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콜렉숀. 이중에 생명의 도약 밖에 안 봄... 몇 년째 벽장식만 하고 있는 책들. 가엾.
귀여운 고생물도감이나 보며 힐링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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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9-05 15: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책장의.. 읽지않은 제3의 침팬지와 이기적유전자가 떠오르는군요..
근데 사진 보니까 유열님 책들 두껍고 반질반질허니 인테리어로서 훌륭하게 기능할텐데 그걸로 됐다!

반유행열반인 2023-09-05 19:28   좋아요 1 | URL
나 이기적 유전자 2017년에 읽었다요!!! 밈의 기원을 확인할 수 있고 읽었다요를 외칠 수 있습니다 그게 다예요 ㅋㅋㅋ읽고서 꽂아두면 말씀대로 폐지수집장 st.인테리어도 가능합니당.

청아 2023-09-05 1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종의기원>저도 꼭 읽고 싶어요!!
열반인님 새것 같은데요?

반유행열반인 2023-09-05 19:26   좋아요 1 | URL
직장에서 코로나 때 회식비 안 쓴 거로 책 사준대서 신나서 골랐는데 벌써 휴직 2년차네요...책은 받고 표지만 만져보고 펼쳐보지도 않았으니 새 거죠 ㅋㅋㅋ

Yeagene 2023-09-07 1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꽂아두니 보기에 뿌듯하시겠어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9-07 17:24   좋아요 1 | URL
안 읽은 책들은 영 빚독촉 느낌이어요 ㅎㅎㅎㅎㅎ

유부만두 2023-09-17 0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토콘드리아 원서 제목이 power, sex, suicide라서 빌렸다가 못 읽고 반납한 기억이 있습니다. 너무 옛날 책이라 이용자들 손때가 넘나 찐한 탓이었어요. 새책으로 사야할까 생각 중이에요. 과학책 읽기엔 좀 기합이 필요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9-17 08:34   좋아요 1 | URL
으아니 정말 방금 꽂힌 걸 반만 뽑아보니 뒷표지에 말씀하신 원서 제목이 있네요 ㅋㅋㅋ 저는 같은 저자의 생명의 도약이 어렵지만 흥미로웠어서 마련해뒀어요. 비싼 벽돌책 특히 과학책은 중고 구매가 제격이더라구요. 대부분 서가에 얌전히 꽂혀만 있다가 나온 경우가 많고 잘 해도 한 번 본 거라 책 상태가 좋습니다 ㅋㅋㅋ
 

최근의 질환: 초록초록한 책들 모아다 눈앞에 꽂아두고 안 읽음.
초록 키보드 사더니 아이패드미니 케이스까지 초록으로 바꿈. (중국 직구 배송료 포함 2900원. 어메이징 차이나)
그런데 초록색 안 좋아함.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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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같은 맛
그레이스 M. 조 지음, 주해연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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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3 그레이스 M.조.


책을 알게 된 건 책소개 기사문을 통해서 였다. 어머님은 분유가 싫다고 하셨어. “그 맛은 진절머리가 나.” “전쟁 같은 맛이야.” 책을 읽고 보니 제목이 다했다. 나의 부모들은 전후 베이비붐 시절 태어난 1957년, 1959년생이긴 하지만 비슷한 전쟁(후) 음식 같은 게 하나씩 있는 것 같다. 학교에서 나눠주는 옥수수빵, 설익은 밀가루 수제비 같은 것. 지긋지긋하고 수치스러운 맛.

한국 전쟁을 겪고 이후 한국을 떠나 미국살이 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어머니의 조현병과 이를 이해하기 위한 사회학 연구 같은 소재에 처음에는 흥미가 갔다. 그렇지만 음식에다 힘 또는 적응 또는 저항, 문화적 향수, 엄마와 다시 이어지는 계기, 치유 등등 그렇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건 내가 크게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책의 대부분이 음식을 만들거나 먹거나 하는 모습이라 읽는 동안 처음의 흥미가 많이 흐려지는 기분이었다. 음식 투정하는 새끼가 음식 나오는 책 기껏 골라 쳐 봐 놓고 투정해서 미안…

아주 많은 나이 차이가 나는 미국 상선 선원이던 아버지와 미혼모로 그레이스의 오빠를 키우고 있던 엄마 군자씨는 한국에서 그레이스를 낳고 얼마를 살다가 미국으로 건너온다. 그레이스가 십대 중반이던 1980년대 중순경 군자씨는 피해 망상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이고, 그레이스는 정신 건강 관련 도서를 읽으면서 엄마가 조현병임을 의심하지만 아버지도, 오빠도, 상담사도 아무도 엄마를 돕지도 조치를 취하지도 않는다. 그레이스는 군자씨의 바람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우수한 학업 성적으로 명문대학인 브라운대학에 입학하고 집과 멀어지면서 엄마의 병세에 대한 관심도 멀어지고 자기 나름대로 대학 생활과 친구 관계와 연애 생활을 이어간다.

