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매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8
김금희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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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1 김금희.

식탁에 둘러 앉아 있는데 내가 앉은 의자가 삐그덕거렸다. 내가 조립한 이케아제 의자였다. 남편이 그 의자 조립할 때 썼던 육각렌치를 짐정리하다 보았다고 했고 나는 웃었다.
그거 전동드라이버로 했어.
어째서 조립하는 모습은 보지도 못했는데 그 조그만 렌치를 썼을 거라고 상상했을까 싶어 웃겼다.
전동드라이버 사길 잘 했어. 그런데 그냥 전동드릴 살 걸 그랬어. 벽 막 뚫고 앙카도 탁 박아 넣을 수 있는 걸로.
내가 덧붙인 말에 큰아이가 앙카가 뭐야, 했고 부모는 앵커, 닻, 이라고 동시에 말했다.
그 순간 닻이라는 말을 내가 좋아한다는 걸 느꼈다. 나를 붙잡고 흔들리지 않게 해 줄 무언가를 누군가를 오래도록 원했다. 이제 크고 무겁고 아름다운 닻을 갖게 되었으니, 만족할 만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 여겨왔다. 오늘은 눈보라를 헤치고 구청에 혼인신고를 하러 다녀온 지 딱 십 년이 되는 날이고, 작은아이가 태어난지 딱 천 일이 되는 날이다. 내 삶의 닻이란 그렇게 오래된 다정한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저녁 식탁 앞에 앉은 기분이다.
그렇지만 이 배는 얼마나 허약하고 잔물결에도 심하게 흔들리는지. 닻이 여러 개라면 폭풍우에도 좀 더 굳건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 무게를 감당하는 일만도 버거워서 가라앉고 싶은 충동을 종종 느꼈다. 너는 왜 바다로 나아가지 않고 자꾸만 방파제나 항구 같은 것이 되려고 하느냐. 한강가의 움직이지 않는 유람선 레스토랑이나 박물관에 전시된 고선박이 되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물 속에 오래 가라앉힌 쇳덩이는 녹이 슨다고 스스로를 달래면서 가끔 물밖으로 끌어 올리고 멀리 나아간다. 그리고 다시 돌아간다. 영원히 머물 곳은 없다. 봄에 이사를 한다. 주기적으로 직장이 달라진다. 아이들은 자라나고 떠나간다. 어느 기간이나마 고정하고 안전하게 돕는 것들에 고마워하며, 같이 있는 동안은 나도 꼭 붙잡으려 애쓰는 일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직장에서 코로나19 때문에 쓰지 못한 회식비 등을 책 사는 예산으로 돌려줘서 책처돌이는 신이 났다. 한 해 동안 꽤 많은 책을 내 돈 안 내고 갖췄다.(그리고 그런 책은 읽는 일이 미뤄지기 쉽지…) 우록리 할머니들 구술생애사 모음 ‘할매의 탄생’, 드라마 나오기도 전에 고르고 여전히 안 본 ‘보건교사 안은영’, 다윈 새 번역본 ‘종의 기원’,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현미경으로 본 커다란 세상 ‘미생물’(높은 책값에 비해 책 만듦새는 기대에 못 미쳤다...정작 보라고 내밀자 큰아이는 징그러워! 하고 외면해서 슬픔…)
그리고 남은 잔액 털어서 김금희 소설 ‘나의 사랑, 매기’를 골랐다. 한 권이지만 분량은 중편 쯤 되려나. 쌀종이에 꽃과 잎과 커다란 알뿌리가 달린 이름 모를 식물을 그린 표지, 세로폭이 길고 작아 손에 쥐는 책느낌이 좋아서 직장에서 책을 나눠주는 날 동료들에게 예쁘죠, 하고 자랑했다. (다윈 두 권 왔을 때도 표지 질감 신기하다고 여기저기 만져봐요, 해서 이미 책변태로 소문 났을 것 같긴 하다…)

매기와 재훈은 이십 대에 잠시 사귄 연인이었고, 삼십 대에 다시 만나 또 잠시 사랑한다. 배우인 매기는 제주도에 아이와 남편이 있고 서울에 촬영차 올라올 때마다 마포구에 사는 출판사 직원인 재훈을 만난다. 처음 헤어질 때에도 매기는 재훈에게 이런저런 말로 상처를 주었는데, 다시 만나는 동안에도 재훈은 매기가 정한 룰과 제약 때문에 열받으면서도 매기를 그리워하고 계속 만나고 싶어한다. 나는 이 책을 늦게 보았다. 읽는 내내 역시 김금희 너무 좋아, 잘 써, 이런 이야기를 이만큼 쓰는 구나 싶은 동시에 콩콩 찧기는 마늘이 되는 기분이었다. 살살 좀 빻으면 안 될까… 왜 이렇게 디테일이 살아있나요 금희 언니...


