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의 말 : 모든 색에는 이름이 있다 컬러 시리즈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지음, 이용재 옮김 / 윌북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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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2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원제 The secret lives of colour

책 서두에서 색의 범주는 선천적이라는 주장(보편론)과, 색을 일컫는 언어가 없다면 인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상대론)이 등장한다. 우리 눈은 셀 수 없는 빛깔을 구분할 수 있다. 다만 두 색 사이의 다름을 알아챌 수 있더라도 각각을 부를 말이 없다면 미묘한 개성은 뭉뚱그려지고 그냥 빨강, 그냥 검정으로 일컬어질 것이다. 색에 붙는 새로운 이름을 상술이자 마케팅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렇게 몰아 붙일 일만은 아니었다. 다양한 색이름은 분위기와 기분을 다채롭게 표현할 때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
저자가 엘르 데코레이션 편집자의 제안으로 연재한 색에 관한 글들을 한 권으로 묶은 책이다. 잡지에 연재 되었을 때는 글에 등장하는 시각자료의 사진이 함께 제시되었을 것 같다. 이 책은 조그마한 색상표시 외에는 사진이나 그래픽이 별도로 등장하지 않아 아쉬웠다. 검색을 해서 회화나 유물 그림을 일일이 찾아 보아야 했다.
색이 등장한 배경, 쓰임새, 색을 나타내는 물감과 염료의 재료와 제작 방법, 유행한 시기, 염료의 유해성, 색이 쓰인 사례 등이 열거되어 있는데 하나하나 읽는 재미가 있었다. 빨강, 하고 뭉뚱그려진 안에도 스칼렛, 코치닐, 매더 등등 다양한 빨강이 담겨 있었다. 목차만 보면 엄청 많은 색이 다뤄진 것 같지만 책에 언급된 색채는 일부이다. 책 뒷편에 자세히 다루지 못한 다른 흥미로운 색들을 한 줄씩 언급하였다. 그 목록도 담지 못한 색이 많다.
미술을 잘 모르고 패션은 까막눈에 가깝다. 색에 대해 아는 것이 그나마 시작이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검정에도 콜, 페인스 그레이, 옵시디언(흑요석), 잉크, 차콜, 제트, 멜라닌, 피치블랙, 반타블랙 등등 수많은 이름이 있었다. 아프리카의 수많은 나라 이름이 검정을 가리킨다고 다른 책에서 읽었다. 모리타니(그리스어 모르), 기니(베르베르어 아구나우), 에티오피아(그리스어 아이토스오프시아), 소말리아(누비아어 소마리), 수단이 그렇다. 거무스름, 까망, 흑색, 새카만, 시커먼, 칠흑 등등...우리 말에도 다른 표현이 많다. 각각의 다름을 구분하고 이름 불러줄 수 있는 눈과 말을 가지고 싶다. 열심히 쳐다보고 궁리하고 공부하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책보다 찾아본 사진 정리

-리드화이트로 밑칠 된 안악3호분 벽화를 VR로 볼 수 있는 사이트
http://contents.nahf.or.kr/goguryeo/mobile/html5/an1.html

-아이보리-스코틀랜드 루이스 섬에서 발굴된, 바다코끼리 엄니로 만든 루이스 체스맨

-골드-금박이 잔뜩 쓰인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부인의 초상(1907)’

-데이지 펠로우즈. 타타 드 벨리에르(숫양 대가리)라 불린 쇼킹핑크색 17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카르티에에서 사들여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열심히 찾았지만 핑크 다이아의 실물 사진은 구하지 못했다.

대신 그녀가 카르티에에 주문 제작한 목걸이 사진 득. 화려하다 화려해.

-아마란스. 영원하다는 뜻으로도 쓰이는 이름.

-아니쉬 카푸어의 ‘스바얌브(2007)’ 윤기 SHADOW 세트장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다는…(그런데 윤기 섀도우가 누구야…눈에 바르는 거야...BTS가 뭐죠...)

-코치닐, 선인장의 연지벌레. 딸기우유. 비건 중에는 이거 반대하고 안 먹는 사람도 있다고 함.

-버밀리언 바탕이 칠해진 폼페이 신비의 벽화 프레스코화

-호안미로-빛. 내 꿈 속의 색. 책에는 물망초색 물감을 팝콘 모양으로 칠해놨다고 표현되어 있다.

-비싸터진 울트라마린으로 밤하늘을 칠한 티치아노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1520’)’

-페르메이르의 ‘간음한 여인과 그리스도’. 1945년 메이헤른이 이 그림을 나치에게 팔았다는 이유로 나치 부역 혐의로 잡힌다. 메이헤른은 작품이 자신이 그린 위작이라고 주장한다. (네덜란드 문화 유산 팔아먹은 역적? 가짜 그림 독일 놈들한테 팔았으니 애국자?) 그림에 쓰인 코발트 블루 컬러가 페르메이르가 죽고 130년 뒤에야 발견되었다는 것이 밝혀져 그림이 위작임을 증명한다. 재밌네. 그림 잘 그리네 ㅎㅎ

-이집션 블루 빛의 작은 하마 윌리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3500년 전 이집트 나일강 둑에 있던 다리 부러진 부적. 이집트인들이 숭배한 하늘, 나일강, 창조, 신성의 파란색.

-일렉트릭 블루. 체르노빌 핵누출 사고 때 밤하늘을 빛내던 방사능의 파란 빛. (사진은 그냥 전깃줄 빛나는 장면)

-버디 그리빛 드레스 입은 임산부. 그림 속 부부는 엄청 부자로 추정. 얀 반 에이크가 그린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1434)’ 옛 화가들이 색감 좋고 변하지 않는 초록을 구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고 한다. 초록 물감 중에는 유독 물질도 많았다. 이 그림보다가 갑자기 초록색 신발이 가지고 싶어서 한참 검색하다 구매 포기함...내가 신으면 할머니 신발 같을 거야...참자...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1880’)’ 녹색 물감의 이상 반응으로 풀밭 군데군데 시든 것처럼 보인다.