1994년에 그레이스는 올케로부터 엄마가 성매매 여성이었다는 말을 전해듣고는 충격에 빠진다. 그 무렵 엄마 군자씨는 두 차례 자살 시도를 한다.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는 나의 아빠가 조현병이 발발했고, 역시나 자살 시도를 했다가 실패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했다를 반복한다. 공간은 다르지만 시기나 경험은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구나, 나의 부모는 나에게 아빠의 치료과정이나 입원 생활에 관해 제대로 이야기 한 적 없지만 비슷한 의학적 조치를 받았다면 어머니 군자씨가 먹던 약을 아빠도 먹었겠구나, 그래서 그렇게나 부작용에 시달리고 약이 안 맞다고 싫어하고 자살 충동에도 시달렸구나, 짐작만 할 뿐이다.

그레이스가 군자씨 인생의 마지막 시절 동안 엄마가 알려주는 조리법 대로 한국 요리를 하면서 멀어졌던 사이를 회복하고, 음식을 해주는 사람이나 함께 먹는 사람이나 둘다 치유의 경험을 겪는 것이 나에게는 생소했다. 내게 어린 시절 식사 시간은 즐겁지 않은 시간이었다. 맨정신일 때도 아빠는 인상 쓰고 억지로 음식을 먹거나 반찬 타박을 하고, 우리의 식사 습관에 관해 끝없이 잔소리를 했다. 아빠는 술에 취하면 밥상을 수시로 뒤엎었고 바닥에 깨진 그릇과 음식이 흩어졌다. 조현병 발작이 심했던, 그러나 가족들 중 아무도 그것이 정신질환이라고 생각은 못하고 아빠가 왜 저럴까 하던 시절, 아빠는 검은 자동차들이 집 주위를 돌며 자신을 감시한다고 생각했고 모든 걸 의심하고 엄마조차 믿지 못해 자신을 죽이려 든다며 엄마를 먼저 죽이려고 목을 조르기도 했다.
아빠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엄마 혼자서 가게를 보고 아빠랑 나랑 단둘이 집에 있던 날이었다. 바깥에 종을 울리며 두부장사가 왔는데 아빠는 날 더러 순두부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보냈다. 나중에 생각하면 정말 두부장사인지 감시꾼인지 탐색을 보냈던 것 같기도 하다. 비닐봉지에 담긴 뜨끈한 순두부를 냉장고에 그냥 놓으면 자꾸 쓰러지니까, 이걸 다른 그릇에 받쳐야 하나 어째야 하나 부엌에 서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부엌 불도 안 켜고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거기에 뭘 탔어.
갑자기 부엌에 들이닥친 아빠가 무서운 목소리로 나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이걸 어디 놓을지 몰라서 그랬다고 울기 시작했다. 열두살이었다. 그런 상황을 겪고 대응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얼마 후 아빠는 학교 가는 나를 누군가 납치한다며 붙잡고 못 나가게 하다가 겨우 보내주고는 내가 학교간 사이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 되었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 먹던 음식들도 싫고, 엄마가 해주는 음식도 별로 안 좋아한다. 한식은 대체로 꺼리고 최대한 원래 먹고 자란 것들과 관계 없는 것들을 찾아다닌다.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건 그냥 다 피하고 싶다. 그레이스랑 나랑 아픈 사람이 엄마인지 아빠인지 차이도 있고, 음식에 얽힌 경험이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 차이도 있어서 이렇게나 다른 방식으로 인지하기도 하나 보다. 내게 음식은 그냥 생존 수단이고 마지 못해 먹는 것이지 요리도 섭식도 그닥 즐거운 순간은 아니다. 병든 인간… 풀 뜯는 사자, 개미 먹는 사슴아… ㅋㅋㅋ

사회학을 공부한 저자이고, 군자씨의 삶을 설명하고 의미를 부여하는데 한국전쟁과 그 이후 한국인의 또다른 식민화된 삶, 빈곤, 그런 걸 연관 짓는 것은 크게 무리가 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엄마의 삶과 기지촌 여성, 미군을 상대로 한 성매매 그런 부분을 연관 짓는데는 엄마의 경험 증언이나 살아온 시간에 대한 어떤 진술도 없었다. 그저 정황과 공부를 하며 찾은 기록물들, 아버지 이야기 일부, 올케의 오락가락하는 진술(어머니가 매춘부였다고 했다가 금세 번복하고 칵테일바 웨이트리스였다고 하는 등)만 가지고 어슴푸레하게 헤매는 모습은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머니가 정신 건강이 안 좋으셔서 정말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말씀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고, 책에서도 어렸을 때 한국에서의 삶을 물으면 입을 다물었다고는 하지만… 직접 본인에게 묻거나 한국의 친족들에게 물어본 것 없이 너무 에두르면서도 단정짓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서, 그러고서 그렇게 짐작한 상황들에 또 너무 매몰되고 고통스러워 하는 것 같아서 좀 안타까웠다.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최근 이웃님 통해 오빠네 가족들과도 책에 서술된 부분에 관해 합의되지 않은 부분 때문에 갈등이 있고, 많은 부분이 논픽션이 아니라 저자의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식으로 비난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이런 부분이 문제가 아닐까 막연하게 추측만 해 볼 뿐이었다.

