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대하여 - 박상영 연작소설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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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1 박상영.

요즘 애들-김남준
보름 이후의 사랑-고찬호
우리가 되는 순간-유한영과 황은채
믿음에 대하여-임철우

네 소설을 묶은 연작소설집. 작품 시작하는 각각마다 제목과 이름이 써 있다. 소설의 주인물 이름을 저렇게 해놓으니 꼭 여러 소설가 작품 묶은 것처럼 착각이 들어서 웃겼다. 심지어 임철우는 진짜 소설가 이름이잖아…

이전에 읽은 김금희 소설이 연작이었고, 이 소설에도 방송국, 잡지사, 마케팅 부서 직원들이 나와서 처음 읽을 땐 둘이 겹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나는 십 대까지만 해도 내가 앞으로 굉장히 창의적인 일을 하고 살 줄만 알았다. 지망도 언론학부, 광고홍보학과, 신문방송학과 같은 곳이었다. 수시로 1차 붙고 안 간 0대는 언론학부, 정시로 붙은 0대도 신문방송학과가 있는 사회과학계열이었지. 그렇지만 대학 간판만 보고 서열 제일 높다는 사범대에 갔고 그렇게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나중에 언론이나 광고에 대해 질색하게 된 걸 생각하면, 그리고 그 분야들이 얼마나 다른 사람과 협업이 중요한지, 수많은 사람들과 상대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그리로 안 빠지길 다행이지 싶다.
사실 나는 언제 어디를 갔더라도 만족하지 못하고 끝없이 새로운 길을 궁리했을 것이다. 스무살 이후 거처를 옮긴 게 최소 열한 번인 걸 돌아보면. 나는 머무를 줄 모르는 사람이다. 뿌리가 없이 흘러내린다. 거기에다 나는 믿음이 없다. 어느 것도 확신하지 못한다. 그런 부분에서 이 소설집의 임철우랑 가장 비슷했다. 자기 자신조차 믿지 못하는 사람. 임철우는 사진을 찍는 커리어로 잘 나가다가가 연인의 죽음과 그에 관한 거짓을 알게 되고는 일을 집어치우고, 이태원에서 이자카야를 하다가 코로나 때문에 폭망하고, 다시 사진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그래도 한 번은 그만뒀잖아? 나는 아주 긴 그만두기를 하는 중이다. 그 수단이 수능이 될 줄은 몰랐네...

김남준과 황은채가 인턴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 보면서 많이 슬펐다. 내가 신규이던 시절에는 실컷 부려먹더라도 이것저것 가르쳐주고 같이 힘들게 일하던 어른들이 있어서 그나마 견딜만 했던 것 같다. 직장이 힘들어진 데에는 그렇게 새로 온 사람들 적응을 돕고 처음 일하는 젊은이들 많이 가르쳐줘야 할 어른들이 사라지고, 자꾸만 자리를 비우고, 자기 일이 아니라고 발뺌하고, 오히려 자기가 할 일을 물정 모르는 새 사람에게 떠넘기고, 잘 알면서도 물어오는 것들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고, 회피하고, 그러면서 잘 못한다고 혼내고 호통치고, 그런 일들이 자꾸만 반복되어서 였다. 내가 그걸 겪는 일도, 그런 일을 겪는 어린 사람들을 보는 일도 고통이었다. 아직 내 위치에서 누굴 돕거나 가르칠 짬도 안 되고, 내가 자라서 저런 거지 같은 어른이 되지 않을 자신도 점점 없어지고, 결국 환멸만이 남았다. 가까운 사람들은 지금 내가 하는 공부가 망해도 돌아갈 곳이 남았으니 최악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나는 밤마다 제발 돌아가지 않게 해주세요, 내 삶을 바꾸게 해주세요, 하고 비는 걸요. 이제는 무엇이 되고 싶다, 무엇을 이루고 싶다, 보다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가 가장 큰 원동력이다. 이러다 정말 돌아가게 되면 진짜 큰일 났다ㅋㅋㅋ 내 미래의 가능형에 관해 너무 비관을 하고 욕을 많이 해놨어ㅋㅋㅋㅋㅋ