-엄버 빛으로 그려진 카라바조의 ‘성 프란시스와 성 로렌스가 함께한 예수 탄생도’ 1960년대에 도둑놈들이 훔쳐가면서 훼손되었다고 한다.

-스펙트럼의 99.965%를 흡수하는 반타블랙. 아니쉬 카푸어가 이 색의 독점권을 사들여 다른 사람은 쓸 수 없다고 한다. 스튜어트 샘플은 이걸 비꼬면서 모두가 쓸 수 있고 아니쉬 카푸어만 쓸 수 없는 분홍(world’s pinkest pink)을 만들었다고 한다.

-카지미르 말레비치 ‘검은 사각형’

-존 디 박사가 소유했었다는 흑요석(옵시디언) 거울이 바쳐진 아즈텍의 신, 테스카틀리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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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복의 성자
아룬다티 로이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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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9 아룬다티 로이.

이국적인 향신료 냄새를 풍기는 커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터번 쓴 인도 아저씨가 잔이 빌 새 없이 주전자로 물을 채워준다. 네팔이나 파키스탄이나 방글라데시 사람일수도 있다. 그의 종교가 힌두교인지 이슬람교인지 시크교인지 불교인지 기독교인지 알지 못한다. 인도음식점에서 우리는 인도에 대해 더 알게 된 게 없었다.
닌텐도 게임 화면 속 트레이너를 따라 한 다리로 서고 양쪽 검지손가락을 위로 모아 쭉 뻗는다. 요가가 인도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들었는데, 인도에서는 나무자세를 뭐라고 부를까. 경건함과 상쾌함이 동시에 찾아오는 태양예배 자세는 어떤 신을 향한 몸짓일까.
인도영화는 왜 항상 마지막에 다같이 낯부끄러운 군무와 떼창을 선보일까. 몇 편 보고 나면 굳이 더 찾아볼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렇게 인도를 잘 모르는 내가 아룬다티 로이의 소설 ‘지복의 성자’를 읽는 동안에는, 그곳 사람들 곁에 바짝 다가가 지켜보는 기분이 들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지만 그들과 내가 바라는 건 매한가지였다.
자유, 사랑, 행복, 사람다운 삶, 혼자가 아닌 삶.
큰 바람이 아니지만 어디서나 이루기 쉽지 않은 꿈이다. 모두들 가끔 행복하고 가끔 슬프다가 결국 묘지로 향한다.