+밑줄 긋기
-매기 어록. 책 속 인물이니 매력적이지 진짜 이런 사람과 사랑한다면 수명이 많이 줄어들겠구나...싶었다.
“잘 지내, 미래는 현재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단지 긴 현재일 뿐이야”(21-22)
나는 그것을 열어보는 일을 최대한 미루고 있다가 노란 고무줄에 손가락을 넣어 풀었는데, 거기에는 아주 간단하게 “나는 인간이니까 당연히 섹스를 하며 살아야 해”라고 쓰여 있었다.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29)

-매기를 사랑하고 나서 줄곧 나를 붙잡았던 의문은 왜 내가 이런 관계를 선택했는가, 였다. 그런데 적어도 9호선에 몸을 구겨 넣고 만원의 상태를 견디며 바닥과, 그 바닥의 깊음과, 그래서 겪는 불편과 고통과 힘듦과 귀찮음 모두의 원인인 한강에 대해 생각할 때에는 매기와 나의 관계에서 선택이란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빗물이 손바닥을 적시듯 매기가 내 인생으로 툭툭 떨어져 내렸다는.(60)

-6월의 햇살은 봄의 뒷자락이 남아서인지 목덜미에 눌어붙는 것처럼 은근했다. 햇살은 강했지만 여름과는 달랐다. 그것은 따뜻함과 따가움 사이에 놓인 것 같았다.(71)

-그래, 당신은 고양이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나, 죽었다고 생각하나.
상관없어요.(97)

-작은 창으로, 겨울을 견디고 있는 숲의 나무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 움츠리고 기꺼이 피폐해진 나무들, 봄이 채 오기 전까지는 어느 것이 성공적으로 살아냈는지 그러지 못했는지 알 수는 없는 것들. 나는 우리가 자꾸 어긋나고 상대를 향한 모멸의 흔적을 남기게 된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고 매기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냥 그것은 시작과 동시에 숙명처럼 가져갈 수 밖에 없었던 슬픔이라고, 그러니까 우리가 덜 사랑하거나 더 사랑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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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1-01-11 1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독후감이 점점 아름다워져요. 이게 다 카페 때문인가... 닻에 대한 열망 파트는 나중에 어디론가 꼭 옮깁시다! 이승우가 글 이렇게 쓴대여.. 수첩에 단상 모아서 소설에 고대로 옮겨버린다고.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표지가 고와요. 마치 빗물처럼 툭툭 떨어져 내린 시작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처럼, 어긋나버린 슬픔도 그래야 한다고 말하는 게 좋네요. 쪼금 살아보니까 내 의지보다는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작은 자녀분 천일 축하드려염 🎉)

반유행열반인 2021-01-11 10:40   좋아요 1 | URL
요즘 댓글이 점점 아름다워지는 것도 카페 때문인가요... ㅋㅋㅋ 독후감에 다 써 먹어버리면 점점 더 소설 못 쓸 거 같아서 원래 독후감은 무미건조똥구멍 같이 썼었는데 요즘은 공력 허비(?)를 여기에 하고 있네요...재활용 나도 할 수 있으까...리바이벌은 잘 못 하는 구만 ㅋㅋㅋ
다른 분 리뷰 보니 표지 흉악하다는 평도 있었나 보더라구요 ㅋㅋㅋ 그냥 받아들이면 맴이 편해지죠. 오래 그걸 못했는데 조금씩 연습중입니다... 꼬맹이 나도 축하해 ㅋㅋㅋ하고 말하고 박수쳐주니 뭔지 모르면서 덩달아 박수치네요 ㅋㅋㅋ

하나 2021-01-11 10:48   좋아요 1 | URL
꼬맹이분도 열반인님도 귀엽네여 ㅋㅋㅋ 표지 흉악하다니.. 10년 전에 이상한 폰트 유행할 때 책을 못 보셨나 ㅋㅋ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에서 바다도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닐 것이다, 라고 쓴 거 보고 ㅋㅋㅋㅋㅋ 그냥 졸라 받아들이는 거구나 생각한 적 있어요. 바다도 받아들이는데 지금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1-11 10:51   좋아요 1 | URL
귀욥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한편으로는 실물 보고 실망하실 날이 많이 걱정이 됩니다...
헤밍웨이 하니까 헤밍웨이도 봐야 할 거 같네요 보다 만 에덴의 정원? 인가 하는 안 유명한 소설이랑 노인과 바다는 애기 때 보고는 또 애기들 보는 판형 하나 사놨는데 하나님 책 잘 판다... 바다 걔는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걸 거 같은데?! 인간이고 물고기고 다 쓸어버려야징 케케 하고 ㅋㅋㅋ못된 심성을 투사하는 나란 새끼..같은 마음이 포세이돈을 만들어냈겠구나 싶어요.

하나 2021-01-11 11:05   좋아요 1 | URL
저는 귀여움 필터 장착한지 오래구요 ㅋㅋㅋㅋ 어쩌면 바다 새끼는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걸 거야, 하고 바다를 원망이라도 할 때가 건강한 걸지도 모르겠어요. 노인과 바다 저도 어릴 때 애기들 책으로 보고 다 커서 봤는데 되게 슬프더라고요 ㅋㅋㅋ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그러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이러면서 낚시줄 드리우고.. 헤밍웨이 많이 아팠던 거 같애...

- 2021-01-11 1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닻.

반유행열반인 2021-01-11 20:14   좋아요 1 | URL
닻닻!!

2021-01-24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4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자책] 노멀 피플
샐리 루니 지음, 김희용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평점 :
판매중지


(스포일러 조금 있습니다...그러고보니 언제부터 신경 쓰고 독후감 썼다고ㅋㅋㅋ새해에는 착하게 살겠습니다.)

-20210108 샐리 루니.

