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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8월
평점 :
-20210821 강화길.
바다에 가고 싶다는, 소금밭에 잔잔하게 들이친 얕은 물 위로 비친 붉은 노을과 분홍빛 구름을 보고 싶어하는 친구를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에게 바다란 엄청나게 무거운 짠물을 한 곳에 몰아 담고 있는 환경, 지역, 지형지물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래도 네가 좋아하는 곳이라면, 이제부터 내게는 하나의 목표와 도착점이 되었다. 그러니까 거기가 어디야? 언제, 어떻게 갈 건데? 막연히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던 친구의 말문이 막혔다. 나는 그 대책 없고 계획 없고 그래서 실현되지 않을 꿈을 꾸는 모습에 진저리쳤다.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한 채 서로에게 긁힌 마음들은 오래도록 멀어져 버렸다.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자주 후회했다. 참 예쁘겠다, 나도 가보고 싶다, 맞장구치는 말을 하는 게 오히려 쉬운 일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러자 서울에서부터 지하철 1호선 맨끝까지 달려가면 만날 수 있는 바다가 생각났다. 우리는 그곳에 갈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는 그러지 못했고, 다른 선택을 했다. 미리 가 본 적이 있는 내가 그곳을 다시 찾았더라면 어떤 이야기들을 재잘거렸을까.
처음 갔던 때를 떠올리며 입을 뗐을 것이다.
십 년 전 여름, 인천 차이나타운에 놀러간 여자와 남자는 만 스물여섯, 스물아홉살이었어. 둘은 같이 산지 겨우 다섯 달째였고, 그 중 한 달 간 남자는 논산 훈련소에 다녀와야 했어. 한 달 후면 아기를 낳을 예정이던 여자가 마지막으로 가까운 곳에 여행을 갔다오자, 해서 그 더위 속에 인천역과 월미도 주변을 돌아다니게 된 거야. 그때 찍어 인화한 사진들이 앨범에 여러 장 남아 있어. 사진 속 여자는 인생에서 가장 많이 불어났던 몸집으로 어색한 웃음을 둥그런 얼굴에 남기고, 남자는 군대에서 박박 밀린 머리를 다시 기르느라 모자를 눌러쓴 채 지친 표정을 하고 있어. 둘은 원조 공화춘 손녀가 운영한다는 신송반점에서 자장면과 탕수육을 사 먹고, 월병을 사 먹고, 소룡포도 사 먹고, 닭강정은 줄이 너무 길어서 못 사먹고, 항아리에 붙여 굽는 옹기병은 왠지 끌리지 않아서 구경만 해. 개항박물관에서 제물포의 역사와 이민자의 역사를 둘러보고, 한중문화관에서 여자는 치파오를 빌려 입고 만삭 사진을 남겨. 자유공원에 올라가서 맥아더 장군 동상 주변과 장미꽃밭을 거닐어. 여자는 무거운 몸으로도 씩씩하게 움직이지만 남자는 피곤한지 내내 맥없이 걷고 여자가 카메라를 내밀면 기계적으로 셔터를 눌러.
여자는 행복한 동시에 불안했어. 이십대 후반으로 넘어가던 여자는 오래도록 외롭고, 슬프고, 자꾸만 창 밖으로 뛰어내리라는 목소리가 무서워서 약을 먹었어. 거기에다 성대결절이 생겨 약이 추가되고, 여자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었어. 끝없이 깜깜한 밤 같은 날들 사이에 아기가 생겼어. 어디를 가든 언제나 누군가 가장 가까이 함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여자는 너무나 행복했어. 나 여기 있어요, 하고 발로 꾸욱 미는 힘이 안에서 느껴질 때마다 너무나 놀라웠어. 평생 거식증에 가깝던 여자의 식욕이 살아나서 무얼 먹어도 다 맛있다는 느낌을 처음 알게 되었어. 그렇지만 준비도, 계획도 없이 사람이 생겨난다는 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가족이 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 남자는 여자를 위해 무거운 걸 대신 들어주고, 밤잠 자는 중에 놀라 벌떡 일어나 쥐가 나서 앓는 소리를 내는 여자의 다리를 눈도 뜨지 못한 채 열심히 주물러 줬어. 그런 중에도 여자는 생각했어. 내가 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었는지도 몰라. 억지로 끌어다 내 옆에 주저앉혀 놓았어. 그러니까 내가 다 감당해야 해. 책임져야 해. 참아내야 해. 셋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끝없이 애를 써야 해.
