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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창백한 불꽃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7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윤하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평점 :
-2021072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6월에는 소설을 제법 읽었는데 7월에는 소설 실종이다. 소설책을 옆에 쌓아두고 자꾸 이상한(?) 전자책만 빌리니까 그렇지…
그래서 오랜만에 나보코프 읽자, 하고 ‘창백한 불꽃’을 책을 빌렸다.
책 읽을 때 맨 뒤 평론, 해설, 옮긴이의 말 같은 건 잘 안 본다. 그냥 이런 독해도 있구나, 하고 참고하면 되는데 수많은 해석 중에 굳이 책 뒤에 따라붙어 인쇄까지 되는 의견은 뭔가 권위가 과하게 부여된 거 같고 그렇게 안 읽으면 혼낼 거 같고 그게 싫어서 메롱 안 읽을 거지, 하고 생략할 때가 많았다. 사실 그 책으로부터 빨리 벗어나고 싶을 때도 많아서. ㅋㅋㅋ 비슷한 이유로 주석도 잘 안 봤었다. 제대로 된 텍스트면 본문 안에 잘 소화시켜 녹여내야지 뭘 다리 꼬리 주렁주렁 달고 왔다리 갔다리 하게 해, 하는 무식하고 게으른 자였어서..ㅋㅋㅋ그런데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전자책 산 지 6년? 그런데 아직도 다 못 봄…) 조금 보면서 아…주석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도무지 읽어낼 수 없는 책도 있구나. 잘 달린 주석이 원문 텍스트보다 더 많은 가르침을 줄 때도 있구나(이것이 꿈보다 해몽인가…) 하면서 조금씩 참고하는 쪽으로 읽는 방향을 바꾸고 있다.
여하간에, 그래도 소설 정도는 스스로 읽어낼 힘이 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방식대로 소화하고 치트키는 안 써야지, 하는 쪽인데 이상하게 이 책은 빌리고 왕창 묵히다가 펼쳐서는 맨 뒤의 옮긴이 해설부터 읽었다. 오랜만에 나보코프라고 쫄았나 보다. 일단 원문을 안 읽었으니 얘가 뭔 말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형식의 독특함, 여러 가지 읽는 법이 있다, 여러 번 읽어야 한다, 다양한 해석이 있다, 뭐 그런 정보를 얻었다. 시가 있고, 그 시에 대한 주석이 있고, 두 텍스트가 투쟁하는 모양이군.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있군. 시와 주석 중 뭐 부터 읽어야 할지부터가 고민이고 선택이로군. 나중에 다 읽고 나서 번역자가 스포일러 안 해 준 것에 상당히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ㅋㅋㅋㅋㅋ
그래서 나는 어디 주석부터 읽어 볼까, 하고 중간 쯤으로 갔는데…
이 책은 ‘머릿말-창백한 불꽃(시-섀이드가 초고를 태우고 베껴 적은 것, 최종고는 아니고 초고 다음 그 어드메-이라는 킨보트의 주장)-주석(킨보트가 풀어내고 싶어 근질근질하는 비하인드 스토리)-색인(시의 색인인 줄 알았는데 다 읽고 나서야 주석의 색인이네…했다)여기까지가 아마도 작품 전문’-미주(이건 아마도 옮긴이나 출판 원서에 달린…)-해설 순서로 묶여 있다.
