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10603 김금희.

작년 이맘쯤엔 문화센터에서 소설쓰기 강좌를 머리털 나고 처음 수강해 보았다. 첫 시간에는 선생님이 수강생들에게 좋아하는 작가를 물었는데 나는 밀란 쿤데라, 그리고 김금희요, 해서 전혀 다른 작가들을 좋아하는 군요,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지 나는 된장국에 모짜렐라 치즈 넣어 먹는 짓 같은 걸 잘한다.
내 안에서 밀란 쿤데라와 김금희는 어떤 화학작용을 하며 뒤섞이고 있을까. 읽었다는 사실만 남았을 뿐 이미 한 톨도 남지 않고 몸 밖으로 다 배출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밀란 쿤데라는 아직 철도 안 난 십대 후반부터 멋도 모르고 좋아하다가 이제 철이 들 쯤 되니 에잇 빻은 할배야 너 노벨상 안 준대니까 그냥 편히 쉬어라, 하면서도 그래도 잘 쓰지 하면서 여태 찾아보는 중이다. 김금희는 읽은 지 겨우 2년 쯤 되었는데 그 사이 나온 책은 다 읽어 버렸다. 나의 한국문학 최애 작가를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꼽을 작가가 하나 있어 행복합니다. 헤헤헤.

좋아하는 작가의 책들을 내내 읽다 보면 왠지 그 작가들의 소설이 넘어야 할, 그러나 넘을 수 없을 산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었다. 나는 아마 이번 생에는 이 글 속눈썹 만큼도 못 쓸 거야. 이제는 봉우리 넘을 생각보다는 산허리 둘레길을 둘러둘러 천천히 걷기만 해도 마냥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마에 땀이 배면 걸음을 늦추고, 산길 옆에 핀 쪼끄만 꽃도 보고, 계곡물 쫄쫄 내려오는 것도 보고, 같이 걸을 사람이 있다면 야, 여기 정말 대단하지. 그치 대단해. 네가 더 대단해. 그렇게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마냥 걷듯이 읽고 독후감이나 써도 행복하지 싶네요.

먼저 읽은 이웃님이 작가님이 꽂힌 단어를 언급한 게 기억나서 나도 그냥 지나쳐지지가 않았다. 내가 찾은 희부윰은 세 개. 앗 하나 더 네 개.
단어의 기본형이 궁금해 검색해 보니 2007년 국립국어원은 단호하게 말한다.
-‘희부윰’은 잘못된 형태이며 제시하신 문장을 보니 그 사용도 바르지 않습니다. ‘희부옇게 날이 밝았다.’ 정도로 쓰시기 바랍니다.
꺼져 버려, 냉혈 인간,(116) 국립국어원 놈들. 말이야 만들고 쓰면 있는 거지 뭐. 막상 써 먹으려니 어따가 쓸지 감이 안 오네. 희부윰한 내 머릿속…

+밑줄 긋기
-그가 유키코에게서 마음이 정확히 왜, 어떻게 떠났는지는 끝내 다 설명할 수 없었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은 눈오는 풍경처럼 온통 환하고 완벽한, 압도적인 충일함에서 시작하지만 일단 지워지기 시작하면 또 눈이 녹는 것처럼 불규칙하게 얼룩이 연쇄되며 진행되니까. (108, ‘마지막 이기성’ 중)

-리애씨는 학생운동의 전통이 있는 독서회에서 활동했는데, 그곳의 여자 선배들이 얼마나 투철한 신념과 의식을 지녔든 간에 결혼 후에는 대개 비슷비슷한 불행에 빠지는 것을 목격했다. 이상한 얘기지만 남편을 두려워하지 않는 여자란 없는 듯 보였다. 그리고 과 학생회장이었던 선배가 남편의 폭력을 피해 리애씨 집에서 자고 간 다음 날, 혁명의 날이 오더라도 거기에 여자들의 자리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자는 노동자보다도, 노예보다도, 제3세계 식민지인들보다도 더 늦게, 어쩌면 영영 해방되지 못하겠구나. (203, ‘기괴의 탄생’ 중)

-가는 길에는 말 그대로 인파를 연속해서 맞았다. 섬에서 그곳이 파도에 파도를 더하는, 그만큼 물살이 센 바다라 죽은 사람도 많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그것이 내게 해당하는 얘기처럼 들리지 않았는데, 지하도를 걸으며 사람들로 만들어진 파고가 이렇게 끊임없이 내게 왔다가 무심하게 통과해 뒤편으로 사라지는구나 싶자 나의 어떤 것이 위태롭게 지워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자꾸만 깎여나가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게 와서도 나를 식별하지 않은 채 그냥 지나가는, 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 때문에 내가. (251-252, ‘깊이와 기울기’ 중)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아 2021-06-03 21:5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희 아버지도 된장찌게에 버터를 넣어 끓이곤 하셨는데 기가막혔습니다~♡ 저도 읽어볼래요!

