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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현재 HM - 헨리 몰레이슨이 세상에 남긴 것들과 뇌과학의 거대한 진보
수잰 코킨 지음, 이민아 옮김 / 알마 / 2019년 3월
평점 :
-20230826 수잰 코킨.
이전 독후감 목록에서 ‘뇌’를 검색해 보면 70여개의 글이 검색된다. 특히 2020년에 뇌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 넓게 보면 감각, 호르몬 관련 책도 뇌가 자주 등장하고 정신 건강 관련 책들도 그렇지… 뇌가 궁금하신 분들, 교양 수준의 참고 목록 쯤 되겠습니다.
1)우울할 땐 뇌과학(엘릭스 코브)
https://m.blog.naver.com/natf/221796023100
2)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엘리에저 스턴버그)
https://m.blog.naver.com/natf/222007520313
3)마음의 오류들(에릭 캔델)
https://m.blog.naver.com/natf/222046378088
4)여자의 뇌(루안 브리젠딘)
https://m.blog.naver.com/natf/222017250822
5)남자의 뇌(루안 브리젠딘)
https://m.blog.naver.com/natf/222012287731
6)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올리버 색스)-뇌의 이상과 인간의 다양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 갖게 한 책이다.
https://m.blog.naver.com/natf/221305309041
7)환각-존재하지 않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올리버 색스)-뇌의 이상과 감각과 예술 본질에 대한 통찰까지
https://m.blog.naver.com/natf/221305321819
8)감각 환각 착각(최낙언)-주로 시지각 관련. 감각도 뇌의 일. 이 작가님은 주로 맛 책 전문인데 미각도 뇌의 일(맛 책은 생략, 너무 많아…) 향의 인식도 뇌의 일(그만그만)
https://m.blog.naver.com/natf/221305302290
9)감정이 어려워 정리해 보았습니다(최낙언) 감정도 뇌의 일
https://m.blog.naver.com/natf/222356509815
10)과학이 사랑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모든 것(애나 마친)-fMRI 없으면 니들 뇌 연구 어떻게 할래...그런데 생각보다 엄청 중요한 기술이고 의학 뇌과학 발달에 자기공명 촬영이 기여 많이 함.
https://m.blog.naver.com/natf/223144184278
11)우리는 왜 잊어야 할까(스콧 에이 스몰)-기억도 망각도 뇌의 일
https://m.blog.naver.com/natf/223038057348
12)도파민네이션(애나 렘키)-왜 학자들 이름 다 비슷함...중독은 뇌의 일
https://m.blog.naver.com/natf/222941664752
13)도파민형 인간(대니얼 리버먼, 마이클 롱)-호르몬도 뇌의 일
https://m.blog.naver.com/natf/221874415938
14)크레이지 호르몬(랜디 허터 엡스타인)-여기는 상대적으로 정신 의학 관련은 덜 나옴. 좀 더 다양한 호르몬 다룸
https://m.blog.naver.com/natf/222428756875
15)뇌는 왜 아름다움에 끌리는가(마이클 라이언)-이 책 제목은 좀 낚시다. 원제에도 뇌 안 들어감. 동물행동학, 성적 미학이 주요 내용임
https://m.blog.naver.com/natf/222055543596
16)열두발자국(정재승)-다른 애들 다 읽고 읽으면 뇌과학책이라기엔 조금 민망한 수준이었음
https://m.blog.naver.com/natf/222462503165
아니 시발 왜 목록이 끝이 없어...나새끼 생각보다 뇌에 진심이었구나...여기에 정신의학까지 더하면 좀 많음…
17)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김준기)
https://m.blog.naver.com/natf/222397902343
18)우리 아기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려원기)-정신과 의사가 그린 육아+뇌발달 만화임!!!좀 짱
https://m.blog.naver.com/natf/222410248911
19)우리가 매일 끌어안고 사는 강박(김현철)-이 책 좀 별로
https://m.blog.naver.com/natf/221766812364
아...이제 뇌책 그만 봐라 진짜...많이 본 게 문제가 아니라 보고도 기억하는 게 별로 없는 게 문제다. ㅋㅋㅋㅋ 서론이 길었는데, 이번에 읽은 책은 뇌과학 역사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두툼한 책을 봤기 때문이다. 딱히 골라 본 건 아닌데 그냥 다른 중고책 사다 어쩌다 같이 산 책이 또 내 뇌새끼가 뇌뇌뇌 했다.