군자씨 삶의 많은 부분이 그레이스의 엄마가 된 이후 조현병을 앓고 남편과 불화를 겪고 식이 장애를 겪는 등 고통스러운 시간이 길고, 그레이스와 가족들 또한 그것을 지켜보고 견뎌내면서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거기에 군자씨의 결혼 이민, 익숙한 자기 민족을 벗어나 이방인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낯선 땅에서 적응해야 했던 외로움, 결혼 이전의 전후의 비참한 삶 등이 그레이스의 짐작대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 엄마를 이해해 보기 위한 딸의 몸부림, 자신이 가진 사회학이라는 도구로 설명하고 해석해 보려는 노력이 담긴 책이었다. 읽는 이에게 공감을 얻거나 그 시도가 납득할 만한 것인지 따져 보는 것은 뭐 크게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책 읽은 나는 그 부분은 유감이지만…) 그러니까 에세이 정도로 읽되 사회학적인 학술적 측면은 크게 기대할 만하지는 않다. 저자에게 한풀이의 과정이 되었다면 그건 그거대로의 가치가 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생긴 다른 가족들과의 오해나 그들의 한이 있다면 그건 또 잘 대화 나누며 풀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남의 가족 이야기는 이렇게 쉽지만 사실 난 내 엄마든 아빠든 더 이해하려고 시도하고 싶지도 않고 과거를 떠올리고 왜 그랬을까 하고 궁금해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유전적 요인이나 환경적 요인이 많다는 (증조할머니고 할아버지고 죄 또라이었던데) 그 조현병이 나한테는 제발 좀 안 왔으면 좋겠고 ㅋㅋㅋ내 새끼들이 나 이해해보겠다고 전쟁 같은 맛 같은 책 쓸 일 없었으면 좋겠고 ㅋㅋ니들은 문과 하지 말고 이과 해라...사회학 난 잘 모르겠다… 공부라고 오래한 게 그나마 그쪽인데 양적연구고 질적연구고 난 모르겠다...ㅋㅋㅋㅋ 대불호텔에도 유령 나오고 그레이스의 박사논문에도 유령나오고 그러는데 뭘 말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그게 문학적 수사까지는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레이스의 과거 회상에서 죽은 아이 모습 보았던 경험 적어 둔 거 보면서 아 그레이스도 좀 아픈가 보다...했다.

끗.

+밑줄 긋기
-강제로 아니면 자유롭게, 이는 잘못된 이분법이다. (327, 내가 누칼협이라는 말을 너무너무 싫어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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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3-09-03 23: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누칼협이라는 말도 있군요. 기존에 있었던 말이라도 밈화된 언어들이 품고 있는 것들.. 뜨악스럽고…이렇게 눈감고 귀덮을 때가 아닌 것도 같고..
반님 서평 중 순한 맛이네요. 이것은 이것대로 저것은 저것대로, 기울어짐 없이 책을 짐작해볼 수 있어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9-03 23:56   좋아요 1 | URL
늘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ㅋ 난 이 책 팔 듯... ㅋㅋㅋㅋㅋㅋ책 진짜 안 파는 편인데 징벌적 판매제라고 기대에 못 미치면 쫓겨나는 제도가 있음 ㅋㅋㅋ

Falstaff 2023-09-04 06: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징벌을 받아 마땅한 책이라는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별 넷인데요? 하긴 그럴 수 있겠습니다. 좋은 책 같지만 내 맘엔 안 든다...

