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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작렬지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2월
평점 :
-20201210 옌롄커.
올해 초 옌롄커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사서, 딩씨 마을의 꿈,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거쳐 벌써 네 권째 소설이다.
이번 소설은 ‘자례’라는 가상 지역의 역사지리서 형식을 취한다. 작가가 거금을 받고 자례시의 시지 ‘작렬지’ 집필을 의뢰받았으나 이모양 이꼴로 써서 욕처먹고 쫓겨났다ㅋㅋㅋ 하는 시작과 끝으로 ‘작렬지’의 내용을 궁금하게 만든다.
화산 폭발로 ‘작렬촌’이라는 이름을 얻은 인구 수백의 마을 자례. 쿵(공)씨와 주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서로 경쟁 관계에 있다. 여기서부터 뭔가 중국에서 칭송되는 성인 공자와 주자의 후손 운운하며 까는 느낌이다.
두 집안의 원한은 60년대 문화대혁명 시절 시작된다. 촌장이던 주칭팡이 중국지도 모양으로 얼룩진 새똥 묻은 옷을 빨지 않고 입고다닌 쿵둥더를 고발해 쿵둥더는 오랜 옥살이를 하고 나온다.(설명이 없으니 왜 그게 죄인지 잘 모르겠다..)
쿵둥더는 폐인처럼 되었다가 다시 선지자처럼 마을 사람 꿈에 나타나 밤길을 걸으라고, 걷다 처음 만나거나 줍는 것이 당신의 운명을 결정할 거라고 예언한다. 쿵둥더의 네 아들 쿵밍광, 쿵밍량, 쿵밍야오, 쿵밍후이도 마을로 나선다.
쿵밍광은 분필을 줍고 교사가 된다. 쿵밍야오는 군용차를 마주하고 군인이 된다. 쿵밍후이는 고양이를 마주해서 온순하고 선량해졌다-고 전해지지만 나중에 오랜 책력을 발견했다가 버드나무 구멍으로 버린 것이 밝혀진다.(거기에 멜키아데스의 비책 마냥 세상의 비밀이 적혀 있고 밍후이는 그걸 열심히 해독하며 집안과 마을이 덜 망하게 하려고 애쓰지만…)
둘째 쿵밍량은 원수인 촌장 주칭팡의 딸 주잉과 마주쳐 서로 욕을 하고 헤어진다. 그러다가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인장석을 발견한다.
중국은 어느틈엔가 공산주의를 버리고 시장경제를 도입한다. 무조건 많이 벌면 된다, 하는 배금주의가 팽배하고, 쿵밍량은 마을을 지나는 열차에서 석탄이며 물건을 훔쳐 부를 쌓는다. 그덕에 이십 대의 젊은 나이에 신임촌장이 된다. 촌장이 된 쿵밍량은 원수 주칭팡의 얼굴에 침을 뱉으면 돈을 주겠다고 마을 사람들을 꼬셔서 주칭팡은 가래침에 익사한다(…) 여기서부터 완전 미쳤다 ㅋㅋㅋ
쿵밍량은 마을 사람들에게 열차 털이로 돈 버는 방법을 전수해 짧은 기간 만에 마을을 부유하게 만든다. 주잉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도시로 나가 성매매를 하며 돈을 잔뜩 번다. 마을에 돌아와 기부를 하고 마을 여자들을 도시로 보내 성매매를 시켜 돈을 벌어오게 해 마을의 성장에 기여한다. 마을에는 그녀의 공덕비가 세워진다.
쿵밍량과 주잉은 차기 촌장선거에서 경쟁하고, 선거에서 밀릴 것이 뻔한 쿵밍량이 주잉에게 빌어서 주잉은 자신과 결혼해주면 촌장 당선을 양보하겠다고 한다. 거래가 성립되어 선거 결과가 뒤바뀌고, 둘은 결혼한다.
쿵밍량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촌을 진으로, 진을 향으로, 다시 성으로, 시로, 그리고 초거대 직할시로 성장시켜 나간다. 그러는 사이 주잉은 자신이 거느리는 여성들을 형제들에게 보내 첫째 쿵밍광을 이혼시키고, 셋째 쿵밍야오를 퇴역시키고, 시아버지 쿵밍더를 복상사(…)시키며 복수한다. 쿵밍량은 주잉이 아들을 낳았지만 오래도록 그녀에게 찾아가지 않고 비서 청징을 비롯한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도시의 성장과 자신의 권력을 확장시키는 데만 주력한다.
쿵밍야오가 만든 민병대가 쿵밍량의 도시에 공항과 지하철을 며칠 만에 짓고, 주잉이 보낸 여성들이 투표위원들을 유혹한 덕에 결국 자례는 직할시로 승격한다. 그러나 쿵밍야오는 야욕을 품고 쿵밍량을 죽이고 도시민을 모두 동원해 그들을 전쟁에 끌고 나가 모두 죽게 만든다.
도시의 흥망성쇄와 등장인물의 감정과 성패에 따라 온갖 자연물이 반응한다. 꽃이 지거나 피고, 나무에 엉뚱한 열매가 열리고, 새와 동물이 몰려오고, 해와 달도 수시로 바뀐다. 자연물 뿐 아니라 사물도 다음에 올 사건을 암시한다. 예를 들면 시계가 멈추거나 고장나는 건 누군가의 죽음을 의미한다. 기이한 묘사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런 이야기들을 꺼내자 친구 한 명이 마술적 리얼리즘이냐, 했는데 내가 형용모순 운운하다 리얼적 마술리즘은 안 되냐, 해서 잠시 빵 터졌다.