나는 해설을 본 뒤 기왕 이렇게 된 거 미주도 먼저 보고, 머릿말-주석-시-순으로 보려고 했는데, 주석인 줄 알았던 게 색인이었더라…색인 보니 뭔 말인지 모르겠네, 하고 시로 넘어갔다. 그러고 나니 주석이 나와서 아…내가 본 게 주석이 아니고 색인이었구나, 그것도 시인이 만든 색인카드인가 했더니 아니네 주석자의 색인카드네 했다. ㅋㅋㅋ 내 독서에서조차 킨보트 의문의 1패…
정리하면 저는 역자 해설-미주-머릿말-색인-시-주석-다시 색인 이렇게 봤습니다. 읽는 동안 시를 다시 꼼꼼히 봐야 하나 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이것조차 스포라서 조심스레…)
999행의 시를 읽으며 두루뭉술하지만 섀이드의 생애가 어렴풋이 잡힌다. 그래서 여기에 무슨 주석이 더 필요하겠어, 싶다. 그렇지만 섀이드의 팬이자 주석자인 킨보트는 갑작스러운 시인의 타계 이후 이 시의 출판을 둘러싸고 벌어진 시인의 부인 시빌, 동료 교수와의 논쟁을 언급하며 자신이 이 시의 창작 과정에 끼친 영향, 누릴 지분 같은 걸 애써 어필하고 시작한다. 아다시피 그렇게 내가 너한테 해준게 얼마인데! 하는 놈치고 실제로 정당성 있는 경우는 드문 거 아시죠…
읽어보면 알지만 주석 안의 액자식 이야기가 더 재미있고 주석자도 야, 재밌지? 아 그만할게… 다시 너 재밌게 읽고 있지? 하면서 계속 썰을 풀어나간다. 그리고 독자가 조금씩 감춰둔 이야기를 자각하게 만들고 중간에는 아예 오픈해 버린다.
아…이것이 나보코프 클라스지. ㅋㅋㅋㅋ
디테일 중에 기억 나는 건 시에 롤리타라는 태풍을 넣고 그 부분 주석에 왜 태풍에 그런 이름을 붙였나 나는 모르오, 하고 너스레 떠는 것이 귀여웠다.
그리고 카를 왕이 대놓고 동성애자라 여자들이 달려들거나 성애적인 장면만 나올라치면 아니야 됐어, 난 남자가 좋아, 하는 느낌으로 후려치며 자체검열 하는 게 약간 자조적인 (롤리타로 평생 얻을 명성과 평생 먹을 욕을 다 획득한 자의) 개그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런 부분조차 아 이 소설 속 세상은 다 남자들의 세상이야…사랑도 우정도 탈출도 학계도 창작도 해설도 다 남자고 여자는 거절당한 연인, 배우자, 상속인, 길잡이, 심지어 성애에서 마저 배제되는 구나… 가장 적극적인 여성이란 자살한 헤이즐 밖에 없네… 펜스룰 오지는 나보코프 새끼…하고 1950년대 소설을 2020년대 식으로 읽는 만행도 잠시 저질렀다.
이 책은 시에 대한 산문과 주석의 열등감, 열패감과 그래도 내가 최후의 승자임, 하는 이상한 승리감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살아남은 게 짱! 그래도 언젠가는 죽겠지… 하는 불안과 불완전한 인간의 삶을 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차피 모든 주석은 그거 쓴 놈의 자기 과시고 다 개소리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모든 읽기는 오독이고, 모든 해석은 오해이며, 텍스트에 대한 쓰기는 원문을 소재로 할 뿐 사실은 책이나 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풀기 위한 구실일지 모르겠다. 사실 나새끼만 오독 오해 썰 풀기 하는 걸 수도…남들은 제대로 읽고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쓰는데 말야… 그런 불안감에 책에 대한 이야기를 쉬이 풀어 놓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난 아니니까… 어차피 출판이라는 건 쓰고 간직할 때까지는 저자의 몫이지만 세상에 풀려나오고 나면 그렇게 뜯어먹히고 오독과 오해와 함께 증식하고 확장하면서 더 많은 이야기가 뻗어나가는 것 같다. 그러니까 마음대로 읽고 마음대로 씁시다.
이미지는 순서대로
7월의 빈약한 내 소설 독서…
시 창백한 불꽃의 첫 행과 중간중간 나오는 여새.
섀이드의 죽음의 순간에 함께 하는 바네사. 레드 어드미러블. 붉은제독나비.
읽은 순서대로 밑줄 그음. 해설-머릿말-색인-시-주석. 읽는 순서는 독자 마음대로. 사실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는 게 내 심정…괜히 해설한테 말림…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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