읽었대도 위에 책들이 거의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도 저 책들에서 환자 HM의 사례가 언급되었을 것이다. 이번에 읽은 책은 바로 그 HM에 관해, 그가 50년 넘게 기여한 연구들에 관해 집대성한 책이었다. 이전 책들에서도 봤지만 많은 뇌 연구 분야가 정상 작동하는 뇌보다는 오류를 일으키거나 손상된 뇌를 가진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특정 기능과 연관된 뇌 부위를 밝혀내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나 HM, 헨리 몰레이슨의 독특한 뇌 손상(정확히는 의학적 조치로 인한 뇌의 일부분 제거)사례는 그의 수술 이후부터 노인기, 그리고 죽은 이후에는 해부학과 뇌스캔과 뇌 표본 제작까지 기억과 뇌의 기능에 대해 엄청 많은 것들을 알려주었음을 책을 따라가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1926년생 헨리 몰레이슨은 조용한 미국청년이었다. 그는 청소년기 무렵 간질 발작이 시작되면서 일상 생활과 사회 생활에 많은 곤란을 겪는다. 그를 진료한 스코빌 박사는 발작의 완화를 위해 뇌 절제술을 실시했다. 병을 낫게 하려고 뇌를 잘라낸다는 게 건강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뜨악하겠지만 현재에도 실시되고 있는 수술이다.
http://samsunghospital.com/dept/medical/healthSub02View.do?content_id=1325&cPage=2&DP_CODE=EPI&MENU_ID=003&ds_code=D0004200
(출처: 삼성서울병원 뇌전증 클리닉)
다만 지금은 뇌에 대해 어디까지 잘라야 하고 어디는 자르면 안 되고 하는 게 많이 알려져 있지만(그러는데 헨리가 아주 많은 기여를 했지만), 지금부터 70년 전 의학은 뇌를 잘라내서 간질이 낫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이게 어떤 부작용을 야기할 지는 잘라봐야 알았던 것이다… 헨리는 뇌의 양쪽 측두엽극 안쪽, 편도복합체 대부분, 해마복합체, 부해마회 앞 부분, 해마구 인접 내후뇌피질 제거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수술 이후 그가 새로운 경험과 정보를 기억하는 데 심각한 장애가 생긴 것을 의료진과 가족들이 알게 되었다. 헨리는 자신이 수술을 받고 이상이 생긴 것조차 기억하기 힘들었고, 한참 살아가면서 막연하게 자신의 정신에 문제가 있어서 일상 생활이 어렵고 남들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정도로 자신의 문제점을 인지하는 모습을 보였고 말로도 그런 상황을 표현할 수 있었다.
의료 사고에 대해 원망을 쌓고 책임을 추궁하고 침통에 빠지고 여생이 불행하고...그런 게 나같은 비관주의자의 예측되는 전개인데, 헨리와 헨리의 가족들은 다른 선택을 했다. 자신을 연구 대상으로 관찰하고 실험하려는 많은 과학자, 의학자들에게 협력했다. 이 책의 저자인 수잰 코긴 또한 이전에 밀너 박사가 하던 연구를 이어 받아 1962년부터 헨리가 사망한 2008년, 그리고 사후 뇌 분석까지 헨리를 통해 기억의 작동 원리와 연관된 뇌의 부위에 관해 많은 것들을 알아냈다.