반유행열반인 2021-06-03 21:51   좋아요 5 | URL
김금희는 감히 옳습니다 ㅋㅋ다들 좋아하는 건 아닌 거 같지만 아니 어째서 왜 하는 저입니다 ㅋㅋ찌개에 마가린 넣던 아빠는 기억이 나는데 ㅋㅋㅋ

scott 2021-06-04 00:33   좋아요 3 | URL
전 큰아빠집에서 토마토 넣은 된장찌개 먹고 문화적 충격을 받았는데 ㅎㅎㅎ
열반인님이 이리 좋아하시는 금희 작가님의 인그램까정 ㅎㅎㅎ
한낮의 연애 보다 이책 부터 읽어야 할까여??

반유행열반인 2021-06-04 07:05   좋아요 3 | URL
그런데 너무 한낮의 연애도 좋아요 ㅋㅋㅋ그게 처음 본 소설집인데 그냥 마음 가는대로 읽으심이 ㅋㅋㅋ이번 책은 막 봉우리 몇 개 넘은 사람이 쓰면 이리도 덤덤하구나 싶더라구요.

Yeagene 2021-06-03 22:0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금희는 찾아 읽습니다 ㅎㅎ
일부러 읽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작가인 것 같아요..이 책도 나중에 읽어볼려구요:)

반유행열반인 2021-06-03 22:07   좋아요 5 | URL
네 저는 정말 좋아하게 된 작가라 눈팅만 하는 인스타그램으로 작가님 원고 쓰시는 나날들 몰래 훔쳐보고 오곤 했습니다. 이 책에 거기서 한 줄 씩 보여주던 소설이 많이 모여 있어서 좋더라구요.

새파랑 2021-06-03 22: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 읽어보고 싶은데 아직 못읽었네요 ㅋ 저도 가끔씩 김금희 작가님 인스타 들어가서 보는데 재미있더라구요~~!

반유행열반인 2021-06-04 07:05   좋아요 3 | URL
네 식물도 열심히 키우시고 역시 저리도 꾸준하고 끈질기게 써야 내가 읽는구나 해요. ㅎㅎ

붕붕툐툐 2021-06-03 23: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김금희 작가님 책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혹시 입문으로 추천해주실 작품이 있을까용? 아님 그냥 이 책 읽을까요?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6-04 07:10   좋아요 3 | URL
예전에 알라딘에서 김금희 vs 최은영 하고 장난삼아 vs로 이웃님들 취향 확인한 적 있는데요. 젊은 작가상 연도별 시리즈에서 김금희 대상탄 너무 한낮의 연애 하나 최은영 쇼코의 미소 하나 골라보면 음 난...둘다 좋다 할 수도 있겠군요 ㅋㅋㅋ판독 실패 ㅋㅋ 이 소설집도 좋아요 소설이 입문이 따로 있지 않쥬 그냥 마음 가면 같이 읽으셔요 ㅎㅎㅎ

얄라알라 2021-06-04 00: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된장국, 모짜렐라 치즈
경지에 이르면 그 조합으로도 최고의 식탁을 차려낼 수 있는 거잖아요. 열반인님 멋지세요.
전 질문 받으면, 딱히 대답을 못하겠다는 걸, 열반인님 페이퍼 읽으며 알았어요.
외국 작가는 바로 나오는데, 한국 작가 이름이 바로 안 나오는구나...이거이거^^;;;;;;

반유행열반인 2021-06-04 07:12   좋아요 3 | URL
식탁은 안 차리고 다들 거부하는 걸 저 혼자 이 맛있는 걸? 하고 먹어요. 여기저기 권유해 보아도 아무도 포섭이 안 되네요..그리고 넣고 끓이기 보다 엄마가 끓여주신 된장에 마지막으로 혼자 먹을 거 퍼서 치즈 투척이라 지탄을 받는 편입니다 ㅋㅋㅋㅋ저는 김승옥! 이러다가 이제는 마음 속의 세대 교체 하였어요 ㅋㅋ

syo 2021-06-04 15: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금희누나랑 모짜렐라 치즈 넣은 된장국을 먹으면서 밀란 쿤데라의 노벨상 수상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네요. 그러려면 그 자리가 최대한 빨리 마련되어야 할 텐데.... 쿤할배.....

반유행열반인 2021-06-04 15:04   좋아요 0 | URL
금희누나에게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 ㅎㅎㅎㅎ

공쟝쟝 2021-06-13 2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금희언니는 좋겠다~~~ 잘써서~~~~~ 전 금희언니 소설 속 사람들이 좋아요. 엊그제 조중균의 세계 다시 읽었는데 또 좋더라.. 중균찡…

반유행열반인 2021-06-14 07:00   좋아요 0 | URL
진짜 잘써서 좋겠다 조중균 이름만 들어도 왜 슬프쥬
 
[eBook] 안나 카레니나 3 펭귄클래식 13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윤새라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3월
평점 :
판매중지


