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 ㅣ 문학동네 시인선 188
육호수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3월
평점 :
-20230513 육호수.
대추야자를 먹었다. 오래 전 공부하겠답시고 영어로 된 아라비안나이트를 사서 앞머리만 조금 읽다 말았다. 이야기 속 상인이 대추야자(영어로는 date)를 먹다가 씨앗을 함부로 뱉어 버린다. 거대한 지니가 칼 들고 펑, 나타나서 너 죽인다, 했다. 왜죠 님하 살려주셈… 마법에 걸린 대추야자씨를 너새끼가 퉤퉤 한 게 내 아들 가슴에 박혀 아들이 죽었다, 너도 죽어라, 했다. 그 다음은 기억이 안 나고 대추야자만 남았다. 몇 년 전에 동료 선생님이 건조기후 가르치면서 어린이들 맛보게 한다고 준비물로 대추야자를 왕창 샀는데 애들이 퉤퉤 이러고 다 안 먹는다고 해서 다 나한테 남았다. 어 근데 맛있는데…
그 생각이 나서 온라인마트 장보기할 때 뒤져보니 있어서 샀다. 와…이거는… 약과를 건조기 돌려서 두 배 농축시킨, 개꿀맛이야. 두 개 먹으려다 네 개 더 꺼내서 여섯 개 먹고 그래도 이건 약과에 없는 식이섬유가 있어. 그러다 벽 위에 얹어 부종을 빼던 엄지발가락이 쪼글쪼글 붉으래해지니까 대추야자를 닮았다. 살짝 입에 넣으면 단맛이 날까, 하는 썩은 뇌새끼로부터 유연하지 않은 관절과 에비 지지야 죽어라 미친놈 하는 초자아가 내 구강을 무좀 발가락으로부터 구했다.
그러니까 닮았다고 대추야자는 아니다. 말놀이 한다고 다 시인은 아니다. 말장난하는 나와 그들과의 유일한 공통점은 음 나중에는 다들 시체가 될 것이다, 정도? 한 글자 닮음.
물과 대추야자만 가지고 오래 사막을 건너던 대상들도 마냥 불행하지만은 않았겠다. 이런 단맛이 있다면. 발가락말고 대추야자 말입니다.
싸이월드에 오에까끼라고, 엄청 작은 캔버스에 점 찍어서 그림 그리는 기능이 있었다. 스무살 나는 꿈에서 오호라는 호수를 봤다고 한다. 그런 걸 그려 놓았다.

그 오호가 어디 있는지 이십 년 만에 알아냈다. 강원도 고성 오호. 환경을 생각한다고 고급 종이팩에 담은 샘물 위에서.(페트병보다 단가 훨씬 비싸고 만드는 데 에너지도 재료도 많이 투입될 특수 종이팩을 쓰는 게 정말 친환경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하여간에 페트병 생수 사용금지한 사업장에서는 요즘 저런 물을 나눠준다고 한다…)

으아니 그리고 십 대 후반에서 스무살 전후로 짝사랑하던 (그러나 나중에 야 너 왜 이렇게 ㅂㅅ같이 변했냐, 하고 내가 뭐라고 했더니 연락두절되었던ㅋㅋ) 옛날 소년 하나가 일촌평을 달아놨다. 그걸 누르면 이렇게 신고하기/삭제하기 두 가지 선택지만 가능하다. 매우 적절한 기능적 결함이다.

다섯 개의 호수도 많아 보이는데 여섯 개의 호수를 만났다. 어쩌면 여호수아에서 따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꾸 남의 이름 가지고 모른다 그러고 장난치면 화낼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어려서는 이름으로 놀림을 아주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식구들 이름 한 글자씩만 따서 난 귀신, 넌 해골, 너는 유령, 이러고 어린이들을 놀린다. 나쁘게 자랐다. 다시 여호수아 하니까 조슈아트리가 생각나고, 그 사막에는 대추야자 없어? 했더니 있단다…미국에도 대추야자 농장이 있대…내가 먹은 건 튀니지 거였어. 하나 더 먹고 옴…
양안다 시집은 앞부분은 읽기 좀 힘들다가 뒤로 갈수록 좋아졌다. 반대로 육호수 시집은 앞에서는 오 재밌네, 잘읽혀, 이러다가 뒤로 갈수록 힘들어졌다. 나는 이런 세상의 균형을 좋아합니다.
싸이월드에서 유행하던, 특수문자 쓰고 영 불편해서 따라할 엄두가 나지 않던 외계어 쓰기는 그야말로 20년 전 신문 기사에나 남았다. “20대도 못읽는 채팅 외계어” 매일신문(2003-07-31) https://mnews.imaeil.com/page/view/2003073114125054437