Pulp-Common People
https://youtu.be/yuTMWgOduFM

I wanna live like common people
I wanna do whatever common people do
I wanna sleep with common people
Like you

이 소설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십대 후반부터 이십대 초반까지 푹 빠져 있던 펄프의 노래를 생각했다. 언뜻 비슷한 느낌이지만 다른 의미인 건 알겠다.
자기보다 높은 계층, 계급의 사람에게 넌 결코 네 삶이 네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지 못할 거야(넌 나처럼 밑바닥에서 살지 못해), 하는 비애감만큼이나, 왜 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없을까, 하고 묻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도 슬픈 일일 것 같다.

언젠가 느껴본 듯한 감정에 공명할 수 있는 소설이 마음을 사로잡는 것 같다. 왜 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할까, 왜 남들처럼 살지 못하고 겉돌까, 나는 과연 사랑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 내가 좋아하는 저 아이가 나를 거절하면 나는 살아갈 수 있을까. 나이 먹고 보면 왜 그땐 별것도 아닌 관계와 감정에 목숨 걸었을까 싶은 젊은 날의 어둠이지만, 그때 그 무렵에는 관심 받고 사랑 받는 일이야 말로 삶의 의미이자 정수가 아니었을까 싶다.
분명 다른 세대(코넬과 메리엔이 고등학교 마지막 시절을 보낼 무렵 나는 첫 아이를 낳아 로맨스와 거리가 먼 삶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다른 공간(더블린과 서울의 거리는 8946km…)을 살았지만, 두 사람이 마주하고 그리워하고 닿을 때 기뻐하는 마음, 사랑하지만 함께 하지 못하고 서로의 언어와 비언어적 신호를 오해하는 상황을 알 것 같았다. 언제 어디선가 겪은 기분이 자꾸 들었다.

소설은 두 사람이 처음 섹스한 이후 몇 년 만에야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 받으며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 끝이나서, 읽는 나는 그들이 얼마나 더 오래 함께 할지 알 수 없다. 모든 관계가 ever after하지 않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산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이 마음에 최선을 다 할 뿐. 끝내 너무 슬퍼하지 않길 다짐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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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1-01-08 23: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리뷰의 마지막 문단이 너무나도 다정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이번주엔 정말 피곤해서 책을 한쪽도 못읽었는데 반님 리뷰를 읽으면 자꾸만 책을 읽고싶어져요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1-09 05:47   좋아요 1 | URL
눈폭탄에다 강추위까지 고단한 파이버님 한 주 느껴지는 듯... 주말에는 한 쪽 한 쪽 넘겨가며 평온한 시간 잠시라도 꼭 누리시길 진심 기원합니다! 그게 우리 쉬는 방법이니까!!! ㅋㅋㅋ

하나 2021-01-09 00: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에는 메리앤한테 기시감 느꼈는데요. 권위 의식 같은 거에 거부감 보이고 차라리 혼자 책을 읽으리~ 하는 부분에서요. 나중에는 메리앤에게 동질감을 느끼지만 주변 눈치보느라 솔직하지 못해서 자꾸 메리앤을 상처 입히는 코넬에게서 기시감을 느꼈어요. 내가 저랬구나.. 막 소름.. 다시는 메리앤을 혼자 두지 않으리. 누가 뭐래도 졸업파티는 꼭 좋아하는 애랑 가자고 너무 늦게 결심하는 38살 9일차 인사드립니다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1-09 05:50   좋아요 3 | URL
둘다 어려가지고 쟤 나 사랑하는 거 맞냐 나 쟤 사랑하는 거 맞냐 의심하느라 사랑할 시간 흘려보낸 거 아까워요...그래도 그런 과정이 있어야 내가 널 사랑하는 건 알 거야. 하고 던질 수 있겠쥬. 스무살에는 시간도 많고 젊으니 조금 저리 망설이고 에둘러가도 괜찮을 거 같은데 서른여덟은
돌직구가 옳습니다. 마, 니 내 좋지, 금 내랑 땐쓰파티 가자! 하고 칵 질러야 됩니다. 이제 남은 절반 만큼 살았기 때문에 서둘러도 됩니다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1-09 09:04   좋아요 4 | URL
아니 그리고 어제 술처먹고 썼더니 막 스포를 처발라났네요 ㅋㅋㅋ 스포 주의 문구라도 달아야 겠다....

하나 2021-01-09 11:22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열반인님 어록집 먼저 나오겠다. 나 새해에 본 것만 벌써 두개자나... “마, 니 내 좋지, 금 내랑 땐쓰파티 가자!” 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1-01-09 1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끝내 너무 슬퍼하지 않기라니.... 지금은 알아요. 사랑이 맺어지든 헤어지든 원래의 그 사랑은 지지고볶는 일상 속에 언젠가는 흩어져 사라질 뿐이라는걸.... 끝내 너무 슬퍼하지않을 마음의 다짐이 필요하죠. ^^

반유행열반인 2021-01-09 15:27   좋아요 1 | URL
네 미리 최선을 다해서 최대한 덜 슬프기로 해요 ㅎㅎㅎ

2021-01-09 2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9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n22598 2021-01-10 01:0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20대 참으로 소비적인 연애질 많이 하면서 넘나 인생 고단하게 살았던것 같아요. 30대는 덜할줄 알았는데, 그냥 정도만 약해졌을뿐이지...보면 더 진상짓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아마 연애할 기회가 적어지다보니..그래진것 같기도 하고 ㅠㅠ ㅋㅋㅋㅋㅋ이런 소설들 보면 먼가 내 연애사 들킨 느낌이 막 들어요 ㅠ 그런데 노멀 피플라고 하네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1-10 07:49   좋아요 2 | URL
솔직히 어브노멀 피플이 어딨어! 싶어요. 소비적인 연애질이 어딨겠어요 그 사랑 덕에 그럭저럭 여기까지 살아왔겠쥬 ㅎㅎㅎㅎ

