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드러머 걸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4
존 르 카레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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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5 존 르 카레.

이십 대에는 야후 사이트의 세계 채팅방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과 영어로 대화를 시도하는 취미가 있었다. 미국놈들이나 유럽 선진국놈들 채팅방에 가면 영어를 버벅거리거나 채팅의 약어를 모르는 티만 내도 무시당하고 욕설을 들었다. 기껏 관심을 주는 건 음란한 말을 건네는 변태들 뿐. 인도인들 채팅방이 유독 많았는데 속내는 어떤지 몰라도 말하는 건 서구놈들보다 한결 친절했다. 먼저 이것저것 묻고 대화에 끼워주었다. 갑자기 파레토의 법칙을 설명해달라는 인도 사람이 있어서, 경제학 개론서를 뒤지며 나름대로 설명해주었다. 그 사람은 갑자기 책을 보내달라고 졸라서, 내 책은 한국어라 님이 못 읽어요 못줘요...하고 달래던 기억도 난다. 동방신기를 좋아해서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열광하던 푸에르토리코의 소녀, 이탈리아의 엔지니어 아저씨 같은 사람은 한참 수다를 떨다가 (그래, 라떼는 카톡은 없고 이런 거 있었다?) 엠에센 메신저에 추가해서 가끔 안부를 주고 받기도 했다.
모함마드도 엠에센 메신저에 추가했다. 프로필 사진에 기관총을 들고 있었다. 왜 총을 들고 있냐고 물으니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가자에 산다고 했다. 나는 거기에 컴퓨터도 있고 인터넷도 된다는 게 놀라웠다. 그냥 다른 곳에 사는 사람이 나를 놀리느라 거짓말한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날 나눈 말 대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런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우리는 결국 이길 거야.
이후 모함마드는 다시 로그인 하지 않았고 지금은 그 메신저마저 사라졌다. 정말 모함마드가 가자지구 주민이었다면, 아직 살아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면 마음이 불편했다. 만약 살아 있다면 아직도 기관총을 손에 쥐고 있겠지. 살아남는 게 싸우는 것이고 싸우는 게 살아남는 거니까 거기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공격하는 이스라엘 군인들 소식을 들을 때 화를 내는 것 뿐이었다.

이웃님 한 분과 박찬욱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가장 최근 연출한 드라마 이야기를 잠시 나눴고, 또다른 이웃님의 카레 포스팅에서 존 르 카레 이름을 보고 아, 드라마는 못 보니 책이라도 함 보자 하고 리틀드러머걸을 빌렸다. 공교롭게도 책을 빌린 다음날 존 르 카레가 작고했다. 괜히 내가 책 빌려서 돌아가신 것 같잖아...하다가 내가 그럴 만한 능력도 힘도 없다는 주제 파악을 하고 2주 동안 두꺼운 책을 열심히 읽었다.

첩보물, 공작과 테러와 암살 같은 건 거의 읽은 적이 없다. 빌릴 때도 이 책에 대한 정보를 전혀 알지 못했다. 존 르 카레가 첩보 요원 출신 작가라는 사실도 나중에 알았다.

이런저런 급진적 정치 투쟁에 참여하던 배우 찰리가 이스라엘 첩보팀에 포섭되어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아랍인을 사랑하는 것처럼 스스로를 조작?하고, 결국 유대인들이 그 투쟁 세력을 섬멸하는 데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멘탈이 무너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아랍인 미셸의 대역을 맡은 요세프(베커) 또한 찰리의 거울처럼 혼란을 느낀다. 둘이 조우하고 붕괴된 상태로 재회하는 모습은 그나마 위안이 되었지만 온전하지는 못했다.
나라, 민족, 점령, 해방, 투쟁 같은 거대한 목표에 짓눌려 도구처럼 이용되고 쉽게 죽임당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내내 힘들었다. 각자의 개인사가 감춰진 채 조직의 목표에 헌신하는 요원들, 전사들을 보면 그들을 그 자리에서 삽질하게 만드는 신념이란 무엇일까, 궁지로 몬 인생의 상처는 무엇이었을까 내내 궁금했지만 이야기가 모든 걸 다 담을 수는 없다. 주요 인물들의 지난 고통만 나온다. 감옥에 간 아버지, 부적응의 세월, 유대인 또는 아랍인에게 희생당한 가족과 이웃과 동포, 고문과 부상과 치욕.
누구도 미워하기는 힘든 게, 책 속에서 싸우는 유대인도 팔레스타인인도 모두 희생자이고 생존자였다. 이스마일 카다레의 ‘부서진 사월’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피의 복수 카눈처럼 요세프도, 미셸도, 칼릴도, 쿠르츠도, 그리고 찰리와 헬가도 먼저 흐른 피의 값을 받아내거나 갚는데 이용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개인이 장기판의 말처럼 휘둘리고 다치는 모습을 보는 게 현실이든 이야기든 참 힘들게 느껴진다.

종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오늘 태어난 예수가 복수를 말하거나 남을 해치고 빼앗는 것을 허락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용서와 사랑을 설파했다지. 가장 어려운 일이라 가치가 있을 것이다. 부족한 나는 용서 대신 분노하고 온전히 사랑하는 대신 의심하기만 한다. 그 편이 더 쉬우니까. 책을 읽는 동안 내심 누군가가 공작의 과정에서 포기하고 실패하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이야기는 끝없이 달려서 누군가를 터뜨리고 부수고 죽이는 데 성공했다. 죽이고 싶은 상대를 죽이는 일을 포기하는 일이야 말로 가장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모두가 비겁해서 그런 포기는 정말 드물게 일어난다. 그래서 세상은 아직도 슬픔과 고통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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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미터쯤 앞에도 작은 카페의 불빛이 보였지만 그 너머로는 다시 황량한 눈의 고원들과 목적지 없는 도로뿐이었다. 그토록 황량한 곳에 어떤 미친놈이 카페를 열었는지는 아마도 내세에나 풀릴 수수께끼일 것이다.

-“당신은 내 나라를 저버린 영국인이오.” 그가 조용히 선언했다. 눈앞에 드러난 증거조차 믿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그때 갑자기 그가 고개를 들더니 불만이라도 토하듯 고개를 젖혔다. 요제프가 쏜 화기의 위력에 몸에 불까지 붙었다. 방아쇠를 당길 때 가만히 서 있으라고 배웠으나, 요제프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총알을 믿지 않았다. 그는 총알을 타깃에 박아 넣기라도 하려는 듯 끝까지 쫓아오며 쏘아댔다. 진부한 침략자처럼 문을 뚫고 들어와 곧바로 적에게 달려든 것이다. 그는 두 팔을 완전히 뻗은 자세로 계속 거리를 좁혔다. 그녀는 칼릴의 얼굴이 터지는 광경도 보았다. 몸을 뒤틀며 도움을 청하듯 벽을 향해 두 팔을 뻗는 것도 보았다. 총알은 그의 등을 뚫고 흰 셔츠를 망가뜨렸다. 그는 두 손을 벽에 댔다. 의수 하나, 진짜 손 하나. 이윽고 너덜거리는 몸이 미끄러지며, 스크럼을 뚫고 나가려는 럭비 선수처럼 웅크리고 앉았다. 하지만 이미 그때쯤 요제프가 다가와 두 다리를 걷어차 그의 마지막 여행을 재촉해주었다.

