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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평점 :
-20230117 김금희.
김금희의 신간을 겨울이 오기도 전에 갖춰두기는 했다. 책을 팔기 시작한 시점보다 출간일이 나중이어서 뭐야, 미래에서 온 책이야? 11월 25일 맞추고 싶었나 보다…했다. 가까이 오래 꽂아두었다. 크리스마스 있는 주에는 읽을까, 이브날에라도, 당일에라도, 그렇지만 크리스마스 이브는어째서 연인들 섹스하는 날이 되었나, 하는 말이 싫어 아마도 십 년 이상은 그날만은 피해…의도한 건지 아닌지 가물가물하지만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이 책도 결국 해를 넘겨서야 읽기 시작했다.
그나마 가장 홀리하게 보낸 크리스마스라면 1995년, 5학년일 때였다.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반주법을 익힐 좋은 기회라며 데려간 교회 성가대, 거기에는 나랑 동갑내기인, 나중에 한예종에 가고 독일 유학도 다녀와 피아니스트가 될, 그때부터 그런 재목 기질이 보이던 아이가 있었다. 다른 피아노 학원 원장 선생님인 그 아이 엄마는 아마도, 나랑 성가대 지휘하던 내 피아노 선생님이 좀 미웠겠다, 잘 치지도 못하는 게 왜 우리 아들은 노래를 시키고…했을 것 같다고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심심하면 명곡집의 하바네라를 멋지게 건반 위로 두들기던 통통하고 하얀 아이를 나는 잠시 좋아했다. 나는 정말이지 피아노를 잘 치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때가 변성기였는지, 학교 합창부에서 배운 가성 발성이 영 거슬렸는지, 선생님은 몇 번 노래를 시켜보고 다르게 소리를 낼 수 없겠니, 하다가 피아노 반주를 맡으라고 했다.
사람이 그렇게나 많이 모인 성탄 예배는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실력도 부족하고 칸타타 무대는 이전까지 구경조차 못 해본 나는 역시나 반주를 망쳐서 노래하는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했다. 무대를 내려온 아이들과 선생님은 잘했어, 잘했어, 표정과 말은 따로 놀았지만 몸소 예수님의 박애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봄이 오고 갑자기 못되게 굴기 시작한 하얗고 통통한 피아노 소년은 부활절 계란 껍질을 자꾸만 나에게 던지며 체르니 40번의 3번 치는 주제에(4번이야! 하면 4번 치는 주제에), 하고 놀리는 바람에 더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그 이후로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기대되는 날인 적이 없었고 기독교의 신을 믿기도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신이 있다면 왜 우리 집은 이 모양이죠? 부활절 세수식에서 어느 집사님은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고 물 안에서 손을 꼭 쥐어 주었었는데, 그 따뜻함은 정말 찰나였다. 나의 우주는 언제나 사랑 없는 진공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크리스마스 타일, 크리스마 스타일, 뭐여, 제목만 두고두고 봐도 소설책이 안 끌리는 것이었다… 소설책 첫머리 읽을 때까지도 그랬다. 예능 프로그램 만드는 과정, 방송이 불발되는 에피소드 이런 게 너무 시트콤 같고 작위적이야…하고…
그렇지만 소설 한 편 한 편 읽어갈수록 소설마다 바늘코마냥 하나씩 이어지는 사람들의 이름을 찾는 재미,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재미가 있었다. 새로운 이름 하나 등장할 때마다 이 사람 다음 이야기도 이어질까 하고… 스쳐 지나가는 듯한 사람들 모두에게도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고, 다들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있다고, 참 친절하게도 엮어 놓았다. 타일을 제목에 넣고 싶었을 마음이 이해가 되었는데, 그래도 타일보다는 명멸하는 크리스마스 트리 전구 같은 게 더 어울릴 것 같았다. 가까이에서는 휘휘 감은 전선도 좀 추레하고 불빛 하나하나는 별 감흥이 없지만 멀리서 보면 그것들 모두 모여 번갈아가며 켜지고 꺼지는 게 더 예쁘고 역동적으로 보이니까. 책의 구성이 그랬다. 이야기 하나하나는 조금 아쉬운 것들도 있는데 전체를 관통하는 분위기가 좋았다.
목사 아들 주찬성과 사귀던 시절 눈송이에 이름 붙여 주는 이야기-‘하바나 눈사람 클럽’-랑 반려견 설기를 잃고 오래 애도하는 이야기-‘당신 개 좀 안아봐도 될까요’-가 좋게 읽혔다. 마지막 ‘크리스마스에는’, 은 읽으면서 이 책 전체가 이 이야기로 모이는 느낌이라 좋았는데, 아이참 이 이야기 어디서 읽었는데, 이렇게 좋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어디서 봤어…어느 책이었어…했는데 작가의 말에 소설집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에서 봤지, 하고 친절하게 바로 알려줘서 아…했다. ㅋㅋㅋㅋ 하여간에 금희 언니는… 이런 거 진짜 잘하는 구나…이런 게 연작이지… 그런데 표지 뒤에 박정민 배우가 쓴 추천사는 좀 과잉이다… 왜 이렇게 힘주고 썼어… 금희 언니 책 좋은데 왜scott님말고는 리뷰 올려주는 사람 없지… 내년 크리스마스엔 흥해라… 아니 꼭 그날이 아니어도 그냥 그런 연말의 기분, 옛사랑 생각나고, 잃은 사람이나 동물이 생각나고, 눈 맞고 춥고 그래도 성냥 파는 소녀처럼 성냥 켜고 싶은 사람은 연중 어느 때라도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겨울 책 읽으면 아무 때나 겨울. 매일 크리스마스 책 읽으면 매일매일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