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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모험 - 인간과 나무가 걸어온 지적이고 아름다운 여정
맥스 애덤스 지음, 김희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20191015 맥스 애덤스
나무에 관심이 있다. 정확히는 목재를 잘 알고 싶다. 나뭇결 무늬를 보고 슬쩍 만져만 봐도 이건 자작나무, 삼나무, 너도밤나무, 하고 말할 수 있다면. 다른 취미를 갖는다면 목공을 배워보고 싶다. 썰고 문지르고 끼워 맞추면서 죽은 나무의 섬유질을 느끼면 좋겠다. 죽은 나무가 더 좋다니, 네크로필리아냐.
저자는 고고학자이자 숲전문가이다. 거의 숲사람이다. 숲사랑, 나무 사랑, 목재 목공 사랑 성골 덕후. 숲에서 살다 나온 사연은 숲탓이 아니라 집 짓는 걸 허가 안 해주는 꽉 막힌 관료와 가진 것도 없는 그를 습격한 마약중독자 탓이라 안타깝다.
숲과 나무와 그 안에 사는 사람에 대한 아주 많은 것들을 다룬다. 저자는 단순히 감상하고 보호할 대상이 아닌 적절하게 이용하며 함께 사는 곳으로 만들어야 숲이 유지될 수 있다고 한다. 후진 책 보면 나무야 미안해, 하는데 오히려 책 한 권 더 사는게 숲 조성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흥미롭다.
소개된 나무 중 나를 닮은 나무가 뭘까 하다 산사나무가 마음에 들었다. 작고 흔해 무시 당하지만 빵과 치즈라 불릴 정도로 꽃과 잎은 나그네의 간식. 추위를 잘 견디는 강인함. 목재로는 쓸모 없고 땔감용인데 산울타리로 심어도 제격. 시든 꽃은 시체 냄새가 나서 죽음의 전조로 여겨짐. (근데 정액냄새랑도 비슷하다 함. 미친 취향이네.) ‘나이 든 스승처럼 퉁명스럽고 까칠한 성격 뒤에도 예상치 못한 장점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주는 나무라고 저자는 평가한다. 그래 난 산사나무 요정 콜. (이 책엔 안 나오지만 열매는 산사춘! 꺄울)
한 달 전에 보기 시작하다 초반에 포기하고 다시 빌렸다. 의무감으로 꾸역대며 읽기엔 사실 그보다 나은 대접 받을 좋은 책인데 안 읽히긴 했다. 빨리 읽고 다른 거 보려고 힘겹게 책장을 넘기는 이런 나라서 미안해. 고고학, 생물학, 역학, 재료공학 등등의 다양한 학문적 관점에서 나무를 다루는데, 그런 방대한 지식도 통찰도 놀랍다. 다만 도구 만들고 작동 원리 묘사하는 건 읽어도 하나도 모르겠다(그러면서 목공을 하겠다고 ㅉㅉ). 영국책이다보니 예시로 든 숲이나 나무의 주류도 영국에 맞춰져 있다. 우리나라 숲에 대한 책도 있나 찾아봤는데 썩 재미있어 보이진 않았다.
재미없는데 저자 혼자 신나서 상세히 설명, 묘사하는 걸 참다보면 아니 이런 표현을, 하고 예쁘게 쓴 부분이 제법 나왔다. 그런 걸 기대하며 계속 읽게 된 듯. 밑줄 치면서.
실용적인 내용이 많아서 숲이나 나무 활용에 대해 좀 아는 사람들은 맞아맞아, 하고 볼 것 같다. 그니까 좀 전문적이야.
나무 사진이나 목재에 대해 수시로 검색하며 읽었다. 그러다가 어떤 목공소 블로그를 들어가게 됐는데, 목재와 가구에 대한 정보가 아주 많았다. 게다가 필력이, 입담이...세상엔 글쓰기의 숨은 고수가 정말 많다. 감동 받아서 그 목공소에서 만든 우드슬랩 테이블을 사고 싶어졌지만...딱 봐도 내 월급보다 비싸보여. 못 사. 구경만 할게요. 또르르.
소로우의 월든이 몇 차례 언급, 인용되었다. 지금 내 뒷통수 가장 가까운 곳에 꽂혀 있지만 안 읽어보았다. 추천도 있었으니 멀지 않은 때 읽어봐야겠다.
