리라 단정하고 읽고 있었다. 비관 밖에 모르는 나란 바보… 그게 아니라고 예측과 기대를 차고 대책 없이 희망적이고 풀리는 결말이 나오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망하라는 법은 있냐. 가끔은 그렇게 고생하고 소소한 정이 쌓여 뭔가를 이루기도 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건 혼자서만은 이룰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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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4-11-20 15: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오씨는 영화나 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뭔가 정체를 숨기고 있는 연쇄살인마 같은 관상이군요. 저 안경 벗으면 막 겁나 잔인한 눈 들어있고, 그런.

저는 밥로스 아저씨보다 윤석열 헤어를 하고 있는 저 허연 아저씨가 더 눈에 들어오네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4-11-20 16:15   좋아요 0 | URL
시오는 소금인데 왠지 syo님이랑 발음(만) 비슷하네요? ㅋㅋ 안경 벗는 장면도 잠시 나와요 ㅋㅋㅋ술집 마담이 와 누구누구(배우) 닮았다 이러고 안경 벗어보래고서 내가 잘못 봤네...이럼ㅋㅋㅋ 벗어도 흐리멍텅한 얼굴이었습니다ㅋㅋㅋ
저는 미처 못봤는데 윤석열 머리가 저런가요 ㅋㅋ벌써 억울한 표정 짓고 계신데요? ㅋㅋㅋㅋ
 
성공의 조건 실패의 쓸모 - 어제의 실패를 오늘의 성공으로 만든 사람들
곽한영 지음 / 프런티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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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9 곽한영.

 


 

 브로콜리너마저-되고 싶었어요.


 

 오랜만에 전자도서관을 둘러보았다. 신간 틈에서 발견한 . .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척척박사 박학다식 거기에다 다정하기까지 교수님은 쓰는 취미라 정도로 온갖 것들에 대해 책을 내셨다. 글로 써서 자신이 알게 것을 전달하는 방식에도 교수님의 다정함이 묻어나서 그분 책을 좋아했다. 그런데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줄여서 피앨푸행 했던 동화 고서적 이야기들 모음), ‘혼돈과 질서’, ‘게임의 법칙’ 같은 교양에세이쯤 되는 책부터 청소년을 위한 쉬운 법에 관한 책들(교수님 전공이 법교육...나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같은 전공을 택했다가 교수님의 교수님이 지도교수님이 되자 너무 무서워서 바로 도망친 아예 영구 수료로 남을 예정이지만…ㅋㅋㅋㅋ), 그러다가 배구에 관한 책까지 내신 알았는데 책의 외관이나 마케팅 포인트나 오잉...이제 자기계발서 까지 내신 건가요… 워낙 관심사 방대하다 해도 책의 주제나 외관이나 컨셉이나 이런 것까지...하고 너무 의외여서 오히려 궁금했다. 그래서 빌려 보았다.

 

 막상 펼치니 껍데기만 그렇게 보였을 , 읽는 내내 나를 빡치게 하는 같은 반복하는 자기계발서들이랑은 결이 달랐다. 내내 알고 있던 스토리텔링 풍부한, 내가 좋아하는 입담 좋은 이야기꾼의 이야기 모음이었다. 그래서 , 너무 재미있어… 재미있는데 뭔가 유익하기지… 이러고 후다닥 읽어버렸다. 시작은 비틀즈에서 제일 쩌리 같았던 링고스타가 사실은 위너 아니냐...하는 데서부터 이런저런 음악인들, 영화인들, 위인들 썰을 시시콜콜 풀어주면서도 거기서 우리가 돌아볼 만한 이야기들을 나눠주는게 나처럼 망한 애들이 시절에 읽기 맞춤한 책이었다.