참, 두 사람은 대불호텔 터에 갔었어. 개항장거리를 걷다보면 한 번쯤은 들르게 되는 위치였어.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나 모르지만, 공터 주변에 공사장을 두르는 철판 같은 것으로 막아두고 오래 전 거기 있던 건물의 흑백 사진과 옛 상호를 담은 팻말을 붙여 놓았던 걸로 기억해. 정확하진 않아. 그냥 호텔 이름이 참 이상하네, 왜 이렇게 빈터로 방치하고 있을까, 궁금했던 기억이 나.
그랬던 내가 십 년만에 대불호텔에 관한 이야기를 소설로 만났어. 아직 거기에 벽과 천장과 계단이 있고, 사람이 드나들고, 음식을 먹고, 잠을 자던 시절에 대해, 지금은(적어도 내가 방문했을 때는) 폐허와 공터 사이의 뭔가로 남은 장소를 배경으로, 그곳을 거쳐간 사람과 그들에게 전해 들은 말들을 또다시 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이야기가 펼쳐졌어.
책을 주문해 놓고 미리보기로 읽은 소설 첫머리에 ‘니꼴라 유치원’이 등장했어. 난 또 궁금함을 못 참고 책이 도착하기 전까지 <<괜찮은 사람>>단편집을 빌려 읽었어. 그곳에도 수많은 장소들이 등장해. 벽돌로 지은 오래된 유치원 건물이, 세 사람이 함께 사는 잠긴 방이 많은 삼층집이, 오염된 도시에 곰팡이가 잔뜩 핀 방이, 외딴 시골의 도축장과 연인이 사놓았다는 마음에 들지 않는 단독주택이. 그리고 무진, 척주, 미산, 고고리섬, 희령처럼, 소설가들이 구축해 놓은 크고 작은 도시와 촌락들 중에, 강화길에게는 안진이 있어. 자신만의 가상의 도시, 촌락을 가진 이들이 참 부러워. 그게 어쩌면 소설의 대단한 점 중에 하나야. 우리는 마음 먹으면 이야기로 방 하나, 집 한 채, 마을, 대도시, 어쩌면 나라와 새로운 세계까지 만들어낼 수 있어. 나도 언젠가 나만의 도시를 가질 수 있을까? 일단 방 하나부터 시도해 볼까.
대학 때 수강한 서양사 교양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마르틴 기어의 귀향이라는 영화를 보여줬어. 전쟁이 끝나고, 징병되었던 마르틴 기어가 마을로 돌아와서 오랜만이라 잠시 서먹했던 부인과도 다시 잘 지내고 열심히 일하며 평안한 날을 보내. 그런데 누군가가 돌아온 남자는 마르틴 기어가 아니라고 해서 결국 재판까지 열려. 이 소설 속에서는 문용 옹주에게, 또 지영현에게 그랬지. 사기라고. 가짜라고. 어쩌면 요즘 세상은 더더욱 그 사람이 실은 진짜 그 사람이 아니고요, 할 만한 자아들이 소셜 네트워크 상에 넘쳐나잖아. 그동안 글로 드러내던 삶과 달리 사실 나는 오십대 후반의 홀로 사는 남성이고, 결혼은 안 했고, 아이는 낳은 적이 없고, 현재 한국 땅이 아닌 다른 어디선가 겨우 살고 있고, 내가 올린 독후감은 읽지도 않은 책들을 남의 글을 검색해다 짜깁기하여 만든 것일지도 몰라요. 당신은 속고 계십니다. 이런 농담을 한 적이 있지. 물론 나를 실제로 만나본 친구들은 그것도 거짓말, 하고 웃겠지.
