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박상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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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4
브로콜리너마저-잊어버리고 싶어요
https://youtu.be/S_ttre1GtZc

마지막 소설을 읽다 갑자기 이미상 작가가 너무 궁금해져 검색했다. 등단작 겸 수상작인 이 소설 말고는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유튜브에 시상식 소감 썸네일이 떠서 눌러 보고 아 이렇게 생긴 사람이구나 그거 말곤 얻은게 없다. 다음 작품이 궁금해졌다.
내친 김에 다른 작가들 영상도 봤다. 한심하게 작가 얼평을 한다. 음 주란이 살 빠지니 예뻐졌군. 공평하게 살찌고 나니 외모는 상영이보단 봉곤이 손을 들어주고 싶다. 특히 상영이는 술살 같고 탱탱 부었는데 저렇게 살다간 금방 죽지 싶다. 단명한 천재하지 말고 좀더 건강히 오래 살아남아 많이 써다오. 음. 반말해서 미안해요.

두 작가 빼고는 다 한번씩 읽어봐서 기대치가 높았던 것 같다. 항상 걸작일 순 없으니 괜찮다. 걸작이 아니래도 남들보단 나은 거니 또 괜찮고 계속 쓰고 있으니 또 괜찮고. 잘 읽었습니다.

-박상영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지나간 사랑타령과 투병하는 엄마와의 꼬인 관계를 교차하는데 이야기를 여전히 잘 풀어내는 것 같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 특히 사랑의 대상이 되는 상대에 대한 인물묘사는 늘 상세해서 옆에 후줄근한 운동권 출신 꼰대 게이아저씨가 앉아 있는 걸 보는 기분이었다.

- 김희선 공의 기원
이런 식의 서술이 손보미 전유물이 아닌 걸 이제야 알았다. 누가 먼저냐고 따져볼 필요도 없고 축구공의 역사니 공박물관이니 찾아볼 의욕도 못 느끼고. 내가 축구도 공도 큰 관심이 없어서 별 흥미를 못 느끼고 읽었으려니 하고 싶다.

- 백수린 시간의 궤적
프랑스어학원이 배경인 작가의 소설이 무척 많은 것 같다. 몇 개 보지도 않았는데 그런 기분이다. 만나고 가까워지고 빈정상해서 멀어짐 다시 돌아봄. 이런 것 많이 쓴 작가를 읽은 것 같은데 까 먹음. 어쨌든 백수린은 의외로 나한테 잘 맞고 잘 읽혔다. 의외다 항상.

-이주란 넌 쉽게 말했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이게 뭐야 왜 이렇게 울어. 왜 이렇게 힘들어. 공감하지 못하고 그냥 안쓰럽기만 했는데 방금 제목을 다시 보며 뒤통수를 팍팍팍 맞은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부디 내가 뱉은 모든 말과 글과 행동과 눈빛의 죄악이 그대들에게는 하찮고 하찮은 것이기를 아무런 영향도 불행도 몰고 오지 못할 부스러기도 남기지 않는 완전한 망각이 되기를.

-정영수 우리들
두 편인가 보는데도 나랑 안 맞는다. 나도 모르게 오그라들어. (방금까지 이렇게 안 산다 해놓고 죽어라 그냥) 정은 현수 커플과 화자의 관계는 흥미로웠다. 사실 셋 다 짜증났다. 출판 편집인을 관찰자로 끄집어 들이는 순간 뭔가 완전치 못하구나, 조만간 쫑내겠구나, 했는데 또 이렇게 한국식 막장 관계일 준 짐작을 못해서 또 새롭긴 했다. 딱 거기까지 좋았고. 그 둘 사이에 양아들마냥 끼어 완벽한 듯(척) 한 그들 관계의 목격자이자 보증인 마냥 굴고 즐거워하는 화자의 유아적인 모습도 진저리쳐졌다. 뭐 이런 짜증과 진저리를 유도한 거라면 성공적.