반유행열반인 2023-09-04 07:00   좋아요 3 | URL
저자 및 누군가에게는 좋은 책이겠지만 나는 좀 낚인 기분이다 정도요 ㅋㅋㅋ 논픽션이라 하기에는 엄밀하지 않고, 사회학적 상상력이라고 눙친다면 염치가 좀 없구요. 엄마 이야기니까 너무 감정적이다 라고 하기엔 매정한데, 자기 일기 아니고 남들 보여줄 책이라면 좀 아쉬움이 있고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나 오빠 입장에서는 이런 식으로 드러나는 일 자체가 서운하고 수치스러울 부분도 있어 보였습니다.

hnine 2023-09-04 16: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에 자전적 소설인줄 알고 읽기 시작했다가, 아닌 걸 알고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읽으니 낫더라고요. 제목이 꼭 소설 제목 같잖아요. 좀 더 다듬어 본격적인 논픽션으로 펴냈더라면 하는 생각도 했지만 저자 인터뷰 영상들을 찾아보니 나름대로 오랫동안 고군분투 했던데 여기까지 한것도 힘들었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반유행열반인 2023-09-04 16:36   좋아요 0 | URL
저는 차라리 소설로 썼다면 좀 자유로웠을텐데 이런 경우는 오히려 논픽션 걸고 하는게 이래저래 걸리는 게 많겠다 싶었어요 ㅎㅎㅎ

2023-09-04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04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k 2023-09-10 1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걍 소설로 생각하고 읽었어요. 학자라고 하기엔 검증이 안된 것이 많고...실제로 엄마를 간병했던 오빠에겐 물어보고 쓰지도 않았다는것도 이상해요. 학위 가진 서양인의 얕보는 듯한 태도에, 자기연민까지 섞어서 쓴 글 같이 느껴져 불편했어요...

반유행열반인 2023-09-10 12:26   좋아요 1 | URL
그냥 자기 한풀이다 하면 이해가는 부분도 있는데 사회학 운운하거나 가족들한테는 조금 불편할 부분도 있지요. 소설이라고 하면 상상력이 조금 더 아쉽구요 ㅋㅋㅋ
 
[eBook] 수면 아래
이주란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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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31 이주란.

이주란의 단편집 두 권을 보았고, 작년 수능 끝나고 이 책을 빌렸다가 못 보고 반납했다. 왠지 장편소설도 봐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끼다가 다시 빌려서 아, 별로 안 두껍잖아, 하고 읽었다.

대도시의 삶이 아닌 좀 작은 동네에 깨 털고 콩 털고 그런 곳에서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여기저기 다니고 뭘 먹는 모습이 나온다. 새삼스럽게 오...사람은 저렇게 뭘 먹고 아는 사람 만나고 일하다 어디도 갔다가 하면서 사는 거지… 했다. 여기 나온 사람들은 싸우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덤덤하게 덤덤한 이야기만 했다. 그렇다고 다들 인생 내내 평온하지는 않았고, 가까운 사람을 잃은 경험이 죄 있다. 어머니가, 아이가, 아버지가, 강아지가 죽었다. 가끔은 그걸 떠올리면서 슬픔에 잠기지만, 나머지 시간은 덤덤하게 산다. 옛날 이야기도 가끔하고. 진짜 뭘 많이 먹는다. 저렇게 집요하게 먹는 이야기를 자꾸만 쓰는 거 보면 먹는 거 좋아하나 봐 주란이는… 먹는 걸 안 좋아하는 게 더 이상한 것 같기도 하다. 먹는 걸 읽는 일은 확실히 별로 안 좋아하긴 하다.

갈등과 불행과 재난과 그런걸 극복하거나 극복하지 못하는 게 서사 읽는 재미라고 여겨왔던 나한테 대부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모두가 평화롭고 서로가 감사하고 많이 친하든 적당히 안면 익힌 정도이든 처음 보든 서로 돕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히려 그게 일상인데 이걸 읽는 게 더 판타지 같았다. 지나가다 패딩 걸치는 사람 옷소매 잡고 거들어주거나, 들른 사람에게 국수를 말아 먹이거나, 그 보답으로 제주에서 온 귤을 가져다 주고 또 계란말이를 얻어 먹거나, 앉았던 돗자리를 지나가는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거나, 쓰던 물건들을 거둬 씻어 필요한 사람들에게 오천원 더 깎아주고 파는 일들, 그런 작은 일들이 사람들이 생존하는 걸 돕고 덜 외롭게 하고 아픈 일도 견디고 계속 살아나가게 한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하는 글이었다.
그런데 이런 소설을 또 읽겠냐 하면 망설여진다. 그러니까 하나도 안 아프게 살살 주물러주는 마사지를 받는 기분이어서. 그걸 이렇게 길게 받으라고 하면 잠이 오잖아...그러면서도 좀 시원해지는 순간이 오려나? 하고 끝까지 기다렸는데 끝내 살살 하다 끝나는 거야… 그럴 거면 왜 소설을 읽냐 스스로 마사지를 하지… 팔 안 아플 정도로 마냥마냥 살살… 재미없다. 자극 중독자라 미안… 빛만 받아도 쇼크로 죽을 것 같이 힘든데 뭐 읽기라도 해야겠네 하는 사람은 암죽 먹듯 읽으면 시간은 가겠다. 김연수보다 최은영보다 더 심하게 착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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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31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31 2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31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31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31 2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31 2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31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23-09-01 0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막연하게나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상상이 됩니다.
독서 모임에서 소설로 책 읽다보면, 흥미로운 게
각자의 생 경험에 따라 눈에 들어오는 문장과 캐릭터가 확연히 갈릴 때가 있다는 점이었어요

덤덤하지 않은 소설에서도 꼭 덤덤, 곁다리 묘사만 기억하시는 분과
아니 덤덤한 글에서도 격렬한 부분을 예리하게 찾아내시는 분...