-2021053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어깨 사이에 머리를 넣고 열차 아래 온몸을 밀어넣은 안나가 기차 바퀴에 머리가 치이고 몸이 동강나는 동안 무얼 느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현실이라면 알 방법이 없다. 그걸 말해줄 안나는 이미 거기에 없으니까. 있었다가 없는 사람. 그렇지만 소설이니까, 톨스토이는 우리에게 전해준다. 마지막 순간 안나가 신에게 용서를 빌었다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걸 느꼈다고. 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작가에게는 독자가 읽어주길 바라는 방향성이 나름대로 있었을 것이고, 그러니까 레빈이라는 톨스토이의 아바타 같은 인물이 등장해 신의 섭리와 선한 삶이라는 깨달음을 얻으며 죽지 않고 행복하게, 평안한 일상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 갈피를 잡기 시작하는 장면을 덧붙여 놓았을 것이다. 그래도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결말이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안나가 끝까지 항복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안나가 모두를 걸고 선택한 브론스키와의 사랑은 유효기간이 있었다. 그 모든 슬픔이 안나의 편집증과 오해였는지, 정말 브론스키의 마음이 달라졌는지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안나가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일은 어느 순간 중단되었다. 그때부터 안나는 의심하고, 질투하고, 집착하고, 끝없이 사랑을 갈구하며 브론스키가 안나, 이렇게는 도저히 살 수가 없소. 하는 말을 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살 수는 없어요, 하던 안나의 말이 브론스키에게로 옮겨 가게 만들었다.
어느 겨울 친구 여럿과 떠난 여행지의 추운 밤 하늘 아래 내 사랑 앞에서 이렇게 살 수는 없어, 하고 나조차도 뜻 모를 말을 하며 울던 날이 떠올랐다. 집착과 환멸의 끝에 내 사랑이 사라지는 걸 바라보던 유월, 내내 부재의 금단현상으로 울며 보내던 어느 여름들도 생각났다.
사랑이 사라져도 삶이 계속 되고, 그 사랑이 돌아오는 행운을 누리거나, 새로운 사랑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러니까 여기 있는 나 이외에는 모두 흘러가는 거라고, 그저 이 순간 이 공간에서 내가 담길 수 있는 관계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미리 슬퍼하거나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한다.
안나에게는 그런 말을 건네줄 사람도, 그걸 알만한 충분한 경험도 없었다. 안나를 둘러싼 세상과, 사람들과, 관계의 흐름을 조감하게 해 줄 소설도 영화도 없었을 것이다. 미쳐 날뛰며 죽음 말고는 고통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절망감을 느끼는 일이 어떤 건지 알아서 슬펐다. 모르핀도 사랑스러운 자녀도 내내 위로가 될 수 없고, 온세상이 등돌리고 비난하는 중에 마음을 털어놓고 괜찮다 너는 틀리지 않다 지지하는 말을 해줄 사람이 없고, 모든 일의 시작이자 끝인 브론스키마저 곁에 있지 않고 곁에 있을 때도 냉담하게 느껴진다면. 안나는 똑똑하고 아름답고 열심히 책을 읽고 누군가를 보살피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모든 걸 역겨워하고 거짓으로 느끼며 사라지는 일을 실행에 옮겼다.
예전에 밀양이라는 영화를 좋아해서 여러 번 보았다. 신실한 한 친구가 말하길 자기 주변의 사람들은 그 영화를 믿음을 가지게 된 신도가 시험에 들자 하나님 뜻을 거스르다 벌받는 내용으로 이해하며 감명깊게 보았더라고 했다. 그 때 같은 책이나 영화라도 살아온 방식이나 가지고 있는 믿음, 세계관에 따라 서사가 얼마나 다르게 읽힐 수 있는지 실감했다.
안나 카레니나 또한 그럴 것 같다. 누군가는 안나를 이해하거나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좋아하거나 싫어할 것이다. 레빈의 삶에 감동을 느끼고 존경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솔직히 레빈이 좋은 사람일수는 있겠지만 매력도 없고 호감을 못 느끼겠다. 차라리 별 고민 없이 저 하고 싶은대로 살면서 여기저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오블론스키가 워너비인 나란 새끼…이지만 유한한 인간의 사랑 대신 영원하고 조건 없는 누군가의 사랑을 발명한 것조차 기만이고 거짓이야! 너희의 매트릭스고 마약이야! 하는 부정의 말은 마음 속으로만 하고, 그래, 그거라도 있어야 견디는 삶이란, 하고 가여운 마음을 가지기로 했다.
안나도 그저 가여웠다. 앞으로 나아질 거란 위로를 건네봤자 지금의 고통이 덜어지는 건 아니니까, 그냥 죽지 말고 버틸 수 있게 손을 꼭 붙잡고 내내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그 누군가가 하나가 아니라는 믿음을 잃지 않고 나도 그렇게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붙들어주는 손이 되어주려면, 죽지 말고 살아야지. 말벌처럼 야금야금 애벌레를 통으로 잡아먹고 오징어살을 오려 먹지 말고, 꿀벌처럼 조금씩 무한번 단맛을 모으고 모으며 버티는 사랑을 해야지. 그런 삶을 살아야지.
(후반부에 레빈이 말벌 타령하는 거 보고 웃겨 가지고 ㅋㅋㅋㅋ말벌하면 예전에 동해안에 말벌 떼 나타나서 오징어살 베어간 게 자꾸 생각나서 말벌 타령으로 마무리.)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1-05-30 13:3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말벌이야기 밑줄 보니까 기억나는거 같아요ㅎ 저도 안나가 제일 불쌍한거 같아요. 브론스키는 다른게 많았었지만, 안나는 브론스키 뿐이었는데 그렇게 심한말을 들었으니....완독 축하드립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5-30 16:12   좋아요 4 | URL
저도 영화로 봤을 땐 모두에게 완전히 버림 받았던가, 했는데 책으로 보니 또 완전 고립된 건 아닌데 안나가 스스로 상황을 그렇게 받아들였구나 싶더라구요. 축하감사합니다ㅎㅎㅎ