예전 어른들이 육이오 때 말야- 아이엠에프 때 말야- 하듯 코로나 유행 시기를 회자하고, 이 병을 겪지 않은 아이들이 뭐래 딱딱- 하는 그런 날이 오면, 그래서 우리가 지나온 시간이 가물가물해지면 나는 이 소설을 다시 펼칠 것이다. 몇십명이 걸리면 엄청난 공포이고 혐오이고 배척의 대상이 되던 병이 몇만 몇십만이 되면 그냥 다 그런 것, 원래 그런 것, 그랬던 날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 중 열에 여덟이 게이가 된다면 아마 둘 남은 이성애자들을 핍박하겠지.(열에 하나 했다가 고쳤다. 하나 남으면 이성애 어렵겠다 ㅋㅋㅋㅋㅋ) 시대가 어느 시절인데 아직도 유성생식을 하고 새끼를 까질러서 지구를 파먹는데 일조하냐. 셋 넷이 되려고 하는 저들은 야만이다. 대상만 바꾸었지 사람들은 끝없이 선을 긋고 부려먹고 욕하기를 멈춘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우산 하나를 함께 쓰고 빗물에 첨벙첨벙 빠져가며 걷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끝없이 이어지고 모이고 자리 잡고 쓸려 나가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지탱하는 세상. 믿음이 없는 내가 거기 얹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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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3-02-12 00: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성애자 깨알 챙겨주셨네욬ㅋㅋㅋ 마지막 문장 너무 좋다. 어쩐지 믿음이 느껴져서, 라고 하면 오독이거나 억지일까요? ㅎㅎ 긴 그만두기를 응원할게요.

반유행열반인 2023-02-12 09:20   좋아요 3 | URL
다정한 응원 감사합니다 유수님 ㅎㅎㅎ자꾸 없다 하다보니 사실 믿고 싶다, 믿음을 갖고 싶다, 를 다르게 말하고 있구나 싶기도 했어요. ㅎㅎㅎ나는 차가 없어…나는 여자친구가 없어…이런 거랑 비슷한…ㅋㅋㅋㅋㅋㅋ

Yeagene 2023-02-13 15: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궁금하긴 한데 이전의 박상영 작가 작품 분위기랑 다르다고 해서 망설이는 중입니다.일단 장바구니에 담아두긴 했네요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2-13 19:01   좋아요 1 | URL
소재 탓인지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랑 김금희 크리스마스 타일 살짝 비벼놓은 느낌+퀴어 첨가+적 느낌입니다 ㅎㅎㅎ 젊은 노동자들 이야기랑 세대론이랑 지금 시대 모습 반영하려고 애쓴 느낌이어서 나쁘지 않았어요.

물감 2023-02-14 1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는 머무를 줄 모르는 사람이다. 뿌리가 없이 흘러내린다. 거기에다 나는 믿음이 없다. 어느 것도 확신하지 못한다.]
이 말에 눈물이 핑 도네요. 제 얘기 같아서요.
글 잘 읽었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2-14 16:22   좋아요 1 | URL
물감님 울지 마세요 ㅠㅠ 흘러내리는 확신 없는 사람들이 복수형이어도 세상 잘 돌아가는 거 보면 조금 더 그래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감님!
 
이중 작가 초롱
이미상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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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5 이미상.

Suede-Trash
https://m.youtube.com/watch?v=-PdKGDMhau4

골목에 버려진 진열장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가구 위에, 혹은 안에, 우리는 몸을 붙여 앉았다. 용도 모를 그 네모의 위쪽이 막혀 있어서 집이나 방 같았다. 남자아이는 열일곱 살의 나에게 입을 맞추고 내 웃옷 속으로 찬 손을 넣고 파르르 떨었다. 학원이 끝난 시간인지 어디선가 나와 우루루 지나가던 아이들이 흘깃 시선을 던지다 금세 멀어졌다. 아는 얼굴이 있던 것 같아 부끄러운 건 잠시였다. 피씨 통신에서 만난 아이들은 얼굴과 목소리를 모르고 이름과 아이디로만 아는 상대방이 쉽게 좋아지기도 했다. 글자로 쉼 없이 나와 수다를 떨어주는 상대가 같은 동네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사귀자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다른 여자아이를 좋아하게 되기 전 그 가을의 두 달 남짓이었지만, 휴대전화가 없는 남자아이는 독서실 앞 공중전화로 나를 불렀고, 학교 마치고 저녁 나절 열람실에 잠시 앉았던 나는 의자에 가방만 걸어두고 반갑게 뛰쳐나갔다.
서로의 집에는 가 본 적이 없다. 주로 처음 만난 오락실에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펌프를 하거나 동전 노래방에서 노래를 했다. 단둘이 있고 싶으면 골목길을 마냥 걷거나 통일공원 벤치나 기념비석 둘레에서 입을 맞췄다.
아이들이 함께 할 장소는 거리 밖에 없었다. 공간은 언제나 중요하다. 아이들은 공간을 가질 돈도 법도 자유도 누리지 못한다. 그렇지만 헤어짐이 아쉽던 젊은 아이들이 막상 시간과 체력을 팔아 공유할 공간을 마련하고 나면 몸을 맞대고 눕지 않게 된다. 노동은 서로를 안을 힘을 앗아간다. 보증금이든 매매 금액이든 그렇게나 큰돈을 (빌리든 모으든) 끌어 모으고 나면 아이들은 늙는다. 새로 생긴 아이들이 늙은 등에 매달린다.

