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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섬니악 시티 - 뉴욕, 올리버 색스 그리고 나
빌 헤이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알마 / 2017년 8월
평점 :
올리버와 빌이 함께 듣는 걸 보고 따라 찾아 들은 베토벤 ‘대푸가’. 좋았다.
-20230403 빌 헤이스.
다른 이웃 분 서재에 이 책의 인용구들을 보고 알게 되었다. 돌아가신 올리버 색스 박사의 연인이 낸 책이 있다고. 내가 죽고 나서 나의 연인이 내밀한 이야기들을 책으로 써서 낸다면, 어떤 기분일까? 나쁜 건 아닐까? 잠시 근심한 게 무색할 정도로 인용된 문장들이 반짝반짝해서, 꼭 보고 싶었다. 마침 병원갈 일이 있었는데, 그 근처 서울대입구 알라딘에 이 책이 있다고 했다. 당장 사러 나간다,
걸어 나갔는데도 병원 예약 시간보다 일러서 알라딘서점에 먼저 들렀다. 그런데 서가에서 책을 뽑아들고 실망했다. 오프 알라딘에서 가장 짜증나는 게 상태가 심하게 안 좋은 책을 랩핑해 두는 것이다. 비닐 안쪽만 들여다봐도 책머리 책옆 막 점점이 곰팡이야 뭐야 오염 드문드문 묻은 책, 슬쩍 봐도 상태 안 좋고 한 번 촤르륵 펼쳐 보고 나면 안 살만한 거 비닐 씌워두는 걸 여러 매장에서 여러 번 본 후라 구매를 단념하고 빈손으로 나왔다. 터덜터덜. 히잉, 당장 사러 간다 했는데…
집에 와서 검색하니 서울시전자도서관에 책이 있었다. 여기 도서관 앱은 점점 맛이 가다 못해 이제는 책을 빌리고 실행시키면 웹브라우저가 열리고 인터넷 창을 통해 책을 보게 되었다… 뭐 전보다는 안정적으로 로딩되긴 하는데 이거 오프라인이면 못 보는 건가…심지어 밑줄 긋고 책갈피 거는 것도 웹상에 저장되는 신기한 시스템이었다.
그렇지만 그저 올리버 박사의 연인의 책, 이렇게 알게 되고 퉁 치기에는 빌 헤이스의 글과 사진, 문장과 관찰력과 감성이 정말 훌륭했다.
올리버 색스의 책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환각’, ‘온더무브’, ‘의식의 강’, 고맙습니다‘ 이렇게 읽었고 아직’깨어남‘과 ’뮤지코필리아‘를 소장만 하고 있다. 벽돌이라 선뜻 못 펼치고 있지만 ’깨어남‘은 영화도 보고싶다 하면서 못 본지 또 몇 년 째이지만 언젠가는 볼 테야… 언제부턴가 시작된 주기율표 사랑은 아무래도 올리버 색스의 지분도 클 것이다. 컨디션 안 좋을 때 펼쳤다 글이 막 튕겨나가서 괜한 번역탓 하던 온더 무브도 다시 좋은 날 읽으니 이렇게 멀쩡한 걸 괜히 지가 못 읽어 놓고 뭐라했어…날 때려요 엉엉 하던 생각도 나는데, 빌 헤이스의 책도 같은 번역가가 옮겨 놓았고, 뭐 나무랄 것 없이 좋았다.
빌이 샌프란시스코를 떠날 때 오랜 연인 스티브가 죽었고, 옮겨 온 뉴욕에서 뉴욕 사랑과 동시에 시작된 올리버색스와의 사랑도 또다시 죽음을 지켜보는 경험이 되었다. 아직은 사랑하는 사람을 영영 잃어본 적이 없어서 빌이 얼마나 슬플지 헤아리지도 못했다. 그래도 그는 연인들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고, 또 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눈으로, 내내 간직할 만한 사진으로, 글로 남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스스럼 없이 다가가고 말을 걸고 그러는 모습이 정말 신기했다. 나랑은 너무 달라서… 그러면서 빌이 얻는 충만함, 휴대전화 가득 쌓이는 이미지들, 글로 남길 순간들, 내가 놓치고 사는 것들이 무언지 새삼 돌아보게 했다.
