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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평점 :
-20190920 앤드루 포터
16일 만에 아이패드미니가 돌아왔다. 수리가 썩 잘 되진 않았는지 저혼자 터치가 눌리고 난리지만 일단 그냥 쓴다.
4인치 폰으로 전자책을 보니 눈에 잘 안 들어왔다. 그래도 딱히 할 일이 없으니 계속 읽었다. 큰 화면으로 돌아오니 좋다. 부품이 너무 입고가 늦어져 그냥 확 새 거 살 걸 보름 내내 그랬는데 막상 고친 기계 받고 나니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수리비 13만원이나 들었으니 3년 이상 더 써야겠다.
박상우 소설가의 에세이? 훈수집? 같은 걸 읽고 있는데 추천 도서 30권 목록에 이 책이 있어서 반가웠다. 이야 나 이거 읽고 있는데. 여기 중에 7권이나 읽었네. 안 읽고 가지고 있는 건 8권있네. 하하호호 마저 읽어야지.
무슨 책인지도 모르고 제목에 끌려 대출 예약 걸어놨는데 받아보니 소설이었다. 실린 소설 전부 1인칭 나의 시점으로 쓰여있다. 가족을 관찰하는 나의 이야기가 많다.
가족이 아니라도 연인, 부모나 형제자매의 연인, 이웃 등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사람에 대해 화자가 회고하는 식이다. 감출 것, 지금 보여줄 것, 나중에 보여줄 것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호기심과 긴장감을 잘 유지했다. 인물을 묘사하면서 관찰되고 있는 사람의 감정과 그것을 바라보는 화자의 소회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어떤 느낌과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고, 그러면 잘 쓴 소설이지. 아무 생각 없이 봤는데 괜찮았다.
마지막 판권에 편집인 명단에서 김봉곤 보고 혼자 반가워서 오오 하이루 곤이 열일 하는 사회인 소설도 잘 쓰고 계시죠 이 책이 문학동네 거였군 새삼 그랬다. 아 마지막 소설에 비문 있어요. 편집인들 뭐한 거에요. 떼끼.
-구멍
어린 시절 구멍으로 사라졌다 죽어버린 이웃 친구에 대한 회상이다. 기억나는 것들을 하나씩 풀어나가다 마지막 고백 같은 꿈이야기로 덮어둔 일들과 죄책감 같은 것을 슬쩍 비춘다. 짧은 이야기라도 구성하기 나름이다.
- 코요테
성공하지 못한 영화인은 어딜가나 낭인 꼴을 못 면하네 싶다. 변변찮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연인, 떠나는 아버지. 왜 어떤 부모들은 애들한테 그런 모습을 보여주나 싶다. 코요테가 바깥에서 우는 소리는 미국 애들한테는 익숙한가 본데 한쿡 사는 나는 겪어볼 수도 상상하기도 어렵다. 예전 같으면 동네 개 하나가 아우-하고 울면 다른 애들도 아우-우우우-하고 울었지. 집합주택 살면 그런 경험조차 어렵다. 그냥 남의 집에서 밤늦게 개가 짖거나 밥그릇 달각거리는 소리가 천장에서 들리면 아있ㅇ어리머아리백파아ㅓㄹ 하면서 화만 내지. 밤에 밖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를 생각한다. 가을밤의 귀뚜라미. 여름밤의 매미. 대형폐기물 수거하러 올 때 나는 큰 소음. 지금은 바깥에서 사다리차 오르내리는 소음, 인테리어하느라 무지막지하게 때려부수는 소리, 위층의 발소리 쿵쿵만 들린다.
-아술
교환학생인 다른 나라 청년 아술을 집에 데리고 있으면서 아내와 나 사이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아술은 동성애인이 있었고, 그와 싸운 뒤 침울해해서 아내가 아술을 위해 집에서 파티를 열어준다. 집은 난장판이 되고, 나는 무슨 충동인지 전화 걸어온 아술의 구 애인 라몬에게 파티 중이라고 오라고 한다. 그 결과는...피투성이. 머리 깨진 애 이미지는 뒤에 다른 소설에도 또 나온다.
-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이루어질 수 없었던 노교수 로버트와의 사랑과, 현재 배우자인 콜린과의 사이를 넘나들며 담담하게 회고하는 형식이다. 제목이 왠지 의미심장한데 읽고 나서도 왜 이런 제목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로버트와 내가 이어진 건 물리학 수업에서 주어진 터무니 없이 어려운 공식을 푸는 시험 이후였다. 그러니 물리학에 대한 이야기 일 수도 있고. 로버트가 빛 콜린이 물질이라 그러면 너무 유치하고. 시간과 감정에 관한 이론 이래 버리면 너무 노골적이고. 사랑에 관한 이론 이러면 때려버리고 싶으니 역시 잘 지은 제목 같긴 하다. 나한테 영업 성공했으니.