탈선의 온상이라는 룸카페가 뉴스에 나왔으니 청소년 금지 구역이 또 하나 늘겠다. 소설 ‘무릎을 붙이고 걸어라’ 속에서 귀띔해 준 차고지 공터에서 기름 묻고 잔돌이 등에 달라붙은 채 뒹굴던 아이들은 폭발한 탱크로리 때문에 불에 타 죽는다. 혹은 추운 날 열린 옥상을 찾아 현관이 열린 남의 아파트 단지를 쏘다닌다. 부모들이 성지순례를 떠나고 집을 비우길 기다린다. 전기 형식이 되려다 회고담 형식이 되고만 이 소설 속에서 카트린엠을 읽어내고 항의하는 독자도 놀라웠는데 그 항의 메일을 소설 말미에 그대로 가져다 붙여 답변을 대신한 소설가의 패기도 놀라웠다.

대학 시절 생긴 지 수십 년 되었다는 노래패 동아리에 가입했다. 민주화 이후의 세상에서 조금 더 불분명해진 싸움의 대상이 무언지 골몰하며 너냐, 너였냐,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국가주의, 가부장제, 학벌사회 다 쑤시고 다니다 보니 4년이 금세 지났다. 홈커밍데이 때 부모뻘 혹은 고모삼촌뻘인 선배들을 만났다. 매일 부르던 민중가요 작곡, 작사가가 눈앞에서 기타 치며 노래하는 걸 보는 일이 신기했고, 항쟁이 끝난 후 학원 원장, 대학교수, 조선일보 기자(그땐 어떻게 거길 가셔서 일하세요 싶었지만…) 혹은 제적되어 근근이 살아가는 사회인이 된 과거 운동권 사람들을 직접 보는 것도 신기했다. 그 사람들이 뭔가 서로 울분과 불만에 차서 으르렁대는 사연이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다. 그것과 별로 상관 없겠지만, 운동권 후일담 내지 블랙코미디 같은 ‘하긴’을 처음 보았을 때 신선한 충격이 있었다. 두 번째 읽으니 처음만큼 그렇게 충격일 이야기는 아니네, 하면서도 여전히 잘 쓴 소설로 담담하게 읽었다. 보미나래의 이야기는 뒤늦게 예언서처럼 읽히기도 했다.(그러니까 의사 면허 취소되면 나랑 같이 수능 보자…늙은 나도 하는데 너도 할 수 이써ㅋㅋㅋㅋㅋㅋ) 연작처럼 이어지는 ‘그친구’에서 김의 말 뿐 아니라 규의 말까지 들을 수 있어서, 거기에서 추방을 추방하고 규가 떠나는 대신 둘이 끝까지 남아 서사의 지배자가 된 결말이 더 좋았다. 순수하고 신성하다고 스스로 우기는 것들을, 스스로 위대해진 것들을 까발리고 우습게 만드는 이야기가 나는 좋다.

82년생 김지영이나 현남오빠에게가 화제가 되고 잘 팔릴 때 솔직히 창피했다. 그것이 촉발한 행동과 연대와 인식 전환은 가치가 있겠지만, 나의, 우리의, 사회 절반의 고충을 대표하겠다고 나온 서사와 문장이 후져서 싫었다. ‘여자가 지하철 할 때’나 ’이중 작가 초롱‘을 읽으면서 내심 이게 시작이었다면, 싶었지만 선후관계가 틀렸다. 어쨌거나 이 소설들은 언제 쓰였든 여러 여성 서사 소설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휩쓸고 지지고 볶고 조금 시들해지고 그런 뒤에 나왔으니 거기에 빚진 것도 있겠다… 그렇지만 사람 욕심 끝이 없고 후진 건 후지다고 해야 해요…

