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 한겨레출판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10409 조지 오웰.

중학생 때 동물농장을 읽었지만 기억이 안 난다. 고등학생 때는 1984를 읽었는데, 흠뻑 빠져서 여러 번 읽었다. 일단 내가 태어난 해가 제목이라 좋았고, 태어나기 거의 40년 전에 쓰인 소설이라는 게 신기했고, 논술문이나 수능 대비 때마다 언급되는 이 소설, 인용되지 않는 부분들이 생각보다 야하고 재미있었다. 나는 이 소설을 사회 비판작이 아닌 연애소설로 읽었다. 작년에 옌롄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재미있게 봤던 것도 1984와 유사성을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마릴린 맨슨의 노래 가사에서 인용된 걸 보고 반가움을 느꼈던 당신은 허리 아래에서만 반역자야, 같은 말들. 그런 말을 건넬 만한 사랑스러운 줄리아와 윈스턴의 짧은 봄날 같은 사랑. 좋았다.
그리고 왠지, 요즘 꼬맹이들 실시간 원격수업 한다고 웹캠을 종일 켜놓도록 강요하는 걸 보면 드디어 텔레스크린이 실현되었구나, 하고 섬뜩함을 느낀다. 화상회의는 나조차도 삼십분만 해도 고역이라 카메라와 마이크를 꺼놓곤 하는데 심한 경우 6-7교시 내내 카메라를 켜고 모니터 앞에 앉아 감시 받는 아이들을 본다. 우웩. 이게 당신들이 생각하는 선진 첨단 교육인가요. 어떤 아이는 모니터랑 화면 보면 토할 것 같아서 수업 참여 못하겠어요, 하고 질병조퇴를 했는데 정말 이해되는 장면이었다…그러니까 엄청난 소설인 건지, 우리 오세아니아 수령님들이 여기에서 영감을 얻으신 건지…(위대한 소설의 역기능)
어쨌거나 꽤 오랫동안(거의 두 달) 조지 오웰의 산문집을 읽으면서 1984도 20년 만에 다시 읽어볼 생각을 하게 되어 (그리 잘 쓴 소설은 아니지만, 하고 혹평하는) 펭귄판 서문과 앞머리를 살짝 읽었다. 다시 봐도 재미있을까, 나는 이걸 다시 연애소설처럼 읽게 될까, 어느 시대나 다가올 수 있는 통제와 권력 독점과 자유를 말살하려는 시도에 몸서리치며 그에 저항하는 우리 인간 파이팅 하고 읽을까, 아직 모르겠다.

내가 좋아한 1984는 조지 오웰의 유작에 가까운, 40대 후반 죽기 직전 발표된 소설이었다는 걸 에세이의 연보를 보고 알았다. 부랑자 수용소, 프랑스의 하급 병원, 서점 직원, 비비씨 라디오방송 제작자, 버마 간수(경찰?), 그리고 글쓰기가 본격적인 직업이 되기까지 오웰이 쓴 다양한 글들을 통해 1930-40년대의 영국인과 유럽인의 삶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스위프트 좋지만 제정신은 아닌 놈이야(ㅋㅋㅋ), 하는 글(‘정치 대 문학-걸리버 여행기에 대하여’)과,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디스하는 톨스토이를 또 다시 디스하는 글(‘리어, 톨스토이이 그리고 어릿광대’)이었다.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톨스토이와 처음 마주하는 요즘인데 오웰이 너 리어왕 까는 거 네 삶이랑 오버랩 되서 그러는 거 아니냐, 그거 너무 오버고 부당한 평가인데 하는 게 막 공감되고 웃겼다. 대문호가 대문호 까는 글을 또다른 대문호가 깐다...그럼 나는 조지 오웰을 까야 하는 것인가… ‘정말 정말 좋았지’와 비슷한 형식으로 학령 시절의 끔찍함을 열거해봐도 좋을 것 같았다. 언젠가 시도해볼지 아닐지는 모르겠다.

왜 자꾸 모르겠다고 하는지...글이 명료하고 주관이 뚜렷하고 생각하는 방향도 비슷해서 와 닿은 부분이 많은데 또 가끔 어렵고 지루하기도 해서 오래 읽었다. 분량이 많기도 했지…글이란, 시민이란, 작가란 이래야지, 하는 부분에 공감하면서도 막상 그렇게 실천하기란 망설여져서 자꾸 모른다 모른다 하고 회피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그만큼 비겁한 놈이 되었다. 정치 기사와 투표소를 피하고 드러나지 않는 쪽으로 숨는 쪽을 택했다. 그러고도 투덜투덜은 여전히 잘 하지. 그런 나새끼라서 이 책을 읽으며 신념을 위해 에스파냐 내전에 투신하고, 좋은 직업을 버리고 빈민가의 삶까지 내려가 보는 오웰처럼 할 자신이 도무지 없어서 조금 창피했다.

+밑줄 긋기
-이상한 일이지만, 바로 그 순간까지 나는 건강하고 의식 있는 사람의 목숨을 끊어버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죄수가 웅덩이를 피하느라 몸을 비키는 것을 보는 순간, 한창 물이 오른 생명의 숨줄을 뚝 끊어버리는 일의 불가사의함을,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알아본 것이다. 그는 죽어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가 살아 있듯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모든 신체 기관은 미련스러우면서도 장엄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내장은 음식물을 소화하고, 피부는 재생하고, 손톱은 자라고, 조직은 계속 생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교수대 발판에 설 때에도, 10분의 1초 만에 허공을 가르며 아래로 쑥 떨어질 때에도, 그의 손톱은 자라나고 있을 터였다. 그의 눈은 누런 자갈과 잿빛 담장을 보았고, 그의 뇌는 여전히 기억과 예측과 추론을 했다-그는 웅덩이에 대해서도 추론을 했던 것이다. 그와 우리는 같은 세상을 함께 걷고, 보고, 듣고, 느끼고, 이해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2분 뒤면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 중 하나가 죽어 없어질 터였다. 그리하여 사람 하나가 사라질 것이고, 세상은 그만큼 누추해질 것이었다. (‘교수형’ 중. 1931.8.-사형 반대 이딴 소리 안 하고도 이렇게 절실하게 쓰다니...논픽션인데 소설 읽는 기분이었다.)

-런던 같은 도시에서는 딱히 병원에 가야할 정도는 아닌 정신이상자들이 길에 나다니는 경우가 언제나 많고, 그들은 종종 서점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왜냐하면 서점은 돈을 전혀 쓰지 않고도 오랫동안 서성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보면 그런 사람을 거의 단번에 알아볼 수 있게 된다. 거창한 얘기를 아무리 해도 그들에겐 시대착오적이고 겉도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명백한 편집증 환자를 대할 때면 그가 요구하는 책을 따로 빼놓았다가 그가 나가자마자 서가에 다시 꽂곤 하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그들 중 누구도 값을 치르지 않고 책을 가져가려 한 건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단지 그들은 주문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그건 그들에게 정말 돈을 쓰고 있다는 환상을 준 게 아닌가 싶다. (‘서점의 추억’중. 1936.11.-ㅋㅋㅋㅋㅋㅋ알라딘 온라인 서점은 어떤가요...말씀 좀 해보세요 서점 직원 출신 작가님...)

-일반적인 믿음과는 반대로, 과거는 현재보다 특별히 대단한 게 아니다. 과거가 더 극적으로 보일 수 있는 건, 여러 해에 걸쳐 따로 일어난 일들이 돌이켜 볼 때 하나로 압축되며, 우리의 기억 중에 원래 그대로의 진정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1914-1918년의 전쟁이 지금의 전쟁엔 부족한 웅장하고 대서사시적인 분위기를 띠는 것은 주로 그뒤에 있었던 책이나 영화나 회상 때문이다. (‘좌든 우든 나의 조국’ 중. 1940.가을.-그러니까 라떼는 타령 그만 하라 그 말인 거죠...)

