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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사랑의 서 - 작가의 밀애, 책 속의 밀어
섀넌 매케나 슈미트.조니 렌던 지음, 허형은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8월
평점 :
-20200117 섀넌 매케나 슈미트, 조니 렌던
부제 작가의 밀애, 책 속의 밀어
원제 Writers between the covers
싸이월드가 완전 망하고 접속마저 안 되다가 우연히 갔더니 다시 로그인 되었다. 특정 시기에 남긴 일기가 거기 다 있어서 그거라도 백업해 두자, 했는데 만만치 않았다.
2003년에서 2006년까지, 대학 4년 간 남긴 기록의 장르는 거의 연애물이다. 그게 달달한 연애소설 같은 부류가 아니라 주로 고통의 서사라 문제다. ㅎㅎㅎ짝사랑과 불균형한 감정과 집착.
개인적 경험만 보면 사랑의 증상은 자주 내가 미친 게 아닐까 헷갈릴 만했다.
-불안하다 -잠을 못잔다 -특정 행동이나 사람에 집착한다 -우울하고 눈물이 많아진다 -의심하고 망상에 빠진다. -분노조절이 안 되어 감정을 폭발시킨다.
내가 한 건 어느 하나도 사랑이 아니었다, 그냥 욕망이다, 라는 말에 누군가 그냥 사랑이라고 부르자고 했다.
내가 그렇게 불러주지 않으면 그건 정말 사랑이 아닌 게 되니까, 그러면 그 사랑도, 그 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가엾다고 했다.
그래서 나보다 더한 미친 놈들 이야기가 위로가 될까, 하며 이 책을 골랐다. 목차를 펼치니 작가판 연애가중계 같은 가십이 가득했다. 영미문학은 워낙 무지해서 이름만 듣고 읽어본 적 없는 작가만 가득이다. 그래도 읽는데 큰 상관은 없었다. 왜나면 남의 연애사는 언제 읽어도 재밌으니까. 더구나 중혼, 환승, 다각관계, 동성애, 양성애, 죽고 죽이고 난리가 났으니 지루할 틈이 없었다. 아니 사실 유부남 유부녀랑 얽히고 까고 다른 사람 또 만나고 하는 이야기는 너무 많이 반복되서 뒤로 갈수록 물릴 지경이었다.
인생과 영혼까지 글로 남겨 팔아먹던 이들이라 그런가, 일기, 편지, 자서전 같은 게 많이도 남아서 이들은 죽어서도 안식하지 못하고 사골 우리듯 가십거리로 우려진다. (그 덕에 이 책도 나왔지.) 내 친구 하나는 다른 친구 하나와 죽으면 서로 컴퓨터 하드 야동 및 집필작을 정리해주기로 동맹을 맺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게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외국 같으면 유언 집행 변호사에게 클라우드와 메일 비번을 알려주고 내가 죽으면 이 수백 통의 메일과 수천 개의 일기를 즉시 다 날려버리시게...하는…
그것도 뭐 유명하고 알려진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액션이긴 하겠다. 정류장, 승강장, 버스나 지하철 안, 북적이는 거리, 대도시의 인파 틈에 묻혀 있는 우리를 생각한다. 익명은 그럴 때는 축복인지도 몰라. 그러니 조용히 행복하게 살다 가자.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로.
처음 본 날 한 친구는 내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괜찮다고, 이제는 평온하고 잘 산다고 했다. 그랬더니 뜬금없이 그러다 불같은 사랑에 빠져서 인생 망할 수도 있다는 소리를 중얼댔다. 미친놈이 갑자기 뭐래. 저주하는 거냐. 너네 아버지 일찍 죽어서 잘 됐네 (그분이) 너한테 마지막으로 잘 한 일이야 부럽다(진심이었다)는 패드립으로 답변해주었다. 아마 그 날 친구가 오면서 읽었다는 책이 이 책이라 저런 소리가 뜬금없이 튀어나왔지 뒤늦게 생각했다. 무슨 책인지 말 안 하고 대강 내용 설명만 했었는데 나중에 이 책 제목이랑 목차 보니 딱 저거 봤었구나 싶었다.
그래서 그 미친놈들 지금은.