- 2021-03-21 1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어졌어요 이커플.ㅋㅋㅋㅋㅋㅋㅋ
백퍼 헤어집니다 ㅋㅋㅋㅋㅋㅋ (궁예질)
2011년에 시작한 사랑은 2020년이 되기 삼년전에 아주 성숙한 방식으로 종료됐을 거다.. 제 생각에 메리앤은 성공했습니다. 열라머찐 저널리스트 됏을거고요, 비혼주의자에 페미니스트입니다. 코넬은 어느정도 잘나가는 소설가가 되서 학교에서 강사하고 있을 겁니다 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3-21 10:32   좋아요 1 | URL
뭐 헤어지고 더 잘 맞는 사람을 만나 아니면 홀로 잘 살기만 하면 된다 ㅋㅋㅋ헤어졌다고 단정하기 맴찢이라 맘대로 열린 결말 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2021-03-21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21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21 1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자책]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 - 플라스틱부터 음식물까지 한국형 분리배출 안내서
홍수열 지음 / 슬로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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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7 홍수열.
눈뜨고코베인-새벽의 분리수거

https://m.youtube.com/watch?v=g9KlGl6ihN8

아 나는 몰랐네요
내가 안 타는 물건인 줄은
내가 불연소화합물인 줄은
네가 말해주기 전에는 몰랐네


올초에 이사를 할 예정이라 쟁여두기만 하고 쓰지 않던 많은 소유물을 연초부터 버리기 시작했다. 컴퓨터책상 버릴 때는 옆의 사람과 의사소통 과정에서 사소한 오해로 다투고 눈물바람하다 화해했다.ㅋㅋ 책꽂이 서너 칸 분량의 스티커북과 다 푼 문제집, 발코니에 방치하던 테이블과 공구함과 의자들, 낡은 유아용 소음방지매트(초대형에 두 개나ㅠㅠ), 동생이 고등학교 때 전시회에 썼던 실물 크기의 전신 초상화 판넬, 화분 등등...대형폐기물 수수료만 몇 만원을 썼는데도 아직도 버릴 게 산더미같다…
책도 좀 정리해야 하지 않겠니, 하는 엄마 말씀에는 안 읽은 게 90퍼센트인데? 하면서 거세게 저항했다...ㅋㅋㅋ

예전부터 내가 버린 것들이 어디로 가서 어떻게 처리되는지 궁금했다. 하수로 내려간 물과 오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다시 강으로 가는지도 궁금하다. 어스본코리아에서 나온 플랩북 ‘쓰레기와 재활용’을 아이들에게 사주고 함께 보았다. 온갖 폐기물이 처리되는 방식이 그림으로 간략하게나마 소개되니 좋았다. 그렇지만 외국에서 나온 책인데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되어 있어 아쉬웠다.

서재에서 이 책 리뷰를 보고 흥미를 느꼈는데, 마침 전자도서관 신간에 입고되어 신나서 빌렸다.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법에 대한 책인데, 이걸 어떻게 버리나, 매일 고민하던 문제를 다뤄주어 그런가 재미있었다. 마냥 재미있지만은 않은 게 진짜 쓰레기 문제 어쩌냐, 난 왜 이리 많이 가지고 또 많이 버리는가, 자책도 걱정도 자꾸 하게 되었다. 이번에 쓰레기 버리면서 많이 반성했다. 결국 버리게 될 물건들을 왜 그리도 사 모으고 얻어오고 했을까.
소비를 줄이는 것부터 시작이고, 소비할 때 쓰레기가 최소한으로 나오는 제품을 고르는 노력을 해야겠다. 생수를 사먹지 않고 수돗물 끓여 마신 지 일 년 쯤 되었는데 페트에 담긴 음료수나 탄산수는 여전히 소비 중이다. 페트병 라벨이라도 열심히 분리해 버리자...그리고 금속과 종이와 플라스틱이 마구 섞여 있는 프링글스는 포장재 바뀌기 전에는 절대 사지 않을 테야…

누구나 살면서 소비하고 또 쓰레기를 만들어내니까, 꼭 한 번쯤 보면 좋을 내용이었다. 재활용품 분리배출에 관한 궁금증 대부분을 해결해준다.(이 책 보면 그동안 종량제봉투에 버릴 것을 무용하게 재활용품으로 내놓았구나 하는 자책을 여러 번 하게 된다…) 분리배출이 능사도 아니고 제도나 시설 자체가 미비해서 해결되지 못하는 쓰레기 문제가 상당히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소비자가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수칙은, 내용물은 비우고 오염물질은 씻고 이물질은 잘 떼고 버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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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1-01-07 18: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책 읽어보려고 적어두었는데 찾아봐야 겠어요.^^
쓰레기 생각하다 보니 펜 하나 사는 것도 망설여지더라고요. 볼펜은 어떻게 버리지 싶어서... 그냥 버려야 하는군요.ㅠㅠ