1. 성 정체성
어릴 때 문득 생각했다. 내 겉모습은 여자아이지만 몸 안에 남자아이도 함께 있는 것 같아. 그러니까 혼자서도 아이를 만들지도 몰라.
자가생식가설은 틀린 모양이다. 짝사랑하는 동안은 2세를 얻지 못했다.
지정된 성별대로 공학 중고등학교의 여자반에 배정되었다. 무럭무럭 자라 브래지어와 생리대와 스타킹과 립스틱을 샀다. 내내 남자아이들을 사랑했고, 아이가 생겼고, 낳았고, 젖을 물렸고 아기가 싼 똥을 치우고 안아서 재웠다. 그런 일들은 한 번도 의논 거리 된 적 없이 저절로 내 몫이 되었다.
내게 당연히 주어진 것이 누군가에게는 열망하는 삶의 형태이고, 그 중 이룰 수 있는 것이란 스타킹과 립스틱 같은 겉보기에 한정된 사람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들의 삶에 관심이 갔다. 기사를 찾아 보고, 영화나 책을 보았다.
‘아요디아 외곽의 숲 가장자리에 이르렀을 때, 람왕은 백성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 모든 남자들과 여자들은 집으로 돌아가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라.” 왕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었던 남자들과 여자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오직 히즈라들만이 꼬박 십사 년을 숲가에서 충성스럽게 왕을 기다렸는데, 그건 왕이 그들에 대해 언급하는 걸 잊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우린 잊힌 존재로 기억되고 있는 거네? 와! 와!” 우스타드 쿨숨 비가 말했다.’
지워진, 잊힌, 부정당한 존재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들. 두 성별로 구분된 화장실 앞에서 어디로 들어갈지 망설이다 소변을 참고 돌아선 경험은 없었다. (줄이 길어 못 들어간 적은 많다.) 누군가에게는 고민거리조차 되지 못하는 일로 힘든 사람들이 있다.
인도에는 히즈라와 칸나르라는 단어가 있다. 아프타브는 두 성을 한 몸에 지닌 간성인으로 태어났지만 산파와 부모의 판단과 바람대로 남자아이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아프타브는 자신이 ‘여자처럼’, 정확히는 여성의 치장을 한 히즈라처럼 되고 싶다는 것을 깨닫고 집을 나온다. 두니야(현실 세계)를 떠나 히즈라 공동체인 콰브가(꿈의 집)에 들어가 그곳 사람들과 함께 지내게 된다.
안줌이라는 새 이름을 얻은 그녀는 성전환수술을 선택하지만 불행히도 의사가 돌팔이여서 겉보기로만 여성성기를 얻는 대신 영원히 쾌락을 잃는다. 영화 속 헤드윅이 미군과 결혼해서 동베를린을 벗어나려고 성전환을 택하지만, 수술 실패로 화난 1인치를 울부짖게 된 상황이 떠올랐다. 그렇게나 고통스럽고, 실패 위험이 있고, 목숨까지 거는 수술을 어떤 사람들 말처럼 여성에게 나쁜 목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감내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었다. MtoF 트랜스젠더 수험생의 여대 합격 이후 ‘인간은 비둘기가 될 수 없다’는 혐오 범벅 글을 게시한 여성들 소식을 마주하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며 연대한다는 사람들이 어째서 다른 이들의 고통은 외면하다 못해 모욕하고 짓밟을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콰브가의 구성원은 안줌처럼 여성으로 외과적 시술을 받은 사람 말고도 각자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한 종교와 성적 정체성을 가졌다. LGBT+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그 한 권에 소개된 성 정체성만 해도 80가지가 넘는다고 했다. 이토록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성별 이분법을 당연시하고 본인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지정된 성별을 절대시하는 사람이 많다. 지배적 규범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찾으려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가 멈추지 않는다.
원하는 성을 불완전하게나마 되찾은 안줌은 아기를 돌보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길에 버려진 자이나브를 거두어 키우면서 그 꿈을 이루는 듯싶었다. 아픈 자이나브가 저주에 걸렸다 믿고 쾌유를 빌기 위해 안줌은 하즈라트 영묘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발생한 이슬람교 대학살 와중에 동행한 자키르 미안은 살해된다. 안줌은 히즈라를 죽이면 운이 없다는 믿음 덕에 힌두교인 손에 죽지 않고 겨우 풀려나 동료들이 데리러 올 때까지 난민촌에 머문다. 학살의 목격자가 되는 일, 자키르 미안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으로 안줌은 불안해 하고, 자이나브를 학살과 강간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남장을 시키고 힌두교의 가야트리 만트라 찬가를 암송시킨다. 안줌의 오랜 부재와 불안에 지친 자이나브가 공동체 내 젊은 히즈라인 사이다를 엄마처럼 따르자 상처 받은 안줌은 콰브가를 떠나 묘지에 자리를 잡는다.
묘지에서도 안줌은 혼자가 아니다. 이맘 지아우딘이 말동무를 하러 찾아오고, 경비원, 시체안치소 일을 하던 사담 후세인이 그녀 곁에 머문다. 안줌은 가족의 묘지 위에 방을 지어 빈민들이 머무는 잔나트 게스트하우스를 만든다. 우연한 기회로 일반 장례식장에서 거부하는 시신을 거두는 장례식장까지 함께 운영하기 시작한다.
‘“비루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그런 것처럼, 일단 벼랑 끝에서 떨어지면 추락을 멈출 수 없어.” 안줌이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추락하면서 역시 추락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매달리게 되지. 그 사실은 빨리 깨달을수록 좋아. 우리가 사는 여기 이곳, 우리가 보금자리로 삼은 이곳은 추락하는 사람들의 집이야. 여기엔 하키카트(현실)가 없어. 이봐, 심지어 우리 자신조차도 현실이 아냐. 우린 진짜로 존재하는 게 아냐.”
사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안줌을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가 말하는 방식도, 선택하는 단어도, 입을 움직이는 모습도, 썩은 이빨 위로 판 물이 든 붉은 입술을 움직이는 모습도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의 우스꽝스러운 앞니도, 그가 거의─혹은 전혀─이해하지 못하는 우르두 시를 통째로 암송하는 것도 사랑하게 되었다.’
옷차림과 화장으로 한껏 멋을 부리고 발찌와 유리팔찌와 달랑거리는 귀걸이와 코핀으로 꾸민 안줌의 모습에 긴 양말과 커다란 구두를 신고 머리를 양갈래로 땋은 삐삐롱스타킹이 자꾸 겹쳐보였다. 옆에서 그녀를 돕는 사담과 그의 흰 암말 파얄은 항상 삐삐와 함께 다니는 원숭이 친구 닐슨과 괴력의 삐삐가 번쩍 들어올린 흰 말과 닮았다.
고집이 센 듯하지만 언제나 자기 의견대로 과감하게 결단 내리는 안줌은 마냥 씩씩하고 그래서인지 매력이 철철 넘친다. 어머니 자하나라 베굼의 바람대로, 죽은 몸으로도 사랑의 시들을 낭송하던 하즈라트 사르마드의 보살핌을 받은 덕일까.