형제끼리 서로 도움을 청하거나 이용하고, 부부나 연인 간에 애증에 휩싸이고 하는 건 완전 막장 드라마 같은 전개였다. 그러는 사이 무너진 전통, 땅을 빼앗긴 농민, 고속 성장의 그늘, 물질주의와 권력욕에 휩싸인 사람들의 열망과 추함 같은 걸 간간히 열심히 비판적으로 그려놓았다.
인물들이 대화랍시고 말을 나누는데 누군가 말을 걸면 상대방이 동문서답 하는 식으로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고 자기 말만 하다 헤어지는 장면이 내내 나왔다. 가족들끼리도 소통이 되지 않고 자기 일에만 골몰하는 모습이 씁쓸함을 자아낸다. 둘째와 셋째 아들이 바쁘다는 이유로 어머니 장례식에도 오지 않는 장면은 극단적이면서도 상징적이다.
여자와 남자 사이에도 진정한 애정 같은 건 나오지 않는다. 육욕 아니면 도구화된 성애만 잔뜩 등장한다. 여자들은 누구 부인 아니면 창녀 아니면 형제들을 유혹하는 존재로만 그려진다. 남자고 여자고 나오는 새끼들마다 다 개빻았다 ㅋㅋㅋㅋ
옌롄커 아저씨가 뭘 하고 싶었는지는 대략 견적이 나온다. (그러니까...마꼰도의 부엔디아 가문 뺨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고 가능하다면 노벨상도 웁웁) 그런데 읽을 수록 삐끕 쌈마이의 냄새가 물큰하다가 또 어느 부분에서는 진지하다가 막장 테크 타다가 해서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끝이 자꾸 궁금해져서 열심히 다 읽었다. 마을의 종말 마저도 자꾸 백년의 고독 아류 같은 느낌이 ㅋㅋㅋ그래도 상상력과 구성력이 신선하다면 신선한 독특한 소설이었다.
+밑줄 긋기(왜 이딴 거만 쳐놨어 ㅋㅋㅋㅋ)
-쿵밍량이 바위에서 뛰어 내려와 얼거우에게 20위안을 주었다. 돈을 받은 얼거우가 웃으면서 걸어가 주칭팡 얼굴에 침을 뱉었다. 또 20위안을 주었더니 한 번 더 뱉었다. 그가 연속해서 침을 뱉자 밍량도 연속해서 돈을 주었다. 사람들이 욕심과 희열에 빠져 주칭팡의 몸에 침을 뱉었다. 침을 모아 뱉는 소리가 황혼 속에서 뇌우처럼 울렸다. 순식간에 주칭팡의 머리와 얼굴, 몸이 하얗고 노르께한 타액으로 뒤덮였다. 어깨에 매달린 가래침이 폭포수처럼 늘어졌다. 마을 사람 전부 목이 말라 더는 침을 한 방울도 못 뱉을 때까지 주칭팡은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마치 침으로 만든 소조상 같았다.
…
주칭팡은 가래침에 숨이 막혀 죽었다.
(ㅋㅋㅋㅋ아 사람 죽었는데 웃으면 안 되는데...주칭팡의 가래침 익사 만큼 괴랄한 쿵둥더의 복상사 사망...그러나 위대한 쿵밍량의 아버지니까 트럭에 뛰어들어 위험에 처한 소녀를 구하다 심장이 놀라 사망한 걸로 홍보됨 ㅋㅋㅋㅋ진짜 이런 린치도, 죽음도 어디서 본 적이 없다…)
-“셋째 형, 어디 있어요? 노인과 아이들은 두고 가요!”
“셋째 형, 어디 있어요? 노인과 아이, 여자는 남겨두세요!”
“셋째 형, 어디 있어요? 동생이 부탁하니 노인과 아이, 여자와 장애인은 두고 가요!”
(그나마 사람 같은 밍후이의 외침과 애원이 너무 애달팠다…이런 식으로 한 사람이 세 번 연달아 발화하는 장면이 소설 내내 반복된다.)
-한 달 뒤 새벽, 시 중앙광장과 거리에 처음 나타난 것은 자례 사람이 아니라 어느 집에서인가 내던진 죽은 시계였다. 이어서 거리의 쓰레기통과 길게 자란 화단 옆, 아무 땅바닥이나 계단 곳곳에 갑자기 망가지고 부서진 온갖 벽시계와 싸구려 손목시계가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자례시 전체의 모든 벽시계와 손목시계의 시침과 초침이 하룻밤 사이 죽어버렸다. 시침과 분침, 초침이 대부분 시계에서, 추에서 떨어졌다. 도시가 고장 난 시계의 쓰레기장처럼 되었다. 노인과 아이들은 대로에 쌓인 망가진 시계들 때문에 걸어다닐 수가 없었다. 도시가 그렇게 망가진 시계에 함몰되었다.
(군에 동원되어 도시를 떠난 수천만 사람들의 죽음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기이한 현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 인상깊었다. 아...나도 뭐 광화문 이순신동상 부쉈다가 다시 세우고 그렇게 스케일 좀 키우고 싶다. ㅋㅋㅋ뭘 부숴볼까...청와대? 경복궁? 철컹철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