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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 미친 듯이 웃긴 북유럽 탐방기
마이클 부스 지음, 김경영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3월
평점 :
-20190624 마이클 부스
제목이랑 북유럽에 대한 책이라는 정보만 접했다. 컵에 물이 절반 있다면- 나같은 놈들은 당연히 이 책 제목을 보고 ‘완벽하지 않다는 소리네. 뭐라고 깔까’ 기대했을 것이다. 남들도 그랬을까? 휘게 욜로 북유럽 갬성의 완벽한 멋쟁이들 이야기겠지? 하고 읽은 사람들은 무례하고 까불어대는 영국인 기자의 이상한 영국식 농담에 짜증났을 것도 같다. 나도 처음엔 짜증났다. 덴마크 살면서 온갖 좋은 이웃 동네 다 둘러보는 주제에 뭘 그리 빈정대는거야 배부른 놈이… 그래도 읽다보니 정도 들고 북유럽 국가들의 차이점과 디테일을 막연하게나마 느끼게 해줘서 다 읽을 쯤엔 작가와 헤어지는게 아쉬웠다. 후속작으로 한중일 둘러보고 비슷한 빈정거림으로 한 편 써주면 좋겠는데 그랬다간 상하이 어느 으슥한 구석에서 칼침 맞을테니 안 하겠지?
1.덴마크
-읽기 전 내가 알던 덴마크: 덴마크 우유(상표만 그렇고 국내산 원유 쓴 유제품 파는 브랜드. 티라미수 요구르트 솔직히 충격이었어..), 베이컨, 안데르센. 끝.
-읽은 후: 저자의 장모님의 나라라 이 책에서 대미를 장식한 스웨덴과 함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휘게, 얀펜의 법칙, 단체로 부르는 민요, 긴 휴가, 잠시 진지하게 아!내가 찾던 북유럽 천국은 스웨덴이 아니라 덴마크였나? 싶었지만 책을 읽을수록 차례로 아니네 내 천국은 핀란드네-아니네 노르웨이네-아니네 그냥 스웨덴이네-아니 어디에도 천국은 없다 그냥 한국에서 잘 버티자로 수렴되었다.
덴마크가 원래부터 지금처럼 작았던 게 아니라 이 나라 저나라에 영토 삥 뜯긴 걸 처음 알았다. 레고랜드에서도(아니 여기서 훨씬 더)레고는 비싸다는 것도...
북유럽 애들 다 그놈이 그놈 비슷한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지들끼리 사이 안 좋고 헐뜯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들 간 차이는 책을 읽을 수록 조금씩 보였다.
2.핀란드
-읽기 전: 휘바휘바 자작나무 자일리톨, 핀란드의 교육은 말이죠…(자세한 건 모름. 엄친아 자랑은 귓등으로 듣기 마련…쳇), 악스트 3,4월호 읽으며 알게 된 사우나대회(와 사망 사건)
-읽은 후: 왠지 우중충하고 시골스러운 과묵한 나라가 왜 이리 좋으냐. 고스족 패션의 과묵한 청소년이 되어 헬싱키 뒷골목을 헤매고 싶다.
러시아와 씩씩하게 싸우고 버텨낸 우직함이 느껴진다.
학교 간 교육 격차 매우 낮음(우리도 이렇게 되려면 사립학교 다 국가가 사버리고 강남애들은 강북으로 강북애들은 강남으로 강제 배정해서 스까 놔야 될거야…), 석사 필수 우수한 교사진(끝내 논문 못 쓴 나새끼 반성), ‘민중의 촛불’이라니! 교사에 대한 신뢰와 지원은 부럽고도 아름답다.
아 산타 원조가 핀란드구나.(왜 몰랐지…) 여름에 산타 마을 가면 어떤 기분일까 저자와 저자의 자녀는 안다.