-그런데 문학은 국경을 넘어갈 수 없는 유일한 예술이기도 하다. 문학, 특히 시는, 또 그중에서도 서정시는 일종의 가족끼리만 통하는 농담 같은 것이다.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가 아니면 거의 무가치하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를 제외한다면, 영국 최고의 시인들이 유럽에서는 이름조차도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널리 읽히는 시인이라 해봐야 바이런과 오스카 와일드 정도인데, 전자는 엉뚱한 이유로 동경의 대상이 되고 후자는 영국인의 위선에 희생됐다는 이유로 연민의 대상이 되었다. 이와 더불어 거론되는 것은, 그다지 분명치는 않으나 철학적인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즉, 거의 모든 영국인들이 체계적인 사고의 필요성을, 심지어 논리를 사용하는 것 자체에 대한 필요성을 별로 못 느낀다는 것이다. (‘영국, 당신의 영국’중. 1940.12.-영국러가 영국 뚜드려 팸...)

-그가 보는 역사는 과학적인 인간이 낭만적인 인간에게 거둔 승리의 연속이다. 주술사 대신 과학자가 통제하는 ‘합리적’이고 계획된 형태의 사회가 조만간 보편화될 것이라는 그의 견해는 아마도 옳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는 것과 그런 사회가 코앞에 닥쳤다고 하는 건 다른 문제다...초기의 볼셰비키는 어떤 식으로 작정하고 보느냐에 따라 천사일 수도 마귀일 수도 있었지만, 아무튼 합리적인 사람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은 웰스의 유토피아가 아닌 ‘성인의 지배’를 도입했으며, 그것은 영국 역사가 경험했던 ‘성인의 지배’처럼 마녀재판으로 흥이 난 군사독재였다. (‘웰스, 히틀러 그리고 세계국가’ 중. 1941.8.-조지 허버트 웰스가 빙구였다고 열심히 설파하는 이 글 보면서도 왠지 타임머신이나 투명인간 같은 소설이 궁금해졌다...)

-우리는 너무 문명화되어 명백한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진실은 아주 단순한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남으려면 종종 싸워야만 하고, 싸우자면 자신을 더럽혀야 한다. 전쟁은 악이며, 차악인 경우도 흔히 있다. 칼을 드는 자는 칼로 망하며, 칼을 들지 않는 자는 악취 진동하는 병으로 망하는 것이다. 이런 케케묵은 소리를 굳이 쓸 필요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간 임대소득이나 이자로 먹고사는 이들의 자본주의가 우릴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본다’중. 1942.가을-이 암울한 세계관...전쟁 가서 험한 꼴 못볼 꼴 보고 오면 사람이 저렇게 될 수 밖에...나새끼는 언제 어디서 무슨 전쟁을 치르고 온 거냐...)

-전체주의 시대에 시는 살아 남을지도 모르고, 특정 예술 또는 반예술(이를테면 건축 같은 것)은 압제의 덕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산문작가는 침묵 아니면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산문 문학은 이성주의와 개신교 시대 및 자율적인 개인의 산물이다. 때문에 지적 자유를 말살한다는 건 언론인을, 르포 작가를, 역사가를, 소설가를, 비평가를, 시인을 차례로 무력하게 만드는 일이다. 미래엔 개인의 감정이나 충실한 관찰이 없어도 가능한 새로운 유형의 문학이 생겨날지도 모르나, 지금으로선 그런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르네상스 이후로 우리가 누려온 자유주의적 문화가 사실상 끝날 경우, 문예 자체가 소멸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물론 인쇄물은 계속해서 이용될 텐데, 완고한 전체주의 사회에서 어떤 유의 읽을거리가 살아남을지 추측해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신문은 아마도 텔레비전 기술이 더 고도화될 때까지 존속할 것이나, 산업화된 나라의 다수 대중이 신문 외에 어떤 유의 읽을거리를 필요로 할지는 지금도 의문스럽다. 아무튼 그들은 읽을 거리에 대해선 몇몇 다른 취미에 드는 만큼의 돈을 쓸 의향이 조금도 없다.
…사상의 자유가 말살된다면 문학의 운명은 암울할 게 확실하다. 전체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전체주의적 관점을 받아들이는 작가, 박해와 현실 조작에 대한 변명거리를 찾아내는 작가, 그럼으로써 작가로서의 자신을 죽이는 작가도 같은 운명인 것이다. 그 길로 접어들면 헤어날 방법이 없다. ‘개인주의’와 ‘상아탑’을 비난하는 어떤 장광설도, ‘참된 개성은 공동체와의 합일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다’는 식의 경건하고 상투적인 어떤 주장도, 매수된 정신은 망가진 정신이라는 사실을 넘어설 수 없다. 어느 순간에 자발성을 갖게 되지 않는 한, 문학 창작은 불가능하며 언어 자체가 굳어져버린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인간의 정신이 지금의 것과 완전히 다른 무엇이 된다면, 우리는 문학 창작과 지적 정직성을 분리하는 법을 배우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가 아는 것은, 상상력이란 야생동물과 비슷한 것이어서 가둬두면 번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런 사실을 부인하는(지금 소련에 대한 거의 모든 찬사에는 그런 부인이 내재되어 있다) 작가나 언론인은 실은 자신의 파멸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문학 예방’중. 1946.1.-그러니까 나새끼가 등신이 되면 쓰기고 뭐고 다 망한다 이 소리죠...)

-이 글들은 하나같이 나름의 오류가 있지만, 문장이 아주 고약하다는 것 말고도 공통되는 특징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비유가 상투적이란 점이고, 또 하나는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글쓰는 사람이 뜻하는 바가 있으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거나, 뜻하지 않게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자기가 하는 말의 뜻이 통하든 말든 거의 개의치 않는 것이다. 이렇게 뜻이 모호하고 표현력 자체가 떨어지는 것이 오늘날 영어 산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며, 정치적인 글은 거의 예외 없이 더욱 그렇다. 어떤 주제가 제기되자마자 구체적인 게 추상적인 것으로 돌변해버리며, 진부하지 않은 표현은 아무도 생각해낼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달리 말해 뜻을 전달하기 위해 선택하는 ‘단어’는 점점 줄어들고, 조립식 닭장의 부품처럼 이어붙이는 ‘어구’는 늘어나는 식으로 산문이 이루어진다.
...
1. 익히 봐왔던 비유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2. 짧은 단어를 쓸 수 있을 때는 절대 긴 단어를 쓰지 않는다.
3. 빼도 지장이 없는 단어가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뺀다.
4. 능동태를 쓸 수 있을 때는 수동태를 절대 쓰지 않는다. (이 번역문 자체가 구려서 내가 맘대로 짧게 고쳐버림 ㅋㅋ 원문: 능동태를 쓸 수 있는데도 수동태를 쓰는 경우는 절대 없도록 한다...뭐야 이게…)
5. 외래어나 과학 용어나 전문용어는 그에 대응하는 일상어가 있다면 절대 쓰지 않는다.
6. 너무 황당한 표현을 하게 되느니 이상의 원칙을 깬다. (‘정치와 영어’중. 1946.4.-남의 말 안 듣는데 여기 쓴 말 잘 들으면 구린 글 절반은 줄일 수 있을 것 같아서 열심히 새겼다. 못 지키겠지만...심지어 저 위에 쓴 글에도 여기서 하지 말란 짓 엄청 해 놨겠지...ㅋㅋㅋ)

-나는 나무나 물고기나 나비나(내 경우엔 첫 대상인) 두꺼비에 대한 어린 시절의 애정을 간직함으로써 보다 평화롭고 상식적인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며, 강철과 콘크리트 말고는 찬양할 게 아무것도 없다는 주의가 설파되면 인류는 증오와 지도자 숭배 외에는 남아도는 에너지의 배출구를 찾지 못하게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봄은 이곳 런던 N1 지구에도 찾아왔고, 우리가 봄을 향유하는 것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새삼 흐뭇한 일이다. 나는 두꺼비들이 짝짓기를 하거나 토끼 두 마리가 덜 여문 옥수수를 두고 권투 시합을 벌이는 광경을 보고 서 있으면서, 할 수만 있다면 그런 나의 즐거움을 막고자 할 중요한 사람들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해보았던가. 하지만 그들은 그럴 수가 없다. 우리가 딱히 아프거나, 배고프거나, 공포에 떨고 있거나, 감옥 또는 행락지에 갇혀 있지 않은 한, 봄은 여전히 봄인 것이다. 공장엔 원자탄이 쌓여가고, 도시엔 경찰이 어슬렁거리고, 확성기엔 거짓말이 넘쳐흐른다 해도, 지구는 여전히 태양 주변을 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이 아무리 못마땅한들, 독재자도 관료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두꺼비 단상’중. 1946.4.-두꺼비에서 봄을 누리는 마음. 이런 거 좋음...)