-난 죽었어요. 난 죽었어요. 난 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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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12-25 1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대단쓰.. 야후에서 세계인들이랑 노셨구나. 라떼는 미소년이죠! ㅋㅋㅋ MSN 진짜 오랜만이네요. 열반인님 읽고 계신다는 소식을 어디선가 듣고, 이 책 저도 오늘 사서 오늘 도착했어요. ˝죽이고 싶은 상대를 죽이는 일을 포기하는 일이야 말로 가장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모두가 비겁해서 그런 포기는 정말 드물게 일어난다.˝ 저도 요즘 비슷한 생각해요. 부수고 해치고 싸우고 죽이는 게 더 쉬운 길이고 다른쪽이 더 어려운 일 같다는.. 오늘 같은 날 마음을 다잡고 멋진 리뷰 남기시는 거도 대단 / 그와중에 성탄절에 어울리면서도 묵직한 마무리는 더 대단... 님들아 이게 우리 열반인님이다!!!

반유행열반인 2020-12-25 19:10   좋아요 1 | URL
사람이 극단으로 외로우면 외계로 신호 보내고 그러는 거죠 ㅋㅋㅋㅋ 오늘 같은 날 책 읽고 리뷰 쓰는 거 말고 할 일 없어서인데 그걸 이렇게 금가루 바르고 띄워주는 세인트 하나님 ㅋㅋㅋㅋㅋ엠에센이 미소년이었어요? 미소녀 합시다 ㅋㅋㅋㅋ

라로 2020-12-26 10: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존 르 카레, 죽기전에 두 번 테리 그로스라는 사람과 인터뷰 하는 거 들었는데,,,, 울었다오.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삶을 살다가 간 착한 작가더라구요. 저는 그의 책을 다 좋아합니다. 팬이에요!!! 그런데 인터뷰를 들으면서 내가 좋아한다고 하면서 그에 대해서 넘 몰랐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란 인간이 늘 그렇지 뭐 했어요.

반유행열반인 2020-12-26 10:35   좋아요 1 | URL
따뜻한 라로님 울린 작가라니 전 겨우 처음 읽었으니 하나도 모르는 걸요 그래도 책 많이 남겨주고 가셨으니 하나하나 찾아보려구요 ㅎㅎㅎ
 
윤리적 잡년 - 자유로운 사랑에 대한 실용지침서
재닛 하디.도씨 이스턴 지음, 금경숙.곽규환 옮김 / 해피북미디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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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8 재닛 하디, 도씨 이스턴.

연초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이 여름에 개봉한다는 광고를 보았다. 코로나19 덕에 극장에 가려던 계획은 번번히 무산되었다. 결국 오늘 옆의 사람이 VOD서비스에서 구매해줘서 함께 테넷을 보았다. 거꾸로 해도 테넷, 똑바로 해도 테넷. 텔넷 인터넷 네트 이런 게 생각나는 제목이었다.
영화는 훌륭했다. 얼마나 훌륭하냐면 세 살 짜리가 좋아하는 경찰차, 구급차, 소방차, 트레일러, 헬기, 배 같은 게 전부 등장해 애기는 자기가 아는 탈 것의 이름을 열심히 불러댔다. 불이야! 같은 것도 외치고. 열 살 짜리도 나름의 이해력을 발휘해 이것저것 떠들어대고 물어가며 흥미로워했다. 세 살 부터 곧 마흔인 사람까지 같이 모여 볼 만한 영화가 얼마나 되겠어. 더구나 모든 걸 비틀어보고 의심하고 거꾸로 보는 반골에게 딱인 영화였다. 하, 주인공 키 작은 유색 인종 남자로 한 것 봐. 여자랑 어린이는 건드리지 마시죠! 일어날 일은 일어나지만 우리가 노력하면 바뀔지도 몰라, 는 뻥.

인터스텔라에서 천체 사이가 아무리 멀어도, 블랙홀을 뚫고 가야 내 생애 안에 겨우 닿을까 말까 한 사이라도, 사랑하니까 나는 간다, 만나러 간다 했다면, 테넷에서는 어쩌면 나란 존재 여기에도 저기에도 있을 수 있고, 그렇게 누군가를 구할 수도 있고, 내가 망하면 아마 미래의 내가 다시 돌아와 고쳐 놓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어차피 여기의 내가 죽어도 또다른 내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고, 동시에 또는 다르게 명멸하는 존재가 나라면 아이참 많은 일이 잘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런 세계관을 상상하는 것은 겁나 희망적이고 낙천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여기저기에 존재하려면 겁나 바쁘고 정신 없겠구나 싶기도…

이 책 읽기는 호기심과 경계가 나름 넓다 하는 나에게도 도전이었다. 일단 두께가 두껍다. 책을 처음 받았을 때 노끈으로 맨 자국에 표지가 조금 훼손되고 속표지도 어디 습기 먹은 거 마냥 쭈글대서 같이 산 중고책보다 상태가 안 좋아 조금 빈정 상했다. 읽다 보면 발견되는 오타들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런 급진적인 책을 번역하고 출간한 출판사의 시도는 높이 사고 싶었다. 가끔 근본주의자들이 스스로 급진주의로 칭하면서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타도하려는 시도를 하는 걸 보면 어이가 없다. 급진은 이만큼 액셀 밟는 걸 말하는 거 아닐까…

다양한 성소수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게 오래되지 않았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다자연애, 비모노가미, 폴리아모리에 대해 다룬다. 저자 중 한 명은 일흔이 넘었고, 두 저자는 같이 산 적은 없지만 연구 동료이자 연인이자 친구로 오랜 세월을 함께 해 왔다. 자신들과 주변 사람들의 수많은 사랑과 연애와 성생활의 미담과 실패담과 시행착오와 경험적, 실천적 지식을 사례와 함께 나눈다.

Slut을 번역한 잡년,은 우리나라에서 다수의 사람과 성경험을 한, 주로 여성을 지칭하는 걸레라는 말처럼 가치판단과 비하가 담긴 용어이다. 그 말로 지칭되던 이들은 게이나 퀴어가 그랬던 것처럼 오히려 그 용어를 받아들여 긍정의 의미로 역전하는 시도를 한다. 잡년, 걸레라는 말에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문란함, 무책임함, 더러움, 무규칙, 질병의 온상 같은 이미지와 달리 다자 연애를 지속 가능하게 실천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지식과 마음의 준비와 예의 범절과 책임감과 계획과 합의와 고민이 필요하다. 이 책을 읽으면 그런 고민을 끝없이 주고 받는 관계와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질투를 이해하고 다스리는 법, 안전하고 더 즐거운 성생활을 하기 위한 지침과 팁 같은 것은 모노아모리를 고수하거나 이성애자, 동성애자 상관 없이 도움을 받을 만한 부분으로 읽혔다. 항상 스스로를 너무 미워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을 강조한다. 비슷한 책들을 읽을 때마다 접하는 이야기였다. 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 남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건 당연한 이야기인데도 나에게는 오래도록 어려운 일이었다. 아주 조금이나마 나를 그렇게까지 미워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고 이상하고 달라보이는 삶도 생각보다 유서가 깊었다. 결국 삶이라는 건 끝없는 자기합리화의 과정일 뿐일지도 모르지. 합리화해도 너무 창피할 정도가 아닌 정도로만 살면 되지 않을까, 완전무결한 흠 없는 삶은 환상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내용은 큰 무리 없이 받아들이고 읽을만 했는데, 책 후반부의 그룹섹스나 난교파티 참여 요령 같은 건 조금 많이 어려웠다 ㅋㅋㅋ아 나도 선이 없는 놈은 아니구나...심리적 장벽 느꼈어...무서워… 미셸 우엘벡의 ‘소립자들’에서 7-80년대 프랑스에서 파르투제?하다가 실려가는 여친 나오는 장면 봐서 좀 충격받은 게 있는 것 같다. 몇 년 전 언론에서 소라넷이니 초대남이니 하면서 스와핑이나 갱뱅 같은 거 이루어지는 거 엄청 무섭게 까는 거 봐서 흠, 과연 저런 상황이 동의와 합의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까, 저것도 또다른 방식의 성매매와 성착취 아닐까 싶었는데. 저자들은 교양 갖추고 철저한 규칙과 위생 지침을 바탕으로 강압적인 놈은 알아서 퇴출시키는 안전한 상황의 단체 친교?도 가능한 것처럼 소개하지만. 이부분은 흠좀무였다…