3.아이슬란드
-읽기 전: 에이야피야로쿨?화산? 지열발전, 온천, 경제폭망
-읽은 후: 북유럽인데 여기도 해당되나 했는데 노르웨이계가 세운 나라라 한다. 비슷한 바이킹 후예라도 빚잔치하고 배째라 하며 경제 폭망을 할 수 있다는, 북유럽의 흑화 버전을 이 나라에서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아이슬란드 사람들 이 책 제일 싫어할 것 같음)
얼음과 용암과 반지의 제왕 중간계 같은 자연환경은 가보고 싶고 궁금하기는 하다. (경제위기 여파로 환율 이 유리했다던데 지금은 회복 다 되서 다시 비쌀 듯...은 문제가 아니고 난 참 제주도 갈 돈도 없는게 문제)
4.노르웨이
-읽기 전: 조선 강국(지인 아들이 조선 전공하고 노르웨이 살러간 자랑 잔뜩 듣고 조금 부럽던…), 이명박 존경한다는 브레이비크라는 미친 살인마놈의 사악한 미소, 그놈이 갇힌 최고급 감옥, 연어! 엄청 큰 고등어!
-읽은 후: 신재생에너지 어쩌구해도 아직은 석유, 천연가스가 짱, 중동보다 자원 보유량이 더 많은 줄 이제 앎(교과서 자원 정보 리뉴얼이 너무 늦다.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다 대박났는데 아직도 석유만 나오면 OPEC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남미 타령..)
다문화사회에 대한 고민이 노르웨이와 덴마크, 스웨덴에서도 큰 화두 같다. 중국인 이슬람 혐오 댓글이 포털 기사 밑에 깔린거 보면 짜증났는데 이 동네는 아예 제대로 정치세력화 되는 듯… 정작 사고는 그런 극우차별주의자 백인들이 크게 치는데…
다문화 걱정하는 나라들이 대개 부자에 잘나가는 곳인거보면 우리나라도 인싸인 건가 약간 착각하게 되었다.
노르웨이 가서 바나나 껍질까고 생선 내장빼면 나도 먹고 살 걱정은 없을까 살짝 팔랑대는 마음도 들었다. 그치만 난 머리 까맣고 눈찢어지고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아시아인이니 가면 아랍인보다 더 무시당하겠지...나쁜 쉐끼덜…
5.스웨덴
-읽기 전: 요나스요나손의 소설들, 스티그라르손과 다비드 아저씨의 밀레니엄 시리즈(리스베트!!미카엘!!), 누미 라파스 처음엔 못생긴 거 같았는데 정들었어, 이케아 DIY 책꽂이는 다시는 사지 않겠다...등등 비교적 호감도 높고 인지도도 높은 동시에 복지국가의 문제와 한계 또한 생각해 보게 만든 나라였다.
-읽은 후: 이 책은 이 장을 위해 쓴 게 아닌가 싶게 스웨덴을 까려고 애쓰는 척하나 사실은 부러워 뒤지겠다 라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수전 손택이 스웨덴 까는 글 인용한게 진짜 웃겼다. 까는 사람이 너무 치졸한 느낌 들 수 밖에 없는 투덜거림 같아서. (거의 완벽한-이란 수식어와 주변 국의 샘내는 게 오히려 더 부각되는 듯)
엘레베이터 다른 사람이랑 같이 타느니 계단으로 가고 만다-하는 건 내 얘기인 줄 알았다. 나 스웨데시? 거기 가면 내친구들 만나는 거야? 근데 어깨빵은 아주 싫어하는데. 감당 안 될 듯.
이 책의 백미는 저자놈이 실험이랍시고 온갖 비매너로 스웨덴 사람들 괴롭히는 부분이다. 빨간 불에 길 건너는 건 약과고, 박물관에서 쩝쩝대며 과자랑 콜라먹고, 젤리 먹는 아줌마 앞에서 먹고 싶어요 하듯 얼굴 찌푸리고-옆에서 봤으면 진짜 때려줬을 것 같다. 더 충격적인 건 스웨덴 사람들 중에 그런 상황에서 얘를 때려준 사람이 아무도 없다. 보살의 나라인가...내가 가서 진상 피워도 받아줄까...