책에 실린 소설들 중 비교적 나중에 발표된 작품들로 갈수록 더 나아지는 느낌이어서 이미상의 다음 나올 소설들이 기대되었다. 책 뒤편의 ’무릎을 붙이고 걸어라‘(현실 독자든 상상 속 독자든 누군가 뭐라고 했고 그게 수긍이 간대도)와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이 꽤 좋았다. 소설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제법 여러 소설에서 반복된다. 수진이 신발 상자 놓고 베란다에서 몰래 소설 쓰는 이야기가 특히 애틋했고 초롱 조롱 하는 건 비슷한 소설을 읽을 때마다 아니 저기 사람들 생각보다 소설가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아…판 안에서나 난리지…싶었다. 여기 소설들이 좋게 읽힐수록 소설이 너무 무섭고 징그럽고 쓰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고 있지 않은데도 쓰기 싫어질 만큼 기를 꺾는 잘 쓴 소설인가… 요즘은 그냥 많이 많이 읽고 싶다. 그렇지만 그날 공부 여덟 아홉 시간 겨우 채우고 자기 전 자투리 시간이 남으면 단편소설 하나 읽을까 말까 처지이고 지금은 그래야 하는 게 맞는 처지… 자꾸자꾸 읽고만 싶은 걸 참으며 그럼 난 뭘 위해 사나, 싶다. 매일 집에만 박혀 있으니 살이 너무 쪄서 이제부턴 일부러 나가서 걷기로 하자, 하면서 나는 왜 사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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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5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05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Falstaff 2023-02-05 17: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은... 모르겠습니다. 근데 열반님 하시는 얘기가 콕콕 들어오는군요.

반유행열반인 2023-02-05 17:41   좋아요 2 | URL
저는 패기있는 작가들을 사랑합니다 ㅎㅎㅎ 골드문트님이 추천하시는 소설들 늘 제 위시리스트이거나 위시리스트가 되거나 하는데 ㅎㅎㅎ제 말 중에는 콕콕할 게 뭐 있나 싶습니다 ㅋㅋㅋㅋㅋㅋ저에게는, 우리에게는, 긴긴밤 함께 할 책이 든든 가득 있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3-02-05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의 체험(?)기랑 suede의 trash 가사랑 완전 매치가 되네요 ㅋ

왜사냐 하건 웃지요? ㅋ

다시 공부시작하셨나보네요ㅜㅜ

걸으시면서 책을 읽으시면 두가지가 해결될수 있을거 같아요~!!

반유행열반인 2023-02-05 18:49   좋아요 2 | URL
제 십대가 좀 트래시(?)했나요!ㅋㅋㅋㅋ지금도 여전합니다… 저 바깥 돌아다니면서는 휴대전화도 잘 못 보는데 새파랑님 읽으며 걷기 능력 보유자이신가요?!?!

새파랑 2023-02-05 20:50   좋아요 1 | URL
그건..

불가능하죠 ㅋ 한번 해보고는 싶은데 미친 x 소리 들을까봐 못하겠습니다 ㅋ

반유행열반인 2023-02-05 22:01   좋아요 1 | URL
저 걸으면서 책 읽는 사람 본 적 있는데 미친 x 소리 여부는 아무래도 얼굴이 결정하지 싶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못된 외모 지상주의네요.

라로 2023-02-06 1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음악 들으니까 곧 출간 될 브렉 앤더슨 회고록 생각나요. 펀딩 하고 싶었으나 그거 하면 책을 받아야 하는데 이제 배송하는 거 한 려고 했었는데,, 암튼 전자책으로 나오겠죠?
그건 그렇고 저도 이하동문이에요...

반유행열반인 2023-02-06 16:01   좋아요 0 | URL
아마존엔 진작 영어판(?)있더라고요. 저도 펀딩 잠시 망설이다 가난한 유년 이런 거 위주로 우리가 아는 브렛 되기 전 이야기 위주라고 크게 흥미있는 내용 없다고 (아마존 외쿡인들 리뷰에서?) 그래서 그냥 접었어요. 제목만 봐도 뭔가 암담함 ㅋㅋㅋ 뭐에 동문하셨어요 ㅋㅋㅋ여기에는 나 예쁘다 이런 말 없는데요 ㅋㅋㅋㅋ

Yeagene 2023-02-08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과거 얘기 들으면 가끔 허걱 합니다.이런 얘기까지 하셔도 되나 싶어서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2-08 18:03   좋아요 1 | URL
그냥 있었던 일인데요. ㅎㅎㅎ 막 저한테는 실제로는 없는 언니가 아무말이나 막 하는 저를 이노무 지지배 주책이야 이러고 막 때찌하면서 걱정해주는 느낌이네요 ㅋㅋㅋㅋㅋㅋ

2023-03-08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9 2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eBook] 헤어질 결심 각본
박찬욱 외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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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박찬욱, 정서경.