나는 그저 누구도 최대한 아프거나 다치지 않고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랄 뿐. 그런 다양성을 말하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그린 책을 조금씩 읽고 있을 뿐이다. 당장 뭘 하겠다는 게 아니고…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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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잘하라. 사랑의 핵심은 누군가의 아름다움과 강인함과 미덕에 대한 사랑이 아님을 기억하길. 오히려 누군가가 우리의 나약함, 우둔함, 초라함 앞에서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는 모습이다. 이 무조건적인 사랑이 우리가 연인들에게 갈망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서 기대하는 것이다.(217)

-”그는 나의 감정을 용인한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원하는 모든 걸 말한다. 사실, 그가 내 이야기를 북돋우는 셈이다. 나는 모든 것을 말하는 것, 질투와 슬픔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것들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감정들은 내 연인에게서 어떤 저항도 받지 않아서 힘을 상실한다. 그는 그 감정들을 그저 들어주고 가만히 놔둔다.”(219)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운 마음에 대한 해결책 하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면 얼마나 기분 좋은지 떠올리는 것이다.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기분이 좋아지고 싶다면 누군가를 사랑하라.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라.(231)

-몸, 욕망, 섹스를 더럽고 나쁘다고 가르쳤던 그 믿음 때문에 성적 자존감을 개발하는 게 매우 어렵다. 다른 사람과 만나는 경험을 어떻게 할 수 있기 한참 전인 청소년기를 성욕, 성적 판타지, 자위 행위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보낸 시간이 많다. 많은 이들이 타인과 접속할 때 자신의 수행 능력에 집착하며 시간을 보낸다. 혹 잘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느라 바쁘다. 이게 얼마나 좋은 느낌인지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우리의 욕망과 환상이 이성애자와의 모노가미 결혼을 넘어 뻗어나갈 때, 우리는 자기 수용에 관한 추가 공격에 시달린다. 일부 사람에게 우리는 섹스에 미친 변태이자 경멸의 대상이다. 타인의 눈에, 그리고 우리 자신의 눈에 아주 많이 그렇다. 신조차 우리를 미워할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때문에 기분이 나쁜 나머지 자신을 그저 숨기고 싶어진다면, 섹슈얼리티의 풍부함을 흠씬 느끼기 어렵다.(356)

-요리에서부터 테니스와 천체 물리학에 이르기까지, 뭐든 능숙해지고 싶다면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 방법을 배워야 한다. (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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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12-19 21: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나도 선이 없는 놈은 아니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열반인님 너무 좋아... ㅋㅋㅋㅋ ˝이상하고 달라보이는 삶도 생각보다 유서가 깊었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그린 책을 읽어주시는 덕분에 저도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랑받지 못할까봐 두려운 마음에 대한 해결책은 밀란 쿤데라옹이 생각나네여... 새 책 샀는데 노끈 자국 찍혀있거나 그럼 넘 슬프죠. 저도 데이빗 보위 평전 독자펀딩이라 파본 안 만들려고 걍 끌어안았는데 펼쳐볼 때마다 슬픔입니다. 흙

반유행열반인 2020-12-19 21:41   좋아요 2 | URL
이런 거 왜 좋아해 하나님...선 없는 분이구나 ㅋㅋㅋㅋ 읽고 팔 생각하면 흠난 책 빡치는데 그냥 가지고 있을 거면 별일 아닌 거죠...모두가 완벽할 수는 없다 너도 나처럼 흠이 있지만 엄청난 책이구나ㅋㅋㅋ

하나 2020-12-19 21:53   좋아요 2 | URL
˝너도 나처럼 흠이 있지만 엄청난 책이구나 ㅋㅋㅋ˝ 나도 따라해야지... 자기의 선이 어디까진지 알기 위해서라도 많은 책을 읽어봐야될 거 같아요. 당장 뭘 하겠다는 게 아니고... 그렇다고요..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12-19 21:55   좋아요 2 | URL
자꾸 읽다보면 선도 넓어지고 고양이 마냥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고 그러다 세상도 구하거나 말아먹고 그러는 거지..ㅋㅋㅋ이과생들이 응 그런 거 아니야 양자역학은 말야..나도 몰라..하고 쫓아오다 도망가는 상상 중...

scott 2020-12-19 22:09   좋아요 3 | URL
어떡해 제목,,,,제목이,,,
뇬 ㅋㅋㅋ 잡 ㅋㅋㅋ

자유로운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 인데

뭉쳐서 다니는 ㅋㅋㅋ
코로나로 비대면 시대 로봇이 이런 욕망을 채워주지 않을까요 ㅎㅎ
요리-테니스 까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할수 있고 천체 물리학은 별자리 외우고 ,,,하면 가능 !

알라딘 너무 한점이 새책을 중고책 처럼 취급해서 배송해주면서 100원짜리 설문지 돌려놓고 다음번 배송때도 주문자 한테 찰진 여 ㅅ을 먹여요
엄청 항의 하고 사진 찍어보내면 블랙리스트에 올려놓는다고 (지인이 알려줌)
이책이 만듬새부터 두툼해서 뭔가 출판사에서 꼬ㅁ꼼하게 처리 못하것일수도 있지만 눌림자국은 기냥 안펼려서 알라딘에서 창고에 쳐박아둔것 같네요

scott 2020-12-22 10:24   좋아요 2 | URL
열반이님, 하나님 오늘,,,노멀 피플 7회 보실지 모름 ㅋㅋㅋ

너무빠지면 안됌!!!

하나님 더 빠져들기전에 열반인님 저책 팔아치워버려욧!!

얄라알라 2020-12-20 01:20   좋아요 3 | URL
저도 리뷰 자알~~ 따라가며 읽다가 ˝나도 선이 없는 놈은 아니었구나...˝ 여기서 큭 했는데 첫 댓글에 하나님께서^^

반유행열반인 2020-12-20 08:46   좋아요 2 | URL
scott님 알라딘도 문화 재단 사회적 공헌 단체 아니고 그냥 책팔이 영리기업이다 생각하면 꾸겨진 거라도 팔아먹고 싶겠지...하고 맙니다 ㅋㅋㅋ 왜 저를 팔라고 하세요... 하나님 유다 만들고 저 예수 만드시려고....드라마 같은 위안이라도 있어야죠 아 쟤들 인생 연애사 나보다 난감하네 하고 위안도 받아야 하고요 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12-20 08:47   좋아요 2 | URL
얄리알라북사랑님도 웃음에 선 없는 분이시군요 ㅋㅋㅋㅋㅋㅋ

scott 2020-12-19 2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근데 ,북플에서 표지만 보면 옌레커 소설인줄 알았네요 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0-12-20 08:44   좋아요 2 | URL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새 버전 표지랑 너무 비슷하죠 ㅎㅎㅎ

2020-12-20 0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20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0-12-24 2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유행열반님!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12-25 07:4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페넬로페님도 메리크리스마스!!!!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 - 권력자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파괴하는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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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5 강준만.

영웅으로 죽거나, 끝까지 살아남아 악당이 된 자신을 마주하거나.