-나는 7년 동안 소설을 쓰지 않았는데, 이제는 조만간 또 하나의 소설을 쓰고 싶다. 그것은 실패작이 될 게 뻔하고, 사실 모든 책은 실패작이다. 단, 나는 내가 어떤 종류의 책을 쓰고 싶어 하는지 꽤 분명히 알고 있다.
마지막 한두 페이지를 돌이켜보니 내가 글을 쓰는 동기가 오로지 공공의식의 발현이라는 인상을 심어준 듯하다. 나는 그것이 마지막 인상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모든 작가는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이고 게으르며, 글 쓰는 동기의 맨 밑바닥은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책을 쓴다는 건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는 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다. 거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귀신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한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아마 그 귀신은 아기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마구 울어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본능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기만의 개별성을 지우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는다면 읽을 만한 글을 절대 쓸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들 중에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목적이 결여 되어 있던 때였다. (‘나는 왜 쓰는가’중. 1946.여름.-모든 책은 실패작이다, 하고 딱 때리는데 왜 멋있냐...)

-어떤 책 때문에 노하거나 마음의 상처를 받거나 놀랄 경우, 책의 장점이 무엇이든 즐기지 못할 수 있다. 책이 자신에게 대단히 해롭거나 남들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영향을 끼칠 것 같아 보인다면, 그 책에 아무런 장점도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미학 이론을 세울 수도 있다. 오늘날의 문예비평이란 주로 그런 두 가지 기준 사이를 교묘히 오가는 식이다. 그런가 하면 정반대의 경우도 발생한다. 즉, 즐거움이 견해차를 압도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한테 해로운 걸 즐기고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더라도 말이다. 스위프트처럼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별난 세계관을 가졌으면서도 엄청난 인기가 있는 작가가 바로 그런 예다. 우리가 자신은 야후가 ‘아니’라고 굳게 믿으면서도 우리가 야후라 불리는 걸 개의치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참으로 묘하게도, 쾌락과 혐오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신체는 아름답다. 그런가 하면 인체는 역겹고 우스꽝스럽기도 한데, 이는 아무 수영장에나 가보면 확실히 검증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인간의 성기는 갈망의 대상이기도 하고 혐오의 대상이기도 한데, 예컨대 다는 아니어도 많은 언어에서 성기의 명칭 자체가 욕설로 쓰인다. 고기는 맛있지만 푸줏간에 가면 속이 메스꺼워진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은 궁극적으론 다른 무엇보다 우리가 끔찍스러워하는 똥과 시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유아기를 지나도 세상을 여전히 새로운 눈으로 보며, 경이로움 못지 않게 혐오스러움에도 마음이 움직인다. 이를테면 코딱지와 침, 인도에 싸놓은 개똥, 구더기가 가득한 채로 죽어가는 두꺼비, 어른의 땀 냄새, 대머리에 주먹코인 노인의 흉한 몰골이 주는 혐오감에도 크게 끌리는 것이다. 병과 더러움과 기형에 대해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스위프트는 사실상 무언가를 지어내다기보다는 배제하고 있는 셈이다. (‘정치 대 문학-걸리버 여행기에 대하여’중. 1946.9-10-그러니까 제가 사드도 읽고 맨슨도 듣고 그랬던 거예요...는 유아기적 고착 증세...)

-톨스토이는 사실상 우리가 번식과 싸움과 투쟁과 향유를 그만둘 수만 있다면, 우리의 죄뿐만 아니라 우리를 지상에 묶어두는 다른 모든 것들(한 인간을 다른 인간보다 편애한다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사랑을 포함해서)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모든 고통스러운 생의 과정은 끝나버리고 하늘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상적이고 평범한 인간은 하늘나라를 원치 않는다. 지상에서의 삶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나약’하거나, ‘죄’가 많거나, ‘재미’보기를 갈망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면서 꽤 많은 즐거움을 누리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인생은 고통이며 아주 어리거나 아주 어리석은 자들만이 달리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봐서 이기적이고 쾌락주의적인 건 기독교적 태도다. 그런 태도의 목적은 언제나 속세 생활의 고통스러운 투쟁을 벗어나는 것이며, 일종의 천국이나 열반 속에서 영원한 평화를 찾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인본주의적 태도는 투쟁이 계속되어야 하며, 죽음은 삶의 대가라고 본다. (‘리어, 톨스토이이 그리고 어릿광대’중. 1947.3.-안녕하세요. 평범한 인간1입니다. )

-죄는 누가 저지르는 무엇이기만 한 게 아니었다. 누구에게 그냥 일어날 수도 있는 무엇이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이 삼보한테 매를 맞던 바로 그 순간에 전혀 새롭게 번뜩 떠올랐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내 유년 시절이 행복하기만 했던 건 아니었으니, 집을 떠나기 전부터 이미 그런 생각을 어렴풋이 했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일은 내 소년 시절에 지속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교훈, 즉 나는 내가 착해지는 게 ‘가능하지 않은’세계에 던져졌다는 교훈을 심어주었다.

사람들은 아이가 어른에게서 ‘신체적’인 위축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성인의 거대한 몸집, 볼품없고 뻣뻣한 신체, 거칠고 주름진 피부, 축 처진 눈꺼풀, 누런 치아, 그리고 움직일 때마다 풍기는 퀴퀴한 옷과 맥주와 땀과 담배의 냄새! 아이에게 어른이 못나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아이는 대개 밑에서 위로 올려다보며, 그렇게 봤을 때 최상인 얼굴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아이는 자기 자신이 모든 면에서 생기 넘치고 깨끗하기 때문에 피부나 치아나 혈색에 대하여 지극히 높은 기준을 갖고 있다. 그런가 하면 무엇보다 가장 큰 장벽은 아이가 나이에 대해 갖는 착각이다. 아이는 서른 이후의 삶을 잘 상상하지 못하며, 사람의 나이를 판단할 때 엄청난 실수를 범한다. 이를테면 스물다섯인 사람은 마흔으로 보고, 마흔인 사람을 예순다섯으로 보는 식이다...그리고 아이는 나이 먹는 일을 거의 가당찮은 재앙처럼 여긴다. 무슨 신비로운 이유 때문에 자기한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로 보는 것이다. 때문에 아이가 보기에, 서른이 넘은 사람은 누구나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해 끊임없이 떠들어대고, 살아가는 이유도 없이 그냥 살아 있는, 즐거움이라곤 없는 괴상한 존재인 것이다. 아이가 보기엔 아이의 삶만이 진짜 삶이다.

그러나 이젠 그곳도 내 마음을 완전히 떠나버렸다. 그곳의 마법은 더 이상 나에게 미치지 않으며, 내겐 플립과 삼보가 죽었으면 하거나 학교가 불탔다는 이야기가 사실이었으면 하고 바랄 만큼의 원한도 남아 있지 않다.
(‘정말, 정말 좋았지’중. 1947.5.-어른들 잠자는 머리 맡에 붙여 놓고 기도문처럼 읽고 자야 할 글이다...아이들 대할 때 항상 이 글을 떠올리며 쭈그리가 될지어다...ㅋㅋㅋㅋㅋㅋ마지막 문단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시간이 그 추악한 것들을 아무 것도 아니게 만들 거야.)