완벽한 인간적인 삶을 보장받는 듯 하나 실은 그로 인해 국가의 통제를 많이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건 리스베트와 고자된 100세 할아버지 입을 빌어 많이 듣던 소리였다. 그럼에도 진정 자율성을 얻기 위해 가족이나 타인 아닌 국가에 기댄다는 주장은 자꾸 팔랑거리고 기꺼이 소득 절반을 바치고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역시 아시아인인 나는 받아들여지더라도 말뫼 슬럼가에서 쥐꼬리같은 사회보장과 감시를 동시에 받으며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클거야...안 가 퉤퉤
-에필로그에서 북유럽의 행복 공통 요건으로 삶의 자율성을 꼽았다. 아무리 까댄 들 지상천국에 그나마 가까운 곳이 이곳이고 자본으로 인한 문제의 열쇠도 이곳에 있다고 했다. 99프로 분량으로 빈정대놓고 사실 니들이 짱 부러워서 그랬어 하는게 참 나같아서 짜증났다. 하하.
발붙인 현실에 불만족하며 아 어디로 떠날 수 없을까-가끔 그랬다.
그런데 이 책 끄트머리쯤 읽다보니 내가 사는 곳이 사회 경제 역사 자연환경 자원 주변국 역학 따지면 절대 얘들 나라처럼은 못 되겠지만
그래도 그에 비스무레하게 될 방법은 어딘가 있지 않을까, 거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뭔가도 있지 않을까, 아주 막연하게 생각이 드는 쪽으로 바뀌었다. 그것만으로도 책을 읽은 큰 소득 같다. 잘 나가는 인싸 나라들 보다보니 역설적으로 별로 안 좋아하던(아싸인) 나 자신과 내 나라를 좋아할 구실을 찾았달까.
<밑줄 긋기>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
“사고방식과 정체성을 형성하던 시기라 핀란드 학교는 선구자가 되어 횃불을 들고 나라를 비출 교사들을 채용했고, 그런 의미에서 교사들은 그 이후로 줄곧 그 점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스케이닌 교수가 말했다. 초기 핀란드 교육의 본질은 생존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목공부터 바느질까지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 교사들은 ‘민중의 촛불’로 불리며 핀란드가 자립으로 가는 길을 밝게 비추는 역할을 했다.
교사는 여전히 매력적인 직업이다. 핀란드 대학 졸업생의 4분의 1 이상이 교사를 희망 직업 1순위로 꼽는다. 교직 훈련 지원자가 반문맹자인 경우가 없지 않은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핀란드에서는 가장 똑똑한 학생들이 교사에 지원한다.
1970년 이후 내내 모든 핀란드 교사는 정부가 지원하는 석사과정을 수료해야 한다. “모든 핀란드 교사는 연구 기반의 교육을 받습니다. 교수법뿐 아니라 교직을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법도 같이 배웁니다.” 스케이닌 교수가 말했다.
교사들이 핀란드 역사에서 했던 역사적으로 중요한 영웅적 역할에도 불구하고 핀란드의 교육 제도는 교사들에게 석사과정을 의무화하기 전까지는 영국만큼이나 열악했다. 석사과정 의무화는 확실히 핀란드 교육이 성공한 결정적 요소였다.
-평등의 시작은 교육
핀란드인의 학업 성취도가 그렇게 높은 또 한 가지, 실제로 꽤 중요한 이유가 있다. 또다시 등장하는 단어, 평등이다. 핀란드에서 교육 제도는 공교육, 사교육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핀란드에는 사립학교가 없다. 적어도 세계 다른 나라의 사립학교 같은 것은 없다. 또 모든 학교 교육은 정부에서 자금을 지원한다. 즉 핀란드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평등은 칠판 앞에서 시작된다는 것.
-겸손이 지나치네.
몇 년 전 한 설문조사에서 자신을 설명하는 형용사 여덟 개를 선택하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핀란드인은 다음 단어를 골랐다. 정직한, 느린, 믿을 수 있는, 충실한, 직설적인, 내성적인, 시간을 잘 지키는. 자신감 넘치고 공격적인 나라를 설명하는 단어들은 아니지 않은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망상에서 벗어나는 순간 순수함은 끝난다.” ― 존 디디온, 『자존심에 대하여On Self-Respect』 중에서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는 졸음, 평화, 안정감, 고요의 느낌도 당연히 북유럽 사람들이 누리는 안전감과 삶의 질, 더 나아가 행복의 핵심이다. 하지만 안전, 기능, 합의, 중용, 사회적 결속이 삶의 전부는 아니며, 단지 수많은 욕구의 토대일 뿐이다. 스칸디나비아가 사람들이 그 피라미드 모양의 땅에서 찾고 싶어하는 몇 가지—가령 더 남쪽 나라에서 찾는 열정과 재치, 화려함과 삶의 환희—가 약간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지적하는 사람이 내가 처음은 아닐 것이다.