우연히 이 책 광고하는 기사에서 강준만 인터뷰를 보았다. 그래, 이거야. 민주주의 팔면서 가장 약한 사람들을 절벽으로 내몰고, 잘못을 지적하면 야이 수구꼴통 태극기새끼야, 우리 편은 착한놈 편이니까 괜찮아, 하는 꼴을 보면 저절로 욕이 나왔다. 그러면서도 내가 이상해진 걸까, 하고 자꾸만 되묻게 되었다. 그런데 강준만이 너 말고 걔네가 이상해진 거 맞아, 왜냐하면, 하나둘셋넷...하고 짚어줘서 그래 내 말이! 하고 새로 나왔다는 책을 덥썩 물어버렸다.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강준만이 6년 전에 진보에 대한 마지막 간언처럼 남긴 ‘싸가지 없는 진보’를 읽었을 때 하고 싶은 말은 대강 파악했고 뭐 똑같은 소리 하겠지 싶었다. 그 책 읽을 때 쓴 마음은 알겠고 별로 어려운 내용도 없었지만 뭐랄까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에다 원망 섞인 버럭질 보기 불편한 마음에 겨우 읽고 후다닥 팔아버렸었다. 당시 쓴 독후감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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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5 강준만
짧은 요약: 독선 오만 도덕적우월성과시 버리고
쫌 겸손하고 좋은 말로 하자 타협할 땐 하자 팀킬하지 말자 도덕성을 갖추자 상대를 까더라도  품위있게 까자
정치인들에게는 매우 무리한 요구로 보이지만 사회생활에 지침쯤은 되었다. 적어도 남들한테 미움 살 짓이 뭔지는 배웠으니 그런 짓은 안 하면 마음을 살 가능성이 높아지겠 지 라고 생각하는 건 순진한건가
강준만이 생각보다 순진한 건지도 모른다는 것과 진보에 대한 일말의 최후의 애정이 느껴지지만 아마 변절자라고 가루가 되게 까이고 있겠구나 생각하니 눙물이 또르르
내가 보수화 되는 건가 싶던 고민에 극렬 과격 그런 게 해결책도 혁명의 완성도 뭐도 안 되는 시대라는 변화된 시대와 사람들에 대한 쪽도 돌아보니 조금 다른 길 다른 방법도 궁리하게 될 것 같다. 정치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생활과 사회생활에서 정치가 아닌게 또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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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에 끄적인 거라고 해도 문장 왜 저래 ㅋㅋㅋ
일말의, 최후의 애정이 있을 때 쓴 이전 책에 비하면 이 책은 이제 야이 나쁜 새끼들아 니들이 민주주의고 나라고 다 말아처먹었어! 하고 냉소적으로 두들겨 패는 느낌이었다. 그때도 한 생각이지만 정작 강준만이 간언을 전하고 싶은 자들은 이 책을 읽지 않을 것이고, 그들은 바뀌지 않고 폭망해서 정권을 빼앗기든가 계속 자리 꿰차고 앉아서 우리를 은근하게 점점 더 힘들게 만들 것이다. 빼앗겨도 안 빼앗겨도 힘듦 ㅋㅋㅋ

43제곱미터라는 공간을 그려 보았다. 내가 처음 신혼집 차린 곰팡이 퐁퐁 피는 방은 그보다 작았지. 4로 나누어 11제곱미터, 4평이 안 되는 그 안에 홀로 들어앉아 보았다. 생존은 가능하지만 삶은 어려운 크기. 서울에서 그런 방에 9년 쯤 살아보았다.(지금은 열 배는 잘 산다.) 공장식 닭장 속 닭 한 마리 쯤으로 치부되는 존재란. 왜 그토록 우리를 위한다는 사람들이 우리를 개돼지닭 이상 취급하지 못하고 심시티 하듯 유에프오며 소행성이며 천둥 번개 같은 걸 자꾸 쏘아대는지 모르겠다.

읽고 난 소감은, 내가 봤던 인터뷰 읽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 같다. 그냥 읽을 수록 성질만 뻗침ㅋㅋㅋ 인용구 모음과 권력 행태 사례집 같은 이 책은 그렇게 새로운 내용은 없다. 까기 위해 열심히 모으고 모은 스크랩북 느낌...문제는 이미 말했지만 정작 봤으면 싶을 사람은 읽지 않는다는 거...


+밑줄 긋기
-“신념을 가진 사람이 가장 무섭다. 신념을 가진 사람은 진실을 알 생각이 없다” (23, 니체의 말)

-“혹시 우리가 민주화에 대한 헌신과 진보적 가치들에 대한 자부심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선을 그어 편을 가르거나 우월감을 갖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른바 ‘싸가지 없는 진보’를 자초한 것이 아닌지 겸허한 반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역경이 닥치면 빈말일망정 그런 성찰을 하는데, 풍요가 오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싸가지 없는 행태’를 집단적으로 해댄다. (37, 모두가 과거의 나와 싸우게 되지요…)

-민주화된 세상은 (반독재 투쟁과 같은) ‘2자 게임’이 적용될 수도 없고 적용되어서도 안 되는, 국민이 포함된 ‘다자 게임’이다. 나라의 장래라고 하는 범위와 시간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이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현재 문재인 정권의 기본적인 국정 운영과 정치 프레임은 ‘적대적 공생’이다. 강경한 독선과 오만을 저지름으로써 반대편의 강경한 극우보수 세력을 키워주고, 이런 구도하에서 다수 대중이 문재인 정권의 ‘독선과 오만’행태를 곰팡이가 필 정도로 낡아빠진 극우보수 행태에 비해 사소한 것으로 보이게끔 만들어 다수 지지를 얻어내는 동시에 장기 집권을 꾀할 수 있다는 셈법이다. 이 셈법은 잘 작동하고 있지만, 문제는 그런 과정에서 나라가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문재인 지지자들은 누가 더 저질인지에 대한 평가를 내려 최저질을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긴 안목에서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결코 그럴 수 없다. (45, 이 책에서 가장 강경한 표현 쓴 부분이 아닐까 싶음...살살 때려라…)

-“도덕적 우월 의식은 윤리적으로 볼 때 진보는 선이고, 보수는 악이라는 생각이다. 이는 진영 논리, 이분법의 표현이자 무능의 발로다. 무능한 사람일수록 편을 따지고, 실력이 없을수록 진영에 매달리기 마련이다. 선한 편과 나쁜 편으로 나누어서 생각하면 선하다는 이유만으로도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 굳이 실력을 키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상대를 열심히 비판하고, 부정하면 그것으로 족하다.”(81, ”이철희의 정치 썰전” 인용)

-“인간이 되는 것의 본질은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고, 때로는 충심을 위해 기꺼이 죄를 저지르는 것이고, 친근한 인간관계가 불가능할 정도로까지 금욕 생활을 고집하지 않는 것이고, 결국에는 삶에 의해 패배하고 부서질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인바,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보여준 데 대한 불가피한 대가이다.”(194-195, 조지 오웰이 간디의 비타협적 도덕적 기준 언급하며 한 말)

-“뭐 치열하게 경쟁하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들이죠. 우리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하고요…”(18원 문자 폭탄 등 경선 상대 후보 비방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측면을 짚은 앵커의 말에 응답...왜 음성지원 됨...)(199)

-자신의 정의감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실제로 정의로운 일을 하는 것보다 자신이 정의로워 보이는 것, 정의로운 행동을 했다고 인식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온갖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202)

-“이들은 자신들이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믿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믿음을 상호 강화해주는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왜 민주화 세대가 오히려 더욱 피해자를 비난하는지 알게 되었다….세상이 이만큼이나 좋아졌다고 믿는 민주화 세대는 더이상 진보가 아니다. 이들은 이미 세상은 진보했으며 그 진보를 만들어낸 것이 자신이라는 생각에 취해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신보수주의자들과 완전히 똑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다. 제발이지, 민주라는 이름에 그만 먹칠해줬으면 한다.”(302-303, 권김현영이 한겨레에 기고한 ‘왜 민주화 세대는 피해자를 비난할까’ 인용)

-“자신의 ‘선의’를 믿으면 안 됩니다...그래서 민주주의 국가라면 자신이 선의를 가졌다고 생각(혹은 착각)하는 사람들이 시스템 상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균형과 견제,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게 바로 민주주의 정신이니까요. 자신들이 정의롭다는 착각에 빠진 민주당 사람들의 ‘개혁’시리즈가 파괴하는 게 바로 이 시스템입니다...정당을 지지하더라도 진영에서 벗어나 맨 정신으로 합시다. 아군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착하지 않고, 적군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악하지 않습니다.”(315-316, 이새끼들아 자꾸 진중권이 한 말에 밑줄치게 하지 말라고...나 진중권 안 좋아한다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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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12-15 20:38   좋아요 3 | URL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너님들도 열사님들 됐어야 해...그럼 이토록 추해지지 않았을 거야 싶은 마음...(부디 좌표 찍히지 않고 그분들이 나 때리러 오지 않게 해주세요...)