- 김봉곤 데이 포 나이프
제목이 영화 필터링 기법인 걸 처음 알았다. 항상 우리 봉곤님한테는 이것저것 많이 배워. (카멜토라든가...또 욕할 뻔)
자기 뿐 아니라 타인까지 파괴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걸 알았으니, 지금은 더 나아졌으니 다행이야. 뭐 그런 낙관은 좋았다.
손편지든 메일이든 서간문은 이 시대에는 소설 속에만 남아 있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소설 속 등장하는 편지의 일부든, 편지 형식을 빈 칼럼이든, 처음부터 끝까지 화자가 아예 편지를 보내는 식(이인칭?)으로 서술을 진행하든. 편지 보낼 일 없고 받을 일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런데 문득 편지가 엄청 쓰고 싶었다. 이 소설 읽기 전부터 그랬다. 그래서 마구 써서 벌써 몇 천자를 넘어가고 있는데, 부치지는 못할 것 같아. 이렇게 긴 걸 읽으라는 거 자체가 민폐야.
이번 소설 읽으면서 불만이 많아졌다. 이 소설 자체에 대한 불만은 아니고.. 게이들의 성애만 남고 다른 건 다 어디로 가 버린 소설 세상이 불만. 이성애자 섹스 내놔. 왜 이젠 숨만 쉬어도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기분인거지. 날뛰는 미친놈들 다 사라지거나 몸을 사리고 나는 많이 재미없어졌다.
이 책의 두 퀴어 화자를 잠시 여성으로 착각하거나 가정하고 읽어봤는데 그랬다면 이 상을 받았을까 싶었다. (욕 먹고 매장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 여성 화자 또는 남성 화자가 이성을 대상으로 사랑을 갈구하는 감정을 이렇게 날 것으로 그렸으면 그때도 좋게 봐줬을 거야? 또 궁금해. 소설이든 미술이든 대상화 없이 예술이 존재할 수 있는거야? 결국 무얼 표현하든 표현의 소재가 되는 한 우리는 남들을 수단이나 대상으로 삼고 마는 거 아냐?어느 정도까지 허용할지 누가 정하는거야?아니, 한계를 두긴 둬야 하는거야? 진심 궁금해서 그래. 내 개똥 같은 이야기는 이제 다 잊어버리세요. 레드썬.
여튼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지게 하니...잠깐 동안 흠 이제 봉곤제 소설은 그만봐도 되지 않을까? 했지만 아마 새 소설집이 나오면 또 읽을 것 같다.
주석이 생뚱맞았다. 약자를 풀거나 일본어 단어 뜻 소개나(아시바-비계-해 놓으면 또 사람들 사전 찾아볼 걸. 비고츠키 공부나 공사장이라도 뛰어보지 않으면 자꾸 돼지고기에 붙은 그게 생각난다.) 그냥 옆에 바로 괄호쳐주지. 주석으로 다니 겉멋처럼 보여. 이것도 잊어버려, 레드썬!

- 이미상 하긴
두 가지 점에서 놀랐는데, 연령대로 봐선 나랑 비슷한 시기 대학 다녔을 작가가 조금 더 윗세대 운동권의 후일담?이랄까 그런 걸 이런 식으로 그린 게 놀라웠고, 아이를 키워봤대도 대입을 준비할 나이가 되려면 한참 멀었을 텐데 그런 부모의 욕망과 기대치와 어그러짐을 생생하게 그려 놔서 또 놀라웠다.
엄청나게 슬프고 역겨운 소설이고, 부모된 자로서 거울을 보고 환멸을 느낄지 끝내 정당화할지 생각이 많이 들게 하는 소설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보미나래가 내 자식은 아니지만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 전에 내 자식들을 덜 불행하게 할 방법 먼저 궁리하라고. 아니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라 좀.
앞에서도 말했지만 다음 소설이 기대되는 작가다. 요시, 한 명 건졌어.
언어의 오염에 대해 잠시 생각했는데, 신랑감 신부감 사위감 며느리감 다 안 이상한데 딸감에서 잠시 움찔했다. 작가는 분명 그런 나쁜 말 모를거야. 나는 대체 이런 말을 왜 알고 있는 걸까. 잊어 버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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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7-04 2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상영씨가 더 좋았는데, 프로필 사진상으로는요......
현재는 그것과 좀 다른 상태라는 말씀이시지요?

반유행열반인 2019-07-05 01:31   좋아요 0 | URL
저도 김봉곤씨가 찍어준 박상영씨 사진을 보며 같은 생각을 해왔는데... 영상을 보며 속았다, 했어요. 그러다가 아니지, 그간 힘든 일이 많았나보다...하다가 다시 애초에 사진빨이었다로 기우는...(작가가 얼굴이 무슨 상관인데! 이상한 팬덤이로군! 20주년 영상을 보니 제 얼굴이 제일 잘못했네요. )
 
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 - 범죄심리학자 이수정과 프로파일러 김경옥의 프로파일링 노트
이수정.김경옥 지음 / 중앙M&B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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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3 이수정, 김경옥