ㅋ 근데, 인용해주신 부분들마다 정말 담담하긴 합니다. 최수종이 그 최수종인 거죠?^^ ㅎ 갑자기 ㅎ

건수하 2023-09-01 06:36   좋아요 1 | URL
최수종…? 하며 다시 읽었습니다.
태조 왕건…?;;;

반유행열반인 2023-09-01 12:02   좋아요 0 | URL
이 작가 작품으로 처음 만난 단편소설들은 그간 자라면서 겪은 고통 같은 게 느껴지고 좀 신기들린 듯한 느낌이 있었는데 삶이 안온해졌는지 ‘지난 고통에도 불구하고’ 계속 되는 삶, 대부분은 잔잔한 나날 이런 쪽으로 글을 쓰시는 것 같아서 편안한 삶은 다행이지만 소설 독자로선 아쉽습니다 ㅋㅋㅋ 나 꿈에서 정도전 봤어 얼굴을 어떻게 알아 조선 사람을? ... 조재현이야 둘다 저세상 사람이네...

반유행열반인 2023-09-01 12:02   좋아요 0 | URL
아 진짜 정도전만 죽었네요... 헷갈렸다...

Yeagene 2023-09-02 16: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느낌인지 알겠네요 ㅎㅎ 저도 재미없을 것 같습니다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9-02 19:06   좋아요 1 | URL
문장만 좋고 서사는 거의 부재입니다 ㅎㅎ이 작가 첫 단편집이 제일 나아요.
 
영원한 현재 HM - 헨리 몰레이슨이 세상에 남긴 것들과 뇌과학의 거대한 진보
수잰 코킨 지음, 이민아 옮김 / 알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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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6 수잰 코킨.


이전 독후감 목록에서 ‘뇌’를 검색해 보면 70여개의 글이 검색된다. 특히 2020년에 뇌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 넓게 보면 감각, 호르몬 관련 책도 뇌가 자주 등장하고 정신 건강 관련 책들도 그렇지… 뇌가 궁금하신 분들, 교양 수준의 참고 목록 쯤 되겠습니다.

1)우울할 땐 뇌과학(엘릭스 코브)
https://m.blog.naver.com/natf/221796023100
2)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엘리에저 스턴버그)
https://m.blog.naver.com/natf/222007520313
3)마음의 오류들(에릭 캔델)
https://m.blog.naver.com/natf/222046378088
4)여자의 뇌(루안 브리젠딘)
https://m.blog.naver.com/natf/222017250822
5)남자의 뇌(루안 브리젠딘)
https://m.blog.naver.com/natf/222012287731
6)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올리버 색스)-뇌의 이상과 인간의 다양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 갖게 한 책이다.
https://m.blog.naver.com/natf/221305309041
7)환각-존재하지 않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올리버 색스)-뇌의 이상과 감각과 예술 본질에 대한 통찰까지
https://m.blog.naver.com/natf/221305321819
8)감각 환각 착각(최낙언)-주로 시지각 관련. 감각도 뇌의 일. 이 작가님은 주로 맛 책 전문인데 미각도 뇌의 일(맛 책은 생략, 너무 많아…) 향의 인식도 뇌의 일(그만그만)
https://m.blog.naver.com/natf/221305302290
9)감정이 어려워 정리해 보았습니다(최낙언) 감정도 뇌의 일
https://m.blog.naver.com/natf/222356509815
10)과학이 사랑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모든 것(애나 마친)-fMRI 없으면 니들 뇌 연구 어떻게 할래...그런데 생각보다 엄청 중요한 기술이고 의학 뇌과학 발달에 자기공명 촬영이 기여 많이 함.
https://m.blog.naver.com/natf/223144184278
11)우리는 왜 잊어야 할까(스콧 에이 스몰)-기억도 망각도 뇌의 일
https://m.blog.naver.com/natf/223038057348
12)도파민네이션(애나 렘키)-왜 학자들 이름 다 비슷함...중독은 뇌의 일
https://m.blog.naver.com/natf/222941664752
13)도파민형 인간(대니얼 리버먼, 마이클 롱)-호르몬도 뇌의 일
https://m.blog.naver.com/natf/221874415938
14)크레이지 호르몬(랜디 허터 엡스타인)-여기는 상대적으로 정신 의학 관련은 덜 나옴. 좀 더 다양한 호르몬 다룸
https://m.blog.naver.com/natf/222428756875
15)뇌는 왜 아름다움에 끌리는가(마이클 라이언)-이 책 제목은 좀 낚시다. 원제에도 뇌 안 들어감. 동물행동학, 성적 미학이 주요 내용임
https://m.blog.naver.com/natf/222055543596
16)열두발자국(정재승)-다른 애들 다 읽고 읽으면 뇌과학책이라기엔 조금 민망한 수준이었음
https://m.blog.naver.com/natf/222462503165
아니 시발 왜 목록이 끝이 없어...나새끼 생각보다 뇌에 진심이었구나...여기에 정신의학까지 더하면 좀 많음…
17)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김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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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우리 아기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려원기)-정신과 의사가 그린 육아+뇌발달 만화임!!!좀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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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우리가 매일 끌어안고 사는 강박(김현철)-이 책 좀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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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제 뇌책 그만 봐라 진짜...많이 본 게 문제가 아니라 보고도 기억하는 게 별로 없는 게 문제다. ㅋㅋㅋㅋ 서론이 길었는데, 이번에 읽은 책은 뇌과학 역사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두툼한 책을 봤기 때문이다. 딱히 골라 본 건 아닌데 그냥 다른 중고책 사다 어쩌다 같이 산 책이 또 내 뇌새끼가 뇌뇌뇌 했다.