하나 2020-12-15 20: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진짜, “빼앗겨도 안 빼앗겨도 힘듦.” 포스팅 읽고 생각해보니까 극우정당의 가장 큰 수혜자는 현정부라는 생각이 드네요. 똑바로 하라고 그쪽이랑 싸워야 되는데, 빼앗기지 않는데만 너무 큰 에너지가 낭비되어버려...

반유행열반인 2020-12-15 20:40   좋아요 2 | URL
하나님 댓글 위치 고쳐서 저 유령한테 말 검 ㅋㅋㅋㅋㅋ

하나 2020-12-15 20:51   좋아요 2 | URL
북플이 버벅거려서 두개가 올라갔어여 ㅋㅋㅋㅋㅋ 아아아 저는 전전직장에 있을 때 정권 바뀌면서 어떻게 교육 헤게모니 가져가는지 너무 한가운데에서 봐가지고 ... 참.. 여러 생각을 했어요. “아군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이게 진리인 듯. 맨정신으로 살기 참 어려워요

반유행열반인 2020-12-15 20:55   좋아요 2 | URL
적군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아니라니 누구도 너무 미워하지 않고 살라고요. 다 죽어버려! 외치는 거 부터 자제 좀ㅋㅋㅋ

하나 2020-12-15 20:58   좋아요 2 | URL
열반인님 자제하려고 할 때, 뒤늦게 다 죽어버려! 하고 싶어져서 서러운 1인 ㅋㅋㅋ (지랄 총량의 법칙은 과학이고 일찍 좀 하지 나야 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12-15 21:05   좋아요 2 | URL
저 대신해주시면 옆에서 맞아맞아 해줄게요 ㅋㅋㅋㅋㅋ

scott 2020-12-15 22:24   좋아요 1 | URL
ㅋㅋㅋ두분 천생연분 찰떡 댓글 이웃임 ㅋㅋㅋ

scott 2020-12-15 22:25   좋아요 1 | URL
북플에서 댓글 부터 보여서 아랫 포스팅에 달았다가 급하게 지우고 다시 올라옴 ㅋㅋㅋ

scott 2020-12-15 2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떡해 열반인님 제가 즐겨 쓰는 단어만 요기에 나열하셨어 저질 ㅋㅋ 최저질ㅋㅋㅋ
초저질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12-15 22:18   좋아요 2 | URL
제가 아니고 강준만 선생이 하신 거 저는 퍼왔어요 ㅋㅋㅋ

scott 2020-12-15 22: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북플 댓글이 스스로 좌표 찍어요. 북플에서 많이 화제되고 있는 책들 위주로 좌표로 올려 놓아서 저는 가끔 이웃님네 놀라가서 엉뚱한곳에 댓글 쓰고 옴 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12-15 22:21   좋아요 1 | URL
아 뭔가 무섭네요 ㅋㅋㅋ다 이웃공개 해버려? ㅋㅋㅋ

scott 2020-12-15 22:23   좋아요 4 | URL
이거 이상해서 제가 관리자에게 문의 했는데 잘팔리는 책들(알라디너들이 자주 포스팅하는 책들이 잘팔린다고 함)부터 화면에 보여준데요 ㅋㅋㅋ
집콕 일상이 누적되다보니 온갖 오류 잡아서 불편하다고 ㅋㅋㅋ 외치고 다니는 1人

페크pek0501 2020-12-16 12: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권력은 뇌를 바꾸고 인생관도 바꾸죠. 아마 인간관계도 바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권력 같은 건 키우지 않기로 했어요.
뭐, 키우고 싶어도 키울 수 없는 거지만요...ㅋ

반유행열반인 2020-12-16 17:16   좋아요 2 | URL
네 저도 그 근처에 가고 싶지도 그런 인간 되고 싶지도 않네요 ㅎㅎㅎㅎ조용히 묻혀 살래요.
 

브로콜리너마저 - 2020

희미해져가는 날들을 붙잡는게 삶이라면
올해는
https://youtu.be/Dkca-PewJwk

2020은 모두가 원더키디가 되어 우주를 나는 신세계일 줄 알았지.
하얗고 검은 부리를 갖게 된 사람들이 각자의 둥지 안에 웅크릴 줄은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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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12-14 22: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영원히 오지 않을 거 같던 2020년도 이렇게 저물어 가네요. 여러모로 원더하긴 했던 한 해였고요. 마지막 줄은 시네요! 정말 “하얗고 검은 부리를 갖게 된 사람들이 각자의 둥지 안에 웅크릴 줄은 몰랐지.”

반유행열반인 2020-12-14 22:24   좋아요 2 | URL
나는 검은부리가 좋은데 다 썼어요 ㅋㅋㅋ 인터넷에서 몇 개 사야겠다 까악까악

하나 2020-12-14 22:27   좋아요 2 | URL
저도 ㅋㅋㅋㅋ 검은부리가 좋은데 근데 그러면서 그런 걸로 까탈부리는 사람 아닌 척하려고 동생이 준 흰 부리 100개 받음 까악까악

반유행열반인 2020-12-15 10:37   좋아요 1 | URL
하얀 까마귀라니 초레어네요!!!!! 마스크 주는 동생 참하네...ㅎㅎ(호감 표시)

link123q34 2020-12-15 12:43   좋아요 2 | URL
대체 이게 무슨 말인데 이렇게 재밌는 얘기일까 잠시 슬펐는데.. 각주보고 이해했어요ㅋㅋ 못재밌고 지나칠뻔했는데 감사해요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12-15 12:58   좋아요 2 | URL
오늘은 저도 하얀 까마귀에요 ㅎㅎㅎ

scott 2020-12-14 22: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점심 브로콜리 뺸 감자 스프로 냠냠 ㅎㅎ 근데 원더 키디 언제적 만화에요??

반유행열반인 2020-12-15 06:55   좋아요 2 | URL
저 일곱살 인가 1990년에 봤어요 올림픽 때였나 외국인들 오면 티비 틀었을 때 나올 므찐 sf만화 하나 만들어라 해서 뚝딱 만들고 외국가서 상도 탔다던데 ㅋㅋㅋ 감독님은 삼 년 전에 별세하셨네요...
 
[eBook] 사람, 장소, 환대 현대의 지성 159
김현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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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3 김현경.

