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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2020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김금희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평점 :
-20210120 김금희, 은희경, 권여선, 정한아, 최은미, 기준영.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은 처음 읽었다. 문학상에 관해 궁금해서 찾아보니, 2013년에 첫 시작해서 몇 년 하다 돈 없어서 중단했다가, 문학동네에서 다시 시상한지 이 년 쯤 되었다고 했다.
내가 굳이 소설 비슷한 걸 쓰기로 마음을 먹고, 그 결과 쓰여진 소설에서 조금 옛날 냄새랑 인간에 대한 환멸 같은 게 느껴진다면, 거기에는 김승옥이 기여한 바가 있을 것이다. 김승옥의 소설을 읽은 중학생 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 때 쓴 건 독후감이었지만. 어쨌거나 그로부터 20년 뒤에는 단편소설을 흉내낸 뭔가를 끄적이게 되었다.
작년도 수상집을 읽게 된 건 역시나 김금희가 대상을 타서겠지. 제목도 범상치 않았다.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래. 막상 읽은 소감은 김금희네, 그런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금희는 왠지 몇 년 전에 지나간 것 같다. 그러니까 양희와 국화와 경애와 매기까지, 그 다음은 조금 아리송해지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좋아요. 그냥 페퍼로니를 안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다. 소설은 좋았다.
은희경 소설은 놀랍게도 처음 읽는다. 집에 예전 소설집 수상작품집 등등 엄마가 그러모아 둔 책 꽤 많은데 읽은 게 하나도 없어. 나 대신 뉴욕 친구집에 승아를 보내놓고 민영이랑 티격태격 하게 만들어 놨는데, 음, 아직 젊은 감각이랄까 소설에 나이가 묻어 있지 않은 게 좋았다. 두 사람이 상대방의 입장을 모르고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각자의 하루를 요일 따라 보여주는데, 그게 현실에서 잘 못하는 일이니까, 이 시점 요 시점 쟤의 입장에서 보는 일은 다들 잘 못하고 하기 쉽지 않은 일이라 소설이 대신해 주니 좋았다.
음, 그런데 나이 묻은 권여선의 소설은 또 그것 대로 좋았다. 나이 먹어야 쓸 수 있는 글을 자꾸 생각하게 된다. 나이 먹어도 계속 쓰는 일의 대단함도 새삼 느낀다. 이 소설 읽고 잔 날 꿈을 꿨다. 엄마는 살아계신데, 며칠 후 돌아가실 거라고 딱 날짜도 정해져 있었다. 금요일이 장례시작, 월요일에 발인, 그런데 난 두 날짜 중 하루 약속이 잡혀 한 날짜에만 거기 갈 수 있다고 마음 먹고 있었다. 와… 하여간에 둘 중 한 날 온다 그러고 돌아서다가 다시 엄마를 못 본다는 생각을 하니 막 너무 슬퍼져서 엄마, 하고 부르며 가던 길을 돌아 엄마에게 다시 갔다. 난 뭔 꿈을 꿔도 패륜왕이야...그런데 누군가를 잃을 예정이라는 감정은 정말 생생하게 서러웠다. 어릴 때 딸을 두고 집 나온 엄마가 다 자란 딸과 여행을 가는 장면이 다정해 보이면서도 심란했다. 상실이라든가 아이와 멀어지는 이야기는 같이 묶인 다른 소설들에서도 반복해서 등장했다.
그러니까 어젯밤에 너무 잠이 안 와서 이렇게 저렇게 뒤척이다 결국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바탕은 검게 글자는 희게 해서 정한아의 소설을 한 편 읽고 잤다. 정한아 소설도 처음 읽었다. 나는 온통 처음이지. 건물주의 딸, 하면 그럴싸하지만 그 나름의 고충이 있답니다...하는 소설이다. 설정만 보면 고까워할 사람도 있겠지만 소설을 직접 읽으면 나름 절박하다. 시원이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은 나도 막 알 것 같았다. 아이가 몇 달만에 수영장에 갔는데 그 한 시간 반 정도가 되게 무서웠다. 통학용 자동차도 차가운 수영장물도 수영강사도 하여간에 제발 아무도 아이를 해치지 말고 다시 나에게 온전히 돌려다오, 하는 마음이었는데 그런 날 밤 이 소설 읽으니 그런 마음이 다시 떠올랐다. 소설 제목이나 상징은 솔직히 좀 끼워 맞춘 거 같아서 별로였다. 낙원 예식장이 요양원이 되고, 딸아이가 엄마 싫다고 친아빠 있는 호주로 가기 전 캥거루 인형을 건네주고 가고, 예전에 두번째 남편하고 싸우고나서 바다에 갔다가 최라는 남자랑 만날래다가 못 만나고 내 인생 온통 망했고 303호도 304호도 301호도 노답이야...하는 이야기라서 제목이 ‘바다와 캥거루와 낙원의 밤’인가 보다. 아 제목 너무 작위적이다.