청아 2021-05-30 13:3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제 기분탓일 수 있지만 영화에서도 왠지 그녀의 죽음을 극적이고 아름답게 표현한것 같아 꺼림직했어요. 말벌떼가 오징어살을 베어갔다구요?? (한 마리만 봐도 굳어버리는 1인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5-30 16:14   좋아요 4 | URL
저는 솔직히 영화 내용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아 책 읽기가 즐거웠습니다 ㅋㅋㅋ스포 당하고 잊어버린 정도랄까...말벌 진짜 무섭죠 산 바로 밑에 살 때 손가락 만한 말벌 들어오면 그거 잡는다고 모기약 한 통 다 쓰고 사투를 벌인 기억이 나네요ㅎㅎㅎ오징어는 뉴스로 보규 엄청 충격먹은 기억 나는데 지금 검색해 보니 안 나와서 내가 꿈꿨나? 싶네요.

Yeagene 2021-05-30 15: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완독축하드려요!열반인님 독후감 보니 저도 너무 읽고 싶어지네요..안나의 최후를 소설에서는 어떻게 그렸을지 직접 읽고 싶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5-30 16:15   좋아요 4 | URL
네 제 마음에 안 드는 것과 별개로 그렇게 길게 심리묘사나 사회상 귀족 사회 그린 건 대단한 일 같습니다. 직접 읽으시는 날 응원하며 ㅎㅎ(나만 당할 순 없지 ㅎㅎㅎㅎㅎㅎ)

붕붕툐툐 2021-05-30 23: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안나 카레리나>를 안 읽었더라구요!!(톨스토이 평전 읽다가 현타옴~) 그래서 읽어야지 했는데 반열님이 리뷰를 뙇!! 이거 운명이죵?ㅎㅎ 완독 축하드려요!! 작품은 진짜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되는 거 같아요~ 저에겐 어떻게 읽힐지 궁금하네용!^^

반유행열반인 2021-05-31 07:07   좋아요 1 | URL
저는 어려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바보이반 그런 거 말고는 처음 읽는 톨스토이였어요ㅎㅎ약력만 봐도 젊어서 성매매하고 도박하고 그러다가 나이들어서 착한 척 하면서 부인 힘들고 빡치게 하는 거 보면 ㅋㅋㅋㅋ글쓰는 놈들은 다 왜 저런담ㅋㅋㅋㅋ븅븅툐툐님의 리뷰 볼 날도 기대할게요.
 
[eBook] 모든 순간의 물리학 -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물리학의 대답 카를로 로벨리의 우주 3부작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현주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10523 카를로 로벨리.

나는 여기에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어. 쉼없이 명멸하며 이곳저곳을 걷거나 날거나 기거나. 때로는 한 곳에서 무한에 가깝게 떨리고 울려. 다만 내가 여기든 저기든 있으려면 네가 반드시 바라봐야 해. 네가 본대도 없을 수도 있지만 네가 보지 않으면 내가 없는 건 확실해. 나의 앎도 삶도 짧지만 그 순간에도 자라거나 닳고 모이거나 흩어져. 이 우주의 좁은 한 구석을 차지하려고 그렇게 안간힘을 쓰고 있어. 내가 먼지만 한, 그저 특별할 것 없는 미량의 물질일 뿐인 걸 알기 위해 완전히 흩어지지 않고 겨우겨우 이 때까지 이 자리에 남아 있어. 그러니까 그 긴 우주의 시작과 끝 사이에, 그 중에도 지구가 이런저런 원소들을 붙들고 있는 잠시 동안, 찰나에 불과한 내 생애의 또 일부인 어느 시절에, 네가 내게서 나온 빛과 온도를 알아차리고 한 자리에서 공명하거나 이리저리 움직이는 건, 그런 날들이 영겁이길 바라는 건, 아름답지 않니. 우리가 주고 받는 신호가 문학이건 물리학이건 철학이건 미술이건 그저 흘리고 미끄러지고 웃고 마시고 하염없이 서로를 보는 일이건, 아름답고, 놀랍고, 기쁘다는 말 이외의 어떤 꾸밈이 달라 붙을 수 있겠니.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이버 2021-05-23 23: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두번째 밑줄긋기 하신 부분... 수학이라는 언어에서도 간결함이 아름다움으로 느껴지는게 신기해요

반유행열반인 2021-05-24 07:12   좋아요 1 | URL
책에서 나오는 유일한 수식인데 벌써 뭐에 대한 건지 잊어버렸습니다... ㅋㅋㅋㅋ과학책을 읽은 건지 시집을 읽은 건지 카를로 로벨리 두 권다 좋았는데 기억나는 건 없네요 느낌만 남기는 신기한 물리학책

