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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20190722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1928년생. 밀란쿤데라보다 한 살 누나인 우리 외할머니. 경기도 광주군 남한산성면 하번천리에 혼자 밥해먹고 사신다. 자식이 일곱이면 뭐해. 구십 넘은 노모 모시려드는 이 하나 없는 걸. 그래도 근처 사는 외삼촌들 돌아가며 수시로 들르고 서울 사는 우리 엄마는 가끔 다녀온다.
엄마가 뵈러 가면 할머니는 일정 때, 전쟁 때 겪은 일을 밤이 깊도록 이야기한다. 나도 가 뵌지 오래됐지만 할머니가 옛날 이야기 풀어 놓던 게 생각난다. 우라질- 거리며 고생한 일들 서러운 날들 이야기하는 할머니는 듣는 사람 귀기울이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시골에 다녀온 엄마는 불쌍해. 나 곧 죽을 거 같아 라고 하셔. 하며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를 나한테 다시 전한다.
전쟁통에 미군 놈들이 마을에 들어오면, 여자들은 홍역 앓아 누운 애들도 다 내팽개치고 뒷산 방공호로 숨었대. 그놈들이 그렇게 여자들을 건드리고 다녀서…
그 얘기 좀 그만할 수 없어!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이 얘긴 안 했었는데.
했어! 열 번도 넘게 했어. 뭐 좋은 얘기라고 자꾸해.
천하의 개썅불효녀인 나는 그렇게 엄마의 입을 막았었다. 그거 들어주는게 뭐 힘들다고. 사실 조금 힘들긴 한데 그걸 못참고.
총알이 빗발치는 길을 건너고 나면 나잘나잘 걸레짝이 된 아기 업은 포대기, 일가족이 숨은 방공호에 포탄이 떨어져 다들 숯처럼 까맣게 타버린 걸 보고도 덤덤했다는 이야기, 미국 흑인 병사에게 강간을 당하고 미쳐버린 여자, 미숫가루 꾸러미 같은 걸 하나씩 들고 남하한 중공군 소년병사들은 오히려 착했어, 민간인들 해치지도 않고 농가의 소라도 잡으면 소값으로 인민화폐 같은 거라도 쥐어주고 가고 또 그것때문에 나중에 큰일 칠까 무서워서 숨겨놓고…
내 어머니 이야기 보면 작가는 자기 엄마가 들려주는 할머니 이야기 듣고 만화 그려서 세상에 없어지면 안 되는 책이라는 소리까지 들었잖아? 그런데도 내 엄마를 통해 듣는 할머니 목소리를 외면해 버린 나는 잔인하고 멍청한 놈이 아닐까 싶었다.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 어떤 내용일까 내내 궁금했는데 결국 펼쳐 보게 되었다. 읽기 시작하면서 멍청하고 잔인한 나는 ‘아, 왜 재미난 책 잔뜩 사놓고 이런 걸…’ 하고 있었다. 자주 책을 덮었다. 여태까지 읽었던 책 중에 가장 많은 죽음의 순간을 담지 않았을까 싶다.
벨라루스 출신인 작가는 소련군 또는 빨치산 부대에 속해 싸우거나 그들의 전쟁을 지원했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이 책에 담았다. 아주 가끔 작가의 탄식에 가까운 나레이션이 나오고, 책의 대부분은 인터뷰를 통해 수집한 참전 여성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이 보고 겪은 전쟁이 날 것 그대로 담겨있다.
소련이라는 조국을 믿고, 공산주의를 믿고, 그 땅을 목숨바쳐 지켜야 한다는 마음, 사랑하는 이들을 죽인 파시스트에게 복수하겠다는 마음으로 그들은 전쟁터로 나갔다.
나의 죽음, 내 소중한 이의 죽음, 같은 편 군인과 적군과 민간인의 죽음, 말과 닭과 개의 죽음, 숲과 마을과 집의 죽음, 피와 상처, 시신, 불타고 남은 게 거의 없는 폐허, 그들이 보고 겪은 시간과 공간이 그야말로 종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와중에도 수를 놓고, 폐허 속에 구두를 사고, 예쁜 다리가 다치거나 진흙탕에 추한 시체로 엎어져 죽을 것을 두려워하고, 전우와 부상병과 사랑에 빠지고, 증오하던 독일군에게조차 빵을 건네고. 인간성과 여성성을 잃지 않고 많은 것을 기억하여 목소리로 전해준 그들의 이야기는 그것 자체로 아름다웠다. 남의 고통과 슬픔과 죽음을 아름다웠다는 한마디로 줄여버리는게 미안하고 죄스럽지만 그 이상으로 표현할 능력이 내게 없다.
