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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크레이지 호르몬
랜디 허터 엡스타인 지음, 양병찬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20년 5월
평점 :
-20210712 랜디 허터 엡스타인.
작년에는 뇌와 호르몬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다. 도파민형 인간은 너무 한 가지 호르몬에 치중해서 조금 무리다 싶은 주장도 있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
이번 책은 뇌과학에 대한 것은 아니고, 내분비학이라는 호르몬 관련 의학, 과학의 발전 과정을 다루면서 우리 몸과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호르몬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다. 호르몬 이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 그게 호르몬 때문이라는 걸 알기 위해 연구를 거듭한 의사와 과학자들, 그 과정에서 생긴 여러 경악할 만한 일화들을 보면 지금 우리가 어렵지 않게 처방 받는 경구 피임약이나 향정신성 약물이 개발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관심과 의문을 가지고 분투했는지 알게 된다.
이 책은 향정신성-우울감이나 정신과 질환에 관계된 호르몬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는 않는다. 뜨악했던 부분은 시신에서 뇌하수체를 수집, 모금하던 방식이나, 거기에서 추출한 오염된 성장호르몬이 CJD(소위 인간 광우병이라 불리던 전염성해면상뇌병증)의 원인이 되어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는 사례 소개였다. 갱년기 증상 완화를 위한 호르몬 치료에 대해 과학자들이 오락가락하는 부분도 마찬가지였다. 천연도, 과학도 만능이 아니고 새로운 기술이 도입된 이후 곧 그 효과나 유해성에 대해 뒤집히는 일이 생기는 것을 보면, 환자 입장에서는 어떤 방향을 따라야 할지 혼란스럽기도 하겠다.
마지막 렙틴 호르몬 관련해서는, 그렇게나 많은 사람이 식욕 억제에 실패하고 다이어트를 어려워하는 것이 우리가 본디 생겨 먹은 것을 뛰어넘고자 하기 때문일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아무도 한 번에 10미터짜리 벽을 뛰어넘으려고 하지 않는데, 어쩌면 수많은 시도들, 저녁을 굶고, 체중을 줄이고, 더 많은 운동으로 칼로리를 소모하고, 그런 일들 자체가 그렇게 높은 벽을 강제로 넘으라고 떠미는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밑줄 긋기
-어떤 사람들은 조금 다 오래 살거나 더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 호르몬에 대한 과장 광고만 들으면 사족을 못 쓴다(문자 그대로 사족을 못 쓰게 되는 경우도 있다).
-호르몬은 인체의 한 부분에 있는 세포에서 출발해 멀리 떨어진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연결선 따위는 전혀 필요 없다. 마치 무선 통신망과 같다.
-호르몬은 성장, 대사, 행동, 수면, 수유, 스트레스, 기분 변화, 수면-각성 주기, 면역계, 짝짓기, 투쟁-도피, 사춘기, 자녀 양육, 섹스를 통제한다. 호르몬의 목적은, 단적으로 말하면 신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하지만 호르몬은 소란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내과 의사의 관점에서 보면, 아름다움은 피부 한 겹에 불과하다. <<타임>>매거진과 같은 언론이 질병의 비극을 경솔하게 다뤘다니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쿠싱의 말)
-병사들은 편지에 자신의 위치를 적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존스는 시거에게 위치를 몰래 알려주는 방법을 고안해냈다.존스는 전선으로 떠나기 전에 편지와 똑같은 크기의 유럽지도 두 장을 구입해 그 중 한 장을 시거에게 나눠줬다. 그러고는 “앞으로 편지를 쓸 때마다 지도 위에 편지를 올려놓고 내가 있는 장소 위에 바늘로 작은 구멍을 뚫겠소”라고 했다. 시거는 존스가 보낸 편지를 받을 때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지도 위에 편지를 올려놓고 구멍이 뚫린 곳의 위치를 확인했다.
-다른 트랜스젠더들과 마찬가지로, 멜은 ‘나의 해부학적 성은 내적 감정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뿌리 깊은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의 믿음은 성정체성과 관련된 것으로, 욕망과 관련된 성지향성과 다르다. 트랜스젠더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어한다. “성지향성은 ‘누구와 함께 잠자리를 하고 싶은가’에 관한 것이고, 성정체성은 ‘누구로서 잠자리에 드는가’에 관한 것이다.”
-“성전환은 고통을 수반하는 과정이에요. 많은 손실을 감내해야 하며, 심지어 이혼을 겪을 수도 있어요”라고 멜은 말했다.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과 장차 당신의 일부가 될 거라고 상상했던 사람이 갑자기 변하고, 장및빛 미래가 순식간에 사라지죠. 젠더는 우리의 자기감과 사회적 동아리에 너무나 깊게 스며들어 있어요. 성전환을 하면 삶의 모든 측면들이 송두리째 뒤집어져요. 바뀐다는 건 본질적으로 슬픔을 초래하죠.”
-멜은 자신이 ‘젠더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돕는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 “세상에 두 가지 젠더가 존재하는 건 사실이지만, 거기에 너무 큰 비중을 두는 게 문제예요. 젠더가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미치는 영향’이 덜 분명하고 덜 엄격했으면 좋겠어요.”
-렙틴 유전자를 발견한 프리드먼은 “우리는 ‘뭔가를 마음대로 조절하고 싶다’는 헛된 욕망을 품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비만의 경우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식사량을 줄이면 체중을 줄일 수 있다는 환상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입니다. 행동의 밑바탕에는 식욕, 성욕, 수면욕 등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기본적 충동이 도사리고 있으며, 그 충동의 밑바탕에는 호르몬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본적 충동이 얼마나 강력한지’, ‘스런 충동을 의식적으로 조절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의 모든 행동을 조절하는 것은 여러 가지 호르몬이며, 그 호르몬들의 작용은 서로 복잡미묘하게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