반유행열반인 2021-01-07 19:19   좋아요 2 | URL
조그만 플라스틱도 재활용이 불가능한 건 아닌데 현재로는 작은 크기는 분리와 수거가 불가능인 것 같더라구요. 사람이 일일이 재질별로 손으로 선별한다고...그래서 자그만 건 다 놓쳐서 버린대요ㅠㅠ

하나 2021-01-07 18: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염병과 일회용품은 강력한 동맹을 맺고 있다는 말 요즘 너무 와닿네요. 저도 요즘 쓰레기 버릴 때마다 뭐 대안 없나 고민하게 됩니당. 탄산수 페트병이야 어쩔 수 없다 쳐도 커피 원액은 다른데 받아오나...아까도 고민했어요.. 집에 있는 텀블러 총 동원하면 될 것도 같은데 / 너무 귀차나... 사이에서! 그래도 다음 번에는 *_*

반유행열반인 2021-01-07 19:22   좋아요 3 | URL
유리병 재질이 세척도 소독도 잘 되니 커피 파는 곳에서 재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 만들어주면 좋을 것 같은데! 소비자도 고민이지만 생산자에게 책임지게 하고 조져야 한다는 게 저자의 큰 주장 중 하나였어요 ㅋㅋㅋ

라로 2021-01-07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보관함에 담았어요. 참! 근데 혹시 <킨>이랑 <블러드 차일드> 읽어보셨어요?? 어느 거 먼저 읽어야 하는지 여쭤보고 싶어서요. 반열님은 읽으셨을 거야 ^^;;

반유행열반인 2021-01-07 20:09   좋아요 1 | URL
으악 제가 외국소설은 그렇게 폭넓게 읽지 못한답니다 ㅠㅠ ㅋㅋ 옥타비아 버틀러?였나요? 라로님 마음 가는대로 읽으시고(저라면 아마 페이지 더 적은 쪽을 먼저 볼 거에요 심리적 허들 낮은 ㅋㅋㅋ) 감상 남겨주세요!!!!!

반유행열반인 2021-01-07 20:11   좋아요 0 | URL
심지어 라로님 덕에 레베카 전자책 구매해 놓고는 고이 모셔만 놓고 있는 중이에요 ㅋㅋㅋㅋ

라로 2021-01-07 20:29   좋아요 1 | URL
그럼 <블러드 차일드>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현명한 답이에요. 그렇잖아도 두꺼운 책 겨우 마쳤는뎅.ㅋㅋ
글고 <레베카> 얼렁 읽으세요. 처음 잡기가 힘들지 잡으면 금방이에요오~~~.ㅋ

syo 2021-01-07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버리는 일로 싸움 나는 건 되게 다반사입니다. 저도 그런 경험 많거든요. 주로 저는 버리자 버려라 쪽이었고, 우리 엄마나 박곰돌은 그것에 저항하다가 거의 울기 직전까지 가는..... 🐕 새끼 인증인가요....

반유행열반인 2021-01-07 21:02   좋아요 0 | URL
그것보다는 컴퓨터의 위치를 가지고 옥신각신 해 버렸어요 ㅋㅋㅋ결국 늘 제 뜻이 관철되지만서도...
 
[전자책] 지킬 박사와 하이드 펭귄클래식 3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박찬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12월
평점 :
판매중지


-20210107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작년에 큰꼬맹이가 어린이판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보고는 재미있다며 이런저런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나도 읽었다. 전자책 기록을 보니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9월에 읽었는데 내내 묵히다 해가 바뀌고 나서야 함께 실린 다른 단편들도 마저 보았다.

지킬과 하이드가 언급될 때면 인간의 이중성이라는 말이 꼭 따라 붙는다. 스티븐슨이 해당 소설과 작가 노트 비슷한 ’꿈에 관하여’ 라는 글에서 그 말을 그대로 제시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겨우 이중성이라는 말로 인간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다. 선-악 대립구도에 너무 함몰된 건 아닌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다중 인격에 관한 영화나 소설도 제법 많은 것 같다. 제일 열광하고 봤던 건 영화 ‘파이트클럽’이었다.

어쨌거나 이런 이야기들 덕에 우리가 쉽게 빠지는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가르기와 규정하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짧다하기도 길다하기도 애매하게 사는 동안 그나마 깨달은 점은 어디에도 그렇게 라벨 하나로 규정될 수 있는 인간은 없다는 사실이다. 그 사람은 아마도 너에게만 ‘좋은 사람’일 수 있다. 나에게는 한없이 모진 사람일 수도...반대로 다수가 ’나쁜 사람’이라 손가락질하는 인간조차 누군가는 그의 선의의 순간만을 포착하고(혹은 호의의 혜택만을 누린 덕에) 다른 판단을 내릴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간의 자아정체성, 단일한 자아의 어떤 특성을 파악하는 데 골몰하지만 사실 인간이란 그렇게 단순하게 알아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부쩍든다. 겹겹이 다층적인 일화와 삽화와 경험과 행동과 말이 쌓여 만들어진 어떤 덩어리를 일부나마 감지한, 또다른 그런 덩어리인 누군가가 판단의 언어를 들이댈 뿐이다.