초딩 2021-05-24 1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양자역학적 감상 넘 좋습니다~
Blue pale dot도 생각나고요.
이 책 좋은데 평점이 낮군요. 이번에 나온것도 바로 샀는데 ㅎㅎ 좋은 하루 되세요~~

반유행열반인 2021-05-24 13:05   좋아요 1 | URL
과학 교양서 생각하고 사면 지식 부분은 세부적이기보다 시적 압축? 으로 짧게 해놔서 불만인 분들도 있더라구요 ㅎㅎ저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와 김상욱의 떨림과 울림 같은 걸 읽은 뒤라 적응되서 볼 만 했던 것 같아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초딩 2021-05-24 13:25   좋아요 1 | URL
맞아요 맞아
저도 김상욱 교수님 책들과 같이 읽기도 했어요~ :-)

Yeagene 2021-05-24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리학책을 읽으셨는데,독후감이 아름답고 시적이네요.이 책이 그런 분위기인가봐요...열반인님,김상욱의 떨림과 울림 재밌으셨어요?:)

반유행열반인 2021-05-24 16:04   좋아요 1 | URL
기억은 안 나는데 과학을 이렇게 예쁘게 쓸 수도 있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카를로 로벨리 읽고 보니 김상욱 교수님이 이 분 따라했나 싶은 ㅋㅋㅋㅋ
 
[eBook] 가끔 사는 게 창피하다 - (나에게) 상처 주고도 아닌 척했던 날들에 대해
김소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10522 김소민.

에세이 읽기는 도박하는 심정으로 시작한다. 제목을 보고 아 나도 그런데, 하고 펼쳤는데 이번에는 꽝!
5분의1쯤 읽고 이럴 시간에 다른 거 볼까 때려칠까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우씨 그동안 읽은 게 아까워서 다 보고 깔 거야, 매몰비용 고려 안 하는 합리적이지도 주류경제학 가르침 따르지도 않는 인간. 관대하지 못한 나란 인간.

작가의 삶의 방식이나 고민까지 뭐라 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책으로 묶어 누군가의 시간과 돈을 들여 읽어주라 할 정도라면(저는 시간만 들여 송구합니다…빌려 읽었습니다) 조금 더 잘 다듬어 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아주 컸다. 누군가에게는 공감가고 좋은 책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랑은 결이 맞지 않았다. 한겨레신문 기자 출신이 아니었다면 한겨레 출판에서 이 책을 내줬을까? 신문사랑 출판사랑 별개라 해도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부족함을 느꼈는데… 처음부터 완벽할 순 없겠죠 다음 책은 더 나아지길 바라요…하고 보니 이미 두 번째 책이네요… 하여간에 나아지시길…

1. 작은 글 마다, 그리고 책 전체가 중심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삶의 중심을 잡지 못할 때 그럴지, 기획을 제대로 못한 탓인지 내내 궁금했다. 이러저러한 연령대와 성별과 사회적 지위의 사람이 돌연 퇴직 후 자아성찰하며 풀어낸 이야기, 쯤 되는데 그것만으론 약하다. 구심점이 없어 그냥 친구 일기장 훔쳐보는 느낌이다.
2. 에세이들 보면 작가가 접한 문화 컨텐츠를 인용하며 경험이나 사건을 엮는 게 안전하고 널리 퍼진 형식 같고, 이 책도 그랬다. 책, 영화, 드라마, 음악을 인용하며 각 꼭지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인용하는 방식도 매끄럽지 않고 끌어온 이야기들이 도무지 무슨 주제와 내용인지 잘 전달이 안 될 때가 많았다. 그러니까 드라마 안 본 사람한테 애청자인 누군가가 막 지난 줄거리랑 등장인물 두서 없이 풀어주는 걸 옆에서 지켜보는데 그 풀어주는 사람이 훌륭한 이야기꾼은 아닌 상황 같은… 내가 접하지 않은 많은 컨텐츠와 내가 접한 일부 컨텐츠가 모두 인용되는데, 두 쪽 다 같은 느낌이었다. 스포일러 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간접적으로 이야기 전해 듣는 사람이 원전을 찾아보고 싶은 흥미를 느낄 만큼은 전달해줘야 할 텐데 그 부분에서 많이 약했다.
3. 전달은 결국 문장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미문을 추구하는 쪽이라면 비유나 상징으로 두루뭉술해도 아 뭔말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예쁘네 그것만도 좋다 할 텐데 그 쪽은 확실히 아니었다. 문장 사이 사이가 말로 전하는 걸 듣는 듯 생략과 여백이 많고 흐름이 매끄럽지 않아서 곱씹을 부분도 아닌데 다시 생각하고 한 번 더 읽게 하는 게 별로였다. 글쓰는 직업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명징한 글을 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마는데 그것도 편견일수도 있겠지만, 하여간에 높은 기대에 비해 읽기가 힘든 건 내 독해력 탓인지 취향의 차이인지 글쓴이의 부족함인지 혼자서는 판단할 길이 없다.
4. 그래서 내 글 또한 읽는 누군가 이런 걸 나무의 시체에 새기고 배터리 닳아가며 읽은 걸 한탄하는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이미 그랬을지도 모르니 괜시리 창피해지는 읽기였다. 내 주말 내놔…(지가 선택해 놓고 떼부리는 나새끼…이런 새끼 싸대기 칠 만큼 다음 책은 더 잘 써달란 말야…츤츤)
+밑줄 긋기
-현실의 잔인함에는 맥락이 없고, 고통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지 모른다. 노크도 없이 들이닥치는 불운들 앞에 무기력해져 버리기도 한다. 세상은커녕 내 머릿속마저도 통제할 수 없는 바다가 출렁인다. 그 속에서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 삶의 사건 대부분 내가 선택할 수 없지만 그 이야기는 내가 쓸 수 있다. 콧물과 눈물을 빼면서, 쓰고 지웠다 쓰고 지우면서, 이별을 독립의 이야기로, 상실의 고통을 한때 가졌던 행운의 증거로, 결핍을 공감의 끈으로, 그리움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으로, 쓸 수 있다. 쓸 수 있다고, 쓰겠다고 다짐한다. 내가 내 인생에 “네”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와 타인을 믿을 수 있을 때까지 다시 쓰다 보면, 핏빛 태평양을 표류하면서도 아름답게 빛나는 생명체 호랑이 리차드 파커와 함께 ”감각이 마비될 정도로 밝고 시끄럽고, 묘하고 섬세한 생명의 표정”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꼬집힐래 물릴래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 같지만 그래도 굳이 꼽으라면 아줌마라고 불리고 싶다. 한국에서 아줌마와 어머니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생물이다. 아줌마엔 무시와 혐오의 양념을 덤으로 친다. 그럼에도 아줌마를 고른 까닭은 애가 없는 나한텐 폭력적인 ‘존경’보다는 차라리 무시가 낫기 때문이다. 40대 여자 중에 어머니가 되기 싫은 여자, 또는 될 수 없는 여자도 많다. 다짜고짜 ‘어머니’라고 부르는 건 다 대학은 나왔을 거란 전제를 깔고 몇 학번이냐 묻는 것과 같다. 40대면 응당 어머니는 된 줄로 아니,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 인생에 어딘가 붙어 있을 ‘미완성’의 딱지를 찾게 된다. 아줌마라고 하면 째려볼 수라도 있는데, ‘존경하는’어머니로 불리면 기분이 상해도 성질도 못 낸다.