범죄 심리학자와 프로파일러의 눈을 통해 그들이 관찰했던 다양한 강력 범죄인들이 범죄를 저지르게 된 심리 성격적 원인을 분석한다. 언론에 떠들썩하게 보도 되었던 알만한 범죄자들이 총출동한다. 범죄의 사회 구조적, 환경적 원인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이런 책을 보며 지나치게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린다며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같은 환경 속에서도 범죄 행동 쪽으로 나아가게 되는 사람들을 면면히 살피는 일, 또는 같은 기질의 사람이라도 자기억제를 발휘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 개인적 특성과 구조, 환경의 콜라보로 발생하는 범죄 트리거의 어느 한쪽을 제거나 완화하는 열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프롤로그의 “이번 생은 끝이니까요.”(이생망?)와 에필로그의 ‘그들은 언젠가 반드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는 말이 어쩌면 이 책을 가득 채운 전문적인 심리 성격적 장애들보다도 핵심일 것 같다. 아무런 희망도 기대도 미련도 없는 사람,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려는 충동을 이길 유인이 없다. 그리고 모든 범죄자를 천년 만년 교정 시설에 고립시킬 수도 없다. 그럴 만한 자원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기본권 제한에는 한계가 있고 교화 갱생되어 사회에 복귀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마저, 그들의 자유마저 빼앗을 권리가 (민주사회에서는 자연법으로든 실정법으로든)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이다. 

범죄인들이 우리들과 전혀 다른 존재가 아니라고 하는 저자의 말에도 수긍이 되었다. 누구나 피해자 뿐 아니라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촉발 요인이 되는 계기와 상황을 만나면 누구든. 책에 소개된 사례들과 권말 부록의 다양한 성격 장애 충동 장애 특성을 살펴보면 아마 보통 사람들도 몇 가지씩은 어, 나도 이런 데? 하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난 쫌 많던데…) 다만 자신의 기질적 특성과 취약점을 미리 파악하고, 위기 상황에 언제라도 주변에 도움을 청하거나 정신과 병원으로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게 자연스러운 해결책이고 최악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극단적인 사건사고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정신보건의료인들이 매번 말하는 인식 개선이 이런 것일 거다. 

뷰티풀마인드나 적과의 동침 같은 영화를 보면 생각한다. 어, 저건 내가 어려서 라이브 실황으로 자주 보던… 이상심리학 교과서에 열거된 대표 임상 사례의 종합백과 버전을 보는 듯한 구성원과 아주 오랜 기간을 살았다. 망상과 환각을 동반하는 조현병, 우울증, 편집장애, 강박장애, 충동 조절 장애, 알코올 중독, 주취폭력, 가정폭력, 자살 시도..
와, 난 글로만 읽어도 그게 뭔지 막 임상 사례가 저절로 그려져! 난 범죄심리학이나 범죄사회학이나 신경정신학 같은 걸 공부했으면 잘했을지도 몰라. 저런 장면들이 유년기 내내, 특히나 수능 앞 둔 몇 주내내, 임용 시험 앞둔 몇 달 내내 벌어져 인생을 조질 뻔한 위기가 몇 번 있었다. 다행히 어려서 방어기제를 일찍?습득한 덕에 극복하고 무리 없이 살아온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기억이 나는데, 밖에서는 아빠가 며칠째 못 자고 완전 맛이 가서 발작하는 걸 할머니가 말리는데, 내 방에서 수학 공부를 하니까, 공부가 너무 잘 됐다. 오, 너무 신기해, 그러고 계속하다보니...이 아이는 훗날 sky 정시, 수시 등에 모두 붙고 맙니다…) 
그리고 그렇게 공부로 쌓아올린 온갖 지식과 과외로 모은 푼돈 등을 동원해 BWS(이 책에 나옵니다…)에 빠져 무기력해진 엄마를 법률적, 경제적, 하여간 모든 면에서 탈출 성공시킵니다. 해피엔딩…
하면 좋겠지만, 그 모든 성장 경험은 나에게도 상처를 남겼고, 공감 능력과 타인에 대한 신뢰가 낮고 강박적이고 과몰입의 위험이 있고 불안도가 높은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다행히 좋은 책들 열심히 보며 자주 공중에 둥둥 떠서 나의 이상 징후를 확인한다. 내가 나를 해치고 내 주변 사람을 해칠까 두려웠던 적이 있는데, 나를 지지해주고 나를 보살피고 내가 보살펴야 할 사람들이 있는 현재로서는 안심해도 될 것 같다. (안심해! 안심하라고!)
한편으로는 가장 가까웠던 사람을 가장 끔찍하게 소멸시킨 범죄 소식을 보며 또 슬퍼진다. 저런 괴물 같은 이가! 하는 심정보다는 저런 일을 인간이 또 저지르고 말았어.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또 확인하고 말았어. 하고 무서워진다. 십 몇 년 전 탈출하며 버리고 온 사람도 생각난다. 그때 다른 더 나은 방법이 있었을까. 모든 걸 잃고 혼자 남아 진짜 괴물이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언젠가 우리를 해치러 오진 않을까. 다른 사람을 만나 그냥 우리를 잊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하고 가망 없는 바람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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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7-03 1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을 멋지게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춤당한 삶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멋모르는 제가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남들은 가지지 못한 섬세한 눈을 지니신 것은 사실이시니까, 딱 그 사실 자체만큼은 부러워해도 되려나요? 열반인님 멋쟁이.

