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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 - 범죄심리학자 이수정과 프로파일러 김경옥의 프로파일링 노트
이수정.김경옥 지음 / 중앙M&B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20190703 이수정, 김경옥
범죄 심리학자와 프로파일러의 눈을 통해 그들이 관찰했던 다양한 강력 범죄인들이 범죄를 저지르게 된 심리 성격적 원인을 분석한다. 언론에 떠들썩하게 보도 되었던 알만한 범죄자들이 총출동한다. 범죄의 사회 구조적, 환경적 원인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이런 책을 보며 지나치게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린다며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같은 환경 속에서도 범죄 행동 쪽으로 나아가게 되는 사람들을 면면히 살피는 일, 또는 같은 기질의 사람이라도 자기억제를 발휘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 개인적 특성과 구조, 환경의 콜라보로 발생하는 범죄 트리거의 어느 한쪽을 제거나 완화하는 열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프롤로그의 “이번 생은 끝이니까요.”(이생망?)와 에필로그의 ‘그들은 언젠가 반드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는 말이 어쩌면 이 책을 가득 채운 전문적인 심리 성격적 장애들보다도 핵심일 것 같다. 아무런 희망도 기대도 미련도 없는 사람,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려는 충동을 이길 유인이 없다. 그리고 모든 범죄자를 천년 만년 교정 시설에 고립시킬 수도 없다. 그럴 만한 자원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기본권 제한에는 한계가 있고 교화 갱생되어 사회에 복귀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마저, 그들의 자유마저 빼앗을 권리가 (민주사회에서는 자연법으로든 실정법으로든)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이다.
범죄인들이 우리들과 전혀 다른 존재가 아니라고 하는 저자의 말에도 수긍이 되었다. 누구나 피해자 뿐 아니라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촉발 요인이 되는 계기와 상황을 만나면 누구든. 책에 소개된 사례들과 권말 부록의 다양한 성격 장애 충동 장애 특성을 살펴보면 아마 보통 사람들도 몇 가지씩은 어, 나도 이런 데? 하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난 쫌 많던데…) 다만 자신의 기질적 특성과 취약점을 미리 파악하고, 위기 상황에 언제라도 주변에 도움을 청하거나 정신과 병원으로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게 자연스러운 해결책이고 최악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극단적인 사건사고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정신보건의료인들이 매번 말하는 인식 개선이 이런 것일 거다.
뷰티풀마인드나 적과의 동침 같은 영화를 보면 생각한다. 어, 저건 내가 어려서 라이브 실황으로 자주 보던… 이상심리학 교과서에 열거된 대표 임상 사례의 종합백과 버전을 보는 듯한 구성원과 아주 오랜 기간을 살았다. 망상과 환각을 동반하는 조현병, 우울증, 편집장애, 강박장애, 충동 조절 장애, 알코올 중독, 주취폭력, 가정폭력, 자살 시도..
와, 난 글로만 읽어도 그게 뭔지 막 임상 사례가 저절로 그려져! 난 범죄심리학이나 범죄사회학이나 신경정신학 같은 걸 공부했으면 잘했을지도 몰라. 저런 장면들이 유년기 내내, 특히나 수능 앞 둔 몇 주내내, 임용 시험 앞둔 몇 달 내내 벌어져 인생을 조질 뻔한 위기가 몇 번 있었다. 다행히 어려서 방어기제를 일찍?습득한 덕에 극복하고 무리 없이 살아온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기억이 나는데, 밖에서는 아빠가 며칠째 못 자고 완전 맛이 가서 발작하는 걸 할머니가 말리는데, 내 방에서 수학 공부를 하니까, 공부가 너무 잘 됐다. 오, 너무 신기해, 그러고 계속하다보니...이 아이는 훗날 sky 정시, 수시 등에 모두 붙고 맙니다…)
그리고 그렇게 공부로 쌓아올린 온갖 지식과 과외로 모은 푼돈 등을 동원해 BWS(이 책에 나옵니다…)에 빠져 무기력해진 엄마를 법률적, 경제적, 하여간 모든 면에서 탈출 성공시킵니다. 해피엔딩…
하면 좋겠지만, 그 모든 성장 경험은 나에게도 상처를 남겼고, 공감 능력과 타인에 대한 신뢰가 낮고 강박적이고 과몰입의 위험이 있고 불안도가 높은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다행히 좋은 책들 열심히 보며 자주 공중에 둥둥 떠서 나의 이상 징후를 확인한다. 내가 나를 해치고 내 주변 사람을 해칠까 두려웠던 적이 있는데, 나를 지지해주고 나를 보살피고 내가 보살펴야 할 사람들이 있는 현재로서는 안심해도 될 것 같다. (안심해! 안심하라고!)
한편으로는 가장 가까웠던 사람을 가장 끔찍하게 소멸시킨 범죄 소식을 보며 또 슬퍼진다. 저런 괴물 같은 이가! 하는 심정보다는 저런 일을 인간이 또 저지르고 말았어.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또 확인하고 말았어. 하고 무서워진다. 십 몇 년 전 탈출하며 버리고 온 사람도 생각난다. 그때 다른 더 나은 방법이 있었을까. 모든 걸 잃고 혼자 남아 진짜 괴물이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언젠가 우리를 해치러 오진 않을까. 다른 사람을 만나 그냥 우리를 잊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하고 가망 없는 바람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