장기기억과 단기기억이 뇌의 다른 경로를 거쳐 머릿속에 자리 잡는다는 것을 지금 심리학이나 교육학 공부하는 사람들은 당연하게 배우고 있지만 헨리를 연구하기 이전까지는 많은 논쟁이 있던 모양이다. 헨리는 수술 이전의 오래 전 어린 시절의 일들은 제법 기억했지만, 수술 이후 경험한 많은 일들은 인지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자꾸만 휘발되고 말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실마저 지갑에 적어 넣어 두고 가끔 찾아보고 나서야 그 사실을 상기하는 게 슬프기도 했다. 그렇지만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전환되는 과정과, 일화기억이나 서술기억이라 부르는 종류의 기억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고 해서 모든 뇌가 다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의식하거나 언어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학습하게 되는 비서술적 기억, 예를 들면 보행보조기구를 사용하는 방법 같은 것은 몸으로 하는 기억인데 그런 것은 한 번 익히면 잊지 않았고 (단, 자신이 보행보조기구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사실은 잊어버려서 사용 안 하다 넘어져 다치는 건 넘 슬픔), 수술 후 만난 대부분의 연구진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했지만 오랜 세월 만나면서 막연하게 친숙하고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끼고 단서를 제시하면(이름 일부를 알려주면) 성씨를 대는 등 일부 회상도 가능했다. 수술 전에 이미 형성되었던 장기기억에 새로운 정보를 결합시킬 기회를 제공하면 (스키마라고 교육학에서 엄청 배운 거 ㅋㅋㅋ) 놀랍게도 새로운 학습이 조금이나마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아몬드 같은 책에 보면 편도체에 이상이 있거나 이걸 제거하면 영 감정을 못 느끼는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헨리는 기억하지 못했던 부모의 사망사실을 다시 알게 될 때 슬퍼하기도 했고, 자신의 기억이 정상 작동하지 않는 것에 울분을 느끼고 뭔가를 때리거나 부수는 행동을 하기도 하고, 연구진과 농담을 주고 받으며 웃기도 했다. 감정을 주로 관장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이것이 딱 좁은 특정 부위에만 연결되어 있는 건 아니구나, 기억도 마찬가지구나, 하는 흥미로운 일화가 많았다.
헨리의 뇌건강에 미친 문제들, 연구 윤리 등을 의식해서 인지 저자는 스코빌이 행한 간질 수술이 헨리의 수명 연장에 기여했을 가능성, 필수 불가결한 의료 조치였다는 것을 강조했고, 헨리가 부모님 사후에도 충분한 케어를 받으면서 연구에 협력할 수 있도록 자신과 연구 관계자들과 헨리의 친척 후견인이 충분한 돌봄을 제공했음을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중요한 혈연을 잃고도 자녀가 없어도 헨리가 홀로 방치되지 않고 많은 사람과 연결되고 제법 고령까지 생존한 것은 다행인 부분인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책 앞부분의 수많은 실험 사례, 연구 과정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헨리의 건강 문제, 일상에서 겪거나 보여주던 고통을 책 말미에 적어 두어서, 그렇지… 50번 정도 참여한 MIT연구 시절에는 친절하게 대접 받고, 헨리 자신이 되고 싶어했던 뇌외과 전문의랑 연관 있어 보이는 배운 사람들이랑 교류하는 게 스스로 특별해지는 느낌도 있고 가치 있는 일 하는 기분도 느끼고(금세 잊겠지만) 그래서 연구자들에게는 유쾌하고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나머지 연구 이외의 많은 시간들은 역시나 고통이었을 것 같다. 헨리 어머니가 고령이 되었을 때의 둘의 안 좋은 위생 상황과 모자간 갈등, 요양병원에서 이상행동을 보이거나 건강 악화로 고통을 호소하는 걸 보면 그게 삶의 거의 대부분의 시간이었겠지… 싶다가도 뭐 심하게 안 아픈 사람들도 삶의 많은 시간은 질환의 고통(나도 그랬지)이고, 영광의 순간은 누구나 찰나이지, 그러면 또 그냥 그게 사는 거지. 삶은 고해, 하게 되었다.