반유행열반인 2019-07-03 11:36   좋아요 0 | URL
멋진 거 하나도 없는 게 다 저자가 한 소리에 맞아맞아만 한 거에요. 남의 불행과 오점과 비뚤어짐을 부러워 마세요.ㅎㅎ세상은 덜 굴곡지고 더 밝은 사람들 덕에 안 망하고 지탱되는 것 같아요. 저의 역할은 ‘아 난 참 다행이야’ 하는 안도와 ‘과연 저런 놈들이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내는 군...우리 주위에도...’하고 경각심을 주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좀 더 자존감이 높아지고 더 밝은 사람이 되면 갱생 성공 사례로도 쓸모가 있겠지요.
 

https://www.aladin.co.kr/events/wevent.aspx?EventId=193426&custno=1940574
사긴 2천 권을 샀다는 데 읽은 건...
저 중에 대부분이 스티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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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카렐 차페크 지음, 김희숙 옮김 / 모비딕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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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1 카렐 차페크
체코어 노동, 부역에서 로봇이란 말이 나왔다는 어원 설명은 자주 봤다. 우연히 로봇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 체코 작가 차페크의 희곡을 읽게 되었다. 
로숨 박사와 그 아들은 인간을 닮았지만 노동에 방해되는 인간의 쓰잘데 없는 특성을 제거한 새로운 생명체 로봇을 창조하고, 대량 생산 공장을 갖춘다. 그들에 이어 도민은 인류를 비참한 노동에서 해방시키겠다는 꿈으로 섬의 공장에서 끊임 없이 로봇을 만들고 세계로 퍼뜨려 나간다. 도민과 그를 돕는 무리들은 로봇을 해방시킬 목적으로 섬에 도착한 인권단체 회원 헬레나의 아름다움에 반한다. 헬레나는 도민과 결혼한다. (레스터가 쓴 헬렌 올로이의 1930년대 헬레나보다 1920년대 헬레나가 원조라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
헬레나가 섬에 온지 십 년 , 세계는 그간 로봇의 노조 결성, 로봇이 동원된 인간의 전쟁, 로봇의 반란을 겪는다. 섬의 남자들은 헬레나에게 그런 문제들을 감추고 그녀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감상하는 데만 바쁘다. 로봇 제조의 핵심 문건을 넘기냐 마냐 문제를 의논할 때도 그녀의 의견은 무시한다. 그러나 정작 로봇에게 인간다움,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특성을 (헬레나에게 반해 그녀 의견을 거절 못할) 갈 박사를 통해 로봇에게 심은 것은 그녀였다. 또한 핵심 문건을 태워 로봇과 협상 여지를 없애고 로봇의 재생산을 불가능하게 만든 것도 그녀다. 이런 부분은 트로이 전쟁을 헬레나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핑계 좋게) 그린 서사시의 오마주 처럼 보이지만, 헬레나의 바람대로 실험이 진행된 로봇은 극소수였고, 인간에게 노동을 착취당하던 로봇들의 내부에서 무언가가 생겨났다는 대사를 통해 결국 인간들이 자기들 편한대로 이용할 수단으로서 로봇을 만들어낼 때부터 로봇의 반란은 일어날 수 밖에 없던 일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아, 그런 와중에도 유니버설 로봇이 아니라 인종별 로봇을 만들어 만국의 로봇이 단결하지 못하게 하려는 인간들의 아이디어란...성경에 언어를 갈라 민족들을 흩어뜨려 바벨탑을 못 쌓게 한 것도 생각나고, 노조 분쇄하려고 이간질하고 회유하고 어용노조 만드는 자본가의 계략도 떠오르고, 1920년대 막 산업화가 무르익던 시절 과학 기술 발전과 산업의 고도화와 자본의 발전이 어떤 식으로 흐르게 될지 작가가 너무도 통찰력 있게 파악하고 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자 로봇은 왜 필요한데? 하는 물음과 (거기에 내가 기대하는 대답은 나오지 않았지만...변태 새끼)헬레나를 대하는 태도는 아마도 그 당시 프로토 타입이겠지만 지금 관점으로는 그런 모습을 부각시켜 놓은 게 의도적인게 아닐까 하고 생각할 수도. (음 이건 너무 나갔다...그래도 성역할에 대한 인간 남자들의 관점은 꽤 거슬리고 눈에 띈다. )
인간은 로봇을 착취하면서 일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 부실한 인간보다 우리가 못한 게 뭔데!(로봇판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 하는 각성을 한 로봇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생각이 담긴 도서관 책을 읽고)  강한 자신들이 인간을 지배하고 싶다, 힘으로 때려 부숴야지, 하는 못된 것을 배워 실제로 인간을 거의 다 죽여버린다. 
로봇 노동 시대에도 여전히 벽돌을 쌓으며 일하던 노인 알퀴스트를 로봇을은 일하는 자는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다, 하면서 유일하게 살려둔다. 그에게 불타버린 제조 비법을 알아내 로봇의 재생산, 그들 말로 생명 탄생의 비밀을 알아내라고 부추긴다. 일하던 손을 자랑스러워 하던 알퀴스트는 로봇 다몬을 실험체로 해부하다 포기하며 피로 물든 자기 손을 저주한다. 그리고 빡대가리 문과생...아, 아니 정말 번역에서 서툰 이과생 운운하며 자기가 생명 탄생의 비밀을 알아내지 못할 것을 진즉에 알고 자책하다 기적을 바라다 오락가락 하며 인간을 그리워한다. 
때마침 갈 박사 생전 남겨둔 최신 로봇 헬레나(CEO 부인과 동명의 아름다운 로봇)와 로봇 프리무스가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서로를 대신해 자기 희생을 감수하려는 모습을 본 알퀴스트는 태초의 아담과 이브를 보듯 희망을 느끼며 생명의 불멸을 확신한다. 알퀴스트가 다몬 해부하려다 좌절하고 곧바로 더 인간적인 헬레나랑 프리무스를 해부하겠다고 나서는 건 이거 미친 놈인가 싶었다. ㅋㅋ