 

 아이돌이나 연예인 진짜 모르고 알아보는데 올초에는 자기 앞에서 떨어진 가지고 먹을테니 개이득, 행운의 여신은 편이야! (원본 찾아보니 정작 본인은 러키비키 타령 했더라구…) 하는 장원영 보면서 나도 모르게 아무데서나 러키비키 하는데 재미가 들렸다. 처음엔 비꼬듯이 시험 전에 모의고사에서 이렇게 개박살 났으니 진짜 시험이 아니라 -마나 다행인지 완전 러키비키자나!!! 하면서 놀았는데 그러다 보니 어느덧 아무데서나 아무렴 어떠냐 다행 아니냐...이렇게 되더라구... 책의 많은 부분도 중요한 러키비키 하는 마음… 하고 태도에 관해 거듭 되새기면서 과연 성공과 실패라는 뭔지 근원적으로 돌아볼 만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비관적인 나같은 놈이 긍정으로 돌아설 때가 세상의 위기이고 망조일 수도 있습니다만… 2 망했을 때는 김연수의 위로 가득한 소설 읽고도 위로하지마!!! 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냥 ...그래 망했다 어쩌겠니 그래도 수능만 망했지 인생은 망했다...이러고 불행할 있었다. 며칠 겨우 봤는데도 아직 맘대로 책이 무한대로 남아가지고 행복한 같기도… 시간 쫓기고 맘대로 아무데나 걸어다닐 있는 것만도 행복하고… 아토피 재발하고 지독한 감기로 콜록대고는 있지만 그럭저럭 죽을 아닌 어디냐… 역시 지옥도 천국도 마음에 있는 것이냐… 나는 이렇게 체제가 허락한 마음 뽕에 취해 평생하던 반항을 거두는 것이냐… 이럴 이런 보고 위로 받는 것도 완전 러키비키잖아…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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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4-11-20 1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거울을 쳐다보면서 그래, 오늘도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하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제목으로 쓰신 대사는 뭔가 낭만적인 느낌은 있지만, 사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기 위해서는 저마다의 ˝당신˝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 같아요. 경험담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4-11-20 16:18   좋아요 0 | URL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아도 그냥 나여도 계속 곁에선 나는 더 나아질테다! 하는게 더 쉽지 않은 경우 같은데... 쓰고 보니 욕심쟁이에 이기적인 놈이네요 ㅋㅋㅋ 좋은 경험(?) 하신 걸까요? ㅋㅋㅋ
 
기억의 몫
장성욱 지음 / 득수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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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8 장성욱.

많은 일을 오래도록 잘 담아두고 잘 떠올린다고 자부해왔지만, 사실 더 많은 것들이 흐릿하고 아득하다 못해 새까맣게 없어진 듯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오래도록 왕래가 없던 친구가 있었다. 거의 십여년을. 왜 멀어졌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그무렵 미안하다는 말을 잔뜩 적어 그 친구에게 보낸 마지막 메일이 보낸메일함에 남아있었다. 미안할 일이 무엇인지는 함께 적혀 있지 않아 무슨 무례를 혹은 잘못을 저지른 건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어디가서 기억력 좋다고 하지 말아야겠다.
나는 미련이 많고 이미 지나가 더 이상 내 인생에 없는 사람들에 관해 자주 검색해 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섬뜩해하진 마시라...해치진 않아요…) 몇 년 전에 한 것처럼 또 우연히 떠오른 친구 이름을 검색창에 적었다.
10대 후반부터 몇 시간이고 채팅방에서 수다를 떨고, 20대 초반에는 샛노랗게 머리 염색을 하고 소설가가 되겠다고 열심히 자기가 끄적인 걸 동호회 게시판이나 자기가 운영하는 카페에 올리던 친구는, 한두해 전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정말로 소설가가 되어 있었다. 메신저에 적어넣은 옛아이디는 그대로였고, 축하의 말을 건네고, 근데 그때 우리가 무슨 일로 연락을 안 하게 되었더라? 나도 모르지. 그렇게 엊그제 떠들다 만 애들처럼 또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남의 흉도 보고, 그런 세월이 또 한 칠년 지난 것 같다.