수많은 연구 과제들과 실험 과정과 결과와 시사점을 잔뜩 열거해놓은 학술적인 책이라 사실 나같은 일반인이 읽기에 수월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기억이나 인지, 뇌과학에 많은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연구 분야에 기여할 수도 있구나… 교과서에 나오는 수많은 뇌의 기능이 이런 식으로 밝혀지고 PET나 fMRI나 유전자 분석 같은 최신 기술 등장으로 기존 연구들이 다시 입증되거나 반박되거나 했구나 하는 걸 살펴보는데 좋은 책 같았다.
내가 왜 이러는지, 쟤는 또 왜 저러는지, 사회는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모든 것에 정답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많은 부분 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나면 불안이 덜어지고 체념하게 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헨리가 실험 과정이든 일상생활이든 무수한 반복 끝에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의외의 사실들을 기억해 내는 것을 보면서, 뭐 자꾸 읽다가 잊어버리고 공부하다 까먹는다고 헛짓거리라고 징징 울 것도 아니겠다, 이러다가 몸에 익기도 하겠지, 하는 위로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뭐 저는 그래서 이렇게나 집요하게 뇌뇌뇌 했던 것도 같습니다… 일반인이 교양서 나부랭이 몇 권 한 번씩 슥 본다고 전문가는 절대 못 되지만, 나자신에 대한 전문가조차 못 됐지만, 뭐 그럭저럭 스스로 납득하며 삽니다...
+밑줄 긋기
-헨리 같은 선택적 기억상실증 환자들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배운 한 가지 사실은, 기억이란 어떤 단독 기능이 아니라 여러 다른 기능이 조합된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 뇌는 다양한 투숙객이 모인 호텔과 같다. 각종 기억이 유형별로 각기 방을 하나씩 차지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99)
-헨리에게는 보통 사람들이 살면서 붙들게 되는 정신적인 닻, 그러니까 때로는 부담이 될 수 있는 애착이나 집착 같은 것이 없었다. 장기기억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인 것은 맞지만 때로는 방해요소가 되기도 한다. 살면서 겪었던 낯부끄러운 순간이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느꼈던 고통, 처참했던 실패와 정신적 충격이나 골치 아픈 문제에서 헤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자꾸만 떠오르는 기억이 무거운 쇠사슬이 되어 우리를 스스로 만들어낸 정체성 속에 칭칭 동여맨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 않은가?(130)
-어느 날 저녁 토이버는 헨리가 캄캄한 방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곁에는 십자말풀이가 놓여 있었다. 어디 몸이 불편하냐고 묻자 헨리가 답했다. “그...정신적으로 불편해요. 사람들을 그렇게 고생시키고...기억은 하지 못하니까요.” 자기 마음을 마땅히 표현해줄 말을 떠올리려고 애쓰는 눈치였다. “지금 나하고 싸우고 있어요. 내가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했는지, 하지 말았어야 할 행동을 했는지, 그런 거요.” 헨리는 어떤 기억을 인출해내려고 안간힘을 쓸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다. “지금 나하고 논쟁하고 있습니다.” 끝나지 않을 후렴구였다.(…)“저기, 지금 나하고 싸우고 있어요. 아버지에 대해서요.“ 헨리가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한쪽에서는 아버지가 부름을 받으셨다고 생각해요. 돌아가셨다고요.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지금도 살아 계시다고 생각해요.“ 헨리는 몸을 떨기 시작했다. ”도저히 모르겠어요.“ (181-182)
-한번은 우리 연구실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검사받는 일을 이렇게 요약한 적이 있다. “참 재밌죠. 사람은 살면서 배우거든요. 그런데 나는 살기만 하고, 배우는 건 선생 몫이죠.” (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