2. 카슈미르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 국제 분쟁 사례로 카슈미르 지역이 지도와 함께 제시되어 있다. 카슈미르의 일부는 파키스탄 땅이지만, 일부 지역은 주민 대부분이 이슬람을 믿고 지배층이 힌두교도인 인도의 지배령이다. 이슬람교도들은 지배계층에 수단을 가리지 않고 저항하고, 인도군은 저항군을 진압한다.
우리 나라 사람 중 믿는 이가 그리 많지 않은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대립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서로를 향해 핵탄두를 날리겠다고 위협하고, 국지적 교전은 끊이지 않고, 대규모의 무력 충돌과 전쟁으로 국제 정세를 불안하게 만든다. 이슬람 전사들은 인도 한복판에서 자살 폭탄 테러로 맞서고, 인도 정규군은 이들을 색출해 고문하고 학살하며 주민들을 폭력과 공포로 다스린다.
왜 그런 극단의 증오를 키우게 되었을까. 이 물음에 대학 시절 함께 연극을 준비하던 네 친구, 틸로마타와 무사, 나가, 비플랍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답을 주었다. 틸로와 무사는 잠시 연인이었고, 나가와 비플랍 또한 틸로를 연모했다. 한 때의 우정과 애정으로 맺어진 그들의 인연은 카슈미르에서 기묘하게 얽히고 꼬인다.
무사는 자신이 나고 자란 카슈미르를 틸로에게 보여주고 싶어한다. 틸로는 카슈미르를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수많은 사건과 그에 대한 의문을 기록으로 남긴다. 권력자의 이해관계와 이슬람 전사 목에 걸린 현상금 때문에 많은 카슈미르인들이 인도군의 손에 죽는다. 그래도 카슈미르는 아자디(자유, 독립)를 외치며 저항을 멈추지 않는다.
‘문제의 폭발음은 옆 도로에서 빈 망고 프루티* 용기가 승용차에 깔리면서 난 소리임이 후에 밝혀졌다. 누구 탓을 하겠는가? 망고 프루티(신선하고 진한) 용기를 길에 버린 사람? 인도? 카슈미르? 파키스탄? 승용차 운전자? 대학살의 원인을 밝히기 위한 조사 위원회가 설립되었다. 하지만 사실들은 입증되지 못했다. 아무도 책임질 사람이 없었다. 그게 카슈미르였다. 그건 카슈미르 탓이었다.
삶은 계속되었다. 죽음도 계속되었다. 전쟁도 계속되었다.’
이슬람교도 희생자를 기리는 장례 행렬 도중 음료수병이 터지는 폭음에 놀란 인도 군인들이 발포한다. 안전해야 할 집 발코니 위에서 행렬을 구경하던 무사의 아내와 딸 미스 제빈은 그 총알에 맞아 죽는다. 이슬람 전사들을 잔인하게 사냥하는 인도군 지휘관 암리크 싱은 그날 총기 난사의 장본인이나 다름 없으면서 위로랍시고 무사를 불러 들여 굴욕을 준다. 무사는 사고 이후 다양한 신분으로 위장하며 저항 운동에 투신한다. 그의 친구 굴레즈 마저 현상금을 노린 암리크 싱의 손에 (무사로 위장되어) 살해되고 굴레즈의 보트에 머물던 틸로도 체포된다. 무사는 가까스로 도망치고, 틸로는 정보국에서 일하는 비플랍에게 연락해달라고 자신을 가둔 군인들에게 요청한다. 비플랍은 본인 대신 기자인 나가를 틸로가 구금된 곳에 보낸다. 틸로가 풀려나는 데 도움을 준 일을 계기로 나가와 틸로는 결혼한다.
틸로와 나가의 결혼 생활은 제대로 이어지지 못한다. 무사는 내내 떠돌다 여행하는 틸로 곁에 잠시 왔다 가곤 한다. 나가와 이혼한 틸로에게 건물을 세놓아 거처를 마련해 준 비플랍은 틸로가 떠난 뒤 방에 남은 자료들을 살피며 암리크 싱의 죽음이 정말 자살이었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죽음으로만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땅. 내 목숨마저 내 손에 달리지 않은 희망 없는 곳의 사람들에게 싸움 외의 선택지가 있는지 조차 의문이었다. 한 쪽의 절멸 이전에는 끝나지 않을 싸움을 멈출 방법을 누가 알고 있을까.
‘죽음은 더 깨끗해지고, 불운은 더 짜지고,
대지는 더 진실해지고, 더 끔찍해진다.’

3. 여성, 인도 여성으로 산다는 것
소설에는 수많은 엄마와 여성이 등장한다. 자하라나 베굼은 아프타브의 간성을 발견하고 하즈라트 사르마드 영묘를 찾아가 아이를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빈다. 혼자서 고통스러운 비밀을 간직하다 아이 아버지에게 사실을 알리지만 너무 늦게 알렸다고 비난만 받는다.
마리암 이페는 불가촉천민과 교제하여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아이 아버지는 (아마도) 살해당하고, 딸 틸로는 한 번 버려졌다 다시 친어머니 마리암에게 입양된다. 양어머니인 양 진실을 감추고 평생을 살다 임종 전 치매와 섬망으로 틸로를 힘들게 한 어머니, 틸로가 의자를 부숴버린 다음 날 숨을 거둔 그녀의 삶 역시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의미 없이 던진다 생각하고 틸로가 받아적었던 어머니의 말 ‘나 지금 고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 같다. 그러니?’, 그리고 생전 어머니가 좋아하던 셰익스피어의 구절이 히즈라들에 둘러싸인 마리암 이페의 두 번째 장례식날 틸로에게 떠오르는 순간은 마르케스 소설 속 환상들처럼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틸로의 삶은 현대 여성이 겪을 수 있는 온갖 어려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다. 성희롱을 하고 집앞까지 찾아와 수작 부리는 상사를 처리하기 위해 틸로는 운동으로 몸을 키우며 대비한다. 혼자 사는 여자가 겪는 위협을 막으려고 자신을 마약거래상이라 여기는 이웃의 오해를 일부러 수정하지 않는다. 무사와의 사랑 후 생긴(제빈이나 굴레즈가 될 수 있었을) 아이는 나가와 결혼하기 위해 중절 수술로 없앤다. 보호자 없이 마취 없는 수술을 받고 기절했다가 다른 환자와 함께 쓰는 침대 위에서 깨어나는 장면은 악몽 같았다. 피임도 낙태도 여자의 몫으로 여기는 세상은 인도 말고도 무수히 많다.
틸로는 굴레즈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싶었지만 동행자가 만류한다.
‘”...여자들은 무덤 근처에 가는 게 허용되지 않거든요. 나중에 가요. 다들 떠난 뒤에.”
여자들은 허용되지 않는다. 여자들은 허용되지 않는다. 여자들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건 여자들에게서 무덤을 보호하기 위함일까 아니면 무덤으로부터 여자들을 보호하기 위함일까?’
애도의 기회조차 성별에 따라 달리 주어지는 지역이 있다. 보호할 이익은 하나도 없는데도 그렇다.
틸로는 시위 장소에 버려진 아기를 데려다 미스 제빈 2세로 키우려고 한다. 모성이란 타고나는 것이라는 관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아기를 원하는 안줌이나 틸로를 보면 무한한 사랑을 쏟을 수 있는 약한 사람을 원하는 마음이 이해가 간다. 누구나 죽기 전까지, 어떤 암흑 속에서도 사랑을 주고 받길 원하니까. 아기는 그런 사랑을 쏟기에 적합한 존재이다.
편지를 통해 알려진 미스 제빈 2세(우다야)의 친엄마 레바티의 삶은 참혹하고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레바티의 어머니는 지참금이 적다고 결혼식날 거부당하고 남편에게 잔인하게 학대당하다 버림 받는다. 마을 사람들은 레바티의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카스트를 운운하고 어머니를 부정한 사람 취급한다. 성장한 레바티는 공산당에서 활동하다 경찰에게 붙잡혀 집단 강간을 당하고 아이까지 낳게 된다. 공산당의 숲속 게릴라 투쟁에서 아기를 제대로 돌볼 수 없었던 그녀는 아이를 잔타르만타르 집회 현장에 놓고 왔다. 그녀는 당의 나쁜 점을 알면서도 떠날 수 없고, 증오하는 이들 때문에 생긴 아이지만 ‘아기가 너무 작고 귀여워서’ 죽이지 못한다. 아이를 도시에 둔 그녀는 죽음을 각오하고 숲으로 돌아간다.
학살의 현장에서 여성들은 다른 종교와 이념을 가졌다는 이유로 잔인하게 강간당하고 살해된다. 정부에 대항하는 세력도 성별 불문하고 성고문과 강간을 당한다. 타고난 여성 뿐 아니라 히즈라들조차 성희롱과 성폭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분쟁의 현장에서 인간성이 제일 손쉽게 파괴되는 사람은 약자인 여성과 아이들이다. 세계 곳곳에서 공포와 불안에 떨며 고달픈 삶을 이어가는 게 여성 대부분의 삶이지만 소설을 통해 확인한 인도의 상황은 독보적으로 끔찍했다.