사람이 어떻게 그리 쉽게 잊는가, 예전엔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잘 잊는다. ‘우리는 왜 잊어야 할까’라는 책에서 그래야 우리는 더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조금이라도 덜 불행하려면 그래야 한다는 걸 알았다. 당장 3년 수능 공부해보니 방금 문제풀이 들은 강의인데, 내가 바로 따라 풀어보려고 하면 하나도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ㅋㅋㅋ 너무 많은 경험과 지식이 들어와도 머리는 과부하가 일어나니까 알아서 이전의 것들이 정리되기도 한다.

쉽게 잊고 쉽게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더 행복해 보이긴 한다. 반대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무언가를 안고서 오래도록 고통받고 마침내 붕괴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이야기를 하나 더 보게 되었다. ’올드보이‘가 그랬고 ’구타유발자들’이 그랬는데, 이번에는 학교폭력에 관한 이야기였다.

학교폭력이라면 나에게도 남은 상흔이 많다. 학생 입장 보다는 교사의 관점이지만, 초임부터 그랬다. 발령 삼일째, 반의 아이가 다른 반 폭력적인 아이에게 배를 심하게 두들겨 맞았다고 했다. 나는 너무 무섭고 속상해서 참지 못하고 이야기를 마친 아이 앞에서 펑펑 울었고, 생활지도부에 신고를 하고, 아이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때린 아이를 마주칠까 봐 걱정이 되어 집앞까지 그 아이를 바래다 주었다. 몇 달 후 그 맞았던 아이는 같은 반 아이를 오래도록 괴롭히고, 게임 셔틀을 시키고, 돈과 게임 아이템을 빼앗고, 상처가 눈에 띄지 않도록 얼굴 팔다리를 제외한 배와 몸통 부분을 집중적으로 주먹질해 멍투성이를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강제전학을 가게 되었다. 아이들의 학습능력인지, 본성인지, 맞던 아이는 쉽게 때리는 아이가 되어 더 잔혹하고 무감각하게 파괴를 전염시키는 걸 일찌감치 보고 말았다. 이게 마지막이라면 좋았겠지만, 이후에도 여기 적기조차 끔찍한 수많은 폭력 사건을 담임으로, 생활지도부 사안 담당으로, 학년부 생활지도 담당으로 맡으면서, 나는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어린 존재들도, 부모도, 동료 선생들도, 관리자들도, 인간은 그저 비겁하고 조그만 힘이라도 가지면 남을 지배하고 억압하려 들고 또 쉽게 부서지고 만다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작은 조직이 낫지 싶어 전직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또 돌아가면 이미 아는 걸 또 반복해서 확인하고 무너져야 겠지. 시발 거리고 주먹을 쥐고 나에게 다가오는 무서운 눈빛의 아이들. 킬킬대고 웃으며 할카스가 뭐에요? 000아세요? 빙 둘러싼 욕망 덩어리들의 성희롱. 비자발적으로 모아둔 집단에서는 그렇게 쉽게 맛이 간 짓거리들이 벌어진다...

이 이야기는 현실이라면 어쩌면 비극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학교 폭력 피해자이면서도 학교를 떠나야 했던 박선용은 리본500으로 거듭나 세계 최고의 프로게이머가 되었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잘 자란 듯 보이는 사람을 다른 사람들은 대견해하고 그 성취를 더 높이 사며 칭찬하고 호감을 갖는다. (나는 그게 뭔지 잘 알아…) 그렇지만 그런 성취와 별개로 이미 허물어지고 망가진 어딘가는 쉽게 복구되지 않는다. 하물며, 그렇게 나를 무너뜨린 누군가가 나에게 저지른 일과, 나라는 존재 조차 기억하지 못한 채 평온한 삶을 누리고 있는 걸 알게 된다면 지금의 내가 아무리 잘 되었던들 그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그럴 수 없었던 사람의 고통스러운 이야기가 생생하게 다가왔다. 읽는 내내 온통 슬펐다. 장편이지만 페이지가 금세 넘어갔다. 참담한 결말이지만 몰랐다고 죄가 죄 아닐 수 없는 비극은 오이디푸스 이후로 진리 아니냐…

