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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1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최종술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평점 :
-20190428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독자를 바보 취급해도 기분 나쁘지 않다. 오히려 말을 걸어주니 반갑다. 이건 소설이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읽어! 롤리타부터 그랬던 것 같다. 소설의 흔한 기법들을 하나씩 가리키고는 난 이렇게 안 할 거지롱 아니면 이거 틀렸다 이건 좀 아니다 하는 것도 재미있다. 친절한데다 치밀한 장난꾸러기네.
죽은 사람이 쓴 것만 읽을까 생각도 해 봤다. 내가 읽고 뭐라해도 화내지 못할 사람. 비겁하다.
그런데 죽고 나서도 읽히는 사람들은 도무지 뭐라 할 것 없이 재미있게 잘 썼다. 역시 죽은 사람 것만 읽어야 겠다. 0000년 사망. 이게 무슨 품질보증마크 같군.
나의 분신이 나 몰래 나를 죽이고 내 보험금을 받고 나인척 살았으면 좋겠다. 불가능하다. 나의 분신부터 문제다. 그런 게 있을리 없다. 나 몰래도 어렵다. 이걸 바라는 순간 벌써 죽일 걸 알았잖아. 나를 죽이는 건 뭐 그럴 가치가 있어야지. 보험금은 분신이 아닌 법정 상속인한테 가겠지? 게다가 나인척 산다는 건 뭐야. 나도 모르겠다.
이 문장은 전부 틀렸다. 그러니 이상한 바람은 잊고 소설이나 읽자.
소비에트 연방에서 게르만의 소설이 어떨게 읽힐지 갖다 붙이는 게 완전 웃기다. 응용해서 미국이랑 프랑스까지 간다. 사세요 두 번 사세요 좋아요 구독하기 눌러주세요. 시대를 초월한 마케팅이다.
게르만의 소설을 잠깐 보여주는 부분도 웃기다. 엉터리로 써놓고 으쓱으쓱. 게르만이 쓴 소설과 나보코프의 소설을 의도적으로 혼동되게 한다. 아마도 그 소설이 게르만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완전범죄에 실패한 것을 인정받지 못한 예술(소설)인 양 투덜대며 그려놓았다.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때까지만 해도 치밀한 범죄자였을 게르만은 범행이 탄로난 후에는 (결과론적으로) 허술한 바보이거나 정신병자일 수 밖에 없다. 쓰는 순간에는 아무리 위대한 실험 정신으로 도취되어 있었더라도 작가의 의도대로 읽히지 않은 데다가 혹평을 받은 창작물은 실패한 것이다. 실패한 것인가? 어쨌든 게르만은 ㅈ됐다.
예전 상사가 떠나가면서 남겨준 말이 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이걸 기억해.” 이걸 잊은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추가되었다. 나도 자주 잊는다. 그것이 늘 비극의 시작.
불쌍한 부랑자 펠릭스. 제일 먼저 ㅈ됐다. 몇 푼 탐낸 죄 치고는 가혹하다. 원래 작은 죄의 대가가 제일 크다.
허영에 가득한 주정뱅이 화가 아르달리온. 나름의 역할이 있다.
리다. 남편 잘못 만나 겪을 인생역정이 눈에 보인다. 게르만의 묘사가 부당할 것이라는 의심을 아르달리온의 편지 이전까지는 내내 해보지 못했다. 부끄럽다.
페이지가 넉넉히 남은 것에 방심하고 보다 딱 끝나 버리니 너무 아쉬웠다.
부록으로 딸린 영문판 저자 서문에서 궁금한 것이 조금 풀렸다. 거기에 더해 새로운 것도 알았다.
1.이 소설은 영어 아닌 러시아어로 쓰였다. 당시엔 러시아에서 (저자 말대로 게르만의 바람과 달리)출판 못했다.
2.이 소설의 영문판은 저자가 직접 번역했다. 자기가 쓴 소설을 자기가 다른 언어로 직접 번역한 점이 흥미롭다. 게다가 두 번이나 번역했다. 30년 후의 번역은 약간 개작도 했다. 셀프 번역의 장점이다.
