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16 박상륭.
곱고 예쁜 것만 보며 잔잔하게 살기에도 삶은 짧지 않든가? 그러나 일찍부터 쓴맛 짠맛에 절어 일정 수준의 불안이 정상성인 줄 알며 자란 아이의 입맛은 영 버렸다. (주로 자신을 향한)가학과 피학이 일상이라 온갖 방식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다가, 이제는 하다하다 이십 년 간 접어두었던 고등학생용 수학책을 채찍 삼아 일 년 반쯤 허송하였는데, 여러분 나이 삼십팔(법이 바뀌어 다시 젊어짐)에 되도 않는 수학 문제를 풀다 보면, 그것이 쌓이고 결정이 되어 결실로서 굳어진 혈전을 얻게 됩니다. 내가 이런 식으로 메디칼을 가려던 게 아닌데…(병원과 약국에서 회한에 젖음)… 주섬주섬 다시 녹이는 중…
그러면 다시 곱고 예쁜 것만 보며 잔잔하게 살기에도 삶은 짧은데, 수능 끝나면 보기로 했던 책을 수능 접었으니 지금 읽어도 되겠다 싶었다. 하필이면 농담처럼 제일 두꺼워 보이는 칠조어론을 첫 책으로 꼽아둔 참이었다. 박상륭 전집의 대미를 장식하는, 박상륭 선생이 (열반에 드시기 전 마지막으로 한국에-나중에 보니 틀렸음 ㅋㅋㅋ잡설품이 더 나중에 나옴…1권 개정판?재판?이거 날짜가 2012년으로 되어 있어 오해했다…) 내 놓은 전 4권의 소설?역작? 뭐 그런 것 같았다. 사실 잘 모르겠고 작년 수능 보고 20년 만에 재독한 ‘죽음의 한 연구’의 육조 촌장 다음이 칠조겠지? 촛불중 새끼? 미운 새끼인데도 궁금증이 일었다.
그래…전집의 2753-4293쪽…거의 1500쪽쯤을 다 읽고 나면 그쯤이면 잘못 얻은 결실도 녹겠지… 그럼 완독의 순간 다시 수학을… (미친놈아…) 그러면서 박상륭 전집 끝권을 펼쳤다. 왜 저는 자꾸 저를 괴롭힐까요?
작가는 쓰면서 이걸 누군가 언젠가 읽겠거니,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만들어낸 뭔가에 닿겠거니, 했을까. 그게 내가 살아서는 아닐 수도… 아주 적은 사람일수도… 아니면 애초에 그런 생각 없이 그냥 써지니까 썼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하여간에 책을 펼쳤는데 아무것도 모르겠다. 한글 병용이 안 된 한자 표기가 첫 장부터 주춤하게 했다. 나의 미래의 독자야, 여래여, 죽음의 한 연구는 최소 이회독 하고 왔지? 그리고 이 정도 한자는 교양으로다가 알아줬으면…흑흑 선생님 일단 칠조가 왜 칠조인지는 대충 주워듣고 왔는데 한자를 모르겠어요… 네이버사전앱에는 사진을 찰칵 찍고 화면의 모르는 단어를 문지르면 스캔해서 그대로 뜻을 찾아주는 획기적인 기능이 있다. (그치만 나머지 유저인터페이스는 거지같음. 전혀 직관적이지가 않혀…) 대충 새겨지는 한자는 읽고 넘어가고 자꾸 나오는데 못 읽겠는 거만 조금씩 사전 찾아가며 읽기로 했다.