-이제는 누구도 조이스나 헨리 제임스 같이 오로지 문학에만 전념할 수는 없게 되었다...오늘날 문단의 지식인들은 언제나 두려움 속에 살고 글을 쓴다. 그런데 이 두려움은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여론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그룹의 여론에 대한 것이다. 다행히 대개는 두 개 이상의 그룹이 있을 뿐더러, 어느 순간이든 지배적인 정통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정통성을 거스르자면 낯이 두꺼워야 하며, 때로는 몇 년 동안 수입이 반으로 줄어드는 것에 대한 각오가 필요하다.

과학적인 것이든 유토피아적인 것이든, 모든 좌파 이데올로기는 당장 권력을 잡는다는 기대를 갖지 않았던 사람들이 발전시킨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였다. 달리 말해 왕이나 정부, 법, 감옥, 경찰력, 군대, 깃발, 국경, 애국주의, 종교, 기존의 도덕관을, 그리고 사실상 모든 질서를 철저히 경멸하는 이념이었던 것이다. 모든 나라의 좌파 세력들이 도저히 이길 수 없어 보이던 압제에 맞서 싸웠던 기억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으며, 그런 ‘특정’ 압제, 즉 자본주의만 전복하면 사회주의가 도래할 것이라 생각하기 쉬웠다. 더욱이, 좌파는 자유주의로부터 확연히 의심스러운 믿음을 이어받았다. 그것은 진실이 널리 알려지면 박해는 절로 패퇴하리라는, 혹은 인간은 본래 선량하며 외부 환경 때문에 부패하는 것일 뿐이라는 믿음이었다. (‘작가와 리바이어던’중. 1948.3.-70 몇 년 전에 왜 지금 이야기를 통찰하시죠...이 부분 읽다가 이 글이 1984보다 더 예언적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냥 70몇년 째 세계대전 이후에도 유토피아 타령 하던 새끼들이 하나도 안 바뀌고 오히려 다 망쳐놨던 것 뿐이다…)

-그는 우리가 살아나가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어떤 제약이 있어야 하며, 그 제약은 닭고기 수프를 멀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태도는 고귀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것인가 생각해봤을 때, 비인간적이다. 인간됨의 본질은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고, 때로는 신의를 위해 ‘흔쾌히’죄를 저지르는 것이며, 정다운 육체관계를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로 금욕주의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고, 결국엔 생에 패배하여 부서질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다(이는 특정한 타인에게 사랑을 쏟자면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대가다). (’간디에 대한 소견’중. 1948.가을.-이 오빠는 아파서 죽어가면서도 무려 간디를 까고 있어..ㅋㅋㅋ식민지배의 죄인인 대영제국의 견찰 출신 주제에ㅋㅋㅋㅋ그래서 더 빠져든다...까기의 달인...왠지 이 글 보면 순순히 금을 넘기면 유혈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협박하는 문명의 간디가 자꾸 어른 거린다.)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21-04-09 23: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스위프트, 기아 대 재난시 아기들을 요리하는 법을 쓴 (풍자?) 글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하도 오래 전에 읽어 이 또한 가물거리는데. 조지 오웰이 디스했었군요. ^^

반유행열반인 2021-04-10 07:23   좋아요 4 | URL
말씀해주신 글까지 덧붙이면 스위프트 진짜 제 정신 아닌 놈이 맞는 것 같은데 오웰은 그래도 세상에 여섯 권만 남긴다면 그 중 하나는 걸리버지예! 하는 걸 보며 걸리버가 읽고 싶어졌어요 ㅎㅎㅎ(디스하다 좋아하다 하는 오웰 팬심ㅋㅋ)

붕붕툐툐 2021-04-09 23: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저는 열반님이 태어나신 해에 놀라고 갑니다.(왜 놀랐는지는 비밀입니다~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4-10 07:24   좋아요 4 | URL
으아니 이유 좀 같이 알고 같이 놀라면 안 될까요? ㅋㅋㅋ

2021-04-11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11 0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1-04-09 23: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때 1984를 읽으시다니 놀랍네요. 전 그때 만화책 본거 같은데 ㅎㅎ 이글 보고 빅브라더라는 단어가 안떠올라서 한참 생각했습니다 ㅜㅜ 텔레스크린이 진짜 현실로 나타난거라 생각하니 신기하기도 하네요^^

반유행열반인 2021-04-10 07:27   좋아요 4 | URL
만화책도 보고 문학도 한국문학이랑 고전문학 중에 야시꾸리한 명작만 골라봤습니다ㅋㅋ끄고 켜는 거만 맘대로 할 수 있어도 다행인데 웹캠에 집안 사정 비칠 거 생각하면 (배경 가리기 기능이 있다해도...)저는 으으 싫더라구요 ㅋㅋㅋ

공쟝쟝 2021-04-10 13: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호오~ 일전의 조지오웰 에세이 책대 담배 보면서 ㅋㅋㅋ 얽 의외로 매력적?? (왠지 조지오웰 꼰대 느낌이지 않아요??ㅋㅋ)하면서 왜쓰는 가도 읽어볼까 했었는 데!! 게다가 조지오웰 소설가보다 에세이를 많이 썼다고 해서 좀 놀랐고 ㅋㅋ 암튼 하지만 저는 1984도 아직 안본 쪼렙인지라.. 살포시 읽고 싶어요 에만 체크하도록 한다 ㅋㅋ
무튼 1984가 (야한) 연애 소설이었구나... 아하?

반유행열반인 2021-04-10 13:38   좋아요 3 | URL
1984부터 보심이 ㅋㅋㅋ이 에세이 모음집에 가장 전성기인 1946년 경 글이 많이 실려 있어요

Yeagene 2021-04-10 14: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꽤 오래전에 1984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요..열반인님은 연애소설 느낌을 받으셨군요 ㅎㅎ 좀 신기합니다.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4-10 16:58   좋아요 2 | URL
세상 달달한 연애하다가 패대기치는 기분이랄까요 ㅋㅋㅋㅋ예진님도 읽으셨군요!!

syo 2021-04-10 17: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1984년 생이셨지요. 그렇지, 조지 오웰 느낌 약간 있어.

반유행열반인 2021-04-10 18:48   좋아요 4 | URL
뭐라는 거예요 조지 오웰은 1903년생이야 ㅋㅋㅋ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04-11 01:31   좋아요 5 | URL
아~ 두분의 티키타카는 정말 유쾌. 통쾌. 상쾌!(언제적 유행언지;;;;)
 
[eBook] 안나 카레니나 1 펭귄클래식 128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윤새라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3월
평점 :
판매중지


-20210404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이아립-누구도 일러주지 않았네
https://youtu.be/N2anJRDSen8