읽었대도 위에 책들이 거의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도 저 책들에서 환자 HM의 사례가 언급되었을 것이다. 이번에 읽은 책은 바로 그 HM에 관해, 그가 50년 넘게 기여한 연구들에 관해 집대성한 책이었다. 이전 책들에서도 봤지만 많은 뇌 연구 분야가 정상 작동하는 뇌보다는 오류를 일으키거나 손상된 뇌를 가진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특정 기능과 연관된 뇌 부위를 밝혀내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나 HM, 헨리 몰레이슨의 독특한 뇌 손상(정확히는 의학적 조치로 인한 뇌의 일부분 제거)사례는 그의 수술 이후부터 노인기, 그리고 죽은 이후에는 해부학과 뇌스캔과 뇌 표본 제작까지 기억과 뇌의 기능에 대해 엄청 많은 것들을 알려주었음을 책을 따라가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1926년생 헨리 몰레이슨은 조용한 미국청년이었다. 그는 청소년기 무렵 간질 발작이 시작되면서 일상 생활과 사회 생활에 많은 곤란을 겪는다. 그를 진료한 스코빌 박사는 발작의 완화를 위해 뇌 절제술을 실시했다. 병을 낫게 하려고 뇌를 잘라낸다는 게 건강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뜨악하겠지만 현재에도 실시되고 있는 수술이다.
http://samsunghospital.com/dept/medical/healthSub02View.do?content_id=1325&cPage=2&DP_CODE=EPI&MENU_ID=003&ds_code=D0004200
(출처: 삼성서울병원 뇌전증 클리닉)

다만 지금은 뇌에 대해 어디까지 잘라야 하고 어디는 자르면 안 되고 하는 게 많이 알려져 있지만(그러는데 헨리가 아주 많은 기여를 했지만), 지금부터 70년 전 의학은 뇌를 잘라내서 간질이 낫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이게 어떤 부작용을 야기할 지는 잘라봐야 알았던 것이다… 헨리는 뇌의 양쪽 측두엽극 안쪽, 편도복합체 대부분, 해마복합체, 부해마회 앞 부분, 해마구 인접 내후뇌피질 제거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수술 이후 그가 새로운 경험과 정보를 기억하는 데 심각한 장애가 생긴 것을 의료진과 가족들이 알게 되었다. 헨리는 자신이 수술을 받고 이상이 생긴 것조차 기억하기 힘들었고, 한참 살아가면서 막연하게 자신의 정신에 문제가 있어서 일상 생활이 어렵고 남들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정도로 자신의 문제점을 인지하는 모습을 보였고 말로도 그런 상황을 표현할 수 있었다.

의료 사고에 대해 원망을 쌓고 책임을 추궁하고 침통에 빠지고 여생이 불행하고...그런 게 나같은 비관주의자의 예측되는 전개인데, 헨리와 헨리의 가족들은 다른 선택을 했다. 자신을 연구 대상으로 관찰하고 실험하려는 많은 과학자, 의학자들에게 협력했다. 이 책의 저자인 수잰 코긴 또한 이전에 밀너 박사가 하던 연구를 이어 받아 1962년부터 헨리가 사망한 2008년, 그리고 사후 뇌 분석까지 헨리를 통해 기억의 작동 원리와 연관된 뇌의 부위에 관해 많은 것들을 알아냈다.