+ 밑줄긋기
-원제 THE WISDOM OF TREES가 더 어울리게, 나무들로부터 어떤 지혜와 교훈을 아래 예시처럼풀어놓는다. 철학의 모험에 업혀가는 듯한 번역 제목 마음에 안 든다.
‘수수하기 그지없는 자작나무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단순명료하다. 영광의 순간을 누리기 위해서는 다소 힘이 들지라도 기초를 다져야 하며, 작고 사소한 임무를 잘해내는 게 큰 무대에서 주목받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생활의 지혜. 낙엽 예쁘게 말리는 법
‘낙엽의 아름다운 색을 보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르기 전에 보습 크림을 발라주는 것이다. 아니면 글리세린에 담갔다 꺼내는 방법도 있다.’
-아래 같은 경제적 비유가 많다. 그편이 오히려 이해 잘 되는 차가운 도시 여자...
‘대부분의 침엽수는 비록 아주 느린 속도지만 겨울에도 이파리를 유지하면서 광합성을 계속한다. 각 바늘잎마다 적으나마 투자금이 들어가 있고, 나무는 이를 긴 세월에 걸쳐 환수한다. 이렇게 느린 속도로 햇빛을 수확하고 처리하는 것이 침엽수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경악스럽고 처절한 무화과말벌의 생식.(내 부인은 아직 안 태어났어...)이제부턴 무화과에서 애벌레 나와도 너무 미워하지 말아야겠다.
‘무화과나무는 과실 안에 꽃을 피울 뿐 아니라, 600여 개에 이르는 종마다 각각 특별히 정해진 무화과말벌 종의 도움을 받아 수분 작용을 한다. 무화과말벌의 암컷은 총신처럼 생긴 터널을 통해 열매 안으로 들어가 알을 낳는데, 그 과정에서 무화과나무의 수분이 이뤄지지만 벌은 날개를 잃고 다시 살아서 나오지 못한다. 알에서는 수컷 벌이 먼저 태어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암컷 벌들과 짝짓기를 한다. 이제 수컷 벌들에게 남은 유일한 임무는 나중에 태어날 암컷 벌들이 과일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구멍을 내는 일뿐이다. 그렇게 바깥으로 탈출한 암컷 벌들은 다시 한 번 가학과 피학이 뒤섞인 이 괴상한 과정을 반복한다.’
-이런 숲에 대한 사랑 넘치면서 아름다움 보여주는 표현이 꽤 많아서 포기 못했다. 일일이 밑줄도 다 못 침.
‘바람 많은 언덕 등성이에 홀로 서 있는 유럽소나무는 그 규모가 웅장하지는 않지만, 썰물과 밀물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세월의 덧없음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대대손손 여러 주인의 손을 거치면서 증축과 개축을 거듭한 수백 년 묵은 집처럼 말이다. 그런 나무를 만나면 존경심이 절로 솟구치고, 건축사적 연구 대상으로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스코틀랜드 남부 황무지 한가운데에 에드윈 랜드시어(Edwin Landseer)의 작품 속 수사슴처럼 우뚝 서 있거나, 호수 위에 검푸른 그림자를 드리우며 줄에 묶인 사냥개처럼 웅크리고 있는 유럽소나무를 만나기라도 하면, 걸음을 멈추고 이 위엄 넘치는 소나무 족장과 인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급격한 장르 전환. 과학으로 시작해서 애정물로 마무리. 이런 거 왜 이리 좋지.
‘흙 속 균근균과 공생 관계를 유지한다. 균근균은 초미세 섬유질 형태로 나무뿌리에 달라붙어 영양분이 적은 흙에서도 나무가 질소를 채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균근균이 뿌리의 표면적을 늘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보답으로 나무뿌리는 균근균에 당분을 제공해서 양측이 모두 혜택을 입는다.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균근균의 초미세 섬유질이 군집한 나무들의 뿌리 체계를 서로 연결해준다는 사실이다. 나무들이 손을 맞잡을 수는 없지만 테이블 아래에서 발을 부비면서 애정 표현을 하고 있는 셈이다.’