안나 카레니나를 처음 알게 된 건 밀란 쿤데라 할아버지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을 때였다. 가련한 테레자는 조그만 마을에 찾아든 토마시가 평범한 사람들 틈에서 혼자서만 책을 읽고 있다는 이유로 호감을 가지고 다가선다. 그를 만나기 위해 짐가방을 들고 프라하로 찾아가서는 손에 쥔 ‘안나 카레니나’가 그의 세계로 가는 유일한, 보잘것 없고 비참한 입장권이라 생각하며 조바심 내기도 한다.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그녀는 토마시의 사랑을 얻지만 동시에 그의 방만한 육체 관계 때문에 오래도록 고통 받는다.
사랑은 그렇게 한 사람에게 행복과 기쁨과 번민과 고통을 동시에 혹은 번갈아가며 줄 수 있고, 인생의 방향을 이리저리 틀어버릴 만큼 강력한 감정이고 경험인데. 그 중요한 사랑을 시작하는 방법은 커녕 유지하는 법, 끝맺는 법을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다만 책과 영화와 드라마 같은 서사가 사랑의 일대기, 흥망성쇄,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사랑을, 연애를 글로 배웠습니다. 농담처럼 말하지만 종이장의 사랑 두 글자를 핥거나 모니터 위 빛나는 입술을 핥듯 그저 남의 사랑 놀음을 구경하는 수준일 뿐 실제로 거기서 뭔가를 배우지는 못했다. 직접 부닥치고 선택하고 망하고를 다시 반복하는 수 밖에 없었다. 어려서부터 누구보다 사랑 받길 열망했지만 그 방법을 몰랐고 내가 나라는 이유 만으로 사랑 받을 수 있다고는 꿈에서도 믿지 않았다. 열망하는 상대방이 배부르고 안락하고 기쁨을 누리도록 맛있는 걸 잔뜩 먹이고 이것저것 사다주고 안아주고 그리워하며 혼자서 우는 것 말고는 할 줄 몰랐다. 그런 방식은 대개 망해서 배만 부른 채 떠나게 만들 뿐 마음을 얻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막상 약하고 부족한 나라도 내내 다정하게 대하는 이를 드디어 만났을 때, 그런 마음과 관계가 어떻게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또한 몰랐다. 그냥 아이를 낳고 싶어서 낳고 길렀다. 같이 있을 수 있도록 돈을 벌고 생활을 유지했다. 같이 있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 사이사이를 음악이든 게임이든 책이든 글쓰기든 소일거리들로 채웠다. 안온하고 여유있고 자리잡힌 채로 늙을 일만 남았구나, 하고 생각하면 약간 서글프면서도 이것이 내가, 우리가 바라는 삶이 아니었나, 다 이루었다 하면서 스스로를 달랬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열망과 바람과 다른 삶의 가능성과 잔잔함을 휘젓는 새로운 경험이 어느 구석에나 도사리고 있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저 수많은 이야기들이 보여주었다. 결국 망할 걸 알면서도, 파국 속에 허우적거릴 걸(계란 풀고 파 송송한 속에 둥둥 떠다니는 건 왜냐...그 파국 아니다…) 알면서도 뭔가를 저지르고 잠시 행복하다가 깊은 어둠에 잠기거나 간단하게 죽어버리는 인물들은 픽션에도 논픽션에도 너무도 많았다. 솔직히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보다는 남이 망하고 괴로워하는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다. 본디 인간이 그런 존재인지 내가 사악해서인지는 모르겠다. 고대 그리스 비극부터 셰익스피어의 비극, 근현대의 소설들, 이대로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어요 하는 하이킥의 카페베네 결말까지, 새드 엔딩이 득세하는 걸 보면 나만 사악한 건 아닌 거 같아서 위안이 된다. 그래도 내 이야기는 배드엔딩이 아니면 좋겠다.

몇 년 전에 안나카레니나 영화를 본 것 같은데, 기억에 남은 게 거의 없다. 무도회에서 끝나지 않을 듯한 춤을 추는 두 사람과, 마지막 기차역에서 서늘한 분위기로 죽음에 몸을 맡길 준비를 하는 안나의 모습 정도만 어렴풋이 떠오른다. 망할 결말을 알면서도 만남을 이어가는 두 사람을 지켜보는 게 독서에 한해서는 재미있었다. 톨스토이가 자기 분신인 양 그려놓은 레빈도 멋있는 척 소박한 척 하는 게 오히려 웃기고, 뭐만 하면 툭 튀어나오는 오블론스키도 재미있는 캐릭터였다. 다만 비슷한 상황에 놓이고도 여동생 안나는 번민에 근심에 환멸에 시달리는데 오빠 오블론스키는 전혀 흔들림 없고 내내 유쾌한 게 대조적이었다. 달린 자식이 줄줄인데도 오블론스키는 죄책감 자괴감은 커녕 마냥 해맑아서 오히려 얄밉더라. ‘귀부인’이라는, 그나마 고상한 자격이나 지위가 본인에게 속하지 않고, 남편의 ‘백작’이니 ‘공작’이니 하는 신분과 사회적 명망에 따라 ‘백작 부인’, ‘공작 부인’하고 주어지던, 그런 정체성에만 기댈 수 있던 시대라 그랬을까. 그렇다면 백사십 년 쯤 지난 지금의 이야기였다면 끝이 달랐을까? 안나는 죽지 않고 다른 가능성을 찾아 나설 수 있었을까? 시대가 변해도 결혼제도가 존재하고 남 이야기 좋아하는 인간의 특성은 그대로라서 어떤 식으로든 평탄하게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잔잔하면 그건 이야기 거리가 되지도 않는다…)
아직 두 권이나 남았으니 다 타버릴 때까지 두 사람이 열심히 불 지피는 모습이나 한참 구경해야겠다. 밀란 쿤데라 소설 읽은 지가 20년이나 되었는데 안나 카레니나를 이제야 읽다니...이제라도 읽다니 다행이고 생각보다 더 재미있다. 아 심지어 멍멍이 카레닌 이름이 카레니나의 남편에게서 따온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미안해 카레닌 예전에 밀란쿠 할아버지가 그린 네 모습 ㄱㅊ같다고 심통부려서 미안해...

영화 ’안나카레니나’ 무도회 장면
https://youtu.be/RqyuLxJDZyA


댓글(26)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1-04-04 11: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나카레니나는 결말을 알고 읽는것도 좋을것 같네요. 저는 결론을 모르고 읽어서 놀랐던 기억이. (그 누구도 내게 일러주지 않았습니다 ㅎㅎ)
버스정류장 OST 노래 보니까 반갑네요. 완독을 응원합니다 ^^

반유행열반인 2021-04-04 11:35   좋아요 2 | URL
새로 이웃되신 새파랑님 반갑습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늦더라도 완독할게요 ㅎㅎ 버스정류장 영화는 안 봤는데 루시드폴이랑 이아립은 어려서 좋아했네요.

새파랑 2021-04-04 11:42   좋아요 2 | URL
저도 영화는 안봤으나 루시드폴 때문에 CD 만 있는ㅎㅎ 감사합니다~!

청아 2021-04-04 11: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파국ㅋㅋㅋㅋ그리고 ㄱㅊ가 뭐예요??!🙄 카레닌이 이 카레닌이라는거 열반인님덕에 알게됨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4-04 11:34   좋아요 3 | URL
곤충이요!!!!!ㅋㅋㅋㅋㅋ

하나 2021-05-09 21:05   좋아요 1 | URL
그게 왜 곤충이지?? 내가 이상한 사람이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5-09 21:25   좋아요 1 | URL
저 곤충 가지고 알라딘엠디한테 블럭 먹었었어요 ㅋㅋㅋㅋㅋ

하나 2021-05-09 21:26   좋아요 1 | URL
아 젤 먼저 달아준 댓글이 이거라는 게.... 헤어나올 수 없는 지점 ㅋㅋㅋㅋㅋ 사랑해요

반유행열반인 2021-04-04 11: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할아버지 책 참을 수 없는 존재감 이라고 오타냄 ㅋㅋㅋㅋㅋ아 웃기다...

link123q34 2021-04-10 11:01   좋아요 2 | URL
전혀 몰랐어서 신나서 다시 확인하러 올라갔는데 늦게와서 수정된 뒤잖아요 ㅋㅋㅋㅋㅋ 아 억울해라...

반유행열반인 2021-04-10 13:41   좋아요 2 | URL
ㅋㅋㅋ부끄러워서 얼른 고쳤어요 ㅋㅋㅋ그래놓고 댓글에 셀프 박제ㅋㅋㅋ

라로 2021-04-04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열샘 좀 친절하게 링크 그냥 클릭 하면 새창 열리게 해주심 안 되나여?? 유튭 그냥 클릭해서 보게 해주는 건 안 바라도??^^;;; 두번이나 링크 복사하고 찾아보기 시간 걸리고 불편하고 (불평불평;;; 오늘 아마도 제 심기가 안 좋죠??ㅋㅋ 그러면서 나도 앞으로 글 올릴때 반열샘처럼 안 떠먹여 줄까?라는 생각 해봄;;;)
어쨌든 언제나 반열샘 글 좋아하지만, 오늘은 무척 시크합니다요. 멋져!!
아무튼 저는 구세대라 그런지 키이라 나이틀리가 출연한 것보다는 소피 마르소의 안나카레리나가 좋아요. 키이라는 오히려 책과는 좀 먼 인물 설정이라고 느낌. 아무튼 1, 저처럼 소설 진짜 안 읽는 인간이 알라딘 친구들 덕분에 푹푹 찌는 한국의 여름날 땀 뻘뻘 흘리며 안나 카레리나를 완독 했다는 것이 여전히 뿌듯합니다요. (그정도로 소설을 안 읽는 일인;;;) 아무튼 2, 소설은 잘 쓰고 계십니꽈??? 아무튼 3, ˝그래도 내 이야기는 배드엔딩이 아니면 좋겠다.˝에서 bad ending을 bed ending으로도 해석하면서 반열샘 언제 쓰신 글 생각하며 혼자 낄낄댔다는(하나마나 한 소리)요. 뭐 그랬다구요. 암튼 이 글 너무 좋아요. 문장 하나하나 넘 마음에 듦.(맞춤법 맞죵?? 듦..ㅎㅎㅎㅎㅎㅎㅎㅎ)