아홉 살 때, 반에서 나 혼자만 한 아이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지 못했다. 엉엉 울었다. 얼마 후 있을 내 생일에 복수하는 대신 그 아이를 초대했다. 서로 끌어안고 미안하다고 엉엉 울면서 훈훈하게 마무리 되었다. 그렇지만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인생 전반적으로 다른 아이들과 잘 지내지 못했다. 열두살, 열세살 때 같은 반 여자아이들과 몸싸움을 벌인 적이 몇 번 있다.(남자아이들과는 거의 매일 몸싸움을 했다. 주먹질 퍽퍽 쌍욕 팍팍) 나보다 키가 한참 큰 한 아이는 살벌하게 침을 튀기며 난 너 진짜 싫어, 애들 다 너 싫어해, 너는 너가 잘나서 회장된 줄 알지, 랩퍼처럼 분노에 찬 디스를 쉴새 없이 늘어놓았다. 멘탈 와장창이었다. 또다른 아이와도 어쩌다가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는 걸 다른 아이들이 떼어놓았다. 그 아이는 내가 붙잡아서 목걸이가 끊어졌다며 고소할 거야! 하고 비명을 질렀고 나는 정리되어 있던 책상과 의자를 다 집어던지며 울었다. 중학교 때도 같이 밥 먹던 아이와 소원해져 한동안 급식을 혼자 먹었다. 고등학교 때는 힘들게 들어간 밴드부 아이들과 사이가 나빠져 탈퇴하면서 익명 게시판에 욕을 한바가지(실력도 없는 것들이 연습도 지겹게도 안 해!) 적어 놓기도 했다.

적어놓고 보니 나한테 문제가 많았나 보다ㅋㅋ 내가 잘못한 것이 분명 있다. 내 생각과 느낌을 거르지 않고 말하는 편이었다. 거기에는 상대의 부족함이나 실수에 대한 지적도 포함되어 있었다. 온건한 대화가 어떤 형태인지 자라면서 경험해보지 못했다. 비난하고, 불만을 표하고, 욕설을 내뱉는 아빠. 당장 도망가거나 죽어버릴 것 같은 어두운 얼굴로 입을 꾹 다문 엄마. 그런 부모를 보며 나와 동생은 매일 서로를 죽일 듯이 싸웠다. 나는 늘 불안하고, 긴장하고, 웃는 법을 몰랐다.
칭찬하거나 호감 표현하는 말을 믿지 않았다. 친절과 도움은 의심했다. 이런 나를 왜? 무슨 목적이 있겠지. 이런 마음은 최근까지도 많이 남아 있었다. 마음을 열지 않고 숨었다.
그런데도 사람에 대한 집착은 심해서, 너무 쉽게 누군가를 좋아했다. 사랑이 나를 구원할 줄 알았다. 막상 친밀한 관계가 되면 상대방이 잠시라도 부재할 때마다 공황 상태가 되어 내곁에 있어주지 않는 그 사람에게 원망의 말을 쏟아 붓고 울기만 했다.

그나마 지금은 평온해진 편이다. 그 사이 내가 무엇을 잘하거나 어떤 부분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냥 나라는 이유만으로 내 존재를 긍정해주고 나를 좋아해준 사람들을 만난 덕분일 것이다. 나의 잘못과 괴로움과 못난 부분을 드러내도 그 사람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여주고 그럴 수도 있겠다, 라고 해 주었다. 기댈 곳이 되어 주고, 내게 기대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많지 않은 친구들, 대학 동아리 선후배들, 새로 만든 가족이 그랬다.

내가 잘 하지 못하는 부분이라 그런지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 소통의 원리에 관해 많이 궁금했다. 커뮤니케이션, 대중매체와 온라인 매체, 사회심리학, 미시사회학이라 불리는 상징적 상호작용론에도 그래서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구조나 거시적 담론보다는 사람들 간에 관계가 맺어지는 과정과 사회가 유지되는 작은 연결고리들에 더 호기심을 가졌다. 뭐 아주 잠시였고 ㅋㅋㅋ몇 가지 책을 찾아보다 말았고ㅋㅋㅋ 그래서 제대로 알게 된 건 하나도 없다.

이 책은 사람이 어떻게 사회 안에서 사람일 수 있는가, 사람 대접 받지 못하던 존재나 상황에 관해 다양한 사례를 들면서 사람이 사람 아닌 존재로 취급받지 않기 위해 사회란 어떤 곳이어야 할지 풀어나갔다. 책의 구성방식이나 표현방법이 독특하게 느껴졌다. 수많은 개념과 사상가들의 주장과 역사적, 시사적 사례를 다루는데 그것들이 이야기하려는 주제와 주장에 착착 맞게 이어졌다. 책이 두껍지 않은데 설명이 명료하고 잘 읽혔다. 뭐 그래서 책 내용을 확실히 잘 이해했냐 하면 나새끼의 산만함과 집중력 저하로 헬렐레 하고 읽은 부분이 더 많다. ㅋㅋㅋ

누구나 인정 받고 싶어하고 어딘가에 소속되어야 안정감을 느낀다. 때로는 내가 가진 호감을 상대방에게 투사해 친밀도와 적정 거리를 유지하지 못했다가 개까이고 엉엉 울거나 너는 나한테 왜 이리 모지냐!하고 삐지기도 한다. 반대로 내 안의 편견과 혐오 때문에 누군가를 오해하고 배척하는 일도 자주 생긴다. 혼자 아닌 여럿이 사는 안에서 사람 시늉하면서 사는 게 이렇게나 힘들다. 일일이 이론적인 틀이나 담론을 떠올리고 적용하면서 살 수는 없겠지만, 사회 현상을 이해하고, 소외와 억압이 발생하는 이유를 알고,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더 잘못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고민하는 데 도움이 될 책이었다. 원래 그런 거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것들에 설명을 시도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시도는 언제나 고마운 일이다. 그걸 내가 읽을 수 있는 언어의 책으로 묶어 내주는 학자, 저자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밑줄 긋기
-하지만 우리를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매일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대접이다. 사람행세를 하고 사람대접을 받는 데 물질적인 조건들은 여전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전쟁은 인간 대 인간의 관계가 아니라 국가 대 국가의 관계이다. 전쟁 관계에서 개인이 서로 적이 되는 것은 우발적이며, 이때 개인은 인간도 아니고 심지어 시민도 아니며 단순한 병사일 뿐이다. 조국의 구성원이 아니라 그 방위자일 뿐이다. 결국 국가는 적으로서 다른 국가만을 가질 수 있을 뿐 사람들을 적으로 삼을 수는 없다.” 루소는 여기서 병사를 시민이나 인간과 대립하는 개념으로 보고 있다. 실로 병사가 되는 순간 개인은 시민권의 정지를 경험한다. 그는 헌법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예외 지대로 들어가며-물론 이 예외 지대의 존재 자체는 헌법에 규정되어 있지만-잘못을 저질렀을 때 형법이 아닌 군법에 따라 처벌받는다. 동시에 그의 인간으로서의 권리 역시 정지된다. 무엇보다 그는 우호의 권리-친교의 권리-를 갖지 못한다. 적을 인간으로 대하는 것은 병사가 결코 저질러서는 안 되는 중대한 죄이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돌아온 군인들은 아무런 이야깃거리도 갖고 있지 않았다. 진흙 구덩이 속에서 죽음과 싸우며 시간이 지나가기만 기다렸던 그들의 전쟁 경험 속에는 주체성을 증명할 아무것도, 서사를 구성할 어떤 단편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말이 끄는 전차를 타고 학교에 다녔던 세대가 벌판에, 구름 외에는 변치 않는 게 하나도 없는 풍경 속에 던져져 있었다. 독가스가 폭발하고 죽음이 흐르는 그곳에서 그들은 왜소하고 부서지기 쉬운 인간의 몸뚱이일 뿐이었다.”