언어의 사멸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데, 컴퓨터 키보드가 주요 입력 매체이던 시절에서 특수문자 한정된 모바일 기기로 넘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외계어는 사어가 되었다. 그 소멸이 생각보다 빨라서 놀랐네. 시인도 그걸 알았을까? 잊혀진 쐐기문자 같은 언어로 시 한 편을 적어 놓았다. 그래서 시 번역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자니?
너 자는 동안 너의 숨소리에 이름도 붙여두었어
우리가 숨쉬는 이 어둠이 거짓이 아니기를
어둠이기만을 바라며…
그러니까…너는 자고…
타건 소리를 죽여가며 이런 시를 밤새 쓰는 게
낚시바늘을 삼킨 갯지렁이
를 삼킨 물고기를 삼킨 사람의
꿈, 그 꿈(=dream)의 식탁 위에 차려진 생일 케이크, 달콤하게
썩어가는 너의
탄생 속에 숨어 있는
바늘을 다시 끄집어내는 일이라면, 일이라서
((((바늘))))
이 바늘을 내가 도로 삼키는 일이 되어야 한다면,
삼키게 되어야 하더라도
…괜찮아…
나는 오십 살(= 知天命)이 되어서도 이
시(poetry, 詩, poème, कविता, કવિતા)를 소리 내어 읽을 거니까(poesía, versus, dikt, אֹמִר, poezja, บทกวี)
(주:영어, 중국어번체, 프랑스어, 힌디어, 구지라트어는 내가 덧붙임, 이탈리아어, 라틴어, 스웨덴어, 아마도 히브리어, 폴란드어, 태국어)
네가 잠든 동안 조용히 곁에서
너의 잠처럼 깊은(DEEP) 목구멍(OCEAN) 속으로
그 바늘(=형태소, morpheme, not morphine)들을 다시 삼킬 거야
때마침
때마침처럼
처럼의 처럼처럼 창밖에는 불가해한 비가 내리고
(별이 뜨고 비내리고 뽀글뽀글 가라앉는 빗방울인가 바늘인가…흉내도 못내겠다 이모티콘 이건 scott님께 의뢰해야 겠다…)
(((바늘)))
…이 비가…
눅눅한 키보드 틱틱톡톡 타건 소리에 맞추어
불가해해지도록 불가해해질 때까지 내리고
그러나 한 땀 한 땀 내리는 이 빗방울(=바늘)이
우리를 투과하진 않을 거야, 내내 내릴 거야
잠든 너의 눈꺼풀 위에도, 꿈 속 인형들의 흉터 사이로 쏟아져 나온 솜 움큼 위에도 내내
꿈 속까지 우리를 추적하는 멍청한 엔피씨들이 피워놓은 모닥불 위에도
이 백지의 알칼리성 피부 위에도 공평하게 내릴 거야
무사히 잠 속에서 잠(=숨) 속으로 내내 울컥울컥 쏟아지세요
나는 호수니까요
여섯 개고요
울음으로 그치게 되는 고집으로 사랑하는
이 백지의 피부에서 긁어낸 문자(=tattoo)에선 가지가 자라나고, 버즘이 피고, 낙엽이 지고…
불가해해지도록 불가해해질 때까지 피고 지고
우리 미끼 물고기(bait fish)들에게도 미래가 있어 바늘을 삼킬 용기가 있고
용기를 내어 잠에 항복할 수 있고
꿈에서도 다시 절박해진다는 게
…감사하고
신기하고
“너의 꿈에서 다시 깨어날 순 없을까 그런 내일이면 안 될까”
내 악몽 속으로 사라진 네 영혼의 엔트로피로 백지 위엔 이런 문장이 내리고…
너의 숨소리에 붙여둔 이름을 까먹을 때까지 쿨톤의 석양이 소문으로 다 질 때까지 자려고
-호수(호수, 연못 아님, 바다 아님, 철수 아님)가
(「Łй 악몽 속으로 へㅏㄹΓ진 ㉡ㅓ의 영혼의 ёnŧrØpħy로 Ꮣㅐ겐 Øl런 문ㅈБO1 Łй己lヹ...」전문)
-번역 중 가장 곤란했던 부분은?
: 원작 시의 병기를 살리고자 구글 번역기를 돌리면서 덕분에 수많은 언어에서 시를 어떻게 적거나 부르는 지 알게 되었다. 다른 언어는 비교적 쉽게 찾았는데 저 놈의 히브리어로 추정되는 이상한 글씨(아마도 우리랑 글 적는게 역방향인데 원작 시는 글자를 순방향으로 쓴 거 같다…그러니까 못 찾지… ) 찾느라고 번역기를 돌리는 게 가장 힘들었다. 거의 고통의 순간이었다… 시인도 나같은 고통을 겪으며 하나하나 골랐을지 그냥 대충 이거저거 했을지 문득 궁금했다. 2000년대 언저리를 살았던 덕분에 다른 특수문자들은 번역기를 돌릴 필요가(돌려도 안 나옴) 없어서 다행이었다.
한국어 번역하고 나니 의외로 좋은 시인데 이걸 왜 이렇게 해놨어…엉엉…힘들어…
기껏 힘들게 특수문자 해놨더니 그걸 또 풀어헤쳐놨다고 욕 먹을지도 모르겠다…원래 사람이 그런 거잖아요… 꼭 반대로 하는 인간들이 있잖아…
힘들어서 그만 쓰고 대추야자 먹어야지…지쳐서 독후감 쓰다 말게 한 건 네가 처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