물론 남을 해치거나 고통을 주며 기쁨을 누리거나 이득을 취하는 이들은 확실히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스티븐슨의 소설에 나오는 하이드, 맥팔레인(시체도둑 작중 인물)은 그런 의미에서 악한의 원형에 가깝다. 그러나 하이드를 이끌어낸 원인이자 창조자인 지킬, 맥팔레인의 시체장사에 공범이 된 페츠 같은 사람은 어떨까? 평범하다 일컬어지는 사람 대부분 이들과 비슷하다. 자신의 부끄러움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워 잘못된 선택을 하고, 약점을 잡히고, 번민하고, 거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망가지곤 한다.

끝없이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지 고민하고 절제하고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켜가려고 해도 어느 순간 남에게 모진 짓을 하고 마는 사람들을 끝없이 본다. 유명한 사람들 중에도 있고 지인 중에도 있고 나도 가끔 그런 꼬라지를 한다. 하물며 동물적 본성, 자신의 안위와 공포의 회피에 압도되어 사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스티븐슨은 사람의 그런 짐승성을 대단히 예리하게 포착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짐승은 짐승인데 또 완전히 짐승은 아닌, 더 나은 다른 존재가 되려는 인간의 고민이 재미있고 섬뜩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나름의 합리화가 성공해 개연성을 갖추면 백 년 후에도 여전히 읽히는 책이 되는 거지.


+밑줄긋기
-안개는 여전히 흠뻑 젖은 도시 위로 날개를 활짝 펼치며 내려앉아 있었고 가로등은 붉은 석류석처럼 빛났다. 가라앉은 스모그에 뒤덮이고 짓눌리면서도 도시의 삶은 계속 굴러갔다. 큰길을 따라 강한 바람이 울고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방 안은 불빛으로 아늑했다. 와인은 신맛이 오래전에 사라진 잘 숙성된 상태였고, 황제의 색이라는 와인의 빛깔도 스테인드글라스의 색깔이 점점 깊어지듯 세월과 함께 부드러워져 있었다. 언덕 비탈의 포도밭, 따가운 가을 오후의 붉은빛이 마침내 자유로이 풀려나 런던의 안개를 흩어지게 할 참이었다.

-쾌락은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만, 고고한 자긍심으로 대중들 앞에서 철저하게 근엄한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오만한 욕망을 가진 내게 쾌락은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욕망을 감추었다. 그런데 되돌아볼 수 있는 세월이 되어 스스로를 돌아보고 세상에서의 내 성취와 지위를 평가해 보니, 이미 나는 상당히 이중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죄의식을 가지고 있는 부조리를 오히려 과시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스스로 세운 고귀한 가치관에 따라 판단했고 거의 병적인 수치심으로 내 부조리를 감추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나 자신을 형성해 왔으며, 내 안에서 인간의 이중성을 나누고 결합시키는 선과 악이라는 두 영역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깊은 고랑을 파서 철저하게 분리시킨 것은, 내가 타락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내가 지향하는 바가 매우 엄격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했다. 만약 각각의 본성을 별개의 개체에 담을 수 있다면, 참을 수 없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사는 일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부조리한 존재는 그의 고결한 쌍둥이의 열망과 자책으로부터 해방되어 그만의 길을 가고, 정의로운 존재는 흔들림 없이 확고하게 높은 곳을 향한 그의 길을 가면 될 것이다. 그는 선행을 하는 가운데 기쁨을 느낄 것이며, 더 이상 이질적인 악마가 행하는 불명예 탓에 괴로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들 모순되는 한 쌍이 함께 묶였다는 것은, 고뇌하는 의식이라는 자궁 속에 이렇게 극과 극인 쌍둥이가 계속 갈등하며 함께 지내야 한다는 것은 인류가 받은 저주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들 둘을 분리할 수 있을까?

-우리 인간은 인생의 불운과 고난을 영원히 어깨에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것, 그 짐을 던져버리려고 시도하면 그것이 더욱 낯설고 더욱 끔찍한 무게로 되돌아와 우리를 짓누른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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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1-01-07 18: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신형철이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그나저나 큰 코맹이분... ㅋㅋㅋㅋ 알라딘 마을 미래의 인재가 될 거 같은 싹이 보이네여... 엄마도 읽게 하다니!

반유행열반인 2021-01-07 19:18   좋아요 2 | URL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들으니 묘하게 위로가 되요. 나만 나쁜 사람이 아니었구나 하고 ㅋㅋㅋ큰꼬맹이가 작년에 아마 저보다 더 읽은 것으로 압니다 ㅋㅋㅋ

syo 2021-01-07 2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소설의 입장에서는 크게 어쩔 수 없는 한계지점일 수도 있겠다 싶어요.

인간이 누구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라 수십 가지 정체성의 조합이라서, 사실 지금껏 모든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처음부터 수십 가지 조합을 갖춘 현실적 인간이었는데도 작품 분량, 작가의 표현력, 독자의 독해력 등에서 유발되는 한계 때문에 평면적 등장인물로 보이거나 기껏해야 두 개짜리 정체성을 가진 인물로 보였을 수도 있다고 우겨버리면 그 주장을 부인하기도 어렵겠어요.