작년에 극장에 딱 두 번 갔다. 7월 한 번, 11월 한 번.
같은 영화를 보았다. 그 사이 박쥐 소설판도 보고, 전자도서관 줄서 있던 헤어질 결심 각본도 한 달만에 차례가 와서 보았다.
박찬욱 영화를 늘 좋아하긴 했는데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 뭘까 각본 보면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수완이랑 연수 캐릭터가 좋았는데, 들다 해준을 사모하는게 막막 애처롭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해준 싫어하는 사람 여기 별로 안 나온다.
드라마 대사에서 서래가 말을 옮겨오는 과정도 뭔가 재미있었다. 제목 하나는 흰꽃, 하나는 적색경보, 대비도 선명하다. 독한 것, 당신 만날 방법이 오로지 이거밖에 없는데 어떡해요, 같은 말들.
엇갈린 사랑. 써 놓으면 너무 간결하고 진부한데 그런 진부한 주제로 영화 한 편 지어 수많은 사람들 호리는 솜씨도 참 대단하다ㅎㅎㅎ탕웨이도 박해일도 여럿 홀릴 만한데 나는 이번에는 탕웨이 쪽이 매력있고 좋았다. 우직한 경찰보단 깜찍한 살인자…

+밑줄긋기
-……다시 남쪽으로 삼백 리를 가면 호미산이라는 곳인데
이 산은 사람이 보지 않을 땐 걸어 다니다가
사람이 알아채면 그대로 주저앉아 평범한 산이 된다.

-이 산은 너무 조용해서 나무 자라는 소리가 들리는데
사람이 이 나무들 사이로 들어가면 사라져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你说爱我的瞬间,你的爱就结束了。
你的爱结束的瞬间,我的爱就开始了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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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3-01-30 2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감독님은 김신영 배우 한테 눈물 나게 감사 했다고 합니다. 두 남녀 주인공을 빛나게 해주었던 맛깔 연기 조연 배우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1-31 00:10   좋아요 2 | URL
네 김신영 나온대서 저도 편견이 있는지 걱정했는데 캐릭터 잘 맞고 연기도 좋았어요ㅎㅎ

라로 2023-01-31 06: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남편이랑 이 영화 봤는데 우리 둘 다 너무 좋아했어요!! 다시 보고 싶은데 저희가 간 날 후 며칠 안되어 영화를 내려서 안타까왔어요. 저도 이 각본집 샀는데 읽어야겠어요!! 당장!😅😅😅

라로 2023-01-31 06:29   좋아요 2 | URL
일 끝나고.

반유행열반인 2023-02-02 18:46   좋아요 1 | URL
그날 일 끝나고 보셨나 궁금해요 ㅎㅎ영화의 물성 소유 욕구(?)가 디브이디 블루레이 이런 걸로 이어지다 이제 그런 매체가 거의 소용없어지니 각본집이 유행인 거 같아요 ㅋㅋㅋ그런데 각본은 한 번 읽거나 안 읽어도 그만일 거 같고 영상으로는 두번 봤어도 아주 나중에라도 다시 보고 싶네요 ㅎㅎㅎ

singri 2023-01-31 0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탕웨이에 한표

반유행열반인 2023-02-02 18:49   좋아요 1 | URL
박찬욱 여주인공 배우 섭외하는 거 보면 뭔가 한결 같은 취향 있어 보여요 ㅋㅋㅋㅋ개상보단 고양이상ㅋㅋㅋㅋ배두나 강혜정 이영애 임수정 김민희 김태리 탕웨이 김신영 뭔가 개성있는데 또 확고한 취향 ㅋㅋㅋ

Yeagene 2023-01-31 1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정말 많은 분들이 극찬하시네요..저도 꼭 볼려고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2-02 18:50   좋아요 1 | URL
영화 취향타기 마련인데 이번엔 좋아하시는 분들이 제법 넓은 범위네요 ㅎㅎㅎㅎ나쁘진 않은데 썩 좋지 않다는 분들도 있긴 하니 ㅎㅎ

파이버 2023-02-04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탕웨이 캐릭터 곰곰이 따져보면 나쁜 일 많이 했는데, 하나도 안 미워보여요. 영화 끝나고도 계속 생각나는 마성의 매력... 저는 뒤늦게 집에서 결제해서 봤는데, 극장에서 볼걸 조금 후회했습니다. 열반인님께서는 극장에서 두 번이나 보셨다니 현명하신 분이셨군요~