-“시선 때문이었던 것 같아. 내 또래 아이들이 나를 쳐다보는 시선. 물건같이 시선을 받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모멸감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고, 어떤 수치 같기도 했어.” 보는 사람과 보이기만 해야 하는 사람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정말…너무 초라하게…”파도 소리 때문인지, 마지막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아 2021-05-22 21: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딱 이런일 있었는데 저는 심지어 내돈내산...(먼산봄)며칠은 그래도 읽어보려 애를 썼는데.. 결국 신간이니 어느정도 되돌려받을 기대에 후다닥 팔아버렸지요. 나름 유명한 작가..북플 고수님들이 그 분보다 잘씀요.ㅋㅋ🥲(부들부들)

반유행열반인 2021-05-22 22:09   좋아요 2 | URL
이렇게 저렇게 우리를 독자로 성장시키는(?) 작가님들…. ㅋㅋㅋ

Yeagene 2021-05-22 22: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인 경험인데,기자 출신이라는 분들이 기대보다 글을 못 쓰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구요..이상하죠..기자는 글 잘 써야하는 거 아닌가요...?(아닌 것 같기도;;;)

반유행열반인 2021-05-23 07:00   좋아요 3 | URL
기대가 너무 높거나 기사 뽑는 건 어느 정도 형식이 정해져 있고 제목도 데스크가 뽑아주는데 다른 장르 글 쓰려하면 그게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건 기자도 글도 잘 모르는 바보의 넘겨집기 입니다 ㅋㅋㅋ

새파랑 2021-05-22 22: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번 읽으면 끝까지 읽어야 하는 습관 때문에 저런 상황이 꽤 있더라구요. 어쩔수 없이 읽는? ㅜㅜ 아무래도 에세이가 그러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진입장벽이 낮아서 그런거 같기도 하고...

반유행열반인 2021-05-23 07:01   좋아요 2 | URL
네 저도 읽던 책 포기하는 게 어려워서 고친다 하고는 아직 못 고친 버릇이에요 ㅋㅋ그래서 다음부터는 다른 장르는 몰라도 에세이는 이웃님이 진짜 괜찮다 하는 것만 보려고요...
 
[eBook]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 저들은 대체 왜 저러는가?
진중권 지음 / 천년의상상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10521 진중권.