라로 2021-04-04 11:56   좋아요 1 | URL
아참참참, 이아립 노래 첨 들어보는 일인,,, 아주 맘에 드네요!!^^

반유행열반인 2021-04-04 12:02   좋아요 2 | URL
이게 북플에선 터치 한 번에 유튜브 열어주는데 피시버전 블로그에선 안 되더라구요 ㅋㅋ제가 컴퓨터 대신 모바일 기기로 글을 올리다보니 블로그에서 쓸 수 있는 동영상 첨부 기능은 다 막혀 있어요. 그러니까 동영상은 볼램 보고 말램 마요 내 글이나 봐줘요 하는 성의 없음.... ㅋㅋㅋㅋ
새로 쓴 건 하나도 없고 예전에 쓴 거 고치다 망했네 하고 공모전 대충 내고 새 달부터 새로 쓰려니 보름 후 쯤에 이사를 하네요 ㅋㅋㅋ열흘 정도 집수리도 하고 바쁜 열반이네요. 먼저 완독하신 라로님 리스펙트! 소피마르소 나오는 영화는 아직 안 봤고 키이라는 뭔가 쩌들다가 삶의 막판에 불사르는 느낌으로 생겨서(?) 그런데 사실 영화는 진짜 하나도 기억 안 나네요 ㅋㅋㅋㅋ 이아립 노래 별로 못하는데 묘하게 매력 있어요. ㅎㅎㅎ 스웨터라는 그룹 하면서 부른 멍든 새라는 노래도 좋아요 ㅎㅎ(https://youtu.be/wxglSSDL2Cc 또 불친절한 링크 투척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4-04 12:03   좋아요 1 | URL
불친절한 링크도 일일이 열어보고 들어주신 라로님께 늘 감사드립니다 ㅋㅋㅋㅋ

라로 2021-04-04 12:29   좋아요 1 | URL
불친절한 투척도 넘죽 받아서 듣는 저는,,,멈미꽈??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나쁘진 않지만, 먼저 것이 제 취향과 좀 더 가깝(아마도 제 취향은 대중적??;;; 이 음악은 좀 아마추어 느낌이 나서 그런 듯? 암튼 아니면 노래 별로 못하는 티가 더 많이 나서 그런가??^^;;)

반유행열반인 2021-04-04 12:32   좋아요 1 | URL
이 노래가 나름 데뷔 이후이고 그 전 더 언더 시절의 더 못 부르는(이거보다 더 못하다니!!!) 못들어줄 버전도 들어봐서 저는 이 정도면 용 됐네 ㅋㅋ했는데 루시드폴이랑 솔로로 부른 건 진짜 용용용 됐네 싶더라구요. 천재들도 많지만 뭐든 꾸준하고 끈질기게 존버 하면 뭐라도 되는구나...하는 가르침을 주는 창작자들이 더 위안이 되네요 ㅋㅋㅋㅋ

라로 2021-04-04 12:45   좋아요 2 | URL
그건 그래요!! 저는 그녀(맞죠? 이아립??)의 더 언더 시절은 아예 모르고 오늘 첨 두 가지 버전으로 들어보니 그렇다는 건데,,말씀처럼 존버하는 일반인 창작자들이 더 위로가 되는 건 사실이에요. 나도 너처럼 될 수 있을지도 몰라,,라는 희망이 더 가깝게 느껴지니까요. 저에게도 그런 것이 필요한 요즘입니다요.^^;; 덕분에 위로를 받았어요. (뜬금포;;;)

바람돌이 2021-04-04 1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연히 읽었을거라고 남들이 생각할 듯하지만 안읽은 1인입니다. 아 전 도대체 읽은 책이 뭘까요? 주섬 주섬 보관함에 넣으면서 그래 이것도 읽어야지 뒷통수를 긁적긁적하고 있습니다. 오늘 좋은 글 읽게 해주셔서 감사하고요. 무도회장면 유튜브도 즐겁게 봤습니다. 근데 저도 소피 마르소에 1표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4-04 12:06   좋아요 1 | URL
굳이 남들이 필독! 해서 읽는 것보다 아 이젠 진짜 봐야지, 하는 때가 (이십 년 만에라도 ㅎㅎ) 오더라구요. 그때 읽으면 슝- 달리는 거지요. 소피마르소라니, 저는 젊은이라서 옛 버전 영화 옛 배우는 모르겠네요!!젊은 척ㅋㅋㅋㅋㅋ농담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Yeagene 2021-04-04 2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저도 쿤테라 할아버지 책 읽으면서 꼭 안나 까레니나 읽어야지 했는데 ㅎㅎ책은 도끼다 에서도 하도 재미있게 강조하길래 꼭꼭 읽어야지 했는데!ㅠㅠㅠ
세 권이나 되어서인지 엄두가 안나네요..ㅠㅠㅠ

반유행열반인 2021-04-05 07:04   좋아요 1 | URL
읽고 싶은 마음이 드실 때 슬슬 읽으셔도 괜찮아요 ㅋㅋㅋ 저는 책은 도끼다 를 안 봤네요 ㅋㅋㅋㅋ

syo 2021-04-05 1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빨라!

반유행열반인 2021-04-05 13:23   좋아요 0 | URL
어여 따라오세요 ㅎㅎㅎ

초딩 2021-05-08 18: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앙 안나 카레니나로 당선 !!! 진심 축하드려요 ^^
안나 카레니나 겨울에 넘넘 인상 깊게 읽었었습니다 ^^ ㅎㅎㅎ
좋은 주말 되세요~

반유행열반인 2021-05-08 20:57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초딩님 ㅎㅎㅎ
 
[eBook]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스토리콜렉터 59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7년 12월
평점 :
판매중지


-20210326 나카야마 시치리.

어쩌다보니 짧은 동안 이 작가의 책을 세 권이나 보았다. 이번 권 읽는 내내 든 생각은, 이제 그만 봐도 되겠다. 이야기를 밀고 나가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솜씨는 알겠지만 잔인한 장면이 슬프고도 선정적이라 즐겁게 읽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책은 제목의 음절 하나하나마저 다 부인해야 되는구나 ㅋㅋㅋ 가뜩이나 의심병자인데 의심병 더 도지겠어...나 세상 어떻게 살라고 이런 소설 싸지르는 거냐…
먼저 읽은 이웃님 말로는 속편은 더 별로라고 하니 역시나 빠이빠이할 시간. 잘 쓰고 음악이나 범죄분야에 애호도 있고 연구도 열심히 한 것 같은데 그런 전문 분야에서 과시적으로 쓰고 읽히는 부분은 읽은 세 권 마다 오히려 흥미를 떨어뜨렸다. (잘난척 하지 마 이새꺄 하는 느낌 ㅋㅋㅋ) 자극적인 묘사나 비참한 상황도 작가형사 부스시마 쯤 가면 그래도 순한 맛이 되는데 비교적 초기작인 이 소설에서는 과한 부분이 있고 그런 건 내 취향이 아니구나 싶었다. 세르비안 필름이니 살로 소돔 120일이니 하는 영화만 찾아보던 새끼가 할 말은 아니지만...저도 개과천선했어요! 누구나 정신에 결함 하나쯤 안고 사는 거 아닙니꽈!!!