반유행열반인 2021-01-07 21:10   좋아요 0 | URL
수십 가지도 적고 그 정도도 그냥 유형화된 거고 어쩌면 분류 불가능한 걸 그냥 설명하고 싶어서 엠비티아이니 애니어그램이니 심리테스트니 하는 거겠죠 ㅋㅋㅋ사람은 이해하기 쉬운 거랑 단순화하는 걸 좋아하니까요 그편이 인식에 에너지가 덜 들고 ㅋㅋ
 
[전자책] 도어
서보 머그더 지음, 김보국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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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4 서보 머그더.

새벽에 눈이 내린 날이었다. 아침까지 추웠고 출근길이 미끄러울까 걱정이 되었다. 바깥으로 나섰을 때 걱정과 달리 내 발이 닫는 곳마다 비로 그린 지그재그 무늬로 눈이 쓸려 있었다. 길이 아닌 화단, 나무, 세워둔 차 위는 아직도 새하얬다. 단지 안은 경비 아저씨들이 부지런히 쓸었겠지만, 밖으로 나가는 육교는 내린 눈이 얼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가로지르는 육교 위, 그리고 건너편 내려가는 계단까지 눈이 모두 치워져있었다.
누군지 모를 눈을 치워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 차는 아침이었다. 문득 나는 나중에 할 일이 없어지면 집 주변의 눈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며칠 지나고 보니 왜 나중에인가, 싶었다. 지금 하지 않으면 결국 잊어버리고 나중에도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할 것 같다. 감사와 따뜻함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가, 결국 나중으로 미루는 나는 비겁하고 나약하다.

눈이 오고 얼마 후 이 책을 읽으며 책 속 공동주택 관리인이자 화자의 집안일을 돕는 에메렌츠가 밤이든 새벽이든 이웃의 눈을 쓸어주는 장면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볼 뿐 한 번도 빗자루 들고 함께 눈을 쓸지 않은 화자의 모습은, 나를 닮았다. 읽는 내내 작가인 화자가 굉장히 꼴보기 싫었는데 그 이유를 뒤늦게 알았다. 제일 나쁜 부분들만 나 같아서 그랬다. 에메렌츠에게 오롯이 기대고 있지만, 그에 대해 궁금하지만 직접 다가서고 묻는 대신 뒷문이나 옆문을 곁눈질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그를 자기 방식대로 책을 읽게 만들려고 시도하거나, 텔레비전 볼 시간도 없는데 텔레비전 선물하면 좋아할 거라고 믿거나, 교회에 함께 나갔으면 하고 바라고, 그의 호의와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그를 받아들이는 대신 화를 내고 삐지고 의심한다. 으으으, 그게 다 나였어ㅋㅋㅋㅋ
한편, 권위와 권력과 종교와 남의 도움을 거부하고 혼자 서겠다고 고집부리는 에메렌츠의 개샹마웨 하는 반골 기질을 보며 저것도 또 나야ㅋㅋㅋ했다. 다만 에메렌츠는 자기 자신만 일으키고 챙기는 대신, 온 마을 온 세상 어려운 사람을 다 돌보는 이였다. 한 명이 한다고 믿기지 않을 에너지와 체력, 거의 고행과 극기에 가까운 일에 대한 집요함. 그런 모습은 사실 익숙해서 더 슬펐다. 돌아가신 할머니, 구십이 훌쩍 넘은 외할머니, 우리 엄마가 그랬지. 지금도 그렇지. 여럿의 삶을 유지하고 생활을 쾌적하게 하기 위해 끝없이 음식을 만들고 청소하고 쓰레기를 치우고 아픈 이를 돌보았지. 그런데도 철딱서니 없는 자손들은 그들을 비참한 순간에 내버려두고 유다처럼 배신 때리고 아픈 말을 쏟아 놓곤 했다. 새삼 너무 슬프고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이 책의 존재는 알았었는데 읽을 마음은 없었다. 그러다가 읽게 된 건 오은이 진행한 황정은 작가 인터뷰를 우연히 본 이후였다. 황정은 작가가 지난 해 읽은 책 두 권을 꼽았는데 하나는 이주혜의 ‘자두’, 또 하나는 바로 이 책이었다. 읽고나서 일 년에 한 두 번 하던 육식마저 끊었다고 해서 작가가 그런 마음을 먹게 만든 부분이 정말 궁금했다. 짐작컨대 비올라에 얽힌 에메렌츠의 어린 시절 이야기일 것 같다. 인상적이고 잔혹하고 슬픈 삽화이긴 했지만 나는 그 정도로 큰 마음을 먹지는 않았다. 같은 책을 읽어도 누군가는 그렇게 결심하고 달라지는데, 그만큼 섬세한 감수성이 있는데, 나는 아직 멀었다.

