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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문학책 만드는 법 - 원고가 작품이 될 때까지, 작가의 곁에서 독자의 눈으로 ㅣ 땅콩문고 시리즈
강윤정 지음 / 유유 / 2020년 10월
평점 :
-20210307 강윤정.
나는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데, 분명 읽기 시작하면 재미있는데, 자꾸 엉뚱한 책으로 도망친다. 이 책도 괜히 도망치다 빌린 책. 에세이, 라기보다는 실용서에 가깝다. 장성규가 워크맨에서 문학동네 파트타임 체험 갔을 때 김(정)영수 편집자 나오길래 소설가 아냐?하고 검색하다가 편집자K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강윤정 편집자가 같은 문학팀에 있다는 것을 스쳐지나가는 정도로 알았다.
책이 두껍지 않은데도 편집인이라는 직업인이 하는일, 해야 할 일, 책을 잘 만들기 위해 하면 좋을 일을 간단명료하게 잘 정리해 놓았다. 문학 편집자의 문장이란 이런 것인가! 싶다가 아, 다 그렇진 않을 거고 일잘러 전문성이란 이렇게 묻어나는구나, 업계 신참에게 유용할 만한 매뉴얼을 이만큼 친절하고 체계적으로 써낼 수 있구나, 하면서 새삼 감탄했다. 출판업계에서 일할 생각도 가능성도 없는데 이걸 왜 보고 있나, 하면 작가가 쓴 글이 어떻게 다듬어져 상품이 되어 나에게 닿는가, 그 과정에 대한 궁금함 때문이었다. 궁금함은 많이 해소되었다. 편집인의 덕목, 작가 만날 때 이렇게 하면 좋다, 하면서 깨알같이 내놓은 조언은 어느 분야에서든 정보를 수집하고 뭔가를 계획하고 클라이언트를 대할 때 공통으로 적용할 만한 유용함이 느껴졌다.
출판 사례로 내가 예전에 읽은 ‘뱀과 물’, ‘모르는 사람들’, ‘제주에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를 묶는 과정이 자주 나와서 더 흥미로웠다. 이렇게 누군가 집요하게 애정과 시간과 전문성을 들여 열심히 묶은 책이니 이제 까는 독후감은 살살 자제…할 게 아니라 다음 좋은 책을 만드는데 보탬이 되도록 열심히 읽고 열심히 까야지 하는 다짐을 했다. 기승전똥 이틀째...아 어제 이주윤 작가 책에서 구보씨 나오더니 여기서도 구보씨 나왔다. 봉준호 감독님 외할아버지 한 번 영접해야겠네 그려. 이 책 읽던 중간에 갑자기 뭔가 아이디어 생각나서 끄적이다가 다시 읽다보니 편집자의 폴더 속에 비슷한 기획안?같은 게 나와서 깜짝 놀랐다. 에라이 집어치워야지, 아니 해봐야 하나, 기획된 내용은 정지돈과 관련한 산문집이었고, 나는 비슷한 형식의 장편소설을 생각했으니 좀 다르다만...생각만 하다 끝날 듯. 단편이나 쓰자 꼬꼬마 나부랭이야…그만 쉬어 그만 쉬라고.
이제부터는 얇은 엉뚱한 책 그만 빌리고 소설 사 둔 거나 보자...하는데 주말이 끝났다. 소설을 보자. 독후감 적당히 쓰고 소설을 쓰자. 언젠간 쓰겠지 뭐.
+밑줄 긋기
-소설집은 일정 기간 모인 예닐곱 편의 단편을 묶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경우 본문 편집 과정에서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가 수록 순서이다. 여러 지면에 발표한 작품을 모아 스토리라인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품을 차분히 일독하면서 작가가 이 기간 동안 어떤 문제나 소재에 관심을 기울였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맥락을 바탕으로 두고 가장 좋은 작품 두 편을 뽑아 맨 앞에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배치가 소설집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독자 대부분이 책의 앞부분부터 읽게 마련이므로 자연스레 이 책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을 앞에 배치하게 된다. 그리고 소설집 전체를 마무리하고 여운
을 남기기에 좋은 작품을 맨 마지막에 배치한다. 가운데에 놓일 작품은 길이와 톤을 고려해, 읽는 이의 몰입도를 가능한 한 높이는 쪽으로 고민한다.
-작가는 작품을 쓰고, 퇴고하고, 하나로 모아 다시 정리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여러 차례 반복해 읽었기 때문에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작가가 생각하는 좋은 작품과 독자가 생각하는 좋은 작품이 늘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소설집은 작가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편집자가 이 사이에서 연결고리가 되어 주어야 한다. 첫 느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첫 일독에 공을 들인다. 편집자로서 판단하기에 좋은 목차를 짜서 작가와 상의해 최종 목차를 결정한다. 작가 역시 본인 의견도 중요하지만 독자와 시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므로, 편집자가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의견을 내면 거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의 기호를 기억해 주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가질 사람은 없으니까. 작가가 먹지 않거나 하지 않는 게 있다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도 좋다. 싫어하는 것 말고 좋아하는 것. 자연스레 작가가 좋아하는 것에서 대화를 시작해 간다. 미팅에서 어색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일은 편집자의 몫이다. 자신이 내향적인 성격이라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어렵다 생각할수록 이런 디테일에 신경 쓰는 편이 좋다.
