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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에덴의 동산 : The Garden of Eden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선영 옮김 / 민중출판사 / 2013년 7월
평점 :
-20210912 어니스트 헤밍웨이.
원제 The Garden of Eden
헤밍웨이는 어려서 봤던 노인과 바다 말고는 읽은 작품이 없었다. 작년 여름에 이 책을 전자책으로 사서 보다 말았었는데 얼른 읽어 치우자 하고 다시 펼쳤다. 문득 어쩌다 이 책을 보게 되었는가 되짚어보다가 작가들의 복잡한 연애사를 다룬 ‘미친 사랑의 서’에서 헤밍웨이 결혼사를 다룬 부분이 있던 게 생각나서 거기서 봤나보다, 하고 다시 그 부분만 찾아 읽었다.
헤밍웨이는 네 여성과 결혼했다. 첫 부인 헤들리 리처드슨과 헤어지고 폴린과 살던 중에 스페인 내전 취재 중 친밀해진 마사 겔혼과 살기 위해 폴린을 매정하게 차버린다. 그래놓고는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전쟁터를 누비는 마사를 질투하며 커리어를 방해하고, 다른 전쟁특파원인 메리 웰시를 꼬셔서 또다시 결혼한다.
다 읽고 나니 내가 읽던 소설에 대한 건 언급조차 없었다…그렇지, 이제 기억나는데 우연히 삼각관계를 다룬 The Garden of Eden을 소개하는 영문으로 된 페이지를 찾았고, 서점을 뒤져보니 이 소설이 헤밍웨이 사후 발표된 유작이라고 하면서 번역해 2002년에 내놓은 걸 찾았었다. Garden이 왜 정원이 아닌 동산으로 번역되었는지는 갸웃했지만. 어쨌거나 다시 읽다보니…
미처 다 못 읽고 내팽개친 이유를 다시금 새기게 되었다. 번역된 문장이 진짜 엉망진창이었다. 번역기 돌려도 이거 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대화체로 죽 이어지는데 남자와 여자 대화 구분하는 게 어조가 아니라 여자는 다 존대말 쓰고, 그러다가 갑자기 반말 툭 튀어나오면 읽다가 헷갈려 버리고 ㅋㅋㅋ 으악 역자 서문에도 자기 부족한 번역 언급하던 번역자여…이 정도면 진짜 책으로 내면 안 되는 거 아닐까요… 그래도 결말이 궁금해서 꾸역꾸역 읽었다.
작가인 데이비드와 그의 부인 캐더린은 스페인과 프랑스를 여행한다. 캐더린은 자유분방하고 제멋대로인데다 젠더정체성이나 성적지향도 오락가락 하는 중인 것처럼 보인다. 머리를 아주 짧게 자르고 은발로 염색하고, 데이비드도 미용실로 데려가 자신의 머리모양과 똑같이 만든다. 그리고 여행 중 우연히 마주친 마리타란 여성을 데려와 데이비드에게 선물 안기듯 자꾸만 떠민다. 처음엔 뭐하는 짓이냐고 역정내던 데이비드도 자신의 소설을 이해해주는 마리타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캐더린도 자꾸만 마리타랑 잘해보라고 부추긴다. 그러다가 캐더린이 너 나랑 같이 한 여행에 관한 에세이나 써, 하면서 데이비드가 힘들게 쓴 소설들을 다 불태워버리고 떠나자 데이비드는 기다렸다는 듯 마리타와 밤을 보내고 새로운 관계에 만족한 듯 불태워진 소설을 다시 재생한다.
처음에는 캐더린이 진짜 자기 멋대로네, 싶었지만 중간에 헤밍웨이의 연애사를 훑고 오니 이 인간, 아예 소설 속에서 자기 판타지를 다 실현해 놓았구나 싶었다. 한 결혼 생활이 소진될 무렵 부인이 알아서 다른 여자 데려다 놓고 미워할 구실(목숨 걸고 쓴 소중한 원고를 폄하하고, 아버지를 욕하고, 심지어 아버지에 관해 쓴 소설을 불태우고) 만들어 놓고 자기는 멀리 홀로 휙 떠나버리는 장면이라니, 그게 부인들한테 바랐던 바인가… 하여간에 글 잘쓰는 새끼 치고 온건한 애정관 가진 인간은 참 드물구나…슬프다 인생이여…싶었다.
거지같은 번역문 중에서도 그래도 데이비드가 써나가는 소설 속의 소설, 아프리카에 살던 어린 날 멍뭉이 키보랑 밤에 나갔다가 큰 상아를 지닌 코끼리를 발견하고 아빠랑 쥬마 아저씨에게 말했다가 그 코끼리를 사냥당하게 만들었던 슬픈 일에 관해 쓴 이야기가 인상깊었다. 바깥 이야기는 전에 읽은 뒤라스의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이나 ‘여름 밤 열시 반’이랑 꽤나 비슷한 느낌이었다. 연인 또는 부부가 자동차로 유럽 여행 다니면서 호텔에서 밥 먹고, 술 마시고, 수영하고, 반복. 그와중에 연애 사건. 그렇게 여유적적 지중해 햇볕 즐기면서 아침엔 글쓰고 나머지 시간에는 술먹고 수영하고 혼란한 감정으로 티격태격하는 게 마냥 한가로워 보여 배부른 자식들, 행복한 줄 모르고, 하며 부럽기도 했다. 그치만 나도 한가롭게 책 읽고 이거저거 먹고 독후감 쓰는 주말 보냈잖아? 실컷 사랑하는 날들 보내고 있잖아? 행복한 줄 알자.
