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 뒤라스가 펼쳐 보이는 프랑스판 ‘부부의 세계’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0년 8월
평점 :
-20200927 마르그리트 뒤라스.
뒤라스의 ’연인’, 소설과 영화와 작가의 삶에 대해 엄마는 자주 말하곤 했다. 누군가 어떤 이야기에 빠져들고 감탄하는 건 자기 삶의 궤적과 닮거나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었다. 언젠가는 봐야지- 하는 책과 영화가 자꾸 는다.
이 책은 처음 읽는 뒤라스의 소설이었다. 엄마에게 뒤라스 타령을 한참 듣다가, 책 광고에 ‘프랑스판 부부의 세계’라니까 왠지 끌려서 사버렸다. 초여름에 눈병이 심하게 걸린 병가 동안 눈꼽이 꽉 찬 눈을 억지로 떠가며, 흐르는 누런 눈물(슬퍼서가 아님)을 휴지로 찍어 가며 종영된 드라마를 1.5배속으로 정주행했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읽고 보니 낚였다는 생각만...마케팅의 1승.
겉표지와 책갈피는 예쁜 민트색이었다. 겉지 없이 천으로 감싼 표면은 아주 옛 책의 까슬한 질감이라 좋았다. 여자와 남자의 순간을 담은 흑백 사진을 액자처럼 앞표지 한가운데 붙였다. 파란색 압인 음각으로 제목과 작가 서명, 본문 일부를 앞뒤표지에 새긴 것까지, 책의 물리적 속성은 옛 소설에 어울린다 싶고 마음에 들었다.
본문 편집은 겉모습보다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원작이 그런 건지는 몰라도 문단 시작에 들여쓰기를 하나도 안 했고, 문단과 문단 사이 간격도 따로 띄우지 않았다. 여는 큰따옴표만 문장 마지막에 덩그라니 있고 그다음 줄에서 대화가 시작된 부분도 있었다. 녹색광선은 이번에 처음 보고 아직 펴낸 책이 많지 않은 작은 출판사 같은데 독자가 읽기 편하게 책을 만드는 기술은 부족한가 싶었다.
편집 탓인지, 번역 탓인지, 문장 읽기도 매끄럽지 않았다. 전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도 아니고 설명이 필요할 만한 내용도 없는데 더디게 읽혔다. 먼저 사둔 미셸 우엘벡의 ‘세로토닌’을 번역한 역자던데, 이런 문장이면 다음 독서도 괜히 걱정이 되었다. 책 투정이 길었네.
사라-자크 부부와 그들의 아들, 지나-루디 부부, 다이애나. 휴가를 함께 보내는 중인 친구들. 산기슭과 강, 바다와 절벽을 갖춘 해변 마을에서 40도가 넘는 찌는 더위에 내내 시달린다. 지치고, 당장 물에 뛰어들고 싶고, 시원한 바람 맞으며 모터보트를 타고 싶고, 차가운 캄파리를 들이켜고 싶고, 이곳을 빨리 떠나고 싶고. 휴가를 충분히 즐기거나 만족스러워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전후 잔여 지뢰를 제거하다 폭사한 젊은이의 시신을 찾으러 온 젊은이의 노부모가 버티고 있는 산에 찾아가고, 호텔에서 맛없는 식사를 하고, 바다에서 수영을 하거나 일광욕을 한다. 그들 사이에 모터보트를 몰고 온 낯선 남자가 끼어들고, 남자는 사라에게 관심을 보이다 짧은 저녁 시간 남몰래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소설 내내 아이를 맡기는 문제를 두고 불성실한 가정부와 사라 부부가 실랑이를 벌이고, 지나와 루디 부부, 사라와 자크 부부는 뚜렷하지 않은 이유로 티격태격하고 그러면서도 서로를 바라다, 원망하다, 떨어져 있고 싶다, 같이 떠나고 싶다, 갈등하고 서로의 차이를 마주하는 일을 반복한다. 먹고 놀고 쉬고 자고 덥다고 늘어지고 씻고 아이가 노는 걸 구경하고,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읽는 사람도 덩달아 권태롭고 지긋지긋하고 나른하게 했다.