색스 박사와 사랑하고 말을 나누던 순간 글로 옮기는 게 괜찮은 일일까? 읽기 전에는 조금 걱정도 했는데, 글로 남긴 심정도 이해가 되었다. 혼자만 알기에는 너무나 번뜩이고 귀엽고 생생한 장면들이라 오히려 그런 순간들 남겨서 나눠주는 게 고마울 정도였다. 글이란 그런 것. 나만 알 순간들을 모두는 아니라도 더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는 것. 길을 가다 마주친 이나 파티에서 만난 사람이 시를 써주고 길을 가르쳐주고 눈을 그려주고 사진을 찍어주는 일이 얼마나 나를 중요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지 아는 일. 올리버 덕에 빌을 알게 되었지만 올리버의 글 뿐 아니라 빌의 글과 마음을 만날 수 있던 것도 또다른 좋은 일이었다. 이 책이 있다는 걸 우연히 지나는 글 속에서 알게 된 것도 고마운 일.
+밑줄 긋기
-나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 있다면, 눕자마자 곯아떨어져 아침까지 깨지 않고 자는 사람 옆에서불면증에 시달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스티브가 죽은 다음 날 밤, 나는 블라인드 틈으로 들어온 은은한 가로등 불빛이 그의 베개 위로 드리운 노르스름한 한 줄기 덩굴 손을 발견했다. 그림자와 정반대인 무언가. 이것이 내가 그의 영혼에 대해서 내릴 수 있는 가장 명확한 정의다.
아침이 오면 그 빛은 사라지고, 남은 하루는 공허하고 괴로웠다. 삼 년 쯤-천 일가량-지나야 이런 감정이 가라앉는다고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이 내게 말해주곤 했다. 지나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은 것은 내가 직접 발견한 어떤 것이었는데, 천 일이란 천 개의 밤이고 그의 꿈을 꿀 천 번의 기회라는 사실.
-나에게 스티브의 렌즈는 그의 눈 일부일 뿐만 아니라 그의 몸, 생명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렌즈 없이는 거의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스티브였다. 그것을 템즈 강에 던져버리고 내게 다양한 세상을 보여주었던 스티브에게 고마운 마음을 보냈다. 내가 건너는 다리 하나하나가 정화 의식을 치르는, 그리고 번번이 다시금 눈물을 쏟게 하는 장소가 되었다. 런던 브리지에 도착해서 마지막 남은 화장 재를 뿌렸다. 스티브의 유물 중 강물에 던져지지 않은 유일하게의미 있는 것은 나 하나였다. 그 생각을 해봤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엉뚱한 방향에 올라타고 예상치 못한 연착과 이따금씩 나타나는 기계 고장을 겪는 것은 정말로 해볼 만한, 어떤 여행에서든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렇듯 방향을 바꿔가며 바른 길 찾는 법을 터득해간다.
-지하철이 쏜살같이 달려 별빛 같은 조명이 양옆에서 깜박일 때면, 언제 어떻게 어느 땅 위에 내려앉을지 알지 못한 채 아득한 시간을 통과하는 로켓을 타고 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꼭 한 가지만 말하라고 한다면, 내가 뉴욕의 지하철에 대해서 무엇보다 좋아하는 점은, 그것이 하지 않는것에 있다. 평생을 뒤만 돌아보면서-후회가 가득하든 그리움이 가득하든, 아니면 부끄러움이 되었든 애착이 되었든 슬픔이 되었든-혹시라도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인생도 있다. 하지만 지하철은 오르고 나서 문이 닫히면, 그 차량이 향하는 대로 자신을 맡길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지하철은 한 방향으로만 간다. 앞으로.