읽으면서 이상하게 먹먹했다. 닿을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한 마음. 신체 접촉 없이 그저 함께해서 좋은 시간. 서신 교환. 멀리 떨어진 곳에서 듣는 부고. 인정하거나 발설할 수 없는 감정. 나를 내가 되게 하는 사람은 곁에서 멀고 내가 함께 지내야 할 사람은 나를 종속물 내지 그저 거기 놓인 것으로 만드는 현실. 거기서 생기는 간극.
마지막에 과거의 어느 밤 홀로 있는 장면을 풀어 놓으며 마무리하는게 진짜 여운이 남았다. 미래가 될 지금의 상황을 그대로 압축해 놓은 것 같았다. 헐벗고 남의 이불 속에 홀로 누워 오지 않을 누구를 기다리다 체념하는 그 마음을 왜 알 것 같지.
- 강가의 개
김유정 만무방이 나도 모르게 떠올랐다. 읽은 지 이십년은 넘어서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노름꾼에 개차반인 형이 농사는 안 짓고 산 돌아다니며 송이 따먹던 부분은 생각난다. 그 비슷한 형이 나온다. 그 형 때문에 동생은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인가 하는 내용이다.
제목은 형 취미가 쓰레기장에 죽은 채 유기된 개 시체를 찾으러 다니는 데서 따왔다. 형 자체도 강가에 사는 개새끼이기도 하고 죽어 버려진 개의 모습이 처량하기도 하다. 나중에 동생이 개를 찾아 다니는 모습으로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는 데에도 등장한다.
형이 어느 밤 파티에서 술에 꽐라된 여자 선배를 건드리는데(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지만 명백하게 강간 우리법에서는 준강간이라고 부르는 상황인 걸 짐작할 수 있다.), 아무 일 없었고 여선배도 고소를 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그 시절 잠깐 소문이 돌다 잊혀졌다. 그 날 밤의 이야기를 반복하면서도 바로 접근하지 않는다. 형은 여전히 잘 살지만 화자인 동생은 그 일에 대한 생각을 내내 잊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선배의 안위를 생각하고 남몰래 그 선배를 관찰하기도 한다.
후반부에 형이 남의 차 창문 박살낸 걸(형은 자기가 안 그랬다고 끝까지 발뺌하고 유리값은 엄마가 물어주고) 동생이 치우는 일화가 잠시 나오는데(이 장면도 형과 동생의 유년 내내 관계와 상황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차 주인이 건넨 말로 소설이 마무리 된다.
“얘야, 이 일은 너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란다.”
역설적으로 파티에서 선배가 강간 당한 일에 대해 알면서도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자신에 대한 화자의 죄책감이 몰려오는 말이었다.
형이 준 오토바이는 괴롭힘에 대한 일종의 보상인가 싶은데, 그마저도 동생의 다리를 분지르고 다시는 타지 않게 만든다. 나중에 비슷한 사고로 동생의 대학 동기가 죽기도 하는데, 그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형은 끝까지 도움이 안 돼 심지어 나를 죽일 뻔 했어 하는 느낌도 든다. 그런 형에 대한 불만과 불편한 심기가 직접 발화되지는 않지만 동생의 행동으로 잘 드러난다.
야이씨 자꾸 이렇게 잘 쓸래. 할 말 많게.
-외출
전통 농경생활하며 폐쇄적으로 사는 아미시 공동체 아이들과 화자가 접촉한 경험담을 풀어나가는 형식이다. 공동체 해체와 그 이후를 목격한 자가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해체의 징후는 그곳에 속한 아이들의 밤나들이에서 드러난다. 아미시 아이들은 마차를 타고 식당에 나와 바깥 세상처럼 입고, 먹고, 린치 당하고, 싸움하며 버티고, 데이트 비슷한 걸 하다 마을로 돌아간다. 화자는 친구 태너와 함께 그들이 나와 돌아다니는 식당과 케이마트 근처를 얼쩡대며 아미시 아이들과 접촉한다. 태너와 화자는 잘 나가는 애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열외의 존재고, 그래서 자신들보다 더 열 밖에 있는 아미시 아이들과 어울려 다닌다.
아미시의 몰락과 해체를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아이 둘이 화자의 주요 관심이자 관찰 대상이다.
화자와 오래 데이트를 하면서도 이 도시를 떠날 궁리만 하다 결국 떠나간 레이철. 그 아이와 어둠 속에 십 수 미터 강 위에 놓인 널빤지 위를 질주하는 이미지가 좋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 무모함에 뒤늦게 아찔해 하는데. 나는 이유를 모르겠다. 오히려 그럴 수 있던 시절이 더 좋게 기억될 것 같은데. 현실이 안정되고 가장 만족스러운 순간이면 그렇게 여길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딱히 그래 보이지도 않는다.
아이작 킹. 거대한 덩치로 조용히 음악만 즐기던 남자. 외부 아이들의 가혹한 린치에도 끝까지 맞서다가 가장 오래 버틴 마지막 싸움에서 각목에 맞아 뇌혈전으로 죽는다. 도데의 스강씨네 암염소가 왠지 생각났다. 버티고 버티다 젊은이들이 다 빠져나가며 결국 쇠퇴한 아미시 공동체를 왠지 너무 노골적으로 상징하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가 뉴규먐댸료오-긔겨아뉜데에- 라고 하면 할 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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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킨
공공장소에서 게이의 이성 동반자 행세하는 사람을 비어드, 레즈비언의 같은 역할하는 사람을 머킨(가짜 음모)이라 한다고 소설 주석에서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이렇게 하나 더 배웁니다.