반유행열반인 2023-02-04 22:26   좋아요 1 | URL
예쁘고 천진하고 뭔가 사랑스럽게 그려놔서 그렇지 솔직히 근처에서 자꾸 맴돌고 사람 죽어나가고 그러면 마냥 안 미워하긴 쉽지 않을 거예요 ㅋㅋㅋㅋㅋ서울 몇몇 극장은 놀랍게도 아직 상영 드문드문 하는 예술 극장들이 있네요 ㅋㅋㅋㅋ
 
[eBook] 쇼샤 페이지터너스 3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지음, 정영문 옮김 / 빛소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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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7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바르샤바가 배경인 이야기를 읽다 보니 단치히도 몇 번 나왔다. 양철북 영화와 소설을 통해 알게된 지명이지만 독일어로 번역된 그 도시의 이름을 보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김애란 산문집에서 그단스크라는 폴란드어 발음을 알게 된 후로 그렇다. 이디시어와 폴란드어를 섞어 쓰던 이야기 속 유대인들은 단치히, 했을까, 아마도 그단스크, 했겠지, 번역할 때 병기라도 하든가 신경써 주면 좋겠다.
그러니까 서울이 등장하는 소설에 자꾸 케이세이, 하면 빡치지 않을까… 경성 경성해도 이상할 것 같다.

글쓰는 삶, 글로 먹고 사는 삶은 성공 이전에는 언제 어디서나 구차하고, 갑자기 세월을 뛰어넘어 13년 후,로 후일담 전하듯 다 죽었어, 하는 이야기는 살아남은 자가 그 사이를 넋두리로 풀어내든,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든, 할많하않, 하든 뭐 남은 사람이 전하는 이야기 밖에는 들을 길이 없다.

싱어는 그냥 궁금하다가, 아이에게 바보들이 사는 나라 켈름을 먼저 사주었다가, 전자 도서관에 올라왔길래 빌려 보았다. 문득 소설가는, 아주 어릴 적 친하던 친구가 그렇게 어릴 때 이미 죽었더라도 다시 살려내서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전쟁 때 죽어버렸더라도 살아남은 걸로 해서 뒤 이야기를 끌고 나갈 수 있고. 살아남았더라도 죽은 걸로 해서 어떤 감정이든 이끌어낼 수 있을 거고.
내일 세상이 망할 거라는데 여전한 일상을 바라보는 눈길, 마음 같은 건 조금 엿볼 수 있었다. 내가 사는 시대의 대부분의 종말론들은 가짜 예언이었는데, 세계 대전을 겪던 시절 사람들에게는, 일본의 지배를 받고 한국 전쟁을 겪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는 그 종말이 진짜였겠다 싶었다. 그걸 안다고 해도 여지껏 살던 대로 사는 것 말고는 또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겠지 싶기도 했다. 그러니 모조리 조상이 같은 사람들이라는 이유 만으로 지구상에서 말살되어 버릴 위기였던 사람들이 땅을 얻고 나라를 세운 감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이제는 그 사람들이 장벽을 세우고 미사일을 쏘고 있다네. 인간이란 종은 참 답이 없다.

+밑줄 긋기
-그녀는 나를 만날 때마다 결혼을 종교적인 광신주의의 흔적이라고 얘기했다. 어떻게 평생 가는 사랑에 대한 계약에 서명을 할 수 있지? 자본가와 성직자만이 그런 위선적인 제도를 영속화하는 데 몰두할 수 있지. 나는 결코 좌익이었던 적이 없지만 그 점에 있어서만큼은 그녀에게 동의했다. 나는 경험을 통해 현대의 남자들이 가족에 대한 의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하느님을, 목적도 모른 채 만든 자신의 은하계와 무수한 법칙 때문에 오히려 당황하고 있는, 심하게 병든 존재로 생각하지. 이따금 나 자신이 휘갈겨 쓴 글들을 들여다보면 내가 쓰기 시작한 글이 의도와는 전혀 반대가 되고 말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도 해. 우리가 하느님의 이미지에 따라 만들어 졌다면 그분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어.”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나요?”
“누군가가 뭔가에 대해 믿음을 갖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요?”
“자신에 대해 믿음을 가져야 해요. 나 자신에 대해 믿음을 갖지 못하는 것, 그것이 내 비극이에요. 뭔가 좋은 일이 생기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어려움과 불운만을 예견해 모든 것을 망쳐버리죠. 사랑에서나 일에서나 모두 그랬어요.

-언젠가는 모든 사람이 진리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단 하나의 관념이라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거야. 모든 것은 게임이야. 국가주의도, 국제주의도, 종교도, 무신론도, 정신주의도, 물질주의도. 심지어는 자살마저도.