-“마이클 잭슨이 뭐죠?” 뉴스가 뜬 다음 날 O가 묻는데, ‘누구’가 아니라 ‘무엇’이었다. 어떻게 그 뛰어난 가수가한 사람의 인간에서 외계생물체 같은 존재로 변질되어갔던가를 생각해보면, 아주 이상한 동시에 그 이상 적절한표현도 없을 듯했다.
-“글 쓰는 것이 통증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야.”
-“한 일은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하는 것은 하지 않은 일뿐이다. 이런 면에서 나는 범죄자와 비슷하다.”
-“지금 자신이 궤적에 올라 있다고 느껴져요?”
“이젠 그래요.” 내가 대답한다. “오랫동안 떨어져 나왔다고 느꼈거든요.”
O가고개를 끄덕인다.
“궤적은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만드는 거지.” 그가 말한다.
-비요크의 머리는 위로 올려 파란 깃털 장식이 달린 집게핀으로 고정했다. 상의로는 색과 문양이 다양한 천으로 만든 단순한 튜닉을 걸치고 있었는데, 어쩌면 손수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튜닉 밑으로 흰 바지를 입었고 웨지샌들을 신고 있었다. 화장기 없고 주름 없는 얼굴은 예뻤고, 눈동자는 비취색이었다. 칠흑같이 까맣고 풍성한 눈썹은흡사 새의 깃털 같았다.
-저 여자는 자기가 얼마나 예쁜지 알까?
-그는 단어들을 음미하며 먼저 혼자 읽은 뒤 내게 소리 내어 읽어준다. “인생을 길다고 믿지 말라.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로 여기고 그 가치 이상의 삶을 살지어다. 기대치 이상을 살아낸 날이 많은 자, 많은 생을 살리니, 하루의 짦음을 불평하는 날 또한 적을 것이다. 지나간 시간은 그림자와 같은 것, 시간을 현재에 있게 하라.”
“참으로 아름다워.” 내가 중얼거렸다.
-나는 아일랜드 사람답게, 하루 종일 울었다. 뭐, 어쩌겠나. 좋은 울음은 영혼의 세차 같은 것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비가 젖은 여름은 내가 붙여준 이름 ’나무TV‘를 보기에 완벽한 계절이었다. 하루는 뇌우가 맹렬하게 쏟아질 때가까스로 집에서 빠져나왔다가 큰 가지들이 빗줄기에 헝겊인형처럼 휩쓸리는 광경을 보았다. 작은 가지들이 창문을 격렬하게 때리고 있었다. 앞뒤로 휘몰아치고 쿵 하고 창을 때리고 스르르 미끄러졌다가는 다시 높이 솟아 휘몰아치기의 연속이었다. 나는 꼼짝없이 ‘나무TV’앞에 붙들렸다. 비와 바람과 번개의 협공에 누가 봐도 약세인 나무들이 이제는 체념한 채 폭풍과 싸우지 않고 그대로 자기를 맡기고 있었다.
-체념으로 내맡기지도, 저항하며 버티지도 않기. 그저 가만히 있기. 그저 있기.
-“열다섯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어요. 가게가 문을 닫게 돼서 말이에요. 일자리 구하느라 고생할 사람이 열다섯 명이 생겼단 말입니다.” 알리는 그 사람들 대부분이 학생이거나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였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고게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건 옳지 않아요.”
-“기분 좋은 느낌이나 감정이 동물로서 우리가 내리는 모든 선택에 영향을 미칠까? 어떤 행동을 하니 기분이 좋다, 그래서 그 행동을 다시 한다, 이것이 우리가 쾌락을 학습하는 과정이다. 또는, 어떤 행동을 하니 느낌이 좋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그 행동에는 위험 또는 위기가 따른다는 것을 학습한다. 이런 건가? 우리의 인생은 느낌과 감정의 지배를 받는가?”
“제 인생은 그래요.” 내가 대답했다.
-하루에 하루씩 살아가면 된다. 미리 과하게 고민하지 말고.
“그래요, 내 친구. 바로 그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