4.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크게 고통 받는 사람들
-도시로 용수와 전기를 댈 댐이 세워지면서 마을이 물 밑으로 가라앉는다. 홍수 피해로 온 동네가 통째로 진흙에 잠겨 더는 살 수 없는 곳이 된다.
-시골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도시로 와서 빈민, 저임금 노동자, 마약중독자가 된다.
-도시의 공장은 오염 물질을 쏟아내고 유독 가스 유출 사고로 인근 주민들이 죽거나 실명하거나 장애가 생긴다. 사고에 책임이 있는 회사는 이름만 바꾼 채 계속 영업을 한다.
-정부군과 힌두교도 민간인들의 무차별 학살로 자식을 잃은 이슬람교도 어머니들이 집회를 하지만 그들의 외침은 공허하게 흩어진다. 고통을 호소하는 시위대 옆으로 철없는 쇼핑객들이 나아진 삶을 찬양하며 큰 상처를 준다.
“어머, 와아! 카슈미르! 정말 즐거운 곳 같은데! 이제 완전히 정상화되어서 관광객들에게 안전할 거야. 우리 갈까? 얼마나 멋지겠어.”
-길에서 단식 투쟁을 하는 아자드 바르티야 박사는 아기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들에게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폭행과 인쇄물 압수를 당한다.
-죽은 소의 사체를 치우는 카스트였던 사담의 아버지는 이유 없이 그를 구속한 경찰의 방임 아래 군중에게 소 도살자로 몰려 맞아 죽는다. 사담은 그 일을 겪고 나서 이름을 이슬람식으로 고치고 아버지를 죽게 만든 경찰을 없애는 걸 목표로 정부에 반대하는 활동에 나선다.
-마을 바보 취급 받던 지적 장애인들(무사가 모우트라 지칭한다)은 점령군에게 제일 먼저 살해 당한다.
“카슈미르에서는 거의 모든 모우트들이 죽임을 당했어. 명령에 복종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제일 먼저 죽임을 당한 거야. 어쩌면 그래서 우리에겐 그들이 필요한지도 몰라. 우리에게 자유로울 수 있는 법을 가르쳐주니까.”
“혹은 죽임을 당하는 법이나?”
“여기선 똑같은 의미야. 오직 죽은 자만이 자유로우니까.”
-빠른 개발과 인구 성장 속에 인도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불평등을 드러낸 나라가 되었다.
‘차들이 20차선을 쌩쌩 달리고 양옆으로 강철과 유리로 된 고층 빌딩들이 들어서고 있는, 밀밭만큼 넓고 ‘오줌을 누는 게 불가능한’ 고가도로를 달렸다. 하지만 출구로 빠지자 고가도로 밑은 완전히 딴 세상임을 알 수 있었다─도로포장도 안 되어 있고, 차선도 없고, 가로등도 없고, 통제도 안 되는 거칠고 위험한 세상에서 버스, 트럭, 거세한 황소, 릭샤, 사이클, 손수레, 보행자 들이 생존을 위한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한 종류의 세상이 굳이 성가시게 멈추어 알은체하지 않고 다른 종류의 세상 위를 날아갔다.’
-틸로의 파일 속 카슈미르 주민 경험담 중 아래 기록을 읽고 깜짝 놀랐다.
‘P가 내게 말하기를, 최근 ‘친선 작전’의 일환으로 군에서 스물한 명의 아이를 해군 배에 태워 소풍을 데려갔다고 했다. 그 배는 전복되었다. 스물한 명의 아이가 모두 익사했다. 익사한 아이들의 부모들이 시위를 벌이자 군은 그들에게 총을 쏘았다. 운좋은 사람들은 죽었다.’
아이들이 물에 빠져 죽고 항의하는 부모들이 더 큰 상처를 받는 이야기가 여기서도 되풀이된다. 우리가 모르는 어디선가 일어나선 안 될 일들이 자꾸만 반복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슬퍼졌다.