장기기억과 단기기억이 뇌의 다른 경로를 거쳐 머릿속에 자리 잡는다는 것을 지금 심리학이나 교육학 공부하는 사람들은 당연하게 배우고 있지만 헨리를 연구하기 이전까지는 많은 논쟁이 있던 모양이다. 헨리는 수술 이전의 오래 전 어린 시절의 일들은 제법 기억했지만, 수술 이후 경험한 많은 일들은 인지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자꾸만 휘발되고 말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실마저 지갑에 적어 넣어 두고 가끔 찾아보고 나서야 그 사실을 상기하는 게 슬프기도 했다. 그렇지만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전환되는 과정과, 일화기억이나 서술기억이라 부르는 종류의 기억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고 해서 모든 뇌가 다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의식하거나 언어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학습하게 되는 비서술적 기억, 예를 들면 보행보조기구를 사용하는 방법 같은 것은 몸으로 하는 기억인데 그런 것은 한 번 익히면 잊지 않았고 (단, 자신이 보행보조기구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사실은 잊어버려서 사용 안 하다 넘어져 다치는 건 넘 슬픔), 수술 후 만난 대부분의 연구진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했지만 오랜 세월 만나면서 막연하게 친숙하고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끼고 단서를 제시하면(이름 일부를 알려주면) 성씨를 대는 등 일부 회상도 가능했다. 수술 전에 이미 형성되었던 장기기억에 새로운 정보를 결합시킬 기회를 제공하면 (스키마라고 교육학에서 엄청 배운 거 ㅋㅋㅋ) 놀랍게도 새로운 학습이 조금이나마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아몬드 같은 책에 보면 편도체에 이상이 있거나 이걸 제거하면 영 감정을 못 느끼는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헨리는 기억하지 못했던 부모의 사망사실을 다시 알게 될 때 슬퍼하기도 했고, 자신의 기억이 정상 작동하지 않는 것에 울분을 느끼고 뭔가를 때리거나 부수는 행동을 하기도 하고, 연구진과 농담을 주고 받으며 웃기도 했다. 감정을 주로 관장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이것이 딱 좁은 특정 부위에만 연결되어 있는 건 아니구나, 기억도 마찬가지구나, 하는 흥미로운 일화가 많았다.

헨리의 뇌건강에 미친 문제들, 연구 윤리 등을 의식해서 인지 저자는 스코빌이 행한 간질 수술이 헨리의 수명 연장에 기여했을 가능성, 필수 불가결한 의료 조치였다는 것을 강조했고, 헨리가 부모님 사후에도 충분한 케어를 받으면서 연구에 협력할 수 있도록 자신과 연구 관계자들과 헨리의 친척 후견인이 충분한 돌봄을 제공했음을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중요한 혈연을 잃고도 자녀가 없어도 헨리가 홀로 방치되지 않고 많은 사람과 연결되고 제법 고령까지 생존한 것은 다행인 부분인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책 앞부분의 수많은 실험 사례, 연구 과정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헨리의 건강 문제, 일상에서 겪거나 보여주던 고통을 책 말미에 적어 두어서, 그렇지… 50번 정도 참여한 MIT연구 시절에는 친절하게 대접 받고, 헨리 자신이 되고 싶어했던 뇌외과 전문의랑 연관 있어 보이는 배운 사람들이랑 교류하는 게 스스로 특별해지는 느낌도 있고 가치 있는 일 하는 기분도 느끼고(금세 잊겠지만) 그래서 연구자들에게는 유쾌하고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나머지 연구 이외의 많은 시간들은 역시나 고통이었을 것 같다. 헨리 어머니가 고령이 되었을 때의 둘의 안 좋은 위생 상황과 모자간 갈등, 요양병원에서 이상행동을 보이거나 건강 악화로 고통을 호소하는 걸 보면 그게 삶의 거의 대부분의 시간이었겠지… 싶다가도 뭐 심하게 안 아픈 사람들도 삶의 많은 시간은 질환의 고통(나도 그랬지)이고, 영광의 순간은 누구나 찰나이지, 그러면 또 그냥 그게 사는 거지. 삶은 고해, 하게 되었다.

수많은 연구 과제들과 실험 과정과 결과와 시사점을 잔뜩 열거해놓은 학술적인 책이라 사실 나같은 일반인이 읽기에 수월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기억이나 인지, 뇌과학에 많은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연구 분야에 기여할 수도 있구나… 교과서에 나오는 수많은 뇌의 기능이 이런 식으로 밝혀지고 PET나 fMRI나 유전자 분석 같은 최신 기술 등장으로 기존 연구들이 다시 입증되거나 반박되거나 했구나 하는 걸 살펴보는데 좋은 책 같았다.