3.내가 읽은 문학동네 한국어판은 영문판을 참고해 러시아어판을 번역했다고 한다. (둘의 결말이 약간 다른데 일장 연설 안 하고 갑자기 끝나는 게 더 깔끔한 선택같다. )
휴대폰이 없던 시절 편지와 신문이 사건의 매개가 되고 정보를 나누고 사람의 거취에 영향을 주었다. 우리 시대에도 그렇게 쓸 수 있을까? 쇼코와 소유는 편지를 주고 받지만. 과거에 주고 받았다 이상으로 쓸 수 있을까. 즉물적이고 즉각적인 것들이 시간의 지연마저 걷어가 버렸다. 메신저가 있고 인터넷 뉴스 속보 알림이 있다. 정보가 너무 많다. 쉽사리 말을 걸 수 있다. 긴장감을 어떻게 유지할까. 빈 칸을 어떻게 만들어낼까. 휴대전화를 변기에 빠뜨리고 두고 나오고 잃어버리고 액정이 깨지고 요금을 못내서 정지되고...그 이상의 진부하지 않은 장치가 있을까? 그걸 해낸다면 승자가 되겠지. 아니면 아예 가상의 이야기나 다른 세계 다른 시대를 찾아야 한다. 소설에 나온 AI는 휴대전화 가진 놈이 없더라. 외계인도. 할머니조차 있는데. 어떤 할머니는 인스타도 하는데.
오랜만에 신나게 읽었다. 롤리타도 다시 읽고 싶다. 십오 년 전에 읽은 건 안 읽은 것이나 다름 없다.
——
밑줄 잘 안 긋는 내가 밑줄을 너무 많이 그었다.
-ㅋㅋㅋ(1)
“새 중에서 참새는 거지예요. 거지 중의 상거지죠, 상거지.” 그가 되풀이했다.
-가끔 설득당한 나도 실은 악당이 아닐까.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면, 내 존재의 독재자가 되지 못한다면, 그 어떤 논리도, 그 어떤 황홀경도 어처구니없이 어리석은 내 처지에 대한 생각을 거두게 하지 못한다. 신의 노예라는 처지 말이다. 이건 심지어 노예의 처지도 아니고, 호기심 많은 아이가 쓸데없이 그었다 끄는 성냥개비의 처지다. 아이의 장난감이 느끼는 공포. 그러나 아무 걱정 없다. 신은 없다. 불멸도 없다. 신이라는 괴물처럼 이 불멸이라는 녀석 또한 쉽게 처치할 수 있다. 정말로 한번 상상해보시라. 당신이 죽어 천국에서 눈을 떴다. 당신이 소중히 여겼던 고인들이 당신을 미소로 맞이한다. 자, 그럼 말씀해보시라. 그들이 진짜 고인들이라는 사실을, 그자가 당신 엄마의 탈을 쓰고 아주 완벽한 기교로 자연스럽게 그녀를 연기해서 당신을 미혹하는 어떤 잡귀가 아니라 정말로 고인이 된 당신 엄마라는 사실을 당신은 어떻게 보증하겠는가? 바로 이게 문제다. 바로 이게 끔찍한 거다. 연기는 실로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저세상에서 당신의 영혼은 자신을 둘러싼 다정다감한 영혼들이 탈을 쓴 악마들이 아님을 결코, 결코, 결코 확신하지 못할 것이다. 영혼은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의심 속에 머물고, 자기 앞에 고개 숙인 사랑스러운 얼굴에 나타날 끔찍한 변화를, 악마의 조소를 기다릴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실크해트를 쓴 건장한 사형집행인이든, 영원한 부재의 조가비 소리든, 뭐든 전부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불멸이라는 고문만은, 이 차가운 하얀 강아지들만은 거절하겠다. 날 가게 놔두라. 조금의 애정 표시도 참지 않을 것임을 너희에게 경고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속임수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가증스러운 요술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저승에서 나를 향해 다가오며 익숙한 손을 뻗을 때에도, 나는 공포에 질려 소리칠 것이다. 천국의 잔디 위에 털썩 쓰러져 몸부림칠 것이다. 아, 나는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이방인에게는 축복의 땅으로 들어가는 문을 닫아라.
-ㅋㅋㅋ(2)
그는 분별없는 소설가들이 작품 속에서 쓰는 소리를 냈다. “흠.”
-니들은 이렇게 못 쓰지?
긴 끈을 삼키는 마술사처럼 차가 길을 덥석덥석 집어삼켰다.
-서늘했다.
“다 됐지, 다 된 거지?”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잠깐만. 어디 제대로 좀 보자…… 그래, 다 된 거 같은데…… 이제 돌아서. 뒤태가 어떤지 보고 싶어……”
그가 돌아섰다. 그리고 나는 그의 등에 총을 쏘았다.