열거하자면 끝이 없는 사례들. 분쟁 속에 결국 제일 먼저 희생되는 건 가장 약하고 아픈 사람들이다.
온통 절망투성이인 것 같지만, 등장인물들은 희망을 보여준다. 어려움을 함께 겪고 도와주는 친구와 이웃이 있고, 새로운 사랑이 피어나고, 서로를 축복한다. 사담과 자이나브의 혼인을 축하하기 위해 안줌은 자신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하즈라트의 무덤을 찾아간다.
‘안줌은 기도를 올린 후 사르마드에게 젊은 부부를 축복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리고 사르마드─지복至福의 성자이자, 위로받지 못한 자들의 성인이며, 정확히 규정될 수 없는 자들, 신자들 속의 신성모독자, 신성모독자들 속 신자의 위안慰安인─는 그렇게 해주었다.’
약하고 소외된 자들이 찾아갈 장소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우리 곁에도 그렇게 기대어 행복을 빌 곳이 이미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큰 절망에 빠져 있을 때, 가장 큰 기쁨을 나누고 싶을 때 함께 하는 가족, 연인, 이웃, 친구들. 사랑하는 이들이 살아 있는 성자임을 잊지 않는다면 조금 더 행복하고 조금 덜 불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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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3 - 1921-1925 의열투쟁, 무장투쟁 그리고 대중투쟁 (박시백의 일제강점기 역사만화) 35년 시리즈 3
박시백 글.그림 / 비아북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20200314 박시백.



아침마다 커피 내려먹을 때 쓰는 유리 머그. ‘나는 개다’의 구슬이가 새겨져 있다.
근데 보면 볼수록 너 누구 닮았어... 표정이랑 나는 개다, 하는 말까지 자꾸 누가 생각나...아,

박열!

나는 개새끼로소이다/하늘을 보고 짓는/달을 보고 짓는/보잘것없는 나는/개새끼로소이다/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뜨거운 것이 쏟아져/내가 목욕을 할 때/나는 그의 다리에다/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나는 개새끼로소이다.(박열, ‘개새끼’ 전문)

독립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를 여러 개 보았다. 박열, 암살, 밀정 등등. 김형민의 책 ‘한국사를 지켜라’에서 여러 독립운동가들을 만난 후였다. 내 또래 아니면 나보다 훨씬 젊은 나이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고 목숨을 던진 이들이 무수했다. 그들은 독립된 나라에 사는 자신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독립된 나라에서 비교적 평안하게 살고 있다. 잊지 않고 감사하는 일 밖에는 할 게 없다.

작년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다 보았는데, 35년을 보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빌리다보니 예약한 책 중 3권을 먼저 보게 되었다.

1919년 3월 1일의 전국적 항거에 놀란 일본은 문화통치라는 기만적인 이름을 걸고 식민 통치 방향을 전환한다. 조선인을 감싸 안는 척 하지만, 여전히 차별이 심하고 독립운동은 분쇄하고 지식인들을 회유하여 일본 지배를 돕는 친일 인사를 늘린다.

만세 운동 이후 평화적 독립운동에 회의를 느낀 독립운동가들은 무력 폭력 수단을 동원해 투쟁을 이어간다. 김원봉이 이끈 의열단의 폭탄 투척과 암살 시도, 만주와 연해주의 수많은 독립군, 자기 목숨을 던지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폭력 투쟁에 임한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두려웠을텐데, 그 두려움을 딛고 간절히 바라는 독립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던진 사람들.

권력과 지도층이 생기는 조직에서 늘 그렇듯 노선 투쟁, 파벌 싸움은 이 시대에도 징그럽게 이어진다. 자유시에서 무장 해제 당하고 동포인 군인들 손에 죽어간 독립군들을 볼 때는 진짜 안타깝고 화가 났다. 지휘권과 노선을 두고 다투다가 결국에는 숙청해 버리는 수순이라니. 1920년대에는 사회주의가 널리 퍼져나갔는데 국내에서도 어떤 사상과 방향을 따르냐를 두고 끝없이 분열이 일어났다. 독립운동에 쏟을 단일한 조직을 만들지 못하고 내부 분열에 힘을 소모한 게 아쉬웠다.

상하이 임시정부 쪽은 더욱 가관이었다. 하아 이승만... 임시대통령이라면서 미국에서 유유자적하다가 뜻대로 안 된다고 잠시 중국 왔다 금세 자리 떠버리고 독립자금 끊고 자기 지위 보전에 유리한 움직임만 취하던 놈...해방 후 학살자가 될 사람이 초대 대통령 되었을 때부터 대한민국 현대사가 꼬인 게 아닌가 싶다.

이와중에 1920년대에는 조선, 동아일보도 창간하고, 온갖 문예지도 창간해서 다양한 문예사조가 활동한다. 그 때 나온 시, 소설들 지금 봐도 재미있는 게 많다.

나혜석 이야기가 잠깐 나왔는데, 이 언니 너무 멋있는 거다. 원조 페미니스트. 자유인. 나혜석에 대한 책과 영화를 보고 싶어졌다. 찾아봐야겠다.

박경리 소설 토지에 백정의 형평사 운동이 나와서 관심 있게 봤었다. 마침 토지를 읽던 해에 진주 여행을 갔다. 진주성과 박물관에 가서 형평사 운동에 대한 유물, 사료들을 한참 들여다 보았다. 어느 시대에나 소수자가 있고 그들의 인권 운동에 반대하는 백래시가 있었다. 백정과 동급 취급 받고 싶지 않다는 양반, 농민들. 어떻게 너희들이 감히 사람 대접 받고자 하냐며 손가락질하고 심지어 폭력으로 억압하던 기득권과 거기에 맞선 사람들, 백정들 편에 선 또다른 소수의 양반, 농민들. 싸움이 없으면 보장되지 못하는 권리가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겠는데 선봉에 나서기는 커녕 거드는 것조차 두렵다. 대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나의 비겁함만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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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3-16 1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싱크로율....뭡니까?!