+밑줄 긋기
-이 세상에는 완전히 멀쩡한 사람도 없고 완전히 이상한 사람도 없습니다. 저는 바로 얼마 전에야 그걸 알았어요. 누구나 마음속에 광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길 가는 사람들,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 운동장에서 땀 흘리는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예요. 예외는 없어요. 그런데 마음속 깊이 숨은 광기가 어떤 계기로 슬쩍 밖으로 나올 때가 있죠. 그리고 그걸 본 주변 사람들이 이 사람은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딱지를 붙여서 자신들로부터 한시바삐 떨어뜨리려고 해요. 왜 그렇게 소란을 떨까? 대답은 간단해요. 자신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은 그 광기를 길들이려고 노력해요. 선한 사람으로 남게 하려고 싸웁니다.

-맞는 말이야. 단지 거짓말이라는 건 남에게 하는 게 아니야. 대개 자신에게 하는 거지. 그렇게 거짓말은 자신의 목을 점점 조여 가는 거야.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이버 2021-03-26 23: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카드뉴스? 홍보물만 보고 잔인해서 뒷걸음쳤던 기억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는건 끌립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3-27 06:47   좋아요 2 | URL
저는 이런 장르를 많이 접한 편이 아니라 다중 반전(?)으로 구성한 게 신기했는데 또 흔하고 뻔하다고 하는 분도 있더라고요. 잔인한 거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여기 쓰인 방식은 의도는 알겠지만 좀 너무 나갔다 싶었어요 ㅋㅋㅋ책 팔고 싶었구나 하고 ㅋㅋㅋ

Yeagene 2021-03-27 21: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덕분에 이 작가 왠지 친숙하게 느껴지는 1인입니다ㅎㅎㅎ
전 어떤 책 읽고 별로다 싶음 그 작가책 안보는 경우가 많은데 열반인님은 그래도 꾸준히 보시는 것 같아요 ㅎㅎ행복한 주말 되세요!:)

반유행열반인 2021-03-27 21:37   좋아요 3 | URL
읽고 에이 더 명작 볼 걸 하는 거죠 ㅋㅋㅋ예진님도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여름밤 열 시 반 문지 스펙트럼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석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10322 마르그리트 뒤라스.

처음 뒤라스 소설 읽은 게 벌써 다섯 달 전이라니. 작가가 30대 후반에 쓴 그 소설 속 인물들도 여행 중이었다. 이탈리아의 무더위 속에서 휴가를 보내고 술을 마시고 보트를 타고 썸 타고 밀당 하고 섹스하고 할 일 다하다가 먼 길을 떠나 유적지의 말 그림을 볼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 소설보다 7년 뒤에 발표된 소설을 두 번째로 읽었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은 훨씬 더 줄었고 소설도 이전보다는 더 깔끔하게 쓰게 된 것 같다.
마리아와 피에르 부부와 그들의 자녀 쥐디트, 그리고 아름다운 클레르가 마드리드를 향해 여행중이다. 폭풍우 때문에 방도 없는 호텔에 갇혀 하룻밤을 보낸다. 마을에서는 치정 살인이 발생하고, 아내와 아내의 정부를 죽인 로드리고 파에스트라는 지붕에 숨어 있다. 마리아가 그를 발견하고 구하려고 한다. 마리아는 피에르와 클레르가 눈이 맞아 조만간 섹스할 걸 알고 있다. 그런데도 할 수 있는 일은 살인자를 빼돌리려는 시도와 술 퍼 마시는 것 밖에 없다. 으악. 결국 그들은 성당에서 고야 그림도 보고 마드리드에도 갔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그 다음 셋이 어떻게 됐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읽는 내내 졸려서 혼났다. 자꾸 비오고 그러다 덥고 나는 졸리고 마리아도 졸리고 나도 절주 해야지 마리아처럼 퍼 마시다간 큰일나겠네 헤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지금도 졸립다.
40대의 뒤라스도 별 감흥이 없으니 다음에 읽게 된다면 70세로 바로 쩜프해서 연인을 봐야겠다. 그러고 나서는 더 나이 먹고 쓴 거만 봐야지… 대작가의 히트작 이전은 굳이 안 보셔도 되요. 순서대로 볼 필요도 없어요… 이미 두 권 읽고 졸려 죽겠는 내가 증명합니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이나 여름밤 열 시 반이나 너무 판에 박히게 비슷했다. 배신의 주체가 전작은 부인이고 다음작은 남편인 게 다를 뿐 더위 속에 애기 물에 씻기는 장면조차 겹치고...동네가 이탈리아에서 에스파냐로 바뀌기만 하고...여행가고 싶네...근데 자꾸 졸리다. ㅋㅋㅋㅋ

+밑줄 긋기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 그녀가 묻는다.
그녀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다. 그가 말한다.
“사랑하고 있소. 나는 마리아를 사랑해왔지. 그리고 당신도.”

댓글(9)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21-03-22 23: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ㅋㅋㅋ 덕분에 몇 십년을 훌쩍 뛰어넘게 되었네요!! 이래서 알라딘이 좋아~~!!ㅋ
저도 어제 모처럼 친구랑 통화하면서 맥주를 마셨는데 공부좀 할까 하다가 책상에 엎드려 뻗다가 좀 전에 일어났어요. 침대에 가고 싶은데 계속 책상 위에서 엎드려 자는 거에요. ㅠㅠ 체력이 안 따라줘요.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3-23 06:57   좋아요 0 | URL
열공하시다 잠드셨군요 ㅠㅠ건강 잘 챙기세요. 맥주 마시고도 음주 공부(?)시도하시다니ㅋㅋㅋ라로님의 열정!!!

Yeagene 2021-03-23 14: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 <연인>이 인상적이라 책도 빌려봤는데...생각보다 그저 그랬어요.영화가 각색을 참 잘 했고 뒤라스가 글을 참 어렵게 쓰네...정도의 감상만 남아있네요.갠적인 생각인데,쉽게 써도 될 껄 이상하게 꼬아쓴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반유행열반인 2021-03-23 15:34   좋아요 2 | URL
아닛 그럼 저도 연인을 읽어도 비슷한 감상을 할 확률이 높겠습니다ㅎㅎㅎ저희 어머니가 연인을 정말 좋아하시고 여러 번 읽으셔서 연착륙 하려고 다른 얇은 책부터 접근했는데 제 취향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Yeagene 2021-03-23 15: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아니에요..오래전에 읽은 저의 얄팍한 감상일 뿐입니다.열반인님은 좋아하실지도 모르겠네요.ㅎㅎ(근데 위에 댓글 쓰기가 왜 안되는지 몰겠어요ㅠㅠㅠ)

han22598 2021-03-23 2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작가의 히트하지 않은 작품은...다 이유가 있다. 고 이야기 하고 싶지만. 그것들을 다 읽지 못하는 건...다 게으름 때문인게 사실. (적어도 나에겐 ㅋ) 비히트작품을 완독하신 반님 칭찬합니다. ^^

반유행열반인 2021-03-23 22:25   좋아요 2 | URL
읽고 걸러드리거나 오히려 반대로 모객하거나 ㅎㅎ하는 것도 저의 한 소임입지요...이건 그냥 출판사들이 이름으로 소소한 작품 팔려고 내놓았다는 심증 외에는 남지를 않네요...(출판사가 이 댓글을 싫어합니다.)