나는 여러 가지 것들을 기억한다. 허공에 걸려 있다가 투명한 주름을 펼치며 흩어지던 한 줄기 연기. 펠릭스가 쓰러지던 모습. 그는 곧장 쓰러지지 않았다. 그는 먼저 삶과 관계되어 있는 움직임을 끝냈다. 그건 바로 한 바퀴 가까이 빙글 도는 것이었다. 거울 앞에서처럼 내 앞에서 재미 삼아 몸을 빙글 돌려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제 관성에 따라 이 보잘것없는 장난을 끝내며, 그는 이미 구멍이 뚫린 몸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며 서서히 팔을 벌렸다. 묻는 듯했다. “이게 뭐죠?” 그리고 답을 얻지 못한 채, 천천히 뒤로 쓰러졌다. 그래, 이 모든 것을 나는 기억한다. 나는 또 기억한다. 새 옷이 불편하다는 듯이, 눈 위에서 뻣뻣해지기 시작하는 몸을 홱홱 움직여 내던 바스락 소리. 그는 곧 잠잠해졌다. 그때 나는 지구의 자전을 느꼈다. 모자만이 조용히 그의 정수리에서 분리되어 뒤로 떨어져 입을 벌리고 있었다. 주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듯했다. 그게 아니면 진부한 문구를 떠올리게 하려는 듯했다. “참석한 이들은 모두 모자를 벗었도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단 하나 기억나지 않는 것이 있다. 총소리. 대신 내 귀에는 끈질긴 소리가 남았다. 그 소리가 나를 에워쌌고, 입술 위에서 떨렸다. 나는 그 소리의 장막을 뚫고 시체로 다가가서 탐욕에 찬 눈길을 보냈다.
-이거 근데 진심이죠. 자주 하는 짓이라 죄송해요.
그게 내 시체가 아니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단단히 박고서(즉, 마음에 들지 않는 작가가 쓴 책을 한 번 읽고 나서 별로라고 판단한 이후로는 그 독단적인 의견에서 출발하는 문학비평가 같은 태도로), 그 점을 확신하고서, 그들은 펠릭스와 나의 닮음에 직면하여, 아름다운 책에서 오기(誤記)나 오식이 눈에 띄지 않듯이, 더 깊이 있고 지각 있는 태도로 내 작품을 대한다면 그냥 지나칠, 전혀 중요치 않은 작은 흠집들에 탐욕스레 달려들었다.
-그게 너의 가장 큰 문제야.
아무 근거 없이 내 구상 자체가 틀렸다는 결론을 내리고서는, 나 자신이 매우 잘 알고 있는, 성공적인 창작에 비춰볼 때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차이를 냉큼 잡아내며, 실수를, 꾸며낸 실수를 소급해서 내게 떠안겼다. 모든 게 더할 나위 없이 치밀하게 계획되고 실행되었음을, 모든 일이 완벽하게 마무리된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필연이었음을, 어쩌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창조적 직관의 도움으로 이루어졌음을 나는 주장하는 바이다.
-지팡이. 절망.
이봐요, 이봐! 심지어 그의 시체가 내 시체라고 진짜 믿었다 해도 마찬가지로 지팡이는 발견되었을 것이고, 그다음에는 그를 체포하는 줄로 생각하며 날 체포했을 거요. 바로 그 점이 가장 수치스럽단 말이오! 실로 모든 게 바로 실수가 있을 수 없음에 기반을 두고 있었소. 그런데 지금 보니 실수가 있었소. 게다가 그게 어떤 실수요? 아주 하찮고 우스꽝스럽고 조악한 실수가 지금 드러난 거요. 들어봐요, 들어봐! 나는 경이로운 내 작품의 잔해를 지켜보며 서 있었소. 그러자 날 인정하지 않은 군중이 옳았는지도 모른다고 역겨운 목소리가 내 귀에 대고 소릴 질러댔소…… 그래요, 난 전부 의심하게 되었소. 핵심을 의심하게 된 거요. 그리고 길지 않은 여생을 온전히 단 하나, 이 의심과의 헛된 싸움에만 쏟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아버렸소. 나는 사형수의 미소를 지었소. 그리고 고통스러워 비명을 질러대는 뭉툭한 연필로 첫 페이지에 재빨리 그리고 단호하게 ‘절망’이라는 단어를 썼소. 이보다 나은 제목은 찾을 수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