모든 인간 닮은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차페크도 자기 소설을 두고 작가들이 토론한 것에 대해 반론을 통해 그 점을 밝혔다. 블레이드 러너도 그렇고 로봇 이야기는 아니지만 인터스텔라도 그렇고 결국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은 사랑 탓, 사랑을 잃은 인간은 더 이상 인간으로 남기 힘들다. 인간 같지 않은 무슨 짓이든 한다. 
그러면 인간 아닌 존재가 사랑을 알게 되면 우리는 그들을 인류로 품을 수 있을까? 헬렌 올로이의 사랑을 부정하지 않고 안을 수 있나? 루카의 사랑에 그의 전원을 끊지 않고 화답할 수 있나? 알파고가 세돌 형님한테 바둑 잘 두는 당신에게 반했어 하면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그 상황을 대할까? 
에이, 인간끼리 빚어내는 갑작스러운 사랑에도 받아들일 준비를 하지 못하고 혼란을 겪는 마당에. 멀었다. 그냥 상상과 소설과 픽션으로만 막연하게 남겨둘 뿐이다. 어제 홀로그램 기술 검색하다 홀로그래피랑 결혼한 남자(다키마쿠라에 이어 다들 경쟁적으로 미개척 신분야 도전하는 듯)란 영상 제목보며(도저히 클릭할 자신이 없어) 절레절레 한 나도 멀었다. 마음으로 빌어줘야지. 예쁜 사랑하세요. 
 연극으로 시연되는 로봇도 정말 보고 싶다. 소재 자체가 당시로도 파격적이어서 무대 장치나 로봇 연기에 여러 실험적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아직도 실현된 미래가 아니니까 지금도 재미있는 무대가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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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 봄밤 Spring Night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55
권여선 지음, 전승희 옮김, 데이비드 윌리엄 홍 감수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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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30 권여선
류마티즘 환자와 알코올중독 환자의 인생 마지막 사랑 이야기. 톨스토이 소설을 읽어주며 분모와 분자를 재며 1에 가까운 사람일까 아닐까 하는 부분, 분자를 늘리기 위해 술을 마시러 외출하는 영경을 보내준다는 수환의 말이 슬펐다. 나이 들고, 아프고, 죽음을 생각하고, 절망한 상태에서도 사랑이 피어날 수 있다는 상상은 정말 소설적인 것 같지만, 뭐 있을 수도 있지. 그 사랑이 마지막을 버티고 빛나게 해준다면 아름답게 그려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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