비틀즈 2022-03-18 1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걸 뒤라스 처음으로 접했는데 굉장히 감각적으로 휙 읽었습니다. 그 문체가 맘에 들더군요. 그래서 차근차근 뒤라스의 작품들을 찾아보려고 하는데, 역시 연인이 최고의 작품일까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2-03-19 15:05   좋아요 0 | URL
연인을 좋아하시는 엄마는 극찬을 하시더라구요. 저는 이 책과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모두 작가 명성에 비해 별로였어요 ㅎㅎ30대 초반작보다는 무르익은 노년작이 더 나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eBook] 채털리부인의 연인 2 펭귄클래식 34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지음, 최희섭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12월
평점 :
판매중지


-20210321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성애가 일으키는 불합리와 부조리를 일찍 깨닫고, 그것이 사라진 세상을 꿈꾸며 자기 삶에서나마 사랑과 섹스를 걷어내고 살아가는 삶에 대해 경이를 느끼며 존중을 표한다. 그건 커다란 관점으로 보자면 인류애조차 넘어서는 숭고한 지구애이자 자기 희생이다. 지구와 그 위를 사는 대부분의 생물체 입장에서는 그렇게 인간이 생식과 번영에 도움될 만한 하등의 행동을 삼가고 서서히 쪼그라들다 절멸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슬픈 소식을 알려드리자면, 그런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고매한 정신을 가진 인류 일부는 그들의 조상이 내내 붙잡고 온 유전자 상속의 의지를 스스로 포기하고 자신의 짧은 생애를 끝으로 단종될 예정입니다. 반면에 끝없이 이성을 욕망하고 저들끼리 엉겨붙는 비천한 무리들은 그런 비천한 유전자를 가진 후손을 세상에 자꾸 쏟아놓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당분간 그런 인간들이 사라지기는 쉽지 않겠습니다. 그런 비천함은 인류 종이 이만큼 버글거리며 지구를 끝없이 파먹게 만든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로렌스는 소설로만 말해도 충분했을 것 같은데, 이책 말미에 붙은 그의 산문(?)은 사족 같았다. 섹스가 짱!인데 이 시대 인간들은 제대로 된 섹스도 사랑도 몰라! 하고 딱딱거리는 게 뭔가 이 소설은 외설이 아니고 나름의 철학이 담긴 고매한 나의 주장입니다, 하고 애써 항변하는 것처럼 들려서 모냥 빠졌다. 안 그래도 됩니다. 할 만큼 (야하게 잘) 하셨고 이제 편히 쉬십시오 ㅋㅋㅋㅋ

콘스탄스는 채털리 부인을 때려치우고 자기가 바라는 삶을 위해 멜로즈에게 나아갈 수 있었을까? 멜로즈의 편지로 그들의 바람이 담긴 미래만 확인하고 해피엔딩인지 배드엔딩인지 매조지 없이 소설은 끝이 난다. 그렇지만 이미 이 소설이 채털리 부인- 으로 시작되는 제목으로 굳어진 채 백 년을 읽혔으니 로렌스 새끼는 잔인하다. 콘스탄스의 사랑, 코니의 연인, 도 아니고 여전히 이 소설은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다. 그렇게 보면 결혼하고도 성을 바꾸지 않는 우리나라는 좀 낫나, 싶지만 결혼 제도가 두 사람을 살아 있는 내내 는 물론 죽은 이후까지도 얽매여 놓는 상황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그 사랑이 식으나, 식지 않으나, 더는 섹스를 하든가, 말든가, 너희는 (오늘 날에는 죽음이 아닌) 법원이 갈라놓을 때까지 하나요, 그러니 자유로울 생각을 말라.

인간은 무엇이 되고 싶었길래 그토록 많은 제약과 굴레로 자신을, 서로를 얽매는 제도와 관습과 규범과 추문에 대한 혐오와 죄명과 악덕의 이름들을 만들어 왔는지 모르겠다. 멜로즈 말대로 양철 인간이 되고 싶었을까? 어떤 열정에도 욕망에도 초연한, 그래서 고통 받지 않고 내내 등신(나무, 돌, 흙, 쇠 따위로 만든 사람의 형상을 말합쥬)처럼 흔들리지 않는 무언가이길 바랐을까? 그게 불가능한 걸 아는 사람은 그냥 바로 지금 여기에서 최대한 누리며 행복하기로 합니다. 그저 죄인이 되고 악인이 되겠습니다. 코니와 멜로즈가 인류 사는 곳곳마다 어느 시대마다 서로 얽으며 함께 있길 간절히 원해 왔다는 사실을 수많은 서사 속에서 거듭 읽으며 우리 인류 파이팅, 하고 응원이나 하겠습니다. 이상 속이 좁아 인류애와 이성애 이상 나아가지 못한 진화가 덜 된 구시대 인류종이 미래의 지구 생명체들에게 미리 사과 인사 올림.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유행열반인 2021-03-21 14:49   좋아요 3 | URL
앞으로 저라도, 우리끼리라도 콘스탄스의 연인, 이라고 불러줘야 겠습니다. ㅋㅋㅋ

하나 2021-03-21 14: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할 만큼 (야하게 잘) 하셨고 이제 편히 쉬십시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보다 로렌스 평론 잘 쓸 수 있냐 진짜 ㅋㅋㅋㅋㅋㅋㅋ 채털리 부인 처음 읽을 떄 : 모야, 이게 모가 야해.. (유명세에 비해 실망) 채털리 부인 두 번 읽을 때 : 모야, 야한 말이 없는데 왜 이렇게 야해.... 어떻게 하는 거야. 두고두고 채털리부인으로 불리게 하다니 잔인한 로렌스! 공감 222

반유행열반인 2021-03-21 14:50   좋아요 4 | URL
저 미래의 하나님이 남길 댓글에 미리 댓글 달아뒀습니다 ㅋㅋㅋㅋㅋ

하나 2021-03-21 14:50   좋아요 3 | URL
북플 오류 난리나서 수정 안되길래 다시 썼는데... 또 열반이 혼자 말하는 사람 만들었따.. 미안쓰... (잠을 못 자서 오타가 난리남)

반유행열반인 2021-03-21 14:51   좋아요 3 | URL
안녕히 주무십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나 2021-03-21 14:54   좋아요 3 | URL
쪽잠자고 일어났는데 그래도 뭔가 계속 잠이 부족하니까 이상한 짓을 하네요. 그래도 열반이 보고 싶어서 왔음! ㅋㅋㅋㅋ 신나는 리뷰 잘 보고 가요~ 주말도 잘 보내고 있어영!!

Yeagene 2021-03-21 15: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독후감 읽으니 아무래도 안되겠어요...저 이 책 다시 읽어야겠어요.머릿속에 남아있는 게 별로 없어서 잘 생각이 나질 않네요.제가 너무 설렁설렁 읽었나봐요...ㅠㅠㅠ

반유행열반인 2021-03-21 15:29   좋아요 2 | URL
다시 읽고 간단한 감상 남겨주세요. 불륜종자들이 말이 많다!!! 다시 봐도 하나도 안 야해!!!!같은 것도 괜찮아요 ㅋㅋㅋㅋ

2021-03-21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21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21-03-21 1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나카레니나ㄱㄱ?

반유행열반인 2021-03-21 20:07   좋아요 0 | URL
ㄱㄱ~ 이미 서문 펼쳐 놨다는 ㅋㅋㅋ펭귄판 전자책은 세 권이고 집에 종이책 작가정신? 판은 두 권인데 펭귄판으로 보려구요.

공쟝쟝 2021-03-25 16: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앞의 두문단, 너무너무 멋져요! 씹어뱉듯 양쪽 다까는 글!! ㅎㅎㅎㅎ 😈

반유행열반인 2021-03-25 16:44   좋아요 0 | URL
자기 반성하는 듯 전 인류를 다 까 버림!!!!죄송합니다 인류여 ㅠㅠ 우마레떼 스미마셍!!!!! 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03-25 17:38   좋아요 1 | URL
사실은 안죄송할 것 같은 뭔가 지적이고 날카로운 통찰임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3-25 18:04   좋아요 2 | URL
아니예유...지 같은 무지렁이가 뭘 알 것슈...그저 똥같은 글만 싸는 게 송구할 뿐이어라....

link123q34 2021-04-10 1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대댓글이 안되는군요..하..이재치는진짜..못잃어ㅋㅋㅋㅋ 저는 민음사판이었는데 사투리가 좀 읭스럽긴 했지만 어차피 영어를 안볼거라서 모국어이용자의 숙명이지 하고 말았는데 펭귄판도 비슷하네요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4-10 13:40   좋아요 1 | URL
네 다양한 방언 번역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ㅋㅋㅋ경상도어판 애린왕자 진짜 충격이던데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