-왜 어떤 범주의 사람들-흑인, 재일조선인, 불가촉천민 등등-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럽다고 여겨지는가?
“순수와 위험”에서 더글러스는 더러움을 자리에 대한 관념과 연결시켰다. 더럽다는 것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신발은 그 자체로는 더럽지 않지만 식탁 위에 두기에는 더럽다. 음식이 그 자체로 더러운 건 아니지만, 밥그릇을 침실에 두거나 음식을 옷에 흘리면 더럽다. 마찬가지로 목욕 도구를 옷장에 두거나 옷을 의자에 걸어두는 것, 집 밖에서 쓰는 물건을 실내에 두는 것, 위층의 물건을 아래층에 두는 것, 겉옷이 있어야 할 자리에 속옷이 나와 있는 것 등은 더럽다.”

-한편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오염의 메타포는 그것이 겨냥하는 대상이 지배계급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음을 함의한다. ‘더럽다’는 말은 죽일 수도 길들일 수도 없는 타자에 대한 미움과 두려움을 담고 있다. 그 말은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는 동시에, 그러한 부정이 굳이 필요했음을 인정함으로써 그의 주체성을 역설적으로 인정한다. 그래서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더러운 년’이라는 욕을 들어도 전혀 위축되지 않으며, 오히려 이런 말을 듣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것이다.

-말하자면 고프먼은 의례의 교환에 참여할 자격이라는 측면에서 다음 세 가지 경우를 제시하는 셈이다. 의례의 교환에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면서 상대방에게 존중의 의례를 기대하고 요구할 수 있는 경우, 특정한 행동 노선을 따를 때만 조건부로 의례 교환에 참여할 수 있는 경우, 의례 교환의 장에서 배제되어 ‘탈인격화’의 과정을 겪는 경우. 여기서 뒤의 두 경우에 속하는 사람들은 성원권이 불완전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의 새로움을 드러내는 것은 이런저런(흙과 같은) 소설이 아니라, 근대소설이라는 장르 자체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 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가장 비천한 사람도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다른 사람과 똑같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그전까지 얼굴이 보이지 않고 목소리가 들리지 않던 사람들이 사회 안에 현상하게 되는 것은, 소설이 배양하고 확산시킨 이 새로운 상상력에 힘입어서이다.

-하지만 한 사람이 자존감을 유지하려면, 그에게 실제로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단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자존감은 아큐의 ‘정신승리법’과 비슷해져 버린다. 신자유주의의 모순은 상호작용 질서의 차원에서(즉 상징적으로)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주장하면서, 구조의 차원에서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단을 빼앗는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신분주의와 학교 폭력의 연관성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우리 사회의 신분주의가 위험 수위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가장 날카로운 경고음은 교실에서 나온다. ‘일진’이 더 이상 가난하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아니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교실 내의 위계는 사회의 위계를 닮았다. 가진 게 많은 아이들, 지배 문화의 요구에 가장 잘 부응하는 아이들이 꼭대기에 있고, ‘자본’이 가장 부족한 아이들이 밑바닥에 있다. 위에 있는 아이들은 아래 있는 아이들을 괴롭힌다. 별다른 이유 없이, ‘장난삼아’ 그래도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관계를 지배하는 감정은 경멸이다. 학교는 겉으로는 존중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경멸을 가르친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모욕하고, 가난한 아이들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힘센 어른은 힘없는 아이들을 막 대해도 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면서 말이다. 그래서 겉치레로 하는 말과 진짜 메시지를 구별할 만큼 영리해진 아이들은 자기보다 못한 아이를 경멸함으로써 학교의 가르침을 실천한다. 마치 어른들이 입 밖에 내고 싶어 하지 않는 사회의 진실을 아이들이 연극의 형식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교실이라는 무대 위에서 날마다 상연되는 잔혹극. 그러니 이 연극에서 몇 명쯤 죽어나가더라도 너무 호들갑 떨지 말기로 하자. 지금 아이들은 사회에 나갔을 때 꼭 필요한 두 가지 기술-경멸하는 법과 경멸에 대처하는 법-을 익히는 중이다.

-사람을 연기하려면 적절한 무대장치와 함께, 연기를 중단하고 들어가 쉴 수 있는 무대 뒤의 공간이 필요하다. 언제나 타인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 예를 들어 노숙인이나 재소자는 이러한 공간의 구분이 무너져 있기 때문에 사람을 연기하기 어렵다. 예고 없이 빈민가를 방문하여 ‘봉사 활동’을 하는 유명 인사들-나는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지으며 쪽방으로 기어들어가는 박근혜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다-은 시혜의 대상이 된 빈민에게 원치 않는 노출을 강요함으로써, 그들이 상대방을 동등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지 않음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낸다. 독거노인을 ‘어르신’으로 부르는 따위의 정치적 수사학이 이 사실을 감추지는 못한다.
한국 사회가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다루는 또 하나의 방법은 효도나 돌봄 같은 전통적인 가치를 강조하면서 가족에게 짐을 떠넘기는 것이다. 조금 전에 생활보호 대상자를 애완동물에 비유했지만, 한국에서는 애완동물이 될 자격조차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폐지를 주워 팔면서 혼자 사는 노인이 장성한 자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초생활수급권을 얻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이런 사례를 조명할 때 언론은 이 장성한 자녀에게 실제로 부양 능력이 있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만일 부양 능력이 있는데도 노인을 모시지 않는 거라면, 그 자녀는 ‘인륜을 저버렸다’는 비난을 받는다. 요컨대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도덕과 풍습이라는 것이다. ‘시스템의 한계’가 논의되는 것은 자녀 역시 막노동을 하거나 몸져 누워 있는 등 극단적인 빈곤 상태에 처해 있을 때 뿐이다.
간단히 말해, 한국 사회는 B와같은 사람들을 일차적으로 A의 위치로 옮겨놓으려 하며,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만 공적부조 시스템을 가동한다.

-고래들은 아무 매개 없이 동시성 속에서, 모두가 모두에게 직접 연결되어 있다. 동일한 소리의 장 안에 갇혀 있기에, 그들은 교신 대상을 선택할 수 없으며 침묵 속으로 물러날 수도 없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서로에게 청각적으로 완전히 노출되어 있는데, 이는 언제나 상대방을 침범할 수 있고, 또 상대방에 의해 침범될 수 있음을 뜻한다. 반면 도서관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영혼들은 책을 매개로 서로에게 접근한다. 그들을 연결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 소통 가능성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지평 전체를 감싸는 소리의 궁륭이 아니라, 도처에서 조용히,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교류들이다. 이 교류는 거리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혼자 책 쏙으로 침잠하는 것을 모두 포괄한다. 독서와 대화 사이에는 아무런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독서는 또 다른 대화-비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가격을 갖는다는 것은 비교할 수 있으며 대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인간은 그 자체가 목적인 존재이기에 가격을 갖지 않는다. “존엄성의 가격을 계산하고 비교하는 것은 곧 그것의 신성함을 모독하는 것이다.” 타자를 사람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그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에 대한 질문을 괄호 안에 넣은 채 그를 환대하는 것을 말한다. 타자가 도덕적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이러한 환대를 통해서이다. 타자는 사회 안에 그의 자리를 마련해주는 우리의 몸짓과 말을 통해 비로소 사람이 되고, 도덕적 주체가 된다.