소련군은 독일군을 이겼다. 겉으로는 승리했지만 전쟁 이후 참전 여성들은 오랜 시간 고통 받았다. 전쟁에 나가 목숨 걸고 싸운 그들을 남성 군인들과 문란하게 놀아난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포로가 되느니 자살하라는 스탈린의 명령 때문에 포로로 잡혔다 살아 나온 사람들은 반역자로 몰려 전쟁 이후 긴 시간 수용소 생활을 했다. 모두가 그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았고 그들의 고통에 침묵했다. 참전 남성이 겪은 고통도 있겠지만 여성이 겪은 고통은 이중삼중으로 심했다. 몸과 마음이 병들고 가족을 잃고 혼인상대가 될 수 없다는 소리를 듣고 아픈 아이를 낳자 전쟁터에 나가 사람 죽인 비정상인 여자가 정상인 아이를 낳을 수 있겠냐는 폭언까지 듣는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잔인해지는 것일까. 전쟁에 대한 증오와 공포를 왜 더 큰 고통을 겪은 여성들에게 쏟아 놓았을까.
다른 이의 지난 시간에 귀기울이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수많은 죽음과 파괴와 나는 쟤네는 인간이 맞는 걸까 그런데 왜 이럴까 싶은 일들을 겪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게 녹록치는 않은 일 같다. 그 이야기를 입에 올리는 마음은 어떻겠어. 그들을 찾아간 작가를 거부한 이들도 있었지만 많은 이들이 기뻐했다. 누군가 이야기를 들어주고 글로 써서 세상에 알린다는 것에 고마워했다.
가장 가까운 이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말하려는 사람의 입을 막지 않기.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기. 내 말 한 마디 하기 전에 남의 말을 두 마디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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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스코이 운하를 따라 해군모자들이 둥둥 떠내려오더군. 열을 지어 줄줄이. 크고 새빨간 피얼룩들과 모자들이 한데 엉겨 물결 속에서 일렁이는데…… 나뭇조각 같은 것들도 떠내려오고…… 그건 우리 병사들이 네바 강 어딘가에 버려졌다는 의미였지…… 꽤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물렀는데, 그동안 모자들이 계속 떠내려왔어, 끝도 없이. 처음에 모자 수를 세어보다가 그만뒀어. 그 자리를 떠날 수도 그렇다고 계속 보고 있을 수도 없었지. 모르스코이 운하가 우리 전우들의 무덤이 된 거야……
들판을 따라 걷는데, 세상에, 들에 곡식이 얼마나 탐스럽게 여물었던지! 우리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호밀이 발에 밟힐 정도였으니까요. 그해는 전에 없이 농사가 잘돼서 호밀이 높게 높게 죽죽 뻗어 있었어요. 풀잎은 푸르고 태양은 밝게 빛났죠. 하지만 천지에 시신들이 버려져 있고 사방이 피였어요…… 살육당한 사람들과 동물들. 나무들은 시커멓게 타버리고…… 기차역들은 다 부서지고…… 검게 그을린 기차칸마다 까맣게 타버린 주검들이 걸려 있었죠……
전쟁터에서도 빨래를 하고, 죽을 끓이고, 빵을 굽고, 부엌 식기들을 씻고, 말을 돌보고, 자동차를 수리하고, 관을 짜고, 우편물을 배달하고, 군화에 밑창을 대고, 담배를 들여온다. 어쩌면 오히려 전쟁터에 더 많은 일상의 삶이 있는지도 모른다. 하찮고 사소한 일들 역시. “이렇게 말하면 이상할 거예요. 그렇죠? 전쟁터야말로 우리 여자들이 할 일이 산더미같이 많다면 말이에요.” 위생병 알렉산드라 이오시포브나 미슈티나는 이렇게 회상한다. 군대가 앞서가면 ‘제2전선’이 그 뒤를 쫓아갔다. 세탁부, 요리사, 기계수리공, 우체부……
풀밭에 아냐 카부로바가 누워 있었어…… 아냐는 우리 통신병이었어. 심장에 총을 맞고 죽어가고 있었지. 그런데 마침 그때 우리 머리 위로 학떼가 ‘V’자 모양을 그리며 날아가는 거야. 모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지. 아냐도 눈을 떴어. 하늘을 보며 그러더라고. ‘얘들아, 정말 아쉽구나.’ 그리고 잠깐 말이 없다가 우리에게 웃음을 지어 보이며 ‘나, 정말 죽는 거야?’라고 물었어. 바로 그 순간 저만치서 우리 우체부, 클라바가 달려오며 소리치는 거야. ‘죽지 마! 죽으면 안 돼! 집에서 편지가 왔단 말이야……’ 아냐는 눈을 감지 않았어. 기다렸지……
—‘남자 머리’처럼 이발해.
—하지만 아가씨인데요.
—아니지. 아가씨가 아니라 군인이지. 아가씨는 전쟁이 끝나고 다시 하면 돼.
나는 전쟁 내내 다리를 다칠까봐 겁이 났어. 나는 다리가 예뻤거든. 남자들이야 다리가 어찌되든 무슨 상관이겠어? 남자들은 설사 다리를 잃는다 해도 그렇게 무서운 일이 아니었지.