-추악한 진실은 사람들 다수가–특히 젊은이들이–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열정을 갖고 있다는 거야. 그들에게는 핑계나 대의가 필요할 뿐이지. 어떤 때는 종교적인 명분으로, 다른 때는 파시즘을 위해, 또는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그런 일이 저질러지지. 살인을 하고자 하는 그들의 욕구가 너무 커서 살해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능가하는 거야. 이건 발설해서는 안 되는 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이야. 히틀러를 위해 살인을 하고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자들은 상황이 바뀌면 스탈린을 위해서도 똑같은 짓을 할 거야. 사람들이 어떤 멍청한 야망과 광기를 위해서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때는 없었어.

-그의 이름은 콩,
국수는 그녀의 이름,
그들은 금요일에 결혼을 했네
그런데 아무도 오지 않았네

그녀는 내 품으로 파고들며 말했다. “오, 아렐레. 우리가 죽게 된다 하더라도 네 옆에 눕는 건 좋아.”

-그의 말의 핵심은 하느님이 영원히 침묵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그분께 빚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였네. 자네에게서도 언젠가 비슷한 말을 들은 것 같네. 아니면 자네가 모리스의 말을 인용했을 수도 있겠지. 모리스는 진정한 종교는 하느님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 원한을 품는 것이라고 주장했어.

-“고통에 대한 답은 어디에도 없죠. 특히 고통을 당하는 자들에게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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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3-01-29 12: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다 읽으셨군요!! 그러네요,, 소설가들은 정말 좋겠다,,, 반열샘 소설에 대한 생각 버리지 마시길,,, 진짜 반열샘 소설 읽어보고 싶구요.^^;;

반유행열반인 2023-01-29 21:24   좋아요 1 | URL
라로님 감사합니다 ㅎㅎㅎ 저 너무 오랫동안 소설 안 써서 이제 다 잊어버린 것 같아요 ㅋㅋㅋㅋ그래도 얼른 이놈의 입시 공부 끝마치고 다시 이야기 붙들고 있는 나날로 돌아가고도 싶네요…지금은 읽는 것으로 만족,,,

Yeagene 2023-01-29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로 며칠전에 나치가 점령한 폴란드에서의 유대인 사진을 보고 치를 떨었네요;;;;그 이미지가 넘나 선명해서...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1-30 18:31   좋아요 1 | URL
참 사람은 얼마나 나빠질 수 있을까 싶은 일들이 많았죠…
 
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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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7 김금희.

김금희의 신간을 겨울이 오기도 전에 갖춰두기는 했다. 책을 팔기 시작한 시점보다 출간일이 나중이어서 뭐야, 미래에서 온 책이야? 11월 25일 맞추고 싶었나 보다…했다. 가까이 오래 꽂아두었다. 크리스마스 있는 주에는 읽을까, 이브날에라도, 당일에라도, 그렇지만 크리스마스 이브는어째서 연인들 섹스하는 날이 되었나, 하는 말이 싫어 아마도 십 년 이상은 그날만은 피해…의도한 건지 아닌지 가물가물하지만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이 책도 결국 해를 넘겨서야 읽기 시작했다.

그나마 가장 홀리하게 보낸 크리스마스라면 1995년, 5학년일 때였다.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반주법을 익힐 좋은 기회라며 데려간 교회 성가대, 거기에는 나랑 동갑내기인, 나중에 한예종에 가고 독일 유학도 다녀와 피아니스트가 될, 그때부터 그런 재목 기질이 보이던 아이가 있었다. 다른 피아노 학원 원장 선생님인 그 아이 엄마는 아마도, 나랑 성가대 지휘하던 내 피아노 선생님이 좀 미웠겠다, 잘 치지도 못하는 게 왜 우리 아들은 노래를 시키고…했을 것 같다고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심심하면 명곡집의 하바네라를 멋지게 건반 위로 두들기던 통통하고 하얀 아이를 나는 잠시 좋아했다. 나는 정말이지 피아노를 잘 치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때가 변성기였는지, 학교 합창부에서 배운 가성 발성이 영 거슬렸는지, 선생님은 몇 번 노래를 시켜보고 다르게 소리를 낼 수 없겠니, 하다가 피아노 반주를 맡으라고 했다.