우리는 저마다 소소한 잘못을 저지르고 남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주며 살아간다. 몇몇은 곱씹고 이불을 차며 후회하고 반성하지만 몇몇은 그냥 잊어버린다. 그냥. 거대한 역사적 폭력과 그로 인한 아픔과 고통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사람조차 자신이 일상의 폭력이 되어 새로 배우는 미래 창작자의 작품을 함께 다뤄볼 가치조차 없는 것으로 거부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알 기회도 가르침도 져버리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 아마 본인은 그런 일을 기억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세상은 그냥 그렇다. 거기에 똑같이 주먹질, 발길질과 담뱃불을 들이대는 것을 빼면, 뭘 할 수 있나? 그냥 계속 쓰는 것? 그들과 똑같이 되지 않기 위해 묻어두고 잊어주는 것? 사필귀정, 하면서 여기저기 알려서 내 대신 남들이 알아서 놀이처럼 마녀사냥하고 린치하게 만드는 것?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 무너진 사람들 스스로 찾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조차 나는 그저 가혹하게 여겨졌다.

+밑줄 긋기
-“당신이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불쾌한 사실을 굳이 사람들에게 상기시켜서 그렇습니다. 그걸 괘씸죄라고 하죠. 우리는 발밑에 하수구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걸 굳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지는 않잖아요.“(…)
”사람들은 당신이 형을 괴롭혀서 그렇게 화가 난 게 아니에요. 그건 그저 계기일 뿐이죠. 당신은 잘생긴 외모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고, 탤런트인 어머니의 재력을 이용해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도 않았죠. 더해서 지금도 이상적인 삶을 살고 있고. 쉽게 말해 그런 잘못을 하고도 당신의 인생에는 단 한 번의 페널티도 없었다는 사실에 화가 난 겁니다.“
그런 이유에서라면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문제였다. 어쩌면 엄마의 말대로 그저 잊히기를 기다리는 편이 나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남들이 보는 저일 뿐이잖아요.“
”지금 그런 게 중요합니까?“
매니저가 되물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지금 상황에서 자신이 진짜 어떤 사람이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영빈은 그동안 믿어왔던 스스로의 어떤 부분이 허물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186-187)

-그럼에도 너의 얼굴에서는 잠든 사람에게 쉽게 볼 수 있는 방심을 찾을 수 없다. 입을 벌린 채 침을 흘리거나, 눈이 반쯤 뜨여 있거나 혹은 그 흔한 잠꼬대나 코골이조차. 공들여 깎은 조각상처럼 무척이나 평온하고, 아름답다. 보고 있기만 해도 어디선가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들려올 듯한 모습이다. 나는 그게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토록 아름다운 네가 무엇이 부족해서 나한테 그런 짓을 했을까. (2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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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4-11-18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유수 2024-11-18 15:46   좋아요 1 | URL
이 와..는 오늘 명문 세 편 봐서 어지러운 동시에 개망한 사랑..들로 방황하는 중생이 읽은 것만으로도 북플 들어온 소기의 목적을 모두 이룬 것 같다 하는 와..입니다. (그럴리 없지만)오랜만에 쓰면 더 잘 쓰는 건가? 와..

반유행열반인 2024-11-18 17:01   좋아요 1 | URL
명문 세 편이라길래 뭘까 궁금해지네요 ㅋㅋㅋ 왜 아직도 망한 사랑으로 방황해? 청춘이네!!!! 중생이 원래 짐승에서 나온 건 알죠 우리 아름다운 짐승이시어... 왜 남의 잘 쓴 글 보고 와서 여기서 감탄하시나이까....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