당신은 작가잖아. 직접 한번 생각해봐. 뭔가 아름다운 말. 들끓는 이도 더러운 진흙탕도 없고 구토물도 없는…… 보드카 냄새도 피냄새도 없는 그런 말을…… 우리 삶처럼 끔찍한 그런 거 말고……”
모르겠어, 왜 화요일이었다는 것만 기억에 또렷한지. 화요일…… 며칠이었는지, 몇 월이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안 나. 하지만 분명 화요일이었어. 우연히 창밖을 봤어. 세상에, 우리집 맞은편 벤치에 소년과 소녀가 앉아서 키스를 하고 있더라고. 끔찍한 살육과 총살이 난무하는 세상 한가운데서! 그 아이들이 키스를 하고 있더라니까. 나는 그 평화로운 광경에 충격을 받았어……
소년과 소녀가 잠깐 몸을 일으키는가 싶더니 이내 고꾸라지는 모습만 볼 수 있었어. 둘은 함께 쓰러졌어.
그렇게 그 일이 있고……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다시 하루가 지나는데…… 그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거야. 알아야만 했어. 그 아이들은 왜 집이 아닌 거리에서 입을 맞췄을까? 왜? 그런 식으로 죽고 싶었던 걸까…… 아이들은 언젠간 게토에서 죽을 운명이란 걸 알았던 거야. 그래서 다른 식으로 죽고 싶었던 거고. 그건 사랑이었어. 사랑이 아니면 뭐겠어? 다른 이유는 있을 수 없어…… 사랑밖엔.
전쟁이 무슨 색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어. 전쟁은 대지의 색이라고. 우리 공병대에게는…… 까맣고 노랗고 황토 빛깔인 흙의 색이라고......
조국이 우리를 어떻게 맞아줬을 것 같아? 통곡하지 않고는 이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 40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뺨이 화끈거려. 남자들은 나 몰라라 입을 다물었고, 여자들은…… 여자들은 우리에게 소리소리 질렀어. ‘너희들이 거기서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아! 젊은 몸뚱이로 살살 꼬리나 치고…… 우리 남편들한테 말이지. 이 더러운 전선의…… 군대의 암캐들아……’ 우리는 정말 온갖 말로 모욕을 당했어……
남편이 우리 모녀를 보더니…… 잠깐 있다 가버렸어. ‘정상인 여자라면 과연 전쟁터에 나갈 수 있을까? 총 쏘기를 배우고? 그래서 당신이 정상아를 낳을 수 없는 거다’라고 나를 비난하며 가버렸지. 나는 남편을 위해서도 기도해……
나는 그저 눈물만 흘려, 말은 못하고…… 나 스스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확신이 안 서는 걸 어떡해? 믿게 할 자신이 없는 걸…… 사람들은 그저 편안하게 살기를 원하지. 고통스러운 이야기 따위는 들으려고 하지 않아……
어느 마을에 갔다가 한 노인의 장례식을 봤어. 노인은 밤에 목숨을 잃었어. 밭에 씨를 뿌리다가 죽임을 당한 거야. 그런데 별짓을 다해도 노인의 손가락이 펴지질 않는 거야. 씨앗을 어찌나 꼭 쥐고 있던지. 할 수 없이 씨앗을 손에 쥔 채로 땅에 묻었지……
잠시 후 어머니가 고개를 들더니 당신 아들만 죽임을 당한 게 아니라는 걸 아셨어. 수많은 젊은 병사들이 죽어 누워 있는 것을 보신 거지. 그러자 이번에는 어머니가 그 죽은 병사들을 위해 또 서럽게 우시는 거야. 자기 아들도 아닌 그 젊은이들을 위해서 말이야. ‘아이고, 내 새끼들! 너희 어머니들은 너희들을 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땅에 묻히는 것도 모르는데! 아이고, 땅속이 얼마나 춥고 차가운데. 이런 엄동설한에 이게 무슨 일일꼬. 내가 너희 어머니들을 대신해서 울어주마. 너희 전부를 가엾게 여겨주마. 내 새끼들아…… 불쌍한 내 새끼들아……’
우리가 독일 땅을 처음 밟은 날, 대위 한 명이 죽었어. 우리가 알기로는, 가족이 아무도 없는 사람이었지. 독일군 점령 치하에서 온 가족이 목숨을 잃었거든. 대위는 아주 용맹했어. 그렇게나 기다렸는데…… 대위는 자기가 먼저 죽을 걸 걱정했어. 놈들 땅에 들어가 놈들의 불행과 고통을 보기도 전에 죽을까봐. 놈들이 울부짖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걸 보기도 전에…… 폐허가 되어 돌덩이만 남은 놈들의 집터를 보기도 전에…… 대위는 아무 이유도 없이 죽었어. 부상을 당한 것도 아니고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죽었다니까. 독일 땅을 밟고 그 땅을 보고는 그대로 세상을 뜬 거야.
나는 지금도 가끔 그 대위를 떠올려. ‘그 대위는 왜 죽었을까?’”
어느 날 누가 우리집에 장난감 전투기와 플라스틱 총을 가져왔더라고. 바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지. 그 자리에서 바로!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은 선물이거든…… 위대한 선물! 생명은 우리 인간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심장 하나는 증오를 위해 있고 다른 하나는 사랑을 위해 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사람은 심장이 하나밖에 없으니까. 나는 늘 어떻게 하면 내 심장을 구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