화자가 바로 그 머킨이다. 이웃의 린의 아버지 방문 전 열심히 계획을 짜서 린의 애인처럼 보이려고 한다. 화자는 린의 말에 지나치게 고분거린다. 딱 봐도 린을 좋아해. 린이 단순 레즈비언이 아닌 양성애자라는 것은 후반부에 나온다. 남편이 바람 피워서 상처 받은 적이 있고 딸 아이 조지아가 있으며 델핀이라는 여자친구랑 살고 있는. 화자 역시 구여친이 교수와 바람 나고는 자기 탓하며 헤어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더욱 린과 죽이 잘 맞는지 모른다.
화자는 후천성 청각 장애 아이들을 가르친다. 거기에 호세라는 아이가 시를 쓰고 남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그래서 듣기 괴로운 쪽에 가까운 시 낭송을 굳이 스스로 하려고 든다. 린은 그것을 보는 일을 견디지 못하고, 화자는 호세의 낭송을 막거나 외면하지 않고 약속이 있는데도 꼭 호세를 보기 위해 행사장에 찾아간다. 화자와 린이 잘 풀릴 듯한 분위기였지만 호세를 대하는 태도에서 둘이 그렇게 잘 되지 않을 것을 예감할 수 있다. 그럼에도 화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언어를 말하여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소통할 수 없는 한 소년‘을 린과 함께 지켜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듯하다. 이런 착해 빠진 놈이.
-폭풍
초반만 보면 리처드를 스페인에 버리고 돌아온 누나가 샹년 같고 동생은 보살이네, 하는데 사실 이 집안 가풍이 보살이다. 병신같은 새 애인 톰을 여전히 끼고 보살피는 엄마나, 누나가 지랄같이 굴어도 항상 기분을 살피고 지지하는 동생이나, 반전이라긴 그렇지만 어쨌든 남의 허물을 자기 허물로 만들어 가리는 누나나. 결국 폭풍은 영원하지 않고 언제든 지나가긴 한다.
- 피부
짧은 이야기이다. 이러저러한 비극의 미래가 예정되어 있지만 지금은 그녀의 피부에. 이런 형식을 본 것도 같은데. 손보미 소설 중에 차 사고 나고 아들 죽고 안 죽었다면 뭐시기 하는게 비슷한 느낌? 이런 거 써 보고 싶다.
- 코네티컷
음. 미국에 대해 진짜 모르긴 하다. 코네티컷 하면 어디 붙어 있는 어떤 느낌 동네인지 감이 안 온다. 뭐 근데 사실 내가 용인, 하면 미국 놈들도 그게 어떤 동네인지 감이나 오겠어? 관심이나 있겠어? 나도 용인, 하는 걸 써 봐야지 언젠가.
엄마의 비밀-벤틀리 부인과의 사랑에 대해 그때와 지금 깨달은 것을 풀어 놓는다. 사실 소설집의 소설 중 제일 그냥그랬다. 아니 어쩌자고 어떤 사람들은 자꾸 애들이 알면 곤란해하고 말도 못하고 괴로울 것들을 자꾸 노출하는지. 의도했든 아니든. 그건 주로 부모의 연애 문제다. 부모의 연애, 자기 양친이 아닌 사람과의 애정 관계의 복잡함, 피할 수 없는 부분일 수도 있지만 자기들 문제를 자녀한테까지 영향을 주게 만드는 건 좀 무책임한 것 같다. 여기 실린 소설 최소 네 편에 그런 부모 자녀가 나온다. 부모 관계가 아이들에게 영향 주듯 연인 문제도 유사한 문제를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아 마지막 소설에 비문이요 한 거 별 거는 아닌데...
땡땡이 쳐도 안 들키고 안전한 화목에 대한 부연이다.
‘그 두 날은 어머니가 평소 어울리는 사람들과 컨트리클럽에서 브리지 게임 하는 걸 좋아했다.’
내가 바보라서 문제 없는 문장으로 트집잡는 건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이상하잖아. 그 두 날이 좋아하는 것 같음. 안 이상해? 화요일이랑 목요일이 엄마가 뭔짓거리 하는지 좋아한다고? 아님 엄마가 좋아한다고? 그것도 아니면 내가 안전해서 엄마가 그러는 걸 좋아한다고?
아무래도 엄마가 좋아하는 거 같은데...그러면
‘그 두 날은- 게임하기를 좋아하는 날이었다.’
‘그 두 날은 -게임하기를 즐기는 날이었다.’
그 두 날은 빼고 ‘어머니가 - 게임 하는 걸 좋아하는 요일이었다.’
몰라 이건 개정판 낼 때 알아서들 고민해 고쳐주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