반유행열반인 2020-03-16 11:31   좋아요 0 | URL
구슬이 컵 맨날 볼 때 마다 너 누구니...하다가 만화책 삽화 보고 사진 보니 그 분이셨습니다...영화 박열 속 이제훈은 아주 많이 미화된 거였다는...제훈아 제훈아 넌 나랑 동갑인데 왜 젊고 잘생겼니...

무식쟁이 2020-03-18 2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래퍼중에 디보 라고 있어요....
여기까지만 말할게요.....

반유행열반인 2020-03-18 21:20   좋아요 0 | URL
검색해봐야지 ㅋㅋ나 어제 누구랑 무님 보고싶다고 얘기했더니 무님 나왔어요! 텔레파시?!

반유행열반인 2020-03-18 21:31   좋아요 0 | URL
프하하 디보 ㅋㅋ탈색머리 때 딱 저리 삐쳤네요. 무님한테만 하는 말인데 저도 7년 전에 저 디보 같은 양아치 탈색했었어요 ㅋㅋ머리도 저렇게 뻗치고 ㅋㅋ

무식쟁이 2020-03-18 22:15   좋아요 1 | URL
ㅋㅋ 누구랑 뒷담화를 하셨을까나..(대충 누군지 감은 옵니다만.)
진짜 텔레파신가. 오늘 그냥갑자기 북플생각이 뙇!! 났어요.

반유행열반인 2020-03-18 22:27   좋아요 0 | URL
앞으로 보고싶음 종종 텔레파시 할게요. 무님이 톡을 안 해줘서...(시무룩)

무식쟁이 2020-03-18 22:47   좋아요 1 | URL
악 ㅋㅋㅋ 첨으로 귀여웠다
(시무룩)에서.

반유행열반인 2020-03-18 23:32   좋아요 0 | URL
제 귀염력 너무 늦게 발견하심...너무 오래 잠수하시지 말고 종종 안부 전해주세요 한 달에 한 번이라도...(맘대로 요구함ㅋㅋㅋ)
 
블렌드 산수유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1년 7월
평점 :
품절


새 블렌드가 내가 좋아하는 산수유꽃 디자인이라...구매했다. 
오늘 분량 커피는 다 마셨는데...퇴근하니 택배가 와 있어서 도리상 조금만 내려 맛보기로 했다. 
 스텐레스에 티타늄 도금했다는 드리퍼 사서 잘 쓰고있다. 종이 필터도 필요 없고 대신 커피 내리자마자 뜨거운 물로 헹궈 씻어야 필터가 안 막힌다...드리퍼 씻다보면 커피 다 식음...
알라딘 원두는 싱글 한 번 블렌드 두 번째 구매인데, 이번 블렌드도 향은 약한 편이다. 
분쇄가 좀 굵게되서 너무 빨리 내려진다 싶었다. 맛이 제대로 우러나긴 하는 건가...
향도 맛도 산미가 세게 느껴졌다. 다 마시고 나니 탄향이 잔맛으로 많이 남았다. 
심심한데 동백꽃보다는 덜 심심하고 그럭저럭 마실 만 한 정도다. 
피*크 과테말라 안티구아 SHB로 돌아가기로 한다...취향 안 맞는 나라서 미안해 알라딘 커피...
(이러고 또 신제품 나오면 살 듯...미련 많은 나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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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쟁이 2020-03-18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우울한 공기 속의 그나마 찾은 기쁨이 모닝 커피 한 모금이네요. 늘 지나치던 동네 커피집에 암생각없이 들렀는데 2천원에 만원짜리 커피를 즐기게 됐어요. 주인총각도 매력적이고.. 훔훔..

반유행열반인 2020-03-18 21:23   좋아요 0 | URL
으아니?! 주인총각 매력 즐기시느라 저 잊었어요? 이천원은 짱이다...전 집콕하고 믹스랑 드립이랑 디카페인이랑 커피만 하루 세 잔 퍼먹고 이킬로 쪘어요!! 무님 그리워하다 이모양!!!
 
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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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8 윤이형.

이 값에 이렇게 작은 책이라니, 처음 받아들었을 땐 실망스러운 마음이었다. 중편 소설 한 편이 담겨 있다. 그 사이 윤이형은 절필했고 이 책이 마지막이 되었다.
두고 묵히다 펼쳤다. 작은동호회를 읽을 때 느낀, 안절부절이고 갈피를 못 잡는 답답함이 싫었는데 그런 마음을 이번 책에는 뚜렷이 잘 풀어놓았다 싶었다. 얇아도 작가가 그간 했을 많은 고민들이 담겨 있었고, 그 고민의 결이 공감이 되었다.
표지에 실뜨기 하는 손들이 있는데, 꼬인 실을 풀듯 짤막한 이야기로 많은 인물이 이어달리기를 한다. 정세랑 소설 중 웨딩드레스 하나를 공유한 여자들 이야기가 생각나는데, 붕대감기의 여자들은 점과 점으로 이어나가며 선을 만들고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를 이뤄서 이야기 구성이 더 정교한 느낌이다.
처한 위치, 가능성, 선호, 성격, 가치관, 가족관계, 성적 지향, 세대가 다르고 그래서 선택할 수 있는 길도 지지하는 주장도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건넨 것은? 혐오와 비난의 언어가 포함되어 있다. 상처를 키우고 다른 방식의 연대 가능성은 꿈꿀 여유 없이 선 긋기에 바빴다. 작가는 이런 모습들을 보며 깊은 상처를 입었던 것 같다. 나는 상처 받지 않으려고 무심한 척, 모르는 척, 관계 없는 척하다 부정하는 말을 뱉고 그러면서 결국 상처 받았다.