자신을 욕망하는 남자가 생긴 일에 황홀해하던 사라가 너무 덤덤하게 체념하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건 현실적이면서도 심심했다.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파에스툼으로 가는 여행을 제안하다 거절당하는, 그러다가 체념한 채 다 알아, 하고 남자와 사라에게 말을 건네는 자크의 마음은 어땠을까 궁금했다. 자크도 다이애나와 각별한 사이로 보이고 이전에도 먼저 하고 다닌 짓이 있어서 그런지 크게 고통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다들 너무 무덤덤해서 이새끼들 뭐지 싶었다.
제목만 보고 이들이 있는 곳이 타키니아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타키니아에 가면 작은 말이 벽화로 그려진 고분을 볼 수 있다고, 자크와 루디와 사라는 그 말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지만 그들이 정말 작은 말들을 볼 수 있을지, 결국 보았는지 알 수 없다. 구글 이미지에 검색해 말들의 그림을 찾았다. 벽화의 말도 있고, 같은 동네에 부조로 된 말 모형도 있는 모양이었다. 이전에 본 김영하의 시칠리아 섬 여행기에 나왔던 아그리젠토 신전만큼 좋다고 언급되어서 그제야 이 동네 이탈리아였군! 나도 거기 들어봤어 헤헤-했다.
크게 재미는 없었다. 일상과 인생은 크게 재미 없는 편이 안전한 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재미있는게 좋다. 늘 그런 거만 읽을 순 없지만 가끔 소설 속 놈들이 내 대신 망하고 싸우고 활활 불타다 죽고 멸망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대리만족. 못된 독자.
마음껏 낯선 해변에서 보낼 수 있는 나날, 낮과 밤의 바다와 넘치는 햇볕, 할 일 없이 마냥 빈둥대는 시간을 누리는 모습은 많이 부러웠다. 물론 나 역시 사라처럼 아이 뒤치닥거리 하느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모습이 선하긴 하지만.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시대는 언제쯤 다시 만나게 될까.
+밑줄 긋기
-그것은 세상의 이면이었다. 고요하게 반짝이는 밤, 침묵으로 얼어붙은 고요한 해초들이 무성하게 들어앉은 밤이 그들을 떠받치고 있었다. 물고기들의 행렬이 불가해하며 손에 잡히지 않는 칠흑 같은 밤의 공간에 줄무늬를 그렸다. 군데군데 삶이 멈춘 곳들이 보였다. 헐벗고 텅 빈 심연들이 드러났다. 그곳으로부터 푸른 그림자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순수한 그림자가 감미로이 떠올랐고, 그것은 명백한 죽음의 광경이어서 도리어 생생한 삶을 웅변했다. 하지만 다이아나가 어서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고 소리쳤다.
“우리가 바다의 심연을 견딜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모르시겠어요?”
남자는 대답했다.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예요.”
-그녀는 똑같이 등을 돌리고 선 두 남자를 보았다. 한 명은 그녀가 잘 알고 있었고 언제까지나 그럴 터였다. 다른 한 명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를 결코 이 이상 알지 못하리라. 그는 그녀가 결코 더 이상 알지 못하게 되어 버릴 남자였다. 또 다른 남자는 그녀가 결코 알지 못할 남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모든 삶을 동시에 다 살 수는 없어, 라고 루디는 말했었다. 두 남자에 대한 지식은 양립이 불가능했다.
-“사랑엔 휴가가 없어.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 사랑은 권태를 포함한 모든 것까지 온전히 감당하는 거야, 그러니까 사랑엔 휴가가 없어.”
그는 강물을 마주한 채 그녀를 보지 않고 말했다.
“그게 사랑이야. 삶이 아름다움과 구질구질함과 권태를 끌어안듯, 사랑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어.”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0927/pimg_7921671142685943.jpg)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0927/pimg_7921671142685944.jpg)