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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면 멈추자 ㅣ 경기문학 24
장성욱 지음 / 테오리아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20181013 장성욱
소설책하면 두툼하게 한 작가나 여러 작가 작품들을 모아둔 것만 봐 왔는데 단편 한 둘만 담은 책들이 눈에 띈다. 최은영 정세랑 책이 나온 테이크아웃 시리즈(음 커피 한 잔 값으로 소설 한 잔-컨셉인듯), 김봉곤 조남주가 봄여름호로 등장한 문지문학상의 계절 소설 프로젝트 소설보다, 한영대역이라 좀 다른 컨셉이지만 장강명 구병모 김애란 소설이 궁금했던 K픽션 등등. 간편함 가벼움 경제적 등등을 내세우는 출판사들 나름의 자구책이자 새 시도 같은데 효과는 지켜봐야할 듯.
여튼 내가 고른 첫 간편 소설은 역시 한 두편의 소설을 담은 경기문학 시리즈의 가장 최신작 ‘꽃을 보면 멈추자’. 종이책은 처음 보는 장성욱이라는 작가였다. 이전 독서의 무겁고 엉킨 느낌 좀 털기 바라는 마음의 독서였는데. 제법 성공한 선택이었다.
가뿐한 책의 판형과 소설의 장점이 나름 일치해서 시너지가 있달까, 재미있게 금세 읽혀 좋았다.
꽃을 보면 멈추자
제목이 마음에 들었는데 양지 바른 곳에 핀 꽃을 보며 미소짓는 훈훈함을 기대한 사람에겐 시무룩할수도. 약간의 조소와 냉소가 섞였지만 뭐 소설 보다 보면 진짜 웃게 되는 지점도 있다. 게다가 진짜 꽃을 보려 멈춘게 아니라 꽃을 보는 나를 보기 위해 멈춘 사람들, 사진을 올리는게 아니라 사진찍는 나를 SNS에 올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만큼 적절한 다른 제목도 없을 듯하다.
그 ‘나’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정말로 또 다른 나를 찾아 온 애인과의 에피소드, 치유 받기 위해 상처받자는 개소리의 등장, 주목 받기 위한 SNS와 무조건적 추종자들, oo녀로 반짝 떠오르는 사람들… 이 모든게 말도 안 되고 우습다고 여기던 주인공조차 마지막에는 동요되는 모습을 보인다. 때맞춰 구여친과 대기업과 맞아맞아족에게 떠밀리듯 강제로 힐링열풍에 동원되려는 순간 소설이 끝난다.
힐링, 00녀, 블로그는 열풍이라 하기엔 살짝 식어 주춤한 장치들이지만 또 다시 욜로, 여혐이 안 될 또 다른 신조어들, 트윗과 인스타로 대체해도 손색이 없다. 작가는 나름 우리가 거쳐온 한 시점을 적절히 포착했고 그 시점을 보는 시선도 뭐 한 동안은 유효할 것 같다.
가볍고, 간결하고, 발랄한 그래서 잘 읽히고 재미있는게 장점인 소설이었다. 엄청 두꺼운 겨울 코트만 입다가 깃털 같은 경량 재킷을 보고 ‘이거 허술하니 춥지 않을까’했는데 그 가벼움과 간결함의 여백 사이에는 큰 함기량이 있었다. (파르테니데스가 가벼움을 긍정적인 것으로 두었다는 것이 내내 이해가 안 됐었는데 이제야 수긍이 되기 시작.)
모든 등장인물이 익명인 것도 나름 특징. 나와 애인(파울홈런녀?),그것,친구 옥장판,맞아맞아 등등.
야구는 좋아하지만 야구장은 낯선 주인공, 파울 홈런 보고 좋아하는 여자(그게 나야...야알못), 야구는 니 어깨와 어깨 사이에 있는 걸로 하는 거야(맞나 다시 뒤져보고 수정 ㅋ)하는 야구 선수의 띵?언이 등장하는 걸 보면 엘지 팬이었던 듯 한 작가도 야구를 좋아하는 듯. (아니면 야구인 타겟팅 마케팅?) 아 다음 소설에도 야구선수 나온다.
이사
오티를 마치고 대학 입학을 앞 둔 시기 자취방 이삿날, 자취방에서 라는 짧고 좁은 시공간 안에 경서(부잣집아들),도길(아마도 대다수일 없는 집 아들),민혁(운동부-고교야구부 출신)이 부대끼는 순간의 이야기이다. 웹툰 타인은 지옥이다의 설정과 인물들이 괴기하고 만화적이면서도 저럴 때 있지, 한다면, 이 소설 속 세 명은 그 좁고 짧은 동안 철저히 타인임을 느끼고 소소한 지옥을 마주하면서 읽는 사람들도 언젠가 느꼈을 그런 상황들과 기분들을 잘 보여준다 싶었다.
하필이면 새 시작 앞둔 이제 막 스무 살짜리들 가지고 가혹하다 싶지만 뭐라도 있겠지, 뭐라도 되겠지, 쟤는 좋겠다 또는 왜 저래 하는 끝에 올 것들을 이미 거치고 알고 있는 (나같은 흑흑 노티 풀풀)사람들 눈에는 더욱더 측은하고 답답하고 또 아 왜 저러고 살았지 부끄럽고 등등 복잡한 마음이 들게 하는 것 같다. (의도한 건지 그냥 던진건지는 모르겠음)
편하게 재미있게 잘 읽었다. 힐링된다. 하하 힐링 까는 소설로 힐링되는 역설
작가의 다른 소설들도 기대된다. 잘 읽히는 글이 나는 참 좋더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