사람이 그렇게나 많이 모인 성탄 예배는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실력도 부족하고 칸타타 무대는 이전까지 구경조차 못 해본 나는 역시나 반주를 망쳐서 노래하는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했다. 무대를 내려온 아이들과 선생님은 잘했어, 잘했어, 표정과 말은 따로 놀았지만 몸소 예수님의 박애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봄이 오고 갑자기 못되게 굴기 시작한 하얗고 통통한 피아노 소년은 부활절 계란 껍질을 자꾸만 나에게 던지며 체르니 40번의 3번 치는 주제에(4번이야! 하면 4번 치는 주제에), 하고 놀리는 바람에 더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그 이후로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기대되는 날인 적이 없었고 기독교의 신을 믿기도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신이 있다면 왜 우리 집은 이 모양이죠? 부활절 세수식에서 어느 집사님은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고 물 안에서 손을 꼭 쥐어 주었었는데, 그 따뜻함은 정말 찰나였다. 나의 우주는 언제나 사랑 없는 진공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크리스마스 타일, 크리스마 스타일, 뭐여, 제목만 두고두고 봐도 소설책이 안 끌리는 것이었다… 소설책 첫머리 읽을 때까지도 그랬다. 예능 프로그램 만드는 과정, 방송이 불발되는 에피소드 이런 게 너무 시트콤 같고 작위적이야…하고…

그렇지만 소설 한 편 한 편 읽어갈수록 소설마다 바늘코마냥 하나씩 이어지는 사람들의 이름을 찾는 재미,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재미가 있었다. 새로운 이름 하나 등장할 때마다 이 사람 다음 이야기도 이어질까 하고… 스쳐 지나가는 듯한 사람들 모두에게도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고, 다들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있다고, 참 친절하게도 엮어 놓았다. 타일을 제목에 넣고 싶었을 마음이 이해가 되었는데, 그래도 타일보다는 명멸하는 크리스마스 트리 전구 같은 게 더 어울릴 것 같았다. 가까이에서는 휘휘 감은 전선도 좀 추레하고 불빛 하나하나는 별 감흥이 없지만 멀리서 보면 그것들 모두 모여 번갈아가며 켜지고 꺼지는 게 더 예쁘고 역동적으로 보이니까. 책의 구성이 그랬다. 이야기 하나하나는 조금 아쉬운 것들도 있는데 전체를 관통하는 분위기가 좋았다.

목사 아들 주찬성과 사귀던 시절 눈송이에 이름 붙여 주는 이야기-‘하바나 눈사람 클럽’-랑 반려견 설기를 잃고 오래 애도하는 이야기-‘당신 개 좀 안아봐도 될까요’-가 좋게 읽혔다. 마지막 ‘크리스마스에는’, 은 읽으면서 이 책 전체가 이 이야기로 모이는 느낌이라 좋았는데, 아이참 이 이야기 어디서 읽었는데, 이렇게 좋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어디서 봤어…어느 책이었어…했는데 작가의 말에 소설집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에서 봤지, 하고 친절하게 바로 알려줘서 아…했다. ㅋㅋㅋㅋ 하여간에 금희 언니는… 이런 거 진짜 잘하는 구나…이런 게 연작이지… 그런데 표지 뒤에 박정민 배우가 쓴 추천사는 좀 과잉이다… 왜 이렇게 힘주고 썼어… 금희 언니 책 좋은데 왜scott님말고는 리뷰 올려주는 사람 없지… 내년 크리스마스엔 흥해라… 아니 꼭 그날이 아니어도 그냥 그런 연말의 기분, 옛사랑 생각나고, 잃은 사람이나 동물이 생각나고, 눈 맞고 춥고 그래도 성냥 파는 소녀처럼 성냥 켜고 싶은 사람은 연중 어느 때라도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겨울 책 읽으면 아무 때나 겨울. 매일 크리스마스 책 읽으면 매일매일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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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7 2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17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3-01-18 09: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금희 누님의 찐뺀인 열반인 님입니다~! 저도 읽어보고 싶은데 너무 달달(?)할까봐 피하고 있습니다 ㅋ

반유행열반인 2023-01-19 20:48   좋아요 2 | URL
김금희 소설들이 영 달달이랑 거리가 먼데 늘 표지 낚시(?)를 하죠. 뭔가 줄리언 반스 연애의 기억 제목이랑 표지만 보고 낚였다 쓴 맛에 시껍하듯이요 ㅋㅋㅋㅋ

Yeagene 2023-01-19 12: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열반인님 이 책 읽으셨군요 ㅎㅎ김금희 신작이라,열반인님 떠오르더라구요♡

반유행열반인 2023-01-19 20:49   좋아요 2 | URL
이제 뭔가 김금희 하면 열혈팬 열반 이렇게 엮이나 보네요. 아실런지 금희 언니 여기 조그만 짝사랑 하나 있는 것을…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