-숯 굽기의 즐거움을 온갖 감각을 동원해 설명. 당장 깡통이랑 나무 챙겨서 숯 구우러 안 가면 안 될 거 같게 만듦...(현실은 켈록켈록케케켁 앗 뜨거 언제 끝나 이거)
‘뭔가를 생산하는 일 중에서도 숯을 굽는 일은 만족감과 미적 쾌감, 철학적 사색 면에서 으뜸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나뭇더미에 불이 제대로 붙기를 기다릴 때는 묘한 흥분감이 차오르고, 증기가 나뭇더미를 감쌀 때 풍기는 멋진 초콜릿 향은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 베어놓은 나무를 쌓아 올리고 가마를 만들 때는 육체노동이 필요하다. 검푸른 연기가 너무 심하진 않은지, 뭔가가 타는 냄새가 나진 않은지 살피는 일은 무의식적으로 사색과 명상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가마를 열고 숯 굽기를 해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크리스마스 아침에 선물을 여는 기쁨마저 든다. 제대로 구워진 숯은 처음 무게의 5분의 1 정도이고, 손으로 꺾으면 유리잔이 부딪히는 소리를 내면서 쉽게 부러진다.’
-궁금한 책.
‘러셀 호반(Russell Hoban)의 기발한 컬트 소설 『리들리 워커(Riddley Walker)』는 미래에 지구가 멸망한 후 다시 철기시대로 돌아간 켄트 지방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
-토지 같은 우리 소설에도 숯 굽는 이들은 수탈을 피하거나 사연 있어 산으로 도망친 듯 그려진다. 동네의 쑥고개란 지명이 숯가마 있던 곳이라던데 어떤 사연의 사람들이 살다갔을까 궁금하다.
‘요즘 우리가 유랑민들에 대해 불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당시에도 숯 굽는 사람들에 대한 불신은 깊었다. 그들이 하는 일이 고대로부터 내려온 방식을 그대로 고수한다는 점에 더해, 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어두운 숲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도 작용한 듯하다. 가마에서 나오는 연기가 공기를 오염시킨다는 이유로 도시로부터 일정 거리 이내에서는 가마에 불을 때지 못하게 하는 조례가 통과되기도 했다. 심지어 13세기에는 런던 시내에 숯 굽는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규칙도 생겼다.’
-사진 보니 예쁘긴 함.
‘세계에서 가장 높고, 아마도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운 100퍼센트 목조 건물은 러시아 오네가(Onega)호 안에 있는 키시 포고스트(Kizhi Pogost)섬의 예수의 변모 교회당일 것이다. ‘
-우리도 사리탑, 부도 같은 비슷한 게 있...만지진 않잖아;
아일랜드의 초기 기독교 성인들은 집처럼 생긴 나무 사당에 매장되었다. 그곳에는 작은 구멍이 나 있어, 신앙심 깊은 신도들은 구멍을 통해 성인들의 뼈를 만지며 치유받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아우 따뜻해. 고마워 나무야. 눈에서도 땀난다.
‘나무는 우리를 세 번 따뜻하게 해준다. 나무를 벨 때, 나무를 쌓아 올릴 때, 그리고 나무를 태울 때. 이 사실에 숲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숲을 소비하고, 생산하고, 그걸 반복하는 게 숲을 구한다는 주장.
‘나는 종이를 더 많이 소비하라고 권하고 싶다. 거기서 그치지 말고, 성냥을 사고, 참나무와 물푸레나무, 단풍나무로 만든 가구도 들이고, 유리가 이중으로 들어간 나무 창호를 달자. 나무를 때는 난로도 설치하자. 숲은 유용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종이와 성냥을 만들기 위해 조성된 숲에는 베어지는 나무보다 더 많은 나무가 새로 심어진다(그런 점에서 스칸디나비아인들은 나무를 잘 돌본다). 숲이 돈이 되면 숲의 생존이 보장된다. 나무가 가진 경제적 가치를 보지 못하고 나무의 경제학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감상적으로만 나무를 대하고 숲을 갈아엎어 특용 작물을 기르거나 초원으로 바꾸려고 하는 순간, 숲의 운명은 끝나는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보며 펄프가 된 나무를 위해 눈물 흘리지 말자. 책 한 권을 더 사는 것이 숲을 구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