같은 수업 시간에 영화 라쇼몽도 보았어. 이제는 영화든 소설이든 제법 흔한 기법이 되었지만, 처음 봤을 때는 크게 충격을 받았어. 내가 틀릴 수도 있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각자에게는 각자의 진실이 있을 수 있고 어느 것이 단일하고 객관적인 진리라고 말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은 슬프게도 모든 것을(심지어 나 자신조차) 믿지 못하고 끝없이 의심하는 나를 만들고 말았어.
소설을 제법 여러 권 읽기 시작하면서 소설이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고, 덜 해로우며, 제법 정교하고, 아름답기까지한 거짓말 모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 속는 걸 그렇게나 싫어하는 나인데도, 이렇게 머리를 짜내어 사람과 말과 장소와 시간을 이리저리 얽히고설키게 만들어 끝까지 나를 붙들어 앉히고 다 읽어내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 게 신기했어. 나도 그 거짓말에 동참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적이 있어. 아직은 그저 이미 짜놓은 이야기들 사이로 불쑥 끼어들어 끄덕거리거나 반박하거나 하는 독후감을 쓰는 게 전부이지만 말이야.
그건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어. 우리가 머문 장소를 먼저 지나친 이들, 유령처럼 원령처럼 남은 잔상들이 전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그러모아 그럴싸하게 엮어 전해주는 게 소설일지도 몰라. 그리고 이번에 전해들은 대불호텔 이야기는 큰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그럴싸하다 못해 근사하고 재미있었어. 소설을 쓰지 못해 괴로워하던 소설가와, 고연주와, 지영현과, 박지운과, 뢰이한과, 엄마와 보애 이모와 진, 이청화, 도끼를 든 남자, 입이 싼 전 중화루 직원까지…모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모두가 틀리거나 거짓을 말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사실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 지금 여기의 나는, 우리는 그때 거기에 대불호텔이 있었다는 것 말고는 그 안에 담긴 자세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상상하고, 누군가 상상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맞장구치거나 말도 안 돼, 하고 고개를 젓는 수 밖에.
처음 찾은 때로부터 3년이 지나 다시 차이나타운에 갔다. 이번에는 하얀 챙모자를 쓰고 엘사 드레스를 입은, 자기는 삼년 살았지만 네 살인 걸 안다고 말하는 작고 영리한 아이도 함께했다. 월미도 놀이공원에서 회전목마를 타며 아이는 해처럼 환하게 웃었다. 나는 불안 대신 안온, 평안, 안정 같은 말들을 건네주는 사람들 앞에서 정말 그래야겠다, 하며 그런 단어가 감싸주는 삶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다시 또 7년이 지나 지금의 내 삶 속에는 새로이 자라난 나의 이야기가, 수많은 거짓말이, 그동안 읽은 소설과 함께 몇 배는 더 불어나 이리저리 엉키고 들러붙어 있다. 언젠가는 한가닥씩 뽑아 차곡차곡 이어붙이고 묶고 감고 꼬아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 왜 쓰나요, 하는 물음에는 글쎄요, 저도 모르겠어요, 그건 누군가에게는 원한, 악의 때문일 수도 있고, 불안, 후회, 자책, 우울, 슬픔, 외로움, 억울함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무엇이 시작이든 이걸 쓰고 나면 조금은 나아져있길 바라는 마음은 같을 거예요. 그런 편안함을 바라는, 행복을 포기하지 못한 사람들은 아마도 계속 쓰지 않을까요.
그리고 또 언젠가는, 다시 인천 나들이를 할 생각이다. 개항장거리를 걷고 바다를 내려다 보며 이 바다를 그리던 마음을 조금은 헤아려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