후반부에서 너무나도 다른 두 친구 진경과 세연이 대화로 서로를 이해하려는 모습은 작위적이었다. 결국 그것도 세연의 환상이었다고 얼버무리지만.
자신의 위치와 입장을 자각하고, 어떤 길을 갈지, 무엇이 옳다고 믿는지,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명확한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나와 다른 타인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시킬 수 있을까. 소설 속에서나마, 두 사람 사이라도 이해의 가능성을 찾으려는 작가의 노력은 가상했다. 버스의 비유는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도 시원하지 않다. 막막함은 여전하다.

‘옛날에는 너무 지겨웠는데. 세상이 어째서 이렇게까지 안 변할까, 대체 어떻게 해야 이게 변할까 싶었는데. 그런데 지금은 너무 빨라. 빨라서 어지럽고 울컥거릴 때가 많아. 그런 걸 보면 네가 하는 말들이 틀린 게 없는 것 같아. 우린 승객이었을 뿐, 그동안 이 버스에서 한 번도 운전대를 잡아본 적이 없었떤 거지. 그런데 이제 처음으로 스스로 운전을 할 기회가 주어진 거야. 그래서 이렇게 어지러운 거겠지. 방향 하나하나, 신호 하나하나, 승객들 한 명 한 명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니까. 세연이 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 버스를 운전하는 사람이 될 거잖아. 나는 아무 이름도 갖고 싶지 않고, 끼워달라는 말도 하고 싶지 않아. 나는 단지, 표를 사는 법을 몰라서, 멀미가 너무 심해서, 집을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 아니면 그냥 길을 잃어서, 멍한 얼굴로 읽을 수 없는 노선표를 들여다보며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들 곁에 있고 싶어. 자기 삶이 잘못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무섭고 외로워서 그 사람들이 울고 있을 때, 다가가서 그렇지 않다고 말해줄 거야. 그 사람들에게도 누군가가 필요하니까.
나도 그래 진경아, 세연이 중얼거렸다. 나 역시 무섭고 외로워. 버스? 이게 버스라면 나 역시 운전자는 아니야. 난 면허도 없고, 그러니 운전대를 잡을 일도 아마 없을 거야. 그건 우리보다 젊은 사람들이 할 일이야. 하지만 우리 이제 어른이잖아. 언제까지나 무임승차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나는 최소한의 공부는 하는 걸로 운임을 내고 싶을 뿐이야. 어떻게 운전을 하는 건지, 응급 상황에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정도는 배워둬야 운전자가 지쳤을 때 교대할 수 있잖아. 너는 네가 버스 바깥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우리 모두가 버스 안에 있다고 믿어. 우린 결국 같이 가야 하고 서로를 도와야 해. 그래서 자꾸 하게 되는 것 같아, 남자들에게는 하지 않는 기대를.’

여성, 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도 연대하기 어려운 다양성, 그 안의 혼란에 집중한 이야기라 남성과의 관계 맺기, 싸움의 방향, 무너뜨려야 할 구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건 다른 소설의 몫으로 남겨뒀겠지. 등장하는 남자는 의식을 잃은 어린 서균, 윤슬에게 험한 말을 하던 동료 사진 작가 김, 채이를 추행한 A교수, 리벤지포르노를 퍼뜨린 걸로 추정되는 미진의 남자친구, 진경에게 집적대는 페친들 정도가 기억난다.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이 빼고는 다 나쁜놈이네. 좋은 남자도 있는데 하필, 하는 말은 하고 싶지도 않다. 좋은 남자만 있는 세상이면 애초에 고통 받는 여성들도, 싸움을 고민할 필요도 없다.

여성주의 운동 흐름이나 노선, 대립 지점은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그와중에 오간 혐오의 말, 상처, 소외감은 안다. 고통 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더는 방법이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분노와 울분도 전혀 모를 말은 아니라 또 막막해진다.

진경이 율아에게 마음으로 건네는 말을 나도 내 아이에게 해 주고 싶다.

‘사랑하는 딸, 너는 네가 되렴. 너는 분명히 아주 강하고 당당하고 용감한 사람이 될 거고 엄마는 온 힘을 다해 그걸 응원해줄 거란다. 하지만 엄마는 네가 약한 여자를, 너만큼 당당하지 못한 여자를, 외로움을 자주 느끼는 여자를, 겁이 많고 감정이 풍부해서 자주 우는 여자를,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를, 결점이 많고 가끔씩 잘못된 선택을 하는 여자를, 그저 평범한 여자를, 그런 이유들로 인해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네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나도 나는 너를 변함없이 사랑할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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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andante 2020-03-11 17: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리뷰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3-11 18:06   좋아요 1 | URL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의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편이던데 저는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잘 봤습니다.

무식쟁이 2020-03-18 2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반반님의 리뷰에 별다섯드립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더는 방법이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울컥하며 고개가 끄덕여지네요.

반유행열반인 2020-03-18 21:39   좋아요 0 | URL
우아 제가 그런 말을 썼어요? 언제요? 부족한 독후감에 별을 많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무님이 주신 별이라 더 뿌듯...나도 같이 울컥 끄덕...

파이버 2021-05-18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님의 리뷰를 읽고 이 책을 읽고 다시 반님의 리뷰를 읽으러 돌아왔습니다. 책을 읽고 다시 돌아와 글을 읽으니 더 좋네요...

반유행열반인 2021-05-18 11:17   좋아요 1 | URL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책이 이 작가의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더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건만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