-라곰. 북극곰.
스웨덴인이 서로 ‘유능하게’ 보이려고 애쓰지 않을 때는 ‘라곰lagom’한 인상을 주려고 애쓸 것이다. ‘라곰’은 스웨덴의 또 다른 중요한 좌우명이다. ‘적당한’ ‘합당한’ ‘타당한’ ‘상식적으로 행동하는’ ‘합리적인’이라는 의미다. 확실히 루터교 교리를 떠올리게 하며, ‘라곰’의 어원은 훨씬 더 오래전인 바이킹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해지는 말로는 모닥불 주변에서 뾰족한 잔에 벌꿀술을 나눠 마실 때 이 조심성 많고 배려심 깊은 바이킹들은 너무 많이 마시지 않으려고 주의하면서 잔을 옆 사람에게 건넸다고 한다(그런 뒤 나가서 수도승의 목을 잡아 찢었다). 라게트 옴laget om은 대강 번역하자면 ‘돌리다pass around’라는 뜻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라곰’으로 변했다고 한다. 오늘날에 와서는 집단의 자발적인 절제를 의미하게 됐다.
-참고 서적(내가 깐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는 변명 같다)
내 지침이 그렇게 종합적이지 않다 싶으면(맞는 말이지만, 다 쓰려면 진짜 평생이 걸릴지도 모른다) 스웨덴인의 머릿속 차가운 심해를 항해하는 데 필요한 최적의 자료로 오케 다운의 책 『스웨덴식 사고방식』을 참조하라. 스톡홀름에 있는 북유럽 박물관의 전 관장이자 스톡홀름대학교 민족학과 전 학과장이었던 오케 다운은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북유럽 민족학자로 손꼽히는 사람이다. 그는 스웨덴다움의 ‘권위자’로 불리며 그의 책은 성격 분석의 걸작이다. 그토록 완벽한 글, 아니 한 나라를 그렇게 잔인하게 꼬챙이에 꿰는 모습은 처음 봤다.
다운은 스웨덴인을 불안감으로 고통받는 짝 없는 외기러기 민족이며, 다른 사람들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느니 차라리 계단을 택하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한다. 스웨덴인의 더 재미있는 버릇들로는 시골 가기, 얇은 비스킷 먹기, 소리 낮춰 말하기, 논란이 될 만한 대화 주제 피하기 등이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스웨덴 문화가 ‘질서 정연함’을 정말 중요시한다는 사실입니다.” 다운은 시간 엄수와 철두철미한 준비성은 스웨덴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특징에 들어간다고 덧붙인다. 음, ‘섹시해’.
-미친놈아
나는 벤치에서 구미베어 젤리를 먹고 있는 여성에게 슬그머니 다가갔다. 나에게 하나 주리라 기대하며 젤리 봉지를 쳐다봤다. 나의 강렬한 시선을 눈치 챈 여자는 어색하게 엉덩이를 옆으로 움직였지만 계속 젤리를 먹었다. 계속 쳐다봤다. 아무 반응도 없었다. 마침내 여자가 올려다봤다. 나는 젤리를 하나 먹고 싶은 욕구를 전달하고자 얼굴을 찌푸렸지만 분명 크게 놀란 여자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재빨리 걸어가버렸다. 이것 참!
-엘레베이터를 혼자 타고 싶은 내 상상 속 친구들
스웨덴에서는 자급자족과 자율성이 제일 중요하며, 감정이든 호의든 현금이든 모든 종류의 빚은 어떤 수를 쓰든 피해야 한다. 스웨덴 사람들은 심지어 술 한잔도 빚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행복하려면
진정하고 지속적인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삶의 주인이 되고, 자기 의지로 되고 싶은 사람이 되며, 그렇지 않다면 적절하게 경로를 변경할 수 있어야 한다.
북유럽 국가는 미국이나 영국에서보다 계층 이동성이 훨씬 더 크며, 이 지역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집단주의와 국가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되고 싶은 사람이 되며, 하고 싶은 일을 할 자유가 훨씬 더 많이 주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