육조 생전에는 조연에, 거의 악역에 불과했던, 육조에게 타는 촛불로 똥구멍이나 강타당한, 질투와 열등감의 화신이던 칠조 촛불중이 여기서는 이야기의 주도권을 잡았다. 배트맨 시리즈만 나오다가 조커가 나온 것 같이(조커 안 봄)……촛불중 특유의 뭐뭐 합습지-하는 말투가 미운 정도 정이라서 반가웠다. 다 읽고 나서야 이야기 구조가 파악이 될 듯 말 듯 했다. 촛불 스님이 관잡설, 하면서 열심히 설법을 하고, 그 안에 스님 말씀 말고도 스님이 노인네 만나서 들은 이야기랑, 이야기 속의 이야기들, 잠 속의 잠, 꿈 속의 꿈, 이런 게 겹겹 속속 액자에 액자, 엄마손파이 384겹으로 포개어 있어서 그냥 명확한 줄거리 파악은 포기했다. 아는 이야기 나오면 반가워하고, 모르는 이야기는 이건 어디서 가져다 붙인 걸까 조금 궁금해 했다. 죽음의 한 연구의 육조 스님 이야기 조금 나오고, 예수의 수난이랑, 처용과 역신과 처용처 이야기, 비리데기, 그 정도는 어디서 봤던 거라고 읽을 만 했다. 원래 육조님 설법 하는 힘든 부분 지나고 나면 재밌는 이야기 나올 거야…하고서 칠조님 설법할 때도 뭔말인지 몰라도 꾸역꾸역 봤는데 그 뒤에도 첩첩 산중 끝까지 계속 뭔말인지 몰랐다. ㅋㅋㅋㅋㅋ그나마 1권 말미에 큰 비암님, 무서운 괴물과 마을의 투쟁이 나오는 이야기가 이 책의 블록버스터, 클라이맥스, 그리스로마북유럽오디세이일리아드쯤 되었는데, 마을이 겪는 일이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병마와 고통과 고뇌의 표상 쯤 되어 보였다.
다양한 종교적 상징과 기호와 다양한 원형들은 익숙한 듯 역시 너무 어려웠고… 책 내내 수사적으로 등장하는 요니(야한 거다…), 링감(야한 거다…) 등등 성애적 상징들은 인간이란 세상만사 이치 깨달음 투쟁 온갖 것에다가 야한 걸 갖다 붙일 수 있구나…나만 그런 게 아니라 그런 놈들 세고 셌구나… 선생님께서도… 뭐 그러면서 야한 건데 안 야함…이러고 보았다. 월후 씻은 물 같은 뭐 이런 역겨운 비유 말고는 인세의 구질구질하고 더러운 느낌을 표현할 길이 없었는가… 이러고 좀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뭐 그것도 다 이 책 끼고 세월 보내기로 한 나새끼의 업보입니다…
내내 불친절하다가 책 끝에 여기까지가 촛불시님 유리 돌아오기까지의 이야기고, 이제는 유리 돌아온 후의 이야기가 펼쳐질 거야! 하고 한자어랑 뭔말인지 대부분 모르겠음에 짜부러진 나의 어깨를 탈탈 털어주며 기대감을 갖게 하였다. 그렇지만 찬찬히 볼라구요… 너무 빨리보면 빨리 수학해야 된단 말이에요… 이 책 보는 동안 같이 보다 말다 한 책도 많은데, 하나는 ‘왜 결혼과 섹스는 충돌할까’ ㅋㅋㅋㅋ 진화심리학이랑 문화인류학이랑 범벅해서 인간 성애와 혼인 제도에 관해 열심히도 연구했던데 이게 묘하게 이 책이랑 싱크가 맞고 어울렸다. 또 한 권은 ‘여우와 나’라는, 잔잔(?)한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생물학자 이야기인데, 한쪽에서는 대자연한테 위로 받고, 이쪽 넘어오면 개랑 뱀이랑 소랑 인간이랑 뒤섞여 난리가 나다보니 이것도 또 묘하게 어울리면서도 혼란한 느낌이었다… 무서운 벌레 괴물이랑 싸우는 와중에도 사랑 타령도 나오고 막 늙은이랑 젊은이랑 입도 맞춰 불고 그렇더라구요… 여우랑 사람도 공존하는데 노소 따질 거 뭐 있나… 허허… 그냥 책을 똥구멍으로 읽고 허덕이다 쉬는 중이란 말씀입니다… 다들 대작가의 역작, 한국문학의 유산, 미래(과거)의 소설, 함께 읽고 괴로워 주세요… 괴물 없애는 데도 온 마을이 힘을 합쳐야 하잖아요… 혈전이 읽는 사람 수 만큼 배속으로 녹지 않을까요… 어쩌면 저한테 혈전 옮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냥 제가 다 짐질테니 읽지 말고들 편안하시길 빕니다…ㅋㅋㅋㅋㅋㅋㅋ
+자꾸 욜로 읽고 싶은 륭
+책 네 권을 한 권으로 엮는 선택은 과연 최선이었던가…(읽기에는 아주 불편함…집에 갇혀 있는 나 같은 사람만 독서 가능)
+프라브리티 니브리티 이런 말 많이 나오는데 하나도 모르겠어서 소통의 잡설 이라는 해설서를 중고로 발굴해 주문해 버렸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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