-책을 내 본 경험이 없거나 적은 작가의 경우 ‘과연 이걸 내가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가장 크다. 이 경우 ‘지금 출판계에 이 아이템을 필요로 하는 독자가 있다. 유사 도서로 이런 책이 있고 판매가 잘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온 책과 달리 당신에게는 이런 특장점이 있다. 이 부분을 잘 살려 쓰고 만든다면 좋은 책이 될 것이다’라고 설득해야 한다. 작가가 잘 모르는 본인의 강점을 편집자가 알아봐 주는 것, 의지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보여 주는 것이 필요하다.
-약속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정확하게 답하고, 기대하는 지점과 우려하는 지점을 솔직히 짚고, 작가가 낸 아이디어 가운데 쓸모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명히(그러나 부드럽게) 나누는 것. 그러니까 미팅이란 상대방과 나 사이, 상대방과 출판사 사이에 신뢰를 쌓는 일이며, 그 바탕에 각자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일을 하면서 배워 나갔던 것 같다. 작가의 뜻에 무조건 맞춰서 점수 따는 자리가 아니라, 내가 어떤 편집자이고 내가 속한 출판사가 어떤 회사인지 작가가 가늠하고 판단하는 것만큼 나도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는 사람인지 판단하는 자리라는 것 또한.
-그런데 독자가 다름 아닌 바로 그 책을 살펴보려고 ‘집어 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제목과 표지에 끌려서’이다. 독자가 의식했든 못했든 매대에 놓인 수많은 책 가운데 어느 한 권을 집어 든 건 그 책의 만듦새에 호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바로 옆에 놓인 책이 훨씬 더 재밌고 유익한 책일 수 있지만, 독자의 시선을 잡아 끌지 못한 책은 선택될 기회를 잃는다. 요컨대 독자는 책의 내용을 모른 채 책을 집어 구매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제목은 책의 만듦새에 참 중요하겠다. 내용보다 먼저 읽는 글이 바로 제목이니까. 어쩌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조금 더 과하게 얘기하자면 ‘내용보다’ 중요하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편집자에게는. 좋은 원고를 쓰는 것이 저자의 몫이라면 그것을 독자가 집어 들고 싶은 책으로 만드는 것이 편집자의 일이니까.
-반면 한국문학에서 편집자가 우선적으로 장악해야 할 것은 그 작가의 작품 세계이다. 이전의 작품과 어떤 점이 같고 다른지를 파악하고, 이 책이 작가의 문학 인생에 어떤 작품으로 남을지, 이 작가의 가장 빛나는 부분은 어디인지를 아는 것.
-이렇게까지 거슬러 올라갈 일인가 싶지만 그래도 가 본다면, 느낌표는 1400년대 이탈리아의 시인 알폴레이오 다 우르비살리아가 고안한 문장부호로 알려져 있다. 그는 보다 생동감 있게, 큰 소리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점 위에 선을 하나 그어 표시하였으며 자신이 만든 문장부호를 ‘감탄의 점’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오늘날 거의 모든 콘텐츠의 소비가 모바일에서 일어나며, 완결되는 곳은 포털이 아닌 SNS다. 정보를 ‘검색’으로 얻던 시대에서 ‘소통’으로 얻는 시대로 이동한 것이다. 뚜렷한 취향과 견고한 자기다움으로 소통하는 ‘개인’에게 신뢰가 이동한 것이기도 하다. 『신뢰 이동』의 저자 레이첼 보츠먼이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신뢰하는 것이 공유경제의 핵심”이라 말했듯, 특정 분야의 안목이 있다면 권위에 기대지 않고도 능동적으로 드러내고 공유하고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도대체 이런 책이 왜 베스트셀러에 있는 거야?’라든가, ‘난 이 사람 정말 비호감이던데 왜들 좋아하는 건지, 원’과 같은 태도는 의식적으로 지양해야 한다. 도대체 왜 잘 팔리는지, 왜 사랑받는지 알아보고 연구해 보고 따져 보는 것, 평가하기보다 궁금해하는 것, 고집보다 유연함을 발휘하는 것이 기획자가 가져야 할 자질이다.
-좋은 작품이란 뭘까요? 요건은 다양합니다. 우선 많은 독자가 공감할 만한 작품이 있겠죠. 독자가 지금 이 순간 고민하는 것에 귀 기울이는 작가의 작품, 나아가 누구나 자라면서 혹은 나이를 먹으면서 한 번쯤 겪었음 직한 감정의 흔들림에 관심을 두는 작가의 작품이 오랜 시간 많은 독자가 사랑하는 작품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자기만의 확고한 작품 세계로 마니아 독자층을 만들어 가는 작가의 작품도 좋은 작품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