우리집 책장에는 읽지도 않은 미학 오디세이 네 권이 꽂혀 있다. 내가 산 건 아니니 동생 아니면 엄마가 산 것 같다. 전3권인데 왜 네 권인가 하니 1권은 별이라는 친구가 내게 준 것이 한 권 더 있다. 진중권에게 친필 사인을 받은 거라며 넘겨주는 걸 난 시큰둥하게 받았다. 집에 세트로 다 있는지는 미처 몰랐지만. 겉표지를 넘기면 별이 이름과 진중권의 사인과 별이가 다니던 대학에 진중권이 강연을 왔던 날짜가 적혀 있을 것이다. 받은 직후 잠시 펼쳤다 덮은 게 다라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별이는 십대 후반 내가 놀던 피씨통신동호회에서 알게 된 경상도에 살던 동갑내기 소년이었다. 나중에 별이 사진을 다른 친구에게 보여주니 우웩 못생겼어 할 만큼 못났지만 왠일인지 나는 별이에게 푹 빠져서 십대 후반과 이십대 초반 긴 시간 동안 별이와 종알종알 수다떠는 것을 즐겼다. 우리는 김승옥과 무라카미 류를, 마릴린 맨슨과 나인인치네일스와 펄프와 매닉스트리트프리쳐스를 같이 읽고 듣고 또 뭐라뭐라 떠들었다. 우리는 술주정뱅이 아버지라는 불우한 가정과 고등학생의 경제적 빈곤과 학교의 부조리함과 연애의 고충 같은 것들을 공유했다. 나는 별이에게 호감을 가지고 몇 번을 들이댔지만 다 차였다. 별이는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지조를 지키는 나름 순수한 애였다. 사실 동호회에서 일 년에 한 번 있는 행사에나 얼굴을 볼 만큼 거의 만난 적 없는 애였는데도 나는 글 잘 쓰고 어린 주제에 인생 다 산 듯한 허무와 초월의 분위기를 풍기는 애들, 특히나 딱딱한 경상도 사투리 쓰는 아이들을 그때부터 좋아했다. (그리고 스물한살에 지금까지 이어질 연애를 시작하기 전까지 경상도 남자를 하나둘셋넷…하여간에 많이도 짝사랑했다.)

내가 더는 별이를 이성으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지만 친구로 남게 된 어느 날 부터, 별이와 나는 사소한 일로 다투고 연락을 끊다 다시 내가 미안해, 하고 연락을 주고 받는 일을 몇 년을 반복했다. 상주에서 군복무와 대학 공부까지 마친 별이는 상경했고, 조그만 특수 직종 신문 만드는 회사에 취업해서 기자겸 편집인겸 영업겸 하여간에 혼자 가상의 여러 이름을 돌려 써 가며 지면 대부분을 채우는 일을 하게 되었다. 우연히도 내가 살던 동네 가까이에 집을 구해서 우리는 퇴근길 버스나 지하철에서 마주치기도 하고, 일부러 만나서 커피 한 잔 나눠마시고 헤어지고, 내가 가진 만화책을 빌려주고 받고, 동네 놀이터에서 만나 수다 떨다 헤어지고, 별이가 자기 사무실(명색이 신문사인데 왜 직원이 너만 나와 있어…)을 구경시켜주기도 했다. 생애주기를 겪는 방식도 공통의 지인도 소비하는 문화컨텐츠도 달라지면서 점점 공통의 이야기거리가 떨어지면서 특별히 통할 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이사를 가면서 저절로 거리가 멀어졌지만 그래도 멀지 않은 지역에 살아서 가끔 안부나 주고 받곤 했다. 그냥 수다일 뿐인데 이상하게 싸우고 기분 상하며 대화를 끝내는 일이 잦아졌다.

