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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평점 :
-20191227 밀란 쿤데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이 달 두 번째 다 읽은 책. 작년 9월에 읽고 다시 읽었다.
처음 읽은 건 17살 무렵이었다. 먼 곳에 사는 소년에게 반해 있었고 그 소년이 이 소설이 좋다고 해서 나도 읽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푹 빠져 읽어서 그 이후 거의 이십년 가까이 여러 번 반복해 읽고 여기저기 선물하고 다녔다.
나의 뼛속부터 반항아 기질, 모든 당위를 거스르고 키치를 싫어하고 유행을 거부하고 관습에 저항하는 성향의 원천을 굳이 찾자면 이 책을 읽고 또 읽으며 내면화한 무언가에게도 많은 지분이 있겠구나 싶었다.
어릴 때는 테레사에 스스로를 동일시하며 읽곤 했다. 사랑 앞에 끊임없는 약자, 질투, 낮은 자존감, 오롯이 사랑을 소유하기 위해 그가 늙고 약해지길 바라는 마음.
어느 순간부터는 사비나가 부럽기 시작했다. 친한 이 중에 이 사비나와 아주 닮은 사람이 있어 더 그랬다. 배신을 거듭하다 도달할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어떤 공허, 그렇더라도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게 아닐까 싶었다.
이번에 읽으면서, 아 내가 카프카와 이름만 같은 프란츠를 이토록 연민을 가지고 읽게 될지는 미쳐 몰랐지 ㅋㅋㅋ했다. 그저 다르게 자라 이해하지 못하고 마냥 사랑할 뿐이었던 순진하고 멋있고 강하지만 힘을 쓰지 않는 사람, 그저 사랑꾼일 뿐인 이 인물을 왜 그 동안 우스꽝스럽고 바보 같이 보았는지 모르겠다. 이번에는 그저 애처로웠어.
토마스, 이번에는 토마스에게 마음을 두고 읽어 보았다. 육체적 사랑은 도처에 두지만 사실 그는 오로지 테레사 밖에 모르는 빼박 모노아모리이다. 모든 그래야만 한다로부터 도망쳐 결국 테레사의 품에서, 시골 어느 구석에서, 사랑 만으로 행복과 안식을 느끼는 그를 보면 참 이만큼 대책없이 낭만적인 인물이 있을까 싶었다. 사비나 말대로 돈주앙의 뒤에 숨은 트리스탄.
카레닌에 대한 테레사의 사랑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개를 아주 귀여워하는 사람을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나도 어려서 아주 많은 개를 키웠지만 대부분 나보다 일찍 금세 떠나가버려서 더 이상 아프지 않으려고 개에 대한 사랑을 애써 차단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맨 처음 읽을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이를 부쩍 먹어 아마도 책 속 인물들과 나이가 비슷해지고 있고(사실 인물들의 정확한 나이는 여전히 가늠이 안 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야나체크를 들었고, 향연을 읽었고, 안나 카레니나의 앞 단 몇 장도 읽었고, 스탈린 치하 암울함에 대한 책도 몇 개 읽었고, 거친 사랑도 곡절도 굽이굽이 늘었다.
몇 편의 습작 속에 나도 모르게 읽는 누구도 모르게 할배 글에서 부스러기 긁어온 흔적도 이제야 읽으면서 깨달았다. 결국 나란 인간은 남이 남긴 위대한 것들을 먹고 먼지 부스러기 같은 거나 긁어 모으고 있다.
여전히 좋아하고, 계속 읽고 싶은 책이다. 사랑하는 한 살아가는 한 멈출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