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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뭐든 다 배달합니다 - 쿠팡·배민·카카오 플랫폼노동 200일의 기록
김하영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12월
평점 :
-20210605 김하영.
인터넷 쇼핑몰과 택배 서비스가 없었다면 진작 굶어 죽었을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십여년 전부터 직접 마트에 들르기 보다 인터넷 슈퍼에서 장을 봐서 배달을 시켰다. 이십년 전 인터넷에서 음반과 도서를 시키면서 이건 정말, 나를 위한 거다, 했었다. 상점에서 물건을 고르는 동안 곁을 맴도는 점원이나 가게 사장님이 늘 불편했다. 지어낸 게 뻔한 과도한 친절도 싫고, 사긴 할 거니? 혹시 훔쳐가는 건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로 주시하는 걸 온몸으로 느끼는 일도 너무너무 싫었다. 주문을 기다리는 계산원 앞에서는 초조해져서 메뉴를 제대로 훑어보지 못하고 아무거나 곧바로 보이는 걸 부르던 때가 있었지만, 키오스크 앞에서는 이리저리 페이지를 옮겨 가며 신메뉴와 할인 메뉴를 따져보는 여유를 부린다.
기술 발달로 비대면 서비스를 누리게 될수록 없어지는 직업이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편리함을 누리면서도 동네 음반 가게나 서점이 없어지는 걸 지켜보며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패스트푸드점에 머리 하얀 어르신들이 일하시는 걸 보고 나도 은퇴하면 저렇게 파트타임 할 지도 모르겠네, 하던 것도 잠시, 이젠 최저시급 받던 일들마저 전부 사라져 버리겠구나, 예전에 읽었던 ‘사라진 직업의 역사’에 등장하는 물장수, 전기수, 인력거꾼 같은 직업이 생각났다.
이 책은 반대로 기술 발달과 모바일 기기가 보편화되면서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 노동’에 대해 보여 주었다. 기자였던 저자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2020년 2월부터 약 200일 간 쿠팡 물류센터, 배달의 민족 배달원, 카카오 대리운전기사로 일한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들이라 궁금했던 노동의 시간과 공간을 정말 생생하게 그려 주었다. 가끔 풀타임으로 매여 사느니 딱 일하고 싶은 만큼만 일하고 덜 벌고 적게 쓰는 삶을 꿈꿔 보는데, 책을 읽고 나니 그냥 하던 일이나 잘하자 싶었다. 근력 부족, 면허 없음, 자전거도 못탐, 대인 기피 매우 심함-이런 나는 대부분 서비스 직종에 해당하는 비정규 노동 시장에서 버텨내지 못할 것이다.
쿠팡 오비 업무 체험담은 거대한 물류센터 안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주문된 물건들을 포장하고 출고하는지 알려주어서 흥미로웠다. 그야 말로 단순 업무, 생각할 필요도 없이 기계가 가리키는 대로 움직이는 부품처럼 사람이 이용되는 장면은 섬뜩하기도 했다. 배민 커넥터 체험도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홍보하는 노동이 그들이 광고하는 것처럼 그렇게 산뜻하지도, 여유 시간에 쉬엄쉬엄 용돈 벌이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풀타임 배달원이 사라지고, 사람을 점점 대체 가능한 존재로, 소위 노동시장 유연화에 기여해서 사람을 소모하고 또 바꾸고 하는 걸 보면 이제 배달료나 택배비 아까워하면 안 되겠네 싶었다. 카카오 대리운전 체험은 정말 짠했다. 길에서 헤매고 대기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낮아지는 시간당 임금, 한밤을 헤매며 불확실함과 운에 기대어 손님을 찾아다니는 장면에서는 자꾸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가 떠올랐다. 그 인력거꾼을 택시가 밀어내고, 다시 택시 노동자를 우버가 밀어낼 뻔한 걸 겨우겨우 법안으로 정책으로 틀어 막고 있다고, 우버와 대리기사 시장의 유사점을 든 점도 앞으로 우버가 도입되더라도 그 산업이 흘러갈 방향을 대략 보여주는 듯싶었다. 하여간에 쉬운 게 없다. 대체 뭐해 먹고 살아야 하는가!!
최저임금이나마 챙겨받을 수 있는 시간제 노동자에 비해 배달 노동자 등 특수고용노동자는 훨씬 열악한 상황에 놓인다는 것을 알았다. 인도 위를 달리고,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 건너는 내 앞을 쌩 지나치는 오토바이 배달맨들을 보면 열받기는 하지만, 무엇이 그들에게 법을 어기고 다치거나 죽을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그렇게 폭주를 멈출 수 없게 떠미는지는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가 집앞에 놓인 택배박스에서 손쉽게 생활용품을 꺼내들고, 맛있는 뿌링클을 따뜻하게 받아 먹을 수 있게 해주는 누군가의 노고에 계속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과연 나는 제대로 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지, 산업 구조나 국가의 노동 정책은 그런 노동자를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지 끝없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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