나도 변했겠지만, 별이는 확실히 변했다. 살이 찐 여자친구 흉을 보았고, 느끼한 아저씨처럼 살이 찌고 변한 얼굴이 담긴 셀카를 보내고, 자기 집에 놀러오라고 집요하게 말하고, 음식을 만드는 중이라고 했더니 뒷모습이 섹시할 것 같다고 하고(으으 난 그 때 임신중이었다고), 비가 오니 같이 만나 전이라도 사먹자고 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늘어 놓았다. 그무렵은 이미 만나지 않게 된지 몇 년이 흐른 뒤였다. 적당히 넘기고 거절하다 못해 조금 세게 말했다.
그렇게 멋있는 척 하던 애가 왜 이렇게 병신 같이 변했어?
병신이라는 말 나쁘다는 생각하면서 지금은 안 쓰려고 최대한 노력하는데 하여간에 저때는 정말 심한 말을 해주고 싶을 만큼 질린 상태였다. 갑자기 급발진 하는 데 당황했는지 별이는 우물쭈물 변하는 것들에 대해 주워삼킨 것 같은데 하여간 그러고나서 얼마 되지 않아 별이가 이제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작별인사를 했다. 그렇게 이십년 조금 못 되는 인연이 정리가 되었다. 나는 우리가 포레스트 검프의 검프와 제니 같은 사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각자의 삶을 살며 시대에 세월에 휘말려 가다 어느 순간 다시 마주하고 서로의 변한 점과 변하지 않는 점을 찾으며 나름 위로를 주고 받는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런 위로보다 비루함을 드러내는 지점이 찾아오자 나는 그 친구를 패대기칠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은 변한다. 세상도 변한다. 나 자신도 과거와 많이 달라졌고 달라질 것이다. 입장과 환경과 가진 힘이 달라지면 선택도 말도 행동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걸 인정한다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들을 알고 자신을 순수하고 위대한 불멸의 절대선 같은 존재로 여길 수는 없을 것이다. 노무현의 죽음 이후 세상 초월한 듯 제대로 사는 삶에 관해 고민하는 듯하던 유시민의 글을 많이 좋아했고 대부분의 책을 읽었다. 그러면서 다시 정치로 그가 돌아가려 하는 날이 오면 손절하겠다고 했다. 이유는 다르지만 손절의 시기는 더 빠르게 찾아왔다. 진보가 그 지저분하고 위선적인 조국 일가와 윤미향을 지키겠답시고 그들의 잘못을 겨누는 이들을 악으로 규정한 순간 나는 정치와 진보에 대해 최소한으로 남아 있던 희망마저 버렸다. 진짜 해도해도 너무한 새끼들 아냐. 그런 생각을 진중권도 했나 보다. 자기도 부역자였지만 도를 넘었다 싶었나 보다. 강준만의 책도 비슷한 울분으로 튀어나온 것 같았는데 진중권의 책이 조금 더 재미있게 읽혔다. 빡치긴 한데 조금 더 차분하게 조목조목 깐다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읽는 내내 읽을 수록 열받네, 하면서도 왜때문인지 재미있었다. 진중권 책은 처음 읽고, 그가 떠드는 건 십여년 전 처음 트위터 등장했을 때 진종일 떠들어대는 게 신기해서 팔로우하다가 개소리 비중이 높아지길래 언팔하고 트위터며 SNS며 다 집어치우고 귀를 막고 있었는데 그냥저냥 재미있는 책이었다. 미학 책은 당장 읽을 생각은 들지 않지만 언젠가 읽을 일이 있으려나. 진중권을 여전히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하여간에 저 빡쳐하는 심정이 이해가 된다. 그리고 이 정권이 끝나고 나면 또 어떤 뉴스거리들이 죄와 벌과 보복과 응징의 서사가 이어질지 궁금하지만 알고 싶지가 않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1-05-21 18: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손절에 관한 별이 이야기는 재미있으면서도 씁쓸하네요. 그렇게 뭔가 변해가는게 참 아쉽습니다. 좋게 변하면 좋은데 다 그런거는 아닌거 같더라구요ㅜㅜ 매닉스가 언급되어 있어서 반갑네요. 저도 매닉스 완전 좋아한다는^^ 무라카미 류는 첨 읽고 충격받은 ㄷㄷ 그러면서도 읽고 싶어지는 오묘함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5-21 20:01   좋아요 3 | URL
매닉스 오래오래 아직도 가끔 음반 나오는 것 같아서 신기해요ㅎㅎㅎ젊어서 홀리바이블에서 막 엄청 거친 음악하다 점점 듣기 편하게 바뀌는 거 보면 나이 들면 사람이 유해지나 보다 싶기도 ㅋㅋㅋ유하더라도 추하지는 않는 게 바람이지만 ㅠㅠ무라카미 류는 이십대에는 꽤 읽었는데 삼십 이후로는 하나도 안 읽음요 ㅋㅋㅋ

청아 2021-05-21 19: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글 너무 좋아요ㅋㅋㅋ♡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리 변했을까요? 그러면서 저도 누군가에겐 어떤어떤 면에서 변절자로 보이지 않을까 궁금해지는 7시31분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5-21 20:03   좋아요 4 | URL
너무가 붙은 정도라니 감사한데 과분하기도 하네요 ㅎㅎㅎ서울살이가 팍팍했을까요? 누가 저보고 변절자라 하면 아냐! 난 원래 이런 인간이었어! 그게 더 심해진 거야! 하고 속을 긁어 놓고 싶은 이 반골의 마음이란 ㅎㅎㅎ

붕붕툐툐 2021-05-21 21: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무상에 대한 진지한 고찰 잘 읽었습니다. 헌데 왜 저는 한결같이 찌질한 걸까요?ㅋ
남자 사람과는 이성으로서의 관심이 없으면 시간 아까워 손절이고, 있으면 차여서 손절. 결국 손절뿐이라 이젠 씨가 말랐..ㅠㅠ

반유행열반인 2021-05-21 21:53   좋아요 1 | URL
우왕 무상 진지 고찰 이런 말 나와서 뭐지 다른 글의 댓글 잘못 다셨나 한참 고민했습니다 ㅋㅋㅋ저도 시간 아까워22 차여22 하는 그 손절과 손절 사이에 인연이 있고 인연과 인연 사이에 손절 당하거나 손절 하는 게 삶인가 하옵니다…

포스트잇 2021-05-21 2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냥 지나치려다가.. 도대체 ‘그 지저분하고 위선적인 조국과 윤미향‘이라 하시는데 뭘 보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는 건 알지만 참 알라딘 서재 글에서 만나는 건 안타깝네요.

반유행열반인 2021-05-22 02:59   좋아요 0 | URL
안타까우시다니 저도 안타깝네요.

Yeagene 2021-05-21 2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글 너무 좋네요.희망의 끈을 잡고 계속 놓지 않으려다 끝끝내 놓아버리고 말았어요.ㅠㅠㅠ

반유행열반인 2021-05-22 03:02   좋아요 1 | URL
좋아해주셔서 감사한데 온통 니들 너무해! 다 싫어! 빠이! 하는 글이라 송구합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