작가인 화자에게 에메렌츠는 그의 작업과 예술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듯 하면서도 거짓된 무언가, 그 무용함에 대해 뼈 때리는 말을 자주 남긴다. 에메렌츠가 돌봐주지 않으면 작가는 생활을 유지할 수도, 창작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도 없다.
고용주와 고용인 관계에 대해 생각하면, 에메렌츠가 완전 을이 아니라 자기 주관과 의지를 가지고, 제 고집대로 일하는 것처럼 작가가 상황을 디테일하게 설명하고 묘사하려고 애쓰고는 있지만, 관계와 신분의 한계 같은 게 느껴졌다. 결국 화자가 에메렌츠로부터 불편하고 무례하게 느끼는 부분은 에메렌츠가 자기 생활에 훅 들어오는 것에 대한 불쾌감도 있겠지만, 가사일을 명한 자와 돈을 받고 그 일을 행하는 자 사이의 상하 관계가 개입되는 부분도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존에 읽었던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나 손보미의 ‘가정 교사’ 같은 글도 읽는 중에 조금씩 생각났다. 결국 먹물들은 손에 물 묻히고 몸 쓰는 위치보다는 누군가의 육체적 조력에 기대는 입장인 경우가 많고, 그래서 화자도 그렇게 고용주 입장에 서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일해주는 사람에게 기대고, 그가 안쓰럽고, 고맙고, 그래도 친밀하게 느껴지고, 고용인을 대리 엄마처럼 여기게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에메렌츠의 입장에서 글을 풀어갔다면 화자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진행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하고 다정한 순간도 있겠지만 결국은 남이지. 소모되고 착취되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내패대기치고 자기 가족들끼리만 뭉치는 거지. 흠 이건 너무 나갔을까. 엄마가 몇 년 간 남의 아기 보는 일을 하셨었는데 오래 좋은 분들 아이를 돌봤지만 계약이 끝나면 결국 남이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시니컬한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런 관점이라 그런지 일하는 사람의 위치에서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던 루시아 벌린의 ‘청소부 매뉴얼’의 등장은 진짜 반가웠다. 정신 없이 바삐 일하는 사람들에게 짐을 더 지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그래도 일하는 사람들이 쓰는 글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누구나 한 60살 까지는 일하다가 남은 생애는 자기가 일하던 이야기 살아온 이야기 써서 건네는 것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면 가능할까. 꿈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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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1-01-04 09: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새해벽두부터 한층 더 따뜻하고 멋진 리뷰로 치고 나가시는 반님, 올해의 반님은 더 크고 더 많이 사랑받겠다 싶어요^-^

반유행열반인 2021-01-04 09:54   좋아요 3 | URL
변변찮은데 좋게 봐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ㅋㅋㅋ

파이버 2021-01-04 14: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반유행열반인님께서 사시는 동네에는 눈이 내렸었군요. 따뜻한 아랫지방에 살때는 눈이 쌓이지 않아 몰랐는데 윗지방으로 올라오니 눈을 제때 쓸지 않으면 빙판길이 되어버리더라구요… 미처 생각치 못했는데 저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겠습니다ㅜㅜ

반유행열반인 2021-01-04 14:37   좋아요 3 | URL
앗 저 눈 온 날은 12월 20며칠 쯤이었어요 ㅋㅋ안 그래도 첫 문장 쓰면서 오늘 눈 온 걸로 혼동드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멀었네요 전 ㅋㅋ 따뜻한 눈 안 오는 동네에 살아보는 것도 제 소망 중 하나입니다 ㅎㅎㅎ

파이버 2021-01-04 14:47   좋아요 2 | URL
아닙니다 제가 잘못 읽었어요ㅎㅎㅎ 이번 주말 눈은 오지 않았어도 엄청 춥더라고요ㅜㅜ 항상 건강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1-04 17:51   좋아요 2 | URL
파이버님도 추위 잘 이겨내시고 건강 조심하세요!!!

하나 2021-01-04 17: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예전에 가게할 때 오지랖 넓게 골목까지 다 눈치우는 사람이었는데요. 앞집 쌀집 할아버지가 삼십년 장사하면서 눈 치우는 건 저 아가씨밖에 못 봤다고 하니까 이상하게 하기 싫어져서 이거는 병이닼ㅋㅋㅋ 이런 기억이 나네요. 새해에는 끝까지 착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1-04 17:50   좋아요 2 | URL
하나님은 이미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었’구나 ㅋㅋㅋ 착해야 할 때만 착한 사람 되어주세요! 예를 들어 저한테나 ㅋㅋㅋ

- 2021-01-06 2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이 책 읽다 말았어요!!!! 띠지에 나온 부분이 인상적이어서 집어 들었던 듯?? 근데 재밌었는 데, 왜 읽다 말았지? 다시 읽어야지~~ 전 에메렌츠가 정말 좋았는데!! (뭔가 받은만큼 돌려주는 본인만의 견고한 선??) 반님같다니 ㅋㅋㅋ 반가워요~~!!

반유행열반인 2021-01-06 22:29   좋아요 2 | URL
저도 에메렌츠 좋은데, 거쳐온 어려움 굴곡 이런 걸 관찰자이자 화자인 작가 아줌마가 호들갑 떨고 놀라워하고 그런 관점이 좀 짜증나더라구요 ㅋㅋㅋ 되게 귀족주의적이라 해야 되나 뭐라해야 하나 먹물이 반인텔리 노동자 보면서 삐지다 경탄하다 하는 구성은 늘 애매하게 읽혀요 ㅋㅋㅋ

- 2021-01-06 22:30   좋아요 2 | URL
맞아요 ㅋㅋㅋ 화자가 짜증나서 읽다 만거 같아 ㅋㅋㅋㅋ 에메렌츠한테 가서 저 아줌마랑 놀지마 퉷퉷 하고 싶었엌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1-06 22:32   좋아요 2 | URL
근데 그게 설마 작가가 의도한 읽기라면 되게 자기비하 자기디스 쩔고 치밀한 구성 아닐까 싶더라구요 ㅋㅋㅋ얘 이거 일부러 이렇게 쓴 거야? 아님 진심이야? 이러고 되게 헷갈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