+밑줄 긋기
-비트 제너레이션의 작가놈들이 진짜 역대급 개막장 폭망이었는데 (아...여친 머리에 잔 올리고 맞춘다더니 여친 머리에 총 쏜 새끼...하아…) 버로스에게 들은 내용을 긴즈버그가 케루악에게 편지 보낸 구절은 막 가슴을 쳤다.
“우리가 인간의 형상을 갖고 태어난 건 사랑과 고뇌를 인간의 문자로 배우기 위해서야. 그러니 사랑이라는 위험을 감수하는 건 의무나 마찬가지라고.”
-거짓말은 어려운 일. 중혼까지 하고 두 남자를 오가며 미국 동부와 서부를 넘나든 아나이스 닌의 이야기가 특히 충격적?이었다. 참….에너지가 넘치시네요…참...부지런한데다 철저하시네요...
‘하나둘 내뱉기 시작한 거짓말을 눈덩이처럼 불어나, 나중에는 자신이 알리바이로 댄 지인들의 이름 같은 세부사항을 일일이 메모카드에 기록해 ‘거짓말 상자’에 정리해둬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결혼은 뭔가요.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례가 너무 많이 나왔다. 그런 삶들이 작가들의 작품에 푹 녹아있다. 난 읽은 게 없지만. ㅎㅎㅎ
“인생을 편안하게 해주는 남자를 사랑하는 게 과연 좋은 일인지 모르겠어. 나는 인생을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남자를 사랑하고 싶어.”-이디스 워튼, ‘나무의 과일’
-더글라스의 아내가 된 헬렌의 말은 참 용감해 보였다. 다만 더글라스의 원래 부인인 애나를 홀대하고 밀어내려 들었던 것 때문에 용감할 뿐 멋있지는 않아…
”사랑이 찾아왔는데 상대방의 피부색 때문에 결혼을 주저할 만큼 겁나지는 않았어요.”
(헬렌은 백인이고, 더글라스는 흑인이어서 둘이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린치를 많이 당했다고 한다.)
-오스카와일드는 도리언그레이의 초상은 읽었는데, 재밌었는데, 아 아무리 위대한 작가라도 이 부분 읽을 때는 욕이 나왔다. 그냥 부인 버리고 남자랑 하고 싶었다고 솔직히 말하면 덜 미울텐데...미래에는 인공 자궁이 빨리 등장했으면 좋겠다. 아니면 남성도 임신하는 기술… 그것도 아니면 스위치 끄고 켜듯 간편한 피임술… 그거 아니면 평등은 요원하고 여성은 저런 개소리에 영원히 고통받는 것…너무 빻은 소리라 긴데도 다 옮겨와 봤다.
“형태가 망가지고 뒤틀리고 흉측한 것에 욕정을 느낄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는 아내의 임신한 몸을 보고 이렇게 토로했다. “출산이 욕정을 죽였고, 열정은 임신에 묻혔다.” 자신의 감정이 그렇게 극적으로 변한 것을 애석해하며 와일드는 이렇게 썼다. “결혼했을 때 나의 아내는 춤추듯 반짝이는 눈동자에 웃음소리마저 노래하듯 듣기 좋은, 백합처럼 뽀얗고 늘씬한 아름다운 소녀였다. 억지로 만지고 키스도 해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늘 몸이 안 좋았고, 그것도 모자라-아! 떠올리기도 싫다. 구역질나서.”
1992년 초2 때 도서관 회원증 만들어보고 오늘 처음 만들어봤다. 구 통합 회원증인데 동네 가장 가까운 작은 도서관에서도 발급이 되었다. 책은 제법 있는데 공간이 워낙 협소하고 책이 배치된 상태가 안타까웠다. (막 책들 머리 위에 제목도 안 보이게 마구 꽂혀 있는 책들도 많다.) 전자도서관 빌린 거랑 집에 산더미 같은 것들도 아직 다 안 봤는데 ㅋㅋ(알라딘이 내가 2211권 사고 그 중에 11퍼센트인가 봤다고 했다...그런데 오늘 책 또 샀지롱...두 번이나 주문함...아직 엊그제 주문한 거 도착도 안 했는데...) 그래도 도서관 오랜만에 오니 뿌듯하다. 와서 빌린 책은 안 보고 키보드 꺼내서 독후감만 실컷 썼다. ㅎㅎㅎ
얄팍하고 안 사 볼 듯한 거 세 권 빌려서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