최은미는 몇 년 전에 친구가 ‘눈으로 만든 사람’ 읽어보라 해서 찾아 읽고는 그때부터 젊은작가상 수상집을 챙겨보게 되었었다. 그 소설과 이 소설이 닿는 부분이 있는데, 너무 슬픈 지점이었다. 강원도, 하니까 ‘아홉 번째 파도’도 생각 나고. 미산도 척주도 가상의 지명 같지만 산그림자나 일찍 서늘해지는 저녁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게 막 생생하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지나간 일이지만, 전혀 아플 것도 없고 억울하기조차 하겠지만, 그 일이 한 사람의 인생이 내내 통과해야 하는 길고 긴 터널 같은 어둠이 될 수 있고 그것 때문에 자기를 자꾸 죽이고 싶어지고 자신을 싫어하게 될 수 있다는 걸, 모르니까 그런 짓들을 하겠지만. 하여간에 유정이 ‘내가 내게 나일 그때’를 단단한 마음으로 살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족같고 좆같다고 자꾸 욕하고 유태한테 야 유태야, 하고 뭐라고 하는 거 자꾸 거슬렸는데 막판에야 자꾸 그럴 수 밖에 없는 마음이 이해가 되었어...그래서 더 슬펐다. 족같으니까 족같다고 하지...
기준영 소설은 오래 전에 역시나 젊은작가상 수상집에서 한 편 읽었던 것 같은데, 그때보다 이 소설이 좋았다. 마지막에 털썩 들소 한 마리 던져주는 건 좀 뜬금 없었지만 그래도 괜찮은 소설이었다.
황정은 작가의 하고 싶은 말도 수상작이었다는데 작가의 요청으로 싣지 않았다고 했다. 이유가 궁금하지만 알 길이 없다. 연년세세는 전자책도 갖췄으니 언젠가 다시 읽고 싶다.
+밑줄 긋기
-너는 얼굴에 그늘이 하나도 없구나, 하는 것도 그에게서 처음으로 들어본 말이었다. 나처럼 가난한 애가 그럴 리가, 라고 답하면 그 가난 안 되겠네, 죽여야겠네, 하고 그가 말하는. 가난이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죽여요? 웃긴다, 하면 가난이 사람을 죽이니까 그 반대도 당연히 가능하지, 했던.
-나는 저 몸에 무엇이 찾아들면 강선이 되나, 하고 생각했다. 창호를 바른 문으로 어느 순간 들어선 빛에 아침이 시작되듯, 찬 공기에 콧속이 열리고 창공이 높아지면 불현듯 여름이 종료되듯 사람에게도 그가 사람이게 하는 시작점이 있을까.
(김금희,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중)
-사람들은 애써 진흙을 빚어 항아리를 만든다. 그러나 항아리가 만들어지면 실제로 쓰이는 것은 그 항아리가 품고 있는 빈 공간이다.(김화영의 리뷰 첫 머리. 도덕경의 은유를 인용한 것이라 한다.)
-엄마, 우리가 먹을 거 놓고 마음껏 싸우지도 못하게 된 건 뭐 땜에 그런 걸까?
음, 반희가 생각하다 말했다. 그것도 물고기랑 같은 이유겠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엄마, 나 사랑하지?
반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알아. 엄마 보면 날 사랑하는 거 맞아. 날 사랑해서 힘든 게 보여. 나도 엄마 사랑해. 그래서 힘들어. 근데 엄마, 내가 머리가 나빠서 잘 모르는 거야? 사랑하는 게 왜 좋고 기쁘지가 않아? 사랑해서 얻는 게 왜 이런 악몽이야? 사랑하지 않으면 이렇게 안 힘들어도 되는데, 미워하면 되는데, 왜 우린 사랑을 하고 있어? 왜 이따위 사랑을 하고 있냐고. 눈물도 안 나오고 숨도 못 쉬겠는, 왜 이런, 이런 사랑을 하냐고.
채운이 벌떡 일어나 가슴을 누르며 욕실로 뛰어들어갔다.
-차가 이쪽저쪽으로 기울고 심하게 쿨렁거렸지만 반희는 마치 땅콩 껍데기 속에서 구르는 땅콩처럼 아늑하고 편안했다. 딸이 운전하는 차라 아무 걱정 할 필요가 없었다.
(권여선, ‘실버들 천만사’ 중. 그러고 보니 소설 읽기 전에는 제목 뭐야...silver들의 오랜 역사인가...했는데 읽고 보니 엄청 예쁜 제목이었던 것이다. 끊지 말아요 천가닥이든 만가닥이든.)
-“누나는……”
말을 바로 잇지 못하고 유태가 숨을 골랐다.
“누나는 한 번이라도, 소설보다 먼저, 가족들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
“……”
“누나한테 누나 소설 말고, 다른 사람이 있어?”
-제가 원하는 것은 언제나 하나였어요.
몸안의 모든 수분, 모든 피를 빼내고, 모든 습기를 말리고, 비틀고, 보이지 않는 입자로 갈고 갈아서, 완전히 부수어서,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없애버리는 것. 몸을 없애는 것. 이 지긋지긋한 몸을 없애는 것. 이해받지 못하는 몸을 없애는 것. 유정이 오랫동안 원해온 것은 그것이었다.
(최은미, ‘내게 내가 나일 그때’ 중)
-또 한편으로는, 다행하고 무사한 길우와 내 미래를 본다. 운명에는 탄성이 있다. 어느 한때 우리는 마흔세 살쯤이고, 하루가 저무는 속도로 하루를 잃는 보통의 어른이다. 아이일 때보다 훨씬 많은 비밀을 품고 살지만, 비슷한 스타일의 외투 서너 벌 속에 스스로를 단정히 채워넣는 사람이다.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귀중하다는 표현과 나란히 붙여놓고 볼 수는 있으나 타인에게 쉽게 발설하지 않는 사람. 다만 우스워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진땀을 흘릴 만큼 힘을 들여야 하는 사람. 그리고 이 모든 연극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배역이 하나 더 있다고, 나는 그게 들소라고 느낀다. 지금 저만치서 그게 오고 있다고.
(기준영, ‘들소’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