+밑줄 긋기
-“그래, 나는 당신을 파멸시키고 말 거야. 그러면 아마 사람들이 방 바깥 건물 벽에다 기념패를 붙여 놓을 걸. 한밤중에 일어나서 당신이 듣지도 상상하지도 못한 일을 저지를 작정이야. 어제 밤에도 그러려고 생각은 했지만 너무 졸려서…….”
-“우리가 뭘 천천히 하기 위해서는 그 길 밖에 없어. 그걸 몰랐어? 물론 알고 있었겠지. 지금, 지금처럼. 마치 우리 심장이 함께 두근거리는 것처럼 말야. 그래도 모르겠어? 마찬가지야. 그것 밖에 다른 별 것은 없어. 하지만 결국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야. 그렇게도 귀엽고, 그렇게도 좋고, 그렇게도 좋고, 귀엽고…….”
-한참 만에 그는 만 쪽으로 다시 헤엄쳐 와 검붉은 바위 위로 기어올랐다. 그곳에 앉아 그는 햇볕을 쬐며 바다 속을 들여다보았다. 홀로 있다는 것과 그날의 일을 마쳤다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그러자 일을 끝낸 후면 언제나 느끼는 외로움이 꿈틀거리기 시작해서, 그는 그 여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어느 한 사람을 따로 그리워한 것이 아니라, 다만 자기가 그들을 얼마나 그리워하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하여 외로움을 느끼는 동시에 두 사람 모두에 대하여 외로움을 느꼈다. 그리고 두 사람을 다 원했다.
바위 위에서 햇볕을 쬐고 바닷물을 들여다보며 그는 그 두 사람을 동시에 원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두 사람 중 어느 누구하고의 일도 좋게 끝낼 수 없고 또 너 자신도 이젠 좋게 끝낼 수 없어, 하고 그는 스스로를 타일렀다. 하지만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탓하려고 하지도 말고, 누구의 잘못인지 가리려고 하지도 마라. 때가 되면 다 가려질 것이고 그것은 네가 할 일이 아니니까.
-캐더린은 방에 있지 않았으며, 아직도 아프리카야말로 빈틈없이 현실이고 그가 지금 있는 이곳에서의 모든 것들은 사실 실재가 아니고 허구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테라스 쪽으로 다시 되돌아가서 마리타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캐더린 봤어?
어디론가 가 버렸어요. 꼭 돌아오겠다고, 그 말을 전해 달라고 했어요.
갑자기 이것은 허구가 아니었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
모르겠어요. 자전거를 타고 갔어요.
큰일 났는데. 우리가 뷔가티를 산 후에는 한번도 자전거를 탄 적이 없었잖아.
그녀도 그렇게 말했어요. 다시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고요. 아침은 잘 보냈어요?
모르겠어. 내일이 되면 알 수 있겠지.
-쥬마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절룩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찢겨진 이마가 오른쪽 눈을 덮었고 코뼈는 드러나 있었고 귀 하나는 찢겨진 채로 말없이 데이비드에게 총을 낚아채 총구를 거의 코끼리 콧구멍까지 쑤셔 넣고는 성이 난 듯 방아쇠를 연거푸 당겼다.
첫발을 맞자 코끼리 눈은 번쩍 떴다가는 다시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어 양 귀에서 흘러내리는 새빨간 피는 잿빛으로 주름진 가죽을 적셨다. 그때의 그 피는 전과 다른 것이었고 데이비드는 그 피가 그 전과 다르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모든 위풍, 모든 장엄, 모든 아름다움은 그 코끼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코끼리는 이제 단지 하나의 쭈글쭈글하고 거대한 덩어리에 불과했다.
-“내 생의 전성기를 이 사람한테 줬다고는 말할 수 없어. 왜냐하면 데이비드와 함께 산 것은 겨우 3월부터니까. 그러나 내 생에서 최고의 몇 달간을 이 사람에게 준 건 틀림없어. 어쨌든 내게는 가장 재미있게 보낸 몇 달이야. 그렇지만 누구든 저 남자가 교양이 없고, 서평 기사들이 가득 찬 휴지통에서 수음을 한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기겁을 하겠지. 어떤 여자라도 낙담할 거 아냐. 솔직히 난 그것을 참고 견딜 수 없어.”
-여름이 지나가 버리고 난 뒤 하루하루의 따스한 날들은 여분의 것이니 이 좋은 날을 낭비해선 안 되겠지. 보람 있게, 될 수 있는 한 아껴야 한다고 데이비드는 생각했다.
++이 소설 소개 받은 가디언 기사도 다시 찾아냈다. 이거 보고 헨리와 준 (아나이스 닌)도 샀는데 이것 역시 (더럽게) 재미없어서 읽다 말았는데 역시…조만간 읽어치워야지…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09/jun/23/ewan-morrison-menage-tro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