내가 왜 이러는지, 쟤는 또 왜 저러는지, 사회는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모든 것에 정답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많은 부분 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나면 불안이 덜어지고 체념하게 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헨리가 실험 과정이든 일상생활이든 무수한 반복 끝에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의외의 사실들을 기억해 내는 것을 보면서, 뭐 자꾸 읽다가 잊어버리고 공부하다 까먹는다고 헛짓거리라고 징징 울 것도 아니겠다, 이러다가 몸에 익기도 하겠지, 하는 위로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뭐 저는 그래서 이렇게나 집요하게 뇌뇌뇌 했던 것도 같습니다… 일반인이 교양서 나부랭이 몇 권 한 번씩 슥 본다고 전문가는 절대 못 되지만, 나자신에 대한 전문가조차 못 됐지만, 뭐 그럭저럭 스스로 납득하며 삽니다...


+밑줄 긋기
-헨리 같은 선택적 기억상실증 환자들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배운 한 가지 사실은, 기억이란 어떤 단독 기능이 아니라 여러 다른 기능이 조합된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 뇌는 다양한 투숙객이 모인 호텔과 같다. 각종 기억이 유형별로 각기 방을 하나씩 차지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99)

-헨리에게는 보통 사람들이 살면서 붙들게 되는 정신적인 닻, 그러니까 때로는 부담이 될 수 있는 애착이나 집착 같은 것이 없었다. 장기기억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인 것은 맞지만 때로는 방해요소가 되기도 한다. 살면서 겪었던 낯부끄러운 순간이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느꼈던 고통, 처참했던 실패와 정신적 충격이나 골치 아픈 문제에서 헤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자꾸만 떠오르는 기억이 무거운 쇠사슬이 되어 우리를 스스로 만들어낸 정체성 속에 칭칭 동여맨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 않은가?(130)

-어느 날 저녁 토이버는 헨리가 캄캄한 방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곁에는 십자말풀이가 놓여 있었다. 어디 몸이 불편하냐고 묻자 헨리가 답했다. “그...정신적으로 불편해요. 사람들을 그렇게 고생시키고...기억은 하지 못하니까요.” 자기 마음을 마땅히 표현해줄 말을 떠올리려고 애쓰는 눈치였다. “지금 나하고 싸우고 있어요. 내가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했는지, 하지 말았어야 할 행동을 했는지, 그런 거요.” 헨리는 어떤 기억을 인출해내려고 안간힘을 쓸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다. “지금 나하고 논쟁하고 있습니다.” 끝나지 않을 후렴구였다.(…)“저기, 지금 나하고 싸우고 있어요. 아버지에 대해서요.“ 헨리가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한쪽에서는 아버지가 부름을 받으셨다고 생각해요. 돌아가셨다고요.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지금도 살아 계시다고 생각해요.“ 헨리는 몸을 떨기 시작했다. ”도저히 모르겠어요.“ (181-182)

-한번은 우리 연구실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검사받는 일을 이렇게 요약한 적이 있다. “참 재밌죠. 사람은 살면서 배우거든요. 그런데 나는 살기만 하고, 배우는 건 선생 몫이죠.”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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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8-27 16: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흠.... 맘만 제대로 자시면 수능 따위는 껌일 거 같은데요. ^^;;;

반유행열반인 2023-08-27 16:48   좋아요 1 | URL
헤헤 좋으라고 그냥 하는 소리시겠지만 야 읽었는데 잘 모르겄다ㅋㅋ하는 대갈빡으론 수능 잘 보기 어렵쥬 ㅋㅋ소주도 끊고 그래도 머리 더 안 나빠지라고 노력허고 있습니다 환갑 전에 성공하도록 애써 보겠습니다 ㅎㅎ

은오 2023-08-27 1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ㅋㅋㅋㅋㅋ 대박인데요. 수술 망했는데 그 김에 연구대상이 하겠다한거.... 뇌과학 분야에 한 사람 뇌가 많이 기여한거... 오 ㅋㅋㅋㅋㅋㅋㅋ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 책 재밌겠다! 하다가 좀 학술적인 책이라 하셔서 일단 보류..

반유행열반인 2023-08-27 19:41   좋아요 1 | URL
저는 와 이게 심지어 개정판인데 구판도 이 책도 독후감 한 개도 없어 그렇다면 내가...하고 읽었어요. 수능 망한 김에 연구대상... ㅋㅋㅋ

은오 2023-08-27 19: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근데 유열님 요즘 페이퍼가 살짝 뜸헌데 쎈수학 푸느라 바쁘신가요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8-27 19:42   좋아요 2 | URL
쎈수학 쪼끔하고 (그래도 수1 한권 다 풀고 복습중 어려운 단계는 다 빼고 ㅋㅋ) 이 책이 잘 안 읽혀가지고 뜸했나 봅니다 ㅋㅋ뜸한가 빈한가 헤아려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