-...오늘날에는 누구든 자기가 원하는 정보를 선택적으로 게시할 수 있으며, 실제와 다른 정보를 게시하는 것도 허용된다...하지만 여기에는 중대한 예외가 있는데, 젠더에 관한 정보가 그것이다. 젠더 정보를 게시하지 않거나 실제와 다르게 게시하는 것은 사회규범의 심각한 위반으로 간주된다. 물론 이 규범은 현대 사회의 작동 원리에 어긋난다. 사람의 수행이 젠더화되어야 할 논리적 이유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길게 본다면 법적 주체의 탈젠더화 추세와 더불어 이 규범도 무너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정체성에 대한 인정은 특정한 서사 내용(“나는 레즈비언이다”)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서사의 편집권에 대한 인정이다. 우리는 정체성운동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지 못했더라도(펨이나 부치 같은 단어를 모른다 해도) 그저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는 행위를 통해 그러한 인정을 표현할 수 있다.(“네가 레즈비언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네가 오늘은 레즈비언이라고 고백하고 내일은 그것을 부인해도 상관없다. 나는 너에 대해서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너 자신임을 인정한다”)

-부모는 아이가 자기들로부터 나왔고, 한때 자기들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잊어야 한다. 부모는 무엇보다 아이에게 생명을 준 사람이 자기들이고, 그들이 아이를 죽일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야 한다. 이 망각으로부터 사회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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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12-13 22: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런저런 고난과 역경의 학창시절을 뚫고 여기까지 잘 자라주셨네요. 멋있다!

반유행열반인 2020-12-13 22:43   좋아요 2 | URL
역경이 아니라 못난 시절이요 ㅋㅋㅋ 좋은 이웃님들의 오구오구도 제가 사람 구실하는데 기여하고 계십니다 ㅋㅋ

하나 2020-12-13 22: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좋아해요. 가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라는 문장이 떠오를 때가 있었어요. 사람이 된다는 건 내가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게 아니라, 누군가가 자리를 내줘야만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게 너무 잔인한 거 같아요. 아무리 운이 좀 좋지 않았다, 나도 걔들 별로였다, 혼자인 게 오히려 편했다, 이렇게 넘어가보려고 해도 끝내 아프게 남는 지점들이 있죠. ㅠㅠ 저는 요즘 레비나스 아저씨의 ˝판단정지˝가 왜 환대의 중요한 개념일까 혼자 생각해보고 있는데요. 박찬욱 감독이 대단한 지점이 그걸 벌써 오래전부터 하고 있는 거 같아요. 너 쥐니? 너 싸이보그니? 너 박쥐니? 그렇구나... 밥 먹어...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하는 게 환대의 시작이 맞는 거 같아서요...

반유행열반인 2020-12-14 06:42   좋아요 1 | URL
다른 곳에서도 판단정지 이야기 들었었는데 ㅋㅋㅋ 이미 우리 존재가 도수랑 색 들어가고 이리저리 휘어지게 갈린 렌즈 같아서 있는 그대로 보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이상해 보이는 것들을 더러운 것 제 자리가 아닌 것 치부하는 티를 안 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ㅎㅎ나부터 잘 하자...

하나 2020-12-13 22: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이 밑줄긋기하신 첫 줄도 완전 최애 문장 🧡

반유행열반인 2020-12-14 06:42   좋아요 1 | URL
뒤늦게 읽은 내가 따라쳤네요 ㅎㅎㅎ

scott 2020-12-13 23:3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우리 사회의 신분주의가 위험 수위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가장 날카로운 경고음은 교실에서 나온다. ‘일진’이 더 이상 가난하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아니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교실 내의 위계는 사회의 위계를 닮았다. 가진 게 많은 아이들, 지배 문화의 요구에 가장 잘 부응하는 아이들이 꼭대기에 있고, ‘자본’이 가장 부족한 아이들이 밑바닥에 있다. 위에 있는 아이들은 아래 있는 아이들을 괴롭힌다. 별다른 이유 없이, ‘장난삼아’ 그래도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관계를 지배하는 감정은 경멸이다. 학교는 겉으로는 존중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경멸을 가르친다]

a밑줄 쫘악

열반이님 멱살 잡은 뇬 ㅋㅋ ,뻔치ω-
열반이님한테 침튀긴 뇬 ㅋㅋ, 마스크 씌우기╭┈┈┈┈╯
열반이님한테 욕을 한바가지 한 뇬ㅋㅋ 한개 바가지 ╰┈┈╯
열반인님한테 익명에 욕을 바가지로 한뇬 ㅋㅋ ╰┳┳╯대야를
상처받고 이해받지 못한 어린시절이지만 열반인님 정말 잘큰 어른,소요님 말씀처럼 여기 까지 오셨네요

한국 사회가 언어에서 부터 모든 계급과 멸시 차별 상처가 시작되는것 같아요.
존경어 존칭 모두 없애버리고 미쿡 처럼 모두 ‘YOU‘라고 했으면 좋겠어 요 ㅋㅋ
(๑•̀ڡ•́๑)


하나 2020-12-13 23:37   좋아요 2 | URL
진짜 scott님 짱 ㅋㅋㅋㅋ 같이 가요 진짜 뇬뇬뇬 다 가만두지 않겠어!!! 🔥(근데 익명으로 욕한 건 문맥상 어린 열반인님인 것 같다... 역시 훌륭 우리 열반인님은 참지않긔!!! 🔥)

반유행열반인 2020-12-14 06:43   좋아요 2 | URL
저도 멱살 잡고 욕하고 익게에 욕 달아서 같이 처맞았네요 ㅋㅋㅋㅋ 저도 존경어 존칭 빼고 이름 부르는 문화 좋을 거 같아요. 이름 부르는 게 하대가 안 되는 사회이면 좋겠네요.

페넬로페 2020-12-13 23: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세상 살면서 정말 이런 선택이 가장 어려워요~~
그냥 멱살잡고 싸우느냐!
아님 똑같은 사람 되지 않게 참느냐!
어떡하면 좋을까요?

반유행열반인 2020-12-14 06:45   좋아요 5 | URL
멱살 잡고 싸우면서도 같은 사람은 되지 않게 멱살 잡을 상대를 봐 가면서 ㅋㅋㅋㅋ나보다 센 놈이면 잡고(그러다 처맞고) 나보다 힘든 이면 먼지 털어주고 상냥한 걸 원칙 삼아 살고 있는데 그런 태도조차 뭔가 고저 따지는 거라 어렵습니다 ㅠㅠ

han22598 2020-12-15 02: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릴때 거의 쭈그러져 있었기 때문에, 반님처럼 믓지게 자기를 표현하며 싸워나가는 (^^) 친구들이 부러웠어요. 반님같은 친구가 나도 있었으면 했었어요 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0-12-15 06:53   좋아요 2 | URL
별로 믓지진
않고 저도 쭈그리에 울보였는데 질질 짜면서 할 말은 하는 정도였어요 ㅋㅋㅋ잘 찾아보면 저 같은 친구 있으실 걸요?(어디? ㅋㅋㅋ여기ㅋㅋㅋ)

하나 2021-01-08 20: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얘드라~~~ (존경하는 알라딘 이웃님들..ㅋㅋ) 책은 사람 장소 환대, 리뷰는 반유행열반인님이다... 이거시 이달의 당선작! ㅋㅋㅋ 축하드려요! 우리 누나 좋으면 좋다고 말하라는 나의 충고 새겨들었군 ㅋㅋㅋㅋ 알라딘놈들..

반유행열반인 2021-01-08 20:14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왠지 떼써서 받아 먹은 느낌 난다...하나님도 페이퍼 당선 축하드려요. 나는 꼭, 하나님 글을 간직할게!!!!

scott 2021-01-08 22: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나님 ㅎㅎ알라딘놈들 ㅋㅋ(북플 기능 넘 후짐) 열반인님 이달의 당선 추카~추카~

반유행열반인 2021-01-08 22:14   좋아요 1 | URL
scott님도 2관왕 축하드립니다!!! 알라딘놈 아니 알라딘님들 비천한 제 리뷰도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굽신굽신 ㅋㅋㅋㅋㅋ

2021-01-11 1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11 2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